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예수 그리스도

[스크랩] 철저한 십자가

하나님아들 2019. 2. 4. 15:39

 철저한 십자가


 

 

십자가는 자기의 적을 패배시키고 자신의 의지를 적에게 강요함으로 써 승리한다. 십자가는 언제나 지배할 뿐이다. 평화를 위해 타협하거나 거래하거나 양보하거나 굴복하는 것을 모른다.

옛생명을 끝낸다.


성소에서 조차 재미있게 즐기려는 교인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십자가의 엄격함을 완화시키려고 할 것이다. 

우리는 십자가에 대해 결단해야 한다. 다른 하나는 십자가 위에서 죽는 것이다.

참고 견딜 것이고, 십자가 너머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의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을 것이다. 

우리의 삶의 방식 전부가 끝없는 생명의 능력안에서 깨어지고 다시 세워지도록 우리의 삶을 그분께 넘겨 드려야 한다. 

극도의 고통을 줄것이다. 우리를 하나님께서는 아끼지 않을것이고 명성도 아끼지 않고 철저히 굴복시키실 것이다. 

이기적인 삶을 끝내실 것이다.


생명의 충만함 가운데서 다시 일어나 선행으로 가득한 전혀 새롭고 충만함 가운데서 다시 일어나 선행으로 가득한 전혀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만들어갈수 있을 것이다.



2.우리를 완전케 하는 십자가의 보혈을 의지하라. 

그분의 고난은 무한성과 전능성과 완전성이 있다.

그분의 모든 능력이 인간을 위한 속죄에 포함되어 있다.예수그리스도의 보혈로 이룬 속죄는 완전하다.

우리가 죄를 자백하는것. 그 속죄에 자신을 온전히 맡기는 영혼은 완전히 바뀌어진다.

우리는 온 힘을 다해 기뻐하며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공의는 하나님꼐 돌아온 죄인의 편이다.



3.십자가 넘어 부활의 능력을 바라보라.

만일 교회가 십자가를 가장 강조한다면 우울한 비관주의와 열매없는 회환만 있을 뿐이다. 

우리의 칭의를 위해 다시 사셨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생명과 능력을 드러낸다면, 잃어버린 영광이 회복될 것이다.

4. 십자가는 우리를 더 깊은 삶으로 인도한다.

그리스도를 자기 삶의 최고 통치자로 모실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는 자기가 버린것보다 얻은것에 대해 뛸듯이 기뻐할 것이다.




2. 철저한 십자가 그것을 위한 대가



5. 고독했던 신앙의 위인들

역사상 위대한 사람들은 대부분 외로웠다. 고독은 성도가 성도로 살아가기 위해 지불해야 할 한가지 대가인것이다.

강요된 고독을 견뎌내야 한다.

예쑤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향해 고독한 발걸음을 옮기실때 그분의 주변을 따르던 무수한 군중은 그분의 고독을 조금도 덜어드리지 못했다.

십자가를 다른 사람들과 함께 공동으로 지고 갈수 없다는 진리를 항상 명심해라. 당신의 십자가는 오직 당신의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외로운 이유는 경건하지 못한 세상에서 하나님과 동행하기 때문이다.

선한 그리스도인들과의 교제까지 도 포기해야 한다.

이해해줄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갈망한다. 

깊은 영적교제를 나눌사람을 찾기는 어렵다. 

마음으로 하는 여행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순례자이다. 여행은 발로가 아니라 마음이다.


진정으로 신령한 사람에게는 보통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그는 자기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다른분의 뜻을 이루기 위해 산다. 그는 주님꼐 모든것을 바치라고 사람들을 설득하며 자기의 몫을 구하지 않는다. 그는 자기가 놏아지는 것을 기뻐하지 않고 그의 구주께서 사람들에게 영광 받으시는 것을 기뻐한다. 그는 주님이 높아지시고 자기가 낮아지는 것을 기뻐한다. 그는 자신의 최고 관심사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원화지만 대화 상대를 찾는 것이 무척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신앙에 대해 시끄럽게 이런저런 얘기를 나눌때 혼자 침묵하며 자기의 생각에 빠지게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가 진지하고 재미없는 사람이라고 여기서 피하게 된다.점점 사이가 벌어지게 된다. 

그런 고독 떄문에 그는 다시 하나님을 의지한다. 

우리가 그분 안에서 인생의 최고선을 얻도록 하기 위해 그분이 우리에게 지혜와 의와 거룩함과 구속이 되셨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6. 주님은 완전한 헌신을 원하신다.

그분께 지적으로 종속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적으로 그리스도께 종속된다는 것은 그분이 누구이신지를 성경에 근거하여 정확히 안다는 것을 의미한다. 느낌과 경험의 근간이 아니다.



<의지를 거룩하게 해야 한다>

의지적으로 종속되어야 한다. 감정에 의존하여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잘사는것이 아니며 오래 지속할 수도 없다.

우리를 천국으로 데려가시기 전에 그분은 우리를 깨긋게 하시고 연단하시고 불가운데로 지나가게 하시고 강하게 하시고 감정과 신앙은 다른것이다. 라고 가르쳐 주신다.

그들의 의지를 거룩하게 해야 한다. 

연합하게 하시는데 그 안에서 강하게 된다.

사랑하기 위해 미워하셔야 한다면. 하신다. 악을 미워하라.

그리스도의 교회는 성령을 받아 들여야 하고 또 성령께 어긋나는 모든것을 내보내야 한다.

미워해야 할 것을 미워해야 진정한 사랑이 가능하다. 죄를 미워하지 않으면 의를 사랑할 수 없다.




7. 부분이 아닌 전부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

그분이 실패하실 것에 대비하여 키에서 우리 손을 떼지 못하고 있다. 

많이 말하지만 우리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으려고 우린 계속 노력한다. 매우 작은 부분일지라고 그것은 우리의 영적 문제와 패배의 원인이 될수 있다.

현재 우리는 한번에 한 부분만을 죽이기 원하기 때문에 나머지 작은 부분들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는다.

자기기만이 자리잡고 있다. 그런 내면적 모순 때문에 그들의 의지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드리는 단계까지 나아가지 못한다.

중간쯤에서 멈추어버린 평범한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벗어날 것이다. 우리의 유익을 포기할때 비로소 우리 안에서는 그분의 최고의 뜻을 찾겠다는 욕구가 솟아오를 것이다.




8.십자가는 우리의 삶을 철저히 간섭한다.

그는 자기 삶에 대한 통제권을 포기했다. 십자가는 우리의 삶을 철저히 간섭하는것이다.

그것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자리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우리에게 선택권을 주셨고 그리스도인의 삶이 자발적 선택의 대상이 되도록 만드셨다.

우리는 날마다 죽어야 한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난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굴복하고 하나님께서 그분의 뜻을 이루셔야 한다. 

영광을 받으시고 우리가 영원한 복락을 누리게 된다.

그리스도인은 하늘의 사람으로 이땅에서 일시적으로 살아간다. 그는 육체의 옷을 입고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야 하지만 영적으로는 타락한 인류와 구별된다. 

죽는 법을 배운 사람에게는 그분과 함께 다시 복된 부활이 즉시 허락된다.

성령이 거하시는 성소로 변한 영혼 안에서 솟아나는 거룩한 기쁨의 노래를 잠재울 수 없다.




9. 징계를 당할 것인가. 십자가를 질 것인가?

징계는 하나님이 행하시는 것이고 십자가를 지는것은 그리스도인이 마땅히 해야할 의무이다.

그리스도인의 십자가는 그가 그리스도에게 온전히 순종하여 따를떄 그에게 닥치는 고난을 의미한다.

십자가가 순종의 길에서 발견된다면 징계는 불순종의 길에서 발견된다.

고난이 닥칠때 우리는 그것이 내가 선택한 것인지 아니면 내 의지와 상관없이 이ㅗ부로부터 닥친것인지를구별하면된다.

복된 고난이 우리의 자발적인 선택에 의한 것임을 말해준다.

근거가 있는 비난이라면 우리의 고난은 복된것이다.

징계의 고통해 대해서는 기쁨이 아닌회개이다.

십자가는 오직 의의 길에서만 발견된다. 그리스도를 위해서 고난 당할때 우리는 십자가의 고통을 느끼는것이다.


<철저한 십자가의 목적>

10. 예수님이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다.

사람들은 자기 스스로를 정죄하는데 그것은 의로운 분이 오시면 자기에게 선고가 내려져야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분은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오셨다.

그리스도는 정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교회하고 회복하고 거듭나게 하기 위해 오셨다.

그분에게 얼마나 많은 양식이 있는지 나는 잘 기억한다.라고 말한 탕자처럼 결단하고 행동해야 한다.

탕자는 아버지에게 돌아가겠다고 생각하고 일어나 아버지께돌아갔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구원하기 위해 그분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다.



11. 주님을 따르려거든 자기 십자가를 지라.

어둠 가운데서 죄를 지고 아버지께 버림받는 고통은 거룩한 희생을 위해 이땅에 오신 그분만이 감당할 수 있는 고통이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것이니라.

신자 개인의모든 십자가 체험들은 그가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은 사건에 근거하여 일어나는 것이다.

날마다 순종의 좁은 길에서 발견될수 있는 자기 부정이나 회개나 겸손이나 겸허한 희생을 자발적으로 받아들이는것이다.



12. 새십자가를 버리고 옛 십자가를 지라.

세상과 관계를 맺으려고 하지 않았따. 교만한 육신은 끝장냈다. 효력을 발휘하게 했다.

더 높은 수중에 올랐다 할지라도 강조점은 여전히 육신적 즐거움에 놓여있다.

죄인을 죽이지 않고 다만 다른 방향으로 이끌려 고한다. 

죄인의 자존심을 세워주는 교육

옜날의 십자가는 죽음의 상징이었다. 옛십자가는 타협을 몰랐고 아무것도 완화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아끼지 않았ㄸ.

하나님의 구원의 방법은 사람을 죽이고 그 다음에 새로운 생명으로 다시 살리는 것이다. 고치는게 아니다.


복음을 전하는 우리는 우리가 그리스도와 세상 사이의 관게를 호의적인 관계로 만드는 홍보대사 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대기업 언론 스포츠계 또는 교육계가 그리스도에게 호삼을 갖도록 만들라는 사명이 우리에게 주어졌다고 착각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외교관이 아니라 선지자이며 우리의 메시지는 타협안이 아니라 최후통첩이다.

옛생명을 개선한 생명이 아니라 새생명이다.

간단하다. 그가 회개하고 믿으면된다. 죄를 버려야 하고 자기 자신을 버려야 한다.

부활의 주님을 오직 믿음의 눈으로 바라 보아야 한다. 깨끗게 함과 능력이 흘러나올 것이다.



13. 성찬은 그리스도를 기념한다.


1)하나님의 뜻을 위한 헌신:예수님

2)사람들로부터의 분리

3)사람들과하나님께 거부당하심

우리 대신 죄인으로 간주되셨다.

4)우리와 하나 되어주심

그분의 의를 우리에게 주셨다.

5)하나님의 보좌에서 받아들여지심

<철저한 십자가 그것의 고통>



14 십자가는 화평이 아니라 검이다.

그리스도의 추종자라고 말하는 많은 사이좋게 지내기 위해 신앙적인 것들을 쉽게 양보해 버리기 때문이다.

최우선을 요구하시는 예수님

다른 더 높은 차원의 충성심을 가져야 한다. 그리스도는 최우선권을 요구하신다.

육신은 영을위해 희생되어야 하고 하늘의 것이 이따의 것보다 앞서야 한다.

내적 조명이 있어야 하고 그 조명을 받아들일수 있는 진정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



15그리스도인은 고난을 피할수없다.

그리스도께서도 고난을 당하셨고 고난을 통해 순종을 배우셨다.

성화된 슬픔: 고난이 임할떄우리는 지혜롭게 대처하여 그로부터 유익을 얻어야 한다.

자발적으로 어두운 지하로 내려가 보물을 캐려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을 받고 영적병사가 되어 죽기까지 섬기겠다고 자원하여 마귀에게 대항하며 지옥의 세력을 분노하게 만드는 삶을 사는 사람들을 위해 준비되어 있다.



16. 십자가는 십자가로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에게 화가 있을것이다. 편안한 길을 거부하라.

십자가의 길은 영적늘력과 결실로 가는 매우 고통스런 길이다.

십자가를 피하려고 애쓰지 말라. 편안한 길을 거부하라. 능력도 열매도 없이 교인들의 등을 두드려주어 편히 잠들게 만드는 교회에 안주하지 말라. 십자가에 물감을 칠하지 말고 꽃으로 장식하지 말라. 십자가를 십자가로 받아 들여라. 그러면 그것이 죽음과 생명에 이르는 힘든 길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십자가가 당신을 완전히 죽이게 하라. 하나님을 찾으라. 거룩함을 추구하고 당신이 당하게 될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십자가에 붙들린자들은 한쪽 방향밖에 볼수 없다.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성령님이 계씬 방향이요 교회를 세우는 방향이요 성화의 방향이요 성령충만한 삶의 방향이다.

영영 작별인사를 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으로서 편하게 살겠따고 발버둥치는 경멸스런 짓을 우리가 중단해라. 

또한 자신의 계획도 없다. 

그리스도와 복음주의 기독교의 이름으로 이미 끝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대한 미련이 있다고?

그분의 계획을 당신에게 알려주실 것이다. 

회의 시간을 줄이고 하나님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라 

기다리는 시간을 늘려라. 그분은 당신에게 성령을 주시고 그분의 계획을 알려주실 것이다.




17.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

우리의 육신을 죽이라는 것은 우리의 자아, 우리의 옛사람 우리 안의 악을 죽이라는 말이다. 

사라진 나의 옛자아 그리고 예수생명을 보며 자긍심을 느껴라.

옛자아. 교만 비열함 분노 심술궂음 색욕 다툼 등.

육신을 억제하라 그렇지 않으면 당신의 육신이 당신을 죽일 것이다. 

도덕적인것으로 교묘하게 위장하며 접근할 것이다.

육신적인 것을 지극히 정상적인 것으로 착각하지 말아라. 

누구든 화를 잘 내는 사람은 신령한 사람이 아니라고 나는 단언한다. 육신적인 사람이므로 불과 피로써 깨끗하게 씻겨야 한다. 화를 내는 것은 죄를 짓는것이다.

자신이 죽어가는 이 과정에서 과대포장되어 부풀어 올랐던 내가 작아지기에 불평할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경건한 모습으로 예배를 드리지만 마음속에 여전히 원한과 분노가 남아있다. 그들은 여전히 돈을 사랑하고 화를 잘 낸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자기들이 예배에 빠짐없이 참석했다고 자랑한다.

완전히 속고사는 사람들이다. 아무 능력도 기쁨도 열매도 유익도 승리도 없을 것이다.



18. 세상의 길이 아닌 십자가의 길을 따라가라.

엘리야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행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의 기도대로 이루어주신것이다. 

상호작용을 부인하지 말아라.

복되고 고통스럽고 열매맺는 고난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뜻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그렇게 영적능력이 나타나지 않는 이뉴는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것 즉 십자가를 지는것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온전한 순종의 삶은 십자가를 체험하고 되고 자주 영적으로 훈련받게 된다.

순종은 그들을 복되고 고통스럽고 열매 맺는 고난의 자리로 이끌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때문에 우리에게 고통과 고난과 곤경이 찾아온다면 바로 그것이 우리의 십자가이다. 

전심으로 하나님께 순종하면서 즉시 십자가에 못 박힐수 밖에 없다는 것을 체험으로보여주었다.

그분과 함꼐 부활해야 한다. 십자가 뒤에는 부활과그분의 임재가 있기 때문이다.

십자가 다음에는 부활의 생명과 능력 부활의 구주와의 하나 됨 그리고 그분의 사랑의 임재가 있다.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것이 우리에게 십자가가 되도록 하시는 것 같다.

성령에 사로잡혀 사는 삶에 육체적 연약함을 덧붙이는 것을 기뻐하시는 것 같다.

십자가가 의미하는 모든 것을 받아 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시험을 통과할 수 없다. 

우리가 꺠닫도록 우리를 훈련하시는것이 하나님의 계획이다. 우리를 무한히 높이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가차없이 대하신다. 그분의 아들을 십자각에서 그렇게 하셨듯이 말이다.

하나님께서 무한히 높이기를 원하시는 사람들을 가차없이 십자가에 못 박으신다고 믿지 않을 수 없다.

우리의 능력을 어리석고 무익한 것으로 만들기를 원하신다.

어떤 십자가라도 자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원하신다.

열의와 준비가 십자가를 위한...우리에게 있는가?

십자가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우리에게 찾아오는 십자가이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십자가여야 한다. 그런 십자가를 나 혼자 져야 한다.




<철저한 십자가 그것이 예비한것>



19.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설 준비를 하라.

행위와 결과 사이에는 분리할수없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씨앗과 수확물 사이의 관계에 비유될수있다.

상과 벌의 문제를 날카롭게 의식하라.

이해하려고 애쓰는 것보다 이해없이 믿을때 하나님께 더 큰영광을 돌릴수 있다.

우리모두는 육체로 행한 행위에 대해 그분앞에서 해먕헤야 한다.

사망과 지옥에 이르는 심판을 그리스인 뒤에 있지만 그리스도의 심판대는 그리스도인 앞에 있다.

우리가 아버지의 가족의 일원으로서 어떻게 살았느냐하는것이다 (율법적인것이 아닌)

->성실성, 자기 훈련, 율법의 요국에 일일이 규정되어 있지 않은 관대함, 우리를 비방하는 자들 앞에서 보여준 용기, 겸손,세상에서 벗어남, 십자가를 지는것, 단순한 율법주의자나 거듭나지 못한 사람의 머리에는 떠오르지 않을 무수한 작은 사랑의 행위들, 이런것들이 어떠했는지를 보기위해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기록을 검토하실 것이다.

우리는 심판대앞에 서야 한다는ㄳ을 아는 사람은 정직하게 자신을 살펴서 그거세 대비해야 한다. 

우리 앞에는 성경이 있고 우리 안에는 성령이 살아계신다 핑계치 못한다.

(우리가 우리를 살폈으면 판단을 받지 아니하려니와 고전 11:31)



20.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집에 거한다. 

<철저한 십자가 그것의 역설>



21. 살려고 하면 죽어야 한다.

우리가추구해야 할 죽음이고 다른 하나는 어떤 대가를 지불하더라도 반드시 피해야 할 죽음이다.

못 박지 않으면 순수한 마음 그리스도를 닮은 인격 영적 통찰력 그리고 영적 열매를 잃어버리게 된다.



22. 그리스도인은 양면적인 존재이다.

교회가 설명할때가 아니라 선포할 때이다.

신앙은 실험이나 논리적 증명에 근허하지 않고 하나님의 성품에 근거한다.

세상의 방법을 따르지 말고 오히려 그와 반대로 살아야한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을 급히 떠나려고 하지 않고 다만 하늘아버지의 부르심을 조용히 기다린다.



23. 세상과 타협할 것인가 세상을 거부할 것인가?

현 교회는 사회통합이라고 해서 사회의 다른 구성원들에게 잘 적응해 신경적 및 정신적 마찰을 최대한 줄이는 것이다.

우리는 세상의 지혜를 거부하고 십자가의 지혜에 의지하여 인생을 살아가겠다고 공언한 사람들이다.

예수는 사회를 위해 돌아가셨다. 사회를 위해 죽음도 받아들이셨지만 사회에 무릎꿇지는 않으셨다.

사회에 적응하라를 그만외치고 사회를 거부하고 십자가를 져라.

비슷해짐으로써 세상을 구원하려고 하짐나 교회의 능력은 세상과 달라짐으로써 가능하다.ㅏ



24. 십자가의 보혈이 우리를 보호한다.

믿음으로써 우리는 우리 자신을 보호한다.



25. 그리스도는 주님이자 심판자이다.

음성은 때때로 사람들의 소한에 묻혀버리곤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마지막 음성이다. 그 음성에 귀를 기울이기 위해 조용히 할때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의 진짜 메시지를 듣게 된다.

그분은 강제력을 사용하지 않으실 것이다. 하지만 타협도 하지 않으실 것이다. 

그들을 사랑하시지만 그들과 타협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만일 타협하고 양보를 통해 한 영혼을 하나님 나라로 들여보낸다면 그나라는 더이상 안전하지 못하다.

주님이 되시든지 아니면 심판자가 되실것이다.

구원은 오직 우리 자신을 부인하는 것을 통해 온다. 

자기를 부인하라. 라는 말씀에 이어 자기 십자가를 지라라고 말씀하심으로써 힘의 원천 즉 영혼을 해방시키는 힘의 원천을 알려주셨다.

잔인한 십자가-사람이 몸부림치며 신응하다가 결국 조용해지고 꼼짝 못할떄까는 잔인하게 우리를 인도한다.

나는 어떤 십자가인지 분명히 알아야 한다.




<십자가의 약속>



26그리스도의 부활이 죽음을 이겼다.

의를 향한 우리의 소망은 죽음을 이기고 죽음의 능력을 초월한 그리스도의 능력에 근거한다.



27. 십자가의 구원은 영원전에 계획되었다.

십자가 때문에 그분의 사랑이 더 많아진 것이 아니며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우리를 사랑하셨고 그 무엇도 그분의 사랑에 영향을 주지 못했다.



28 무한하신 하나님의 측량할수없는 은혜를 누려라

첫째, 진리는 우리가 오직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는것이다.

언제 어디서나 어느 시대에나 은혜 이외의 다른 방법으로는 누구도 구원받지 못했다.

둘째, 은혜가 언제나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온다.

그분의 구원의 은혜는 다르다. 그분의 은혜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 작용학 될떄 신생이 일어난다.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선하심이 이해할수 없을 정도로 무한히 압도적으로 넘쳤기 때문에 가능하다.


하나님께서는 죄화를 이룬 완전한 본질의 충만함에 따라 행동하신다. 하나님 다움.

그분의 거룩함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인자와 사랑과 온유만 본다. 

그분은동일하게 거룩함과 공의의 하나님이시기도 하다.

만사가 평안할 것이다 라고 말하는 것은 황당한 사고방식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선하심을 알려고 한다면 그는 십자가의 그늘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십자가는 그의 사도가 죽은 십자가가 되었다. 손실 거부당함 그리고 부끄러움은 그리스도의 몫이요 또 진정으로 그분에게 속한 모든 사람의 몫이다. 그들을 구원한 십자가는 또한 그들을 죽인다.

세상에서 받아들여지고 칭찬받는 것을 볼때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분을 어떻게 뵐수 있을까?

옛 십자가는 사람들을 죽였지만 새 십자가는 그들을 즐겁게 해준다. 옛 십자가는 비판했지만 새 십자가는 재미있게 해준다.

눈물과 피를 쏟게 했지만 새십자가는 웃음을 선사한다.

요즘.

새시대는 새 방법으로 라며 죽음만이 생명에 이르는 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아주 꼴통으로 본다. 자기를 부인하는 겸손을 실천하라고 권하는 우울한 신비주의 자들이라고 평가된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화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기쁨없는 십자가 사건 다음에는 기쁨으로 충만한 부활이 즉시 뒤따랐다. 하지만 부활 전에 반드시 십자가가 있어야 한다.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는 삶은 불멸의 거룩한 보물이다. 사망이 더이상 지배할 수없다.

십자가의 약속은 말로 표현할수없는 영광으로 충만한 즐거움일것이다.


고백하자 주님 당신이 나의 의이시고 나는 당신의 죄입니다.

완전한 사랑이 선사하는 완전히 행복한 미래를 기대하라.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출처 : 창골산 봉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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