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실하신 우리 하나님 (신 7:9-11)
이 시간에 “신실하신 우리 하나님”이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불란서에서 “마지막 방어선”이란 벽을 쌓고 그 이름을 “마지노선”(Maginof Line)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최신식의 무기를 설치해 놓았습니다. 그리고 “이 방어선을 결코 넘지 못한다.”고 장담했습니다. 그러나 그 마지노선은 독일군의 공격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영국도 싱가포르에 방어벽을 쌓고 바다를 향해 무기를 설치해 놓았지만 일본군에 의해 점령당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인간이 나를 위해 만든 방어선은 다 무너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 방어선이 학식이든 능력이든 물질이든 권세이든 건강이든 인맥이든 그 무엇이든 세상에 무너지지 않을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절대 안전한 곳이 있습니다. 바로 신실하신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계신 한 성도는 결코 쓰러지지 않습니다. 어떤 원수도 우리를 정복할 수 없습니다. 이 시간 이 신실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에게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럼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어디서 볼 수 있을까요?
1. 우리를 구원하심에서 볼 수 있습니다.
고전1:9에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더불어 교제케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라고 하셨습니다. 여기 ‘미쁘시다’(faithful)는 말은 바로 ‘신실하다’ ‘미덥다’는 의미입니다. 참으로 믿음직스럽기 한이 없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영원히 불가능한 일이 멸망에서 구원이요, 영생입니다. 그것을 위하여 사람들은 종교나 수양이나 철학이나 과학 등 온갖 피나는 방법을 다 동원합니다. 그러나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이 일을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그에게 우리 죄를 담당하게 하시고 성령을 보내주셔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우리를 주님의 손에서 뺏을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여러분 중에도 일생 이것저것 다 해보고 안 되서 하나님 앞에 나오셨지요? 잘못된 것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돌아온 것은 참으로 잘하신 것입니다. 하나님 말고는 세상에 어떤 희망도 없습니다. 그래서 행4:12에 베드로는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습니다.
2. 하나님은 죄를 용서하심에도 신실하십니다.
요일1:9에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faithful)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 “미쁘시고”가 바로 ‘신실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용서가 신실하다는 것은 하나님만이 완전한 용서를 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도 용서할 수 있지만 완전한 용서란 불가능합니다. 고통의 상처가 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잘 용서하지 못할 뿐 아니라 용서를 해도 마음에서 용서를 물리고 맙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용서에 있어서도 신실하십니다. 사38:17에 “나의 모든 죄는 주의 등 뒤에 던지셨나이다.” 했고, 사43:25에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용서는 영원하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지만 우리의 죄 만큼은 영원히 망각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만큼 용서에 있어서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3.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우리의 삶에도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의식주와 모든 쓸 것을 책임져 주십니다. 우리들이 일하면서도 항상 이 기본적인 확신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마6:25-33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40년간 책임지실 때 한 번이라도 의식주를 끊으신 적이 있었나요? 능력이 없어 굶긴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코에 넘치도록 고기를 주신 적도 있었습니다. 우리의 삶도 책임지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믿음이 우리에게 형통을 줄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태 6장의 말씀을 날마다 외우시고 묵상하세요. 우리가 가난한 나라를 식량으로 돕는 것도 필요하지만 이 약속의 말씀을 전해주는 것이 최고의 선물이 됩니다. 왜냐하면 이것을 말씀하신 하나님은 신실하시기 때문입니다.
4.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시험 당할 때도 나타납니다.
고전10:13에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faithful, 신실하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시험 당할 때 하나님께서 도우신다는 말씀입니다.
제자들이 밤에 갈릴리 바다를 건너 가다가 풍랑을 만났을 때 누가 나타나 도우셨습니까? 예수님이 도우셨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어려운 시험 당할 때 하나님이 도우십니다. 세상에 시험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가 시험 들 수밖에 없을 때 하나님께서는 누구의 기도를 움직이셔서라도 우리를 도우십니다. 하나님께 부르짖으세요. 하나님께서 반드시 도와주실 것입니다. 시험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 반드시 피할 길을 내사 능히 감당하게 하십니다.
4.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심에도 신실하십니다.
왕상8:56에 “여호와를 찬송할찌로다 저가 무릇 허하신 대로 그 백성 이스라엘에게 태평을 주셨으니 그 종 모세를 빙자하여 무릇 허하신 그 선한 말씀이 하나도 이루지 않음이 없도다.”고 하셨습니다. 사람은 식언하여 내가 언제 그랬느냐면서 그 말을 먹어버립니다. 그리고 “모르겠다. 기억 안 난다.” 발을 뺍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신 말씀을 영원히 지키십니다. 하나님처럼 약속 잘 지키시는 분은 없습니다. 그 약속은 신실하셔서 수천 년이 지나도 변함없습니다. 그래서 아담과 노아와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약속하신 하나님께서는 그 약속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주시고 또 약속하신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주셨습니다. 그리고 장차 그 약속대로 재림하시게 될 것입니다. 지금도 성경의 수많은 약속들을 믿는 자에게 하나님은 지금도 변함없이 이루어주십니다.
5. 하나님은 내세까지도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벧전4:19에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 그 영혼을 미쁘신 조물주께 부탁할지어다.”라고 했습니다. 조물주란 그 생명에 대한 최고의 권위자입니다. 생명을 있게도 하시고 없게도 하시고 죽이시기도 하시고 살리시기도 하시고 병들게도 하시고 고치시기도 하시고 부족하게도 하시고 온전케 하시기도 하시고 지상에 놔두시기도 하시고 영원한 행복으로 인도하실 수 있는 분이 조물주이십니다. 그러므로 어떤 고난을 당해도 조물주이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책임져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스데반 집사를 보세요. 그는 박해를 당해 돌에 맞아 죽어가지만 그 영혼을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시지 않습니까? 마지막 자기 영혼을 부탁한 십자가의 강도에게 주님은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셨습니다. 사람은 그 누구도 인간의 사후까지는 함께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영원히 책임지시고 마귀에게 결코 뺏기는 법이 없으십니다. 우리 주님은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우리의 거할 집을 다 마련해 놓으시고 우리 영혼을 데리러 오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재림하셔서 우리의 육체마저 영광의 형체로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 그때에 주 안에서 죽은 자들이 다시 살아나고 살아 있는 성도들은 들려 올려 공중에서 주님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그 때부터 성도에게는 영원한 행복만이 기다리게 됩니다. 그러나 구원받지 못한 영혼들은 심판을 받고 영혼과 육체가 함께 영원한 지옥에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의 모든 마지노선은 다 무너져도 하나님은 신실하신 우리의 영원한 마지노선이십니다. 우리에게 신실하신 하나님이 계시니 얼마나 든든합니까? 이 시간 하나님께서 우리 구원과 삶과 용서와 시험 당할 때, 약속과, 우리의 미래까지도 책임지시는 분이심을 믿고 견고하고 흔들리지 않는 사랑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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