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확신 / 안토니 A. 후크마
성령은 또한 우리에게 건강한 믿음의 가장 중요한 표적 중 하나인 구원의 확신을 주신다. 바울은 로마서 8:16에서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신다"고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다. "증거하신다"(symmartyrei)라고 번역되고 있는 동사의 시제가 현재형으로서 지속적인 동작을 나타내기에, 성령의 이러한 증거는 때때로 발생되는 혹은 단회적으로 발생되는 것이 아니라 신자의 전 생애에 걸쳐 지속되는 것이라고 결론지을 수 있다.
신약성경은 일반적으로 성부 하나님의 사역이라고 이해되고 있는 칭의를 성령과 연결짓고 있는가? 여러 점에서 그러하다. 믿음으로 의롭다 여김을 얻기에 위에서도 살펴본 대로 믿음이 성령의 은사라는 사실이 이 칭의의 축복과 성령을 연결짓고 있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6:11은 가장 직접적으로 칭의와 성령을 연결짓고 있는 구절이다. 이 구절에서 바울은 그의 독자들을 향하여 "그러나 너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고 말하고 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란 두 문구는 뒤따라 나오는 세 개의 동사 즉 씻기움, 거룩하게 됨, 의롭다 여김 모두에 적용된다. 원어 헬라어에 따르면, 이 두 문구는 보통 ~안에(in) 라고 번역되어지는 헬라어 단어 en으로 시작되고 있다. 그렇다면 두번째 문구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의미는 성령과 "하나되어" 혹은 성령과 "연합되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의롭다 여김을 받는 것은 성령의 사역과 불가분의 관계이다.
칭의가 부여하는 은혜 중 하나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받아들여지는 것(양자됨)이다. 이 은혜 역시 성령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갈라디아서 4:4-6에서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보내신 것은 우리로 "아들의 충만한 권리들을 얻게 하려 하심이었다"(5절)고 바울은 말한다. "아들의 충만한 권리들"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휘오데시아"인데 초기 기독교 시대에 파피루스에서 발견되는 용어로 어떤 사람을 양자로 삼는 법률적 단어이다. 바울은 계속해서 "너희가 아들인 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다"(6절)고 말하고 있다. 우리 안에 거하시며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더이상 종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과 딸들임을 확신시켜 주는 분이 성령이시다.
동일한 요점이 로마서 8장에도 나온다. 15절에서 바울은 "너희는 양자됨(휘오데시아)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고 말한다.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사람은 다름아닌 우리 신자들인데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성령을 통해서이다. 이럴 뿐만 아니라 우리가 아들들로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영의 인도하심을 받아서이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14절).
우리의 "성화"가 성령에 의해서라는 사실은 놀랄 만한 것이 아니다. "성령"이란 이름 자체가 보여주듯이 성령은 성결함이나 성화와 연관이 있다. 데살로니가후서 2:13에서 바울은 독자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이 처음부터 그들을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시는 사역으로 구원하셨다"고 말하고 있다. 로마서 15:16에서도 바울은 자기의 사역을 가리켜 이방인들을 향한 그리스도의 사역자됨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이는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그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심직하게 하려 함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성화를 성령의 사역으로 돌리는 일은 단지 바울에게만 한정된 것은 아니다. 베드로는 그의 독자들을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을 통해 택하심을 입은 자들"이라고 지칭함으로 그의 첫번째 서신을 시작하고 있다(1:2). 이런 구절들과 마찬가지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도 성령을 "그리스도의 거룩케 하시는 영"이라 부르고 있다.
또한 성령은 믿음 가운데의 인내 혹 견인과도 불가분의 관계를 갖고 있다. 여기에서 인치심(seal)과 보증(pledge)이라는 성경의 두 비유적 표현에 우리의 관심을 두고자 한다. 에베소서 4:30에 따르면 성령은 우리의 최후의 구속의 보증이라고 쓰여져 있다.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신약시대에서 종종 인침은 소유권을 나타낸 것이었으며, 그러므로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다 함은 또한 성령께서 구원의 마지막날까지 우리를 계속적으로 하나님과 교제케 한다는 의미도 들어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에베소서 1:13-14에서 바울은 "또한 믿어 너희가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그는 하나님의 소유인 그의 백성들을 구속하실 때까지 우리의 기업의 보증이 되신 자라"(NIV). 여기서 보증되신 자라고 번역되고 있는 헬라어 arrabon은 또한 보증 혹은 서약(pledge)이라고도 번역되어질 수 있다. 만약 우리가 우리 안에 성령을 갖고 있다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기업인 미래의 영광이 그 언젠가 우리의 것이 될 것이라는 확신을 우리가 갖고 있다고 바울은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즉 그 어느 것도 그 기업을 우리에게로부터 빼앗아 갈 수 없다는 말이다.
arrabon이란 단어가 또다른 두 군데에서 성령을 가리켜 사용되고 있다. 고린도후서 1:22에서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셨다"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게 된다. 또한 고린도후서 5:5에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을"(1절)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하나님께서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셨다"라고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성령께서는 신비롭고도 놀라운 방법으로 우리가 영화롭게 된 새 땅에 있을 우리의 마지막 기업에 들어갈 때까지,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인내할 수 있거 하신다는 것이다.
안토니 A. 후크마의 '개혁주의 구원론'에서 (52-55p)
퍼온글....출처 자기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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