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 신학 강의 노트
Prof. 노재관의 「주후 1996년도 제 1학기 바울 신학 강의 노트」
: 13개의 서신서들을 중심으로 바울의 사상을 조직적, 체계적 연구
1. 바울 사상의 배경
: 바울의 자료에 대한 신빙성을 인정할 만한 것은 사도행전과 13개의 서신들이 있다.
[바울의 헬라적 배경]
- 길리기아 다소에서 출생, 다소는 소아시아의 학문이 발달하고 철학이 왕성한 지역임.
오랜 기간 다소에서 성장했다면 그 영향이 지대하겠지만, 일찍 예루살렘에서 랍비 교육을 받았다면 헬라 사상의 영향은 크게 받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단정하기 어렵지만, 학자들 사이의 추측으로는 16세 경으로 받아 들인다.
* 바울의 로마 시민권 - “날 때부터”, 바울의 부모가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다는 이야기.
. 시민권을 얻는 방법 : 시민권을 삼, 공로로 부여 받음-사도 바울의 생업이 천막 제조업인 것을 미루어 그 조상이 전쟁에서 공로를 얻었을 가능성( 이것이 사실이라면, 바울에게는 세 가지의 이름이 존재하게 된다. 유대이름 사울과, 헬라 이름 바울, 그리고 가문을 해방시켜 준 로마인의 성을 가질 것이다).
사도행전 12장 까지는 유대인들을 상대한 사역이었으므로 “사울”이라는 이름을 사용했고, 그 이후에는 헬라인들을 위한 사역이었으므로 “바울”이라는 헬라식 이름을 사용.
* 초등 교육과 공교육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
: 헬라어를 잘 구사하고, Diatribe라는 수사학적인 논증방법(적대자와의 논쟁에 사용되던 화법)을 사용함. 헬라 시인 Aratus의 말을 인용(행17장 28절), Empimenides 의 시를 인용(딤1장 12절).
헬라의 정치, 경제, 사회에 대하여 익히 알고 있는 상황이었다
- 헬라 문화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반대 논증]
: 헬라적 배경보다 유대적인 배경이 강하다. 헬라 지역에서 태어나 일찍 예루살렘으로 이주했을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바울의 행적 : 다메섹 --- 아라비아 --- 길리기아
(길리기아에 연고자가 있을 가정이 가능하다).
유대인의 관습과 율례를 계속 지켜간다. 다소 지역에도 회당이 존재했을 것이므로 유대인의 율법 교육을 받았을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율법을 배운 것이 공적 교육의 기록이다. 랍비의 계보에 가말리엘 다음에 “바울”이 등장하는데, 이것은 바울이 대단한 신학자였음을 말하는 것이다.
“ 난 지 8일 만에 할례를 받고, 베냐민 지파이며, 히브리인중의 히브리인..”
부모의 신앙..... 유대 사회의 핵심 가문.... 히브리어를 유창히 사용한다는 말
[행 22:3 참고]
“길리기아 다소에서 낳고, 이 성(예루살렘)에서 자라...”, 율법을 배움 - 가장큰 영향을 주는 중요한 어린 시절을 예루살렘에서 자랐다고 변증함.
“바리새인” : 율법으로 엄한 교육을 받음(행26:5, 23:6), 랍비, 구약 신학에 능통한 학자 - 갈3:12, 랍비전승을 잘 알고 있었다.
샴마이 계열의 “가장 엄한 파를 쫓아서” 유대식 교육을 받음 - 유대적 배경에 깊이 뿌리 박고 있다.
[다마스 커스 Expirience]
: 김세윤, “ 바울신앙의 기원 ”(The originof Paul`s Gospel)
-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난 경험이 가장 크게 영향을 미쳤다고 논증.
“Christophany” : 그리스도의 현현, 사도 바울에게 그리스도를 계시하심.
고전 12장 - 다른 사도들에게 나타나신 것과 같은 동질의 사건 : 사도적 자의식을 가짐.
고린도전서 10장 이하에서 고난 받은 사도로 자신을 설명함.
- 하나님의 신적 계시의 단일성 : 구약의 하나님의 언약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신실하게
성취된 것을 바울이 깨닫게 됨.
“ 의인을 썩지 아니하게 하시고 다시 살림심 ” - 그리스도는 죄인이 아니라고 깨달음.
---기독교의 선포의 내용이 어떤 것인지 깨닫게 됨.-메시야의 예언에 대한 구약적 예언을 깨달음.
: 구원론과 더불어 기독론을 이해하게 됨.
구약에 예언된 가시적인 메시야 시대의 현상을 고민 - 종말의 구조를 이해함.
[갈1장 11절] “ 오직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
바울의 사상이 계시로 말미암았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갈라디아서는 논쟁중에 기록된 서신인데, 바울의 핵심적인 메시지를 예수님으로
부터 전달받았다고 강력하게 논증함.
다메섹 도상의 경험에서 복음의 핵심적 내용을 받고, 초대 교회로부터 가르침을 받음
고후 :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되니라 ” 예수님의 어록에서 발췌했을 것으로 추측.
* 사도 바울의 사도적 체험 *
: 삶의 현장에서, 선교의 현장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어떻게 적용되어야 할 것인지(ex:고린도 서신에서 열광주의자로 인한).
- 사도 바울의 사상적 영향 : 다마스커스 Expirience, 유대적 헬라적 배경, 초대 교회의 전승.
상황적 측면과 계시적 측면이 함께 고려되어져야 함.
2. 바울의 핍박과 회심
갈 1:13 - “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핍박하고 잔멸할 새....”, 매우 잔혹한 행동의 표현 형식.
*핍박의 이유 : 하나님과 율법에 대한 바울의 열심(민25장의 비느하스의 열심같은).
Aboth 1:2에 세계를 지탱하는 것은 율법, 성전, 사랑과 자비의 행위로 기록되어있는
데, 기독교의 이슈가 이러한 유대인들의 근본적인 문제를 거스르고 있다고
생각했으므로..
- 하나님의 백성의 순결과 언약을 지킴에 있어서 기독교를 핍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 나무에 달린 예수” (갈3:13-신21장 22~23을 인용) : 초대 기독교의 선포는 예수는
메시야로 다시 부활했다고 전하므로 하나님에 대한 신성 모독으로 여김 - 고전1:23 “십자
가에 못박힌 예수는 유대인의 꺼리는 것“.
- 예루살렘에서 많은 사람들을 핍박하고, 흩어진 사람들이 다마스커스등지로 이주하여 기독교 공동체를 이루고 있었음. 사울이 돌이킨 이후 여기에 머무렀음을 이야기함.
* Chritophany : 구약의하나님의 나타나심에 대한 표현 “Phany" , 예수님의 현현을 신적인 것으로
이해함. 부활한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 같은 동질의 만남으로 이야기함.
→ 다메섹 도상에서의 만남이 바울에게 매우 큰 의미로 작용했다는 증거.
? 하나님께서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계시하신 것(하나님안에 감추셨던 예수님).
승귀하신 “크리스토스”를 계시로 나타내 주심, “έν Χριστὀς”의 구원의 계시.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이 자신의 가르침은 계시로 되어진 것이라는 주장을 이러한 배경에서
이해하여야 한다.
? 벧 1:7,13. 재림에 대한 예언의 선취로 바울이 이해함.
예수님의 재림에 대하여 “ άπο καλυψις ” (παρυία) 로 표현하고 있다.
( 드러남, 나타남 ) - 선취.
⇒ θεὀς의 calling(소명)의 사건(이사야6장, 에스겔 1장과 비교) -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시는
Calling Vision.
갈 1:16 - “사도도 만나지 아니하고, 혈육과 의논하지 않고, 아라비아로 갔다.”
아라비아로 간 것은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받은 바울의 소명과 관계됨(고후11:32~34참고).
* 회당 전도 *
: 유대인들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이 있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이란, 유대교의 가르침을 존경하지만 개종하지 않은 사람들로 할례와
이방인을 위한 세례를 받지 않은 자들.
- 바울의 구원론 : 이방인 (유대인에게 복음을 받음) ----- 유대인(시기함)---복음으로 돌아 옴.
“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방인들의 환심을 얻고, 개종자들을 얻게 됨.
* 바울의 복음 *
“έυαγγελιον ” - 헬라적인 의미는 “전쟁에서의 승전보”, 또는 왕의 특별한 선포.
성경적 의미는 이사야 40장에 나타나는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의 이스라엘의
위로, 하나님의 통치“ 를 선포하는 것(눅4:16 - 예수님의 회당 이사야61장의
내용의 희년을 선포하심.
- 예수 그리스도의 삶, 인격 자체.
* 바울 : 1. 복을 계시로 받게 됨을 주장(다메섹에서).
2. 고린도 전서 15장 “내가 받은 것을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παραλαμβανω - 누군가에게로 부터 받다, 15장 3절 - 예수님의 부활, 누군가에게로
부터 전해 받음.
고린도 전서 11장 23절 - “주께 받은 것이니... 곧... ” 성만찬의 제정 = 제자들에게 들었지만
예수님의 가르침과 같다는 것을 강조.
1. 바울의 기독론
: 다메섹 사건 이전의 “ 하나님의 저주 받은 자 ”라는 생각에서 획기적인 전환.
1) Χρίστος : 구약적 배경 ‘ 맛샤’- 기름 부음을 받다. 헬라적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직분자를 세우는 의식(왕, 선지자, 제사장)
“ 왕들에 관한 시 ” (다윗왕가에 관한 언약), 시32:11 - 나단의 신탁.
“다윗의 후손의 성전 건축”
→ 메시야의 나라에 관한 언약이 확대되고 구체적으로 세워짐 (특별히 포로시대 이후)
→ 슥4:14의 “기름 부음 받은 두 사람” 즉, 스룹바벨(통치자), 예수아(제사장)→예수살렘의
독립과 의에 대한 기대가 시사됨 → “기름 부음 받은 지도자 ”
* 쿰란 공동체 : 아론의 제사장 계열과 다윗의 왕적 메시야에 대한 소망이 표현됨.
- 스갸라서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해석됨.
* 후기 유대교 : 다윗 왕가의 왕적 메시야로 기대되어짐 - “기름 부음 받은 자 ”는 곧 다윗의
후손이고 메시야적 존재로 이해됨.
[ 기름 부음 받음과 메시야의 연대 관계성 유지 ]
* 예수님의 메시야 자의식 *
: 예수께서는 자신이 메시야라는 언급을 하지 않았다.
- 마치 초대 교회와 복음서 기자드이 예수님을 메시야로 이해했다는 오해가 발생되기도 했다.
+ 베드로의 신앙 고백 : 마가복음 65~66년경에 쓰여졌다. 베드로가 살아 있을 거라는 가정과 아니면 사후에 마가가 베드로의 자료를 정리하여 저술, 초대 기독교에 그 고백이 받아 들여 지고 있었다,
과연 예수님 이후 30~35년 사이에 메시야가 아닌 존재가 메시야로 받아 들여 질 수 있었겠는가 ?
* 대제사장의 심문(막4장) : 다윗의 자손이 메시야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여겨지고 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직접 메시야를 소개해 줄 것으로 기대하였으므
로 예수님께서 “내가 그로라”라는 말은 참람한 것으로 받아 들여 지는
것이다.
- 예수님은 잘못 이해되어 지고 있는 메시야 개념을 바로 잡기 위해 “여호와의 고난받는 종”의 칭호를 자주 사용하심.
< 다윗의 자손으로서의 예수 >
: 초대 기독교가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으로 만들기 위해 족보를 사용했다는 것이 비평주의적 견해이다. 마태와 누가가 어떠한 자료를 가지고 기록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마태나 누가는 각각(특히 누가는) 예수님의 자료를 수집하여 기술했다고 증언함. 단지 마태는 왕의 족보로 이어지는 자료를 책했고, 누가는 조금 더 역사적으로 기술하여 유대인들의 족보를 사용했다. 이것은 장자 중심으로 내려 오는 이스라엘의 가계 제도 때문이다.
바울의 로마서 1장 3절에서 표현한 “다윗의 자손”이라는 것이 초대 교회의 찬양이었다면, 그 저작이 언제라고 하든지 당시 이미 초대 교회의 신앙 고백이 되어 있는 것이다.
- 예수님의 메시야 자의식이 있었다< 다윗의 자손에 대한 예수님 자신의 논증을 참고로 할 수 있다>.
* 바울의 메시야관에 대한 변화 *
: 강력한 다윗 왕권을 가져올 메시야가 아니라, 이사야의 예언에 나타난 고난받는 종으로서의 메시야, 고난과 부활, 선재자로서의 예수를 바울이 이해함.
하나님의 주권이 그리스도를 통해 시작되었고, 그리스도는 하늘의 왕권을 가져 오는 종말론적인 칭호이다.
로마서 9장 5절 - 예수님을 하나님과 동등한 위치에 있는 분으로 생각함.
* κυρίος 기독론 : “ 예수가 주시다 ” *
: 로마서 10장 9절, 빌립보서 2장 9절.
` 근동 지역 사마리아등에서는 종교적인 의미를 위해 사용하기도 하고, 일반적인 의미의 “주인”등으로도 사용함.
로마에서는 이 칭호가 황제에게 사용될 때에는 위의 두 가지 의미가 모두 다 포함된다.
70인경에서는 “여호와”를 대신하여 kyrios를 사용함 - 유대교에서는 kyrios가 하나님의 칭호로 사용됨.
: 예수께서는 자신을 ‘주’라고 직접 이야기 하시지는 않았지만, 간접적인 언급을 하심.
마가복음의 나귀를 이끌어 오라고 말씀하시며 “ 주가 쓰시겠다 ”라는 언명, “다윗이 주”라고 부른 것을 인용하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
* 바울 서신에서의 사용 :
1. 구약 성경의 인용 - “여호와”를 “큐리오스”로 사용.
2. 구약을 수정하여 인용하기도 하는데, “큐리오스”라는 말은 없는데 내용
상 하나님에 관한 것일 경우 “큐리오스”를 삽입함.
3. 구약에서는 여호와에 적용되는 것인데(롬10:13), 바울은 그것을 예수께 적용함
(고전 10장 21절, 17절).
4. 로마서 14장 16절, 적용이 명백치 않은 경우.
5. 빌 2장 11절 - 이사야를 인용 - “ 구약의 주”
--- “여호와”에게만 적용되는 것을 예수님께 적용함 : 예수님을 여호와 하나님과 본질적으로 같은 존재로 이해함.
“ μαραναθα ” - μαρανα - θα : 기도문으로 “ 주여, 오시옵소서 ”의 기원.
(기도문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μαρα - ναθα : 고백이나 선언문 형식의 “ 주께서 오시느니라 ”
--- 성찬과 관련하여 마무리 기도로 사용되어지며, 계시록 22장 20절에도 같이 적용됨
: 예배의 대상, 기도의 응답자.
바울은 “큐리오스”를 구원론과 관련시켜 다룬다. 여호와의 언약 관계 - 구원
교회와 “ 큐리오스 ”의 관계 : 예배의 대상으로서의 예수(고전11장 17절, 마라나다 기도를 참고).
만물의 통치자, 만물의 구속자. = 종말론적인 신앙고백.
* 예수님의 통치 기간 *
: 부활과 승천부터.
사단의 시험 “천하 만국을 주어 다스릴 권세를 네게 주리라 ”
언약에 신실하지 못한 아담과 하와의 권세를 사단이 잠정적으로 탈취하여 가지고 있었다.
- 왕으로 등극하심 :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의 계획을 이루시고 생명의 책을 넘겨 받으심.
만유의 주로 등극하셔서 하나님의 통치를 대신한다(시110:1 이하의 말씀을 인용, “제사장, 왕”- “내가 네 원수로하여금....”
고후 15:24~28 - “만물이 저에게 복종하게 하시기 까지...”
- 아버지의 주권을 회복하시는 것이 예수님의 사역 : 아담의 실패로 통치권이 사단에게 넘어감.
범죄함으로 빼앗긴 통치권을 예수님의 사역에 의해 완성됨.
* 예수님의 승천 *
: 빌 2장 9절 - 하늘에 있는 자, 땅에 있는 자, 땅 아래 있는 자 - 모든 피조 세계, 우주 Pil2:9,10.
교회 : 예수님의 주권에 온전히 굴복하는 자들, 하나님의 통치가 드러남.
하나님의 나라와 사단의 나라의 갈등, 두 세계.
[하나니의 형상] 기독론
- 요한의 로고스 기독론과 상통함.
바울이 구약 성경을 독특하게 이해함.
“창조” - “하나님의 형상대로 ” - 하나님의 사역을 대신 하는 자로 책임을 가지고 있는 존재.
1. 창 1장의 창조가 바울의 전재임.
2. 잠언의 “지혜”가 하나님의 형상 기독론과 관련성을 지님.
* “지혜”는 유대 신학에서 상당한 위치를 가지고 있다.
솔로몬의 지혜서 -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혜가 표현됨. 선재하는 신적 존재(솔로몬의 지혜서
는 주전 1세기 경에 바리새인에 의해 지어진 문서로 추측됨).
--- 인간을 보호해주는 존재, 홍수때에 의인을 구원함.
출애굽을 인도한 존재로 지혜가 묘사됨.
바울도 바리새파 출신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유대 신학에 능통했을 거라
는 추측을 쉽게 할 수 있고, 거기에서 “형상 기독론”을 추론해 냈을 것
이라고 생각됨.
* 지혜 신학의 배경 : 에스겔 1장 26절 “ 사람의 모양같은 것 ”을 봄, 에스겔은 이것을 “여호와
의 영광의 형상” 이라고 표현하여 그가 신적인 존재인 것을 말함.
( 신인 동형론 ).
다니엘서 7장 “인자같은 이”가 구름을 타고 옛적 부터 계신 이에게 나아 옴.
구름은 하나님의 나타나심의 구약적 표현과 항상 관련된다.
김세윤 교수는 [바울 복음의 기원}에서 바울이 다메섹에서 형상 기독론을
깨달았다고 추측함.
: 하나님께서 태초부터 계신 감추어진 아들을 본 것으로 바울은 기록함 : 에스겔, 다니엘, 이사야가 소명을 받을 때와 자신의 소명을 같은 동질의 것으로 주장함.
-- 바울이 선존재로서의 예수님을 당시의 지혜 문학과 관련하여 설명함.
* 형상 기록론의 의미 *
①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본질과 형상을 우리에게 내어 보이시고, 계시하심.
② 예수님은 영원전 부터 계신 신적 선존재. 지혜와 동일시
③ 예수님께서는 두 번째 아담이심, 그러나 예수님은 피조된 존재가 아님.
: 아담은 언약에 신실하지 못하여서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내지 못했고, 언약에도 실패함,
랍비들은 아담을 처음 족장, 첫 왕으로 아담의 타락전의 영광이 다시 회복될 것을 기대함.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어 천사들의 경배를 받는 존재, 클레멘트는 아담은 성육신한 하늘의 존재로 범죄하지 않았다고 기록했다.
* 필로가 이해하는 창세기 1장과 2장
: 1장 27절의 창조 - 처음 사람으로 하늘의 존재, 창조된 자가 아니고 스스로 생겨난 존재이다.
이 사람은 인간의 순수한 모형, 이상적인 인간, 즉 로고스.
2장 7절의 창조 - 지상의 사람, 역사적 아담, 죄인들의 조상.
로마서 5장 15절~ 27절 : 아담과 예수님을 비교함, 죄, 은혜, 사망, 생명, 두 사람의 영향력.
“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 ” - 영향력과 관련하여 이해하고 있었다.
아담을 구속사에서 그리스도의 모형으로 이해하고 있다
(R.Roperton의 모형론 참조).
“미드라쉬”는 아담의 타락이후에도 짐승들의 환영을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 막1장의 예수님의 시험후의 모습과 유사.
첫 아담(창2장 7절) : “산 영”이었다. “살려 주는 영” -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함.
고전 15장 46절에서 “첫 아담”- 신령한 자, 육있는 아담.
예수님의 “ 본질에 있어서도 신령한 자”,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선재성.
고전 15장 15절~ 49절 - 첫 아담으로 시작되는 인류, 둘 째 아담인 그리스도를 말미암아 시작된
새 인류 - 저주와 생명
: 그리스도를 통한 새 창조의 시작, 아담이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함.
J. Dunn (골로새서 주석) : 로마서 3장 23에도 아담 기독론이 등장한다고 말함.
- 한 때 인간이 가졌던 영광을 잃어 버림, 한 때 아담이 가졌던 영광을
암시한다.
* 로마서 7장 7절 ~ 25절의 해석상의 난점 *
7절~ 13절은 과거 시제, 14~ 25절은 현재 시제 : 1인칭 시점에서 기록된 것이며, 대표자로서, 자서전적으로 기록한 것이데, 이것은 “개인적 경험인가”의 문제.
Dunn은 이것이 개인적 경험의 자서전적 고백이 결코 아니라고 여김.
아담의 타락이(창 2,3장) 전제되어 졌다고 여기는 견해.
케제만 : 모든 것이 아담에게서 적용되지 않는 것이 없다고 여김, “대표적인 나”의 인간 전체.
첫 아담에 속한 자들의 절망적인 고백 - 두 번째 아담으로 인한 기쁨.
자서전적인 경험을 인간 전체의 것으로 여김(F.F부르스, 김세윤) : 구원받지 못한 자들의 절망적인 고백.
- 아담 기독론에 대한 논쟁에 로마서 7장 17절~ 25절이 중요한 논쟁의 대상이 됨.
* 종말론적인 새 인류의 머리는 “예수님”을 아담으로 묘사하고 있다.
* 바울의 인간 이해, 구원, 승리 *
: “하나님의 형상” 고린도 전서8장 1절 - 하나님을 위하여 지어진 존재, 피조물 가운데 특별한 존재.
희랍 철학 : 플라톤- 육신은 영혼의 무덤, 진정한 인간은 내면의 세계에 있다.
원자론자(유물론자) - 인간은 물질로 구성된 유기체.
알렉산드리아 학파 - 클레멘트, 그레고리 닛사 등의 서방 교부들은 영, 육, 혼의
삼분설
라틴 교부 (어거스틴) - 몸, 영혼의 2분설.
도이벨트, 안트 - 본질적인 인간, 단일체로서의 인간.
* 바울의 인간 이해 : 고전 12장 12~26절 “몸은 하나인데, 여러 가지 지체가 있다” - 생물학적
견해. 그러나 "soma"라는 표현은 육체가 아니라 내적 세계, 자아. 인간
자체를 의미한다. 부정적인 의미로도 “soma"가 사용됨(죄성, 인간의 연약성).
구약의 “ bassa" 는 육체를 가리키나 자아를 표현하는 전인격의 표현이다.
바울의 인간론 가운데 “몸”은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다(Robbinson).
“σαξ”(육) - 갈라디아서 5장 17절 ~ 19절 : 단순한 육으로 이야기 한다. 그러나 육이 더러는 몸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기도 했지만 바울은 거의 육체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하였다.
그러므로 바울에게 있어서의 영은 능동적으로 살아 가게 하는 것, 하나님과 교제하며 헌신하는 전인으로서의 인간을 나타낸다.
* 고전 7장 4절 - “몸”과 “영”, 7장 34절 - “육”과 “영” : 영과 육이 구별되는 것을 암시한다.
그러나 심리적인 문제로 생각할 수도 있다.
# 인간은 인간 자체이다. 인간은 육이나 영으로 분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도 인간 자체이다( 현대의 칼빈 주의자들). - 영, 육, 몸은 인간을 표현하는 것.
로마서 12장 1절 “ 너희 몸 ”(소마 ~ 타 ), “ 각 사람은 ”(사람을 ‘프쉬케’로 표현)
- 살전 5장의 난제.
# 결론 : 고전 6장 20절 - 전인, 삶 전체, 거룩하고 성결된 삶.
고전 7장 34절, 갈5장 16절 - 영육간의 구원을 사모하는 마음.
* 인간의 참된 모습 *
: 슬픔, 질병, 탄성 - 비참한 존재.
죄 - 롬3, 5장 : 호세아서 6장 7절에서는 언약과 관계된 것으로 이야기됨.
* 사도 바울이 이해한 성부의 구원 계획 *
1. 약속(언약) : 아담이 언약을 파기한 이후, 구원 언약을 주심(원시 복음 Proto-evangelium).
“여자의 후손”, “아브라함의 씨” - “다윗의 자손”
갈1장4절 - “때가 차매”: Proto-evangelium의 성취 - 예수 그리스도.
갈3장 15절~ 16절 아브라함의 언약을 성취하는 자로서의 하나님의 아들
(히브리서 기자의 말처럼 “아브라함의 씨”는 단수로 표시한 것-예수).
-- 바울의 하나님의 구원 계획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을 언약으로 생각하고 있다.
성만찬은 새 언약(에스겔과 예레미야의 예언처럼) 의 시대의 상징으로 사도 바울은 이해함.
2. 율법 : 율법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언약의 유지를 위하여 필요함.
[짐승의 피뿌림]은 언약을 어기는 경우 짐승과 같이 피를 흘리게 될 것을 의미하고,
스스로 율법으로 말미암아 언약에 신실한 자를 판단하게 하심, 언약이 파기될 시에는
[짐승의 제사]로 잠정적 회복함.
율법을 인하여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존재를 의식하게 됨.
율법을 준행하므로 언약의 유지와 지탱,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를 유지하므로 하나님과 더
불어 화목하고 더 나아가 구원자에 대한 소망, 기대, 믿음으로 까지 발전된다.
3. 그리스도 : 하나님의 구원 계획의 초점, 신적인 구원 계획의 클라이 막스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다. 십자가를 통하여 구원 사역의 주연이 하나님이심을 나타내신 것이
다. 예수님의 죽음은 하나님의 사랑의 엄청난 표현이다(롬5장 7절~11절, 5장6잘).
-- 희생 제사로서의 예수님의 죽음 : 유월절 제사(엡5:2).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님을 향한 희생 제사가 완성되고
종결되어 졌다.
제사의 깊은 의미 : 짐승과 더불어 자신이 죽는다는 의미, 자신으로서의 봉헌
히9장, 로마서5:9 - 희생 제사로서의 그리스도의 죽음.
“ ὑπἐρ ” - ~을 위하여, 다른 사람을 대신하여 죽음, 속전(딛 2:14).
예수님의 죽음과 관련하여 사용됨(고후 5:21).
하나님의 엄청난 지혜가 그리스도께서 죽으시는 사건속에 나타나있다.
* 율법 : 구전 율법과 기록된 율법 - 하나님의 뜻, 의지,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이 포함되어 있다.
1894년부터 바울의 율법론에 대한 논쟁이 시작됨.
유대의 개혁 신학자 C.G Montefiore 는 바울을 비롯한 기독교가 율법을 잘못 이해하고, 곡해했다고 함. 랍비들은 하나님께서 자비로 세상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으며, 은혜로 구원을 받는 것으로 이해함. 바울이 유대교의 율법을 잘못 이해한 것은 그가 Hellenistic Jew였기 때문이다. νομὀς라는 법적인 개념을 율법에 적용시켜서 잘못이해한 것이라고 주장함.
W.D. Davices : “ 바울의 율법 이해는 랍비들의 이해와 같다, 그것은 기독교의 새로운 이해가 아니다. - 정통 랍비들도 바울과 같이 이해하고 있었고, 이것은 바리새파의 입장이 투영된 것이다.
E.P. Sanderson : “ 루터란 교회가(종교 개혁자들이) 유대교를 왜곡했다. ”는 입장. 예수님이후 A.D. 200년까지의 유대인들의 문서를 모두 연구함.
구원은 행위를 통해 구원 받는 다는 개념이 아니라, 언약에 속해 있는 백성들이 구원을 얻는 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언약적 율법주으)- 속죄가 즉 은혜.
바울은 정상적인 율법 이해보다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후에 유대교를 바라 보고 이해했다는 견해임. - 다메섹 사건 이후 유대교가 행위로 구원받는 것으로 보임.
S. Sandmel : 바울의 글속에 나오는 율법 이해는 당시의 유대교의 율법 이해와 너무나 다르다. 이것은 그가 헬레니즘적인 시각에서 이해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Raiseman : 바울이 헬라파 기독교인들과 접촉했으며, 이방인 선교를 위해서 열정을 가지고 율법을 왜곡시켜서 쓸모없는 것으로 여김.
또한 유대주의자들과의 논쟁으로 인해 더욱 율법을 완전히 쓸모없는 것으로 여김.
Hubner : 갈라디아서와 로마서를 논쟁으로 인해 더욱 율법을 완전히 쓸모 없는 것임을 강하게 이야기함.
* 논의의 요약 : ① 바울은 헬레니스틱 유대인이었기 때문에 오해했다.
② 바울 자신의 문서.
* 갈라디아서의 요약 : 복음을 듣고 얼마 되지 않아 배교가 일어 남 - 거짓 교사들의 개입.
율법을 행하는 것. 할례,. 절기 등을 지켜야 하는 것을 주장. 교회와 관계된 사람들이나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이고, “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이며, 예루살렘 교회와 연관이 있고, 바울의 사도권에 의심을 가짐. 음식물에 대한 법을 강조함.
-- 유대주의자들, 율법의 관점에서 예수님의 사역을 이해한 자들임. 예수께서 율법을 새롭게 해석하신 분으로 이해함.
바울의 율법 이해 : 구원사적인 과점에서 이해했다. 율법과 언약 사이에 우선권이 주장에 있어서
율법보다 430년 먼저 주어진 언약에 귀중성을 강조함.
-- 언약을 성취하기 위한 수단으로 주어진 것이므로 목적 이상이 될 수 있다.
1. 죄를 깨닫게 함(로마서3장 20) - 구원의 방편이 아님 : 율법의 기능.
사람을 의롭게 하지 못함.
2.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몽학 선생이다 - 부정적인 기능을 통해서 긍정적인 기능을
시행함.
갈 3:23 - παιδαγώγος(몽학 선생) : 우리 성경에는 “선생”이라고 번역되었지만, 사실상
은 선생이 아니고 종이다. 나이가 많고 노숙한 종
으로 아이가 장성하는 때까지 보호하는 역할을 함.
로마 사회가 교육적인 면을 강조하게 됨에 따라 “파이다고구스”는 훈육하는 역할을 함(긍정적인 역할), 당대의 몽학 선생이 아이를 매질했다는 기록이 있을 만큼 아이의 교육에 있어서 권한이 많았다(부정적인 역할).
--- “몽학 선생의 역할은 끝이 난다”는 것이 바울의 강조임.
율법은 사람을 절망케 하고 좌절하게 하는역활을 하지만(율법의 부정적 측면), 인간의 실존을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긍정적 측면).
“후견인, 청지기” - 위임받은 권한을 가지고 아이를 대신하여 그 아이가 장성할 때까지 경제권을 행사하며 가정을 돌봄, 미성년자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 그러나 12세 이상의 성인이 되면
아이는 후견인의 그늘에서 벋어 나게 됨.
“ 때가 차매” - 후견이과 청지기에게 속박당하지 아니하는 때, 그 때까지 “아들일 지라도”속박을 당하였지만, 이제는 속박의 기간에서 벋어 나게 되었다는 선포.
--- 바울이 예수님을 예수님을 만난 후에 이전의 자신의 모습을 생각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 율법 때문에 그리스도의 은혜가 풍성하여 짐.
구원사적인 초점은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율법의 기능이 폐지 혹은 완성됨(롬10:4, 갈3:19).
↘τελὀς(마침)에 이르게 됨 - 성취
율법의 모든 저주를 담당하시므로(갈1:13) 새 언약의 머리가 됨(성찬 예식을 통하여 새 언약을 재정하심 -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율법은 예수님안에서 의미가 사라짐), 새 언약속에서 새 율법을 믿으므로 하나니의 자녀가 됨, 유대인이나 이방인의 구별이 없음.
* 그리스도의 율법 *
갈 6:2 - “그리스도의 법”(노모스), 갈5:14 - 모든 율법은 이웃 사랑으로 요약됨.
“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
① 사랑의 법(F.F. 브루스, TDNT)
② C.H. Dodd, "예수님의 가르침“(교회를 위한 예수님의 표준적인 가르침)
③ “예수와 같은 종들이다” (제2 이사야서의 “종”의 모습으로 해석하려는 시도)
“ 짐을 짊어 지라 ”
④ “그리스도의 모범이다”, 그리스도의 삶의 원리
⑤ “모세의 율법 전체를 가리키는 말씀”(W. 바클레이, E.P. Sanderson)
⑥ 갈라디아서 5장 13절 ~ 6장 10절의 문맥속에서 이해(슈나이더)
: 성령한에서의 그리스도인의 삶, “성령의 열매” - 믿는 자가 성령의 능력으로 살아 갈 때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함.
* 바울의 교회 이해 *
예수께서 “에클레시아”라는 말씀을 사용하심(70인경에는 “수나고게”로 번역됨. 새 이스라엘을 구약적 배경에서 본 것임 - 언약의 백성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회중”(살전 1:1) - 정치적, 사회적인 성격을 뛰어 넘는 개념.
: 지역 교회를 일컫는 의미, “가정 교회에 있는 어떤 모임”, “지상의 보편 교회”, “하늘에 있는 교회” - 구원받은 자들의 모임 : 우주론적으로 생각함, 장소적인 의미는 결여되어 있다. 언약속에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교회였다. 예수님의 구원계획에 의해서 새로운 백성의 개념이 성립되었다.
“ 믿음으로 인한 아브라함의 자손”, “새언약의 백성”, “참 이스라엘”, “구약의 언약 백성” : 교회
----- 언약의 백성이 그리스도안에서 교회에 적용됨.
<고전26장 11~20>
고후 6:16, 고전 3:16, 엡 2장 -- “우리”, “너희” : 구약 성경을 배경으로 믿는 자를 성전, 교회를 성전으로 생각함.
“장막” -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상징적인 의미로, 언약이 새 이스라엘과 함께 하나님과 교제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립된 새 언약의 백성이 진정한 의미의 성전
자세한 논의를 위한 참고도서들 - 김세윤, “바울 복음의 기원”, G.E Ladd, “신약 비평”,
“신약 신학”,
F.F. 부르스 “바울 신학”, 윌리암 바클레이, “바울 신학 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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