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회복의 은혜

하나님아들 2018. 8. 3. 16:44

 

 

 

 

회복의 은혜

누가복음 7:11~16

 

 

작년 이 맘 때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하기 직전에 모 월간 잡지에서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대통령 당선자에게 무슨 책을 선물하고 싶습니까?” 라는 주제로 조사를 했더니 한국인이지만 독일 대학의 철학 교수인 한병철 박사의 <피로사회>라는 책이 1등을 차지했습니다. 왜 이 책을 대통령 당선자에 선물해야 하는가에 대한 이유를 들어보니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성공 위주의 사회와 성과로 재단되는 삶 속에서 국민이 얼마나 지쳤는지를 돌아보라는 마음이 반영된 결과이다.” 대통령 취임 이후 이 책은 아주 많이 팔린 유명한 책이 되었습니다. 그 책 서두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시대마다 그 시대의 고유한 질병이 있다. 이를테면 박테리아적이라고 할 수 있는 시대가 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적어도 항생제의 발명과 함께 종언을 고했다. 우리는 면역학적 기술에 힘입어 이미 그 시대를 졸업했다. 21세기의 시작은 병리학적으로 볼 때 박테리아적이지도,, 바이러스적이지도 않으며, 오히려 신경증적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신경증적 질환, 이를테면 우울증,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경계선성격장애, 소지증후군 등이 21세기 초에 병리학적 상황으로 지배하고 있다.”

 

이 사회가 박테리아도 퇴치하고, 바이러스도 물리쳤는데도 현실구조는 먹고 살기가 더 힘들어졌다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 현대사회는 극심한 피로감에 찌들어있는 병든 사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그 책이 많이 팔린 것은 내용이 좋아서라기보다는 그 책 제목을 잘 선택했다고 생각합니다. <피로사회> 아주 자극적인 제목입니다. 우리가 입에 달고 사는 것이 피곤하다. 피곤하다. 아닙니까? 많은 사람들이 그 제목에 공감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책이 많이 팔린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 더 자극적인 제목의 책이 나왔습니다. <절벽사회>라는 책인데, 그 책 역시 인기를 끌었습니다. 제목이 <피로사회>보다 더 자극적입니다. <절벽사회> 이 책은 우리 사회를 이루고 있는 아홉 개의 절벽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인구절벽, 일자리절벽, 재벌절벽, 교육절벽, 취업절벽, 임금절벽, 금융절벽, 창업절벽, 주거절벽’ 우리 사회는 아무리 노력하고 발버둥을 쳐도 한 번만 실패하면 절벽 아래로 떨어져버려서 회생할 수 없는 위험천만한 사회라는 것을 그 책에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 <피로사회>라는 책을 접하면서 다소 위로를 받았습니다. <피로사회>의 저자가 독일 대학의 교수이다 보니, 우리나라 말로 이 책을 출간하기 전에 독일어로 먼저 출간이 되었습니다. 그랬더니 독일에서도 이 책이 불티나게 팔렸습니다. 제가 그것 때문에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이렇게 피곤한 것이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구나. 어느 나라나 공통적으로 현대인들은 모두 다 피곤한 세상을 사는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니 그래도 나름대로 위로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지금 이렇게 피로사회, 절벽사회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었을까요? 왜 이렇게 살기가 힘든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야 하는 걸까요? 우리가 몸을 담고 있는 이 세상은 왜 이렇게도 혼란스럽단 말입니까? 다들 한번 잘 살아보겠다고 이른 아침부터 출근하고 저녁 늦게까지 일하면서 어떻게든 행복한 삶을 살아보겠다고 바둥바둥 거리는데 왜 현실은 이렇게 피곤하고, 혼미하고, 낙심이 찾아오고 우울하고 왜 이래야만 되는 것입니까?

 

바로 이 질문을 가지고 씨름을 하다가 저는 오늘 본문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12절을 보면 오늘 본문의 상황이 안타까운 장례행렬로 전개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성문에 가까이 이르실 때에 사람들이 한 죽은 자를 메고 나오니, 이는 한 어머니의 독자요 그의 어머니는 과부라 그 성의 많은 사람도 그와 함께 나오거늘” 일찍이 남편이 죽고, 외아들에게 희망을 걸었는데, 그 아들마저 죽어 장례를 치르게 된 불행한 인생을 살아가는 한 여자의 이야기가 오늘 본문입니다. 어떻게 하다가 이렇게 인생이 꼬이게 되었을까요? 이 여자가 결혼 할 때 아무나 대충 했겠습니까? 고르고 고르다가 어느 남자가 나는 행복하게 해줄지, 능력은 얼마나 되는지, 얼마나 자상한지 다 따지고 결혼했는데 남편이 그만 일찍 죽었습니다. 그런데다가 유일한 희망이었던 아들마저 죽었습니다. 참으로 마음이 아픕니다. 어떻게 하다 인생이 이렇게 꼬여버렸을까요?

 

사실 우리 주위에도 이렇게 꼬여버린 인생들이 많이 있습니다. 저는 말씀을 묵상하다가 어떻게 하다 우리 인생이 이렇게 꼬여버렸나? 라는 질문에 대한 그 답을 창세기 1장에서 찾게 되었습니다. 창세기 1:1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하나님의 창조행위가 선포되고, 그 다음 절인 창세기 1:2에서 이렇게 창조된 땅이 처음에는 어떤 상태였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2절입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여기 나오는 혼돈, 공허, 흑암 이것들에 흥미를 가지고 국어사전을 찾아보았습니다. ‘혼돈’의 사전적 의미는 “마구 뒤썪여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상태”입니다. ‘공허’라는 단어는 “아무 것도 없이 텅 빔”을 뜻합니다. ‘흑암’은 “어둠의 상태”를 뜻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혼돈과 공허, 흑암에 빠져있는 이 땅을 새로운 질서로 만들어가는 하나님의 손길을 창세기 1:2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운행하다’라는 동사는 히브리어로 “머라헤팩트”입니다. 이 머라헤팩트라는 단어가 구약에 한 번 더 나오는 데, 신명기 32:11에 나옵니다. “마치 독수리가 자기의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자기의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의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의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 여기 ‘너풀거리며’ 라는 단어가 창세기 1:2에 나오는 머라헤팩트입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는데 하나님의 영이 그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머라헤팩트, 마치 어미 독수리가 날개를 퍼득거리며 미약한 자기 새끼를 보호해주는 것 같은 그런 단어가 여기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라는 단어라면 우리는 이 단어 속에서 아주 중요한 사실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오늘 이 땅이 왜 이렇게 피곤하고 흑암이 깊어졌을까요? 그 상태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 것입니까? 어미 독수리가 날개를 퍼득이며, 자기 새끼를 보호해주는 것처럼 하나님이 그 혼돈과 흑암의 상태를 운행하시게 될 때 이 혼란의 상태가 사라지게 될텐데, 불행히도 인간은 그것을 거부했습니다. 아담과 하와로부터 시작해서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이르기까지 우리는 하나님의 운행하심에 대해서, 하나님의 너풀거리는 도우심에 대해 필요 없다고 거절한 것이 바로 우리들이 아닙니까? 마치 탕자의 비유에 나오는 둘째 아들처럼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이 돈이지, 그까짓 아버지의 사랑이 뭐가 필요하냐 이것입니다. 그래서 둘째 아들이 자신의 몫을 챙겨가지고 돈이 내 인생을 행복하게 할 것이다 생각하며 집을 뛰쳐나갔습니다. 그런데 집을 나가자마자 어떻게 되었습니까? 창세기 1:2의 말씀처럼 혼돈과 공허와 흑암 속에 헤매는 인생이 된 것이 아닙니까? 오늘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면서 박테리아도 물리쳤고 세균도 물리쳤고 과학만능의 시대에서 이렇게 잘 살게 되었는데, 그런데도 왜 우리의 인생은 점점 더 어두워지고 꼬이는 것입니까? 결국 과학만능이, 바이러스를 물리칠 수 있는 인간의 지혜가 내 안에 꼬이고 헝클어진 것들을 펴는 일은 못한다는 것 아닙니까? 여러분 잘 생각해보십시오. 우리 인생이 혼돈과 공허와 흑암 속에 혼미해져 있으면 이게 아파트 평수를 늘려도 해결이 안 되고, 예쁜 여자와 결혼을 해도 해결이 안 되고, 소중한 아들딸들을 낳아도 해결이 안 되고, 이렇게 다 갖추었는데도 내 인생의 혼돈과 흑암과 공허가 잘 정리가 안 된다면 그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둘째 아들처럼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셔야 합니다.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서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아버지의 사랑만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자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일을 돕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닙니까? 바로 오늘 본문에 나오는 지독한 슬픔에 빠져있는 그 과부를 향한 주님의 터치는 이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12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성문에 가까이 이르실 때에 사람들이 한 죽은 자를 메고 나오니, 이는 한 어머니의 독자요 그의 어머니는 과부라.” 이런 혼란과 혼돈과 흑암에 상태에 빠진 이 여자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그 삶에 개입을 하십니다. 본문 13~14절입니다. “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 하시고, 가까이 가서 그 관에 손을 대시니 멘 자들이 서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시매” 이 주님의 개입하심으로 말미암아 그 과부의 헝클어지고 꼬이고 뒤틀어진 삶이 회복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박진영이라는 가수를 아시지요? 사실 저는 이 가수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분이 부르는 노래가 너무 퇴폐적이기 때문입니다. 노래도 퇴폐적인데, TV에 나와서 하는 말들이 너무 어이없는 말들만 하는 것입니다. 이런 식입니다. ‘결혼하기 전에 동거해 보고 결혼해야 한다.’ 청소년들이 좋아하는 가수가 저런 가치관을 가졌으니 우리 아이들이 물들면 어떻게 하나 저는 불안하고 걱정이 됩니다. 그래서 저는 박진영이라는 가수가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박진영 씨의 생각이 바뀐 것 같습니다. 그가 <라디오스타>라는 예능프로그램에 나와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지나간 모든 생각과 주장을 쓰레기통에 다 버리고 싶다.” 그러니까 동거해 보고 결혼해야 된다. 이런 생각들이 바뀌었다는 거예요. 그리고 <힐링캠프>라는 TV 프로그램에 나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이제 세상을 만든 분을 만나고 싶다. 나에게 일어나는 일들이 우연이 아닌, 나를 지켜주는 어떤 누군가가 있다고 깨닫고, 그 분을 찾기 위해 지금 공부하고 있다.” 그가 하나님에 대해여 알고 싶어서 지금 공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이 이렇게 하나님을 알고 싶어 탐색하고 공부할 때 저는 이 분을 탐색하고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분의 정신세계가 어떤지 그리고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지를 살펴보니까 최근에 이분이 이런 심경의 변화가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그의 노래가 있었습니다. <하프타임>이라고 하는 노래인데요. 가사가 매우 흥미롭습니다. “정말 열심히 살고 싶었어, 돈과 인기를 얻으면 예쁘고 멋진 여자도 얻고, 하고 싶은 일만 고르면 그것만 하고 살 수 있으면 성공인 줄 알았어.” 제가 어지간하면 이 노래를 불러드리면 실감날텐데 안타깝게도 제가 이 노래를 들어본 적도, 불러 본적도 없습니다. 가사만 본 것입니다. 또 이런 가사도 있습니다. “갤럭시를 똑바로 쓸려면 삼성에게 물어보고 아이폰을 똑바로 쓸려면 애플에게 물어보듯이 인생을 똑바로 살려면 인간 만든 사람을 찾아, 세상을 똑바로 살려면 세상 만든 사람을 찾아, 물어보는게 당연한 이치인데, 그동안 내가 무엇을 안다고 떠들어댓는지, 만나서 물어보고 믿고 또 믿어지면 그때부터가 사는거야. 믿고 또 믿고 또 믿어지면 그날이 내 생일이야.“ 여러분 여기에 곡을 붙이면 이거 복음성가 아닙니까? 너무 영적으로 흥분이 되고 흥미로운 가사 아닙니까? 도대체 박진영 씨의 인생에 무엇이 이렇게 심경의 변화를 가져다주었을까요?

 

그런데 자세히 그를 살펴보니 이 사람의 인생에 목마름이 있었던 것입니다. 인생의 갈증이 있다는 것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의 노래 가운데 <놀만큼 놀아봤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제목은 퇴폐적인 것 같은데 가사는 안 그렇습니다. 노랫말 중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난 놀만큼 놀아봤어 또 벌만큼 벌어봤어 예쁜 예자 섹시한 여자와 즐길 만큼 즐겨봤어” 아주 얄미운 가사입니다. 그 다음 가사가 이렇습니다. “결국엔 또 허전했어 언제나 그때 뿐이었어 아침에 술 깨 겨우 일어날 때 그 기분이 싫어졌어.” 이렇게 가사가 계속 되면서 맨 끝부분에 save me, please save me “나를 구해주세요” 이게 추임새처럼 가사에 나오는 것입니다. 어쩌면 이 가사가 바로 박진영 씨의 인생을 묘사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는 이 가사 그대로의 인생을 살았던 것 같습니다. 놀만큼 놀아봤고 벌만큼 벌어봤고 남부럽지 않는 그런 삶을 자기가 누렸는데 그것이 결국 목마르더라는 것입니다. 깨달은 게 뭡니까? 놀만큼 놀아보고 벌만큼 벌어보고 끝없는 쾌락을 누려보고 잠깐 마음에 적시는 기쁨은 있었는지는 몰라도 그것이 엉클어져버렸던 자기 인생을 펴는 일은 못하더라는 거예요. 제가 이 가사를 보면서 정말 진리라는 것은 영원히 불변한다는 진리를 느꼈습니다. 오래 전에 놀만큼 놀아봤고 벌만큼 벌어봤고 누릴만큼 누려봤던 사람이 또 있잖아요. 솔로몬 - 솔로몬 왕도 놀만큼 놀아보고 벌만큼 벌어보고 쾌락을 누릴만큼 누려봤지만 박진영 씨랑 똑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전도서 1;2에 보면 뭐라고 고백합니까? “헛되고 헛되고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이것을 오늘 식으로 의역하면 놀만큼 놀아보고 벌만큼 벌어보고 쾌락을 누릴만큼 누려봐도 창세기 1:2에 나오는 혼돈과 혼미외 흑암 속에 거하는 헝클어져버린 자기 인생을 펴는 일은 못하더라는 이야기입니다.

 

사실 우리는 이렇게 놀만큼 놀아보지도 못하고, 벌만큼 벌어보지도 못하고, 쾌락도 못 누려보았기 때문에 거기에 뭐가 있는 줄 모르고 쫒아가지만 이것을 이미 다 누려보고 이야기하는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막다른 골목을 가봐야 막다른 골목을 압니까? 막다른 골목을 이미 다녀온 사람의 이야기를 귀를 기울이면 될 것 아닙니까? 저는 오늘 박진영 씨에게 그리고 박진영 씨처럼 인생이 헝클어져버린, 인생의 목마름으로 갈증을 느끼는 많은 사람들에게 창세기 1:2 말씀을 들려주고 싶습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이거와 마찬가지로 그 땅을 살아가는 인생이 너무나 헝클어지고 혼미한 그런 인생을 살아가고 있지만 뭐가 회복의 단초가 되느냐 하나님의 영이 수면위에 운행하시는니라. 하나님의 너풀거리시며 어미 독수리가 미약한 새끼독수리를 돌봐주기 위하여 그 주변을 날개짓하며 너풀거리는 것처럼 우리 인생에 이 하나님의 운행하심을 경험할 때에 혼미함은 사라지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꼭 전해주고 싶은 것입니다.

 

 

인터넷을 탐색하다 어느 자매님의 간증을 발견했습니다. 그 간증의 내용을 소개하겠습니다. “예수님을 믿기 전 나는 굉장히 자기중심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이 세상은 내가 존재하기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고 모든 일에 나의 유익을 먼저 추구했고 연애할 때조차 내 방식대로 내 뜻대로 연애하고 내 방식 내 뜻에 맞지 않으면 상대방을 무가치한 존재로 여기며 많은 상처를 주었습니다. 부모님조차 나를 위해 존재하는 사람이라고 여겼기에 더 많은 부와 더 좋은 외모를 물려주지 않은 것에 대해 불평을 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엄마 아빠의 뜻대로 양육되는 것에 대한 거부가 강하고 당신들을 내 뜻에 맞추어 움직이고 싶었기에 사춘기도 유독 별나게 지냈던 것 같습니다. 나와 늘 나누어야 했던 동생에 대한 불만도 당연했구요, 그는 나의 풍요에 의해 없어야 마땅한 존재이다, 이런 생각도 했었습니다. 이런 나의 모습들을 다 숨기고 겉으로는 착하고 성격 좋은 척하며 살았습니다. “(중략) 이런 자기중심적인 삶, 내 욕심만 채우는 사람 외적인 조건만 채우던 삶을 살던 제게 어느 날 나 진짜 잘 살고 있는 거 맞아? 이건 뭔가 잘못된 거 아냐?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었습니다.”

 

여러분, 인생의 법칙은 거의 비슷합니다. 그렇게 예쁜 얼굴로 그렇게 환경 좋은데서 콧대 높게 이기적으로 살았는데 박진영 씨와 똑같이 이 자매에게도 어느 날 인생의 회의가 생긴 것입니다. 이렇게 사는 게 맞나? 그렿게 갈등하고 있을 때 그녀에게 너무 좋은 남자 친구가 찾아온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그 다음 내용을 보십시오. 주님 만나고 난 후에 어떻게 달라졌는지 보시기 바랍니다.

 

“쩍쩍 메마른 땅에 비가 내리면 짝짝 흡수하듯 공허하게 비어있던 제 마음에 성령의 단비가 쏟아졌고 그렇게 저는 예수 믿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갈급한 내 심령이 크신 하나님의 사랑으로, 그 놀라우신 하나님의 은혜로 가득 가득 채워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후 나는 다시 태어났습니다. 내 중심이 완전히 뒤바뀌고 말았습니다. 시시때때로 변하는 세상의 가치관을 쫒아 살던 제가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에 두고 살기 시작했습니다. 나 이외에 누구도 사랑해본 적이 없던 제가 이까짓 목숨 다 바쳐 주를 위해 살겠노라고 고백하며,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이 사랑하신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 안에 만나는 형제자매들을 사랑한다고 노래하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아주 까다롭고 예민한 성격 탓에 스트레스에 힘들고 지친 내 육신도 예수님을 만나고서 찾아온 참 기쁨과 평안으로 인해 건강해졌고 욕심 가득한 못된 인생도 부드러워졌습니다. 스물여섯 여름에 만난 예수님이 너무 고맙고 좋아서 가만히 있어도 눈물이 흐르고 웃음이 가시질 않는 저를 보고 친구들이 교회에 오고 싶다며 많은 친구들에게 예수님을 전할 기회를 주셨고 한 영혼이 돌아오면 천국 잔치가 열린다는 하늘의 기쁨도 알게 해 주셨습니다. 한 남자와 평생을 사랑하며 사는 것은 절대 말도 안 된다던 제가 제 손을 잡고 교회로 인도해준 그 남자 앞에서 영원을 놓고 사랑을 서약하며 내가 먼저 사랑하고 내가 섬기겠노라고 결심하는 기적과 같은 삶을 허락해주셨습니다.”

 

여러분 지금 박진영 씨가 놀만큼 놀아보고 벌만큼 벌어보고 쾌락을 누릴만큼 누려봐도 허전하기 짝이 없는, 채워지지 않는 이 혼돈되고 엉클어져 있는 삶을 이 자매는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정돈된 삶으로 바뀌어졌다는 것입니다. 한 남자만으로 만족할 수 없어, 어떻게 평생 한 남자 사랑만 받고 살아. 그런 세상 가치관을 가지고 있던 이 자매가 이제 너무나 신실한 예수 믿는 가정 안에 남편을 만나가지고 지금 한 남자의 사랑을 받고, 한 남자의 아내가 되고 아이들의 어머니가 되어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그것이 박진영 씨가 그렇게 목말라 꿈꾸는 삶이더라는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나오신 모든 귀한 분들이 이 자매님이 만난 예수님을 만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혼미하고 혼돈된 흑암의 인생가운데 내 인생을 운행하시는, 다른 말로 뭐라고 그랬습니까? 어미 독수리가 날개짓하며 혼미한 새끼 독수리를 돌봐주는 것처럼 그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나면 인생에 혼란이 없어집니다. 왜요? 어미 독수리는 새끼 독수리가 죽도록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오늘 그 예수님 만나시기를 바랍니다. 마음을 여시는 그 분에게 예수님은 찾아가십니다. 마음을 열고 그 분을 영접하면 닫혀있던 영안이 열려져서, 눈으로만 볼 수 있는 이 세상 말고, 또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어머니의 사랑을 눈으로 볼 수 있습니까? 용서하는 아버지의 위대한 사랑을 눈으로 볼 수 있습니까? 영적인 세계, 그것을 볼 수 있는 눈을 뜨게 해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 은혜를 내가 받고나니, 오늘 본문의 절망적인 여인에게 주신 주님의 두 가지 축복이 발견됩니다. 여러분들에게도 이 축복이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

 

첫 번째는 “위로하심”입니다. 13절입니다. “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 하시고.” 주님께서 그 과부를 불쌍히 여기시며 위로하십니다. 오늘 주님이 이 말씀을 가지고 저에게, 여러분들에 위로하고 계시는 것 아십니까? 그 주님의 위로하심이 없었다면 오늘 저는 여기에 설 수 없었습니다. 장례를 따라가던 그 주변사람들도 고마운 분들입니다. “저 불쌍한 과부 아들이 죽었다는데 위로해주자.”하며 함께한 분들, 참 고마운 분들이지만 그러나 인간의 위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 인간의 위로가 어떻게 이 여자의 슬픔을 다 거둬갈 수 있겠습니까? 왜 예수님의 위로가 능력이 있는지 아십니까? 예수님의 위로는 그 여자의 근본적인 인생의 목마름, 그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주시는 위로이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기쁨의 회복입니다.” 로마서 5:10입니다.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되시면 그 다음 11절에서 이런 결과가 나타납니다.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하나님 안에서의 즐거움, 이 즐거움을 회복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눈물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슬픔의 재를 뒤집어쓰고 있는 우리 인생에 기쁨의 화관으로 씌어주시는 그 은혜가 주님이 내 인생을 운행하시도록 마음을 열고 주님 앞에 나오는 모든 분들께 바로 이 시간 즉각적으로 일어나는 은혜인줄로 믿습니다.

 

 

저 역시 이렇게 생명을 주신 주님의 은혜로 정말 기쁘고 감사하고 행복한데, 그런데도 가끔씩 나는 왜 이렇게 밖에 살지 못하나 라는 탄식을 하며 한숨을 쉬다가 만난 찬양이 있습니다. 저는 그 찬양으로 다시 새 힘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 찬양을 오늘 우리 같이 부르고 싶은데요. 이렇게 가사가 시작이 됩니다. “십자가 그 사랑 멀리 떠나서 무너진 나의 삶속에 잊혀진 주 은혜 돌같은 내마음 어루만지사 다시 일으켜 세우신 주를 사랑합니다.” 오늘 이 가사가 혼란스러운 저와 여러분 인생에 회복시켜주시는 십자가 은혜로 혼미함과 공허와 흑암이 정리되는 복이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 찬양을 같이 부르기를 원합니다. 가사를 깊이 음미하시며 같이 찬양하십니다.

 

 

 

 

 

 

    

올네이션스 경배와 찬양   CCM - 십자가 그 사랑

출처 : 아침이 있는 세상
글쓴이 : 아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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