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의 의미와 찬송의 실질 ...
1. 찬송의 의미
찬송할 때에 그저 많이만 하거나 열광적으로 하는데 의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찬송이 무엇인지 그 의미를 명확히 알고서 의미있게 해야 의의가 있습니다.
찬송이란, 하나님의 영광스런 성품과 기이한 행적을 선포하고 자랑하고 선전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여러 곳에서 찬송이 무엇인지, 그 의미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른 의미를 담아서 찬송할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우선 대표적인 몇 구절을 찾아 보겠습니다.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라! 온 땅이여 여호와께 노래할지어다! 여호와께 노래하여 그 이름을 송축하며 그 구원을 날마다 전파 할지어다! 그 영광을 열방 중에, 그 기이한 행적을 만민 중에 선포할지어다! 여호와는 광대하시니 극진히 찬양할 것이요 모든 신보다 경외할 것임이여 만방의 모든 신은 헛것이요 여호와께서는 하늘을 지으셨음이로다! 존귀와 위엄이 그 앞에 있으며 능력과 아름다움이 그 성소에 있도다 만방의 족속들아 영광과 권능을 여호와께 돌릴지어다 여호와께 돌릴지어다”(시 96:1-7)
“내가 여호와를 항상 송축함이여 그를 송축함이 내 입에 계속하리로다! 내 영혼이 여호와로 자랑하리니 곤고한 자가 이를 듣고 기뻐하리로다! 나와 함께 여호와를 광대하시다 하며 함께 그 이름을 높이세”(시 34:1-3).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이상의 말씀들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찬송이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품성과 기이한 행적을 송축하고 선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시는 영광과 권능과 능력과 지혜를 높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존귀와 위엄과 능력과 아름다움과 영광을 “자랑”하는 것이요 그분이 하신 광대한 일들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이름을 송축하고 높이는 것입니다.
2. 찬송의 실질
⑴ 찬송이라는 의식(儀式) 속에 실질이 담겨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입을 벌려 ‘찬송가’를 부름으로 하나님의 영광스런 품성과 기이한 행적을 송축하고 자랑합니다.이를테면 입술로 찬송을 부를 때에 그 찬송의 가사와 곡에 담긴 하나님의 영광스런 품성과 기이한 행적을 높이는 사상과 정서를 품고서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한 사상과 정서가 살아나지 아니하고 입술로만 부른다면 거기에 찬송의 실질이 없게 됩니다.
찬송을 습관적으로 부르거나, 자기 감정에 도취되어 부를 때에 찬송의 실질은 없이 부르게 됩니다. 찬송가의 가사와 곡에 담긴 사상과 정서를 따라서 하나님의 거룩하신 품성과 기이한 행적을 음미하면서 송축하고 높이는 심정으로 불러야 찬송으로서 실질이 있게 됩니다. 의미있고, 실질이 있게 불러야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찬송이 되고, 본인에게도 하나님을 높이는 정서가 더욱 함양되어지는 은혜가 임하게 됩니다.
⑵ 인격과 행실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영광스런 품성을 드러내고 높이는 찬송의 실질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을 자랑하고 높이는 입으로 외친다고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인격과 삶속에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은덕을 선전하는 사상과 정서가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인격과 행실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영광스런 품성을 드러내어 선전하는 실질이 있어야 합니다.
제사장이나 거룩한 나라가 어떻게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할 수 있겠습니까? 입으로 외친다고만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의 인격과 행실을 통해서 가능합니다. 성도 각자가 제사장과 같이 거룩한 인격과 행실이 있고, 교회적으로도 거룩한 나라로서의 거룩한 문화와 풍습과 정신과 교회안에 있을 때에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이 선양되는 것입니다.
① 우리의 인격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스런 성품을 드러내며 살아야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는 실질이 있는 삶입니다.
주님께서 잡히시던 날 밤에 대제사장으로서 하셨던 기도 가운데서 그 점이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려면 하나님의 영광을 덧입어야 한다는 사실을 생각하시면서, 주님 자신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덧입혀 주시고, 제자들에게도 덧입혀 주시기를 기도하셨습니다.
“주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요 17:1).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요 17:22).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저희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요 17:2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성부 하나님께서 갖으신 영광을 아들 주님께 주셨기 때문에 그것을 가지고 아들 주님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중생시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씨와 같은 형태로 수여 받았습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니라!”(요일 3:9).
그러나 계속해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아감으로써 점점 더 충만히 그 영광을 더욱 더 충만히 발휘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가 가진 인품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품성을 드러내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의 인품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스런 품성, 즉 그리스도적인 덕성이 발휘되기에 적응하게 자꾸 우리의 인품이 개조되어 가야 합니다. 더욱 신령한 인품으로 자라가야 합니다. 우리의 인격이 그리스도적인 품성이 발휘되기에 적당한 그릇으로 닦여져 가야 합니다.
“.....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은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요일 3:2下-3)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요일 4:12).
“이로서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룬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의 어떠하심과 같이 우리도 세상에서 그러하니라!”(요일 4:17).
② 우리의 행실을 통해서 하나님의 기이한 행적을 드러내며 살아야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는 실질이 있는 삶입니다.
자식들은 인품만 아니라 행실로도 아버지에게 영광을 돌릴 수도 있고 욕을 돌릴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행실이 의의 열매로 가득하게 될 때에 거기서 하나님의 의가 드러나게 되고, 본인은 물론 이거니와 다른 사람에게도 하나님의 의를 찬송하도록 하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을 위해서 다음과 같이 기도하였습니다.
“주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빌 1:11).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이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을 드리는 실질적인 삶의 내용은, “의의 열매”가 가득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위해서 기도한 것입니다. 불신자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 가운데 가득하게 맺어지는 “의의 열매”를 보고, 거기서 ‘하나님의 의’를 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이기에, 하나님을 아는 우리들에게서 맺어지는 품성을 보고서 하나님의 품성을 볼 수 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어 하나님의 이름을 선양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길은 우리의 삶 가운데서 ‘의의 열매’를 가득히 맺어야 합니다.
입으로만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노래해 가지고는 결코 하나님의 의가 선양되지 않습니다. 입으로는 하나님의 의를 노래하지만, 행실에서는 불의로 가득하다면 하나님의 의를 짓밟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의의 열매를 맺어 하나님의 의를 선양하고 살아가는 찬양의 실질이 있으면서 그 실질을 담아서 입으로 노래할 때에 그 노래가 찬양으로서 가치가 있게 됩니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 이로서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룬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의 어떠하심과 같이 우리도 세상에서 그러하니라!”(요일 4:12, 17).
“이와 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
세상 사람들은 주의 어떠하심을 우리의 어떠함 속에서 보게 됩니다.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지만,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보게 됩니다. 믿는 성도들이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할 때에 우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역시 주 믿는 사람은 다르다!”고 감탄하며, 결국 주님을 높이고 하나님을 높이게 됩니다.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 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함이라!”(벧전 2:9, 12).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갖을 때에, 그 선한 행실로 인하여 이방인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양하게 됩니다. 이것이야말로 참된 찬양입니다.
삶속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실질이 없이 하는 찬송이라면 찬송으로서의 의의를 상실한 것입니다.
아무리 입으로 아름다운 찬양을 부른다고 해도 인격과 행실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실질이 없다면, 그러한 찬양의 껍데기로는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이 선전되지를 않는 것입니다. 인격과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여야 하나님께 찬양이 되는 것입니다. 입으로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높인다고 하지만 인격과 삶으로는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고 멸시를 받게 한다면 결코 찬양으로서의 실질이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인격과 삶의 실질이 있으면서 하는 찬송만이 찬송으로서의 큰 의미를 갖는 것입니다.
요사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들이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고 찬양 집회들이 여기 저기서 성행하고 있는 것은 참으로 감사할 일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나 입으로는 찬송을 하면서 실지 인격과 삶으로는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실질이 없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입으로는 찬송을 열심히 하면서도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행실을 드러낸다면, 어찌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하나님의 이름이 선양(宣揚) 되겠습니까? 인격과 삶속에서 찬양의 실질을 회복하여야 우리가 입으로 드리는 찬양이 의미를 가지게 됩니다. 인격과 삶으로 드리는 찬양의 실질을 담아서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입으로는 천지가 떠나갈 듯 찬송하면서도, 행실을 통해서는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됩니다 ! 왜 그러한 일이 일어납니까? 그가 하는 찬송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실질’이 없이 외형만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 아무리 큰 소리로 목청을 돋우어 하나님을 찬양한다 해도, 행실로는 흑암에 머물러 있거나, 불의의 열매를 맺고, 악한 행실을 드러내며, 빛과 소금의 맛을 잃어 버릴 때,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합니다. 이 시간을 통해서 우리의 찬양중에 참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실질이 담겨져 있는지 자신을 살피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목청을 높여 하나님을 찬양한다 해도 삶속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거룩한 삶의 실질이 없다면, 오히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한다는 사실을 마음에 새겨야 하겠습니다.
글 : 봉민근 목사
'교회란! 예배 기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성경의 절기들 (0) | 2018.12.12 |
---|---|
[스크랩] 구약제사의 종류 (0) | 2018.12.12 |
[스크랩] 성경적 교회성장의 개념과 원리 (0) | 2018.10.16 |
[스크랩] [첨부파일] 교회론 공부 24과 교제(지도자용, 학습자용 따로되어있음) (0) | 2018.10.07 |
[스크랩] 성경적인 교회론 (0) | 2018.09.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