새해에 대한 예화 모음
★ 새해
새해를 맞으면서 영국의 찬송가 작가 해버걸(Havergal, Frances Ridley 1836-1879)은 다음과 같은 기원의 시를 썼습니다. "사랑하는 아버지여, 새해는 동트렵니다. 오는 해에도 당신 안에서 살게 하여 주소서. 진보의 해가 되고 찬송의 해가 되며, 당신의 함께 하심을 증거하는 해가 되게 하소서. 섬기는 해가 되고 사랑을 증거하는 해가 되며, 거룩한 일을 하는 해가 되게 하소서. 사랑하시는 아버지여, 새해는 동트렵니다. 땅에서나 혹 하늘에서 당신을 위하는 해가 되게 하소서" - 우리가 맞는 새해도 주 위해 있는 해가 되기를 기원할 것입니다.
(엡 4:22-24, 5:15-21)
★ 새해, 하나님의 선물
고후 5:11-21 / 찬송 248장
본격적인 새해 첫 달을 살아가기 전에 먼저 하나님을 맞이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하루의 첫 순간을 하나님께 드리며, 새해를 살아가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려야 한다는 뜻이다. C. S. 루이스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아침마다 잠에서 깨는 순간, 첫째로 할 일은 그 모든 잡념을 밀쳐내고 하나님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며 더 크고 더 강하고 더 고요한 삶이 내 안에 잦아들게 하는 일이다." 본문 17절 말씀은 널리 알려진 것임에도 불구하고, 실제 생활에 적용하기란 쉽지 않음을 느낀다. 하나님이 나를 새롭게 하셨다. 새로워진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이전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앞에 겸손히 내려놓고, 새로운 피조물로서의 삶 그리고,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따라 새해를 살아가도록 기도해야 할 것이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화) 그리스도인의 결심
갈 2:19-21 / 찬송 318장
작심 3일이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사람의 의지로 무엇인가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한편으로는 무엇인가를 변화시킨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번거롭고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세상 속에서 주님의 뜻을 지켜나가며, 주님과 동행하며 생활할 수 있는 방법은 어떤 것이 있을것인가? 그것은 다름아닌,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되새기며 아직도 십자가에 못박지 못한 것 변화되지 못한 것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는 것이다. 그리고, '주여, 십자가 사랑으로 살게 하소서'라는 기도를 시시때때로 드리는 것이다. 이처럼 기도가 우리의 생활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 때, 기도가 곧 삶이 된다는 것을 체험적으로 느낄 때, 하나님을 향하여 살아가는 삶(19절),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살아가는 삶(20절), 하나님의 은혜를 유지하며 살아가는 삶(21절)이 된다는 것을 믿으며, 날마다 숨쉬는 순간마다 경건한 결심을 다져나가는데 힘써야 할 것이다.
(수) 내 마음의 소원을 아시는 하나님
창 26:23-33 / 찬송 446장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자칫 전쟁의 위기로 갈 수 있을 뻔한 상황속에서 오히려 그랄왕 아비멜렉이 이삭을 찾아와서 불가침 평화조약을 맺는 내용이 나온다. 그랄 땅에서 물질적 축복을 받았던 이삭은 아비멜렉과 불편한 관계로 그 땅을 떠났었고, 다시 돌아온 브엘세바는 그랄과 가까운 거리에 있었기 때문에 다시 아비멜렉과 관계가 나빠져 전쟁이라도 일어나게 된다면 이삭은 곤란한 위기에 빠질 위험성을 안고 있었다. 불가침 평화조약을 맺는 사건은 이삭이 가나안 땅의 브엘세바에 올라와서 우물을 파는 일 사이에 끼어 있다. 우물을 파고서(25절) 아직 결과가 나지 않은 상태에서 조약을 맺은 후에 물이 나온 것이다(32절). 하나님께서는 이삭의 마음에 남아있는 두려움과 염려를 미리 아시고, 아비멜렉의 마음을 움직이시며 주위 환경까지도 선한 것으로 역사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마음의 소원을 미리 알고 계신다. 다만,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어 그 뜻대로 움직이느냐를 지켜보고 계신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목) 하나님의 지혜, 세상의 지혜
잠 1:20-33 / 찬송 483장
사람의 성품 중에서 변덕은 달면 삼키고, 쓰면 뱉아내는 나쁜 습성을 말한다. 실상, 참된 것은 종종 삼키기에는 쓰지만 항상 유익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기심과 육신의 연약함을 핑계삼아 우리는 때때로 그것이 참된 지혜임에도 불구하고 뱉아내려고 한다. 심지어 세상의 지혜로 합리화하려는 부끄러운 충동에 사로잡히는 경우도 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우리의 마음이 얼마나 변덕스러웠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 예언자의 모습으로 의인화된 지혜가 어리석고 미련한 자들에 대해 고발하는 내용이 무엇인지(20-25절), 지혜를 외면한 이들이 치르게 될 대가는 어떤 것인지(26-28절), 지혜를 듣는 자와 듣지 않는 자의 결말은 어떻게 구별되는지(31-33절) 말이다. 하나님의 지혜와 교훈은 때로 우리의 잘못을 깨닫게 하고 철저한 순종을 요구하시기 때문에 입에 쓰게 여겨질 때도 있다. 참된 지혜, 하나님의 지혜, 십자가의 지혜를 사모하는 마음을 길러야 할 것이다.
(금) 속사람을 강건케 하옵시고
엡 2:1-10 / 찬송 507장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세상의 즐거움이나 유혹을 떨쳐내지 못하여 아슬아슬하게 흔들리는 신앙을 갖고 있는 사람을 볼 때가 있다. 신자(信者)는 되었지만, 성도(聖徒)는 아직까지 아닌, 온전한 영적 성숙이 이루어지지 못한 상태라고 말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믿게 된다면, 내외적인 '변화'는 당연히 동반되어지는 결과이다. 내 안에 내주하신 성령님께서 역사하시기 때문에, 이전의 구습을 좇던 불순종의 아들이 아니라 은혜의 풍성하심을 따라 빛의 자녀들로 살아가도록 속사람을 강건케 하시기 때문이다. 새로운 마음으로,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고 싶은지 새롭게 세운 계획들을 점검하면서 영적 건강을 점검해 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자. 하나님의 음성에 귀기울이며, 속사람이 강건케 되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도록 하자.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토) 가족 사랑도 주님 안에서
시 112:1-3 / 찬송 305장
미국의 신틀러라는 사람은 행복한 가정을 만들기 위한 방법으로 9가지를 말하였다고 한다. ①생활을 간소화하되 그 일상의 작은 기쁨들을 찾아낼 것 ②구조적이고 합리적으로 만들 것 ③인간 사회의 한 부분으로 생각하여 서로를 존중할 것 ④구성원이 하나가 되어 실패하더라도 격려하는 긍정적 사고방식을 가질 것 ⑤애정을 갖고 각자의 일에 관심을 갖는 따스한 분위기 ⑥상냥한 말과 밝고 쾌활한 마음 ⑦엄격하면서도 진심어린 말과 행동 ⑧신뢰감이나 안정감을 북돋워주는 말을 많이 할 것 ⑨기쁨과 감사가 넘쳐나는 분위기를 만들 것.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러한 가족 사랑의 근원은 다름 아닌 주님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깨달아 신앙의 유산을 계속하여 전해주는 일이다. 무엇으로 어떤 방법으로 가족을 사랑할 것인가? 본문은 이렇게 말한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그 후손이 땅에서 강성함이여 정직자의 후대가 복이 있으리로다."
★ 새로운 피조물로 선택된 거듭남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 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5:17) 기적 중에서 가장 큰 기적은 아마도 거듭나는 것, 즉 크리스천이 되는 것일 것이다. 거듭나게 되면 무기력을 버리고 열심을, 공포를 버리고 용기를, 의심 을 버리고 믿음을, 미움을 버리고 사랑을 갖게 되는데 이 모든 것은 예수그리스도의 공로이다. 당신은 거듭날 자인가"만일 당신이 거듭날 자가 아니라면 요한복음 3장을 읽으라.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당신의 삶 속에 영접하라. 당신을 새 인간으로 만들어 달라고 그에게 구하라.
★ 46세의 새출발
'99(구구)년도에 입학한 대학생을 가리켜 '비둘기 학번'이라고 말합니다. 평화와 순결을 상징하는 비둘기처럼, 14년 동안 한결같이 조선대 본관 중앙 현관을 지켜온 46세의 문종규씨, 그 '수위 아저씨'가 바로 올해 비둘기 학번의 야간 대학생이 되었습니다. 학생들에게 친절하고 유난히 표정이 밝았던 그 수위 아저씨의 인생 여정은 가난과 역경으로 점철된 것이었습니다. 6·25 상이용사이신 부친을 대신 해 가장으로서 가정을 꾸려나가야 했던 그는 상고를 중도에 포기한 채 막노동과 공장생활을 전전하면서도 인생의 밝은 면을 보면서 기쁘게 살았습니다. 대학 현관을 지키게 되면서 배움에 대한 꿈을 나날이 키워왔고 대학입학 검정고시 보기를 네 차례, 드디어 '98년에 시험에 합격하고 이듬해는 자신이 근무하던 학교의 자랑스러운 '비둘기 학번'이 된 것입니다. 업무를 마치고「경영학 개론」서를 가슴에 품고 강의실을 향하는 그는 더 이상 46세의 중년이 아니었습니다. 상실시대의 파도를 헤치며 나아가는 푸른 희망의 항해사였습니다.
★ 마음을 새롭게
에베소서 3장 14절 ∼ 19절
우리 한국 역사에 이태조와 무학대사의 대화는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로 전해지고 있기에 우리 모두가 다 잘 알고 있는 말씀입니다. 이태조께서 어느 때 무학대사와 대화를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대사의 얼굴을 자세히 보니 돼지상이네, 그려." 돼지 닮았다고 얘기했습니다. 아, 물론 농담이지요. 그런데 무학대사는 이태조를 쳐다보다가 하는 말이 "임금님은 부처님 상입니다" 그랬어요. 이태조는 다시 말했습니다. "아니, 아무리 임금님과 신하의 이야기이지만은 농담은 농담인데 나는 자네더러 돼지 같다고 했는데 자네는 어째서 날더러 부처님 같다고 하는 건가?" 이때에 무학대사는 시침을 떼고 한마디했습니다. "그거야 물론 누구든지, 자기 마음 생긴 대로 남의 얼굴 보는 거죠." 나는 내 마음이 부처님 같으니까 다 부처님으로 보이고, 당신은 돼지 같으니까 나를 돼지로 보는 거 아니겠느냐? 이거예요. 그래 뭐, 할 말이 없었지요.
★ 용서받고 「새옷」 입어야 중생
중생이란 무엇일까요.
중생이란 개혁이 아닙니다.흔히 『옛 죄를 끊고 새 생활을 시작하라』고 말합니다.좋은 말이긴 하지만 그것으로 거듭나거나 구원받은 것은 아닙니다.가령 가게에서 10만원 외상을 졌는데 그것은 갚지 않고 앞으로 계속 거래하면서 물건값을 지불한다고 해도,그 전에 갚지 않은 빚은 그대로 있는 것입니다.오늘부터 죄를 끊고 다시 죄를 범치 않는다고 해도 아직도 과거의 먹장 같은 검은 죄는 그대로 남아있는 것입니다.중생이나 신생은 하나 하나 개혁해 나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피로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죄까지 사함받고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는 것입니다.낡은 옷을 수선해 입는 것이 아니라 헌 옷을 벗고 새 옷을 입는 것과 같습니다.입술로만 고백하는 것은 중생이 아닙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고 했기 때문에 입으로 신앙고백하는 것이 거듭나는데 중요한 방편이 되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불충분합니다.
마음 중심으로 믿고 영생을 소유해야 합니다.하나님은 중심을 보시기 때문에 입에 발린 말만 가지고는 거듭났다고 할 수 없습니다.교회에 다니는 것이 중생은 아닙니다.
교회출석이 구원의 한 방편은 되지만 건성으로 교회 다닌다고 다 거듭난 것은 아닙니다.교회에 다니고 세례를 받고 착한 일을 하고 기독교 문화에 산다고 그것이 곧 중생은 아니고 구원받은 것도 아닙니다.
중생은 신적인 변화(Divine change)입니다.
사람은 영으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이는 곧 위로부터 태어난다는 뜻입니다.사람으로부터 오는 변화가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변화입니다.사람은 설득할 수 있으나 하나님은 신적 변화를 창조하실 수가 있습니다.우리는 자신이 창조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 없습니다.그러나 우리가 죄를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믿을 때 하나님이 우리 삶의 변화를 일으켜 주십니다.
중생은 신비로운 변화(Mysterious change)입니다.
니고데모가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라고 질문할 때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요한복음 3장8절)고 말씀하셨는데,그 뜻은 중생이란 신비스러운 것이어서 충분히 이해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중생은 절대적인 변화(Absolute change)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17절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 했습니다.중생은 모든 것이 변하는 것입니다.새로운 희망,새로운 기쁨을 갖게 됩니다.한 때 사랑하던 것을 지금 미워하게 되고,전에 미워하던 것을 이제 사랑하게 되는 변화가 일어납니다.전에는 교회를 가장 멸시했는데 이제는 세상의 어떤 기관보다 존중히 여기고 사랑하게 됩니다.한 때는 빈정거리고 욕할 때만 부르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이제는 그 어느 것보다 존귀하고 사랑스럽게 들리는 것입니다.
★ 생각을 새롭게
히브리서 12장 1절 ∼ 3절
어느 가정 주부가 고등어 두 마리를 시장에서 사가지고 집에 가지고 갔습니다. ‘내일 아침 이것으로 반찬을 하리라’ 생각을 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냉장고를 열어보니 고등어가 간 데가 없습니다. 그리고는 자기 구두가 냉장고 안에 들어있더랍니다. 신발장을 가보니깐 신발장에 고등어가 놓여 있습니다. 이 여자가 정신이 있는 겁니까 없는 겁니까? 여러분, 행동은 있는데 생각이 없다 말입니다. 그 생각은 어디로 갔습니까? 여러분, 이 반복되는 행위 속에서 어느 사이에 행동만 남고 생각은 빠져나갔습니다. 그것은 행위가 아닙니다. 행동이 먼저 가고 때로는 욕망이 먼저 가고 생각이 뒤따르면 그 일에는 계속 후회가 있습니다. 끝없는 후회 속에 살아가야 합니다. 생각이 먼저 가고 그리고 행동이 가서 생각한 바를 사건 속에서 행동 속에서 확증해 나갈 때에 그래서 때로는 더 높은 의미의 생각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올시다. 가령 생각과 행동이 따로 따로 간다고 합시다. 그 사람은 정신병자입니다. 인간을 학술적 용어로써는 호모사피엔스라고 합니다. 호모사피엔스라는 말은 생각하는 인간이란 뜻입니다. 혹은 호모에렉투스라고도 합니다. 그것은 직립 보행하는 사람이다. 두발로 서서 걸어다니는 사람들이다. 그런 존재란 뜻입니다. 호모파베르라고도 합니다. 그것은 도구, 용기를 사용할 줄 아는 존재다 그런 뜻입니다. 그러면 이 학술적 용어 속에서 사람의 사람 된 높은 가치는 어디 있느냐 하면, 호모사피엔스에 있습니다. 생각하는 인간, 그 생각이 없는 인간 그건 다만 동물일 뿐입니다. 이 생각하는 능력, 기능, 하나님이 주신 소중한 선물이요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인간에게 있는 가장 귀중한 기능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생각하는 것. 그러니까 생각을 져버릴 때 ‘인간 됨을 져버렸다’ 라고 말하게 되는 것이올시다.
★ 귀를 새롭게
마태복음 13장 16절 ∼ 23절
어느 날 아메리칸 인디언청년이 뉴욕시내 한 가운데에 살고있는 백인 미국친구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두 사이는 오랫동안 친한 사이였습니다. 자동차와 사람들로 붐비는 시내의 시가를 둘이서 걷고 있었는데 이 인디언 친구가 느닷없이 발을 멈추더니 "이 시내에서 귀뚜라미 소리가 들리누만" 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소음 속에서 귀뚜라미 소리를 들은 겁니다. 그때에 미국친구는 말하기를 "아! 이 뉴욕 한가운데에 무슨 놈의 귀뚜라미 소리란 말인가?" 라고 거부를 했더니 이리 와 보라고. 귀뚜라미 소리나는 쪽으로 계속 둘이 걸어가보니깐 길 모퉁이에 넝쿨나무로 된 집에 벽 틈에서 소리가 나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과연 그러했습니다. 그때에 미국 백인친구는 말하기를 "자네는 시골에서 살아서 청각이 아주 뛰어나게 좋은가 보구만"라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이 아메리칸 인디언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기가 가지고 있던 50전짜리 동전 하나를 아스팔트 땅에다가 떨어뜨렸습니다. 데구르르 굴러가더니 저만큼 가서 던져졌는데 길 가던 사람이 모두 발을 멈추고 그걸 바라봅니다. 그 중에 꼬마하나가 빨리 가서 50전짜리를 손에 들고 돈 주웠다고 좋아하면서 돌아오는 겁니다. 그때에 아메리칸 인디언 친구가 말을 했습니다. "내가 귀가 밝은 게 아니라 당신들의 귀가 어두워진 거요. 문제는 관심사가 문제라구요." 귀뚜라미 소리는 안들려도 돈 소리는 들리지 않느냐, 이렇게 비웃더라고 합니다. 여러분 무슨 소리가 들립니까? 아니 무슨 소리로 들립니까? 바로 거기에 여러분의 사람됨에 모습이 있는 것입니다.
마틴 부버(Martin Buber)라고 하는 유명한 신학자의 I and Thou 라고 하는 아주 참 세계적인 명저가 있습니다. '나와 너' 라고 하는 그런 의미의 책입니다. 여기서는 '인간의 존재라고 하는 것은 이것은 나 외에 어떤 대상과의 관계 속에서 가능해지는 것이다' 라고 말합니다. 여기는 두 유형이 있는데 하나는 인격적 관계요 대화적 관계요. 또 하나는 비인격적 관계라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나와 너'라고 하는 관계여야 하는데 잘못되면 '나와 그것'의 관계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I and Thou 냐 I and It 이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와 너의 인격적 관계에 있을 때는 내 존재가 인간적으로 살아납니다. 그러나 나와 그것의 관계가 되는 순간 나라는 존재도 자꾸 비인격화 되어버리고 만다 하는 이론입니다. 다시 말하면 대화적 관계, 듣는 관계에 있을 때에 인간존재가 성립되고, 대상을 수단으로 하여 버릴 때는, 들을 필요도 없고 듣지도 않는 그런 관계가 되면 인간의 인간됨은 무너지고 만다 하는 유명한 이론입니다.
★ 손을 새롭게
사도행전 1 : 13 ∼ 20
안소니 드 멜로 라고 하는 분이 쓴 '1분 지혜'라고 하는 아주 작은 책이 있는데요, 그 속에 나오는 짤막한 이야기입니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그러한 일화입니다. 한 도박사가 오랫동안 영성 수련을 쌓은 노 수도사를 찾아가서 자기 사정을 얘기했습니다. "어제 카드놀이를 하는데 속임수를 쓰다가 그것이 발각되어서 상대방이 저를 무참하게 때리고 창 밖으로 내던졌습니다. 그래서 무릎이 부러지고 깨지고 다 이렇게 부상을 입었습니다. 제게 무슨 충고를 해주시겠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이 노 수도사는 이 사람의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하시는 말씀이 "내가 만일에 자네라면 이제부터는 1층에서만 카드놀이를 하겠네"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이 도박사는 어리둥절했습니다. 분명하게 '다시는 도박질을 하지 마라' 그럴 것 같았는데 어째서 이렇게 말씀할까? 제자들도 이 말을 듣고 당황했습니다. 황당해서 "선생님, '다시는 그런 일을 하지 마라' 그래야지 어째서 '앞으로는 1층에서만 하라' 그랬습니까?" 이 노 수도사의 이야기를 그렇습니다. "그 사람을 좀 봐라. 그만두지 못할 사람이야. 저 사람은 도박을 끊지 못할 사람이다. 그러니 또다시 2층에서 내던져지면 되겠냐? 1층에서만 하라고 했느니라" 그랬어요. 여러분, '손을 씻는다.' 참 어려운 일입니다. 흔히 말하기를 '손씻는다' 그러쟎아요. '손을 끊었다.' 오랫동안 내려오던 습관에서 손을 끊는다는 것, 참 어려운 일입니다. 저는 정말로 어렸을 때 보았습니다. 이 도박을 너무 많이 해서 그것 때문에 패가 망신하니까 마지막에 결심하고 오른손 손가락을 작두에다 잘랐어요. 다신 안한다고……. 그 다음에 그 다음 손가락으로 하더라고요. 손 씻는 것, 참 어렵습니다. 그 별것도 아닌 것 같지만 담배 못 끊는 사람들 보세요. 요새 담배 피우는 사람들 구박이 자심합니다. 그 누구도 반가워하지 않습니다. 국제 비행장에 가서 보면은 아무데서도 못 피우게 하고 한 쪽, 요만한 유리로 만든 방에, 거기 들어가 앉아서 뻐끔뻐끔하고 있는 거 보면 원숭이 같더라고요. 이거 하나를 끊지 못해서 그 사람들에게 구박을 받고, 자기 자신도 이걸 끊어야 되겠다고 맹세, 맹세……. 손을 씻지 못하는 그런 비참한 모습을 보게 됩니다.
★ 밤이 가고 새 날이 오려면
어느 현자(賢者)가 제자들을 불러놓고 물었습니다. “밤의 어둠이 지나가고 새 날이 오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한 제자가 대답했습니다. “온 세상이 밝아오는 것을 보면 새 날이 온 것을 알 수 있지요.” 스승은 고개를 저으면서 아니라고 했습니다. “창문을 열고 사물이 그 형체를 드러내어 나무와 꽃이 보이기 시작하면 새 날이 밝아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스승은 역시 고개를 저으며 아니라고 했습니다. 여러 제자들이 각자의 의견을 나름대로 이야기했지만 스승은 계속 아니라고 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면 스승님은 밤의 어둠이 가고 새 날이 오는 것을 어떻게 아십니까?” 그러자 스승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너희가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보았을 때 지나다니는 모든 사람이 형제로 보이면 그때 비로소 새 날이 밝아온 것이다.” 새 날은 아침이 옴으로써 시작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이웃을 형제로 보고 그들을 사랑으로 대할 때 비로소 시작됩니다.
★ 입을 새롭게
이사야 6장 1절 ~ 8절
이스라엘 사람들의 지혜를 모았다고 하는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어떤 남편이 자기 아내에게 시장에 가서 맛있는 것을 사오라고 했습니다. 그 아내는 바구니를 준비해 가지고 나가서 소의 혀를 사왔습니다. 그 혀를 가지고 그날 요리를 해서 먹었습니다. 몇 일 후에 남편이 또 말하기를 오늘은 가장 싼 것을, 모든 음식 재료 중에 싼 것을 사 가지고 오라고 했습니다. 그 아내는 또 가서 소 혀를 사왔습니다. 남편이 “어째서 가장 맛있는 것을 사오라고 했는데 혀를 사오고, 가장 싼 것을 사오라고 했는데 또 혀를 사왔느냐” 하고 물었는데 그 부인은 대답하기를 “가장 맛있는 것이 혀입니다. 친절한 말, 사랑스러운 말, 그 아름다운 말을 듣는다는 것, 이보다 더 맛있는 게 없습니다. 좋은 소리를 듣는 거 가장 맛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사왔습니다. 가장 싼 것, 가장 쉬운 것, 그저 아무 생각없이 쉽게 할 수 있는 싸구려 행동이 바로 말입니다. 너무 쉽게 할 수 있는. 그래서 혀를 사왔습니다.” 이렇게 지혜를 담아서 대답했다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가장 귀한 것도 말이요 가장 잘못되기 쉬운 것도 말이요. 그래서 말에 허물이 없으면 온전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말로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고 불행해 지기도 하고 그리고 망하기도 합니다
★ 발걸음을 새롭게
로마서 10 : 9 ∼ 15
근엄하긴 하지마는 어리석기 그지없는 어떤 왕이 있었답니다. 아주 옛날 이야기입니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이 왕은 짜증을 냈습니다. 때로는 화를 냈습니다. 발에 먼지가 묻는다고. 그리고 거친 땅 때문에 발이 종종 상하게 된다고 투덜거리면서 늘 이렇게 불만스러웠는데, 급기야 이런 명령을 했답니다. "나라 전역을 쇠가죽으로 다 깔도록 하라" 하는 명령입니다. 이 소문이 삽시간에 전국에 퍼지게 될 때 사람들은 배꼽을 잡고 웃었답니다. 어떻게 이런 명령이 있을 수가 있단 말입니까? 아주 지혜로운 사람 하나가 왕을 찾아가서 말했습니다. "소가죽으로 온 땅을 덮는다니요. 그것은 가당치도 않은 생각입니다. 온 세상 소를 다 잡아도 그렇게는 못 합니다. 그러질 마시고 폐하의 두 발을 보호해 줄 수 있는 정도의 쇠가죽 두 조각만 있으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그 가죽으로 당신의 발을 잘 싸면은 다시 상처가 나지도 않을 것이고 먼지가 묻지도 않을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 어리석은 왕은 "아∼ 그거 참 좋은 생각"이라고. 그게 구두의 유래랍니다.
★ 아침마다 새로운 주의 긍휼
애가3:1-66
1. 두 생각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람은 생각을 하면서 자기의 모습을 돌아본다. 그나마 상황이 좋을 때에야 별 생각 없이도 지낼 수 있지만 조금만 복잡해지면 수많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더 악화되어지고 직접 피부에 느껴지면 그 때에는 생각이 넓어지는 것이 아니라 더 안으로 움츠러들어 벽안에 갇히어 끙끙대기가 일쑤이다. 예레미야도 마찬가지의 체험을 고백하고 있다. 그는 자기의 '고초와 재난'을 쑥과 담즙으로 비유하고 있다. 살가죽이 쇠하고 뼈가 꺾이는 절망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리라. 얼마나 그것이 심했으면 그가 '나의 힘과 여호와께 대한 내 소망이 끊어졌다'(18절) 하였겠는가. 그러나 하나님은 선지자의 마음에 또 다른 생각의 길을 터 주신다. 어두운 것을 기억할 때에는 낙심이 되지만 왠지 중심에 이것을 생각하니 소망이 피어오름을 그는 보게된다. 그것은 다름 아닌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의 무궁함'이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하나님에 대해서 항상 진리인 것'을 기억하게 하셨다. 다른 것은 다 변해도 변치 않는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생각하게 하신 것이다. 그 성품은 하나님 자신도 부인할 수 없고 저버릴 수 없는 것이었다. 호세아 선지자를 통해 북이스라엘의 죄를 지적하시고 심판을 명하셨던 여호와 하나님은 당신의 긍휼의 성품으로 인하여 끝내 이렇게 말씀하셨다: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 냐 내가 어찌 아드마같이 놓겠느냐 어찌 너를 스보임같이 두겠느냐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아서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호 11:8) 아무리 심판을 선포하셨어도 하나님 자신이 소유한 거부할 수 없는 긍휼의 성품이 하나님 안에서 불붙듯 하여 하나님을 견딜 수 없게 만든 것이었다. 이처럼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도 부인할 수 없는 항상 진리된 것'을 예레미야에게 생각나게 하시고 그의 생각의 물꼬를 빛으로 터 주신 것이다. 그것을 안 예레미야의 얼굴에는 복받치는 울음 가운데 울먹이며 터쳐 나오는 환희의 선명함이 있었다. 하나님의 긍휼이 항상 진리이기에 그것은 아침마다 항상 새롭다. 지나간 세월들은 언제나 과거의 기억 속으로 나를 끌어당기지만 하나님의 성품은 나를 언제나 현재 속에서 새롭게 하신다. 새벽을 한 번 생각해 보자. 새벽이 열리며 시작되는 하루는 이 땅에 어느 누구라도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한 날이다. 마치 눈이 내린 길에 발자국이 하나도 나있지 않은 길이 앞에 펼쳐져 있는 것과도 같다. 심지어 하나님께서도 그 길을 아직 걷지 않으신 그러한 새로움을 안겨 주는 것이 새벽이다. 하나님은 물론 모든 역사를 아시고 이끌어 가시지만 우리의 손을 잡고 가는 면에서는 아직 그분도 걸어보시지 않은 길이 바로 새벽으로 시작되는 하루의 삶이다. 그 하루는 누구라도 아직 절망의 발자국이나 낙심의 발자국을 내지 않았고 또 낼 수도 없다. 그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어떻게 그 하루를 맞이하느냐가 그 하루의 지나온 발자국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처럼 우리 안에 날마다 창조를 선물로 주신다. 오늘은 어제의 반복이 아니라 새로운 하루의 창조인 것을 알려 주시면서 같이 걸어가자고 손을 내미신다. 그리고 우리를 바라보시는 하나님 마음 속의 긍휼을 아침마다 새롭게 열어 보이시며 나를 부르신다. 그렇다. 그러한 하나님을 알고 나면 이 땅의 어떤 것도 자기의 기업을 삼을 만한 가치 있는 것으로 보일 수 없다. 오직 여호와만이 나의 기업이며, 그래서 나는 저를 바라리라고 고백할 따름이다(24절). 그러할진대 잠잠한 기다림이 우리 안에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2. 주님의 본심
갇힌 자를 발로 밟는 것과 재판을 굽게 하는 것과 송사를 억울케 하는 것을 주님이 기쁘게 보시지 않으시는데 하물며 그 분이 의도적으로 우리를 고생케 하시고 근심케 하시겠는가.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은 본심이 아니시다(33절). 그 분은 벌을 위한 벌을 내리지 않고 반드시 당신의 목적하신 바를 두시고 그것을 성취하는 분이시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주님이 메우신 멍에를 메고 잠잠할 것이다. 예레미야는 고백한다: '사람이 젊었을 때에 멍에를 메는 것이 좋으니'(27절). 그렇다. 주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더 나약하게 하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로 젊은 때와 같은 힘을 주시고 멍에를 메우는 분이시다. 견딜만한 힘을 주시고 우리의 고난을 헤쳐가게 하시는 것이다. 주님의 이루실 목적이 있으시기에 그리하시는 것이라면 어찌 우리가 그것을 마다하겠는가.
결국 당신의 부인할 수 없는 긍휼의 성품대로 풍부히 사랑을 베풀어주시고 우리를 긍휼히 여겨주실 주님께 인생을 맡기며, 때리는 자의 수욕을 참으며 티끌에 입을 대고 주의 뜻이 이뤄지길 기도하는 것이 우리의 본분이 아니겠는가. '주님께는 반드시 무슨 뜻이 있을거야... 그래, 주님이 언제 나를 실망시키신 적이 있었는가... 화, 복이 지극히 높으신 자의 입으로 나오는 것이 아닌가... 결국 긍휼로 내게 답하실 주님을 바라자...'
하지만 유다 백성들은 자기들의 회개에 대한 급한 응답을 요구하고 있다(40-41절). 그러하기에 하나님에 대한 실망도 그만큼 커져 금새 불평을 쏟아내고 있다(42-47절). 용서받는 것이 무슨 마땅한 자기들의 권리인 양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목적이 이뤄지는 것은 아랑곳없고 현실을 벗어나려는 목적만이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예레미야는 또 다시 시내처럼 흐르는 눈물을 훔쳐낸다(48절). 자기 한 사람의 고난으로 이 민족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면 그는 기꺼이 그것을 감내하려 하고 있다. 예레미야는 우리 예수님의 외로운 고난을 생각나게 해 준다.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살피시고 돌아보시기를 기다리며 묵묵히 주의 일을 행했던 주님... 모든 것을 맡기고 살아가는 자에게 가까이 하셔서 '두려워 말라'고 위로하시는 주님의 음성이 들린다(57절). 너를 축복하는 자를 내가 축복하고 너를 저주하는 자를 내가 저주하리라는 강한 약속으로 자기를 따르는 자를 신원해 주시는 주님... 그 주님이 오늘을 사는 내게도 가까이 오셔서 '두려워 말라'고 말씀하시니 이것이 은혜요 이것이 인생들 가운데서는 결코 맛볼 수 없는 하늘의 기쁨이 아니겠는가.
★ 새마음 새뜻 새힘
세계적인 철학자 러셀은 세상에는 물리적인 힘, 경제적인 힘, 영향력 등 세 가지 힘이 있다고 했습니다. 힘이 있는 사람은 큰소리치고 힘없는 사람은 아무 소리도 못합니다.세계 각 나라들은 군사력이란 물리적 힘을 가지려고 하고 사람들은 경제적인 힘을 숭상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 가운데도 돈을 하나님보다 크게 생각하고 살아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일주일 동안 유월절 명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에 상경하신 예수님은 어느날 아침 무화과를 찾았습니다. 그 이유는 너무 시장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또 광야에 있을 때 어린 소년이 내어놓은 보리떡 다섯 개, 생선 두 마리가 아니었으면 꼼짝없이 점심,저녁을 굶어야 했던 예수님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예수님은 물리적인 힘뿐 아니라 경제적인 힘도 빈약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큰소리,큰기침 하나 없음에도 이스라엘의 큰 무리를 통솔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힘이 무슨 힘이겠습니까. 그 힘은 물리적인 힘이 아닌 것입니다. 또 경제적인 힘이 아닙니다. 이 힘은 철학자 러셀이 말한 대로 영향력이라는 힘 즉 종교적 힘이었던 것입니다.
이제 한국 교회는 선교 2세기를 향해 영향력이라는 종교적 힘을 가져야 합니다.
이 힘은
첫째 하나님 말씀의 실천에서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듣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만큼 생활에 옮기느냐, 즉 실천하느냐가 문제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에 옮긴다고 하는 것은 위대한 인격과 정신의 표현입니다. 예수님은 철저하게 말씀을 옮긴 분입니다. 우리들도 이런 생활 훈련을 연마해야 이 세상에 소금도 되고 빛도 되는, 영향력 있는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둘째는 기대에 부응하는 행동입니다.
인간의 최대 기대는 생존과 행복과 평화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같은 기대에 부응하였던 것입니다. 즉 울고 있는 마르다와 마리아를 위로하였으며, 이 세상이 끝인 줄로 알고 있는 인생들에게 부활이 있음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그리고 무덤 속에 썩고 있는 나사로에게 새 생명을 불어넣어 재생의 기회를 주었습니다. 인간의 기대를 예수님은 모두 부흥하였던 것입니다. 오늘 선교 2세기를 내다보는 한국 교회도 인생의 기대에 부응하는 교회가 되도록 힘과 기량을 배양해야 하는 것입니다.적어도 앞으로의 한국 교회는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참생명, 밝은 희망 그리고 영원한 평화를 건네줄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셋째로 교회가 지녀야 할 힘은 생활의 변화와 창조의 기능입니다.
날로 새로워지는 신생의 역사입니다. 변화의 출발은 마음인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과 교회는 마음이 새로워져야 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새로워지면 생각도 새로워지고 뜻도 새로워지고, 말도 새로워지고, 행동도 새로워지고,생활도 새로워지고 인생 전부가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써 새로운 힘을 배양하십시다. 물리적인 힘이 아닙니다. 경제적인 힘도 아닙니다.예수님이 지니셨던 정신적인 힘,종교적인 힘,성령의 힘 곧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는 신앙의 힘, 사랑의 힘, 영적 영향력을 가집시다.
★ 새롭게 태어납니다.
가정 형편이 너무 어려웠던 저는 중학교를 중퇴하고 어느 가정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댁의 가장은 의과대학 교수이면서 유명한 병원 원장이었고, 하나뿐인 아들도 의과대학생이었습니다.
사모님과 딸도 인정 많고 덕있는 분들이어서 저는 남의집살이 하는 것 같지 않게 살았습니다. 그 가족 모두가 너무도 고마워 저는 정성을 다해 그분들을 섬겼습니다. 여러 해가 지나 제가 스무 살이 된 어느 날, 저는 뜻밖에도 그댁 아들로부터 정식으로 청혼을 받게 되었습니다. 불가능한 일이라는 생각과 심한 충격으로 오히려 눈물을 흘리며 그 집을 떠날 궁리만 했습니다. 주인댁 부모님도 당연히 반대를 했고 집안 분위기는 어둡고 무거워졌습니다. 그러나 뜻을 굽히지 않는 아들에게 부모님의 승락이 내려졌습니다. 그리고 그는 성의를 다하여 꾸준하게 그것이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내게 납득시켜 주었습니다. 부모님께서도 아들의 뜻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저에게 알려 주셨고, 그의 뜻을 받아들이라고 권면하셨습니다. 꿈같은 일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끝없이 두렵고 자신이 없었습니다. 며칠을 고민하는 저에게 아버님이 간곡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를 아내로 택하고 너를 며느리로 맞이한 우리에게 갚고 싶은 것이 있다면 네가 의사인 남편의 아내답게 되는 것이고, 병원장의 며느리답게 되는 것이다. 최선을 다해 살면서 이 가문의 당당한 일원이 되거라.”
저는 그 말씀을 듣고 크게 깨달았습니다. 저는 가정부 처지에서 그 댁의 며느리로 처지가 바뀐 것입니다. 저를 선택한 남편과 받아 준 시부모님께 감사를 드리는 일은 이전에 제가 가정부로 일하던 때의 의식이나 태도를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그 아버님의 며느리답게 그 남편의 아내답게 당당하게 살아가는 것 뿐임을 알았습니다. 저는 시부모님과 남편이 원하는 대로 공부를 시작, 고등학교 과정을 끝내고 대학의 간호학과에 입학하여 공부했습니다. 저는 최선을 다하고 끊임없이 노력하여 그 가문이 원하는 며느리와 아내가 되었습니다. 그것은 뼈를 깎고 살을 저미는 아픔이 함께하는 과정이었으나, 오직 저에게 힘이 되었던 것은 모든 가족이 저를 인정해 주고 그 가문의 일원으로 받아 주신 것에 대한 감사였습니다. 그 감사와 감격이 오늘도 저를 기쁨과 보람으로 살게 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 그것은 힘이요, 저의 재산입니다.
★ 새 시대에 새롭게
누가복음 5:33∼39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가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되리라”(37절)
예수님이 오심으로써 이 땅에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였습니다. 세례 요한이 외치던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1:15)는 메시지의 주인공이 오신 것입니다. 선지자들을 통해 말씀하시던 모습에서 아들을 통해 직접 말씀하시는 시대가 왔으며 한번에 그 스스로를 드림으로써 그를 믿는 자들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하나님의 독생자가 오셨습니다. 그렇게 새로 임한 새 시대에는 새로운 삶의 양식과 모든 영역 속에서 새로운 모습이 요구됩니다.
그러나 여전히 옛 방식대로,옛 모습대로, 무엇보다 ‘고정관념’ 속에 묶여 사는 바리새인들의 비판과 그들에 대한 예수님의 응답이 오늘 본문에 기록돼 있습니다. 한 예로 모든 것을 그들의 시각으로 보며 비아냥거리는 바리새인들은 요한과 그의 제자들이 금식하며 기도하는 것과 예수님 제자들이 먹고 마시는 것을 대조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그들의 몰이해를 향해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인간의 죄를 사하여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그분이 십자가의 죽음의 길을 가시기까지는 ‘신랑’되신 그분으로 인하여 기뻐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기쁨의 자세는 그분으로 인해 이 땅에 도래한 새로운 시대를 향한 당연한 반응이어야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오심과 십자가 대속으로 인해 그분을 믿는 모두에게는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새것이 되었음을 선포하고 있습니다.그 말씀과 함께 요한계시록 21장 5절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에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를 새롭게 만드시는 하나님의 사역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분의 오심으로 하나님나라가 이 땅에 임하기 시작하였고, 우리 또한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우리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변화시키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옛 시대의 옛것’에 사로잡혀 있는 자를 향해 ‘새 시대에 헌(옛) 방식’이 함께 할 수 없음을 ‘새 옷과 낡은 옷’ 그리고 ‘새 포도주와 낡은 부대’의 비유를 이용하여 가르침을 주고 계심을 보아야 합니다. 그러한 것들이 함께 할 때 두 가지 모두 버리게 됨을 지적하심으로써 새 시대에는 새로운 모습과 생각이 필요함을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또한 ‘묵은 포도주를 마시고 새것을 원하는 자가 없나니 이는 묵은 것이 좋다 함이니라’(39절)는그 당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던 속담으로 이 속담을 통해 한편으로는 옛것에 젖어 있는 그들의 모습, 또 한편으로는 그러한 삶의 위험함을 지적하고 계십니다.
우리도 그들과 같이 옛 모습에 연연해하지 말며 옛 모습을 벗어버리고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의 사역을 기대하며 사는 모습이 필요합니다.
★ 지금이 바로 새 출발점
인생이란 하루하루가 훈련이다. 우리 자신을 훈련하는 터전이다. 실패도 할 수 있는 훈련장이다. 살아있음이 흥겨운 훈련장이다. 지금 이 행복을 기뻐하지 않고 언제 어디서 행복해지랴.
이 기쁨을 발판삼아 온 힘으로 나아가자. 나의 미래는 지금 이 순간 이 곳에 있다.
지금 여기서 노력하지 않고, 언제 어디서 노력하랴.
-오히라 미쓰요의 <그러니까 당신도 살아> 중에서-
1년 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꺼내 읽어보며 새로운 다짐을 해봅니다.
지금 내가 고민하고 힘들어하는 것이 과연 얼마나 가치있는 일일까 생각하면서...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잊혀지고 해결될 것을 왜 그렇게 벗어나려고만 했는지,
사라져 버리고 싶다는 생각도 수없이 해보았지만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이었는지를 깨닫습니다. 살아있음을 기뻐하고 주어진 저의 삶에 충실해야겠습니다. 여러분께서도 지금 이 순간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행복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 새로운 출발
모든 실패 뒤에는 새로운 기회의 약속이 있습니다. 헨델은 40년 동안 영국과 유럽에서 오페라 음악의 작곡가로 널리 이름을 떨쳤으나 자신이 얻은 명성을 덧없이 느꼈습니다. 1741년 8월, 나이 들고 빈털털이가 된 헨델은 뇌출혈로 몸의 한쪽 부분이 마비되어 제대로 걸을 수조차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찰스 기본이라는 한 시인이 방문하였습니다. 그는 헨델에게 성경 본문을 가지고 작사한 시를 건네주며 그것을 작곡해줄 것을 제안하였습니다. 처음 헨델은 아무 생각 없이 그 시를 읽었으나 점차 그의 얼굴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멸시를 받아…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그를 위로하는 자가 아무도 없으니.” 이 이사야서의 말씀이 헨델의 상처들을 모두 어루만져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나의 구원자는 살아계시니 기뻐하라. 할렐루야!”라는 끝 구절을 읽고, 곧바로 펜을 움켜 잡았습니다. 그는 작곡하는 중에 눈시울이 뜨거워짐을 수시로 느꼈고, 그 후 21일 동안 거의 쉬지 않고 “메시야”를 작곡하였습니다. 그는 “나는 내 앞에 천국과 위대하신 하나님을 뵌 것으로 생각됩니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메시야”가 처음 런던에서 연주된 후, 그는 장님이 되었지만 마지막 생애 6년 동안 그의 믿음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 날마다 새로운 신앙
인도의 어느 선교사가 주님의 고난에 대한 설교를 하고 있는데 그 자리에 앉아 있던 힌두교(Hinduism)를 믿던 소녀가 몹시 흐느껴 울더라는 것입니다. 설교가 끝난 후 이 선교사는 그 하염없이 흐느끼는 소녀를 붙들고 무슨 슬픈 사연이라도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 소녀의 대답이 "아닙니다. 주님이 나를 위해서 이토록 고난을 받았다는 사실이 나로 하여금 참지 못하게 하여 우는 것입니다." 하면서 대답하더라는 것입니다. 이 소녀의 말을 들은 선교사는 또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왜 나에게는 이러한 감격과 처음에 믿던 신앙의 열과 체험이 마비되었을까 하면서 자신의 무감각해진 신앙과 마비된 신앙의 체험을 안타까워하면서 회개를 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 새로운 삶을 위한 10가지 방법
1. 잘못을 반복하지 말라.
2. 자신의 입술을 조심하라.
3. 행동은 최선의 동기에 따르라.
4. 적게 말하고 듣는 입장에 서라.
5. 예의 바른 사람이 되라.
6. 비밀을 누설하지 말라.
7. 타인을 판단하지 말라.
8. 한시간 이상 독서시간을 가지라.
9.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라.
10. 맡겨진 것에는 최선을 다하라.
★ 삶의 위기는 새로운기회
1888년 한 유명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인류 역사상 최초로 다이나마이트를 만든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다이나마이트를 제조한 다음에 일약 당대에 명사가 되었고 수많은 돈을 벌고 사람들의 관심과 촉망을 받는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가 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깨어나 언제나 하던 버릇처럼 신문을 펴서 기사를 읽기 시작하는데, 깜짝 놀랄 만한 기사를 발견했습니다. 그 서두에 자기가 죽었다는 기사가 씌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신과 제가 만일 당신과 저의 죽음을 알리는 신문 기사를 읽는다면 우리는 무엇을 느낄 수 있을까요? 그 신문 기사의 보도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세계 최초로 다이나마이트를 발명한 유명한 알프렛트 노벨이 죽다.” 이 기사를 읽은 그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사실 자기 동생이 죽었는데, 기자들이 혼돈하여 자기가 죽은 것으로 보도를 냈던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사망 기사 앞에서 이 사람은 깊은 침묵과 말할 수 없는 도전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수많은 사람을 죽일 수 있는 폭탄을 만들어서 재물을 얻었고 명성을 얻었지만, 결국 내 인생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나고 마는 것이 아닐까? “많은 사람들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폭탄을 만든 제조업자가 드디어 죽다”라고 보도한 신문을 찢어 버리면서 그는 새로운 삶을 살겠다고 결심을 합니다. 그는 인생의 허무 가운데 영원한 생명이 있다는 복음을 깨닫게 되었고 하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위기가 닥치기 전에는 자신을 바라보지 못합니다.삶의 위기에서 겸손히 자신을 볼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그리고 훗날 그는 하나님과 사람들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재산을 쓰기로 결심했습니다. 그것이 저 유명한 알프렛트 노벨의 노벨평화상이 시작된 이유임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 새로운 결단으로 새롭게 시작하도록 하자
어떤 자매가 목사님을 찾아와 하소연했다.“목사님! 저는 계속 같은 자리를 맴돌기만 합니다.뭔가 새로운 삶을 살고 싶지만 작심삼일입니다.그래서 새해가 되었어도 새로운 계획 같은 것을 세우기조차 겁이 납니다” 목사님은 그의 말을 듣더니 창고에 가서 먼지가 뽀얗게 서려있는 낡은 소쿠리를 그에게 주며 이렇게 말했다.“자매님! 이유는 묻지 말고 소쿠리에 물을 담아오시기 바랍니다” 그 자매는 순종하는 마음으로 소쿠리에 물을 담아보려고 했다.그러나 아무리 애를 써도 소쿠리에는 물이 담기지 않았다.목사님은 결국 빈 소쿠리를 들고 온 그를 보고는 이렇게 말했다.“비록 소쿠리에 물을 담지는 못했지만 그 안에 있던 먼지는 깨끗이 사라졌지요? 마음먹은 대로는 안되어도 무언가 새롭게 살려고 노력하는 그 자체가 의미 있는 것입니다” 새해가 밝았다.새로운 결단으로 새롭게 시작하도록 하자.그 자체가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 꿈을 품고 새로운 한 해를 만들자
2차 대전 무렵 매사추세츠 해안에서 S4 잠수함이 사고로 침몰하였다.
잠수함 속에서는 승무원들이 얼마 남지 않은 산소에 의지하며 죽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뒤늦게 도착한 구조대는 쇠붙이로 잠수함 벽을 두드리는 몰스 신호를 보냈다.
배 안에 있는 사람들은 이 몰스 신호를 듣고 ‘구출할 수 있느냐’는 신호를 보냈다.
구조대는 ‘희망이 있다.조금만 참으라’고 신호를 보냈다.
‘희망이 있다’는 말에 잠수함 승무원들은 희박한 산소로 견딜 수 있었다.
희망이 없는 사람은 살아 있어도 죽은 것과 같다.
반면에 꿈이 있는 사람은 어떠한 고난이 와도 극복한다.희망은 소생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희망은 불행한 사람에게 소생의 불빛이요,슬픈 사람에게 기쁨의 미래를 약속한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희망은 현재의 위대한 삶을 살게 하는 원동력이다.
우리 모두 큰마음에 큰 꿈을 품고 새로운 한 해를 만들어야 하겠다.
★ 새 날에 허락하신 ...감사
여호와께서 감사하라 저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심이로다(시118:1)
우리는 새 날을 허락하신 주님께 감사드려야 한다. 당신이 하나님의 축복에 대해 감사하는 뜻을 적어보라. 그러면 시편 기자의 이 말씀이 귀중하다는 것을 이해할 것이다.
감사의 뜻 : 주님! 나는 주님으로부터 받은 것이 얼마되지 않는다고 보아왔습니다. 그러나 깨닫고 보니 나는 주님께로부터 모두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 새롭게 태어납니다.
가정 형편이 너무 어려웠던 저는 중학교를 중퇴하고 어느 가정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댁의 가장은 의과대학 교수이면서 유명한 병원 원장이었고, 하나뿐인 아들도 의과대학생이었습니다.
사모님과 딸도 인정 많고 덕있는 분들이어서 저는 남의집살이 하는 것 같지 않게 살았습니다. 그 가족 모두가 너무도 고마워 저는 정성을 다해 그분들을 섬겼습니다. 여러 해가 지나 제가 스무 살이 된 어느 날, 저는 뜻밖에도 그댁 아들로부터 정식으로 청혼을 받게 되었습니다. 불가능한 일이라는 생각과 심한 충격으로 오히려 눈물을 흘리며 그 집을 떠날 궁리만 했습니다. 주인댁 부모님도 당연히 반대를 했고 집안 분위기는 어둡고 무거워졌습니다. 그러나 뜻을 굽히지 않는 아들에게 부모님의 승락이 내려졌습니다. 그리고 그는 성의를 다하여 꾸준하게 그것이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내게 납득시켜 주었습니다. 부모님께서도 아들의 뜻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저에게 알려 주셨고, 그의 뜻을 받아들이라고 권면하셨습니다. 꿈같은 일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끝없이 두렵고 자신이 없었습니다. 며칠을 고민하는 저에게 아버님이 간곡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를 아내로 택하고 너를 며느리로 맞이한 우리에게 갚고 싶은 것이 있다면 네가 의사인 남편의 아내답게 되는 것이고, 병원장의 며느리답게 되는 것이다. 최선을 다해 살면서 이 가문의 당당한 일원이 되거라.” 저는 그 말씀을 듣고 크게 깨달았습니다. 저는 가정부 처지에서 그 댁의 며느리로 처지가 바뀐 것입니다. 저를 선택한 남편과 받아 준 시부모님께 감사를 드리는 일은 이전에 제가 가정부로 일하던 때의 의식이나 태도를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그 아버님의 며느리답게 그 남편의 아내답게 당당하게 살아가는 것 뿐임을 알았습니다. 저는 시부모님과 남편이 원하는 대로 공부를 시작, 고등학교 과정을 끝내고 대학의 간호학과에 입학하여 공부했습니다. 저는 최선을 다하고 끊임없이 노력하여 그 가문이 원하는 며느리와 아내가 되었습니다. 그것은 뼈를 깎고 살을 저미는 아픔이 함께하는 과정이었으나, 오직 저에게 힘이 되었던 것은 모든 가족이 저를 인정해 주고 그 가문의 일원으로 받아 주신 것에 대한 감사였습니다. 그 감사와 감격이 오늘도 저를 기쁨과 보람으로 살게 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 그것은 힘이요, 저의 재산입니다.
★ 자기 이미지를 새롭게 하기 위한 10가지 충고
1. 외모와 표정을 바꾸어 보라. 2. 지금까지 가진 불건전한 자기상을 당장 버리라.
3. 먼저 웃고 칭찬하고 친절하라. 4. 성공한 이들의 자서전을 읽으라.
5. 보상을 받지 않는 봉사를 시작하라. 6. 인생을 즐겁게 사는 사람과 사귀라.
7. 자기 장점을 주위 사람에게 물어 보라. 8. 외설물을 단호히 거절하라.
9. 실패 속에서 오히려 배우라. 10.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라.
★ 새로운 결단
어떤 자매가 목사님을 찾아와 하소연했다.“목사님! 저는 계속 같은 자리를 맴돌기만 합니다. 뭔가 새로운 삶을 살고 싶지만 작심삼일입니다. 그래서 새해가 되었어도 새로운 계획 같은 것을 세우기조차 겁이 납니다” 목사님은 그의 말을 듣더니 창고에 가서 먼지가 뽀얗게 서려있는 낡은 소쿠리를 그에게 주며 이렇게 말했다. “자매님! 이유는 묻지 말고 소쿠리에 물을 담아오시기 바랍니다” 그 자매는 순종하는 마음으로 소쿠리에 물을 담아보려고 했다. 그러나 아무리 애를 써도 소쿠리에는 물이 담기지 않았다. 목사님은 결국 빈 소쿠리를 들고 온 그를 보고는 이렇게 말했다. “비록 소쿠리에 물을 담지는 못했지만 그 안에 있던 먼지는 깨끗이 사라졌지요? 마음먹은 대로는 안되어도 무언가 새롭게 살려고 노력하는 그 자체가 의미 있는 것입니다”
★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마9:14-17
오늘의 본문에는 요한의 제자들이 바리새인들과 함께 예수님께 금식의 문제를 던진 기사가 나옵니다. 요한의 제자들은 3세기까지 결집하여 존속하며 세례요한처럼 검소하고 경건 운동에 앞장섰습니다. 그러나 이 제자들이 바리새인들에게 이용당해 예수의 제자들이 금식하지 않음을 질문합니다. 예수님은 이 질문에 대해 3가지 비유로 대답하시며 책망하셨습니다.
1.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는 슬퍼하지 않는다.
당시 바리새인들과 세례요한의 제자들은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에 금식을 했습니다. 그러나 금식이 형식화, 제도화, 교리화, 율법화되면 안됩니다. 외식과 형식주의로 나가 사람을 의식할 때는 위험합니다. 주님은 마태6장의 산상보훈에서 구제, 기도, 금식문제를 말씀하시며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외식적 경건을 경고하셨습니다. 우리의 경건은 은밀해야 합니다. 우리는 죄를 끊기 위해, 시험을 이기기 위해, 하나님의 특별한 도움이 요청될 때, 영적인 은사와 능력을 받기 위해서 금식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사람을 위한 외형적, 외식적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2. 생베조각을 낡은 조각에 붙이지 않고, 새포도주는 낡은 부대에 넣지 않는다.
주님은 모세의 율법과 구약을 오해한 낡은 부대에 새포도주, 생베조각인 복음을 넣는 것은 둘 다 망치는 것이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우리는 복음의 진리와 내용은 변해서는 안되지만 비 진리인 의식은 새시대에 맞추어야 합니다. 21세기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낡은 가죽부대를 버려야 합니다. 새시대에는 새 옷이 필요합니다. 옛사람은 새신자의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유한한 것은 영적인 것을 수용할 수 없습니다. 세속적인 것은 영적인 것을 담을 수 없습니다. 자신을 항상 감찰하고 갱신하고 변화시키며 새롭게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결론: 우리 자신과 우리 교회가 바리새주의와 외식주의에서 벗어나 새포도주를 새부대에 담음으로 정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21세기를 이끌어 가는 주인공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 변화되려거든
어느 교회 젊은 집사님이 담배를 끊지 못해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명색이 집 사라는 사람이 담배도 끊지를 못한대서야 체면이 서질 않는다고 생각한 끝에 고심하다가 금년 여름휴가를 기해 보따리를 꾸려가지고 철원에 있는 모 기도원에 들어 갔습니다. 자기 생각엔 기도원에 들어가 기도하고 담배를 끊을 작정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루가 가도 이틀이 가도 남들 다 받았다고 날뛰는 성령도 못받고 담배는 여전히 피고 싶어서 숲속 깊은 곳으로 숨어 들어가 담배를 피우곤 했습니다. 그런데 피우긴 하면서도 자신의 모습이 그토록 처량할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왕에 결심하고 올라온 걸음이니 도중에 내려갈 수도 없고 해서 다시 도전하기로 하고 기도중 갑자기 “내버려라 내버려라”는 음성이 들려 오더라는 것입니다. 깜짝 놀라 뭘 내버리라는 걸까 생각하며 주머니를 뒤져보니 바지 주머니에 담배와 라이터가 들어 있더랍니다. 그는 변화를 원했지만 옛것을 버리지 않고 품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그것을 꺼내 유유히 흐르는 한탄강에 집어 던졌습니다. 그리고 다시 바위 위에 엎드려 기도하다가 성령을 충만히 받았습니다. 한탄강 물과 함께 떠내려간 담배갑과 라이터처럼 그의 희미하고 흔들렸던 지난날의 신앙생활도 함께 떠내려갔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삶이 그에게 찾아 왔고 그는 찬송하며 집으로 돌아 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그날부터 담배냄새만 맡으면 구역질이 일어난 다는 사실입니다.
★ 새로운 꿈
스위스의 헨리 듀넌트라는 유명한 은행장이 있었다. 그는 그 당시 전 세계를 석권하고 있었던 유명한 장군이요 황제였던 나폴레옹 황제를 만나고자 하는 꿈을 갖고 있었다. 그가 나폴레옹을 만나고자 하는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하나는 그 시대의 세계적인 거목이었던 나폴레옹을 개인 대(對) 개인으로 만나고 싶다는 야망 때문이었고, 또 하나는 스위스의 은행장으로서 불란서와 더불어 경제협력의 기회를 가졌으면 하는 소망 때문이었다. 드디어 그는 조국 스위스의 경제 사절 임무를 띠고 파리로 가서 나폴레옹 황제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자신의 꿈이 이제 마악 실현 될 찰나에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가 파리에 도착하자 마자 전쟁이 일어났다. 그는 황제가 전쟁터로 출정한 직후에 파리에 도착했던 것이다. 나폴레옹을 만나고 싶다는 자기의 꿈이 산산조각이 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듀넌트는 실망하지 않았다.
그는 나폴레옹 황제를 만나고자 하는 개인적인 꿈을 실현 시키기 위해서 전쟁터로 따라 나갔다. 마침 프랑스 군이 오스트리아 군대와 더불어 치열한 전투를 하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었다. 그는 난생 처음으로 포탄이 날아 다니는 전쟁터의 구경꾼이 되어 한바탕 전쟁이 끝나기 까지 그 관경을 관전하게 되었다. 전쟁은 끝났다. 그는 피투성이가 되어 뒹굴고 있는 수많은 시체들을 바라보면서 전쟁의 참혹함과 허무성을 뼈저리게 깨닫게 된다. 전쟁이 끝났지만 그는 거기에 남아서 오랜 기간동안 의사를 도와 부상병들을 처리하고 시체들을 치우는 일을 했다.
나폴레옹 황제를 만나 경제적으로 새로운 副를 획득하겠다는 꿈은 사라졌지만 그는 전쟁터에서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새로운 꿈 하나를 간직하게 된다. 그것은 평화에 대한 꿈이었다.
"이 세상에서 전쟁은 없어져야 한다. 그리고 전쟁에서 부상당하는 사람들을 위해 무엇인가 해야한다. " 이 꿈은 그의 마음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그는 몇몇의 친구와 함께 한 가지 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오늘 날 저 유명한 적십자사이다. 그는 첫번 째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이 적십자기(旗)는 색상과 순서 배치만 다를 뿐 스위스의 국기와 똑같다. 조국 스위스에 그리고 전 세계에 평화를 심고자 햇던 이 사람의 꿈은 실현된 것이다. 그는 하나의 꿈이 절망으로 끝났을 때 거기에서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나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은 이 전의 꿈보다 더 크고 위대한 꿈이었다.
*.희망(希望) 인간의 특징가운데 하나는 [희망한다]는 것이다. -에리히 프롬-
★ 신은 새 부부가 생길 때마다 새로운 말을 해 준다
'두 사람의 남녀가 서로 결합하면, 그때부터 지금 까지 없었던 새로운 세계가 하나 더 만들어진다'는 격언이 있다. 이 새 세계에는 처음 만난 이 두 남녀만의 새로운 말이 생겨난다는 뜻이다. 결혼을 하고 나면 남자는 잃어버리는 것이 있다. 물론 여자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탈무드>에는 특히 남자쪽이 높이 존중되어 왔으므로 여자가 잃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없다.
로마 황제가 어느 랍비를 불러 물었다. [남자에게 있어 여자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 유태의 신은 아담을 잠재우고 그의 갈빗대를 빼 여자를 만들었다는데, 그렇다면 유태의 신은 도둑이 아니겠는가?] 성서에 보면, 분명 이브는 아담의 갈빗대로 만들어졌다고 되어 있다. 랍비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그 현장에 누가 있었다면 경찰에 고발했겠지요. 그런데 어젯밤 우리 집에 도둑이 들어 은수저 대신에 금으로 된 술잔을 놓고 갔습니다.]
[오. 그래. 그거 아주 횡재하였군.] 황제는 창세기편에서 보듯 처음 태양이 솟아오르는 듯 눈빛을 반짝였다. [예, 그렇습니다. 신께서 이 세상에 여자를 내려주신 것도 똑같은 경우일것입니다.]
남자가 여자와 함께 살게 되면 물론 잃는 것이 있다 수입과 자기만의 자유 같은 것이다. 하지만 그 잃는 것 대신에 금으로 만든 황금잔과 같은 평생의 동반자를 얻은 것이다. /탈무드
★ 새로운 결단
어거스틴이 바닷가를 거닐면서 삼위일체에 대해 고민을 했습니다. 삼위일체를 이해할 수 없어 계속 고민하며 걸어가는데 자기 앞에 어느 어린 아이 하나가 바닷가에 앉아 장난을 하며 놀고 있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조개껍질로 바닷물을 퍼서 자기 앞에 파놓은 조그마한 구멍에 붓는 일을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어거스틴은 물었습니다. “너 왜 이런 짓을 하고 있니?” 어린이가 대답하기를 “바닷물을 다 퍼서 여기 넣을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때 어거스틴은 깨달았습니다. 내가 어리석은 생각을 했구나 다시는 삼위일체에 대해서 의심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어거스틴이 바닷가에서 본 것은 환상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계시했느냐 이것이 문제가 합리적이냐, 이치에 맞느냐 하는 이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어느 쪽이 사실이냐 그것만 문제가 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오셨으면 오신 것으로 끝난 것이지 이것이 가능하냐 아니냐. 내 마음에 드느냐 안드느냐. 이치에 맞느냐 안맞느냐가 무슨 상관입니까? 오직 믿음으로 묻지 말고 믿어야할 것입니다. 일본 사람들의 격언 중에 재미있는 것이 있습니다. “갈까 말까 하는 길은 가지 말라. 먹을까 말까 하는 음식은 먹지 말라. 할까 말까 하는 일은 하지 말라. 죽을까 말까 할 때는 죽으라”입니다. 우리에게 좀더 새로운 결단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지성, 우리의 판단이 다 충족된 다음에 무엇을 하겠다는 어리석은 생각은 하지 맙시다.
★ 공수부대 군목의 새벽기도
" 여호와여 오직 주께 내가 부르짖었사오니 아침에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달하리이다 "
(시편88:13)
오늘은 공수부대에서 근무하는 군종목사 양목사(늘 푸른 교회)에게는 특별한 날이다. 5시에 시작하는 새벽기도에서 양목사는 교인들에게 간곡히 기도를 부탁하고, 잠깐의 기도를 마친 후 동이 트기 시작하는 찬 공기를 가르며 장병들과 함께 강하 훈련장으로 향한다. 이날은 일명 '점프'라고 하는 강하 훈련 날이다. 새벽 기도에 참석한 교인들은 이미 훈련에 참가하는 장병들을 위해 기도하는 일이 익숙하다. 양목사는 훈련이 있을 때마다 끝나는 날까지 쉼 없이 특별 새벽기도를 해왔다. 그러다 보니 훈련이 많은 부대인 만큼 1년중 반수 이상이 특별 새벽기도일 수 밖에 없다. 밝아 오는 아침해를 바라보며 양목사는 장병들에게 무사히 훈련을 마칠 수 있도록 격려한다. 강하를 기다리는 시간은 긴장의 순간이다. 양목사는 장병들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펴 보이며, 마음의 평안을 주고 여느 때나 마찬가지로 다른 대원보다 앞장서서 창공을 향해 몸을 던진다. 주일 다음날인 월요일에 양목사는 안수집사인 지휘관과 함께 기도를 한다. "생명을 담보로 하는 훈련을 하나님께서 자키시어 안전하고 복되게 하옵소서. 낙오자 없는 강건한 훈련이 되게 하옵소서. 지휘관에 믿음과 지혜를 주시어 부대가 늘 안전하게 하시고, 부하들을 내 자식처럼 사랑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옵소서."
★ 새로 시작할 수 있는 컴퓨터
누구나 컴퓨터 게임 놀이를 즐깁니다. 그중 가장 흥미있는 게임 중의 하나는마이크로 소프트의 "가상 비행" 입니다. 대부분의 게임에는 먼저 비행기의 종류를 프로펠러든 제트엔 진이든 선택합니다. 다음으로 이륙하거나 착륙할 비행장을 180개 중에서 선택합니다. 여러 시간의 연습으로 착륙 기술을 익힌 뒤에야 비행기를 추락시키지 않고, 안전하게 착륙시킬 수 있습니다. 너무너무 현실감이 넘칩니다. 잘못하면 뉴욕에 있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에 부딪힐 수도 있으며 시카고의 고층 '시어즈' 건물에 부딪힐 수 있으며 시애틀에 있는 뾰족탑인 '스페이스 니들'에 부딪힐 수 있습니다. 비행기가 공중 폭발을 할 수 도 있으며 댈러스 상공을 음속보다 빠르게 날 수도 있습니다. 시간당 500마일의 속도로 달리다가 미시간 호수에 처박힐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가상 비행' 에서 가장 좋은 점은 어떤 상황을 했다 할지라도 다시 살아나서 새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추락해서 불이나든, 산산조각이 나든, 바다에 빠지든 게 임은 원상태로 다시 회복되어 조종사는 이륙 코스에 비행기를 놓고 또 이륙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 새벽기도
“기도 때문에 치러야 할 불편을 생각지 마라. 하나님은 당신을 기도하게 하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셨다.” 영국의 복음주의 순회선교사 오스왈드 챔버스의 말이다. 새벽에 일어나 기도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어느 교회든지 새벽예배는 주일예배보다 출석인원이 적기 마련이다. 성도는 결코 주일 아침에만 성도인 것은 아닌데 실제의 삶에서 많은 성도들이 주일아침에만 성도로 살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을 사모하는 영혼들에게 새벽기도는 하나님의 얼굴을 뵙기 전에 이 땅의 것들을 보지 않겠다는 결단이요,매일 아침 하나님의 제단에 자신의 음성과 마음의 첫 열매를 바치겠다는 헌신이다. 새벽기도는 단순한 기도이기 이전에 하나님과 더불어 하루를 시작하여 그 하루를 은혜의 날로 만들려는 거룩한 시도인 것이다. 세상이 다 잠들어 있는 새벽에 조용히 일어나 하나님을 만나는 사람들이 많아지기를 소망한다. 새벽은 기도하고자 하는 성도의 마지막 보루이기 때문이다.
★ 새벽기도
“기도 때문에 치러야 할 불편을 생각지 마라. 하나님은 당신을 기도하게 하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셨다.” 영국의 복음주의 순회선교사 오스왈드 챔버스의 말이다. 새벽에 일어나 기도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어느 교회든지 새벽예배는 주일예배보다 출석인원이 적기 마련이다. 성도는 결코 주일 아침에만 성도인 것은 아닌데 실제의 삶에서 많은 성도들이 주일아침에만 성도로 살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을 사모하는 영혼들에게 새벽기도는 하나님의 얼굴을 뵙기 전에 이 땅의 것들을 보지 않겠다는 결단이요,매일 아침 하나님의 제단에 자신의 음성과 마음의 첫 열매를 바치겠다는 헌신이다. 새벽기도는 단순한 기도이기 이전에 하나님과 더불어 하루를 시작하여 그 하루를 은혜의 날로 만들려는 거룩한 시도인 것이다. 세상이 다 잠들어 있는 새벽에 조용히 일어나 하나님을 만나는 사람들이 많아지기를 소망한다. 새벽은 기도하고자 하는 성도의 마지막 보루이기 때문이다.
★ 새로움을 찾는 가정
인간은 누구나가 신선하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좋아합니다. 가정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항상 새로운 가정을 꾸미기 위해서는 부모들이 솔선해서 노력해야 가정은 참다운 안식처가 될 수 있습니다. 요즘은 신혼 부부들이 결혼한 지 채 일년도 못되어 이혼을 하는 경우가 빈번합니다. 이는 서로의 정에 이끌려 결혼은 했지만 이제 가정을 새롭게 만들기 위해 지혜롭게 생활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인의 가정은 영적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가정에 성령이 충만한 분위기를 만들어 놓으면 사랑과 희락이 넘치는 아름다운 가정이 될 것입니다. 또한 가정은 정신적으로 늘 발전해야 합니다. 늘 새로운 정보와 지식을 교환하며 부부가 정신적, 정서적 보조를 같이 해야 더욱 행복한 가정을 이끌어 나갈 수 있습니다. 어느 가정의 이야기입니다. 남편이 귀가 시간이 자꾸만 늦어지자 부인이 고민을 하다가 환경을 바꾸기로 하였습니다. 집안의 환경을 바꾸어서 집에 벽난로를 만들어 장작에 불을 지펴 놓고 의자를 놓아 집안 분위기를 새롭게 꾸몄습니다. 아내의 이러한 헌신적인 노력으로 남편은 집에 일찍 들어와 벽난로 앞에서 책을 읽으며 가족과 다정한 이야기를 나누는 성실한 남편이 되었답니다. 우리가 항상 가정을 새롭게 찾기 위해 작은 것부터 새로운 것으로 창조, 변화시킬 때 결코 시들지 않는 가정을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 삶의 위기는 새로운기회
1888년 한 유명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인류 역사상 최초로 다이나마이트를 만든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다이나마이트를 제조한 다음에 일약 당대에 명사가 되었고 수많은 돈을 벌고 사람들의 관심과 촉망을 받는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가 어느 날 아침잠에서 깨어나 언제나 하던 버릇처럼 신문을 펴서 기사를 읽기 시작하는데, 깜짝 놀랄 만한 기사를 발견했습니다. 그 서두에 자기가 죽었다는 기사가 씌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신과 제가 만일 당신과 저의 죽음을 알리는 신문 기사를 읽는다면 우리는 무엇을 느낄 수 있을까요? 그 신문 기사의 보도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세계 최초로 다이나마이트를 발명한 유명한 알프렛트 노벨이 죽다.” 이 기사를 읽은 그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사실 자기 동생이 죽었는데, 기자들이 혼돈하여 자기가 죽은 것으로 보도를 냈던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사망 기사 앞에서 이 사람은 깊은 침묵과 말할 수 없는 도전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수많은 사람을 죽일 수 있는 폭탄을 만들어서 재물을 얻었고 명성을 얻었지만, 결국 내 인생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나고 마는 것이 아닐까? “많은 사람들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폭탄을 만든 제조업자가 드디어 죽다”라고 보도한 신문을 찢어 버리면서 그는 새로운 삶을 살겠다고 결심을 합니다. 그는 인생의 허무 가운데 영원한 생명이 있다는 복음을 깨닫게 되었고 하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위기가 닥치기 전에는 자신을 바라보지 못합니다.삶의 위기에서 겸손히 자신을 볼수 있 게 되는 것입니다.그리고 훗날 그는 하나님과 사람들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재산을 쓰기로 결심했습니다. 그것이 저 유명한 알프렛트 노벨의 노벨평화상이 시작된 이유임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 역경속 새삶
C.S 루이스(1898∼1963)는 영국이 낳은 유명한 크리스천 작가.그의 대표 작 「스크루테이프 편지」는 선배 악마 스쿠르테이프가 후배 악마에게 인간을 유혹하는 법을 가르치는 내용이 나오는데 특히 인간의 의지를 자꾸 꺾으라고 충고한다. 루이스는 많은 역경을 거친 작가.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난 후 그는 아내가 이렇게 속삭이는 듯한 음성을 듣고 힘을 얻었다고 술회한다 . 『여보,슬픔을 당한 곳은 눈물의 골짜기지만 기운을 내세요.그 곳은 삶의 또 다른 시작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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