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사도행전의 기록목적 송순열

하나님아들 2020. 1. 9. 21:26

사도행전의 기록목적 송순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 의 문학적 기능을 중심으로

 

(The Purpose of the Acts of Apostles: the literary function of God-fearers)

 


 

 

 

 

 

1966년 반 운닉(W.C. van Unnik) 이 그의 글1) "Luke-Acts, a Storm Center in Contemporary Scholarship" 에서 눅-행전2)의 연구가 신약학의 연구에 있어 태풍의 눈(Storm center)이 될것이라고 예시한 이후로 지난 30여년간 눅-행전에 대한 연구는 많은 양의 글과 방법론적인 변화를 보여왔다. 최근에 들어와서 학자들 사이의 많은 방법론적인 다양함 들이 점차적으로 넓은 의미의 일치를 보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즉 눅-행전을 역사(history)라는 주제로 이해하려는 시도, 신학적인 관점(theology)으로 접근하려는 부류, 마지막으로 문학적인 작품으로 보고 그 장르나 문학적인 분석을 하려는 세 가지의 접근방법으로 좁혀지고 있다3). 간단한 예를 들면, 튀빙겐 학파에서부터 헨첸(Haenchen)에 이르기까지 사도행전의 역사성에 회의를 느끼던 흐름에서 1980년 이후에 독일학자들에 의해 출판된 주석들도 사도행전 나름대로의 역사적 가치를 인정하는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으며4) 콘젤만(Conzelmann)의 책 The Theology of St. Luke 에서 주장된 의견 - 누가에 있어서는 초대교회의 종말론이 구원의 신학으로 대체되었고 이미 공교회(Catholicism)의 관점이 나타난다 - 이 20여년의 지배에서 서서히 벗어나고 있다.5) 특히 사도행전을 특집으로 다룬 잡지 Interpretation 42 (1988)호 에서는 가스끄(W.W. Gasque)6), 가벤타(B. Gaventa)7) 등의 학자들이 사도행전 신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 보이고 있다. 사도행전을 문학적으로 접근하려는 시도는 다양하게 시도되고 있다. 탄네힐(R. Tannehill)8)은 사도행전의 설화(Narrative)의 통일성을, 오니(D. Aune)9)은 그레코-로망 시대의 헬라적 역사전기(Historiography)의 일종으로 이해하려고 하고, 퍼보(R. Pervo)10)는 독자들의 재미를 주기 위한 당대의 소설(Novel)의 일종으로 분류하고 있다. 이처럼 학자들의 일치에도 불구하고 아직껏 학자들의 연구에 있어 뚜렷한 일치를 보지 못하거나 연구의 문이 열려있는 주제들은 사도행전의 기록 목적, 유대인이나 유대종교에 대한 누가11)의 입장 그리고 사도행전의 자료 등의 문제들은 많은 학자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주제들이다. 이러한 주제들 가운데 본 논문은 사도행전의 기록 목적을 문제삼아 전개해 나갈 것이다.

신약성서의 비판적 연구가 시작된 이래로 많은 학자들에 의해서 사도행전의 기록목적에 대해 많은 의견들이 있었다. 파웰(M.A. Powell)12)은 사도행전의 기록목적을 교회적, 논쟁적, 변증적, 복음적, 목회적 그리고 신학적인 목적으로 구별하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크게 2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사도행전 공동체에 있는 내적인 갈등에 대한 변증이나 해결점을 모색하기 위한것, 예를 들면, 초대 기독교 공동체 안에 있었던 베드로와 바울의 대립이나 영지주의와의 갈등, 또는 유대종교나 유대교와의 관계를 해결하기 위한 목적이고, 또 하나는 초대공동체를 둘러싼 외부와의 관계를 해결하기 위한 것으로 로마정부에 대한 정치적인 변증과 이방인들에게 기독교를 전파하려는 목적으로 요약될 수 있다.

1. 초대 기독교 공동체 안에서의 내적인 갈등에 대한 응답(반응)

사도행전을 유대적, 이방적 기독교인들의 내적인 갈등이 있음을 처음 제시한 사람은 미카엘리스(Michaelis,1766) 이다. 그는 제시하기를 첫째로, 성령과 첫 번째 기적의 진실성을 마련하여 기독교 공동체에 이것들을 확증하기 위하여 둘째, 바울을 싫어하며 이방인의 받아드림을 꺼려하는 유대기독교인들에게 이방인들도 교회에 들어올 수 있는 권리를 제시하기 위해서 사도행전은 쓰여졌다고 말했다.13) 이 주제는 바우어(F.C. Baur)와 튀빙겐 학파에 위하여 한층 발전된다. 헤겔의 변증법의 영향아래 형성된 바우어의 논리는 사도행전은 초대교회에 형성된 바울파와 베드로파사이의 갈등을 와해시키고 화해하려는 의도로 쓰여졌다고 주장한다.14) 바우어의 이론을 더욱더 발전시킨 쉬네켄버거(M. Schneckenburger) 는 사도행전의 기록목적은 당시의 이방인의 영입을 싫어하는 로마의 유대기독교 공동체에게 이방인 선교에 열정을 가진 바울을 변호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서 서신들과는 달리 유대관습의 실천, 디모데에 대한 할례, 성전에서의 정결의식이나 절기참석을 기록하고 있고, 마지막으로 바울의 유대율법에 대한 논쟁 등을 생략한 것 등이다. 이외에도 바울의 예루살렘교회에 대한 순종, 바울과 베드로의 설교들의 비슷한 점, 이방인 선교의 시작을 베드로 다음에 바울로 쓰는 것 등이다.15) 튀빙겐 학파의 초대교회에 대한 위와 같은 역사이해는 브렌던(S.G.F. Brandon)16), 트로콤(E. Trocme) 등의 학자들에 의해 더욱 발전되었지만, 예루살렘 멸망이후(1세기 후반) 유대기독교인들이 얼마나 많은 영향력을 초대교회에서 계속해서 유지했는지 우리는 알 수 없고, 바울과 사도 들간의 갈등에 대한 분명한 증거를 우리는 갖고 있지 못하는 것 때문에 많은 학자들의 도전을 받고 있다. 이러한 이유때문에 80년대부터 많은 학자들의 관심이 당시 초대교회를 둘러싸고 있는 유대종교와의 관계 속에서 사도행전의 기록목적을 이해 하려한다. 이들은 바우어나 튀빙겐 학파의 이론에 근거하지만 내적인 갈등보다 외적인 유대인 혹은 유대종교와의 갈등에 초점을 맞춘다. 바우어에서 오버벡, 콘젤만17)을 거쳐 헨첸에 이르기까지의 학자들의 전통적인 견해는 누가의 의도는 일부의 유대인들에 의해 기독교복음이 거절되었기에, 이러한 유대인들의 복음의 거절이 복음의 사도들을 유대인에서 이방인에게로 그들의 선교방향을 돌리게 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해는 누가가 유대인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를 갖게 하는 중요한 요인이 됐다. 이 견해는 센더스(J.T. Sanders)18)에 의해 강하게 주장됐는데, 기독교는 고대의 이스라엘종교로 부터 분리된 종교가 아니고 모세와 예언자들의 맥을 잇는 종교인데 유대종교의 반대로(기독교의 반대가 아닌) 이미 행6장에서부터 유대인들의 회개는 끝이 나고 두종교의 분리가 시작되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의견에 반대하여 저벨(Jervell)19)은 전통적인 학자들의 의견과 상반된 의견을 제시한다. Jervell은 사도행전의 구조를 다음과 같이 나눈다. 1)사도행전 1장 8절은 회개하는 유대인들(예수를 따른 사람들)에 대하여 이스라엘이 다시 회복되는 전환점이라고 기술하고, 2) 행 9장 - 15장, 새로워진 이스라엘의 결과로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역사에 참여하게 되는 것, 3) 행16장 - 21장은 바울에 의하여 교회가 서방지역, 즉 로마까지 나가는 것, 4) 22장 -28장, 바울의 법정사건을 기술하는데 바울의 율법과 유대인에 대한 태도를 명백히 하고 있다. 그의 연구는 사도행전 21장부터 28장까지 바울의 법정사건에 초점을 맞춘다. 이 부분에서 바울은 정통 바리새인으로서 율법에 충실한 유대인으로, 구약을 믿고 가르치는 사람으로 묘사하면서, 바울을 진실한 이스라엘의 선생으로, 바울을 고소하는 사람들을 이교도로 묘사하고 있다. 이러한 전제아래 3가지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1. 유대인들의 전부가 기독교복음을 거절하지는 않았다. 누가에 있는 유대인들은 회개하는 자와 완고한자로 구분된다는 것이다. 2. 누가는 교회를 새로운 이스라엘로 보지 않는다 이스라엘은 오직 회개한 유대인들에게만 이용되고 이방인이나 기독교인이 아닌 유대인에게는 사용되지 않는다. 3. 이방선교는 오직 성서의 성취라는 면에서만 사용된다. 브라울리(R. Brawley)20)는 누가는 당시의 유대인들의 반대에 직면하여 그들과 화해를 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고 제시한다. 특별히 누가는 바울이 떠맡은 이방인 선교의 합법성을 변증 하려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바울의 가르침이 유대종교와는 다른 이교적인 가르침이라는 것을 변증하기 위해 바울을 바리새파중의 한 모델로 묘사하고 유대인들의 예수에 대한 거부에도 불구하고 예수가 메시아임을 선포하는 것처럼, 바울의 선교도 유대인들의 반발을 받지만, 이것이 이스라엘의 성취라는 것을 설명하므로, 오히려 이스라엘의 거부가 아니고 유대인들에게 기독교를 좀더 이해시키려는 변증이 목적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일군의 학자들은 초대교회에 있었던 정통-이단의 갈등이 행전의 기록목적이라고 주장한다. 쉬레이더(Schrader)21), 로제(Loisy)22), 녹스(J.Knox)23) 등은 부분적으로 행전은 영지주의에 대한 방어의 목적에 의해 쓰여졌다고 제시한다. 이러한 해석에 가장 대표자는 탈버트(C. Talbert) 이다. 이 증거로는 동정녀 탄생의 강조, 부활후 나타남과 승천을 육체적인 사건으로 설명하려함, 시간을 구체적인 세상사건과 연결시키려는 의도, 예수의 수세때 성령이 몸의 형태로 왔다는 설명 등을 예로 든다. Talbert는 더 설명하기를 눅-행전에서는 "목격자(witness)" 를 매우 중요한 역할로 강조하는 것은 목격자에 의한 예수의 죽음, 부활, 승천을 통해서 정통적인 복음(신앙)을 제시 하려했고, 구약의 빈번한 인용으로 거짓해석(영지주의)을 반박, 사도적 설교의 권위 강조, 순교에 대한 강조를 통해 정통의 신앙이 무엇임을 증거 하려 했다는 것이다.24) 그러나 이러한 주장도 많은 도전을 받는다. 왜냐하면 눅-행전에는 구체적인 영지주의에 대한 언급이 없고, 예수의 육체적인 출생, 죽음, 부활, 승천의 설명은 오히려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로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25)

2. 초대 기독교 공동체를 둘러싼 외적인 문제에 대한 반응

첫째로 눅-행전의 기록 목적은 정치적인 변증이라는 것이다. 이 견해는 학자들 사이에 사도행전의 기록목적을 위한 기능으로서 많은 지지를 받았다. 학자들의 의견은 2가지로 나누어진다. 첫째구룹은 사도행전의 기록목적은 로마정부에 대하여 기독교가 유대교의 사파(이교)가 아니고 로마정부에 해로운 종교가 아니라는 것을 변증하는 것이며 기독교가 유대교의 참된 줄기이기 때문에 로마정부로 부터 보호받아야 할 종교임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견해는 봐이스(Weiss)26)와 이스턴(B.S. Easton)27)등에 의하여 주장되어졌다. 로마정부에 대한 기독교의 변증이라는 같은 견해를 갖고 있지만 맨슨(T.W. Manson)28), 커드베리(H.J. Cadbury)29), 콘젤만(H. Conzelmann)30) 등은 유대교와 다름을 나타내어 교회의 정치적 순결성을 보이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즉 초대교회 시대에 유대교는 로마정부로 부터 특별히 보호받고 있었는데 기독교도 같은 이유로 유대교와 가까이 하려 했는데, 유대전쟁후에 시작된 로마의 유대인 박해를 피하기위해서 크리스천들은 그들이 유대교와 다름을 나타내어서 정치적으로 순결함을 보이려 했다고 주장한다. 이와 반대로 왈라스키(T.W. Walasky)는 눅-행전은 로마에 대한 기독교의 변증이 아니고 기독교에 대한 로마의 변증이라고 제시한다. 왜냐하면, 이방 로마관원들은 누가-사도행전을 읽었을 때 그들은 기독교가 정치적으로 해가 없는 종교로 인정치 않았다는 것이다. 즉, 제자중의 하나를 젤롯당이라고 표현하고 있고, 칼을 사라는 예수의 명령, 예수를 주(Lord)나 왕(King)으로 표현하는 것, 모호한 사도행전의 끝 등은 그들의 의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누가-사도행전에서 로마관원들에 대하여 항상 긍정적으로만 묘사하지는 않는다. 빌라도 갈릴리사람들을 처형하라는 명령, 예수의 처형에 있어서 압력에 굴복하는 모습, 예루살렘에 대한 로마의 멸망, 바울이 감옥에 있을 때 바울을 때린 것, 바울이 무죄하다고 함에도 불고하고 감옥에 가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마는 기독교의 적으로 기술되지 않고 때때로 유대교의 압력에 굴복 당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무지에 의해 행동하기도하고,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기독교를 보호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Walasky는 누가가 친 로마의 관점으로 그의 재료들을 재구성했다고 본다. 계속해서 그는 말하기를 당시의 교회가 반로마 적인 위험에 직면하고 파루시아에 대한 불확실한 기다림 속에서, 또한 크리스챤 공동체가 이런 사회적, 정치적, 종교적 상황 속에서 현명하게 대처하며 살 수 있도록 유대전쟁을 경험했던 로마의 입장을 대변하여 쓴 책이라는 것이다.31) 카시디(R. Cassidy) 는 위의 견해와 반대로 누가의 입장은 오히려 로마에 위협이 될 수 있는 여러 가지 요소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첫째로 예수의 행동과 교훈은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혁명적 요소를 가지고 있었고(가난한자, 이방인, 여인에 대한 우호적인 태도, 불의에 대한 구체적인 항거(눅.18:1-5; 20:9-19, 45-47)) 둘째로 예수는 언제나 현존하는 정치세력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이유들은 누가의 글들은 오히려 로마에 위협이 될 수 있었기에 그 글들의 목적을 정치적으로 보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 고 주장한다.32)

둘째로 이방인에 대한 변증의 목적으로 쓰여졌다는 것이다. 이방인에 대한 변증은 선교 적인 목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오네일(O'Neill)은 누가-행전은 일차적으로 로마사람들을 크리스챤으로 만들기 위한 교육적인 목적으로 쓰여졌다고 한다. 1) 누가-행전의 서론 부분은 변증적인 이유가 아니고 교육적인 목적으로 쓰여졌다는 것이다. 2) 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도 교회가 성공적으로 확장되는 것은 구약의 성취이며, 기독교가 참다운 종교임을 입증하는 것으로 행전의 저자는 제시한다. 3) 복음이 로마까지 가는 것과 이방인의 회심 등을 서술하는 것은 이방인 독자들에게 교회가 하나님에 의하여 디자인, 섭리된 것임을 확증하기 위해 쓰여진 것이다. 4) 반복되는 이방인의 회심은 이방인 독자들에게 회심의 기회를 마련해준다. 5) 기독교인들에 대한 고소가 무죄로 끝나고, 교회가 유대교의 성취로 그려지는 것은 누가가 기독교를 매우 가치 있는 종교로 강조하고 싶어하는 것이다.33) 이 견해는 누가의 보편적인(Universal) 복음의 이해와 이방인의 선교를 강조하는 신학 때문에 지금까지도 많은 학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지금까지 열거한 사도행전의 기록목적에 대한 여러 주장 중 어떤 하나를 사도행전의 기록 목적이라 할 수는 없다. 아마도 여러가지의 의도들이 복합적으로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근에 들어 정치적인 변증에 대한 주장은 거의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고 하나님의 구원역사라는 도식에 맞춘 이방선교에 대한 주장과 유대인 혹은 유대종교에 대한 변증이 꾸준한 지지를 받고 있으며 최근에 와서는 누가의 유대인 혹은 유대종교에 대한 태도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 학자들에게 큰 관심이 되어있다. 필자는 사도행전에 나오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God-fearers)이 사도행전의 집필목적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제시한다. 결론적으로 사도행전의 저자는 의도적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God-fearers)' 을 이용하여 유대기독교공동체에서 이방인의 공동체로 넘어가는 초대교회의 상황 속에서 돌연한 이방선교가 아닌 유대인, God-fearer(반유대인), 그리고 이방인으로 넘어가는 선교 구도를 제시하고 더불어 유대종교와 관계를 부드럽게 설명하는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고 제시한다. God-fearer에 대한 관심은 1877년 Bernays가 고대문학 속에서 발견한 3가지의 단어 φοβουμενο?, σεβομενο?, metuentes 에서 시작됐다(마지막 용어는 비문(inscription)에서 발견됨).34) 이후에 θεοσεβη? 라는 용어가 추가로 덧붙여져서 이 네 가지 용어는 일반적으로 학자들에 의해서 God-fearer를 표현하는 단어로 쓰여지고 있다. God-fearer는 특별히 초대교회와 유대종교에 관심을 가진 많은 학자들의 의해서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다. 이러한 학자들의 의견을 크라벨(A.T. Kraabel) 은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첫째, 그들은 이방인으로 유대인이나 유대종교가 좋아 유대의 관습을 지키고 유대회당에도 정규적으로 참석하지만, 아직 개종까지는 하지 않은 반유대인으로 규정된다. 둘째, 그들은 소아시아에서 로마에 이르는 디아스포라 회당에서 많이 발견된다. 세째, 이들은 초대기독교 공동체에 상당한 많은 수가 영입했다는 가정 때문에 신약성서 학자들에게 특별한 주의를 받는다. 넷째, 이들의 존재가능성은 로마시대의 유대인들이 그들의 전통적인 신앙의 기준을 이방인을 받아들이기 위해 타협할 준비를 했다는 증거이고 그들이 기독교 공동체에로 들어온 것은 기독교신앙이 유대교를 압도하는 예증으로 사용됐다 고한다.35) 비록 학자들 사이에서는 God-fearer의 역사적 실체에 대해서는 찬반의견이 분분하다.36) 그러나 그리스-로마시대의 문학작품들(Josephus37), Philo38), Juvenal39), Epictetus . . .) 속에는 God-fearer를 지칭하는 위의 4가지 용어들이 많이 발견되고, 이외에도 유대인이나 유대종교에 호의적인 사람들을(Sympathizers)40) 많이 발견되어지는 것은 그들의 역사적인 실체를 부인할 수 없는 증거들이다. 특이나 디아스포라 유대회당등에서 발견되는 비문(Sardis, Miletus, Aphrodisias . . .)들에서도 그 흔적들을 발견할 수 있다. 특히 1985년 아포로디시아스(Aphrodisias)에서 발굴된 비문에는 God-fearer 란 그룹이 등장하고 유대회당이나 지역사회에 현저한 활동을 했음이 드러나 있다. 설명을 덧붙이면, 이 발굴은 60년대부터 에림(Kenan T. Erim)에 의해 발굴되기 시작하여 지금까지 30%정도 진척 되였는데 3C까지 종교적, 문화적, 과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도시였을 아포로디시아스의 모습이 드러나고 있는 중이다. 그 중에서 1976년에 3m의 높이 45cm 넓이 돌비석 양면에 86 줄의 헬라어가 쓰여져 있는 비문이 발견되었는데 이 비문의 연구결과가 1986년에 레이놀드(Joice Reynold)와 탄네바움(Robert Tannenbaum)의하여 책으로 발간됐다41). 이 비문에는 150명의 이름이 들어있는데 지방 회당에 헌금 기증자나 공헌자의 명단이거나 혹은 비문을 만든 사람에 의하여 만들어진 회당에서 실시하는 무료배식(soup-kitchen)을 위한 헌금 자들의 명단일 것이다 (이 제도는 Mishnah에서 tamhuy 라고 알려짐. 이 비문에서는 pattela라는 용어를 쓰는데 이 뜻은 접시(dish)라는 뜻임) 고 저자들은 추정하고 있다. 150명의 이름은 3가지로 구별되어 있는데 68명은 Jew 3명은 개종자(proselytes)이고 54명은 God-fearers(theosebeis)로 명명되어 있는데 God-fearer중에는 그들의 직업이 헬라문명의 대표적인 직업인 조각가, 화가, 육상선수, 권투선수들이 들어 있는 것이 특이하다. 이중에 9명의 시의원이(city-councillor) 들어있는데 이 사실은 당시의 회당이 중요한 사회적인 위치를 차지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이 비문 외에도 랍비들의 글들(Mishnah, Tosefta)에서도 개종자(Proselyte)나 하늘을 두려워하는 사람(Heaven-fearer, ger-tosab)42)들의 분명한 구분이 있는 것은 이방인이면서 유대종교의 관심이나 호기심 때문에 개종하지 않은 채 혹은 개종의 과정에서 있는 사람들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비문들과 랍비들의 글들은 시기적으로 2세기 후반이나 3세기전반이어서 사도행전의 기록 년대와의 거리가 있어 문제점은 있지만 고대사회의 전승이 빠른 시일에 변하지 않음을 고려할 때 100년 정도의 시차는 큰문제가 아닐 수 있다. 이러한 여러 가지 증거들은 당시에 개종은 하지 않았지만 유대종교가 좋아 유대의 관습을 지키고 정규적으로 유대교회당에 참석하는 많은 이방인들이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이다. 이 뿐만 아니고 당시에 많은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곳곳에 많이 있음을 고대의 작품들에서 많이 읽을 수 있다.43) 그렇다면 어떻게 유대교는 많은 호의적인 사람들을 얻게 되었는가? 근본적으로는 유대종교의 좋은 평판, 유대인들의 좋은 행동들이지만, 덧붙여 전통적인 학자들의 견해는 유대교의 선교활동에 기인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견해는 다음 기회를 빌어 논의할 수 있기를 바란다.

사도행전에는 God-fearer를 φοβουμενοι τον θεον 혹은 σεβομενοι τον θεον 의 두 용어를 사용하는데, 어떤 때는 개인에게(고넬리우스(행 10:2,22), 루디아(행 16:14), 디디오 유스도(18:7)) 어떤 때는 그룹의 사람들을(비시디아 안디옥의 회당사람들(13:16,26,43,50), 데살로니가 사람들(17:4,17) 칭할 때 쓰여지고 있다. 누가가 사용하는 God-fearer는 분명히 이방인으로 유대의 관습이나 회당에 참석하는 사람들을 말하는데 쓰고 있다. 이외에도 호칭을 God-fearer라고 부르지는 않지만 이러한 그룹과 대등한 위치에 둘 수 있는 인물들이 많이 등장한다(에티오피아 내시(8:26-40), 그리스 사람들(14:1; 17:4; 18:4; 19:17,19), 디모데(16:1-3), 여자들(17:4,34)). 누가는 당시의 이방인이나 유대인들에 비교해서 God-fearer들을 매우 긍정적으로 기술하고 있고, 신약성서에서 유일하게 God-fearer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 것은 누가가 접한 기독교공동체의 특수한 유대교의 환경, 즉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들에게 호의를 베푸는 유대교 환경이었음을 알 수 있다. 누가는 이러한 환경은 God-fearers을 자주 접할 수 있었고 자신의 책속에 효과적으로 이들을 사용함으로 자신의 의도를 나타내고 있다. 사도행전의 기록목적에 그들이 어떻게 이용되는지 알아보자.

첫째로, God-fearer는 이방선교를 합법화하기 위한 도구로 쓰여진다. God-fearer의 첫 번째 등장은 행10장 고넬리우스 이야기에서 시작된다. 사도행전에서 고넬리우스의 이야기의 위치는 이방선교라는 관점에서는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오순절성령사건이후 아름답게 형성된 초대공동체가 헬라말을 하는 유대인들의 불평으로 분열의 기미가 보이더니(행6:1-7), 오히려 이 사건이 사마리아의 선교의 동기가 되어 교회가 확장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선교의 확장은 드디어 고넬리우스에 와서 유대의 지역을 벗어난 본격적인 이방선교의 시작이 되었다. 이 시작은 고넬리우스와 베드로에게 보여진 환상에서 비롯된다. 이 환상의 의미는 이방인과 유대인의 사회접촉의 합법성을 논의하기 위해 정한 것과 부정한 것의 논제를 끌어들이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이러한 미묘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고 불려지는 고넬리우스를 끌어들인다. 누가는 이러한 법을 깨뜨리는데 있어 전혀 유대종교를 알지 못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이방인을 개입시키지는 않는다. 유대종교가 좋아 그 규율을 지키고 따르고 회당에 출입하지만, 아직까지는 유대인으로 개종하지 않는 하나님의 경외하는 사람, 고넬리우스를 개입시킴으로 큰 충격없이 문제를 해결 시키려고 하고 있다. 그러나 좀더 넓혀서 이해하면 God-fearer는 사마리아 선교에 이은 교회의 확장에서 에티오피아 내시에서부터 나타나기 시작한다고 할 수 있다. 에티오피아 내시의 신체조건을 제외하면 그는 God-fearer 와 등등하게 취급될 수 있기 때문이다. 누가는 God-fearer를 교회의 확장이 시작되는 사마리아 선교에서 은근히 부각시키고, 바울의 회개에 이은 이방인의 선교의 시작점에서, 즉 고넬리우스 이야기에 분명하게 부각시킨다. God-fearer는 바울의 선교에서 최고의 기능을 하게 된다. 바울이 방문하는 모든 회당에는 God-fearer들이 있었고, 그들은 바울의 선교에 있어서 그들의 집이(루디아, 디디아 유스도) 선교의 중심점이었고 그들이 바울의 선교의 적극적인 후원자이었음을 보도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바울의 잡힘과 법정에서의 사건에 이르면서 God-fearer 의 역할은 감소된다. 결국은 이미 기독교공동체가 이방인의 주도로 넘어간 다음에는 더 이상 God-fearer를 등장시키지 않는다. 이런 의미에서 사도행전 저자인 누가는 God-fearer를 유대인과 이방인선교의 다리로 사용하고 있음을 본다. 유대 기독교 공동체에서 이방인 공동체로 넘어가는 고리 역할로 God-fearer를 이용하고 있음을 본다.

둘째로, 누가는 God-fearer를 당시에 유대종교에 대한 변증으로 이용하고 있다. 누가는 기독교 공동체가 유대교로부터 갑자기 떨어져 나온 종교가 아니고, 오히려 서서히 유대교에 뿌리를 두고 서서히 확장해 가는 분파로 이해하고 있었다. 누가는 사도행전에서 기독교 공동체가 처음에는 주로 유대기독교인들로 구성되었다가, 이제는 서서히 이방인들의 수효가 증가하는 것으로 기록한다. 이러한 상황하에 누가는 소수의 남은 유대인들에게는 이방인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 즉 이방인 선교의 합법성을 설명을 해야했고, 증가하는 이방 기독교인들에게는 기독교공동체가 유대교로부터 나온 합법적인 종교임을 설명해야할 필요가 있었다. 이러한 공동체의 상황 속에 God-fearer는 두 공동체의 공통점을 갖고 있는 그룹이었다. 원래는 이방인임으로 모든 이방인들에게 자기들과 같은 동질성을 느끼게 하고, 유대인들에게는 자기들의 종교에 호감을 가지고 자기들의 삶의 스타일을 그대로 따르는 그들은 개종의 전 단계에 와 있는 언제나 환영받는 그룹이었다. 특히 유대종교에 대한 누가의 입장은 누가 자신 스스로가 God-fearer일 가능성을 많이 암시하고 있다. 일단 누가는 유대종교의 관습에 매우 익숙하고(절기나 의식), 히브리성서나 칠십인역의 인용이 매우 능란한 것을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신학에 있어서도 참이스라엘이 누구인가에 대한 꾸준한 물음과 유대종교의 상징 예루살렘의 강조 등은 그의 뿌리가 깊게 유대종교에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누가는 그레코로망의 세계에 익숙하고 당시의 문학들의 기술방법등에 친숙한 것을 보면 당시의 헬라문화의 배경에서 성장한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양 문화에 익숙한 누가는 하나님의 계획을 설명함에 있어 한쪽(유대인)은 버리고 다른 쪽(이방인)으로 가는 통로를 택한 것이 아니고 복음이 유대인을 통해 God-fearer를 통해 이방인으로 가는 부드러운 통로로 설명하려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누가는 자기 역사기술에 있어 God-fearer를 등장시킴으로 유대 공동체나 이방인 공동체 모두를 포용하는 부드러운 변화를 설명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누가는 God-fearer를 자신의 의도를 나타내기 위하여 적절히 사용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학자들에 따라 God-fearer를 의도된 저자(implied author) 혹은 의도된 독자(implied reader)로 이해하려는 시도가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다44). 누가의 이러한 신학이나 의도는 복합종교의 상황속에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에 교회의 선교정책에 새로운 길을 보여줄 것이다.

1 W. C. van Unnik, "Luke-Acts, a Storm Center in Contemporary Scholarship," Studies in Luke-Acts, edd. L.Keck and J. Martyn (Philadelphia: Fortress, 1966) pp.15-32.

2 Cadury가 그의 책 Making of Luke-Acts 에서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통일성을 제시하며 Luke-Acts라고 썼던 표현을 많은 학자들이 자유롭게 사용하고 있음

3 세부류의 접근방법에 대한 글로는 E. Richard, "Luke - Writer, Theologian, Historian: Research and Orientation of the 1970's," Biblical Theology Bulletin 13(1983) pp.3-15

4 G. Schnieder, Die Apostelgeschichte, HTKNT, 2vols.(Freiburg: Heder, 1980,1982) 그리고 J. Rollof, Die Apostelgeschichte, NTD. (Gottingen: Vandenhoeck and Ruprecht, 1981).

5 C.H. Talbert, J.A. Fitzmyer, R. O'Toole 그리고 D. Juel등의 많은 학자들이 새로운 견해를 내 놓고 있다. 이러한 흐름을 잘 정리된 책으로는 F. Bovon, Luke the Theologian: Thirty-Three Years of Research (1959-1983), Princeton Theological Monograph Series 12, ( Allison Park, PA: Pickwick, 1987)

6 "A Fruitful Field: Recent Study of the Acts of the Apostles," pp.117-131.

7 "Toward a Theology of Acts: Reading and Rereading," pp.146-157.

8 R. Tannehill, The Narrative Unity of Luke-Acts (Philadelphia: Fortress, vol.1, 1986, vol.2, 1990)

9 D. Aune, The New Testament in Its Literary Environment (Philadelphia: Westminster Press, 1987)

10 Richard I. Pervo, Profit with Delight: The Literary Genre of the Acts of the Apostles (Philadelphia: Fortress, 1987)

11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저자로 누가를 사용하나 이 누가는 골4:14의 사랑 받는 의사 누가를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12 Mark Allen Powell, "Luke's Second Volume: Three Basic Issues in Contemporary Studies of Acts," Trinity Seminary Review 13 (2,1991), pp.69-81.

13 J.D. Michaelis, Introduction to the New Testament (London: F. and C. Rivington, 1802) III.I. pp.330-331.

14 F.C. Baur "Uber den Ursprung des Episcopats in der christlichen Kirche Prufung der neuesten von Hrn. Dr. Rothe hieruber aufgestellten Ansicht," TZTH 11 (1838) 3.142.

15 A.J. Mattill, Jr. "The Purpose of Acts: Schneckenburger Reconsider," in Apostolic History and the Gospel, edd. W.W. Gasque & R.P. Martin (Grand Rapids: Eerdmans, 1970) pp.108-122.

16 S.G.F. Brandon, The Fall of Jerusalem and the Christian Chuch (London: SPCK, 1951).

17 Cadbury는 사도행전은 유대인 독자들을 위해 쓰여졌고, 기독교가 반 유대 적인 종교가 아니고, 오히려 구약과 유대교를 성취시킨 종교임을 강조한다. Conzelmann도 사도행전은 유대교와 로마에 대한 관계를 확실시하기 위해 쓰여진 책으로서 교회를 구속의 역산에서 보여지는 참 이스라엘로 증언하는 책이라고 말한다.

18 Jack T. Sanders, The Jews in Luke-Acts, (Philadelphia: Fortress press, 1987)

19 Jacob Jervell, Luke and the People of God (Minneapolis: Augsburg Publishing House, 1972), The Unknown Paul: Essay on Luke-Acts and Early Christian History (Minneapolis: Augsburg Publishing House, 1984)

20 Robert L. Brawley, Luke-Acts and the Jews: Conflicts, Apology, and Conciliation, Society of Biblical Literature Monograph Series 33 (Atlanta: Scholars Press, 1987)

21 W. Gasque, History of Criticism, pp.31-2.

22 A.F. Loisy, The Birth of the Christian Religion (London: George Allen & Unwin, 1948) pp.50-51.

23 J. Knox, Marcion and New Testament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1942) pp.114-139.

24 C.H. Talbert, Luke and the Gnostic: An Examination of the Lukan Purpose (Nashville: Abingdon Press, 1966) 과 "An Anti-Gnostic Tendency in Lukan Christology," NTS 14(1967-68) pp.259-71.

25 R. Maddox, The Purpose of Luke-Acts, P.21.

26 J. Weiss, Uber die Absicht und den literarixchen Character der Apostelgeschichte (Gottingen: Vandenhoeck und Ruprecht, 1897) p.54.

27 B.S. Easton, "The Purpose of Acts," in Early Christianity: The Purpose of Acts and Other Papers by Button Scott Easton (Greenwich, CN: Seabury, 1954) pp.33-118.

28 T.W. Manson, "The work of St.Luke," Studies in the Gospels and Epistles, ed.) M. Black (Manchester: University Press, 1962) pp.60-62.

29 H.J. Cadbury, Making of Luke-Acts, pp.308-316.

30 H. Conzelmann, The Theology of St. Luke (New York: Harper & Row, 1960) p.140.

31 P.W. Walaskay, And So We came to Rome: The Political Perspective of St. Luke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83)

32 Jesus, Politics and Society: A Study of Luke's Gospel (New York: Orbis Books, 1978) 이어서 속편으로 Society and Politics in the Acts of the Apostles (New York: Orbis Books, 1987)

33 J.C. O'Neill, The Theology of Acts in Its Historical Setting (London: SPCK, 1961) pp.168-9.

34 Jacob Bernays, "Die Gottesfurchtigen bei Juvenal," Gesammelte Abhandlungen 2, ed. H. Usner (Hildesheim: Georg Olms, 1971) pp.71-80.

35 A.T. Kraabel, "God-fearers Meet the Beloved Disciple," The Future of Early Christianity, ed. Birger A. Pearson (Minneapolis: Fortress Press, 1991P p.279.

36 God-fearer 의 실체를 부인하는 대표적인 학자로는 Kraabel, "Disappearance of God-fearers," Numen 28 (1981) pp.113-126.

37 Ant. 12284, 14.308, 7.130,153, 14.110; Cap. 2.140-1

38 Quasetiones in Exodum 2.2, cf. Special Law 2.12.42

39 Juvenal, Saturae 14.96-106, " Some who had a father who reveres (metuentem) the Sabbath, worship nothing but clouds and divinity of the heavens and see no............"

40 BJ. 7.45, Ant. 20.34, Cap. 2.123

41 Jews and God-fearers at Aphrodisias (Cambridge: The Cambridge Philological Society, 1987)

42 Deuteronomy Rabbah 2.24, Mekilta de Rabbi Ishmael 18 (Exod. 22:20). 여기의 Heaven-fearer는 God-fearer와 동등 되게 취급될 수 있다.

43 다음의 인용구들은 디아스포라 유대인이 얼마나 많았는지에 대한 고대학자들의 변임.
Philo, Legatio ad Gaium 214, "it is spread abroad over all the continents and islands so that it seems to be not much less than the indigenous inhabitants," (cf. Legatio 282.3); Josephus, Jewish war II.398, "There is not a people in the world which does not contain a portion of our nation.," VII 43, "Jewish people is "denssely interspersed among the native populations of every portion of the world."; Oracle Sibyl III 271, "The whole earth and every sea will be filled with you(Jewish people)."; Strabo( quoted by Josephus, Ant. XIV 115), "This people has already made its way into every city, and it is not easy to find any place in the habitable world which has not erceived this nation and in which it has not made its power felt,"; Seneca( reported by Augustine De Civ. Dei VI 11), "Meanwhile the customs of this accursed race have gained such influence that they are now received throughout all countries of the world. The vanquished have given laws to the victors."

44 J. Tyson, Images of Judaism in Luke-Acts (Columbia, South Carloina: University of South Carolina Press, 1992) 그리고 Eric Franklin, Luke: Interpreter of Paul, Critic of Matthew (Sheffield: JSOT Press, 1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