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正經)의 표준
어떤 기준으로 무엇을 하나님 말씀이라고 할 것인가? 초대교회는 이것을 분별하기 위해 기준을 마련하기 시작했는데 그 표준은 보편성, 영감성, 사도성입니다. 흩어진 교회들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이고[보편성],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되었다는 증거가 있어야 했습니다 [영감성]. 구약은 선지자가 썼거나 그 정신으로 기록된 책이어야 했고, 신약은 사도들에 의해 기록되었거나 사도적 권위를 가지고 있어야 했습니다[사도성].
초대교회 시절에는 신약성경이 없었습니다. 그들이 성경이라고 말했을 때에는 셉투아진트(Septuagint, 70인 역)로 알려진 헬라어 구약성경을 의미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예수의 가르침과 행적이 구전으로 전승되고 사도들의 서신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2세기경에는 예수의 행적에 관한 책만 50개에 달했습니다. 서신서들은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신약 문서화의 시작은 바울서신이었고, 예수의 행적을 담은 복음서는 바울서신보다 늦게 등장했습니다. 4복음서와 13바울서신들은 교회에서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사도행전은 따로 독립되어 있다가 복음서와 서신서를 연결해 주는 책으로 성경에 담기게 되었습니다. 일반서신(히브리서-유다서)이 한 그룹으로 따로 모인 것은 상당히 후대(2세기 말)의 일이었습니다. 요한계시록은 처음 널리 읽혔으나 로마에 적대적 감정을 나타낸 성격때문에 정경으로 채택되기까지 200년 이상 싸움을 겪어야 했습니다.
가장 초기의 것으로 보이는 AD 170년경 무라토리 정경 목록에는 베드로 전후서, 히브리서, 야고보서, 요한3서가 빠져 있습니다. 이 책들은 오랜 기간 논란을 거쳐 정경으로 채택되었습니다. 2세기의 대표적 교부 터툴리안, 클레멘트, 오리겐 등은 '베드로의 묵시', '허마스의 목자', '히브리인의 복음', 바나바서', '디다케', 등을 목록에 거론했으나 결국 정경에서 배제되었습니다. 거의 300여 년에 걸친 과정을 지나 397년 카르타고 회의에서 신약 27권을 정경으로 결정했습니다. 이것은 367년 아타나시우스 서신에 나온 정경 목록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사본과 번역본
성경은 원본이 없습니다. 인쇄술이 발명되기 전에는 문서의 재생산은 오직 필사에 의해 가능했습니다. 필사는 아무리 정확히 베껴도 원본 그대로 쓰기가 어렵습니다. 낱말이나 어구를 누락하거나 잘못 보고 다른 말로 착각하는 비고의적 실수도 있지만, 공동체의 상황과 문화에 따라서 의도적으로 첨가 삭제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신약성경은 사본만 5천이나 되지만 그 중 완전히 일치하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주요 사본으로는 가장 오래된 4세기경의 시내 산 사본, 유세비우스가 콘스탄틴 황제의 명을 받고 정리한 바티칸 사본, 알렉산드리아 사본(5세기), 베자 사본(6세기), 이외에도 많은 사본들이 있습니다.
번역본으로는 바티칸 사본을 이어 받은 가톨릭의 표준 라틴어 성경 불가타 역, 베자 사본 등을 바탕으로 한 독일어 루터 성경과 영어 흠정역(KJV)이 있고, 사해, 바티칸 사본을 바탕으로 개신교 표준 원문이 된 1898년의 네슬/알란드 헬라어 성경에서 RSV, NIV 등 수많은 영어 번역이 나왔습니다.
한글 성경은 네슬/알란드 판 헬라어 성경과 영어 RSV, 그리고 중국어 성경을 바탕으로 1937년 개역한글 성경이 완성되었고, 1952년 개정되었습니다. 가톨릭은 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의역을 원칙으로 하는 자국어 성경 번역을 결정함으로써 1977년 개신교와 합작으로 공동번역을 내놓았습니다. 그러나 개신교에서는 '하나님'을 '하느님'으로 '인자(人子)'를 '사람의 아들'로 번역한 것 때문에 공동번역을 받아들이지 않고 1993년 '표준새번역'을 출간했습니다.
정경에서 심비에 새긴 말씀으로
성경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거나 하나님의 음성을 받아쓰기한 책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그의 나라에 눈이 열린 사람들의 주관적 경험을 신앙 고백적 언어로 기록한 것입니다. 그런데 백인백색(百人百色)이라는 말처럼 주관적 체험의 세계는 너무나 다양하기 때문에 핵심 가치를 공유하고 공통의 고백을 가지기 위해 불가피하게 정경 채택의 필요성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교리이든 경전이든 울타리를 정하게 되면, 획일화되고 경직되어서 교회 원래의 생동감과 다양성을 상실하고 더 이상 새로운 것이 나올 수 없는 닫힌 종교가 되어 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떻게 기독교의 본질을 지키면서 새로운 시대적 상황에 계속 열려 있는가 하는 문제는 기독교 공동체에 주어진 과제입니다.
신약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교회의 체험이며 고백이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 성경 속에서 역사적 예수를 그대로 만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수많은 성경 사본의 조각들 속에서 예수의 삶과 말씀이 보존되어 오늘날 우리에게 전해진 것은 그나마 다행이고 은혜의 손길입니다. 우리는 그 속에서 예수의 구원과 그를 따르는 길을 알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은 썩지 않는 씨앗과 같아서(벧전1:23-25) 말씀이 깊이 소화된다면 그리스도와 그의 삶이 교회 안에서 재현되고, 교회는 그의 몸으로서 살아 있는 증인이 될 것입니다. 나아가 더 이상 먹으로 종이에 쓴 말씀이 아닌 영으로 심비에 새겨진 말씀이 오고 오는 세대에 전해져야 할 것입니다(고후3:3). 그때에는 예수의 모습 그대로 볼 것을 소망합니다(요일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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