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문에 대한 예화 모음 아브라함의 가문 창 22:1~14 / 찬송가 305장
충청도 사람들을 옛날에 양반이라 불렀다. 대화 중에 `충청도 양반'이라 했더니, "그건 다 옛날 말이고 지금은 예수 믿는 사람이 양반이지" 한다. 세상에는 더러 귀한 가문이 있는데 참으로 존귀한 가문은 믿음으로 세워져가는 가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1백살에 낳아 15년 이상을 기르던 이삭을 하나님께 바치라고 하셨다. 오랜 세월 하나님과 동행해오면서 이제 하나님을 절대 신뢰할 수 있는 분으로 믿게 된 아브라함은 두말 않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한다. 이때 이삭은 대략 10대 후반이었을 것으로 본다.
늙은 아비가 자신을 잡아죽이려 했을 때 얼마든지 도망치거나 오히려 아비를 이길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이삭은 아버지와 아버지의 하나님께 순종해서 죽기로 작정함으로, 오히려 살아 빛나는 믿음의 가문을 이뤘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믿음이 지배하는 가정이 진짜 귀한 가정이다.
<화> 노아 가문 창 9:18~27 / 찬송가 304장 홍수에서 구원받은 노아 가족은 노아 부부와 세 아들 셈과 함과 야벳, 그 자부들까지 8명이었다. 어느 날 노아는 포도주를 마시고 취해 벌거벗은 체로 잠이 들었다. 함이 아비의 잠든 모습을 목격했다. 아비의 믿음으로 홍수로부터 구원받은 아들의 도리라면 마땅히 아비의 실수를 숨기고 조치를 취했어야 옳았으나, 함은 망령되게도 두 형제들에게 고자질을 했다.
셈과 야벳 두 형제들은 옷을 가지고 아비가 잠든 방으로 뒷걸음쳐 들어가 아비를 덮어주고 아비의 벗은 몸을 보지 않았다. 아들의 도리를 다한 것이다. 잠에서 깬 노아는 사실을 알고 함의 후손인 가나안은 셈의 후손의 종이 될 것과, 셈과 야벳의 후손을 축복했다.
후에 가나안은 셈의 후손 이스라엘의 종이 되었다. 제5계명은 아비를 공경하면 땅에서 장수하고 잘되리라고 하신다. 약속 있는 계명을 잘 지켜 약속을 이루는 가정이 되길 바란다.
<수> 레갑 족속 렘 35:1~19 / 찬송가 333장 불신앙의 결과는 항상 심판이며 멸망이다. 북 왕조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 망한 것을 보고도 남쪽 유다는 이스라엘보다 더 하나님을 불순종한다. 이들을 교훈하시고자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로 하여금 레갑 족속을 불러 그들에게 포도주를 마시라고 권하신다. 그러나 레갑 족속은 "선조 요나답의 우리에게 명한 모든 말을 순종하여 우리와 우리 아내와 자녀가 평생에 포도주를 마시지 아니하며…우리 선조 요나답의 우리에게 명한 대로 다 준행하였노라(8, 9절)" 고 답한다.
하나님께서는 `조상의 명령이라도 대대로 지켜온 가문이 있는데 하물며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 명령을 듣지 않았다'고 지적하시며 하나님을 떠난 유다에게는 심판이 임할 것이나 조상의 말씀을 지켜온 레갑 족속은 영영히 보존하시겠다고 약속하신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일은 멸망의 심판을 자초하는 것이다. 말씀을 지키는 가정이 되어 멸망의 심판이 아니라 약속의 복을 누리는 가정이 되시기 바란다.
<목> 여호수아의 가족 수 24:14~25 / 찬송가 382장 여호수아는 모세의 시종이며 출애굽 1세대이다. 출애굽 당시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애굽을 심판하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셨는지를 목격했다. 출애굽 1세대들은 모두가 하나님의 전능함을 목격했으나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는 모두들 하나님을 거역함으로 약속의 땅에 이르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었다. 40년의 세월이 흘러 출애굽 2세대들이 가나안을 점령하고 각 지파의 점령지로 흩어지기 직전 여호수아는 온 이스라엘을 세겜에 집결시킨다. 그러면서 그들의 조상들이 광야에서 여호와를 거역한 결과 받은 바 심판의 중함을 말하고 "나와 나의 가족은 여호와만 섬기겠다. 너희는 어떻게 할 것인가?"고 선택을 요구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점령지에 가서도 그 곳 우상을 섬기지 않고 하나님만 섬기겠다고 맹세하고 언약한다. 그리하여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의 백성이 될 수 있었다. 환경이 어떻게 변하더라도 하나님만 섬기는 복된 가정이 되시기 바란다.
<금> 나사로의 집 요 11:1~11 / 찬송가 102장 나사로, 마르다, 마리아 남매는 주님만 의지하면서 살아가는 가정이었다. 막내 마리아는 예수님께 값비싼 향유를 가지고 와서 울며 눈물로 발을 닦아 드리고 머리털로 말린 후 옥합을 깨트려 향유를 부어 드렸던 여인이다. 언젠가 주님께서 방문하셨을 적에 언니 마르다는 음식을 준비하느라 분주한데 동생은 주님 말씀을 듣느라 자기를 도와주지 않는다고 주님께 불평할 정도였다. 이 가정의 이러한 주님을 섬기는 아름다운 신앙은 나사로가 병들어 죽었을 때 오히려 빛을 발한다. 주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심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나사로의 집에는 감사와 평강을 선물로 안겨주었다.
<토> 믿음 좋은 가정 골 3:18~21 / 찬송가 492장 부모 없는 가정이라도 주님이 계시는 가정은 참으로 아름다운 가정이다. 예수님이 언제나 가정의 주인이 되게 하시기 바란다. 성경이 가르치는 가장 이상적인 그리스도인의 가정은 어떤 모습일까? 먼저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희생하시면서 교회를 사랑하신 것처럼 남편은 아내를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아내는 교회가 그의 머리되시는 그리스도께 생명을 다해 복종하는 것처럼 남편에게 복종한다. 자녀들은 이삭이 아비 아브라함에 생명을 내어놓고 순종했던 것처럼, 그리스도께서 죽기까지 하나님께 순종하셨던 것처럼, 부모에게 순종하고 부모를 공경함으로써 부모를 기쁘게 한다. 그리고 부모는 자녀들이 화를 내거나 낙심하지 않도록 조심해서 주의 교양과 훈계로, 온유함과 편애 없는 사랑으로 교육해야 한다. 그리고 부모는 자녀들에게 믿음을 유산으로 물려주는 가정, 그리스도의 사랑, 말씀, 훈계, 질서가 있는 가정이 참 행복한 가정인 것이다.
## 가풍의 변천사 옛날과 요즈음의 가정의 풍속도가 어떻게 변하여 왔는지를 생각해 보며 미래의 풍속도를 예견해 보자. 옛날에는 부모가 다 드신 후에 자녀가 식사를 했지만, 요사이는 자녀에게 맛있는 것을 먹이고 남은 것을 부모가 먹는다. 미래에는 아마도 자녀가 식사를 마친 뒤에 부모가 하지 않을지 ! 옛날에는 부모 앞에서 배를 깔고 누워 있지 못했으나, 요사이는 부모와 나란히 배 깔고 누워 장난친다. 미래에는 아마도 자녀가 부모와 맞장구를 치고 있지나 않을지 ! 옛날에는 부모의 말에 절대적으로 순종해야 했지만, 요사이는 부모의 말씀에 말대꾸하기가 일쑤이다. 미래에는 아마도 자녀의 말에 부모가 순종하는 시대가 아닐지 ! 옛날에는 여자들이 버선 발을 보이는 것조차도 정조 문제로 삼을 정도였지만, 요사이는 허벅지는 물론이요 거의 속옷이 보일 정도로 입어야 미인이라나. 미래에는 아마도 다 보여야 미인이 되는 게 아닐지 ! 옛날에는 아내가 남편을 사모하며 존경했지만, 요사이는 남녀평등의 주장 아래 남자를 무시하기 일쑤이다. 미래에는 아마도 남편이 아내를 사모하며 존경하게 될 것이 아닌가? 한마디로 옛날과 미래의 가풍의 차이는 완전히 반대가 될 것만 같다. (목사, 임택진) ## 법도가 있는 집안 어느 날 똥개가 강아지들을 데리고 집안을 벗어나 세상 구경을 하게 되었다. 지나는 길에 강아지들이 자꾸만 장난을 치며 하수도 속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똥개가 “멍멍, 얘들아 우리는 법도가 있는 집안이란다. 가풍을 지키거라”고 타일렀다. 그러다가 길에서 똥을 발견하고는 온 가족이 그것을 먹으며 시장기를 달래고 있었다. 그때 세파트 가족이 지나가다가 똥개의 가족을 보고 비난하기 시작했다. “왈, 똥개야 너는 왜 맨날 똥만 먹고 있니? 가풍 좀 지켜라.” 그러자 똥개가 말했다. “멍멍, 너는 왜 무례하게 밥먹는데 똥얘기 하고 있니?” 우리는 두 동물 가족을 통하여 서로의 가정이 생각하고 있는 견해의 차이가 얼마나 상대방을 불쾌하게 만드는가를 알 수 있다. 가정마다 가풍의 차이는 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가풍이 나의 가정의 주관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늘나라의 가풍이어야 할 것이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사는 하늘집의 가족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늘의 법도를 지키면서 살아가야 할 것이다. (목사, 김장환) ## 어느 집안의 가훈 사실대로 살자 ! 이것은 앞으로 나의 후손이 대대로 지켜야 할 우리 가정의 가훈이다. 매사를 사실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실 그대로 실천하며 꿈꾸자는 것이다. 허황된 꿈도, 사치도 배격한다는 가훈이다. 결코 우리의 가정에는 길이길이 거짓되고 가식적인 삶이 용납될 수 없을 것이다. 오직 하나님 앞에서 사실대로 살자. 사실대로 사는 가풍이 전수되길 바란다.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하는 가정은 3대안에 망하게 되지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에 만족하며 사실대로 살아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가정은 천대까지 복을 받는다. 이 가훈을 실천하기 위한 실천 사항은 다음과 같다. ‘누가 해도 할 일이면 내가 하자’ ‘언제 해도 할 일이면 지금 하자’ ‘내가 지금 할 일이면 더 잘하자’ (목사, 이신구) ## 가풍을 세우는 일 좋은 가풍을 세워서 자녀들에게 전수한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많은 유산을 물려주는 부모가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돈이란 하루 아침에 백지가 될 수도 있는 유동적인 것이나 가풍은 그 수명이 길뿐만 아니라 열매 또한 많다. 성도인 우리가 세워야 할 가풍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 첫째는 경건 훈련을 힘쓰는 가풍을 세우도록 해야 한다. 훌륭한 신앙을 물려주는 것은 많은 재산을 유산으로 남기는 것보다 훨씬 더 귀하다. 돈을 물려받은 후손들은 인생을 실패하게 될 수 있어도 좋은 신앙을 물려받은 후손들은 인생의 실패자가 되지 않는다. 둘째는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이타주의의 가풍을 세우도록 해야 한다. 나만 아는 이기주의는 마음을 병들게 하고 사상을 병들게 한다. 결국 그런 마음은 이 사회를 썩게 하는 것이다. 셋째는 땀의 가치를 알고 열심히 일하는 가풍을 세우도록 해야 한다. 일하기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이 많은 사회는 퇴보한다. 열심히 땀흘려 일할 때에 살아 있음이 확인된다. 일해야 남을 도울 수 있다. (목사, 황선원) ## 가정의 법도 옛날, 더 자세히 말하면 가깝고도 먼 옛날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가정들마다 지켜야 할 법도가 있었다. 대체적으로 가정의 법도는 가정들마다 거의 흡사한 것이 특징인데, 주로 자녀들이 부모 앞에서 지켜야 할 도리나 아녀자들이 지녀야 할 몸가짐 등으로 나타났다. 자녀들이 가져야 할 기본적인 도리는 부모에 대한 효로써 나타난다. 자녀는 부모를 공경해야 하며 부모의 평안을 위해 늘 마음으로 빌며 아침 저녁으로 안녕을 묻는 인사를 해야 한다. 어른이 말씀하실 때는 말대꾸를 해서는 안되며, 어른이 시키는 일은 하기 싫어도 순종하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이것이 곧 가정의 가풍인 것이다. 그러나 요사이 우리 자녀들은 어떤 가풍을 가지고 있는가? 부모 공경의 가풍이 아니라 부모가 자녀를 위하는 가풍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핵가족의 영향인지는 모르지만 너무도 자녀를 떠받드는 세상의 풍경이 안타깝기만 하다. 부모가 얼마나 자녀에게 잘 해주느냐가 부모의 도리로 되버린다면 다음 세대는 어떻게 바뀌게 될 것인가? (목사, 양춘석)
가문/ 가정, 레위인, 명예, 뼈, 상속, 유산, 좌우명, 지조, 출세, 출신, 형제. ## 믿음의 족보 최근에 유럽에서 돌아온 분과 대화를 나누다 보니, 그곳에서는 한 교회에 한 가족 몇 대의 믿음의 족보가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즉 한 교회에서 할아버지가 신앙 생활을 하고 아버지가 거기서 결혼하고, 또 그 다음 세대가 같은 교회에 다니는 예가 많더라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현실은 그렇지는 못하지만 가급적 한 가족이 같은 교회, 한 사람이 변함없이 한 교회를 섬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하겠다. 먼저, 교회를 옮기려는 근본 원인이 무엇인가 깊이 생각해 보자. 그리고 이것이 주님의 뜻에 합당한 것인가를 생각하자. 다른 교우와의 문제는 내쪽에서 먼저 풀음으로, 그리고 교회에 대한 욕구불만은 내가 적극적으로 먼저 실천함으로써 풀어나가야 한다. 잘 자라던 나무를 한 번 옮겨 심으면, 한 동안은 기력을 차리지 못하고 성장을 멈춘다. 신자가 교회를 옮기는 것도 이와 흡사하다. 때로는 습관적으로 교회를 옮기는 사람도 있다. 그들의 신앙은 보통 기형적으로 변해 있음을 보게 된다. 자, 지금 몸담고 있는 교회를 더 사랑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라, 그리고 뭔가 내 몫의 일을 찾아 시작하라. 지상의 모든 교회들은 사람들이 모여 있기에 언제나 시끄럽고 흠이 있을 수 있음도 기억하면서 말이다. (목사, 이진우) ## 뼈대 있는 집안 깊은 바다 속에서 멸치 집안과 오징어 집안이 선을 보고 있었다. 양쪽 집안은 서로의 가문이 잘났다고 떠들며 뽐내고 있었다. 이때 오징어 집안의 어머니 오징어가 가는 다리를 쭉 뻗으며 자기들의 가문이 잘났다고 뽐내기를 하는데 그 꼴이 참 거북스러울 정도였다. 이를 지켜보던 멸치집의 가장이 자리를 박차고 나오면서 하는 말이 걸작이다. “얘, 멸순아 집으로 가자. 우린 뼈대가 있는 집안이란다. 저렇게 흐물거리는 남편을 어떻게 평생을 믿고 살겠니 !!!” (강도사, 구자성) ## 바뀐 가문 유교 문화에 길들여진 우리나라는 조상을 귀히 여기고 가문을 중시하는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다. 몇 대가 지나도록 제사상을 꼬박꼬박 차리는 것에서도 이러한 단면을 엿볼 수 있다. 대대로 전수되어 온 가문의 법도라든지 전통은 결코 경시되지 않는다. 우리 성도들에게 이와 같은 태도가 요구된다. 성도는 가문이 바뀐 사람들이다. 족보상으로야 달라진 게 하나도 없으되 우리는 새로운 영적 족보를 가지고 있다. 이 족보의 시조는 하나님이시며, 예수를 믿는 사람들만 여기에 속하게 된다. 이 가문의 전통은 수 천년이 지난 오늘에까지 계속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데, 이에 충실한 사람을 가리켜서 진정한 성도라고 말한다. 이 가문의 법은 성경이다. (목사, 황선원) ## 가문의 영광 가문의 영광을 말할 때 흔히 입신 출세와 관련짓는 것이 상례이다. 왕의 총애를 받는다든가 모든 사람이 인정하는 괄목할 만한 지위에 오르게 되면, 이를 가문의 커다란 영광으로 여긴다. 많은 사람이 동경하는 명문대가란 바로 이런 집안을 일컫는 것이기 때문이다. 과연 이와 같은 입신 출세가 가문의 영광이요 커다란 자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우찌무라 간조는 이런 말을 했다. “인생의 목적은 하나님을 아는 데 있다. 한 번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이 백 년 제왕의 총애를 받고 천 번 공중의 신임을 얻는 것보다 낫다. 한 번 하나님의 거룩한 얼굴을 뵙기 위해서는 평생을 비통 속에서 지내더라도 좋다.” 성도에게 있어서 가문의 영광은 입신이라든지 출세 따위가 아니다. 하나님의 아신 바가 되고 사랑의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이 커다란 자랑거리이다. 이 세상의 영광이라는 것은 들의 꽃과도 같아서 무상하기 그지없으나,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하고 불변한다. ## 더 넓고 좋은 집 씨자리아에서 태어난 성 씨릴은 어린 아이였을 때에 크리스천이 되었다. 그래서 우상을 섬기는 그와 아버지는 그를 학대하고 드디어 집에서 쫓아냈다. 이 말을 들은 재판관이 씨릴을 불렀다. 그는 씨릴이 예수라는 이름을 자주 부른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그는 만일 씨릴이 그 이름을 다시 입 밖에 내지 않기로 약속만 한다면 아이와 아이의 아버지 사이에 중재를 서겠노라고 약속했다. 어린 씨릴이 대답했다. “나는 아버지의 집에서 쫓겨나도 좋습니다. 하늘나라에 가면 더 넓고 좋은 집에서 있게 될테니까요. 저는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죽으면 보다 더 좋은 삶을 선물로 받을테니까요.” (목사, 범브란트) ## 가장 좋은 가문의 전통 가문의 전통이란 오랜 세월을 두고 후손들에게 전수되는 것이므로 좋은 것, 훌륭한 것, 가치가 있는 것이라야 한다. 그래야 자랑할 만하고 전수할 가치가 있다. 반듯한 전통이 있는 가문에서 훌륭한 사람들이 나오게 된다는 것은 결코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어릴 때부터 사람의 본분이 무엇이고, 힘써서 지켜야 할 도리와 나아가야 할 목표를 알게 되기 때문에 훌륭한 인격을 갖출 수 있고, 또 위대한 발자국을 남기게도 되는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후세들에게 전수해야 할 가문의 전통은 무엇인가? 디모데의 거짓이 없는 믿음은 그 어머니와 외조모에게서 물려 받은 것이었다. 믿음의 가문에서 훌륭한 그리스도의 일꾼이 나온 것이다. 경건한 믿음의 유산을 자녀들에게 물려주는 것을 가문의 전통으로 삼는다면 결코 후회할 게 없을 것이다. 좋은 신앙의 전통이 전수되는 가문에서는 끊이지 않고 위인들이 나오게 되어 있다. (목사, 황선원) ## 모두가 양반의 가문 양반과 상놈의 가문을 잘 따졌던 우리나라에서 결혼전 상대방의 가문을 살피는 것은 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이 풍습은 오늘날에도 남아 있으며 거의가 다 형식적인 것이지만 한번씩은 따져보는 실정이다. 그런데, 선을 볼 때면 하나같이 자기네들 집안이 다 양반의 집안이라고 자랑하는 것을 보게 된다. 사실은 어느 누구도 자신의 가문만이 유일한 양반이라고 할 수 없다. 더욱이 자신의 가문이 상놈이라고 자수하지도 않는다. 모두가 다 양반의 가문이라 인정하면서 왜 따질까? (목사, 이신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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