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 이란!

[스크랩] 회심의 단계

하나님아들 2018. 10. 21. 00:42
회심의 단계

 

 

 회심의 단계는 청교도 사람들이라면 다 이야기하는 부분일 것이다.

 청교도의 황태자 웰리엄 퍼킨슨은 회심의 단계를 10가지로 설명하였고 토마스 쉐퍼드는 4가지로 설명하고 있으며 존오웬은 4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왜 그들은 이러한 일에 오랜 세월 동안 연구하고 공부하였을까?

 존오웬은 자신의 글에서 이러한 회심의 단계에서 일어나는 자연인의 반응과 성령님의 역사하심의 지식을 가장 높은 지식으로 “성령론”에서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존 오웬이나 조나단 에드워드는 이러한 자신들의 글을 통하여 독자들에게 진리의 길이 어떤 길인지를 보여 주기 위함이라는 것을 “신앙의 정서”그리고 “개혁주의 성령론”에서 밝히고 있다.
오늘날 교회가 회심론에 소홀히 하고 있으며 회심론에서 더욱 소홀히 하고 있는 부분이 바로 회심의 전 단계일 것이다.
물론 청도교들은 회심의 전과 후 단계에 대하여 상세하게 저술하였지만 오늘날 사람들은 회심 후의 반응을 더욱 집중하기에 오히려 역효과가 나타나는 것 같다.
역효과란 회심 후 나타나는 반응을 행위로 자신을 증명하려는 생각과 자신에게는 회심 후의 반응이 없음을 보고 실망하고 포기하는 모습 또는 회심 후의 반응을 성령님의 역사가 아닌 스스로 맞춰 가는 반응을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는 존 번언의 천로역정을 잘못 깨닫고 천로역적의 길이 방법론이 되어 자신이 어느 부분까지 와 있다고 생각하며 맞춰가는 사람들도 있다.
회심의 전과 후의 단계는 절대로 방법론이 될 수가 없다. 만약 방법론(methodism)이 된다면 성령님의 역사하심을 우리 인간이 저지시키는 것이며 성령님의 역사를 인간의 방법에 맞춰가는 것이 될 것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교회가 알미니안주의 사상에 물들어 있으며 또는 청교도 개혁주의 안에서는 하이퍼 칼빈주의 사상이 팽배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성령님의 역사 그리고 자연인의 반응에 대하여 회심의 전과 후 단계를 잘 안다면 교회에서 가르치는 방향과 양육의 방향을 올바로 제시해 줄 것이며 그들이 알미나안주의의 사상 또는 하이퍼 칼빈주의 사상을 배제하고 진리의 길로 인도할 수 있을 것이다.

■ 윌리엄 퍼킨슨의 10단계를 살펴보면 믿음의 예비적인 부분과 믿음을 구성하는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1. 믿음에의 예비적인부분:
1) 말씀의 사역에 동참하여 듣기
2) 율법의 지식(즉 하나님께서 도덕적으로 선하게 여기시는 것과 악하게 여기시는 것에 대한 지식)
3) 자신의 특별한 죄들에 대한 인식
4) 심판에 대한 두려움(율법적 두려움, 율법적 슬픔, 공포)
 
2. 믿음을 구성하는 부분:
5) 회개하는 죄인들에게 주시는 구원의 약속들에 대해 심각하게 숙고하기
6) 복음의 메시지를 믿고자 소원하기
7) 뜨겁고, 지속적인 사죄의 요청
8)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자비에 대한 확신감 혹은 설득되어짐
9) 자신의 죄가 죄이고, 하나님께 범죄하는 것이기에 슬퍼함(복음적 슬픔)
10) 새로운 순종과 더불어 계명들에 순종하려는 은혜의 지원을 받은 노력(즉 하나님에 대한 노예적 두려움에 의해서라기보다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원리로부터 말미암는 순종의 노력).


■ 토마스 쉐퍼드의 4단계
1) 특정한 죄에 대한 깨달음을 주시고, 점진적으로 나머지 모든 죄를 지적해 내신다. 성령은 영혼 속에 분명하고 실제적이며 지속적인 빛을 던져 영혼이 그 죄와 죽음을 보게 될 때 비로소 죄에 대한 철저한 깨달음이 생기게 된다.
2) 통회(compunction), 즉 죄에 대한 감각을 가지게 하시는 단계이다. 이 단계에 이르면 죄인들은 자기가 범한 악들에 대하여 영혼의 슬픔과 괴로움을 느끼게 된다. 이때에 죄인들은 마음의 찔림을 받아 죄로 상한 심령이 된다. 그리고 셰퍼드가 말하는 통회의 3대 요소는 성령에 의한 두려움, 슬픔, 죄와의 결별 등이다. 통회는 통회의 목적이 이루기까지만 하면 된다고 셰퍼드는 생각하였다.
3) 겸비해짐(humiliation) 겸비함이란 성령에 의해서 가능한 것으로서, 사람이 자기가 가지거나 행하고 있는 어떤 선에 대한 자신감과 자부심으로부터 벗어나 하나님께 굴복하거나 하나님 앞에 엎드려 그분의 기쁘신 뜻대로 처분되기를 기다리는 상태에 들어가는 것이다.
4) 그리스도에게로 가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받아들임의 단계로 나아가게 된다.


■ 존 오웬의 4 가지 단계
1) 조명 - 말씀에 의하여 인간 영혼에 내적인 영향을 주는 사역
2) 죄의 자각 - 자신의 죄를 깨닫고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는 단계
3) 개혁 - 자신의 노력과 의지로 말씀에 순종하려는 자세. -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노력과 의지는 무차별하게 무너트리심.
4) 양심과 사랑 - 겸비해 지며 그리스도만 바라보는 단계
5) 회심

※ 조나단 에드워즈는 토마스 쉐퍼드의 영향을 받아 4단계를 받아 들였다 하지만 그 글의 군데군데 윌리엄 퍼킨슨의 각각의 단계를 이야기 하는 부분도 있다.


■ 조나단 에드워즈
1) 죄의식
2) 겸비해짐,
3) 회심
è 에드워즈는 간단한 형태론을 말하였으며 회심의 단계보다 영혼 안에 역사하시는 영적이고 신적인 본질에 있다고 주장하였다.


■ J.C. 라일은 5가지의 단계를 말하고 있다.
1) True repentance begins with KNOWLEDGE of sin. - 죄에 대한 인식
2) True repentance goes on to work SORROW for sin. - 죄에 대한 슬픔
3) True repentance proceeds, further, to produce CONFESSION of sin. - 죄에 대한 자백
4) True repentance, furthermore, shows itself in a thorough BREAKING OFF from sin. - 죄를 떨쳐 내려고 함
5) True repentance, in the last place, shows itself by producing in the heart a settled habit of deep HATRED of all sin. - 죄에 대한 증오


■ 토마스 왓슨은 6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1) Sight of sin -죄의 발견(인식)
2) Sorrow for sin - 죄의 슬픔
3) Confession of sin - 죄의 고백
4) Shame for sin - 죄의 부끄러움
5) Hatred for sin - 죄에 대한 혐오
6) Turning from sin - 죄에 대하여 돌아섬


■ J.C. Philpot은
1) hatred of self, - 자신에 대한 증오
2) abhorrence of sin, - 죄에 대한 혐오
3) groaning over our backslidings, - 불순종에 대한 신음
4) grief of soul for being so often entangled by our lusts and passions, - 육의 탐욕과 정욕 때문에 슬퍼함

이러한 마음을 통해
      softness, - 마음이 부드러워지며
      meltings of heart, - 마음이 녹아내리며
      flowings of love to the Redeemer, - 주님에 대한 사랑이 자라며
      indignation against ourselves, - 자신에 대하여 분개하며
      and earnest desires never to sin more. - 죄를 짓지 않기 원하는 간절한 마음


■ 사무엘 데이비스
1) sorrow for sin, - 죄의 슬픔
2) every instance of reformation, - 개혁되어지는 마음
3) If horror of conscience and fears of hell could constitute true repentance,
   - 양심의 두려움과 지옥의 공포를 느낌으로 참 회개로 들어감


■ 사람들이 왜 이렇게 이러한 회심의 단계를 말하려 하는가?

그 이유는 성령께서 외부적과 내부적으로 역사하여 은혜의 방편을 주셨다는 데에 다 같이 동의한다. 그러나 말씀을 듣는다고 모두 믿음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분명 믿음은 복음을 필요로 한다. 인간이 복음의 말씀을 들을 때에 그들에게 나타나는 반응이 있다. 이러한 반응은 인간의 본질에 속하였으며 성령께서는 이러한 인간들의 본능을 사용하셔서 회개로 이끄신다.

피터 마스터즈는 “회심을 방해하는 생각들”에서 “당신의 감정이 아직 깊이 움직이지 않았더라도, 이와 같은 신실한 회개의 모든 요소들은 온 마음(mind)으로 하나님 앞에 진실되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감정으로 완전히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 회개하지 못하는 이유가 될 수 없습니다. 회개하기에 앞서 큰 죄책감을 느낄 때까지 기다린다면 당신은 평생을 기다려야 할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많은 구도자들에게 감정적 느낌은 회개 이전이 아니라 회개 이후에 오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주님께서 주신 죄에 대한 깨달음으로 회개해야 합니다. 주님은 회개에 큰 슬픔과 아픔을 요구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이 느끼는 죄의 대한 깨달음으로 말미암아 기꺼이 회개하려는 준비된 태도를 원하는 것입니다.”라고 주장한다.
그의 글에서는 청교도의 사상은 조금 배어 있지만 아직 그도 인간에 지.정.의가 어떻게 정확하게 반응하는지 확실히 모르는 것 같다. 그래서 그는 회개에 앞서 큰 죄책감을 느낄 때까지 기다린다면 당신은 평생을 기다려야 할 수도 있다라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성경은 새롭게 회심한 자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갓난아이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갓난아이들은 자기 어머니의 성격과 육체적인 모습을 정교한 지각으로 바르게 인식하지 못하며 또 어머니가 하는 말을 지적으로 이해하지도 못합니다. 어머니가 먹이고, 보살피고, 대답해주고, 기저귀를 갈아주는 행동들을 통해 의식하며 느낄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갓난아이도 마찬가지입니다.”라고 하므로써 어린아이 상태를 중생의 상태로 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성경에서 바울은 어린아이 상태는 몽학 선생(율법아래) 밑에서 자라는 상태를 말하고 있으며 또한 어린 아이 상태는 히브리서 5장에 의를 경험하지 못한자라고 말하고 있다.

중생의 단계는 여러 가지의 현상으로 나타나므로 교회를 책임지고 있는 목사로써는 지식의 상태에서 정서의 단계까지 그들을 열심히 가르쳐야하며 또한 의지의 단계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인도해줘야 한다.
지식의 단계는 가르침으로 되어지며
정서까지 내려오는 단계는 묵상(상고)함으로 되어지고
의지까지 나타나는 단계는 자신의 모습과 죄에 대하여 낱낱이 하나님께 고하고 은혜를 얻기를 바라는 마음에 하나님께서 명령하셨기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러한 상태가 자연인의 상태, 조명을 받은 사람의 상태, 그리고 중생 안에 있는 상태의 사람들이게 계속적으로 가르치고 정서에 이르며 의지로 까지 나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 존 오웬의 성령론을 통하여 자세하게 성령님의 역사와 인간의 반응을 살펴보고자 한다. 

■ 말씀에 의하여 인간영혼에 내적인 영향을 주는 사역

1. 말씀은 사람의 영혼에 내적으로 역사하여 중생의 길로 인도 한다.
- 여기에는 조명(illumination), 자각(conviction), 개혁(reformation)이 있는데,
첫 번째로 이러한 사실이 마음속에 일어난다.
둘째로는 양심과 사랑이 새롭게 마음속에 자리잡게 되고,
셋째로는 인생이 새롭게 되며 회심이 일어난다.

2. 조명은 성령님의 역사이다.
- 성령님의 도움을 받으면 분명히 성경을 읽기 시작할 것이다.
- 성경은 성령님의 깨닫게 해주심이 없이는 혼란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 성령님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우리 마음속에 모아주고,
- 우리들의 어리석음을 제하여 주시며,
- 참 하나님을 분명히 보여준다.

3. 하나님께서는 선택받은 백성이 어떤 신을 경배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주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그들이 경배해야 할 분이라는 것을 보여주신다.

4.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인간에게는 두 가지 지식에 도달한다.
순서상으로 말하자면,
-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분으로 알게 해주는 지식이 먼저 온다.
- 그 다음에 죽은 영혼을 소생시킬 수 있는 다른 내적 지식이 더해진다.

5. 그리고 이 지식을 통해
- 우리는 하나님을 단지 세계의 근원이요
- 또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유일한 창시자요
- 통치자로서 뿐만 아니라,
- 중보자의 위격으로 나타나신 구속주로서 알게 되는 것이다.

6. 성경의 목적은,
- 세계를 지으신 분으로서의 하나님이 성경에 명백하게 계시되어 있다는 것과,
- 우리가 미로에 빠져 불확실한 신성을 찾아 헤매지 않도록
-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 생각해야 하는 내용이 성경에 설명되어 있다.

7. 인간의 마음이 얼마나 쉽게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망각에 빠지는지,
- 그리고 각종 오류에 얼마나 심각하게 기울어지는지,
- 또 새롭고 허망한 종교 따위를 계속해서 지어내려는 욕망이 얼마나 큰지를 생각해 보자.

8. 그러면 우리는 망각으로 인해 파멸하지 않고,
- 오류로 인해 소실되지 아니하며,
- 사람들의 방자함으로 말미암아 부패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 하늘의 교훈을 증거하는 문서가 얼마나 필요한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1) 조명(illumination)

이 명칭하에서의 우리가 소유하는 모든 빛(light)과 지식(knowledge)은 영적인 것(spiritual things)이다.
여기에는 몇 개의 단계가 있다.

조명은 이성적인 기능에 의하여
계시의 교리를 알고(know)
이해하고(perceive)
깨닫는 것(understand)인데
이것은 이성의 꾸준한 기능에 의하여 얻어진다.
빛(light)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의 개념과 타고난 이해력에 무엇인가가 더해지는(superadded) 것이다.

본래 타고난 인간은 영적인 것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이 없이는)
인간의 이성은 부패된 죄성 때문에 저들의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계시와 같은 영적인 것을 이성적으로 알지 못한다.

다시 말해서 조명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 마음에 임하는 성령의 특별한 영향(effect)이다.
성령은 말씀에 의하여(by) 역사한다.

조명이란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인간의 단순한 본성에 커다란(a great) 것을 더해주는 것이다.
또한 조명이란 우리의 본래적 능력에 성령님의 활용으로 얻어질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조명이란 인간의 본성에 분명하게 더해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사람의 “의의 도를 안다”(벧후2:21)고 하였다.
그렇다고해서 모든 사람들이 다 조명을 받는 것은 아니다. (겔33:31, 사49:4, 요8:59, 행13:41,45,46)
죄인이 의롭게 되는 길은 믿음의 길뿐인데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사는 것이다(롬1:17).
그리고 조명은 본래적인 단순한 이성으로 얻을 수 있는 것 이상의 진리에 대하여 강력하게 찬성하도록 해준다.
따라서 조명을 받은 사람은 믿음을 가지게 된다고 몇몇 사람들은 말한다.

저들의 믿음이란 다만 계시된 진리에 대해서만 외적으로 지지를 하는 정도이다. (마술사 시몬이 있고(행8:12), 그리고 많은 유대인들이 있다(요2:23-24, 요7:31).
그리고 조명은 사람들에게 어떤 종류의 기쁨도 준다.
이 기쁨은 기쁨을 주는 말씀을 받을 때 온다.
때를 따라서 조명의 빛 속에는 기쁨이 있어서 우리들이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조명의 근원은 결코 사람들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요5:35).
이와 같이 조명을 받아 밝아진 사람들은 말씀과 함께 다양한 결과를 얻는다.
이것은 성령의 영향이 아니고서는 얻을 수 없는 것이다.
즉 자연적인 인간의 소양을 가지고서는 결코 얻을 수 없다는 말이다.

때때로 조명은 대단히 다양한 은사들을 또한 더하여 준다.
따라서 조명이 있는 곳에는 향상이 있고, 이것은 더욱 활용되어 마음에 놀라운 영향력과 결과를 얻게 해준다.
그래서 조명은 영적인 것들을 잘 이해하도록 도와준다.
그렇다고 조명이 중생케 하는 데는 만족하지 못하다.
조명 뒤에는 중생을 위한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나야 중생을 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교화(enlightened) 되었지만 회개가 일어나지 않고 있다.
인간의 본성에 먼저 중생이 일어나야 회심(conversion)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러한 준비와 단계가 있을 때 빛을 받은 영혼이 구원의 은혜(saving grace) 안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사(a gift of God)를 받은 사람은 자기가 해야 할 의무를 감당해야 한다.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아가는 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들에 의해서 하나님의 은사는 악용이 되기도 한다. 

(2) 자각(conviction)

죄의 자각(conviction of sin)은 말씀에 의한 또 다른 결과이다.
이일로 참된 회심이 일어나는 것이다.
사도는 이것을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그러나 다 예언을 하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나 무식한 자들이 들어와서 모든 사람에게 책망을 들으며 모든 사람에게 판단을 받고 그 마음의 숨은 일이 드러나게 되므로 엎드리어 하나님께 경배하며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 가운데 계시다 전파하리라”(고전14:24-25).
여기에는 다음의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다.

�� 하나님의 율법과 위엄과 심판을 생각할 때 죄책감은 불안한 감정을 가지게 한다.
전에는 경시하고 조롱하던 것을 이제는 심령의 무거운 짐으로 여기게 되었다.

여기에서부터 사람의 마음은 정도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두려워하는 마음과 고통을 갖도록 영향을 받게 된다.
그리고 말씀에 의하여 감동을 받고, 말씀에 따라서 살려고 한다.
이러한 상태에서 그 방향과 안전한 정도는 성경에 언급되어 있다.

�� 자연인은 죄와 그 비참함 때문에 슬퍼하거나 비탄에 빠지는 일이 없으나
조명을 받아 죄의 자각까지 나오는 사람은 자신의 죄로 인하여 슬퍼하고 비통해 한다.
세상적인 근심은 사망을 가져오지만(고후7:10),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가져온다(고후7:10).
세상 사람은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은 사람들이지만(롬8:15),(육적인 두려움 - terrify, horrify )
그리스도인은 양자의 영을 받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영적인 두려움 - 경외-빌2:12)

�� 죄로 인한 부끄러운 마음은 외적으로 슬픔과 두려움, 그리고 죄의 고백(confession)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기도와 금식 등으로도 표현된다.
이것은 죄에 대한 적법한 수치심에 대한 진정한 표현이다.(왕상21:29)

�� 이러한 일로 심령이 낙심만 하지 아니한다면 -(육적인 두려움을 통해- 그리스도를 모르는 자들에게 나타나는 현상 - 가롯 유다)
이 심령은 죄의 형편과 상황에서 그의 생각과 요구와 질문과 계획이 오직 죄에서 구원받기를 원한다면 희망이 있는 것이다.(행2:37; 행16:30)

(3) 개혁(Reformation)

가끔 계속해서 삶의 개혁이 일어난다.
더러운 귀신이(unclean spirit) 자기가 나온 집으로 다시 돌아가고자 하여 다시 돌아갔다.
그 결과 더 악한 귀신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형편이 그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었다(마12:43-45).
사도 베드로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만일 저희가 우리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니.”(벧후2:20).
사람의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변혁된다.
그렇다고 중생의 사역이 이 사람 속에 완전하게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비록 사람들 속에 선한 심정이 있고 하나님의 사랑이 효과가 있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은 결과적으로는 유익한 것들을 잃고 손실도 보고 더 큰 죄악에 빠져 병들게 되는 일이 허다하다.

이러한 경우를 살펴보자.
어떤 사람은 삶의 목적과 계획을 위한 빛과 확신에 대하여 개성이 되지 않고, 자신감도 잃고 그리스도에게로 나온다.
주님께 나와서도 참여도가 약하고 믿음이 약해지고 심령이 부패하게 되고 나중에는 흔적도 자취도 남지 않고 만다.
또한 다른 사람들은 육체의 정욕에 압도당하여서 정욕에 지고 격렬한 유혹에 패하고 죄짓고 그들의 심령은 초창기보다 열배 이상 더 악한 상태로 떨어진다.
그 외에 다른 사람들의 경우 하나님의 사역이 그들에게 분명히 나타나, 현저하게 삶에 개혁(reformation)이 일어나고 예배에 참석도 한다.

그러나 이 사람이 육욕적인 마음으로 기울어져서 악습을 시작하게 될 때 그의 마음은 선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 위한 마음으로 준비되지 못한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출처 : 창골산 봉서방
글쓴이 : 봉서방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