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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의 중요성

하나님아들 2020. 2. 1. 15:46

예배의 중요성

 

 

* 현대교회에서 예배의 중요성을 정의하고 성경을 중심으로 논하시오 *

                                                            목연 3 이재세(20023033)


  Ⅰ. 들어가는 말


  예배란 무엇인가? 예배라는 용어는 앵글로색슨어에서 유래되었다. 그 용어의 뜻은 ‘가치가 있는 대상에 대한 인정’ 이다. 줄여서 말하자면 ‘가치가 있는 것’으로 표현할 수 있다. 예배는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기 때문에 ‘가치가 있는 일’이다.

  예배는 교회가 가지는 하나의 기능이며, 활동이다. 예배가 교회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요 활동임을 우리는 올바르게 배워야 하고, 하나님의 가치성을 의미 있고 가치 있게 선포해야 한다. 본고는 예배의 중요성을 논하기 전에 예배의 성서적 용어와 교회적 용어를 성경중심으로 살펴본 후에 예배 내용의 중요성에 대해서 고찰해 보고자 한다.


Ⅱ. 예배의 성서적 용어


 A. 구약성서의 용어


  구약성서에서는 예배에 대한 용어가 세 가지로 나온다. 첫째는 ‘שׁ??’(다라쉬)로서 그 뜻은 ‘찾는다’ 또는 ‘구한다’이다(스4:2).1) 둘째, ‘ד??’(아바드)로서 ‘일한다’, ‘노동한다’, ‘섬긴다’라는 뜻이다(삼상15:8).2) 셋째, ‘사가드’(sagad)로서 ‘엎드리다’, ‘납작 엎드리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사66:23).3)

  이상의 용어 중에 성전에서 드리는 공식적 예배에 대해서는 ‘ד??’(아바드)를 사용했다. 그것은 ‘성전에서의 봉사(섬김)’라는 뜻이 있기 때문이다.


 B. 신약성서의 용어


  신약성서에서는 예배에 대한 용어가 다섯 가지로 나온다.

  첫째는 ‘레이투르기아’(leiturgia)로서 이 용어는 ‘공공목적을 위해 부자가 무보수로 하는 봉사’, 즉 ‘봉사’라는 의미를 가진다. 이 용어를 신약의 공식적 예배에 사용했다고 생각하는 유일한 예는 사도행전 13장 2절4) 안디옥교회의 예배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이 용어는 두 개의 단어, 즉 ‘레이토스’(leitos)와 ‘에르곤’(ergon)의 합성어이다. 이 용어의 뜻은 ‘전체 회중의 일이요 행위’이다. 이 용어의 뜻과 같이 예배는 목사나 집례자 개인의 행위가 아니라 ‘회중 전체의 공적인 일 혹은 행위’인 것이다. 예배는 어떤 특정인만이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회중에 의해 행하여지고 회중 전체가 참여하는 것이어야 한다.

  둘째는 ‘세보마이’(sebomai)로서 그 뜻은 ‘존경한다’이다(마15:9).5) 사람이 존경하는 마음이 있으면 머리를 숙이게 된다. 우주를 창조하신 능력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존경하여 머리 숙여 경배하는 것이다.

  셋째는 ‘라트레이아’(latreia)이다. 그 뜻은 ‘섬긴다’로서 종교적으로 섬기는 행위를 말한다. 이것은 ‘지위가 높은 자에 대한 봉사’를 뜻하고 있다(요16:2).6) 아랫사람이 상관을 섬길 때에 사용하는 종교적 의미를 지녀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섬긴다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넷째는 ‘트레스케이아’(treskeia)이다. 그 뜻은 ‘종교적 예배’(골2:18)7) 또는 ‘경건’(약1:26-27)이다. 이 용어는 하나님을 공경하고 하나님께 봉사하는 데 사용하기보다 ‘천사예배’ 또는 ‘자의적 예배’ 등에 사용되었다. 하나님 앞에서의 깨끗한 마음을 뜻하고 있다(약1:27).8)

  다섯째, ‘프로스쿠네오’(proskuneo)로서 그 뜻은 ‘손에 키스하다’ 또는 ‘땅에 엎드려 입맟추다’ 또는 ‘무릎을 끓다’, ‘허리를 굽히다’라는 뜻도 있다. 이 용어는 사람에 대해 존경을 표하여 허리를 굽히는 행위를 말하고(마18:26)9),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존경하여 신뢰하는 마음을 가지고 무릎을 끓어 경배하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 용어는 신약성서에 59회나 나타나 있어 예배에 제일 많이 사용된 용어이다.

  이처럼 어의적 접근을 통해 나타난 예배는 무릎을 끓거나 엎드려 경배하는 행위를 말하고 있다. 옛날 한국교회는 마루에서 무릎을 끓고 예배를 드렸다. 오늘날에는 교회에 의자를 놓았기 때문에 교회의 예배가 너무 ‘하이칼라’ 예배라고 평하기도 한다. 비록 현대교회가 의자를 놓고 고급화된 예배당에서 예배를 드린다고 하더라도 예배에 참석한 모든 회중은 마음으로 무릎을 끓고 엎드리는 예배가 되게 해야 한다. 그 장소야 어디든, 들이든, 산이든, 가정이든, 교회이든 마음으로 무릎을 끓어야 진정한 예배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개신교의 예배의 특색이라고 본다.


 Ⅲ. 교회적 용어


  첫째, ‘컬트’(cult)는 종교의식을 뜻한다. 이 ‘컬트’의 어원은 라틴어에서 왔는데 어떤 것을 숭배한다는 의미이지만 여기에는 이교적 배경에서 온 주술적 요소가 내포되어 있다. 그러나 이것을 기독교에서 사용하게 되면서 카톨릭 교회에서는 이것을 외형적인 예배의식을 가리키는 데 사용하여 현재까지도 종교의 형식적, 의식적인 면에서 많이 사용하고 있다.

  둘째, 봉사이다. 미국에서 주일예배를 ‘선데이 서비스’(Sunday Service)라고 말하고 있으며 독일어도 예배를 ‘고테스 딘스트’(Gottes dienst)10)라고 한다. 이것은 주권자이시며 절대자이신 하나님을 섬긴다는 뜻에서 나온 말이다.

  셋째, 기도이다. 기도는 예배의 한 요소이다. 기도는 예배의 중요한 한 부분이며 기원의 요소일 뿐 아니라 감사, 찬송을 포함한 넓은 의미로 생각할 수도 있다.

  넷째, 예배로서 이 단어는 영어의 “worth+ship"에서 온 말이다. 그 뜻은 ‘가치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에게 예배하는 일은 하나님에게 영광과 감사와 찬송을 돌리는 것이다.

  다섯째, 예전이다. 이 뜻을 가진 영어 ‘리터지’(liturgy)는 ‘레이투르기아’라는 헬라어에서 유래된 용어로 주로 의식주의적 예배를 가리킨다. 의식적 예배는 예식의 중요부분이 설교가 아니고 예배 순서의 대부분이 정해진 예배이다. 카톨릭 교회와 희랍 정교회의 예배가 여기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비의식주의적 예배의 교회는 장로교회, 감리교회, 회중교회 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성공회와 루터 교회는 그 중간적인 입장에 선 교회라고 할 수 있다.

  개신교에서는 이 용어가 의식주의적 내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처음에는 공적 예배를 말할 때는 리터지라고 하지 않았다. 칼빈도 예배를 “기도와 찬미”라고 했다. 17세기에 이르러서 리터지라는 용어가 의식적 색채가 없어졌다는 것을 이해한 후에 예배를 리터지라고 개신교 일부에서도 부르게 되었다. 개신교에서 리터지라고 말할 때 협의의 뜻으로 예배 중에 식문화된 요소, 즉 세례식문, 성찬식문 등을 의미하고, 광의의 뜻으로 예배의 모든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Ⅳ. 예배 내용의 중요성


  내용을 수반하지 않은 예배란 예배 본래의 가치성을 완전히 상실하게 될 뿐만 아니라 하나의 구경거리로까지 전락되고 만다.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값진 내용이 없이 하나님 앞에 선다는 것은 섬기는 대상에 대한 결례요 예배자의 충실치 못한 자세의 노출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예를 들면 예배 가운데서 단순히 신의 성호만을 부르짖는다든가 막대한 헌금을 던지고 나오는 행위가 결코 예배의 내용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예배란 마음과 뜻과 정성의 총체적 표현이어야 한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자신의 신앙과 교리가 합리적이고 적극적으로 포함되어 있어야 하며 교회가 지켜온 성경적 내용과 전통의 핵심들이 내포되어 있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예배라는 구속적 만남의 현장에서는 인간들의 친교나 봉사만을 강조하는 행위가 결코 용납될 수 없다. 하나님을 섬기려는 무리들이 스스로 쌓은 제단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한 채 서 있는 경우 그 예배는 종국적으로 의미 없는 결말을 가져오고 만다. 칼빈은 이런 예배를 지적하여 “마술사들의 주문이 성행되어지는 장소”라는 혹독한 평을 하기에 이르렀다.

  사실상 우리 기독교의 역사 속에는 의미의 전달이 사라진 채 이렇듯 형태만 남은 예배가 중세를 계속 지배해 왔던 부끄러운 상처들이 남아 있다. 그 결과 교회는 부패하고 예배 집례자들은 세속으로의 탈선을 예사로 여기게 되었으며, 급기야 세계의 역사마저 어둡게 만드는 암흑기를 불러오기에까지 이르렀던 것이다. 그러기에 오늘도 수많은 예배의 집례자들과 예배 신학자들은 틀에 박힌 예배 속에서 회중들이 생동력을 잃어 가는 것을 막기 위하여 예배의 의미와 내용에 대한 거듭된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예배의 내용과 표현이 얼마만큼 역동적이고 신선한가에 따라 하나님을 섬기는 회중들의 태도가 달라진다는 것은 너무도 자명한 일이다.


  Ⅴ. 나가는 말


  지금까지 본고는 성서를 중심으로 예배의 중요성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장로교 통합측 헌법책에 의하면 “모든 예배의 목적과 내용은 인간 중심적인 것이 될 수 없고 오직 하나님에게만 영광과 감사와 찬송을 드리도록 준비되어야 한다”고 되어 있다. 또한 요리문답 첫 번째에는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입니다”라고 되어있다. 그러나 현대교회에서의 예배는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경향이 있다. 교회를 부흥시키기 위한 도구로 예배가 드려지는가 하면 성전건축을 목적으로 예배를 드리는 경우가 있다. 특히 부흥회를 개최하는 교회에서는 어떤 목적을 가지고 집회를 하는 경우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로서 하나님을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온전히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도구로 쓰임 받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배의 본질이 변질이 되어서는 안 된다. 21세기를 달리고 있는 이 시점에서 목회자가 가야할 방향은 온유한 마음과 정직하고 진실한 마음으로 섬기는 자세로 목회를 해야만 교회가 올바로 설 수 있다. 교회에서의 중요한 요소는 예배이다. 그러므로 예배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예배의 본질을 회복할 때, 비로소 교회는 건전한 방향으로 성장할 것이며, 많은 영혼들이 평안함을 얻게 되어, 예배가 기쁨과 감격이 넘치는 역동적인 예배가 될 것이다.


1) 스룹바벨과 족장들에게 나아와 이르되 우리로 너희와 함께 건축하게 하라 우리도 너희같이 너희 하나님을 구하노라 앗수르 왕 에살핫돈이 우리를 이리로 오게 한 날부터 우리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노라.


 

2) 종이 아람 그술에 있을 때에 서원하기를 만일 여호와께서 나를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하시면 내가 여호와를 섬기리이다 하였나이다.


 

3) 여호와가 말하노라 매월삭과 매안식일에 모든 혈육이 이르러 내 앞에 경배하리라.


 

4)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5)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하시고.


 

6) 사람들이 너희를 출회할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예라 하리라.


 

7) 누구든지 일부러 겸손함과 천사 숭배함을 인하여 너희 상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저가 그 본 것을 의지하여 그 육체의 마음을 좇아 헛되이 과장하고.


 

8)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


 

9) 그 종이 엎드리어 절하며 가로되 내게 참으소서 다 갚으리이다 하거늘.


 

10) 하나님을 섬긴다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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