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을 닮아가는 교회
- 저자 : 더글러스 웹스터
풀러 신학교의 도날드 맥가브란(D.McGavran)이 'The Bridges of God'와 'How Churches Grow'라는 두 권의 책을 저술하면서 '교회성장학'이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것은 현재 피터 와그너(P.Wagner)를 중심으로 더욱 발전하고 확산되었다. 교회성장학은 교회의 '수적 증가'만을 목표로 한다는 피상적 이해와는 달리 '질적 성숙'도 중요시한다(참조,<교회성장원리>생명의 말씀사).
영서 제목이 'Selling Jesus'인 본서는 '교회성장론의 부작용'이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다. 저자의 기본적인 명제는 '교회성장론, 특히 교회성장을 위한 마케팅은 예수를 파는 행위'라는 것이다. 교회성장에 대한 수많은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그것에 의해 실제 많은 교회들이 성장하는 오늘날 저자의 이러한 주장은 과연 타당성을 가지는가? 물론 저자는 교회성장론 자체를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그의 논의는 특히죠지 바나(G.Barna)를 중심으로 한 '교회의 마케팅'에 맞추어져 있다. 그렇다면 문제의 초점은 '교회성장론의 부작용'이 아니라 '교회 마케팅의 정당성 여부'가 된다고 하겠다. 교회성장론의 주요한 부분으로 나타나는 '교회 마케팅'을 우리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
필자는 본서를 읽으면서 저자와 같은 노선이라고 생각되는 책들을 떠올렸다. 키에르케고르(S.Kierkegaard)의 <순간>과 <그리스도교의 훈련>(종로서적), 그레고리 루이스(G.Lewis)의 <하나님을 파는 세일즈맨>(양무리서원), 죤 맥아더(J.MacArthur Jr.)의 <복음을 부끄러워하는 교회>(생명의 말씀사)와 <우리는 그리스도만으로 충분하다>(생명의 샘), 로이드 죤스(D.Lloyd Jones)의 <부흥>(생명의 말씀사) 등이 그것들이다.
이들은 모두 대중적인 기독교와 세상적 방법에 의한 교회성장/부흥을 반대한다.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 자신에 의해서 세워진 것과 같이 하나님의 원리와 방법에 의해서만 존재하고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의 공통적인 주장이다. 그러므로 이들의 일관된 주장에 의하면 마케팅은 교회성장을 위해 도입될 수 없는 방법이라고 결론 지워진다.
이제 본서의 구성과 각 장의 내용을 개괄한 후에 이 부분에 대한 논의를 정리해 보고자 한다. 본서는 8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반부(1-5장)는 마케팅론의 소개와 비판이, 후반부(6-8장)는 저자의 적극적인 주장과 논지가 개진되고 있다. 부록에서는 그 구체적인 대안으로 '신앙 공동체를 위한 실천적 제안들'이 제시되어 있는데, 이것을 절대화할 수는 없지만 성경적인 방법으로 목회를 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좋은 참고가 될 수 있다.
1장 '쉬워진 교회 성장'은 마케팅 이론을 이용하여 사람들이 '복음이라는 상품'을 살 수 밖에 없게 만들자는 주장을 소개한다. 그러나 자연인(自然人)들에게 복음과 십자가는 매우 생소하고 혐오스러운 것이어서(고전1:18, 21-23) '다른 복음'(고후11:4)으로 변질시키지 않고는 그것을 사도록 만들 수 없다. 우리가 복음의 본질에 충실하기 위해서는 '쉬워진 교회 성장'을 어려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것은 키에르케고르가 동시대인들에게 참 기독교를 제시하고자 현재 그들이 믿는 것은 참 기독교가 아님을 갈파해야 했던 것과도 같다.
2장 '교회를 마케팅 함'은 교회성장을 위해 성경적이지 않은 방법들이 동원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많은 신학생들이나 목회자들은 성경보다는 교회 마케팅을 배우고자 하는 열심을 보인다. 교회 마케팅 방법의 수용을 합리화하기 위해 제시되는 이유들은 다음과 같다 : '효과적인 복음전도, 소비지향적인 문화에의 적응, 마케팅 방법은 도덕적으로 중립적임, 유사 교회 집단의 전략을 모방함, 수적 성장과 영적 성장을 위한 구별된 전략, 예수님의 전례'.
3장 '전통 교회'에서는 현대인들의 눈에 비춰지는 전통 교회의 모습을 제시한다. 이들의 지적(교회성장과 전도에 대한 비전을 잃어버림, 싱싱하지 못하고 구태의연함, 비관주의적 의식구조)에는 우리가 받아들이고 시정해야 할 만한 통찰력이 분명히 있다! 그러나 교회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서 세워지는 것이며, 사람이 아닌 하나님의 기준에 의해 평가되어져야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에게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마케팅론자들의 기준에 합하는 교회가 반드시 하나님의 기준에 합하는 것은 아니다.
4장 '표적이 되는 청중'은 마케팅론자들이 표적으로 삼는 청중은 베이비 붐 세대이며, 그들에게만 집중하는 것은 성경적이지 않음을 지적한다. 베이비 붐 세대는 완벽한 소비자이며 성공 추구자요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자들이다. 예수님은 전형적인 베이비 붐 세대의 대표자라고 할 수 있는 '젊은 부자 관원'을 사랑하셨지만(막10:21), 예수님만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돌아가는 그를 붙잡거나 타협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특정계층을 표적 청중으로 삼지 않으시고 모든 사람들을 다상대하셨다. 그러므로 표적 청중의 한정은 잘못이다.
5장 '사람들이 느끼는 필요를 충족시킴'은 마케팅론자들의 표적 청중이 느끼는 필요와 충족 방법을 보여준다. 그들의 필요는 물질주의적, 자기중심적, 개인주의적이다. 그들은 형식과 내용을 모두 가지고자 한다. 마케팅론자들은 욕구충족을 위해 짧은 설교(20분 이내)와 실제적인 주제의 선택, 그리고 오락적인 프로그램 등을 제시한다. 그러나 이것은 세계선교와 사회정의 실현의 외면, 교회의 주인(그리스도/소비자)에 대한 혼동, 신앙공동체 포기, 욕망의 횡포에 대한 볼모화 등 비싼 대가를 치르게 한다. 이것은 사람들이 기독교에 자신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기독교를 맞추게 만든다.
6장 '사람들이 느끼는 필요를 변화시킴'부터는 저자의 논지가 적극적으로 개진된다. 교회는 교인들의 욕구를 파악하고 채워주고자 노력하되 특히 그들의 근원적인 욕구(인격적인 친밀함, 가까운 교제)를 파악해야 한다. 신앙공동체는 사람들이 시장터의 생리에 계속 정신을 팔도록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중심적인 대안을 제공해 주어야 한다. 교회는 교인들이 경쟁하는 마음에서 긍휼히 여기는 마음, 행위에서 선포, '되는대로' 식의 태도에서 강렬한 태도, 흥분에서 교제로 변화하도록 이끌어야 한다.
7장 '탁월함을 추구하며'에서는 현대 교회들이 추구하고 있는 소위 '탁월함'의 기준(교인들의 욕구를 채움으로 결과되는 교인수의 증가와 교회 건축)이 예수님이 제시하신 목표와 거리가 있음을 지적한다. 진정한 탁월함은 교인들의 욕구를 최고로 채워주는 것이 아니라 거룩함과 경건함을 세워가는 것이다. 그것은 모든 것 위에 뛰어나신 그리스도(골1:15-18)를 높이며 그분에게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죤 맥아더는 현대 교회에 들어오는 심리학, 실용주의, 신비주의를 배격하고 그리스도만으로 충분함을 주장한다.
8장 '신앙의 공동체'에서는 진정한 공동체의 모습이 제시된다. 교회성장은 새로운 상품의 구매가 아니라, 기도와 예배와 순종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役事)에 온전하고 충실하게 참여하는 것에 달려있다.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 세상의 방법을 따르는 것은 옳지 않다. 신앙 공동체에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경륜, 그리스도인들의 친밀한 교제와 공동체 생활, 기도와 예배, 세례와 성찬, 구제와 선교에 새로이 헌신하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시장의 요구에 대한 민감성보다 영적 민감성이 필요하다.
저자는 서언 끝에 ꡒ솜씨 좋은 마케팅과 절충된 영성 사이에는 정교한 경계선이 있다ꡓ는 조지 바나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이 인용은 본서가 논증하고자 하는 문제의 핵심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다. 과연 '마케팅'과 '영성' 사이에는 '정교한 경계선'만이 존재할까? 바너의 말은 챨스 피니(C.Finney)의 주장을 생각나게 한다. 19세기 미국의 부흥운동을 주도한 피니의 '부흥론'의 핵심은 '인간이 부흥을 위한 조건들을 충족시킴으로 부흥을 가져올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참조,<진정한 부흥>생명의 말씀사). 물론 피니의 방법이 바너의 방법과 같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로이드 죤스의 반박을 생각해 보면 피니와 바너는 매우 유사한 입장에 서 있음을 알 수 있다.
로이드 죤스는 피니의 주장은 치명적이며 비성경적이라고 반박한다. '부흥'(교회성장)은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에 의해 좌우되지 않고 전적인 하나님의 주권에 의존하는 것이다. 물론 부흥의 역사에는 어느 정도 공통적인 유형이 있음을 인정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역사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부흥을 위한 캠패인'이든 '마케팅'이든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를 인간이 대신하기 위한 어떠한 활동도 올바르지 못하다. 물론 저자가 인정하듯이 마케팅론자들은 신앙적인 내용들을 전제로 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것을 전제하면서도 실제에 있어서는 성경적 원리와 일치하지 않는 방법을 사용한다는 것은 자체모순이다. 그러므로 교회성장을 위하여 기존의 신앙적이고 성경적인 방법을 외면하고 현대적이고 인위적인 수단을 동원하는 것은 잘못이다.
교회는 인간들을 구성원으로 하고 있는 '신적인 기관'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세상의 기관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리스도인이 세상 속에서 살아야 하지만 세상에 속해서는 안되듯이, 교회도 세상 속에 존재하지만 세상의 원리와 방법을 따라서는 안되는 것이다.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의미가 아닌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의미에서의 '세상과의 다름'이야말로 그리스도인과 교회가 하나님께 속했음을 가장 잘 나타내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ꡓ시편 1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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