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십자가
본문: 고린도전서 1:18-25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의 크라이막스는 십자가의 사건입니다.
십자가의 처형은 노에,
외국인, 로마의 시민이 아닌 죄수에 대한 로마의 형벌입니다.
십자가의 처형은 고통과 수치를 가장 많이 주는 잔인한
방법입니다.
십자가의 처형은 손과 발에 못을 박습니다.
십자가의 처형은 고통, 굶주림, 아품을 느낍니다.
십자가의 처형은 매달려
있다가 죽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신지 6시간 후에 운명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달리셨던 바로
그 십자가가 주후 325년에 현재 성묘 교회의 아래에서 발견되어 이것을 만진 사람이 병을 낳았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십자가의 궁극적인
목표는 인간 세계에서 "죄된 인간성"을 추방하는 것이고, 인간적 성격을 승화시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릴 때, 양 옆에는 죄수인
강도들도 십자가에 달려 있었습니다.
두 강도 사이에서 고통에 시달리다 운명하신 예수님의 십자가의 의미를 고찰하고자
합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헬라인과 같이 교양있는 사람이나 경건한 유대인들과 같이 잘못된 신앙
속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기독교가 말하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매우 어리석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인류 대속의 큰
정점을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1. 십자가의 일반적 의미
십자가의 일반적 의미는 두말할 것 없이 흉악한 범법자의 형틀이었습니다.
물론
십자가는 이 세상에 있어서는 안될 존재들을 위한 처단의 도구였습니다.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는 그 당시의 한없는
비극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는 그 당시의 한없는 비참한 고통이었습니다.
십자가는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 되는 것은,
예수님이 유대인들이 기다리던 메시야가 십자가에 돌아 가셨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메시야의 고난을 생각하지도 아니하고, 메시야가
오며는 하나님의 황금시대가 오는 줄 착각을 하여 굉장한 일들이 일어 날 것을 기대하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위에 오셔서 많은 이적과
표적을 나타냈지만 유대인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을 박고 말았습니다.
2. 예수님 이후의 십자가의 의미
십자가의 일반적인 의미는 가장 흉악한 범죄자들이 죄의 댓가를 받는
형틀이었습니다.
이러한 십자가를 예수님은 죄도 없으신 몸으로 대신 졌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이후 2000여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십자가의 의미는 많이 변하여 왔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십자가를 기념하고 있습니다.
비극의 상징인 십자가가 영광과 성스러운 의미로 바뀌었습니다.
수모의 상징인
십자가가 영광과 성스러운 의미로 바뀌었습니다.
범범자의 형틀의 의미에서 영광과 성스러운 의미로 바뀌었습니다.
천주교에서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우리 기독교에서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기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님 즉 빈 십자가를 기념하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깃발을 휘날리게 된 것은 로마의 콘스탄틴 대제가 로마를 평정할 때, 꿈에
천사가 나타나 십자기를 만들어 가지고 전쟁터에 나가라는 꿈의 계시를 받고 십자가를 만들어 가지고 전쟁터에 나가니 어제와는 달리 패전만 하던
부하들이 대승리를 거두게 되었습니다.
콘스탄틴 대제는 주후 313년에 기독교를 로마제국의 국교로 정하고 말았습니다.
십자가상에서 다 이루었다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완성과 거룩한 희생으로 죄로 죽을 수
밖에 없던 우리들의 가슴에 생적 감동력을 주었습니다.
십자가는 위로와 용기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십자가는 영생과 안정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왕관과 성소에 십자가가 있는 것은 그리스도의 대속의 역사가 모든 사건에 개재되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리는 그 시기에 많은 거짓 메시야가 일어나 많은 사람들을
미혹하였습니다.
주후 45년에는 드단이라는 거짓 메시야가 일어나 수천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유혹하여 집을 버리고 요단강가에서 살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요단강아 갈라져라' 고 명령만 하며는 요단강이 둘로 갈라져 모두 발을 적시지 않고 요단강을
건널수 있다고 장담을 하였으나 요단강을 갈라지지 않았습니다.
주후 54년에는 애굽으로부터 선지자로 자처하는 거짓 메시야가 예루살렘에 나타나
3만명이라는 많은 사람을 유혹하면서, 자기가 명령만 하면 예루살렘 성벽이 무너진다고 장담을 하였으나 예루살렘 장벽이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은 표적을 항상 구하고 있는데,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건은 유대인들에게 기대 밖의 일이었습니다.
온유하고,
겸손하며, 인기를 끌만한 일은 피하시는 예수님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봉사하는 자로서 십자가 위에서 생을
마치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들에게 위대한 새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알 맞는 일,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
아니며 한 달란트의 일을 주시고 있음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3.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의 속성이 우리에게 필요한 그 이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이 우리에게 필요한 그 이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바라 보시기 바랍니다.
십자가의 역사는
그저 그런 일이 아닙니다.
십자가의 역사는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십자가의 역사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습니다.
십자가의 역사는
하나님의 정의가 있습니다.
십자가의 역사는 하나님의 능력이 있습니다.
1) 하나님의 사랑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위대한 것인가를 보여준 가장 강한
사건입니다.
십자가는 큰 사랑으로 사랑할 수 없는 자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인간의
작은 두뇌를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말하고 있습니다.
믿음 안에서 교회 생활하는 우리 성도는 서로 도와주며, 서로 밀어주고, 서로
끌어주면서 성도의 교제를 나누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지 못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솔개가 해변에 날고 있다가 조개가 입을 딱 벌리고 있는 것을 보고 배가 고품 참에 잘
되었다 하고 주둥이로 좇았습니다.
그때 조개는 빨리 입을 힘 있게 다무려 솔개의 주둥이를 빼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솔개는 말로 타협을
하고자 하였으나 주둥이가 물려서 말을 할 수가 없어, 발과 날개를 허덕이면서
"오늘과 내일까지 비가 오지 않으면 너는 죽고
말아" 하고 형용을 하니
조개 역시
"네가 오늘이나 내일까지 먹지 않으면 너도 역시 배가 고파서 살
수 없을 걸 --" 하면서 응수를 하면서 여러 시간을 계속하여 치열한 싸움을 하니 저녁때 어부가 지나다가 이 광경을 보고
솔개와 조개를 둘 다 잡아 가지고 갔습니다.
옛말에 방휼지쟁(蚌鷸之爭)이요 죄수어인지(坐收漁人之)이란 말이 있듯이 그리스도인은
남의 것을 탐내지 말며 하나님의 사랑,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 주시기까지 한 하나님의 사랑을 배워야 합니다.
성도는 자기의 힘이 센 것을
믿고 남을 이기려 하지 말고 하나님의 사랑,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 주시기까지 한 하나님의 사랑을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지 아니 하셨다면 하나님의 아가폐 사랑을 실감할 수가 없었습니다.
십자가의 고통을 당하시면서 죄인들을 용서하시고, 울고 있는
사람들에게 "너 자신을 위하여 울라"고 하신 예수님으로부터 측량할 수 없는 사랑을 깨닫게 되는
것입다.
2) 하나님의 정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정의를 인간에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는
길이 "엘리 엘리 라마 사닥나니"라는 고통의 외침 속에 나타나 있듯이, 죄의 소멸은 그만한 댓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하나님의 정의가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데 무한한 인화와 사랑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데 인화와 사랑이
필요합니다.
동시에 냉엄하고 날카로운 지서의 소산, 공도(公道)의 기구, 법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과 함께 하나님 법의 완성입니다.
죄를 지으며 멸망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이치를
실현시키기 위하여 예수님이 대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 내시기 위하여 하나님이 독생자를 구약의 한 마리 양인 아세살과
같이 죄를 대신 질머지게 하셨습니다.
3) 하나님의 능력
예수님이 유다의 배신과 장로와 서기관들이 보낸 하속들에 의해 잡혀, 제일 먼저 안나스
앞에서 재판을 받았습니다.
(1) 이때의 시간이 자정쯤이며
(2) 가야바 집에 있는 공회 앞에서 두
번째 재판을 받았습니다.
이때의 시간은 자정과 새벽사이 였습니다.
예수님의 죄목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모독죄로 판결을
내렸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모른 다고 부인하였습니다.
밤중에 재판을 한 것은 율법의 위반입니다.
(3) 날이 밝자 예수님의 죄목을 모독죄로 공적으로 확정을 하였습니다.
(4) 날이 밝고 얼마 후에 빌라도 앞에서
재판을 받았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의 무죄를 확인하고 갈릴리 사람이라 갈릴리 지방을 통치하는
(5) 헤롯에게 예수님을 보냈습니다.
(6) 헤롯은 다시 빌라도에게 예수님을 보냈습니다.
빌라도는 여기서
예수님에게 사형 선고를 내리고 말았습니다.
이 사형 선고를 받으신 후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고 오전 9시에 골고다에 도착하여 손과 발에
못을 박으려 할 때 고통을 덜게 하기 위하여 식초를 탄 포도주를 주었으나 예수님이 거절하시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 십자가에
자신을 못 박는 사람을 용서하여 주시는 사랑을 배워야 합니다.
"아버지여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저들은 자기의 하는 일을
알지 못합니다." 라고 용서하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옷은 군인들이 나누어 가졌습니다.
"유대인의
왕"이라고 히브리어, 라틴어, 헬라어로 쓴 패가 머리위에 붙였습니다.
십자가에 못이 박히지 두 시간 후에 회개한 강도에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요한에게 어머니를 부탁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사형에 처한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강도에게
낙원을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어머니에게 가정을 마련해 주시였습니다.
9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3시간 동안은 긍휼과 친절과 하나님의 공의를
이루었습니다.
정오부터 3시까지 어두움이 계속된 것은 완전한 속죄의 행위입니다.
"아버지여 내 영혼을 단시의 손에
맡기나이다." 라는 마지막 말을 할 때 지진이 일어 났습니다.
휘장이 갈라졌습니다.
무덤이 여리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고통의 길 같이 보이나 승리의 길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죽음의 길 같이 보이나 부활의 길입니다.
십자가와 함께 내가 못 박히고 내 안에 주가 살아서 내가 믿음 안에 살고 그리스도만 자랑하는
서도들이 되시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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