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의 은혜를 경험하라 (롬 6:1-1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롬 6:4).
십자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흘려 죽으신 곳입니다. 그 후로 십자가는 기독교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십자가를 우상화하여 자신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의미는 그 곳에서 피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능력인 것입니다. 십자가의 메시지는 영혼을 구원하는 가장 강력한 하나님의 능력이 됩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롬 1:16) 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했고, 모든 영혼이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믿음으로 복음을 선포하는 삶을 살아갔습니다.
오늘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마음을 새롭게 하기를 원합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믿는 성도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생명의 삶을 살아가며 믿음의 삶을 살아갑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시는 십자가의 깊은 은혜를 함께 나누기를 원합니다.
첫째, 십자가의 은혜는 우리의 옛 사람을 장사지내게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 (롬 6:4).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새로운 생명의 삶을 살아갑니다. 새로운 생명의 삶을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옛 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장사지내게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침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롬 6:3) 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영접할 때에 성령으로 거듭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새로운 생명이 되어 주시는 것입니다. 새로운 생명을 위해서는 옛 사람이 죽어야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의 옛 사람이 죽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롬 6;6).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옛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옛 사람이 있었고, 지금은 새 사람으로 살아갑니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은 옛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옛 사람의 특징은 아담의 혈통으로 죄인입니다.
옛 사람의 특징에 대하여 에베소서 2장은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엡 2: 1-3). 우리가 십자가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장사된 옛 사람의 특징은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인 사탄을 따르는 자였습니다. 옛 사람의 주인은 사탄인 것입니다. 그리고, 육체의 욕심을 따르는 자였습니다. 그러한 옛 사람은 본질상 진노의 자녀로서 살아갔던 것입니다. 옛 사람에게는 아무런 소망이 없고 오직 하나님의 진노가 가득했습니다. 로마서 6장 6절은 옛 사람은 죄에게 종노릇 하였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옛 사람은 새롭게 할 수가 없습니다. 옛 사람은 이미 죄의 종으로서 사망의 길을 걸어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으심과 같이 우리의 옛 사람이 십자가에서 죽고 장사되게 하셨습니다. 죄의 종으로 살았던 옛 사람이 죽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더 이상 죄의 종이 되지 아니합니다. 그러므로, 로마서 기자는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롬 6:2)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죄에 대하여 죽었습니다. 우리의 옛 사람이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옛 사람의 죽음은 우리가 더 이상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십자가의 은혜는 우리의 옛 사람이 죽고 장사되게 한 것입니다. 옛 사람의 죽음은 사망의 권세에서 자유함을 얻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옛 사람과 새 사람의 변화를 인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유명한 어거스틴이 회심한 후의 일화입니다. 어느 날 길을 가다가 옛날에 방탕하게 사귀던 여인을 만나게 됩니다. 그때 어거스틴은 그 여인을 모른 척하고 지나가려고 하는데 그 여자가 따라오게 됩니다. “어거스틴, 나예요. 나를 모르시나요? 왜 모른 척하고 지나가는 건가요?” 그러자, 어거스틴은 돌아서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너는 너지만, 나는 내가 아니오 당신은 당신이지만, 나는 더 이상 내가 아니란 말이오. 난 새로운 사람으로 변했소. 그렇기 때문에 당신이 알던 내가 아니란 말입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옛 사람이 죽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혹시 우리는 아직까지 옛 사람의 가치와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지요? 아니면 새로운 피조물로서 하나님 나라의 가치와 믿음으로 살아가는지요?
우리는 날마다 주님 안에서 변화된 새 사람의 정체성을 인식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아담으로부터 받은 옛사람이 죽었음을 믿음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옛사람이 죽었으니 옛 사람이 즐겨했던 행실과 습관도 같이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 십자가의 은혜는 새생명을 얻게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롬 6:4).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지금도 살아계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거하십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비밀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에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롬 6:5).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영접하여 구원을 받으면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이는 옛사람이 죽고 성령으로 새생명을 얻을 때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생명을 주심으로 우리가 새생명으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함께 죽고, 함께 장사되었다고, 그리스도의 부활하심과 같이 함께 부활의 생명으로 새생명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기자는 우리가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새생명을 얻은 자는 이제 새 생명으로 살아가는 것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롬 6:4).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는 것은 물침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장사되어 새생명을 얻어 거듭나는 하나님의 역사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는 의미는 영생을 얻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그리스도의 말씀과 능력으로 살아가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새 사람은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살아가지 않고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따라 살아가게 됩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우리의 육체를 통하여 사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산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움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니라.” (고후 4;11). 예수의 생명이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생명으로 오셔서 우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살아가는 비유는 요한복음 15장을 통하여 가르치고 있습니다. “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요 15:5).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생명이시며 근원이 되십니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생명을 의존하여 열매를 맺습니다. 가지는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는다고 하셨습니다. 만일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지 않는다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하신 것입니다. 가지가 나무로부터 수분과 양분을 공급받아 가지로 존재하게 됩니다. 이와같이 우리의 존재는 그리스도안에서 가지와 같습니다. 주님을 철저하게 의존해야 합니다. 새생명의 삶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때 우리는 옛 사람의 가치와 습관을 포기해야 합니다. 이미 옛사람은 장사지내었기에 더 이상 우리의 삶에서도 옛 사람의 옷도 함께 장사지내야 합니다. 대신 우리는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살아가는 새 사람을 입어야 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기자는 새 사람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거하노니 이제부터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너희는 행하지 말라 저희 총명이 어두워지고 저희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저희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저희가 감각 없는 자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이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과연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찐대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엡 4:17-24).
사도 바울은 옛 사람의 모습은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영적인 감각이 없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였다고 했습니다. 이제 새 사람을 입은 우리는 하나님과 같이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고 했습니다. 새 생명을 얻어 새 사람을 얻은 우리는 이제 의와 진리의 사람으로 새로운 여정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새로운 여정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주님과 동행하며 그 분의 가르침과 인도하심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그리스도가 사시는 삶을 고백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 2:20). 사도 바울은 자신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고, 이제는 자신이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임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이제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이라 고백했습니다. 사도 바울과 같이 우리도 믿음의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안에 사시는 분은 자신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입니다.
새 생명의 삶이 누리는 축복은 무엇인가요? 새 생명의 은혜는 영원한 생명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연합하여 영생을 얻었고 이생을 떠나도 주님과 함께 천국에서 영원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 (벧전 5:10).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안에 있는 영원한 소망입니다. 새 생명으로 살아가는 것은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삶이 됩니다.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리고 즐거워하느니라.” (롬 5:2). 우리는 믿음으로 은혜로 들어가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안에 살아가는 삶은 기도 응답을 얻으며 날마다 부어주시는 성령의 충만함을 누리는 영적인 삶을 말하고 있습니다. 은혜의 삶은 세상이 보지 못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며 즐거워하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옛 사람은 영적인 어두움에서 방황했지만, 새 사람은 주님안에서 진리대로 살아가는 승리의 삶이 되는 것입니다.
셋째, 십자가의 은혜는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게 합니다.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롬 6: 13).
새생명 얻은 그리스도인의 삶은 자신을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몸을 죄가 왕노릇 하도록 몸의 사욕을 따를 수도 있고, 하나님이 왕이 되시도록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릴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자신을 죄의 종이나 순종의 종으로 선택하여 드릴 수 있다고 했습니다.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롬 6; 16). 우리가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본래는 죄의 종이었지만 이제는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도 죄의 종으로 살아가다가 이제는 새로운 주인인 그리스도께 자신을 드리며 의의 종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어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 (롬 6:22). 우리는 죄에게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갑니다.
종은 헬라어로 둘로스입니다. 노예가 되는 것은 태어나면서 종이 되기도 하고, 전쟁으로, 빛 또는 납치 됨으로, 죄를 지음으로 노예가 되기도 했습니다. 노예에게는 어떤 경우에도 법적인 권리가 주어지지 않았고, 노예선이나 광산, 도시에서 일하며 힘든 노동을 하였습니다. 로마 시대에는 로마 인구의 3분의 1은 자유인이었지만, 3분의 2는 노예였습니다. 당시의 노예는 주인의 뜻에는 절대 복종해야 했습니다. 당시의 노예들은 자신들의 운명이 주인의 손에 달려 있었습니다. AD 61 년에 로마시 행정 장관인 세쿤두스라는 사람이 침실에서 노예에 의하여 살해 되자, 그 벌로 그 집에 있던 400 명 이상의 노예들이 처형되는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와같이 종은 주인에 의하여 운명이 결정됩니다. 우리가 누구의 종으로 살아가느냐에 따라서 사망에 이르거나, 영생에 이르는 갈림길이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우리가 누구의 종이 되느냐를 묻습니다. 전에는 죄의 노예로서 살았기에 죄에 의하여 사망의 운명으로 살았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종이 되어 순종으로 거룩함을 추구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누구의 종이 되어 살아갈지를 선택해야 합니다. 죄의 종이나 하나님의 종인 것입니다. 둘 중에 중간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으로 살아가는 원리는 무엇인가요? 그것은 바로 자신을 하나님께 온전히 드리는 것입니다.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롬 6: 13). 우리는 자신을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의 병기로 쓰임 받아야 합니다. 자신의 지체를 하나님께 드리는 삶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자신을 드리는 것입니다. 주님의 사역에 동참하여 시간과 물질을 드리는 것이며, 하나님이 주신 은사대로 사역에 봉사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는 “각각 은사를 받은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벧전 4: 10) 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자신의 삶을 드려 봉사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청지기는 자신의 의지나 힘이 아닌 하나님의 공급하심으로 힘으로 봉사하라고 했습니다.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느니라 아멘.” (벧전 4:11). 우리가 말을 할 때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함으로 은혜를 끼치고, 우리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여 자신의 의를 나타내지 말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자신을 희생하시고 온전한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자신을 희생 제물로 드리신 주님이셨습니다. 자신의 몸을 구약 시대의 양이 제물로 희생되었듯이 우리를 위하여 대신 희생하셨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이 자신을 희생하신 곳입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이며, 하나님의 희생이며,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자신을 드리며 십자가의 은혜가 마음에 흘러 넘치도록 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롬 12:1) 라고 권면했듯이, 우리도 주님과 같이 자신의 몸을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는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는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날마다 경험합니다. 우리가 날마다 주님을 만날 때마다 십자가의 은혜가 임하여 죄에 대하여 죽은 자신을 발견하며, 주님안에서 새로운 생명으로 살아가는 믿음의 삶을 고백되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 안에서 자신을 산 제물로 드려 하나님의 영광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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