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질그릇이요, 우리 주님과 복음은 보배로다
고린도후서 4:1-7
1 그러므로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
2 이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속임으로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추천하노라
3 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리었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어진 것이라
4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5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6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1절의 ‘그러므로’라는 의미는 고린도후서 3장까지의 내용을 담고 있는 접속사로서 “새언약이 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너희가 받았으니”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1절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영광스러운 새언약의 복음의 직분을 받은 것은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입은 것이다”라는 뜻입니다.
이 직분은 하나님께서 맡기신 복음 전파 사역을 말합니다. 복음으로 교회를 세우는 일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복음의 은혜를 깨달은 자들에게 복음 사역을 맡기십니다. 복음으로 교회를 세우는 일을 맡기십니다. 사역자이던 평신도이던 상관없이 누구든지 성령 안에서 복음을 깨달은 자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복음 사역을 감당해야 합니다. 이 일은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입은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인간의 역사와 우주 가운데 가장 영광스러운 직분입니다.
바울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위하여 위대하게 쓰인 인물 중에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울과 함께 동역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로마서 16장을 보면 바울과 동역했던 위대한 인물들이 약 30명 가량 나열되어 있습니다. 그들의 이름은 하나님의 기념책에 영원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특히 로마서 16장 3-4절을 보면 브리스가와 아굴라가 나옵니다. 이들은 일반 성도로서 바울의 동역자가 되었습니다. “너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하느니라”(롬 16:3-4).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은 복음을 깨달은 여러분들에게 복음과 하나님의 나라를 맡기십니다. 그러나 복음 사역자와 함께 동역하도록 부르십니다. 복음 사역자가 없이 복음의 직분을 감당하는 것은 특이한 경우 외에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일반 성도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사역자와 함께 동역할 때 복음의 직분을 힘차게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직분을 감당하기 위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조건들이 무엇입니까? 바울은 그 조건들을 나열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1절에 보니 낙심하지 않는 것입니다.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복음으로 주의 교회를 세우는 일은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 가운데 하나님께서 친히 맡기신 일입니다. 그러므로 포기할 수 없습니다. 물론 사탄의 방해와 공작이 심할 것입니다. 연약한 신자들이 마귀에게 속아서 엉뚱한 일들을 벌일 것입니다. 깨어있지 못한 자들이 시험에 들어 복음 사역을 막는 일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복음 사역은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이 맡긴 일이면 포기해도 되는데 주님이 맡기신 일이라 절대로 포기하거나 낙심해서는 안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이유는 우리를 위해 자신의 생명까지 다 바치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맡기신 일이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이 일은 이 우주에서 가장 영광스러우며 영원한 가치가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결코 어떤 일이 있더라도 복음의 동역자와 함께 주의 복음을 위해 수고하는 일을 포기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둘째는, 2절에서 말하는 것처럼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려야 합니다. ‘부끄러움의 일’이란 ‘드러내지 못할 창피스러운 일’이라는 뜻입니다. 만일 들켜서 노출될 경우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이라면 그것이 바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성도들의 숨은 행위가 노출될 때 ‘저러면서 하나님의 백성이라구, 그리스도인이라구, 위선자들 같으니라구, 너희들이나 예수 잘 믿어라’고 조롱을 합니다. 바로 이러한 숨은 일들이 ‘부끄러운 일’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종의 행위들을 숨어서 하는데 그들은 결코 그 숨은 일들이 들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가 회개하지 않는한 반드시 성도의 부끄러운 일을 드러내십니다. 이러한 일들로는 부정직한 말, 사기, 토색, 남의 흉을 보는 말, 위선, 폭행, 음란한 행위, 중독, 은혜가 되지 않는 삶의 스타일 등등이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직분을 감당하는 자가 숨은 부끄러운 일을 하다가 들통나면 얼마나 복음이 가리워지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 삶 속에 남들이 손가락질 할 만한 부끄러운 습관이나 행위들이 있으면 더 늦기 전에 과감히 버려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서 믿지 않는 자들이나 믿음이 연약한 자들에게 복음을 가릴 빌미를 마련해 주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셋째는, 속임으로 행하는 것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복음은 이 우주에게 가장 정직한 소식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나타내고 복음의 역사를 보기를 원한다면 우리의 삶에 꾀나 속임수나 궤휼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그러므로 진실하지 않은 사람은 복음 전파의 직분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똑똑한 사람보다, 명석한 사람보다, 박사보다, 돈 많은 사람보다, 권력가보다 자신의 죄악됨을 고백하는 진실한 사람을 복음 사역자로 부르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이는 하나님과 사람에게 진실하며 속이는 것이 없어야 복음의 직분을 감당할 수 있고 또한 주님의 교회를 세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특별히 기억해야 할 것은 복음의 역사는 세상 방법으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인간의 세속적인 방법으로 복음의 일들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사람을 많이 모아놓는 것이 복음 사역이 아닙니다. 성령이 역사하셔야 복음의 역사입니다. 성령은 오직 하나님의 방법에 진실할 때에만 반응하십니다. 즉, 복음 사역과 하나님의 나라는 기도와 말씀 선포와 순종을 통한 성령의 역사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속임’이란 '교활' 또는 `꾀’, ‘간교’함을 말합니다. 복음의 역사는 결코 ‘속임’과 함께 하지 않습니다.
특이한 사실은 바울은 ‘속임’을 사용할 때 언제나 사탄과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고린도후서 11장 3절에 같은 단어가 있습니다.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물론 한글 개정 개역은 이 구절을 ‘간계’라고 번역하고 ‘속임’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아무튼 원어로는 같은데, 사탄이 하와를 미혹한 방법이 속임수, 즉 간계라는 것입니다. 교활함입니다. 따라서 교활한 방법은 사탄의 것이기 때문에 복음 사역을 이룰 수 없습니다. 속이는 자는 결코 하나님의 복음의 교회를 세울 수 없습니다.
창세기 2장과 3장을 보면 사탄의 전형적인 간계함이 무엇인지 폭로하고 있습니다. 그의 간계함은 말씀을 변조하는 것입니다.
먼저 창세기 2장 16-17절을 보겠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그러나 창세기 3장을 보면 사탄의 간계함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왜곡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창 3:1-3). 결국 사탄은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함으로써 하와로 하여금 하나님을 오해하게 만드는데 성공했습니다.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창 3:4-5). 사탄이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너희들에게 아주 인색하고 뭔가를 두려워하고 있다. 즉, 너희들이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처럼 신이 될까봐 두려워하는 것이다.” 사탄은 이같은 고도의 간계함을 사용해서 아담과 아하의 마음 속에 사랑의 하나님을 이기적인 폭군으로 만드는데 성공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조심하기 바랍니다. 우리가 기도하지 않고 깨어 있지 않으면 사탄의 간계에 너무나 쉽게 빠집니다. 죄가 전혀 없던 하와와 아담도 사탄의 간계에 빠졌다면 우리처럼 죄 많고 연약한 자들이야 얼마나 쉽게 사탄의 간계에 빠지겠습니까? 우리가 깨어있지 못하고 사탄의 간계함에 빠질 때 우리 역시 불평불만이 생기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변조하여 자기 뜻을 이루는 간교한 자들이 됩니다. 속이는 자들이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느 순간에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면서 사탄에게 이용 당하여 하나님의 복음을 막고, 교회의 부흥을 막고, 하나님의 영광을 어지럽게 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중요한 사실은 사탄의 간계에 빠진 자들마다 사탄처럼 똑같이 간계한 모습을 나타낸다는 점입니다. 바울 당시 고린도 교회 내에는 사탄의 간계함에 빠진 자들이 바울에 대하여 악평을 하며 복음을 방해했습니다. 고린도후서 3장을 보면 바울이 거짓 사도라는 소문이 나돌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발행한 추천서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거짓 사도라는 것입니다. 이때 바울을 대적한 자들은 여러 거짓과 간계를 사용하였습니다.
그들이 거짓으로 선전하며 바울을 비방합니다. “바울, 그 사람은 거짓 사도다. 그는 하나님께 벌을 받아서 가시가 있다. 그는 말이 둔하다. 우리가 왜 그의 가르침을 받아야 하는가? 사람이 구원을 얻으려면 모세의 율법을 지켜야 한다. 십자가의 은혜만으로 구원을 얻는다니 말이 되느냐! 바울 그는 이단이다. 그가 과거에 얼마나 나쁜 사람이었는지 여러분들은 아느냐!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사도의 직분을 맡겼을리 없다.” 이런 식으로 바울을 헐뜯으며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막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고린도교회에게 이러한 간계에 넘어가지 말 것을 당부합니다. “너희는 이 때까지 우리가 자기 변명을 하는 줄로 생각하는구나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앞에 말하노라 사랑하는 자들아 이 모든 것은 너희의 덕을 세우기 위함이니라. 내가 갈 때에 너희를 내가 원하는 것과 같이 보지 못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너희가 원하지 않는 것과 같이 보일까 두려워하며 또 다툼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비방과 수군거림과 거만함과 혼란이 있을까 두려워하고 또 내가 다시 갈 때에 내 하나님이 나를 너희 앞에서 낮추실까 두려워하노라”(고후 12:19-20). 바울은 복음을 막는 이러한 모든 간계들과 손을 끊으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간계에 넘어가 복음 사역을 막는 자가 될 것을 경고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탄의 간계에 결코 빠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남을 속이거나 세상을 속이는 일에 동참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사탄의 간계에 빠진 자들은 헛된 신앙을 갖고 거짓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본인들은 신앙 생활을 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사탄의 노리개가 되어 철저하게 비참한 인생을 살아갈 것입니다. 여호와의 증인 등, 이단에 빠진 자들을 보면 사탄의 간계에 빠진 자들의 모습이 어떠한지를 쉽게 알아 볼 수 있습니다. 한국 교회를 더럽히는 하이에나와 같은 신천지를 보십시오. 그들은 복음을 어지럽게 하고 참된 교회를 어지럽게 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의 결국은 언제나 비참입니다. 그러나 긍휼을 입은 우리는 언제나 주님을 바라보면서 진실하게 주께서 맡기신 복음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언제나 진실하고 정직해야 하나님의 복음 사역에 귀하게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넷째로, 주께서 맡기신 직분을 온전히 감당하기 위해서는 말씀을 혼잡하게 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사람의 의견을 넣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말씀 그대로 정직히 증거해야 합니다. 이렇게 되려면, 복음을 잘 알아야 합니다. 복음을 잘 알수록 영적 분별력이 생깁니다. 영적 분별력이 없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게 합니다. 즉, 자기 생각을 많이 삽입합니다. 특히 무서운 것은 말씀을 혼잡케 하는 사람들은 말씀을 그대로 전하지 않고 자신의 입장을 주장하기 위해 한쪽으로 말씀을 사용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일반적으로 자신의 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의 티를 보는 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여 적용합니다. 바울은 당부합니다. “인간의 생각으로 복음을 혼잡하게 하지 말라. 오직 하나님 앞에서 떳떳한 양심으로 복음을 그대로 증거하라.”
이렇게 복음의 직분을 감당할 때 그 복음에는 성령이 함께 하십니다. 그러면 그 복음은 하나님이 친히 선포하시는 복음이 됩니다. 숨은 부끄러운 일이 없고, 속임 가운데 행하지 않고, 하나님의 복음을 인간의 생각으로 혼잡하게 하지 않고 선포할 때 그 복음은 하나님의 복음이 되는 것입니다. 이때 성령께서 친히 증거하십니다. 그러면 복음을 들은 각 사람의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 반응하게 됩니다. 그 반응은 둘 중의 하나로 자명하게 나타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대항하는 반항으로 나타나던지 아니면 영접함으로 나타납니다. 이때 순전한 하나님의 말씀이 증거되고 선포됨에도 각 사람의 양심 속에 복음이 증거되지 않는 이유가 있다면 그 이유는 그들은 ‘망하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복음이 증거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 그들은 망하는 자들인 것입니다.
그런데 왜 그들에게 주의 자명한 복음이 임하지 아니하는 것입니까? 그 이유는 세상 신, 즉 사탄과 그의 부하들인 타락한 천사들이 그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공개적으로 설교했습니다. 또한 성령 안에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을 받지 않는 자들은 그 마음에 수건이 가리워져 있었습니다. 아집의 수건, 죄악의 수건, 교만의 수건, 자기 의의 수건이 가리워져 있었습니다. 그들이 복음을 듣고도 하나님의 영광을 보지 못하는 것은 사탄이 그 배후에서 역사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전적으로 인간 자신의 어리석음과 완고함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을 입은 자들로서 주의 복음을 듣고 주께로 돌아왔습니다. 어두움 가운데 있었던 우리의 마음 속에 복음을 통한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비추어지면서 우리들은 빛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보며 주께로 돌아온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큽니까? 얼마나 감사합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복음의 빛을 비추어 주실 때마다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보게 됩니다. 이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영광이요, 우리의 모든 것이 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우리도 복음을 증거합니다. 그 이유는 이 어두운 세상에 예수가 누구신지 알게 하기 위해, 또한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예수의 얼굴에 있음을 온 세상에 알게 하려고 전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5절에서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종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한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우리를 전파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를 전파한다는 것은 잡초를 심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를 전파한다는 것은 예수님을 높이는 대신에 복음을 수단으로 하여 내 주장을 말하고 내 영역을 넓히며 내 이권을 주장하는 것을 말합니다. 자기 이름을 내며 자기 영광을 구하기 위해 자기 뜻을 관철하려는 자세가 우리를 전파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를 전파하면 전파 이후에 예수님의 십자가와 공의와 사랑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냄새나는 인간의 일들이 나타납니다. 즉,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갈 5:19-21)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 예수를 전파합니다. 또한 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종이 됩니다. 즉, 예수를 위하여, 복음을 위하여 모든 사람의 종이 될 수 있습니다. 주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복음이 증거되는 일이라면 얼마든지 모든 사람의 종이 될 수 있습니다. 멸시와 천대와 오해와 비난을 받아도 개의치 않고 복음을 전파할 수 있습니다. 이는 우리에게 맡겨진 일은 십자가의 은혜로 주어진 것으로서 가장 영광된 일이기 때문입니다. 현재 이 땅에서 복음을 전파하는 일은 푸대접을 받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다음 세상이 임할 때 우리는 가장 큰 영광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삶과 고백으로 복음을 전파하며 나아가 주의 몸된 복음의 교회를 세우는 일에 전념하기 바랍니다. 이 일은 우주에게 가장 소중하고 영광스러운 직분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마지막으로 오늘 본문은 매우 중요한 진리 하나를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7절입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후 4:7). 이 구절은 복음을 가리우는 것과 관련되어 읽어야 하는 구절입니다. 여기서 질그릇은 복음을 증거하는 자들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복음을 가리우는 것은 말씀 증거자입니다. 말씀 증거자가 복음을 온전히 전하면 복음을 듣는 사람들의 마음이 빛되신 영광스러운 하나님께로 인도됩니다. 그러나 종종 복음을 전파한다는 자들이 도리어 복음을 가리우는 수건 노릇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어떠한 전파자들이 수건 노릇을 합니까? 자기 자랑을 하는 자들입니다. 이 세상의 형통을 자랑하는 자들은 복음을 가리는 자들입니다. 말씀을 전하는 자들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주 되심을 전파하는 가운데 오직 주님을 증거해야 합니다. 만일 복음 전파자가 자신에 대하여 말할 때가 있다면, 주 예수께서 베푸신 은혜로 인해 복음을 깨닫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 외에는 자신들에 대하여 아무 것도 말할 것이 없습니다. 복음 전파자가 자기를 자랑하며 자신을 내세울 때 보배되신 예수가 증거되는 것이 아니라 질그릇이 증거됩니다. 그것이 바로 복음의 영광을 가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 증거자는 언제나 "그리스도의 주 되신 것"을 전파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복음을 가리는 자가 됩니다.
바울이 선포합니다. “능력의 심히 큰 것은 복음에 있지 사람에게 있지 않도다.”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고전 2:4-5).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너무나 값진 보배, 즉 하나님의 영광의 본체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안에 보내셨습니다. 우주 보다 귀한 값진 보배가 죄많고 값없고 볼품없고 깨지기 쉬운 우리라는 질그릇에 담겨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은 값진 보배는 우리 안에 있는 예수님이지 내가 아니란 사실입니다.
만일 우리가 질그릇에 촛점을 맞추어 질그릇을 높이면 우리는 서로 망합니다. 복음의 직분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도구가 될 수 없습니다. 질그릇끼리 서로 다투고 싸우게 됩니다. 또는 질그릇을 하나님 자리까지 올립니다. 아니면 질그릇끼리 키재기를 합니다. 누가 더 깨끗하냐! 누가 더 화려하냐? 누가 더 견고하냐? 그러면서 한번 부딪쳐 볼까? 어느새 질그릇을 내세우는 자들은 서로 물고 싸우면서 산산 조각이 나서 멸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탄이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하는 전략은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의 영광의 깃발을 보지 못하게 하고 질그릇된 자신을 전파하거나 혹은 질그릇과 같은 다른 사람들의 허물과 잘못을 보면서 다투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성도들의 공동체는 믿음을 잃고 파선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질그릇이며 그 안에 보배가 담겨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겸손해야 합니다. 보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귀한 것이지 우리 자신 때문이 아닙니다. 기억합니까? 성령이 삼손에게서 떠나자 그는 짐승처럼 버림받았습니다. 그러나 다시 사명을 찾고 믿음을 회복 했을 때 그는 귀중히 쓰임을 받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보배로운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담고 있을 때만, 우리의 생명과 삶이 하나님 앞에서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세상의 조건을 갖춘 후에 교회 공동체에서 인정을 받을 수 있다는 착각을 버리기 바랍니다. 돈이 있어야, 명예와 권력이 있어야 복음을 위해 살 수 있다고 오해 없기를 바랍니다. 도리어 복음 전파에 해가 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은 기껏해야 질그릇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내게 아무 것도 없어도 이 우주에서 가장 귀한 직분을 감당할 수 있다고 믿기 바랍니다. 직분자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흔들리지 않는 믿음과 충성일 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모두 질그릇 안에 담긴 보배를 나타내야 하는 사명을 받은 자들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질그릇에 신경을 쓰고 질그릇을 포장하려고 한다면 어느새 보배의 빛을 잃게 될 것입니다. 사실 복음이 없고 진리가 없고 주님이 없는 인생은 자기 의와 세상 자랑으로 질그릇을 포장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인생은 하나님 앞에서 전혀 쓸모없는 인생으로서 죽음 앞에서 모든 것을 다 잃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단지 질그릇입니다. 보배이신 주님을 떠나면 우리는 당장 영광스럽고 존귀한 모습에서 떨어져 단지 죄 덩어리의 비참한 모습 밖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또한 보배를 잃으면 우리는 당장 사탄의 놀이개가 됩니다. 따라서 주님만을 늘 모시고 사는 참된 복음의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언제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나는 질그릇이요, 우리 주님과 복음은 보배로다.”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은 하나님의 보배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가운데 있기 때문에 우리와 함께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기 바랍니다. 오늘도 복음의 직분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기억하면서, 내 삶 가운데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속임으로 행하던 것을 다 버리며, 하나님의 말씀에 내 의견을 달지 말고, 오직 진리의 복음을 나타내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스데반 황 목사
(인천 그리스도의 보혈 교회)
010-7732-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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