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의 건축에서 본 신앙생활의 원리
열왕기상 7:1~14
<제직수련회 말씀>
요즘 현대인들에게는 한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삶의 목표가 없습니다. 흔들 수 있는 깃발도 없고 목숨을 걸 만한 슬로건도 없습니다. 그나마 예수 믿는 사람들의 사정은 조금 낫습니다. 그들에게는 흔들 수 있는 깃발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해야 하는 삶의 목표가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믿는 성도들에게 이러한 목표가 있다고 하나, 삶의 방법론에 대해 질문할 경우, ‘어떻게“의 문제에 대해서는 잘 대답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목표의 부재가 아니라 방법론의 부재가 문제가 되는 셈입니다. 실제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잘 모르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이 포함되어 있는 열왕기상 6장과 7장에는 성전의 건축과 솔로몬 왕궁의 건축에 관한 기사가 자세히 소개되어 있습니다. 건축에 대한 이야기는 고린도전서 3:10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울까를 조심할지니라.” 바울은 성도를 가리켜 ‘지혜로운 건축자’라고 소개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성도의 삶의 모습과 솔로몬 건축의 유사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솔로몬의 건축을 통해서 성도가 수행해야 할 신앙생활원리 세 가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 성도는 우선순위를 명확히 하는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솔로몬은 성전을 다 짓고 난 뒤 비로소 자신의 왕궁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일을 먼저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먼저 섬겨야 하며, 하나님께 먼저 굴복하고 하나님을 먼저 의지하고 난 뒤, 그 다음에 자기 일을 감당해야 합니다. 열왕기상 6장과 7장은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 하시리라”라는 마태복음 6:33 말씀을 그대로 예증하는 말씀입니다. 먼저 하나님의 성전을 짓고 난 뒤 솔로몬 자신의 왕궁을 지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형통하게 해주셨다는 것입니다. 객차를 기관차보다 앞세우거나 마차를 말보다 앞세우면 앞으로 전진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성도들의 삶에는 반드시 하나님 우선순위가 지켜져야 합니다.
성도들이 어려움을 당하는 것은 그들에게 열심히 없거나 열정이 없어서라기보다는 우선순위가 잘못되었기 때문일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성경은 삶의 최고 우선순위를 예배라고 가르칩니다. 요한복음 4:23입니다.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우리의 삶에 문제가 있다면 그 실마리는 예배로부터 풀어나가야 합니다. 예배에 성공하면 인생에 성공하는 것이요, 예배에 실패하면 나머지 모든 것에서도 실패하는 인생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꾸준하게 신앙이 성장하는 성도, 시험을 이기고 열매를 거두는 성도의 삶의 비결이 곧 예배입니다. 예배 잘 드리는 성도가 시험을 이기고 예배 잘 드리는 성도가 성장하며, 예배 잘 드리는 성도에게 열매가 있습니다. 이것은 검증을 마친 확실한 명제입니다.
예수님의 하루는 항상 새벽예배에 비중을 두고 시작되었습니다. 마가복음 1:35에서도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저는 예수께서 하루의 우선순위를 새벽예배와 새벽기도와 두신 사실에 주목합니다. 어떻게 하면 새벽기도를 잘 할 수 있습니까? 물론 마음만 굳게 먹으면 잘 할 수 있습니다. 내일 당장 새벽기도에 나오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바로 오늘 저녁에 결심하는 사람입니다. 내일 아침에 깨면 나오겠다고 하는 사람들의 경우 십중팔구는 눈을 뜨면 7시나 8시입니다. 따라서 새벽기도를 잘 하려면 단연코 자기 전에 마음속에 굳게 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굳건한 마음을 달라고 기도하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게을러서 기도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기도하지 않는 것은 게으름 때문이 아니라 교만함 때문입니다. 기도 안 해도 살 것 같은 교만한 마음이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드리는 것을 가로막는 것입니다.
새벽은 하루 중 가장 신선하고 좋은 시간입니다. 집중도도 훨씬 높습니다. 새벽은 하나님이 우리를 만나주시는 시간이며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시간입니다. 시편 46:5입니다. “하나님이 그 성 중에 계시매 성이 흔들리지 아니할 것이라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 새벽에 기도하다가 문제가 풀린 사람은 한둘이 아닙니다. 새벽에 기도하다가 축복을 누리게 된 사람도 한둘이 아닙니다. 살아가면서 고민이 되거나 풀리지 않는 문제들이 있다면 새벽에 나와 기도하여 문제를 해결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기를 바랍니다. 사업에 문제가 있다면 새벽에 도우시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기도해 보십시오. 지금보다 몇 십 배의 능력을 발산할 수 있게 되는 은혜의 통로가 바로 새벽기도입니다. 새벽을 깨우는 성도, 하나님은 그들을 통해 일하십니다. 지금보다 능력 있는 삶을 살기를 원한다면 새벽에 깨어 일어나야 합니다. 새벽에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어찌 은혜를 주시지 않겠습니까? 하루의 우선순위를 기도에 두고 삶의 우선순위를 예배에 두기 시작하는 인생에게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솔로몬과 같이 하나님의 일에 최우선순위를 두는 인생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복이 임할 것입니다.
둘째 성도는 예술성과 실용성을 조화시키는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열왕기상 7:2~6입니다. “그가 레바논 나무로 왕궁을 지었으니 길이가 백 규빗이요 너비가 오십 규빗이요 높이가 삼십 규빗이라 백향목 기둥이 네 줄이요 기둥 위에 백향목 들보가 있으며, 기둥 위에 있는 들보 사십오 개를 백향목으로 덮었는데 들보는 한 줄에 열 다섯이요. 또 창틀이 세 줄로 있는데 창과 창이 세 층으로 서로 마주 대하였고 모든 문과 문설주를 다 큰 나무로 네모지게 만들었는데 창과 창이 세 층으로 서로 마주 대하였으며 또 기둥을 세워 주랑을 지었으니 길이가 오십 규빗이요 너비가 삼십 규빗이며 또 기둥 앞에 한 주랑이 있고 또 그 앞에 기둥과 섬돌이 있으며” 솔로몬은 자신의 왕궁을 튼튼하고 아름답게 지었습니다. 실용적이면서 예술성을 가미한 건축 작업이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성도에게서도 예술성과 실용성의 조화를 추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흔히 사람들은 양극단으로 흐르기 쉽습니다. 가톨릭의 사치와 향락에 반대하는 종교개혁자들은 극단적으로 실용성만을 주장했습니다. 그들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 중요하고 예배가 중요하고 경건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물론 맞는 말입니다. 그렇지만 도가 지나쳐서 성경에 나와 있는 성도의 예술성, 멋까지 다 없애버리고 말았습니다. 예수 믿는 것이 너무 삭막해져버렸습니다. 반면 가톨릭은 복음의 실용성과 복음의 능력이 사라지고 예술성만 남게 되었습니다. 마치 화려하고 웅장한 교회를 짓는 것으로 모든 것이 완성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오늘날의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까? 실용적이지만 볼품없는 교회보다는 실용적이면서도 아름다운 교회가 바람직합니다.
에베소서 2:10입니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 말씀은 성도의 실존을 잘 표현해주고 있습니다. 성도는 복음을 증거하고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 부르신 받은 일꾼입니다. 게다가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만드신 바라’라는 말은 헬라어로 ‘포이에마’입니다. 포이에마에서 영어 단어 poem이 나왔습니다. 즉 우리는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의 ‘시’(詩)라는 것입니다. 성도는 이 땅을 살아갈 때 시적(詩的)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시적으로 살며 일하는 종, 다시 말해서 예술성과 실용성을 겸비한 성도로서 살아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창조물을 보십시오. 모두 실용성과 예술성이 가미되어 있습니다. 새 순이 돋고 꽃이 필 때, 단풍이 들 때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았다면, 가을에 열매가 맺히는 것은 얼마나 실용적입니까?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에는 예술성과 실용성이 녹아 있습니다. 단적으로 다윗의 삶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물맷돌로 골리앗을 쓰러뜨린 용맹스러운 다윗과 손으로 수금을 타며 시편의 수많은 시들을 지은 시인 다윗이 공존한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이것이 바로 성도의 모습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의 삶, 성도의 멋이란 무엇입니까? 허영심으로 사치 낭비하지 않더라도 인생을 멋지게 살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열심히 일을 해서 돈을 많이 벌었다면 그 일은 대단히 실용적이고도 거룩한 일입니다. 열심히 번 돈으로 장학생을 길러냈다거나 남모르게 고아원과 양로원을 후원하는 삶을 살았다면 성도로서 참 멋지게 살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도가 이 땅을 살아갈 때에는 시험이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이를 악물고 고난을 이겨내기도 하지만 동시에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잊지 않는 백성으로서 고난을 극복해내기도 합니다. 시편 137:1~3입니다.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그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 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하게 한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의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항상 노래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을 때 그곳에서도 항상 노래를 잊지 않았습니다. 언제 어디서든지 찬양을 잃어버리지 않는 삶, 그것이 성도로서 살아가는 멋진 삶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수록 예술성과 실용성을 겸비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삶이 아름다워집니다. 개인적으로는 구제하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아도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구제하게 됩니다. 그러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렇게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이 땅을 살아갈 때 가장 아름다운 백성은 순종하는 백성입니다. 순종하면 능력이 나타나게 됩니다.
우리의 신앙에도 실용성과 예술성이 가미될 때 생명력이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다양한 영성을 선보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을 노래나 춤, 예술과 문화로 승화시킬 때 그 힘은 실로 엄청납니다. 우리의 믿음이 문화 속으로 파고 들어갈 때 강력한 힘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과 성경의 정신이 우리를 창조하는 문화 가운데 고스란히 스며들기를 원하십니다. 가수의 노래 속에 말씀이 스며들기를 원하시고 경제인의 경제 원리 속에 말씀이 스며들기를 원하시고 정치인들이 실현하는 정치 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스며들어 구현되기를 바라십니다. 이것이 실용성과 예술성이 조화를 이루는 성도의 삶의 모습입니다. 어느 유명한 가수가 예수를 잘 믿어서 자신이 멋지게 찬양할 수 있는 것은 모두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간증하고 다닌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가 끼칠 영향력이 얼마나 대단한 지 상상해보십시오. 그를 보면서 너도 나도 예수 믿겠다고 하지 않겠습니까? 성도는 이렇게 실용성과 예술성을 겸비하여 각자 자신의 삶 가운데 말씀을 녹여내고 수많은 불신자들에게 영향력을 끼치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참된 믿음이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입니다.
실용성과 멋을 기르기 원한다면 단적으로 다음 네 가지를 실천해 보시기 바랍니다. 첫째, 시를 한 편씩 외울 것, 둘째 악기를 한 가지 다룰 줄 알 것, 셋째, 유머를 구사할 것, 넷째, 구제하는 삶을 살 것, 이런 삶을 살아갈 때 정말 멋있는 인생을 살게 될 것입니다.
셋째, 성도는 중심을 잃지 않고 자신의 자리를 잘 지키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열왕기상 7:7입니다. “또 심판하기 위하여 보좌의 주랑 곧 재판하는 주랑을 짓고 온 마루를 백향목으로 덮었고.” 하나님께 솔로몬에게 무엇이든지 구하라고 하셨을 때 솔로몬이 구한 것은 다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백성들을 재판할 수 있는 지혜로운 마음이었습니다. 솔로몬이 왕궁을 지었을 때도 그 정신이 가미되었습니다. 그는 건물 중앙에 재판정을 만들었습니다. 성도는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직분과 감당하는 일에 삶의 무게중심을 두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본분을 잃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제자리를 지키는 것이 가장 아름답습니다. 목사는 강대상에서 말씀을 증거 할 때가 가장 아름답습니다. 어머니는 어머니의 자리를 지킬 때 가장 아름답습니다. 자녀들은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 집안에 있던 엄마가 반갑게 맞아줄 때가 가장 기쁘다고 합니다. 밥은 밥통에서 파먹고 반찬은 냉장고에서 꺼내먹으라는 메모지 한 장에 아이들은 못내 섭섭해 합니다. 물론 형편상 직장에 다녀야 하는 어머니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방법으로든지 어머니의 자리는 굳건히 가정을 지키는 것입니다. 군인은 군인 본연의 자리를 지킬 때 가장 아름답습니다.
마찬가지로 성도는 제자리를 지켜야 합니다. 우리 몸의 기관도 각자 맡은 부분에 있을 때 제 기능을 발휘하게 됩니다. 콧물은 코 안에서 필요한 기능을 수행할 때 유익하지만 코 밖으로 나오면 불결하다는 소리만 듣게 됩니다. 침은 입 안에 잇을 때 소화효소 기능을 하지만 입 밖으로 나오면 오물입니다. 피도 혈관 속에서 영양분과 산소를 공급하는 역할을 할 때 좋은 것이지 몸 밖으로 흐르면 사람들에게 혐오감을 줍니다. 응당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것, 그것이 소중한 일입니다. ‘성도’라는 이름과 맞는 직분에 합당한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중직자는 중직자에 맞게, 리더는 리더의 자리를 지켜나가야 합니다. 교회 역시 온전한 교회가 되기 위하여 진력해야 합니다. 솔로몬은 중심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는 왕으로서 재판하는 일이 자기 사명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 일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자리에서 충성할 수 있는 주님의 백성이 되기를 바랍니다.
열왕기상 7:13~14입니다. “솔로몬 왕이 사람을 보내어 히람을 두로에서 데려오니 그는 납달리 지파 과부의 아들이요 그의 아버지는 두로 사람이니 놋쇠 대장장이라 이 히람은 모든 놋 일에 지혜와 총명과 재능을 구비한 자이더니 솔로몬 왕에게 와서 그 모든 공사를 하니라.” 그리고 솔로몬은 모든 일을 혼자서 하지 않았습니다. 히람이라는 사람과 더불어 성전과 왕궁을 건축하였습니다. 솔로몬에게는 관계를 잘 활용하고, 다른 사람의 능력을 잘 인정하고, 또 그들을 잘 다스리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성도 역시 다른 사람의 능력을 활용하고 다스리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마다 각각 받은 은사가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실무에 능하고 어떤 사람은 사무를 잘 처리합니다. 다른 이를 권면하는 일이나 화해시키는 일에 능숙한 사람도 있습니다. 성도는 각자 은사에 맞게 충성을 다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일을 얼렁뚱땅 해치워서는 안 됩니다. 각자 맡은 일을 최선을 다해 연구해야 합니다. 자신의 직장에서, 그 분야에서는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서 밤낮 교회 나오는 것만 사모하는 것은 믿음 좋은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직업, 자신이 맡은 분야에서 최고가 되도록 충성을 다하는 것 또한 어느 것 못지않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입니다. 기도도 중요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런데 기술자는 기도하면서 기술을 개발해야 합니다. 훌륭한 평신도가 되어야 합니다. 이 땅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훌륭한 평신도입니다. 이 시대에 정말 필요한 것은 목사가 아닙니다. 삶의 현장 속으로 들어가 삶의 모든 영역을 영적으로 전복시키는 요셉과 다니엘 같은 평신도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교회 안에서 제한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교회의 울타리를 넘어 현장 속으로 선포되고 실현되기를 바라십니다. 이 일을 위해 하나님은 평신도들을 택하셨습니다.
야고보서 1:17입니다.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풍성한 은사를 누리고 온전한 선물을 누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1등 인생을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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