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란! 예배 기타!!!

예배음악

하나님아들 2019. 12. 18. 22:50

예배음악

 



 

 

목 차


1. 서론 2

1. 연구의 동기와 목적 2

2. 연구방법 및 방향 3


2. 찬양에 대한 바른 이해 3

2.1 찬양이란 무엇인가 3

2.2 찬양의 어원 4

2.3 성서에 나타난 찬양의 모형 5

2.3.1 구약에 나타난 찬양 5

2.3.2 신약에 나타난 찬양 6

2.3.3 구약 이사야, 신약 요한계시록 6


3. 교회음악의 역사 8

3.1 구약시대의 음악 8

3.2 초대교회(1-6세기)와 그레고리오 성가 10

3.3 독일의 교회음악 12

3.4 종교개혁자들의 음악 13

3.5 개혁교회(또는 장로교회)의 음악 16

3.6 영국의 교회음악 17

3.7 미국의 교회음악 17


4. C.C.M(Contemporary Christian Music) 18

4.1 C.C.M의 정의 18

4.2 C.C.M의 역사 19

4.3 C.C.M의 찬반양론 22


5. 찬양의 중요성과 예배속의 역할 27

5.1 예배의 정의 27

5.2 예배에 있어서 찬양의 역할 27


6. 결 론 28


* 참고문헌 29




1. 서론


1.1 연구의 동기와 목적


여호와 하나님은 자신을 가리켜 찬송이라고 하셨고(신10:21), 또한 찬송 받기를 기뻐하시

며 성도들에게도 강하게 요청하신다. 자기 백성의 찬송 가운데 있으시겠다고 하셨으며(시

22:3), 성도들도 찬송이 되기를 원하셨다.

하나님은 찬양의 주인이시다.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

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함이니라"(사43:21)고 말씀하신다.

사람을 지으신 목적도, 많은 사람들 중에 우리를 택하사 자녀로 삼으신 이유도 '저희들을 통

해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길 원해서'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성도의 본분은 하나님을 기리고 높이 찬양하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찬양 중에 사람에게 임재 하시며 찬양 중에 능력을 나타내신다. 그래

서 기독교를 일컬어 찬양의 종교라고 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사용하는 음악이 하나님의 피조물임을 과학적으로, 성경적으로, 음악의 역사를

통해 확실히 증거할 수 있다. 기독교를 이해하는데 있어 음악은 빼놓을래야 빼놓을 수 없

는 약방의 감초와도 같은 것이다. 기원에서, 발전에서, 역사하는 과정에서 노래가 힘

(Energy)의 주축이요 근원이 되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음악의 본체로서 음악의 대상으로서

나타나며, 또한 음악 가운데 역사 하시는 분이시다.

20세기를 지나오면서 급변하는 문화 형태 속에 교회음악 또한 무수한 변화의 과정을 거쳤

다.

이스라엘이 바알스본 맞은편 비하히롯 곁 해변에 장막을 쳤을 때 변심한 바로의 군대가

추격해 오는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홍해를 갈라 극적인 상황의 반전을 경험, 약 60만명 정도

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함께 소고 치며 찬양을 드렸고(출15:2-18), 다윗은 하나님의 언약궤가

오벳에돔의 집에서 예루살렘 새 성지까지 올 때 찬양대를 조직해서 놋제금을 크게 치는 헤

만, 아삽, 에단을 세우고, 수금을 타며 인도하는 맛디다야와 엘리블레후와 믹네야등을 세우

고, 노래하는데 익숙하여 노래를 주장하고 사람들을 가르치는 일에 그나냐를 세우고 하나님

의 궤 앞에서 나팔을 부는 제사장 스바냐와 요사밧, 느다벨 등을 세우며 즐거운 소리를 크

게 내라고 명령, 다윗왕이 친히 춤추며 뛰놀며 기뻐하는 모습을 보인다.

초대 교회와 그레고리오 성가, 독일의 교회음악, 개혁교회(또는 장로교회)의 교회음악, 영

국의 교회음악, 미국의 교회음악을 통하여 전반적인 교회음악의 역사를 보여준다.

우리나라는 1980년대 후반부터 새로운 대중음악 C.C.M(Contemporary Christian Music)의

등장으로, 젊은이들의 언어인 대중음악이 긍정적인 사고방식, 사회에 대한 바른 안목, 나아

가 잃어버린 그들의 영혼을 되찾을 수 있는 내용을 전달하고 있는지, 젊은이들의 사고와 생

활, 나아가 영적인 면까지 변화시킬 수 있을까의 문제로 메시지 있는 음악, 무언가 음악을

통해 변화를 줄 수 있는 또한 변화 받을 수 있는, 기독교의 메시지가 대중적인 스타일로 전

해지는 음악으로 발전되어 가고 있는 형편이다.

교계에서는 '기독교적인 내용이 어떻게 세상적인 음악스타일로 표현될 수 있는가'하는 우

려의 목소리를 제기하기도 한다.

이렇게 시대의 조류에 편승한 새로운 스타일의 교회음악의 현주소를 파악. 올바른 교회음악

의 역사를 재편집할 수 있는 시기가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21세기를 바라보는 지금.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오늘날 교회음악 역사가 창조되었으며, 우리 교회의 문화

적 현실은 매우 향상되었고, 그 문화 주체자들이 그 문화적 영향으로 부요한 현실이 우리에

게 있다는 점은 매우 감사할 일이다. 그러나 문화 주체자들이 기독교 문화를 이끌어 가는

과정에서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는 부정적인 부분들을 동시에 남겼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이에, 성서가 제시하는 찬양의 바른 이해를 살펴보고, 진정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

음악, 진정한 하나님 찬양의 모습을 회복해야 할 때인 것이다.


1.2 연구방법 및 방향


하나님이 진정 기뻐하시는 찬양, 성서가 제시하는 찬양으로 우리는 잃어버린 찬양의 모습

을 회복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변천하는 찬양의 흐름을 통하여 찬양의 중요성과 예배속에

서의 역할등을 살펴볼 것이다.

첫째, 찬양에 대한 바른 이해이다. 찬양의 어원을 살펴보고, 성서에 나타난 찬양의 모형을

다룬다. 둘째, 찬양의 변천사이다. 구약시대의 음악에서부터 초대교회, 종교개혁기를 거쳐 서

방나라의 교회음악을 다룬다. 셋째, C.C.M의 정의, 역사, 찬반양론에 대해 다룬다. 넷째, 찬

양의 중요성과 예배속의 역할이다. 예배의 정의를 통해, 예배에 있어서의 찬양의 역할과 예

배에서 사용 가능한 찬양의 범위를 다룰것이다.


2. 찬양에 대한 바른 이해


2.1 찬양이란 무엇인가


웹스터 사전을 찾아보면 "찬양하다"라고 하는 단어는 "칭찬하다. 찬미하다. 존경하다. 갈

채를 보내다, 인정하다"라는 뜻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하나님의 창조섭리와 임재, 위대하심,

존귀하심등 살아 계신 그분을 칭찬하고 인정하며 존경하고 갈채를 보내는 인간에게 주어진

최고의 예배행위가 곧 찬양이다. 아울러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과 기쁨, 감사와 위로를 경험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은혜의 도구가 또한 찬양이다.

찬양은 하나님께서 지금도 또 영원토록 변함없으실 것을 믿고 그것을 고백하는 행위이다.

단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고 어떤 일을 하셨다는 사실 때문에 하는 것이다. 찬양은 하나님

의 성품과 하시는 일에 대한 놀라움으로 표현된다.

그러면 찬양이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그 대표적인 사항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 찬양이란 하나님을 자랑하는 것이다. 찬양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하나님께서 행하

신 위대한 일들을 고백하고 칭찬하여 하나님을 높여 드리는 것이다.

훌륭한 지도자를 그 제자들과 추종자들이 칭송하듯, 부모를 자녀들이 자랑하듯, 피조물로

서 창조주를, 백성으로서 왕을, 종으로서 주인을 높이는 것이 찬양의 중심인 것이다. 자신에

게 있어서 하나님을 자랑할 것이 무엇인지 확인하여 보자. 찬양은 이것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둘째로 찬양은 하나님의 성품과 하시는 일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한다. 다시 말해 하나님

이 어떤 분이신지, 또 어떤 일을 하시는지를 깨닫고 이에 대하여 반응하는 것이 찬양이다.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과 진실하심과 의로우심과 공의로우심과 선하심과 같은 그 분

의 성품을 기억하고, 우리의 삶에 구체적으로 역사하신 일들을 생각해 내어 하나님 앞에서

고백하는 것이다.

셋째로 찬양이란 하나님에 대한 놀라움으로 표시된다. 찬양이 하나님의 성품과 하시는 일

에 대해 '당연히 그래야 할' 반응이지만, 이것은 기계적인 것이 아니라 인격적인 것이다. 따

라서 무감각하게, 무표정하게, 아무런 감동 없이 찬양할 수 없는 것이다. 구원받았는가? 그

렇다면 그 기쁨과 감격을 표현하여 찬양하고자 할 때 자신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겠는가. 하

나님을 향한 우리의 찬양이란 인격적인 반응으로써 놀라움과 감탄, 기쁨등이 수반되기 마련

인 것이다. 이것은 꾸밈이 아닌 진실된 표현인 것이다.


2.2 찬양의 어원


찬양에 관하여 성경에 사용된 많은 단어가 있는데 원어로는 이 단어들이 각기 독특한 의

미를 지니고 있어서 그 의미와 차이를 알면 찬양의 다양성과 함께 깊이의 차원을 깨달아 여

러 삶의 상황 속에서 찬양을 할 수 있다. 이 중 대표적인 것을 살펴보겠다.


(1) 할랄(halal-찬양하다)

이 말은 찬양을 표현하는 말 중 가장 최고의 표현이 할렐루야(hallelujah), 즉 '너희는 야

훼를 찬양하라'에서 나타난다. 이 어근에서 나온 명사형은 '테힐라'이며 원래 '자랑하다. 뻐

기다. 주책없이 굴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성경에서 기록된 찬양어 중에 가장 빈도수가

높은 이 단어는 하나님의 권세를 자랑하는 마음과 하나님에 대한 사랑, 감격 등을 담고 있

다. 이것에 해당되는 헬라어는 '아이네오'와 '아이노스' 및 '아이네시스'등이 있다.

(2) 야다(yada-감사하다)

명사형은 '토다(toda)'이며 이 단어는 '고백하다. 손을 들어 찬양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환란 속에서 주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신뢰하여 고백하는 경우에 사용되며

의지적인 결단을 내포하고 있다. 특히 이 단어는 '감사하다'라고 번역되기는 하지만 받은 축

복이나 은혜에 대한 응답이라 하기보다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감사하고 찬양하

는 것이다. 신약의 헬라어로는 '엑소몰로게오'가 여기에 해당한다.

(3) 바락(barak-송축하다)

명사형은 '베라카'이고 이 단어의 의미는 하나님이 주신 축복과 은혜에 대한 응답으로서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왔음을 고백하여 영광을 돌리는 것이며 신약에는 '율로게오'로 사용

되었다.

(4) 자마르(zamar-찬송하다)

명사형으로 '짐라' 및 '미즈모르'로서 이것은 노래나 악기로 찬양하는 것을 뜻한다. 신약어

는 '프살로'와 '프살모스'가 이 경우에 사용되며 특히 '미즈모르'와 '프살모스'는 시편의 시를

뜻한다. 

(5) 루아

시 95:1에 나타난 루아는 '기쁨에 차서 외치다'의 의미이다.

(6) 샤박

고상하고 알맞은 방법으로 찬사를 드림, 승리와 영광을 외쳐 선포함. 시 63:3-4

(7) 타우다

야다와 관련이 있음, 손을 들어 예배를 드리다.

(8) 가라

여호와의 이름을 선언함. 시 116:7 "내가 주께 감사제를 드리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이

다"


2.3 성서에 나타난 찬양의 모형


자신이 현재 사용하고 있는 찬양의 방식은 분명 누구로부터 영향을 받고 그를 통하여 자

신의 모습을 형성하여 왔으리라 생각한다. 그러기에 찬양이란 성도에게 가장 합당한 것임을

알면서도 찬양을 표현하는 방법에는 저마다 서로 다른 견해를 갖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성

경은 우리에게 어떤 찬양의 모델을 제시하여 주고 있는가 살펴보고자 한다.


2.3.1 구약에 나타난 찬양


성경은 인간에게서 최초 음악 기사를 "그 아우 이름은 유발이니 그는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으며"라고 보여준다. 여기서 유발은 음악이라는 말과 관계가 있으며

모든 음악인들의 조상임을 보여준다.

찬양에 대한 더 확실한 기원은 모세를 따라 홍해를 건넜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속

박으로부터 해방되었음을 경축하면서 모세가 미리암과 함께 부르는 노래라고 할 수 있을 것

이다. 

"이 때에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이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니 일렀으되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여호와는 나

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내 아비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

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들은 악기에 맞추어 불리어졌으며 또 춤추는 것도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하나의 형태로 나타났음을 알 수 있다.

찬양과 예배에 관한 한, 다윗이야말로 유대와 이스라엘의 모든 왕들 중에서 의심할 바 없

이 가장 뛰어난 왕이었다. 그의 시편은 오고 오는 세대들로 하여금 찬양케 해 주었다. 다윗

은 그 자신이 찬양하는 사람이었을 뿐 아니라, 끊임없이 다른 성도에게 함께 주님을 찬양하

자고 권고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주님을 찬양하도록 노래하는 자들을 가르쳤고, 성가대와 오

케스트라를 훈련시켰으며, 그들에게 24시간 하루 온종일 주님을 찬양하는 예배를 드리라고

지시하였다. 다윗은 주께서 그에게 오시기 전까지는 자신이 미천한 양치기에 불과했었다는

사실을 거의 잊지 않았다. 그는 계속해서 주님께 영광을 돌렸다.


2.3.2 신약에 나타난 찬양


신약의 찬양은 당연히 예수에게서 출발한다. 수태를 확인한 순간 마리아에게서 장엄한 찬

양이 우러나왔으며, 천사들은 그분의 탄생을 지극한 찬양으로 알렸다. 목동들은 찬양과 놀라

움으로 아기 예수를 바라보았다. 모든 남자와 여자들이 그들 사이로 걸어가신 예수를 찬양

했다. 또한 예수님 자신이 공공연히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렸다. 예수의 이 땅에서의 삶

은 찬양을 위한 것이었고, 찬양에 둘러싸인 것이었다.

바울서신 중에서 디도서를 제외한 모든 서신들이 찬양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그는 "찬

양을 노래하라, 찬양을 즐거워하라"고 요구한다. 그리고 감사의 찬양과 찬양의 제사를 드리

고, 손을 높이 들고 찬양하라고 요구한다. 그가 제일 강조한 것은 "주안에서 기뻐하라"였다.

그는 빌립보 옥에서 찬양에 대한 자신의 생각의 좋은 예를 보여주었다. 그와 실라는 고통과

박해 가운데서도 하나님께 찬양을 드렸다. 그는 찬양에 대해서 가르쳤을 뿐 아니라, 몸소

찬양의 삶을 살았다.


2.3.3 구약 이사야, 신약 요한계시록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거룩한 찬양의 모형은 구약과 신약에 각각 기록되어 있는

데 마치 우리가 하늘나라에 거하여 찬양의 자리에 동참하고 있는 감격을 준다. 천국의 찬양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곳은 구약의 이사야와 신약에서는 요한계시록이다. 천국에 대한 이상

을 기록하고 있는 반면에 이사야와 요한은 천국에서 드리는 찬양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다.

특히 이사야와 요한은 서로 다른 시대와 문화속에 그리고 다른 환경 가운데 다른 언어를 사

용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엄한 하늘의 찬양을 서로 비슷하게 기록하였다.

이사야는 "웃시야 왕의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 옷

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스랍들은 모여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그 얼굴

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그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서로 창화하여 가로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이같이 창화하는 자의

소리로 인하여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집에 연기가 충만한지라" 고 이사야 6:1-4에서 말한

다.

여기에 묘사되고 있는 스랍들은 천사들의 서열에서 매우 높은 위치에 있는 천사이다. 어

떤 사람들은 에스겔서 1장에서 묘사하는 그룹이 가장 높은 천사라고 생각하지만, 대개는 스

랍들이 가장 높은 지위의 천사라고 생각한다. 이사야가 성전을 방문했을 때, 이런 스랍들이

보좌에 앉으신 주님께 교창 같기도 하고 소리치는 것 같기도 한 것으로 서로 창화하였다.

그리고 그들의 그 엄청난 찬양은 "문지방의 터"를 흔들리게 하였다(4절).

또한 그 집이 연기 또는 예배의 향기로 가득 찼었다는 것을 읽을 수 있다. 시편에서 찬양

과 큰소리로 외치는 것을 연관시켜 말씀하신 것이나, 신약에서 주의 재림이 "호령"과 함께

이루어질 것이라고 하는 말씀은 조금도 이상한 것이 아니다(살전 4:16).

이스라엘이 여리고에서 지른 함성에서부터(수 6:20) 여호와의 성전기초가 놓임을 보고 지

른 큰 소리까지(스 3:11-13), 시편과 예언서는 예배의 한 부분인 "소리침"을 자주 언급하고

있다. 물론 아주 드물게는 "그 앞에서 잠잠할 지어다"(합 2:20)라고 하시는 말씀도 있지만,

대부분 성경은 우리에게 소리치라고 말씀하신다. "너희 만민들아 손바닥을 치고 즐거운 소

리로 하나님께 외칠지어다"(시 47:1). "주에게 피하는 자는 다 기뻐하며 주의 보호로 인하여

영영히 기뻐 외치며....."(시 5:11)

요한계시록에는 예배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모습들이 나타난다. 네 생물이 소리친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

차 오실 이라"(4:8). 그들은 또한 "영광과 존귀와 감사"(4:9)를 주님께 드리고 있다. 24장로들

은 보좌 앞에 엎드려서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지

며 말한다.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4:11)

경배하고 면류관을 던지는 것을 제외한 다른 모든 것들은 살아있는 이성적인 존재들이 하

나님께 드리는 들을 수 있는(audible) 표현들이며, 음성적인(vocal) 표현들이다. 5장에서는

네 생물과 장로들과 그리고 이들과 함께 하는 천사들의 무리가 나온다. 요한은 그들의 수가

"만만이요 천천이라"(계 5:11)고 수를 세어 기록하고 있다. 우리가 만약 그 숫자를 문자 그

대로 받아들인다면 "큰 음성"(계 5:12)으로 찬양하는 천사의 수는 1억이 넘는다.

13절은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

든 만물이 가로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모든 창조물들과 사람들, 지음받은 모든 것들에게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부르는 시편 148편과 너무나 잘 어울린다. 모든 이들이 연합하여, 소리

높여 주를 찬양할 그날이 다가오고 있다.

또한 7:9-10에서는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

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에 어린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있도다"라는

구절을 읽을 수 있다. 그리고 계속해서 천사들과 장로들과 네 생물이 큰 소리로 함께 찬양

하는 것이 나온다.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능력과 힘이 하나님께 세세

토록 있을찌어다 아멘"(7:12)

모세의 노래와 어린 양의 노래는 모두 구원의 노래이다. 그 둘은 모두 그 구원이 이미 이

루어졌음을 선포한다. 즉, 그것은 구원을 향해, 구원을 바라보며 부르는 노래가 아니라, 구원

을 되돌아보며 구원받은 사실에 대하여 부르는 노래이다.

유리 바닷가의 무리들은(15:3-4) 그리스도가 이루어 놓으신 일을 기억하고 찬양하게 되었

던 것이다.

19장에서 우리는 다시 많은 무리가 소리치고 선포하고 엎드려 절하며 하나님의 위대하심

을 예배하고 찬양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곳의 찬양이 너무나 압도적이어서 요한은 그것을

어떻게 묘사해야 할 지 난처했던 것 같다. "또 내가 들으니 허다한 무리의 음성도 같고 많

은 물소리도 같고 큰 뇌성도 같아서 가로되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

치하시도다"(19:6). 외치는 사람들의 허다한 무리! 폭포처럼 쏟아져 내리는 찬양! 뇌성처럼

울려 퍼지는 찬양!

이와 같은 천상의 이상들을 통해서 우리는 찬양의 본성이 무엇이며, 찬양을 어떻게 실행

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최초의 원형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소리내어 말로 표현하는 것이

었으며, 대부분 큰 소리로 드리는 것이었다. 찬양은 자주 노래로 나타났지만 그보다는 소리

를 외치는 외침으로 더 많이 나타났다. 그리고 거기서는 일어서거나 손을 쳐들거나, 절하거

나, 엎드려 절하거나, 월계관을 벗어 드리는 등의 행동들을 수반하는 것이 드물지 않게 나타

났다.

이러한 것들은 하나님의 명령이나 시편의 권고와 같은 것은 아니다. 그것은 나이 많은 거

룩한 사람들이 하늘에서 일어나고 있던 그대로를 보고 증언한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찬양

의 신적인 모형이요, 모범이요, 의정서이다. 그 어떤 것도 이것보다는 나을 수 없다. 그러나

이따금 사람들의 모형을 따라 만든 후렴은 우리가 받아들여야만 한다.

찬양은 시편에 국한된 것도 아니며, 사람에게서 시작된 것도 아니었다. 찬양은 하나님으로

부터 시작되었다. 잘 믿는 종교인들이 우리에게 찬양을 명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찬양

을 명령하셨다.


3. 교회음악의 역사


진리를 신령하게 만드는 것이 교회음악의 목적이요 실제적 기능 중의 하나라고 볼 수 있

다. 다른 어떤 매개체보다도 음악에 의해서 진리의 신령함이 좌지우지되기 때문에 교회에서

는 음악이 그 자체로서 진리를 반영해야 하는 것이다.


3.1 구약시대의 음악


우리가 구약시대의 음악을 직접 접하는 길은 차단되어 있다. 단지 기록, 그림, 노래가사의

형식을(시편등) 통해 미루어 짐작할 수 있고, 현재 남아있는 음악을 통해 옛 음악을 추정할

수 있을 뿐이다.

음악은 노래, 시, 무용을 같이 포함하고, 이것들은 분리될 수 없는 성격의 것이었다. 이들

을 통합하는 요소는 리듬일수 밖에 없다. 그러나 회당시대에는 성악 위주의 음악이 두드러

지고 기악과 무용은 점차로 사라져 간다.


(1) 성전시대의 음악(다윗, 솔로몬, 기원전 1006년경-기원전 926년경)

역대상 9:33 말씀에 "또 찬송하는 자가 있으니 곧 레위 족장이라 저희가 골방에 거하여

주야로 자기 직분에 골몰하므로 다른 일은 하지 아니하였더라"

다윗의 위대한 점은 음악하는 사람들을 따로 모아 훈련하고, 연구하게 했다는 점이다. 재

능있고 사명있는 음악인들이 주야로 골방에 거하면서 무엇을 했겠는가? 그들은 새로운 찬송

을 만들고 연습하고 새로운 찬송을 보급하는데 골몰하였을 것이다.

사무엘하 6장, 역대기상 13,15절을 보면 어떻게 다윗이 찬양대를 처음 조직하였는지 상세

히 기록되어 있다. 다윗이 다윗성에다 자기를 위하여 궁궐을 짓고, 또 하나님의 궤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여 장막을 치고, 법궤를 운반할 사람을 물색할 때, 법궤를 메고 올 사람들과

운반하는 동안 찬양을 부를 두 집단의 사람을 뽑았는데 이 모든 사람을 레위 사람들 중에서

만 뽑았다. 레위 사람들은 본래 하나님께서 특별히 선택하여 영원히 하나님만을 섬기도록

위임받은 사제들이었기 때문이다(대상 15:1-3). 다윗이 명한 찬양대는 30세 이상 되는 사람

중에서 특별히 신앙과 음악에 달란트가 있는 사람을 뽑아서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였음을 알

수 있다. 다윗은 24반열의 지파에서 각 12인씩을 선출하여 총 288인으로 하여금 여호와를

찬송하는 데 익숙한 자로 삼고 더하여 4,000명의 찬양대를 구성하였다.

이후에 다윗은 레위 사람 중 아삽을 찬양대 대장으로 임명하고, 아삽과 일족인 헤만을 그

의 오른쪽에, 역시 그들과 일족이 되는 여두둔을 그의 왼쪽의 찬양대 대장으로 임명한 다음,

그들에게 성전 음악을 책임지도록 하였다(대상 25장).

다윗은 레위 지파의 제사장들 중에서 음악 담당자들을 위임하였다. 그 제사장들의 위임식

이 얼마나 위엄있고 거룩했는가는 레위기 8장에 잘 기록되어 있다. 이들은 특별히 성별된

사람들로써 이들 중에서만 음악 목회자를 뽑았다. 다시 말하면 교회에서 음악을 담당하는

사람은 레위 지파 사람이어야 했고, 다른 사람은 용납되지 않았다. 따라서 음악 담당자들도

다른 일에 종사해서는 안되었다(대상 9:33). 이와 같이 제사장들이 레위 지파에서 나온 것과

같이 찬양대원도 레위 지파에서 나왔다. 이 두 사람은 여호와 하나님 앞에 함께 나아가 한

사람은 번제단과 분향단에서 제물을 살라 바치는 동안 또 한 사람은 계약궤 앞에서 나팔을

불며 감사의 찬양을 맡아 왔다.

다윗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들에게 지시한 내용은 '큰 소리로', '힘차게', '즐겁게'라는

연주의 외적인 방법 외에, '신령하게', '감사하며'라는 연주자의 내적 태도도 드러난다.

"다윗이 군대장관들로 더불어 아삽과 헤만과 여두둔의 자손 중에서 구별하여 섬기게 하되

수금과 비파와 제금을 잡아 신령한 노래를 하게 하였으니... 왕의 명령을 좇아 신령한 노래

를 하며... 수금을 잡아 신령한 노래를 하며..."(대상 25:1-3)

"또 레위 사람을 세워 여호와의 궤 앞에서 섬기며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칭송하며 감사

하며 찬양하게 하였으니"(대상 16:4)

"그 날에 다윗이 아삽과 그 형제를 세워서 여호와께 감사하게 하여 이르기를"(대상 16:7)

"수금을 잡아 신령한 노래를 하며 여호와께 감사하며 찬양하며"(대상 25:3)

다윗이 음악 감독으로서의 위대한 점은 그가 연주자들에게 외적인 음악 연주 방법만을 지

시한 것이 아니라 연주자들의 내적인 마음가짐에 대하여도 반복하여 가르치고 있다는 점이

다. 그것은 다윗이 어렸을 때부터 그의 삶을 통하여 배워온 하나님 찬양의 위대한 방법들이

었을 것이다.

솔로몬의 성전봉헌식 때의 장면, 역대하 5장 12절은 단 앞에 120명의 나팔수가 늘어서 있

다고 표현하고 있다. 역대하 5장 13절에는 나팔 외의 다른 악기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는

데, 제금, 현악기, 하프등이 성전 봉헌 축하를 위하여 기다리고 있었다. 거의 모든 오케스트

라가 주님을 찬양하기 위하여 대기하고 있는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실제로 하나의 오케스트

라였다. 역대상 23장 5절에 보면 그 오케스트라를 위하여 4,000명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

다.

유대 역사가인 프레비우스 요세푸스는 그 봉헌식에는 20만명의 잘 차려 입은 가수들이 있

었다고 말하고 있다. 120개의 트럼펫과 4,000명의 오케스트라, 그리고 20만 명의 합창단(가

수)이 있었던 것이다. 그날 주님께 드렸던 음악은 참으로 아름다웠을 것이다.

(2) 국가분열과 바벨론 포로생활(기원전 926년경-기원전 517년경)

솔로몬 사후, 국가가 유대와 이스라엘로 양분되면서(기원전 926년), 레위인들의 결속이 약

해지고, 음악 역시 쇠하는데, 특히 악기가 덜 사용된다. 반면에 성악이 더욱 두드러진다. 음

악가들의 임무는 제사장과 레위인으로부터 예언자들에게로 넘어간다.

(3) 회당음악

기원전 517년경에 바벨론의 포로생활에서 돌아온 유대인들은 회당에서 예배드린다. 여기

에서는 옛 성전음악에서 보는 기악은 사라진다. 회중들은 단지 기도의 부분에서 아멘이나

짧은 외침으로 응답하였고, 어떤 부분에서는 대창적으로 낭송했다. 성경을 음악적 낭송 방식

으로 읽었고, 시편창적인 기도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3.2 초대교회(1-6세기)와 그레고리오 성가


(1) 초대교회

초대교회는 노래하는 교회였던 것이 분명하다. 이는 사도바울이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

래를 부르라"는 것을 장려한 것을 보아서도 알 수 있다. 이 노래들이 유대의 전통을 가졌으

며, 헬라의 전통을 새로 받아들였을 것으로 여겨지나, 그 구체적 음악을 모르는 형편이다.

유대의 전통은 초대교회의 의식적 행사에 많이 들어온 것이 확실하고, 거기에 관련된 음악

들이 같이 수용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초대교회의 음악은 오늘날과 같은 화성음악이 아니었고, 멜로디만 있는 것이었다. 이 노래

들은 거의 구전으로 전래되었고, 악보로 고착된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기억하기 좋은 일정

한 형식이 되돌아오는 음악구조와 즉흥적 변형이 가능한 형태였다.

예배에서는 성악만이 허용되었고, 기악은 가정에서와 같이 개인적 용도로만 사용되었다.


가. 비잔틴의 교회음악

비잔틴 교회는, 다메섹의 요한을 비잔틴 교회음악의 창시자로 생각한다. 그는 비잔틴 악보

를 개혁한 사람으로도 알려졌다. 그의 찬미가 '카논'은 높이 평가를 받았으며, 후에 오는

작시자들은 그의 노래에 맞추어 창작했다. 그러나 이 초기의 음악에 관한 문헌은 보이지 않

고, 9․10세기 이후의 것으로 보이는 악보가 보존되어 내려왔다.

이 찬미가들은 모두 단성부 노래였으며, 교회에서는 악기로 반주되지 않았다. 13․14세기에

는 직업음악가(Melurgen)들이 나타나 개성적이고 감각적 효과를 갖는 음악이 발생하였고,

악보에 새로운 기호도 첨가되었다.

비잔틴의 교회음악은 희랍정교로 이어져 오늘날까지도 그 음악적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나. 암브로지오 성가

이는 밀라노 지역(북부 이태리)에서 행해지던 예배 의식에 사용된 성가를 의미하며, 로마

지역의 그레고리오 1세가 정리한 성가에 대립되게 암브로지오성가라고 부른다.

암브로지오 성가의 특징은 대략 다음과 같은 것으로 본다. ①낭송에서 4도로 떨어져 끝나,

5도로 끝나는 그레고리오 성가와 차이를 보이고, ②중세적 시편창에서 보이는 시작선율(Initi

um)과 중간선율(Mediatio)이 없고, ③시편창에서는 안티폰뒤에 오는 낭송음(Tenor)의 선택

이 상당히 자유롭다는 점이다.

암브로지오 성가는 로마의 중앙교회로부터 수 차례에 걸친 말살 위협을 받았으나, 이를

극복하고 오늘날까지도 그 일부가 북부 이태리 지역에 남아있다.

다. 갈리아 성가

갈리아는 현재의 프랑스․벨기에․롬바르디아 지방을 가리키는 고대의 이름이다. 갈리아

성가는 이 지역의 초기 기독교도들의 노래를 말한다.

갈리아의 예배의식은 많은 점에서 동방 교회의 그것과 일치한다. 따라서, 그레고리오 성가가

공식적으로 도입되기 이전의 동방교회, 그리고 이태리 교회와의 교류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

된다.

성가 자체에 관한 기록은 매우 적다. 한 가사를 여러개의 멜로디로 노래하는 특이한 점을

보인다. 멜로디는 낭송적인 것과는 먼 형태를 보인다. 3도․4도 도약과 멜리스마가 많다.

라. 모짜라비아 성가

711년 아랍인들에 의해 점령된 스페인 지역 기독교도들의 성가를 모짜라비아 성가라 칭한

다. 그러나, 점령 이후의 성가가 아닌, 점령 이전에 있었던 성가가 그 이후로도 보존되어 온

것으로 뜻한다.


(2) 그레고리오 성가

교황 그레고리오 1세(590-604)는 6세기말에 로마교회의 예배 의식을 개혁한다. 이와 함께

교회 성가도 수집, 정리된다.

예배의식의 개혁은 로마 주도하에 각지의 여러 가지 예배의식들을 하나로 만드는 것이었다.

당시까지 로마, 밀라노, 갈리아, 아일랜드, 희랍, 시리아, 이집트의 예배의식과 성가들이 서로

달랐다. 

교회와 국가의 밀접한 관계로 인해 교회법과 예배의식 역시 정리, 통일되어야 했다. 교회

성가는 그레고리오(590-604재위)의 이름과 연관되어 전승되어 왔다. 그레고리오 교황은 예

배의식의 순서와 성가 가사들을 정리한다. 그러나 그레고리오가 오늘날의 그레고리오 성가

를 정리한 것인지, 옛 로마 성가를 정리한 것인지는 명확히 밝혀지지 못하고 있다.

그레고리오 성가는 무반주 단성부 음악이며, 라틴어 가사를 사용하고 기능적으로 예배의

식에 묶여 있으며, 이론적 토대는 교회 선법 이론이다. 낭송적이지만 노래에 가깝게 부르는

방법을 시편창이라고 부르는데, 그 이유는 대부분의 노래가사가 시편(또는 칸티쿰)으로 되

어, 시편처럼 부르는 음악으로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그레고리오 성가가 오늘날의 형태로 대략적 윤곽을 잡은 것은 8세기 말로 여겨진다.

그레고리오 성가가 재정리된 것은 비교적 최근 즉, 19세기말경의 일이다. 옛 필사본들을

연구하여 옛 모습의 성가를 재구성 시킨데에는 솔렘의 베네딕투스 수도사들의 공이 크다.

카톨릭 교회는 이들에 의해 재정비된 그레고리오 성가를 1908년 이후 공식적인 것으로 인정

한다. 그레고리오 성가는 그 출발이 히브리 음악으로까지 이어지지만 역사적으로 끊임없는

변화를 받았다. 따라서 이 성가는 어느 순간에 확정적으로 만들어진 형태로 우리에게 전해

지지 않았고, 생물처럼 성장하면서 사용되어 왔다. 다성음악이 나온 이후에도 이 성가는 음

악적 발전과는 상관없는 영역에서 오늘날까지 사용되어 왔다.




3.3 독일의 교회음악


루터는 교인들을 위한 독일어 찬송가(코랄)를 예배에 도입하여, 누구나 쉽게 부르고, 가사

의 이해에도 어려움이 없도록 한다.

회중 찬송가를 예배에서 필수불가결한 부분으로 만들어, 회중이 항상 직접 예배진행에 참여

할 수 있도록 했다. 그와 그의 동역자들은 이러한 회중 찬송가의 수가 충분하지 못하다고

보고 이의 창작에 힘을 기울였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라틴어 시를 번역하였고, 세속적․종

교적 옛노래들을 선택․변형시켜 찬송가의 수를 늘린다.

그는 노래의 소재를 성서(특히 시편)와 옛 교회찬송가에서 찾았다. 그는 라틴어 가사의 옛

노래를 번역하였을 뿐만 아니라, 자유롭게 편곡․확대하기도 했다.

독일 신교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독일어 가사를 사용한 점이다. 이때까지의 유럽 교

회에서는 라틴어 가사를 사용하였기 때문에 교인들이 그 내용을 알 수 없었고 음악은 예배

의 종교적 분위기만을 조성했었다. 이로 인해 모국어에 의한 하나님과 신자의 직접대화가

가능해진다. 이는 사제의 중간 역할 없이 하나님과 신자의 직접대화가 가능한 신교의 '만인

사제설'교리의 영향인데, 루터의 노래가사에는 하나님께 직접 호소하는 시편의 사용이 두드

러진다.

루터의 음악적 협력자로서 가장 많은 활약을 보인 사람은 요한 봘터이다. 그는 신교음악

의 확립에 큰 몫을 담당했다. 그는 '듣기 위한 음악' 보다는 '같이 부르는 음악'에 힘을 기울

여, 신교 음악과 학교음악을 루터의 개혁적 토대 위에 세운다.

독일 신교의 다성음악은 회중찬송가를 바탕으로 한 편곡을 많이 보여준다.

각 성부들의 음역이 정확하게 지켜진 것으로 보아 무반주 합창으로 연주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누구나 부를 수 있는 일반 성가도 작곡된다. 이를 복음 찬송이라고 칭했는데, 이는 복음서

의 내용을 음악화한 것이 많기 때문에 생긴 명칭이다.

신교의 첫 세기에는 예배에 참여한 기악에 관해 산발적인 기록 밖에 없는 것으로 보아 축

일의 종류나 장소에 따라 그 사용이 제한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독일의 신교는 신․구교를 구분하지 않고 전래된 음악들을 연주했다. 독일 신교음악의 독

자적 발전은 독일어 합창곡과 회중 찬송가에 의해 이루어진다.

작곡가들이 힘을 기울인 것은 코랄 편곡이다. 이 음악은 이미 16세기 중엽에 뚜렷한 양식

변화를 보인다. 고정선율 기법이 사라지고, 부수적 성부들의 기악적 성격도 사라져서 순수

무반주 성악곡이 된다. 모든 성부들이 노래로 불려지며, 세속음악에서처럼 멜로디가 테너로

부터 최상성부로 옮겨간다. 이로 인해 점차 단순한 화성적 처리가 늘어난다. 이러한 단순한

작곡방식은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음악으로의 전환이 오게 하고, 전에는 불가능했던 일반

회중의 합창 참여의 길을 연다.

17세기의 회중 찬송가(코랄)는 상당한 변화를 갖는다. 콘티누오 저음기법은 오르갠 반주를

동반하는 관행을 정착시켰고, 테너에 멜로디를 둔 찬송가는 완전히 사라지고 소프라노에 멜

로디가 오는 찬송가를 일반화시킨다. 회중들은 성가대․오르갠과 함께 노래하였고, 어린이

성가대와 함께 각 절들을 바꾸어 가며 부르기도 했다. 또는 멜로디를 부르는 어린이들을 드

러내기 위해 그들을 교회 중앙에 두고, 그리고 성가대나 관악합주단이 그들을 화성적으로

보조했다. 

17세기 중엽이후에는 아리아, 기악곡등의 영향으로 상당히 다양한 종류의 찬송가들이 나

타났다.

1800년경에는 신교지역의 수많은 라틴어 학교의 성가대가, 카톨릭 지역에서는 많은 수도

원이 해체되었다. 또한 신․구교를 막론하고 예배의 회수가 줄어들었으며, 예배자체도 상당

히 단순화되었다. 따라서 교회음악이 설 자리도 현저히 좁아졌다. 교회음악은 계몽주의자들

의 냉철한 생각 안에서 겨우 관용되는 정도의 대접을 받았고, 하나님에 대한 열광의 증거로

보여지지 않았다. 교회음악의 위엄을 강조한 사람들은 시인 클롭슈톡과 목사이자 철학자인

헤르더였다. 이들은 독창과 기악이 두드러지지 않는 합창음악이 순수한 교회음악이라고 강

조하고, 교회음악에서의 회중의 참여를 강조한다. 이는 교회에서 예술만을 추구하는 것은 바

람직스럽지 않다는 견해를 포함하는 것이기도 하고, 종교개혁가들의 생각을 되살리는 것이

기도 했다.


3.4 종교개혁자들의 음악


교회가 음악을 어떻게 대했는가를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대략 세가지의 다른 입장들이 항

상 공존한다고 말할 수 있다. 즉 ①기악까지 쓰는 적극적 사용, ②성악이나 단성부만을 허

락하는 제한적 사용, ③음악의 거부가 그것들이다.

아래의 도표는 성경, 초대교회, 종교개혁자, 현재의 입장에서 볼 수 있는 세가지 의견들을

정리해 본 것이다.


개신교의 신학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세 사람의 종교개혁자, 즉 루터․칼빈․쯔빙

글리는 음악에 관해 서로 다른 입장을 견지했다.

(1) 적극적 사용:

루터는 교회에서 음악의 사용에 어떠한 제한도 두지 않았다. 그는 교회에서 기악의 사용

을 장려했고, 초대교회가 몰랐던 다성부 합창음악도 허락했다. 새로 작시된 가사도 허락했

고, 세속음악일지라도 교회적 가사로 개작된 것은 교회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2) 제한적 사용:

칼빈은 오직 시편이나 칸티쿰만이 교회에서 부를 수 있는 노래라고 보았다. 그는 새로운

음악을 시편가사에 붙이는 것을 장려했지만 새로운 작사를 금했다. 뿐만 아니라 말씀을 실

을 수 없다는 이유로 악기를 교회에서 금했고, 잘 알아들을 수 없다는 이유로 다성부 합창

음악도 교회에서 금지시켰으며, 오로지 단성부 음악만을 교회에서 허락했다.

(3) 음악의 거부:

쯔빙글리는 교회에서 음악을 전면적으로 거부했다. 그는 마음으로 찬송하고 기도하는 것

이 옳고, 외면적으로 부르는 노래는 의미가 없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유해할 수 있다고

보았다.

현재에는 음악에 관한 한 교파적 특성이 상당히 없어지고 있다. 칼빈적 장로교, 쯔빙글리

의 개혁 교회 역시 다른 교파와 다름없이 합창음악과 기악을 사용하고 있다. 물론 전통의

차이 때문에 음악의 사용에는 교회별로 정도의 차이를 보인다.

우리나라의 장로교를 예로 들면, 칼빈적 시편가는 거의 부르지 않고, 18세기중엽에 발생한

감리교식의 찬송가와 19세기의 복음성가를 부르고 있으며, 루터교 전통에서 자란 바하의 오

르갠 음악이나 칸타타등도 연주되고 있다. 또한 카톨릭 출신의 모차르트와 하이든의 미사곡

들은 카톨릭 교회에서 보다 오히려 신교에서 더 많이 불리워지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이

노래의 가사들이 신교의 교리와 배치되지 않고, 친근한 음악이며, 손쉽게 접할 수 있기 때문

으로 여겨진다.


1. 루 터

루터(1483~1546)는 음악을 전면적으로 교회에 받아들인다. 기악․다성음악 등 다른 개혁

자들이 기피했던 것까지도 수용했던 것이다. 그는 카톨릭 음악까지도, 카톨릭 작곡가까지도

모두 받아들이는 입장이었다.

그는 음악을 교회에 수용하는 것을 넘어서서, 교회의 일에 음악을 적극적으로 사용한 개혁

자였다. 이러한 그의 생각은 독일 신교음악의 정신적 받침대가 되었고, 예술음악이 교회 안

에서 성장할 수 있는 여건을 주었다.

어느 글 보다도 다음의 음악 예찬은 그가 음악을 얼마나 크게 생각했는지를 알게 하며, 그

의 음악적 생각의 중요한 부분을 보여준다.

"나는 음악을 사랑한다. 그리고 음악을 저주하는 열심당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왜냐하면 음

악은, 

1)사람의 선물이 아니고, 하나님의 선물이며

2)영혼을 즐겁게 하고

3)마귀를 몰아내고

4)죄없는 기쁨을 일으키고

이를 통해 분노․욕정․교만을 지나가게 하기 때문이다. 나는 신학 다음의 맨 첫 번째 자리

를 음악에게 부여하는데 이는 다윗과 모든 선지자들의 예를 보아 얻은 결론이다. 그들은 자

신의 행적을 시와 노래로 전했다.

5)음악은 평화의 때를 지배한다.

그러므로 견뎌내라. 우리 이후에 오는 인간들은 이 예술과 함께 더욱 나아지리라.

나는 평화 속에 사는 바이에른 영주들을 칭송하는데, 이는 그들이 음악을 육성하기 때문이

다.

우리 작센 영주들은 무기와 폭탄을 설교한다."

(1)루터에게 음악은 하나님의 창조물이다. 그는 음악을 창조 때에 같이 창조된 것으로 파악

하며, 인간의 예술을 통해 더욱 빛나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음악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

신 위대한 선물이며, 큰 힘과 선함을 소유한다고 말한다. 또한 음악은 구원을 가져오는 즐거

운 것이기도 하다.

하나님이 창조한 음악에는 여러 가지의 단계가 있다.

①자연의 소리(새소리등) ②사람의 목소리(말을 전달할 수 있기 때문에 더 높은 단계의 것)

③예술 음악(이러한 닦여진 음악을 통해 하나님의 지혜를 감탄하고 예감할 수 있다.)

(2)루터는 모든 음악을 하나님의 창조물로 파악하여, 기악도 교회에서 허락될 수 있는 것으

로 본다.

(3)루터는 음악을 듣고 느끼는 기쁨을 죄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로써 그는 어거스틴이 음

악을 듣고 느끼는 기쁨에서 죄를 느낀 것은 잘못이라고 본다.

(4)음악은 신학과 매우 가깝다고 루터는 말한다. 그러기에 옛 예언자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음악이 가깝기를 바랐으며, 말씀을 음악화 시키기에 노력하여, 수많은 노래와 시편을 남겼다

고 루터는 생각한다.

(5)말의 뼈대인 문법, 그리고 음악은 세상을 묶는 '힘'과 '질서'를 가져오며, 이 질서는 동시

에 '신적인 질서'라고 말한다. 이 질서 안에서 음악은 창조를 유지하고, 선을 장려하며, 악의

근절을 위해 쓰인다는 것이다.

(6) 음악은 사람의 생각․감각․마음․감정을 다스린다.

(7)루터는 하나님이 음악을 통해 복음을 선포하신다고 말한다.

루터는 죄로부터 자유로와진 복음이 음악을 통해서 합당하게 성취될 수 있는 것으로 보았

다.

(8)음악은 깊은 인간 내면에 있는 것을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능력으로 인해 음악은 인간이

말씀의 부름에 응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래서 음악은 신앙을 불러일으킨다. 따라서 음악은

성령의 도구이다.

(9)음악의 감정적 능력이 정신적․영적 침체를 없앨 수 있다. 따라서 이 능력이 이성적 능력

과 합해지면 더 높은 가치를 창조해 낸다고 생각했다. 이성을 대표하는 말과 감정을 대표하

는 선율이 합하여 정신적 상승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10)찬양이 언어를 뛰어 넘어서서 환성이나 환호의 외침과 비슷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을 긍

정한다. 하나님은 말로 표현될 수 없는 분이신데 침묵할 수는 없고 환성 이외에는 그 표현

이 가능한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11)루터 역시 칼빈 처럼 음악이 교육에 도움이 된다고 보았다.


2. 칼 빈

칼빈은 종교개혁자 가운데에서는 음악적 교육과 소양이(쯔빙글리나 루터보다는)못한 편이

었다. 칼빈의 생각을 가장 분명하고 핵심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오직 말씀으로라는 구호이다.

(1)그는 악기 연주를 반대했다. 말씀이 없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그는 카톨릭이 오르갠을

교회에서 사용함으로써 음악을 오용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많은 교회에서 오르갠이 철거되

었다. 후에 오르갠 반주가 다시 보편화되었으나, 인정받지 못하는 편법으로 취급되었다.

그는 구약시대에는 악기 사용이 필요했다고 생각하나 신약시대에는 불필요한 것으로 보았

다. 구약시대는 하나님 백성들의 유년기였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을 듣도록 자극하는 기악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그는 고전 14:15절을 악기가 필요 없다는 신약시대의 명령으로 받아들였

다. 그는 이 성구를 근거로 교회에서의 악기 사용을 금했다. 악기의 사용은 말씀을 흐리게

한다고 말한다. 그는 악기의 폐기를 주장하면서 갈 3:23절을 사용하기도 했다.

그는 신약시대를 율법의 시대가 아닌 믿음의 시대로 파악하였고, 악기 사용이 구약에 많이

나타난 것과 연관시켜 악기와 구약과 율법을 한꺼번에 묶어버렸다.

(2) 칼빈은 교회에서 성악곡만을 허용하였으나, 이것도 다성 음악이면 불허했다. 즉 단성부

음악만을 허용했다. 그는 독창으로 부르지 않는, 집단에 의해 불리 우는 단선율 성가를 택했

다. 기악이 감정을 움직일 수는 있으나 신앙의 고백은 못한다고 보았다.

(3) 그는 성경 안에 있는 노래가사만을 (시편․칸티쿰)사용해야 한다. 시편을 교회의 기도라

고 보았고, 이것이 회중에 의해 불리워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4) 칼빈은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는 음악의 작용력에 크게 주목했다. 그러나 그는 이 작용력

이 원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향으로 사용되는 것을 즐거워하기 보다는 타락과 자기도취

를 위해 오용되는 것을 걱정했다.

그는 루터와는 다르게 음악에 관해 낙관적인 생각보다는 비관적인 생각을 더 많이 했다. 그

는 멜로디를 통해 말씀이 가슴속에 스미는 것보다는 나쁜 것이 스미는 것을 더 걱정했다.

그는 기악을 그 자체로 거부 했다기 보다는 기악과 관련된 것들이 쉽게 부패한 것으로 나간

다고 보았기 때문에 이를 거부했다.

그는 교회의 음악과 교회 밖의 음악을 구분하고 싶어했다.

(5) 그는 교회음악이 선교적 임무를 가졌다고 보았다.

(6) 그는 교회음악이 교육적 임무를 가졌다고 보았다.


3. 쯔빙글리(1484~1531)


1518년 스위스에서 칼빈 보다 먼저 종교개혁을 시작한 그는 루터의 글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1522년 그는 라틴어 미사를 점진적으로 개혁하자는 주장을 폈으나, 그 자신은 전통

적 미사의 집례를 거부했다. 그가 세운 새로운 예배형식이 도입된다. 이 예배 형식은 ①일반

인의 언어, ②평교인들의 기도 참여, ③계속적인 성경 낭독, ④음악 사용 금지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 찬송가책은 폐기처분되었고, 2년후인 1527년에는 교회에서 오르갠이 제거되었다.

쯔빙글리의 예배 의식에서 가장 중요시 된 것은 말씀 선포였다. 회중들은 침묵 속으로 단지

마음으로 찬송하고 기도할 뿐이었다.

교회에서 찬송가가 다시 도입된 것은, 그가 사망한지 51년후인 1574년 베른 교회부터이며,

취리히 교회는 75년 후인 1598년이다. 성가대의 합창음악이 다시 도입된 것은 1960년대에

와서야 가능했다.


3.5 개혁교회(또는 장로교회)의 음악


장로교회의 음악은 창시자 칼빈(1509-1564)의 의견에 따라 새로 작사․작곡된 것들과 기

존곡을 이용한 회중 찬송가 중심의 것이다. 가사는 기본적으로 시편과 칸티쿰을 사용하고,

운(韻)에 맞추어 노래에 적합하게 작사된다. 음악은 원래 단성부의 것이었으나, 곧 다성음악

화 되었다.

장로교의 발생지인 스위스와 프랑스 이외에 시편가가 가장 널리 퍼진 지역은 장로교인들

이 많았던 네덜란드였다.

네덜란드에서는 시편가들을 다성부로 만드는 일이 널리 행해졌다. 스벨링크는 제네바 시

편가 전체를 고정선율로 사용하여, 4~8성부의 음악을 만들었으며, 다성부 시편가들 중에 가

장 예술성이 풍부한 것들을 남겼다. 뿐만 아니라 그는 시편가를 사용한 '코랄전주곡'으로 오

르갠 음악 장르를 창시했다.

영국은 헨리8세가 카톨릭과 결별을 선언한 1533년에야 새로운 교회운동이 시작되었다. 그

러나 음악적으로는 이미 독자적 방향을 가지고 있었는데, 시편과 칸티쿰을 부른 것이 그것

이다. 

1559년 엘리자베스 여왕은 이 음악들을 영국 교회의 예배에 허용하였고, 17세기 전반에

거쳐 매우 애창되었는데, 이는 웨슬리에 의한 감리교 찬송가가 나타나는 1740년대까지 계속

되었다. 

스코틀랜드의 장로교는 영국 교회보다 제네바 시편가의 영향을 더 많이 받았다.

18세기 말경에는 시편가가 덜 불리우고, 찬송가들이 퍼지기 시작했다. 많은 장로교회들이

교회에서는 시편가만 불러야 한다는 칼빈의 원칙을 포기했다. 그러나 스코틀랜드 장로교․

헝가리 장로교․독일의 개혁교회들은 계속 제네바 시편가를 사용했다. 예배에서 시편만 부

른다는 원칙을 포기하지 않은 다른 장로교회들도 많은 제네바 시편가들을 버리고 새로운 곡

들을 만들었다.


3.6 영국의 교회음악


성공회가 카톨릭으로부터 독립함에 따라 영국에서도 라틴어 대신 자국어 사용을 시작했

다. 1547년에는 그레고리오 성가가 영어로 번역되어 처음으로 사용되었고, 1549년에는 <일

반기도서>가 공용화․의무화되었다.

엘리자베스 1세때에는(1558~1603)교회 음악이 성가대와 사제들의 음악을 뜻하는 '대성당

음악'과 회중 음악으로 분리되는데, 이 양분법은 19세기까지 지속적인 것이 된다. 1559년 가

사를 알아들을 수 있어야 한다는 조건 아래, 예술적 다성 음악이 허용된다.

크롬웰이 지배했던 영국 공화국 시대에는 교회음악에 많은 제약이 가해졌다. 대성당 성가

대는 해체되고, 오르갠은 교회에서 제거되었다. 회중들은 무반주로 단성부 시편가를 불렀다.

'따라부르기'(lining out)이라는 방법이 사용되었는데, 이는 목사(또는 교회음악가)가 한 줄을

먼저 선창하면 회중들이 따라 부르는 것이었다.

대성당 음악이 다시 소생했던 시기는 찰스2세가 다스리던 때(1660~1685)였다. 대성당 음악

에는 악기의 참여가 많아졌다. 수많은 합창음악이 작곡되었고, 오르갠은 다시 교회에 들어왔

다.

18세기 영국에서 오늘날 한국인들이 찬송가라고 번역하는 Hymn이 등장한다.

이 '찬송가'는 시편가에 대립되는 말로 이해되어졌는데, 무엇보다도 새롭게 창작되는 가사를

주장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즉 찬송가는 원래 가사에 관한 것이다. 이 새로운 찬송가들은 신

자들이 친근한 언어와 표현으로 하나님을 노래할 수 있게 한다.

음악 자체는 19세기 작곡가들의 것이 많다. 찬송가의 음악은 복음성가의 음악과 흡사하다.


3.7 미국의 교회음악


18세기초에는 뉴 잉글랜드의 교회들이 영국에서 일어났던 '바르게 찬송부르기 운동'에 연

결하여, 지금까지 청각에 의해 자유스럽게 고쳐가며 부르는 방식을 피하고 악보에 따라 정

확히 노래하는 것이 장려된다. 이러한 바르게 노래하기 운동은 교회음악을 활발하게 만들어,

각지의 교회에 의해 가창학교가 설립되고, 음악 교과서가 발간되고, 찬송가 책과 합창곡집들

이 출판되고, 일부 미국 작곡가들의 음악이 나타났다.

베들레헴(펜실바니아)과 살렘(노드 캐롤라이나)의 모라비아 교도들은 높은 음악적 수준을

보유했다. 오르갠은 제외되었지만, 현악기와 목관악기의 반주는 필수적이었으며, 잘 훈련된

성가대는 앤덤․아리아․당시 독일 작곡가들의 성가곡들을 불렀다.

미국의 교회들은 남북전쟁 이후에야 공식적인 찬송가를 정했다. 그 이전에는 각 교회들이

자유롭게 찬송가를 선택․사용하였다.

19세기 미국에서 발생한 회중 찬송가중의 가장 대중적인 것은 복음성가이다. 이는 당시의

부흥운동과 관련이 깊은 것이다. 특히 복음주의 운동가 생키와 무디의 대중적 집회와 함께

복음성가도 급격히 확산된다.

일부의 교회에서는 19세기에 '모형음표'라는 악보를 사용해 누구나 쉽게 찬송가에 접근하도

록 했다. 음악 역시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민속적이었다. 오음계 노래와 같은 쉬운 멜로디

가 사용됐으나, 화성은 화성학 책에 없는 독특한 것이 사용되기도 했다.

흑인들의 음악은 미국의 교회에서 독특한 위치를 점한다. 이들은 17세기말부터 백인들의 찬

송가를 배웠다. 이들은 백인들의 멜로디를 빌려서 흑인 특유의 스피리튜얼을 만들었다.

흑인영가가 교회 밖에서까지 불리우게 되자, 흑인들은 1925년경 이후 가스펠로 방향전환을

보였다.

20세기에 들어와서 미국의 교회음악은 매우 다양해진다. 중앙집권적 감독교회는 주로 유

럽으로부터 들여온 찬송가와 영국의 대성당음악을 사용한다. 그러나 개 교회적이고 선교적

인 교회는 찬송가 이외에, 복음성가집도 함께 사용하며, 갖가지의 성가대 음악을 부른다. 매

우 미국적인 음악으로는 째즈화된 교회음악이 있는데, 이것은 60년대 이후 점차 증가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4. C.C.M(Contemporary Christian Music)


4.1 C.C.M의 정의


C.C.M(Contemporary Christian Music)이란 무엇인가?

Contemporary Christian Music이란 말은, 사전적 의미와 같이 현대적인(동시대의, 그 당시

의) 그리스도인의 음악이라 할 수 있다.(혹은 기독교 음악) Contemporary Christian Music

이라는 말이 처음 등장한 때는 가스펠 음악이 대략 세 가지로 구분되던 시기였다.

그 첫째가 성스러운 가스펠(Sacred Gospel), 둘째로 Inspirational, 셋째로 contemporary

Gospel이었다. Sacred Gospel은 교회에서 불리우던 음악이었고, Inspirational은 오늘날의 이

지리스닝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컨템퍼러리로 분류된 것은 그 당시 남부 가스

펠에서 가장 흔했던 4중창단의 노래를 지칭한 것이었다. 그 당시에는 남성 4중창 스타일이

가장 유행하던 대중적 가스펠이었기 때문에 컨템퍼러리로 구분되어진 것은 남부 가스펠이었

다. 이때부터 컨템퍼러리 크리스쳔 뮤직이라는 말은 동시대적인, 대중적인 기독교음악이란

의미로 쓰여지기 시작했다.

C.C.M의 세 단어 중 기독교적이라는 말과 현대적이라는 말이 의미하는 바를 분명히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우선 기독교적이라는 말에 대해 살펴보자. 기독교적이란 단어는 가사의

내용에만 적용된다. C.C.M의 음악 스타일 자체는 기독교적도 아니요 비기독교적도 아니다.

그저 음악일 뿐이다.

둘째로, 현대적이란 용어는 단순히 '시대와 더불어 함께' 또는 '당대'를 의미한다. 이런 의미

에서 이 용어는 C.CM.이 '더불어 함께'하는 현대 대중음악 스타일을 정확하게 나타내 보여

준다.


4.2 C.C.M.의 역사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 세계에 퍼져나가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는 음악은 각 나

라와 지역의 특성과 그 문화의 특성에 따라 만들어지고 불리어 왔다. 또, 지역마다 고유의

악기를 사용해서 그 음악을 연주해 왔다. 그래서 그 내용은 같으나 그 스타일은 독특한 형

태로 발전해 오기도 했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오면서 전자악기가 출현하고 그 악기를 사용

한 음악이 전세계에 일반화됨에 따라 이제는 음악과 사운드의 예술적, 기술적 차이와 한계

가 거의 없어지게 되었다. 그에 따라 교회 안에서 머물러 왔던 크리스쳔 음악도 새로운 옷

을 입고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물론 새 옷을 입은 크리스쳔 음악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큰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지속적인 발전을 거듭해 왔다. 전통적인

교회음악이 오늘날의 컨템퍼러리 크리스쳔 음악(Contemporary Christian Music, 편의상

C.C.M으로 부름)으로 변화된 첫번째 시도는 1964년 미국의 레이랩(Ray Repp)이라는 사람

이 카톨릭 교회에 포크(Folk)미사를 선보인 것으로 부터이다. 파이프 오르간의 장엄하고 웅

장한 미사곡만을 연상하던 사람들에게 포크음악 미사는 매우 혁신적인 것이었다. 이듬해인

1965년 랄프 카마이클은 빌리그래함 목사의 선교영화 (The Restless ones; 쉼이 없는 사람

들)에 음악을 삽입하면서 싱코페이션(박자의 강약을 바꾸거나 전환하는 것)이 가미된 음악

을 사용했다. 전통적인 교회음악에서 사용치 않던 방법을 시도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같은 해 유명한 팝아티스트인 배리 맥가이어(Barry McGuire)가 록 음악계의 반항적 물결을

떠나는 신호처럼 라는 앨범을 녹음했다. 이 앨범은 당시

유행하던 팝 음악 스타일에 기독교적인 내용을 담은 것이다.

1967년 미국은 베트남전을 반대하는 그 운동이 정점에 달했다. 기성세대에 반발하는 젊은

세대들 간에 반항의 물결이 크게 일고 있었다. 그러나 교회내의 젊은이들은 그만큼 과격하

진 않았다. 그즈음 랄프 카마이클과 커트카이저는 '가서 그대로 전하라' (Tell it Like it is,

Natural High) 같은 청소년 뮤지컬로 크리스쳔 음악을 거칠게나마 현대화하는 작업을 시도

했다.

반전운동과 함께 일어난 미국의 반문화운동은 자유와 평화의 상징, 마약(LSD), 자유연애, 그

리고 록큰롤을 성스러운 것으로 삼았는데, 이 운동은 우드스탁 페스티벌에서 피크를 이루

었다.

미국 히피들의 사상이 대변된 이 페스티벌은 Rock Music의 하나의 전설처럼, 이상적인

Rock 페스티벌로 얘기되었으나, 몇 개월 뒤에 다른 곳에서 열린 록 페스티벌에서는 그같은

모토는 사라지고 폭력과 혼란이 난무하였다. 그리고 한편에서는 그러한 히피운동에 반대하

는 대항문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반문화 히피운동이 내세운 자유와 사랑에의 약속이 이루

어지지 않고 그 안에서의 진정한 자기실현이 불가능함을 깨달은 환멸에 빠진 세대들 가운데

상당수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과 참 평안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참된 존재가치를 발

견한 젊은이들은 그들 세대가 가진 문화의 언어로 새로운 스타일의 기독교 문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1969년 레리노먼(Larry Norman)이라는 젊은 아티스트가 캐피탈 레코드에서

이라는 앨범을 냈다. 이 앨범은 정통 Rock음악에 신앙의 내용을 실은

것이었다. Larry Norman의 앨범은 크리스쳔록의 선구적 신호탄과 같았다. 이 해에 첫

C.C.M 앨범이라 할 수 있는 마일런르페브르와 홀리스모크의 , 래리노먼의 this Rock>, 존 피셔의 이 나왔다.

캘리포니아에 새로이 세워진 갈보리교회에서는 태평양 연안에서, 회심한 히피들을 위한 대

규모 침례식을 거행했다. 갈보리는 크리스쳔 음악이란, 음악이 갖고있는 소리나 외양보다는

그 마음의 조건과 더 관련이 있음을 일찍부터 깨달은 교회였다. 갈보리교회의 척스미스 목

사는 그리스도인들을 격려해 그 스타일이 어떻든지 주님을 위한 음악을 만들도록 했다. 그

러한 음악들은 당시의 교회음악과는 판이했으나 그러한 음악은 젊은 크리스쳔들의 진정한

마음에서 나온 것들이었다.

갈보리교회에서 만들어낸 음악도 새로운 크리스쳔 문화의 한 부분을 형성해 나갔다. 이렇게

남부 캘리포니아에서 시작된 새로운 물결은 미국 전역으로 퍼지게 되었다. 이 물결은 1960

년대 후반부터 일어나게 된 '예수운동(Jesus Movement)'과 중첩되어서 일반매체인 'Time'등

을 포함한 수많은 매체가 이 운동을 다루게 될 만큼 확산되었다.

한편 초창기 C.C.M이라고 할 수 있는 앨범이 아주 열악하게나마 나오기 시작했다. 음악적,

기술적 수준도 낮은데다 제작 비용면에서도 낮은 수준이었기 때문에 초창기 C.C.M은 초보

단계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비록 음악적 수준은 낮았지만 그 순수성만큼은 그 어느 때보

다도 돋보인 시기이기도 했다. 1970년도에 들어오면서 1971년 갈보리교회에서는

'Maranatha! Music'이라는 음악선교단체를 설립해서 앨범을 만들기 시작했다. 거기에는

Children of the day, Blessed Hope, Gentle, Country Faith, The Way, Selah, Love song

등의 그룹들이 소속되어 있었다.

1972년 여름, C.C.M은 달라스의 미식축구경기장인 카튼보울에서 열린 '엑스폴로 72'대회에

서 활동영역을 넓히는 계기를 만들게 된다. 래리노먼, 러브송, 리타쿨리지, 크리스 크리스토

퍼슨, 배리 맥가이어, 안드레 크라우치 등이 출연해 전세계에서 모인 사람들 앞에서 복음이

담긴 새로운 기독교음악을 선보이게 되었다. 또, Word레코드사는 크리스쳔 전문 레이블인

Myrrh를 설립, 초창기 크리스쳔 음악 아티스트들의 앨범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1970년대가

진행되면서 C.C.M은 기성 교회의 거부감과 라디오에서 거의 방송되지 않는 악조건 속에서

도 성장해 나갔다. 1976년에는 C.C.M에 지대한 공헌을 하게 된 Sparrow사가 설립되었다.

Word레코드에서 아티스트와 선곡담당자로 일해오던 빌리 레이 헌은 작지만 선교적 성격이

강한 레코드 레이블을 세워 배리 맥가이어, 애니 허링, 존 마이클 탈보트, 케이쓰 그린 등의

앨범을 출반했다. 계속해 C.C.M은 그 질과 양에 있어 성장해갔고, 1978년 C.C.M계에는 큰

영향을 준 두가지 사건이 일어나게 되는데, 하나는 C.C.M을 전문으로 다루는 잡지 'C.C.M'

이 창간된 것이었고, 또 하나는 초대형 가수 Amy Grant의 등장이었다. 'C.C.M'지는 처음에

는 크리스쳔 음악계의 종사자들을 위해 제작되었으나 점차 일반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보급이

되었고, C.C.M의 차트도 집계하는 등 명실상부한 C.C.M잡지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1979년에는 포크의 대명사로 불리우던 밥딜런이 'Slow Train Coming'이라는 앨범을 내고

기독인이 되어 공연 때마다 거듭난 내용을 주로 하는 노래만을 불러 세인들을 놀라게 하기

도 했다. 또 1979년에는 크리스쳔 Rock을 비판해오던 Bob Lason이 그 태도를 바꾸게 되는

사건이 있었다. 그는 세속 Rock음악에서 보았던 위험성이 크리스쳔 Rock에서도 존재할 위

험이 있다고 해서 크리스쳔 Rock을 반대해 왔으나 C.C.M을 자세히 접하고 C.C.M아티스트

들의 확고한 믿음과 그들의 삶을 보면서부터 종전의 비방하던 관점을 바꾸어 오히려 옹호하

는 입장으로 달라지게 되었다.

1980년 No Compromise! 라고 뜨겁게 외치며 젊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강렬한 선교에의 도전

을 불러일으키던 Keith Green은 자신의 새 앨범을 자유가격제로 판매함을 발표, 충격을 주

었다. 그는 구매자가 원하는 가격대로 자신의 앨범을 판매했다. 이같은 판매방식은 돈이 없

어도 그의 음악을 누구나 들을 수 있도록 한 것이었다. 1981년 컨템퍼러리 크리스쳔 뮤직은

양적으로도 성장해서 일반 레코드사에서도 크리스쳔 뮤직을 보급하려는 움직임이 시도되었

다. 그래서 크리스쳔 음악이 일반 시장에도 배급됨에 따라 일반시장에도 적합한 노래를 만

드는 경향이 생겨나서 음악영역의 전환에 따르는 문제가 발생해 이른바 '크로스오버'에 대한

논쟁이 일어나기도 했다.

1982년에는 C.C.M계에는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백워드 매스킹에 대한 논쟁이 크리스쳔 음

악계를 들끓게 했다. 레코드를 거꾸로 돌려보면 거기에 사탄의 메시지가 들어있다는 백워드

매스킹 문제는 사람들에게 큰 관심거리가 되어 레코드를 호기심으로 거꾸로 돌려보는 일이

유행했다.

또 1982년 C.C.M계에 시대의 예언자로 불리우던 케이쓰 그린(Keith Green)이 비행기 사고

로 세상을 떠났다. 케이쓰 그린은 젊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시대의 우리의 사명이 무엇인

지를 깨닫게 하였고, 많은 음악인들에게 큰 영향을 준 아티스트였다. 그의 부인인 멜러디 그

린은 그가 설립했던 '라스트 데이 미니스토리'를 더욱 확장시켜 수많은 선교사역자들을 길러

냈다.

1985년 워드레코드는 일반 팝회사인 A & M와 계약, Amy Grant의 앨범을 일반시장에 보

급했다. 그녀의 앨범 'Unguarded'가 85년 5월에 나오고 그 앨범에 수록된 'Find a way'가

빌보드 Top40에 진입하고 크리스쳔 가수로서는 처음으로 일반 pop챠트에 등장하게 되자 다

시 크로스오버 논쟁이 일기도 했다. 세상과 타협했다는 비판 즉 세속적 성공을 위해 영적인

내용을 의도적으로 줄였다는 비판이 가해지고, 한편 에미 그랜트의 옹호자들은 에미 그랜트

야말로 오랫동안 C.C.M아티스트들이 꿈꾸어왔던 일, 즉 일반팝 음악계에 크리스쳔 음악을

통해 진리를 전파함으로서 진정으로 복음이 필요한 자들에게 들려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고 그 의미를 강조했다. 1986년 에미 그랜트의 'Unguarded'는 백만장 이상이 팔려나가 플래

티넘 앨범을 수상했고 전국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다. 이 시기엔 Amy Grant뿐 아니라 80년

대를 이끌어가는 아트스트들이 성장해 와일라 파리스, 존 마이클 탈보트, 스티브 그린, 랜디

스톤힐, 데이빗 미스, 카맨, 돈 프란시스코, 필 케이기, 웨인 왓슨, 뉴 송, 챨리 피콕등이

C.C.M계의 선두주자로 알하고 있었고 다니엘 아모스 밴드, 레즈 밴드, 페트라, 화이트 하트,

T T S, 러스 태프 등도 크리스쳔 록을 성장시켜 나갔다. 스트라이퍼가 헤비메탈을 들고 크

리스쳔 음악을 시도하고 화이트 크로스, 샤유트 등 크리스쳔 메탈도 태동했다.

1980년대 중반부터 C.C.M은 일반 pop의 흐름과 거의 대등한 흐름을 이어갔다. 80년대 중반

스티븐 테일러가 뉴웨이브 스타일의 크리스쳔 뮤직을 선보인 이래로 C.C.M은 갖가지 다양

한 장르의 음악 스타일을 원용하기 시작했다. 크리스쳔 록, 크리스쳔 랩, 포크, 재즈, 에어로

빅 음악, 묵상을 위한 연주음악 등등 이젠 그 종류가 다양해져 분류조차 어렵게 되었다.

한편 마라나타 뮤직이 성장시켜온 컨템퍼러리한 찬양 등은 호산나 인테그리티뮤직의 프레이

즈 앤 워쉽 시리즈로 더욱 그 영역을 키워나가기 시작했으며 비니어드 교회의 워쉽송도 컨

템퍼러리 프레이즈 앤 워쉽 분야를 살찌웠다. 또 85년에는 C.C.M에서도 CD를 제작하기 시

작해 음질면에서도 일반음악과 대등한 입장에 서게 되었다. 또 일반 pop음악에 뮤직비디오

(MTV)가 크게 성장하면서 거기에 대한 대안으로 크리스쳔 MTV가 등장했다. 1986년에는

컨템퍼러리 크리스쳔 뮤직이 대학에서 정식으로 가르쳐지게 되었다. 세인트루이스 근처의

그린빌 칼리지는 C.C.M을 정규학과로 세워서 그 커리큘럼에 C.C.M의 여러 분야 - 스튜디

오 레코딩 테크닉, pop이론과 작곡코스, 실기코스, 무대효과, 프로그래밍, 프로모션, 업계활동

등을 포함시켰다. C.C.M의 역사가 30년을 넘어 이제 장년기에 접어드는 1990년대는 C.C.M

의 새로운 장을 여는 시대가 되었다. 8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크리스쳔 뮤직 비디오가 본격

적으로 제작되었으며 그런 뮤직 비디오가 방송될 수 있는 C.C.M전문 TV가 생겨났다.

C.C.M의 수준은 외적인 면에서 볼 때 이제 일반 팝음악계의 수준에 완전히 도달했으며 그

내용면에 있어서는 악마주의, 쾌락주의로 얼룩져 있는 일반 pop음악의 대안으로 복잡한 현

대 문화 속에서 효과적으로 진리를 전달할 수 있는 음악으로 사용되고 있다. C.C.M은 유럽

에도 들려지기 시작해 에미 그란트, 샌디 패티, 화이트 하트, 페트라 등은 유럽의 공연에서

성공적 결과를 낳기도 했고, 80년대 말부터 자유화의 물결이 일던 소련을 비롯한 동유럽에

도 C.C.M은 들어가게 되었다. 1989년 8월 발트해 공화국의 하나인 에스토니아 공화국의 탈

린에서 열린 에스토니아 89는 수많은 결신자를 배출했다. 소련의 공산화이래 처음으로 열린

C.C.M공연이었다. 1991년에는 유럽 각국의 크리스쳔 아티스트들이 스위스에 모여 유럽의

C.C.M을 모은 앨범 '첫 발자욱'을 냈다. 이들은 유럽 특유의 크리스쳔 음악을 발전시키기

위해 유럽에서의 C.C.M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로 결의했다. 한편, 한국을 비롯한 아시

아권에서도 C.C.M이 성장하기 시작했다. C.C.M의 본고장이라 할 수 있는 미국의 음악이,

아시아 각국의 찬양문화가 발전하면서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고 개방화되는 세계의 추세에

따라 나라간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C.C.M은 더욱 확산될 수 있었다. 1990년대는 C.C.M이

본격적으로 일반 팝음악계로 뛰어드는 시기가 되었다. 내용이 완전히 선교적 입장이 아니라

할 수 있지만 C.C.M의 아티스트로서는 처음으로 에미 그랜트가 1991년 팝계의 정상을 차지

했다. 이어서 가장 뛰어난 C.C.M 사역자중의 한 명인 마이클 W.스미스가 'Place in this

world'라는 확실한 복음 메시지가 담긴 노래로 빌보드 상위로 진입하게 되었다. 'Be Be and

Ce Ce Winans'는 리듬 앤 블루스 챠트 1위를 기록했다. Take 6도 그래미상에서 여러 부문

을 수상하는 등 C.C.M은 일반 팝계에서도 강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크리스쳔 음

악인들이 품어왔던 "일반 pop음악계에서의 복음사역을!" 이라는 슬로건이 실현되는 시기가

온 것이다. 마지막 때에 C.C.M이 일반 문화 속에 파고 들어가 선보다 악이 더욱 많은 일반

음악계를 바꾸고 순화시키고, 궁극적 목표인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파해 수많은 영혼을 구하

게 될런지 아니면 C.C.M이 일반 pop음악이 추구하는 인기와 상업주의에 물들어 제구실을

다하지 못하고 도태되고 말 것인지 1990년대에 본격적으로 전개될 C.C.M의 사역을 지켜보

아야 할 것이다.


4.3 C.C.M의 찬반양론


한 유명한 미국 목사가 새로운 음악 경향에 반대하는 10가지 이유를 다음과 같이 수집,

발표한 적이 있다.

① 너무 새로워서 모르는 외국어 같다.

② 옛 스타일에 비해 선율적이지 못하다.

③ 새로운 노래들이 너무 많아서 다 배울 수가 없다.

④ 새 음악들은 혼란스러워서 사람들로 하여금 난잡하고 고상하지 못한 행동을 하게 만든

다.

⑤ 영적인 가사보다 음악적인 기교에 치우쳐 있다.

⑥ 가사가 세속적이고 신성모독에 가까운 것도 있다.

⑦ 옛 성도들은 그런 노래 없이도 천당에 갔다.

⑧ 돈을 벌기 위해 하는 짓이다.

⑨ 그리스도인의 시간을 빼앗고 밖에 오래 머무르게 한다.

⑩ 갑자기 등장한 젊은 음악가들 중에는 음란하고 절제가 없는 이들도 있다.


위의 발표는 어느 면에선 동의할 수 있지만, 전적으로 옳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1. C.C.M사용("크리스쳔 록" 음악에 관한 사례를 통하여)을 찬성하는 견해를 들어보면,


1)청소년들의 감각에 맞다.

시대가 이렇게 변하였거늘 구태의연한 전통 음악에 묶여 있으므로 인하여 청소년들이 은혜

를 받지 못하고 찬송할 흥미를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크리스쳔 록 음악을 통

하여 잃어버린 찬송의 흥미를 되찾고 식어져 가는 청소년들의 신앙에 활기를 불어넣자는 것

이다.

2)사단의 음악이라는 것은 잘못된 오해이다.

록 음악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이들은 록 음악과 크리스쳔 록 음악을 분

리해 줄 것을 요구하며, 크리스쳔이 부르는 록 음악이 어떻게 사단 음악이 될 수 있는가 라

며 반문하고 있다.

3)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록 음악 자체가 선하고 악한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이 어떤 영에 이끌려 어떤 목적에 사용

하느냐에 따라 선하고 악한 것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4)새로운 음악의 등장은 항상 핍박과 고통을 받았다.

5)기존의 고정적인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현재 교회가 사용하고 있는 찬송 형태는 몇 백 년 지속해 왔으니 이제는 새로운 크리스쳔

록 음악의 형태로 바뀌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6)더욱 뜨거운 단결심과 사기 진작을 보여준다.

7)성경의 기록이 증거하고 있다.

"나팔 소리로 찬양하며 비파와 수금으로 찬양할지어다 소고 치며 춤추어 찬양하며 현악과

퉁소로 찬양할지어다 큰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하며 높은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할지어

다"(시 150:3-5)

이들이 애용하는 성경구절은 바로 시편 150편 3-5절의 내용이다. 시편 기자가 모든 악기를

동원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하고 있으므로 새 시대에 걸맞은 악기를 동원하고 있는 크리

스쳔 록 음악의 형태는 성경의 지지를 받고 있는 합법적인 방법이라는 것이다.


2. C.C.M사용("크리스쳔 록" 음악에 관한 사례를 통하여)을 반대하는 견해를 들어보면,


대부분이 순수 음악, 교회 음악, 신학자들이 반대하고 있으며, 현재 한국 교회에 찬성과

반대 논쟁이 크게 일고 있다. 우리는 언제나 양면성이 있음을 감안해야 한다.

1)세속 음악을 대표하는 형태이기 때문이다.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약 4:4)

지금의 크리스쳔 록 음악은 세속 음악의 대표격인 록 음악이 크리스쳔이라는 허울을 쓰고

교회에 침투한 세속 음악의 부분이기 때문이다. 이 음악의 특징은 세상과 벗되게 하여 쾌락

을 추구하며 현대 인본주의의 극치를 달리고 있는 실존주의 철학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

문에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는 독버섯과 같은 타락의 요소가 있다.

2)예배의 경건성을 깨뜨린다.

하나님의 교회는 거룩성과 경건성과 신비성과 은혜성의 네 가지 요소가 겸비된 것을 자랑으

로 삼는다.

악기의 종류를 두 가지로 나눈다면, 하나는 순음악기이며, 또 하나는 잡음악기이다. 순음악

기는 피아노라든지 바이올린 등의 건전한 악기를 의미하며, 잡음악기는 전기의 힘을 빌려서

큰 감동을 일으키며 빠른 템포를 보여주는 굉음, 증폭음악기이다.

이 잡음악기는 리듬이 강하고 비트가 강하여 춤을 수반하게 되며 템포가 아주 빠르다. 템포

가 빠른 것은 양면성이 있는데, 뜨겁게 찬송할 때에는 빠른 템포가 매우 유익한 것이지만,

세속적인 모습 일때에는 예배의 경건성을 무너뜨리는 독소가 있으므로 매우 조심스러운 것

이다.

3)사단의 도구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록 음악을 부르는 가수들 대부분이 기독교를 모독하고 있으며, 마약, 섹스, 폭력등을 동반하

고 있으므로 반기독교적, 비신앙적인 요소로 가득하다.

이러한 록 음악의 형태는 사단이 자기의 주무기로 세상을 미혹하는 것이지 하나님을 찬양하

는 것이 될 수 없다. 거룩한 하나님을 향한 성도들의 찬송에는 언제나 거룩성이 겸비하여야

한다.

4)윤리성이 파괴된다.

①긴 머리 ②불쾌감을 주는 복장 ③마약 ④폭력 ⑤광란의 연주 ⑥섹스 ⑦불건전한 사상

이와 같은 불경건한 록 음악이 교회로 침투하게 되면, 거룩한 윤리성을 생명으로 하는 교회

의 윤리성은 모래탑 위에 쌓은 누각처럼 한 순간에 무너지게 된다.

5)고통을 동반한다는 새로운 음악의 출현에 대한 반론

물론 새로운 사상의 출현은 언제나 저항과 고통을 수반하였음을 동서고금의 역사가 잘 증명

하고 있다. 타락하는 록 음악의 출현을 배척하는 것은 새로운 것의 출현에 따르는 당연한

귀결인 것으로 주장하는 것은 궤변(詭辯)에 불과한 것이다. 즉, '예수님도 유대인들에게 이단

의 괴수로 불리웠다'는 것을 내세우는데, 자기의 잘못으로 인하여 저항 받고 박해받는 이단

과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세상 죄를 지시고 박해받고 저항 받는 예수님의 박해를

동일시할 수 있는가?

6)사용자들의 비신앙적 배경의 문제점이 있다.

크리스쳔 록 음악을 주장하는 자들을 보면 상당히 현실주의자들이며 세속적인 요소가 많다.

분명히 비신앙적인 배경을 깔고 있는 자들로 볼 수밖에 없다.

7)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일이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술집의 타락한 장소에서 사용하는 록 음악의 형태가 그 모습 그대로 경건한 예배 장소에서

사용되는데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지 않는다고 주장한다면 논리에 맞는 것인가? 록 음악의

형태로 연주하는 찬송은 하나님께서 받으실 수 없는 것임이 분명할진대 크리스쳔 록 음악의

유입이 찬성받을 수 없는 것이다.


위의 찬반양론은 크리스쳔 록 음악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구구한 의견이다. 비단, 크리스

쳔 록 음악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C.C.M에 대한 평가 역시 이와 비슷할 것으로 생각

된다. 

또 다른 C.C.M 음악에 대한 찬반양론의 평가를 다루어 보겠다.

그리스도인들이 볼 때, C.C.M 음악인은 일반 음악인 못지 않게 우상, 카리스마적, 역할

모델, 본보기, 교회음악으로서는 절실하지 않은 음악을 유행시키는 사람들이다. 비그리스도

인들에게는 그들의 노래 가사와 생활방식이 생활에 변화를 주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복음

성가와 마찬가지로 대중음악이라는 큰 직물에 하나의 도덕적 주름을 잡아주는 정도로만 머

물기도 한다. 음악은 여전히 음악일뿐이다.

C.C.M을 듣는 많은 기독 청소년은 하나 또는 그 이상의 록 스타일 음악에 중점을 두고 대

부분의 팝음악을 듣고 있다. 그들이 관심을 두는 부분이 있다면 대부분 음악보다는 노래 가

사이다. 그들은 음악만 즐기고 가사에는 무관심하든지, 아니면 노랫말이 좋은 음악을 찾든지

둘 중 하나이다.

재즈연주가를 포함하여 일부 C.C.M음악인들은 재즈 클럽, 블루스 클럽 그리고 그 외 '세속

적'인 장소에서 연주하고, 특별히 기독교적인 메시지가 없는 노래를 만들거나 이미 확고하게

자리잡은 세속음악, 발라드, 서정시를 연주하여 '세속적인 일을 한다'고 비판받고 있다. 그러

나 이러한 비판은 전적으로 공평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성서적인 근거도 없다. 이것은 옛날

의 영적․세속적이라는 진부한 이원론이 바람직하지 못하게 계속되어 온 결과이다. C.C.M

을 악인이 '세속적인 일을 하는 것'을 지지해 주는 이유로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째, 하나님, 그리스도 또는 구원이 건전한 가사 내용에 특별히 언급되지 않더라도 모든 진

리는 하나님의 진리이다. 기독 음악인의 사랑, 정의, 우정, 가족, 퍼레이드, 고통, 상심, 학대,

장난, 아이들, 게임, 형제 자매의 사랑 등 어떤 상태에 관한 노래를 하더라도 분명하게 기독

교적인 노래를 부를 때와 같은 양심과 관심을 가지고 부른다면 아무 상관없다. C.C.M음악

인들은 음악 만들기가 끝났을 때 자신이 행한 직접적인 간증의 종류나 내용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우리 모두가 그런 것과 마찬가지로-알고 있다. 또한 예술적 탁월성 그 자체가

간증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둘째, 많은 C.C.M음악인은 자신이 '기독교적'인 상황에서 제한적인 연주를 하는 한, C.C.M

은 비그리스도인들에게 다가가는 대신, C.C.M을 영적인 배경음악 정도로밖에-그들의 하루

를 장식하는 거룩한 장식품-생각하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에게만 반복할 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음악인들은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을 목표대상으로 해

서 훌륭하고 깨끗하며 도덕적이고 계도적이며 복음에 찬 메시지를 가지고 그들에게 직접 다

가간다. 이것은 매우 좋은 일이다.

그러나 세속적인 일을 기독교적으로 하는 것과, 세속화되는 것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

다. 우리는 이미 C.C.M 음악인들이 문지기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교묘하게 세속화되는 정도

와 날조, 어긋남, 명백한 상업주의가 어떻게 그들의 세계관을 희석시키는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최근 일부 C.C.M그룹들은 록 음악의 한 장르인 멀터너티브를 접목하면서

크리스쳔 청소년들 사이에서 일반 가수들 못지 않은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하지만

그 인기가 곧장 C.C.M의 정체성인 '동시대성을 추구하는 기독음악'을 증명해 주는 지표가

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더 나아가 C.C.M음악인들이 비기독 음악인들의 재능과 기술

에 대한 존경심을 그들의 작업 내용과 혼동할 수 있다는 문제점도 있다.

C.C.M은 다원론적 음악문화의 정신을 갖고 있다. 게다가 교회와 일반 대중음악 사이의

관계를 완화시킨다. 음악적으로 C.C.M은 단순한 민속음악에서 펑크 록, 랩, 신세대 음악에

이르는 모든 대중적인 스타일을 받아들인다. C.C.M은 특정 종류의 재즈를 사용하고 때로는

세미클래식과 모조 클래식 스타일을 사용하기도 한다. 음악적으로 말하자면 C.C.M은 대중

문화의 모든 것을 요약해 놓은 것이다.

가사적인 면에서도 C.C.M은 대중문화의 모든 것을 요약해 놓았다. C.C.M노랫말의 전반적인

시적 또는 설화적 스타일이 세속음악의 가사와 유사하기는 하지만, C.C.M의 기본내용은 반

듯하고 깨끗하고 영적이고 도덕적이고 도움을 주는 희망적이고 대체로 속죄적이며 종종 항

의적이기도 하다. 이러한 메시지는 음악의 질 또는 가사의 성서적 치밀성과는 상관없이 전

달된다.

C.C.M의 일반적인 물리적, 제스추어적, 대중매체적 성분 역시 세속음악에서 그 단서를 찾을

수 있다. 거의 모든 사람은 무엇이든 조금씩은 갖고 있다. 세속적인 선택이 무엇이든 그에

상응하는 기독교적 선택, 즉 거대한 제작에서부터 조용하고 친밀하고 깊은 개인적 봉헌에

이르기까지 조금씩은 다 가지고 있는 것이다.

비록 C.C.M의 음악적 내용이 성적이고 독설적이고 폭력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세속음악

의 가사와 유사하다 하더라도 C.C.M이 그런 내용을 기피한다는 사실 자체가, 끊임없이

C.C.M을 흠잡는 사람에게는 하나의 강력한 간증이 된다.

C.C.M은 청소년에게 세속음악에 대한 확실하고 유익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다시 말해

서 C.C.M은 투쟁하는 동시에 협력한다는 말이다. 세속적 대중음악이 어떤 스타일로 '거기

에' 있다 해도 C.C.M은 똑같은 음악적인 내용으로 대응한다. 어떤 세속음악인의 스타일이

아무리 모방하기 어려운 것이라 해도 C.C.M에는 많은 젊은 그리스도인이 도전할 만한 다양

성과 창의성이 항상 풍부하다. 그러는 가운데 C.C.M은 정말로 재능 있는 스타들이 어떤 희

생을 감수하고라도 자신의 특성을 고수하려고 애쓰는 만큼 청소년에게 강력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C.C.M에 관한 찬반양론은 앞으로도 계속될 조짐을 보인다.




5. 찬양의 중요성과 예배속의 역할


5.1 예배의 정의


'예배(Worship)'란 하나님과 그의 백성간의 만남(meeting between God and His people)에

서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에게 자신을 나타내시는 것이며 그의 백성들은 찬양과 감사로 이에

응답하는 것이다.

'예배'란 받으시기에 합당하다고 확실히 믿어지는 하나님께 기도와 존귀와 찬송과 사랑을 돌

리는 인간의 방편이다.

그러므로 예배란 "최상의 존재에게 존경, 경의, 찬양, 영광을 드리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다. 또 예배란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는 행위이며 인간의 삶의 근거와 존재 기반이 하나

님께 있음을 시인하는 행위이다. 나아가 예배란 창조주와 구속주이신 하나님께 찬양하고 경

배하며 감사드리는 행위로써 여기에서 말하는 창조주란 우주 만물을 통제하는 힘의 원천으

로서 자연의 주를 찬양하는 것이고, 구속주란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선민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해 주시는 분임을 다시 한 번 기억하고 역사를 주관하시는 역사의 주를 말한다.


5.2 예배에 있어서 찬양의 역할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이 바로 하나님을 찬송케 하는데 있다고 이사야 선지자

는 말하고 있다. 이것은 절대자의 이기적인 마음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피조물의 찬양을

통하여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이 관계는 영원한 생명의 관계이다.

가치를 두는 것이면 무엇이나 무의식적으로 찬양하는 것이 뿌리깊은 인간의 본성이다. 우

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왔을 때 그의 위엄 앞에서 그를 바라보고 찬양을 드리는 것은 극히

당연한 일이다. 우리 속에 있는 것들로 그 하나님과 하나님에 관한 것들을 찬양하도록 하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다. 시 22:3 은 하나님께서 바로 찬양 안에 거하신다고 말씀하

고 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기를 원한다면 반드시 찬양을 통해서 가야한다.

또한 우리가 찬양으로 하나님의 임재하심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말을 들

으실 뿐 아니라 동시에 우리에게 말씀하실 수 있도록 대화의 채널을 열어놓는 것이 된다.

예배에 있어서의 찬양은 설교 중심에서 나오는 경직되고 권위적인 분위기를 해소하는 무

기인 동시에 전달된 말씀의 감동을 배가시키며 설교자가 못 다한 부분을 보충한다. 찬양은

성도들을 예배에 동참시키는 힘이 있다. 교인들은 찬양을 통하여 능동적으로 예배에 참여,

마음을 열고 축제적 분위기의 발판으로 마련하게 된다. 권위주의와 엘리트 의식을 버리고

이를 통해 목회자와 성도가 한 몸이 되어 영감이 넘치는 예배를 드리고 교회의 분위기도 아

름답게 바뀌게 된다. 예배 안에 찬양이 활성화되면 은총에 대한 응답이라는 관점에서 새롭

게 드릴 수 있다. 설교를 들으러 가는 것이 아니라 말씀에 대하여 응답하는 감사와 감격의

마음으로 찾아가는 것이 예배의 자리라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찬양은 이러한 응답이라는

관점을 가장 잘 설명해 주는 예배요소이다. 찬양을 통해 인간은 하나님께 응답한다.


6. 결 론


크리스쳔 음악의 새로움이란 본질을 파고 들어가는 새로움이다. 본질이란 하나님을 말한

다. 하나님 나라와 생명이 우주의 본질이다. 예수 그리스도로 거듭난 사람은 이 본질이 무엇

인가를 알고 그 본질에 가까이 가고자 한다. 그러나 세상의 음악은 본질로부터 점점 멀어지

는 새로움을 추구하고 있다. 오히려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이 새롭고, 참신하고, 혁신

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아무리 새로워도 그것은 죽음의 방향인 것이다. 생명과 점점

멀어질 뿐이다. 크리스쳔의 노래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이다. 우주의 근본 생명에 접하는

음악이다. 그러므로 크리스쳔은 결국 살게 되어 있는 것이다.

한국교회의 예배 행위는 말씀 중심이었다. 그래서 예배시간의 대부분이 설교로 채워졌다.

은혜의 공급원도 설교자였다. 찬양은 그저 예배를 돕는 행위에 불과했다. 그러나, 피조물인

인간이 하나님을 믿고 경배하며 그를 섬기는 것이 예배이고, 하나님을 높여드리는 총체적인

행위가 찬양이라면 예배와 찬양은 본질적으로 동일한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찬양

은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로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인 것이다. 예배회복의 지름길

인 찬양이 성도들의 당연한 의무라면, 찬양이 예배를 돕는 것이 아니라 예배의 중심이 되는

것이다. 찬양의 시작이 곧 예배의 시작이고, 삶이 곧 찬양인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음악을 통하여 그분을 찬양할 때 복음전도도 이룰 수 있다. 그러나 주

님의 음악이 전도를 위한 목적으로만 연주되고 세상을 향하여 호소할 때, 하나님을 향하여

찬양한다는 찬양의 본질이 약화되는 것이다.

오직 주님을 향한 기도와 주님을 향한 찬양만이 하나님께서 나와 동행해 주시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이다.

시편 92편 1절에는 '지존자여 여호와께 감사하며 주의 이름을 찬양하는 것이 좋으니이다'라

고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께 음악으로 찬양 드리는 것은 좋은 일인데 그 이유는 찬양은 하

나님께 속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다(시편 34:8). 또한 하나님께

찬양으로 영광을 돌린다는 것 역시 선한 일인데, 그 결과 크리스쳔에게 기쁨이 있게 되고

마음도 안정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장 실질적인 면에서 좋은 점은 우선적으로 주님만을

향하여 찬양으로 영광을 돌릴 때에 다른 사람들까지도 우리와 같은 기쁨을 느끼게 만들고

안정되게 해준다는 사실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는 결과를 낳게 된다

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