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 성경의 최종형성
정경의 마감에 작용한 요인들: 에스라에서 얌니아라삐 회의까지
박보준
정경의 결정에 있어서 핵심적인 요인은 보통 성서 문서의 공식적인 종교적 사용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용되지 않는 책이 정경화될 리는 없다. 그리고 또 다른 요인은 성서에 나오는 각 책들의 사용에 대한 정확한 성격이다. 정경이 마감되던 시기에 있어서 정경이란 본문의 한 판본이 아니라 그 본문의 권위에 대한 판단을 의미하며, 한 권의 책(사본 codex)으로 만드는 것은 C.E 3-4세기의 시작된다. 그러므로 이 시대의 정경으로 권위를 가지게 된 각 책은 아직까지 여러 두루마리에 따로 따로 필사되어 있는 모든 책들을 회당과 서기관 학교에 모아 놓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의미에서 정경 두루마리의 제도적인 종교적 사용의 역할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정경이란 인정할만하다고 판단된 책들을 일정한 감독 아래 보존. 전수. 사용하는 일을 보장하는 한편, 다른 책들에 대해서는 그것들이 다른 면에서 어떠한 가치를 지녔든 간에 그것들은 단호하게 배제하는 공인된 개념이다.
그러나 성서 마감에 작용한 요인들을 성서 문헌의 종교적 사용만으로 말하는 것으로는 불충분하다. 정경화 기간 중에 유대 민족이 겪은 사회사적 경험의 맥락 속에서 특정 집단의 특수한 사용법을 고찰할 필요가 있다. 또한 그에 수반된 종교정치학적(religious politics) 측면에서 접근해야한다. 포로기 이후의 중요한 사건들 중의 하나는 유대인 사회내부에서의 계급적 특권의 행사이다. 그 당시 정복자들은 그 지방의 유대인 엘리뜨
계층을 양성했고(자신들의 이익에 합치되므로), 에즈라와 느헤미아를 위시해서 복구된 유대 사회의 지도자들이 엘리뜨 계층이었고, 마카베오 전쟁 때 셀류커스가에 협력했던 헬라적 유대인들, 그리고 로마 시대에 대사제직을 독점했던 사두가이인들도 역시 그렇다. 마카베오 전쟁 이후의 유대 독립 기간 중에 하스몬가의 왕들은 헬라 세계의 왕국들과 동등한 정치를 구사하려고 애쓰는 하나의 엘리뜨로 변모하였다. 이러한 특권 상황하에서 유대인 엘리뜨들 간에는 이해관계가 대립되었고, 그 가운데 자신들의 입장과 활동을 종교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힘썼을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므로 정경화 과정에 있어서도 단지 종교적 문제에 대한 결정일 뿐아니라 누가 유대인 사회의 주도권을 가지고 있느냐에 대한 결정이기도 하다.
이스라엘의 종교는 항상 국가 생활의 전 영역에 표현되는 경향이 있는 하나의 공공적 문제였으므로, 포로기 이후의 유대인들의 생활 선택권 전체가 조금이라고 감소되면 그들의 종교적 선택권도 역시 줄어들기 마련이다. 이러한 분위기는 하느님께서 더욱 멀리 있으며 옛날만큼 이스라엘을 위하여 활동하지 않으신다 라는 개념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종교적 계시는 B.C.E. 400년경 에즈라로 끝났다 라는 말이 차츰 통용되게 되었고, 모든 예언자들은 에즈라 이전에 살았던 것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정경의 내용물을 결정했던 C.E. 90년의 심의 에서 책들의 권위를 판정하는 하나의 객관적 기준은 모든 신성한 문헌들은 에즈라 시대 이전에 씌여졌다는 신념이었다. 역사비평적 연구에 의해 B.C.E. 400년 이후에 씌여진 것으로 밝혀진 정경 문헌들은 단지 솔로몬이나 다니엘이 썼다고 하는 전래적 주장이 받아들여진 것들이 정경으로 인정되었다.
또한 이스라엘의 민족적 상황들이 선택의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B.C.E. 167년에서 C.E. 70년까지의 기간은 팔레스틴 유대교의 위기였다. 셀류커스 정권과 로
마정권은 철저하게 팔레스틴을 침해했고, 마카베오 전쟁으로 율법의 준수자라는 유대인의 종교적 정체는 거의 말살될 정도였다. 더욱이 B.C.E. 140년에서 C.E. 63년까지 하스몬 왕가의 치하에서는 독립과 함께 일어나는 문제들에 대한 유대인 내부에서의 분열이 노출되고, 이후 하스몬 왕국이 무너지면서 로마가 팔레스틴에 들어가고 헤로데 왕가와 로마의 행정관들의 지배로 인해 억눌린 농민 대중은 조세부담이 더욱 과중해지고 경제 형편이 악화된다. 그러는 동안 팔레스틴 밖에 사는 유대인들은 차츰 헬레니즘 문화의 유혹에 넘어가고, 유대적 그리스도인들의 종파가 이방인과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에게 선교하는 종파로 전환됨에 따라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그러므로 종교.정치학적 측면에서 바라본 정경화 과정은 로마의 억압과 헬레니즘 문화의 위협을 받고 나아가 내부적으로는 사두가이, 에세네, 젤롯, 유대적 그리스도인, 그리고 바리사이인 등이 내세웠던 상충하는 이해관계들로 사면초가의 상황에서 유대인 사회가 보여주었던 총체적 반응의 한 측면이라고 말할 수 있다. 로마에 대한 유대인의 봉기가 진압된 후에 오직 바리사이파만이 유대인 사회의 실질적인 세력으로 등장하고 중심적인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또한 히브리 성서의 모습에 최종적인 손질을 가하여 그것이 거룩한 경전으로 인정받도록 하려고 C.B. 90년경에 얌니아에서 심의회를 소집한 것도 역시 그들이었다. 랍비들은 이 심의회에서 이미 상당 기간에 걸쳐 사용되고 있었던 문서에 승인의 도장을 찍고, 헬레니즘 문화에 감염되었거나 종말론적 열정에 의해 왜곡된 문헌들은 사두가이, 에쎄네, 유대적 그리스도인, 젤롯 지지자들과 더불어 소멸, 불신임 당했다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확증하였다.
히브리 성서는 한 민족과 그들의 하느님에 관한 이야기에 지나지 않던 단계로부터 모든 상황에서 하느님의 뜻을 판단하는 데 소용되는 완벽한 자료, 즉 신탁과 지침이 담긴 한 권의 책이 되는 단계로 움직이게 되었다. 히브리 성서의 권위는 전쟁과 민족적 혼란에서 벗어난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 걸맞는 종교 정책과 관련되어 있다. 결국 그 범위가 명확하게 결정되고 각 성서 문헌들의 자료들을 매개로 정경화 된 히브리 성서는 공동체에서의 종교적 실천을 위한 계율과 적대적인 세계에서 삶을 영위해 가는 전략을 제공하였다. 특히 유대인들이 모든 직접적인 정치 권력을 결정적으로 상실한 상황 속에서 비로소 실시 가능케 되었다. 히브리 성서를 중심으로 하는 경건과 실천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서 종교.문화적인 핵심이 되었고, 그들의 생활 방식을 만들어 가는 중요한 지침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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