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십자가로 세우는 신앙의 기본기

하나님아들 2018. 8. 3. 16:46

 

 

 

 

 

 

십자가로 세우는 신앙의 기본기

 

시편 23:1~6, 요한복음 3:16

 

 

고 한경직 목사님에 대한 일화입니다. 한경직 목사님은 은퇴하고 소천하기 전까지 남한산성에 기거하셨는데, 당시 교계 중진 목사님 몇 분이 찾아 뵌 적이 있습니다. 그 자리에서 어느 목사님이 한경직 목사님에게 “목사님 저희들에게 덕담 한마디만 해주세요.” 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러자 한경직 목사님은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목사님들, 예수 잘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미 예수 믿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목사들에게 예수를 잘 믿으라니, 잘못 오해해서 들으면 상처받을 수 있는 말씀이 아닙니까? 그런데 목회자의 길을 가는 저에게 한경직 목사님의 그 말씀이 큰 울림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저는 간혹 그 분의 그 충고의 말씀을 되새기곤 합니다. 이미 예수 믿는 목사님들에게 “예수 잘 믿으세요”라고 하신 한경직 목사님의 말은 우리가 회복해야 할 신앙의 기본기가 무엇인지를 지적해주는 아주 귀한 충고의 말씀인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는 “교회가 위기를 만났다. 변질됐다. 병들었다. 타락했다”와 같은 뼈아픈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오늘의 한국 교회가 회복해야 할 핵심, 교회가 다져야 할 기본기는 무엇입니까? “예수 잘 믿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예수 잘 믿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우리의 삶 가운데 십자가의 도(道)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어려움을 만난 한국 교회가 가장 먼저 해야 할 급선무는 ‘십자가의 도’를 바로 세우는 일입니다. 우리 정락교회가 어떤 많은 일을 한다 하더라도 교회에 십자가가 보이지 않으면 이 교회는 병든 교회입니다. 성도들의 삶에 십자가의 도를 바로 세우는 것이 가장 본질적인 신앙생활의 목표라인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요한복은 3:16은 저를 비롯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마음에 담고, 늘 묵상해야 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십자가는 죄를 범한 우리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결정체입니다. 즉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하여 죽기 까지 내어주신 사랑의 결정체가 바로 십자가입니다. 교회 안에 그 십자가가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어야 합니다. 십자가는 감상하는 장식품이 아니라, 우리 마음에 새겨야 하는 기본 중에 기본인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십자가의 도는 세상 이치에 역행하는 법칙이라는 사실입니다. 그 때문에 세상 사람들은, 심지어 예수님을 영접한 그리스도인조차도 이 십자가를 온전히 믿고, 받아들이는 데 어려움을 겪습니다. 세상 이치는 저등한 존재가 고등한 존재를 위하여 희생당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깁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동물들을 잡아서 요리를 해먹고, 가죽을 벗겨 옷이나 가방을 만들면서도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것은 그 동물들이 사람보다 저등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소를 키우는 것은 소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잡아먹으려는 것입니다. 이처럼 고등한 존재에 의해 저등한 존재가 이용당하고 희생당하는 것, 이것이 지극히 당연한 세상의 이치입니다.

 

그런데 유독 십자가의 도는 이러한 자연스러운 세상 이치를 역행합니다. 어떻게 우리와 비교도 되지 않는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주께서 우리와 같은 별 볼일 없는 인생을 위해 십자가를 지고 죽어주실 수 있단 말입니까? 정말 믿기지 않는 것이 당연합니다. 이 십자가의 도는 인간적인 노력으로 믿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의 특별한 은혜로 영의 귀가 열리지 않으면, 도무지 믿기 힘든 것이 십자가의 도입니다. 또한 성령님의 은혜로 십자가의 도를 받아들였다 할지라도 조금만 방심하면 우리 마음속에서 십자가는 자취를 감춥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지금 여러분의 마음속에서 십자가가 선명하게 드러나 있습니까? 십자가의 도가 진정으로 믿어집니까? 아마도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세상의 법칙에 너무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도 십자가의 도가 우리 마음에 제대로 새겨져 있지 않습니다.

 

이제 우리는 십자가의 도를 회복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 교회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회복해야 할 기본 중에 기본입니다. 기본을 단단히 하지 않고는 출렁이는 세상 물결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온전히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한경직 목사님처럼 여러분들에게 이렇게 권면하고 싶습니다. “정말 예수 잘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를 잘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처럼 대가없이 희생하고, 이유 없이 헌신하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교회에서 먼저 섬기고 먼저 헌신하는 것입니다. 삶에서 십자가 정신을 흐르게 하는 것입니다. 내가 먼저 낮은 곳으로 내려가야 합니다. 내가 먼저 섬기고 헌신해야 합니다. 내가 먼저 희생해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십자가의 도가 내 안에서 실천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십자가 정신이며, 그렇게 살아갈 때 십자가 정신이 세상에 전해지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십자가를 묵상하고 삶속에서 십자가를 실천하려고 애를 쓰면 우리 인생에 어떤 유익이 있습니까?  

 

첫째, 십자가가 내 안에 각인되면 이 땅을 사는 동안에 우리는 ‘평안’을 얻게 됩니다.

‘평안’이야말로 현대인들이 풀어야 할 과제 중의 하나입니다. 요즘 미국 성인들이 가장 많이 복용하는 약 중의 하나가 항우울제라고 합니다. 12세 이상 미국 사람 중에서 11%가 이 약을 복용 중이라고 하는데, 특히 백인이 흑인보다 더 많이 복용하고 여성이 남성보다 두 배 이상 더 많이 복용한다고 합니다. 무엇이 세계 최강국이라고 하는 미국 사람들을 이토록 우울하게 만들었을까요? ‘안전’이라는 단어를 영어로 ‘씨큐리티security'라고 합니다. 이 단어는 ’근심 걱정 없는‘이라는 뜻의 라틴어 ’씨큐리타스securitas'에서 파생되었습니다. 즉 진정한 안전은 ‘내 마음이 편한 것, 마음에 근심 걱정이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외부로부터 침입하는 도둑을 막기 위해 담장을 높이 쌓고, 이중 삼중의 잠금장치를 설치하고, 보안 전문 업체에 철통경비를 부탁합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의 마음속에 자신의 내부에서 침입하는 적은 다스릴 수 없어 수면제를 먹지 않으면 불안해서 잠조차 제대로 자지 못합니다. 이런 현대인들의 모순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무엇이 현대인들을 이처럼 불안에 떨게 만들었습니까?

 

언젠가 암에 대한 신문 기사를 읽다가 깜짝 놀란 적이 있습니다. 이런 제목의 기사였습니다.

“MD 앤더슨 암 센터 종신교수 김의신 박사의 암 이야기” 미국의 MD 앤더슨 암센터는 세계 최고의 암 전문 병원입니다. 그곳에 종신교수로 있는 한국인 김의신 박사가 암에 관련하여 인터뷰를 했습니다. 그 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국의 암 환자는 멀리서 봐도 금세 티가 난다. 얼굴에 근심이 가득하고 어깨가 축 쳐져 있다. 과도한 걱정은 오히려 암세포를 키우는데 큰 역할을 한다. 그리고 암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믿고 치료를 망치는 경우도 많아 답답한 때도 많다.” 그러면서 암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열거하였는데, 그중에 제 눈길을 끄는 대목이 있었습니다. 우리 몸에 암세포를 잡아먹는 고마운 면역세포가 있다는 것입니다. '내츄럴킬러셀Natural Killer cell'이라는 세포인데 약자로는 ‘NK’이고 우리말로 하면 ‘자연살해세포’입니다. 사람 몸에 이 자연살해세포가 많으면 암에 잘 걸리지도 않을 뿐 아니라, 암에 걸려도 치료가 잘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암에 대한 이 권위자가 이 자연살해세포에 대해 설명하면서 결론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 사람을 대상으로 이 세포의 수치를 조사했더니 항상 웃고 즐겁게 사는 사람에게서 이 NK 수치가 높게 나타났다. 교회 성가대원들은 일반인보다 그 수치가 1,000배 높게 나와서 나도 놀란 적이 있다. 기쁨 속에서 노래하고 감사 기도하고 안생을 밝게 사는 사람이 암에 대한 저항력이 높다. 이제 의학계에서 정설이 됐다. ‘성가대원의 NK 세포 1,000배’의 의미를 되새기며 살아가기 바란다.” 이것은 기독교 신문도 아니고, 기독교에 대해 큰 호감을 가지지 않는 일반 신문에 보도된 기사입니다. 게다가 저 같은 목사가 아닌 세계적인 암 전문가의 결론입니다. 세계적인 암 전문가가 말하기를 암세포를 죽이는 NK 세포를 많이 활성화시키는 것은 찬양대원들처럼 신령한 노래를 하고 기뻐하며 즐거워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영양가 높은 음식을 찾아 먹고, 비타민 챙겨서 먹는다고 NK 세포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 되시는 하나님을 기뻐하고 찬양하며 감사할 때 생긴다는 것입니다.

 

 

저는 여기서 덧붙이고 싶은 분명한 말씀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참된 평안은 참된 십자가 정신이 흐를 때 함께 하는 것이지 헛된 평강을 전하는 변질된 복음으로는 얻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요즘 안타깝게도 많은 교회에서 이상한 복음, 진리에 물 탄 복음이 선포되고 있습니다. “예수 믿으면 복 받는다!” 여기까지는 맞습니다. 그런데 “예수 믿으면 부자 된다. 예수 믿으면 성공한다. 예수 믿으면 자녀들이 좋은 대학 간다.” 이런 강조들은 문제가 있습니다. 예수 믿으면 받게 될 복이 이 세상에서 필요로 하는 물질적인 것이 전부인 것처럼 비춰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신령한 복을 저급한 것으로 전락시키는 것입니다. 이런 메시지가 복음인 것처럼, 강단에서 전해지다 보니 신령하고 영적인 것들이 육적인 것으로 변질되어 버린 것입니다. 저 역시 강단에서 말씀을 전할 때마다 조심스럽습니다. 목사인 제가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전하면 성도들을 혼란에 빠뜨리기 때문입니다. 정말 예수 잘 믿으면 복을 받아 사업 잘 되고, 자녀들이 좋은 대학에 가고 하는 식으로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결과만을 얻는다면, 예수님 열심히 믿으면서도 현실적으로 어려워서 눈물로 신음하는 분들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복음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잘못된 생각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일이 잘 되고 잘 풀리면 그것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교회가 커지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부흥이고, 사업이 잘 되면 하나님이 베푸시는 축복이라고 여깁니다. 이런 생각들 때문에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결과 지상주의’에 빠져 있고, 때로는 목적으로 이루기 위해 편법이나 불법을 동원하는 일들도 벌어지곤 합니다. 그러다 보니 ‘세상 사람보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더하다’는 세상의 조롱을 받게 된 것입니다. 교회가 그동안 치우친 복음을 심은 결과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타락하고 변질되어 영안으로 보는 것을 가르치지 않고 그저 눈에 보이는 것에 좋은 대로만 가르치고 있습니다. 심지어 마치 교회가 ‘요행을 바라는 곳’이라는 인식을 갖게 하고 있습니다. 이런 치우친 복음이 교회 안에 너무나 깊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교회에서 십자가가 사라지면 그것은 다 썩은 것이고 부패한 것입니다. 입만 살아 있는 교회가 무슨 염치로 전도한다고 나설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부터 정신 차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신령한 복을 저급한 육신적인 것으로 전락시켜서는 안 됩니다. 그렇지 않아도 탐욕적인 인간의 본성에 예수의 이름까지 동원해서 성공을 외치는 우리의 변질된 신앙이 회복되지 않고는 진정한 복음은 없습니다. 저부터 철저하게 회개해야 합니다. 조금 잘 되고 일이 잘 풀리면 하나님의 뜻이라고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며, 반대로 인생의 풍랑을 좀 만났다고 시험에 빠져서 하나님은 없다고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은 아닌지 철저히 돌아보고 깊이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복음의 진수는 요행이나 바라고 무조건 잘 될 때만 바라는 것이 아니라, 풍랑 속에서도 눈물 흘리며 감사하는 것, 고통의 광풍 속에서도 하나님 앞에 자신을 돌아보며 ‘상황이 어떨지라도 내 평안함을 빼앗아갈 수 없다’라고 고백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삶속에서 십자가를 실천 하려고 애를 쓰면 우리 인생에 어떤 유익을 얻을 수 있습니까?

 

둘째, 십자가가 내 안에 각인되면 죽음의 공포로부터 자유함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시편 23편에서 이렇게 시작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여기서 말하는 ‘부족함이 없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부자 되고 잘 먹고 잘 사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나의 목자가 되시니 내게 욕구불만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랬더니 2절부터 5절까지 이 땅에서의 삶이 어땠습니까? 여호와께서 푸른 풀밭에 누이시고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기도 했지만,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니기도 했습니다. 본문 4절입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예수 잘 믿어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 잘 믿어도 실패할 수 있고, 예수 잘 믿어도 우리 아들, 딸이 대학에 떨어질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 잘 믿으면 무엇이 다릅니까? 예수 잘 믿으면 도대체 어떤 유익이 있다는 것입니까? 비록 환경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니고 있을지라도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는 ‘평안’이 그 내면에 있습니다. 그 사망의 골짜기가 나를 망하게 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신하는 평안이 내면에 굳건히 자리 잡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평안이 있을 때 우리의 삶에 대해 내릴 수 있는 결론이 무엇입니까? 5절입니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얼마나 아름다운 고백입니까? 이것이 십자가가 있는 인생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 6절을 보십시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5절의 동사는 모두 현재형입니다. 그러나 6절의 동사는 미래형입니다. 이 땅에서의 삶이 ‘내 잔이 넘치는’ 풍성한 삶일 뿐 아니라, 장차 이 땅을 떠났을 때에 ‘영원히 여호와의 집에 살 것’이라는 천국 소망으로 충만한 것입니다. 그 소망 때문에 죽음의 공포로부터 참된 자유함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10년 전에 저는 인도네시아교회의 초청을 받고 인도네시아 발리에 집회차 다녀 온 일이 있습니다. 발리로 가는 비행기 안에는 신혼여행을 떠나는 신혼부부들로 가득하였습니다. 기대로 들뜬 그들과는 달리 저는 놀러가는 것이 아니었고 집회 인도차 가는 것이었기에 부담감이 있었습니다. 긴장한 탓인지 건강도 안 좋은 상태였습니다. 비행기 안에 양복을 입은 사람은 저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발리에 도착에 숙소에 올라가 창문을 여니 아름다운 해변이 한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4일 동안의 일정이 너무 빡빡해서 해변에는 한 번도 제대로 나가지 못했습니다. 그저 집회 장소로 이동할 때 잠깐 잠깐 눈요기를 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렇게 발리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마지막 날, 새벽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으로 향했습니다. 기왕 발리까지 왔으니 하루 더 쉬었다가라는 제안에 잠시 귀가 솔깃했지만 몸 상태도 안 좋았고, 또 한국에 돌아가 할 일이 있었기에 여유부릴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휴양지로 유명한 발리에 가서 실컷 일만 하고 돌아왔습니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도 역시 신혼부부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때 그 순간이 지금도 생생하게 제 가슴에 남아 있습니다. 비행기를 탐승하기 위해 발리 공항의 복도를 뚜벅뚜벅 걸어가는데 4일 동안 집회와 건강과 음식이 안 맞아 제대로 먹지 못해서 지쳐있었던 제 마음속에 기쁨이 몰려왔습니다. ‘야 나 집에 간다. 나 집에 간다.’ 집에 가봐야 특별히 좋을 것 하나도 없었습니다. 창문만 열어도 멋진 풍광이 펼쳐지는 발리와는 달리 도시의 빽빽한 건물만 가득하고, 내가 해야 할 일들만이 기다리고 있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저 내 집으로 한국으로 간다는 생각만으로 저는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발리의 경치고 뭐고 아쉬울 것이 없었습니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인생이 끝나는 날도 이랬으면 좋겠다.’ 비록 이 땅에서 많은 것을 누리고 즐기며 살지는 못할지라도, 내 삶이 끝나는 날, ‘나 집에 간다. 사랑하는 우리 주님이 기다리시는 집에 간다’는 마음으로 설렘과 기쁨을 가득 안고 이 땅을 떠나가면 좋겠다는 간절한 소원이 생긴 것입니다. 저는 그때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 인생이 마무리될 때 오늘 같은 기쁨을 주옵소서. 제 인생이 끝날 때 비참하고 미련이 남아서 눈 못 감고 죽는 인생이 아니라 평안하게 ‘집에 간다. 집에 간다. 아버지 집에 간다’는 설렘으로 기쁘게 떠날 수 있게 하옵소서.”

 

그날 제 평생 처음으로 비행기 일등석을 타보았습니다. 삼등석을 예약했는데 양복을 입어서 그런지 몰라도 카운터에서 일등석으로 바꿔주는 놀라운 일이 있었던 것입니다. 일등석에 가보니 자리가 얼마나 넓고 편한지 비행시간이 정말 짧게 느껴졌습니다. 잠깐 잠이 든 것 같은데 눈을 떠 보니 벌써 도착했습니다. 그 아쉬운 일등석을 뒤로 하고 비행기에서 가장 먼저 내렸습니다. 그것까지는 기분이 정말 좋았습니다. 긴 인천공항 복도를 거쳐 입국심사대 앞에 섰는데, 그 앞에 서니 일등석, 이등석, 삼등석이 필요 없습니다. 필요한 것은 딱 하나, 여권입니다. 일등석으로 왔어도 여권 없이는 못 들어갑니다. 짐칸에 실려 왔어도 여권만 있으면 들어갑니다. 여러분, 이 땅에서 일등석 인생으로 살아가나 삼등석 인생으로 살아가나, 이 땅에서의 삶은 잠깐입니다. 저는 우리 모두가 잠시 편안한 일등석에 앉기 위해 애쓰는 인생이기보다, 영원토록 거하는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여권을 단단히 소지한 인생, 시편 23:6이 있는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시편 23편을 묵상하면서 인생을 두 종류로 나누어 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5절까지만 있는 인생, 그래서 이 땅에서 잔이 넘치고 풍성한데, 그것으로 끝인 인생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하나는 6절이 있는 인생입니다.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라는 고백이 있는 인생입니다. 여러분 이런 인생을 살고 싶지 않습니까? 이런 묵상을 하며 제가 구호 하나를 만들었습니다. “살아서는 평강이요, 죽어서는 천국이라!” 우리 모두 이 같은 소망으로 충만한 평강을 누리기를 바랍니다. 이 땅에서 안달복달하며 예수 이름 팔아 성공하고 부자 되기만을 바라는 저급한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욕구불만이 없습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는 참된 평강의 삶을 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최근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바이올린 연주자를 손꼽으라면 단연 박지혜라는 이름을 떠올립니다. 인터넷을 검색하면 이런 기사가 눈에 띕니다. “스물 여섯살의 박지혜, 한국인 최초로 미국 카네기홀 시즌 개막연주회를 열다.” 이렇게 탁월한 바이올린 연주자 박지혜 - 며칠 전 운전을 하는데 극동방송에서 박지혜의 어미니의 간증이 들려왔습니다. “지금 지혜가 세계적인 바이올린 연주자가 되었지만, 독일과 미국에서 공부하는 동안 얼마나 힘이 들었는지 우울증에 빠져 피폐하고 힘든 시기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우울증에 빠져 삶이 망가질 뻔한 지혜의 삶에 빛을 비춘 것은 십자가 복음입니다.” 우울증에 빠진 한 음악인을 살려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예술가로 만들어주는 능력이 복음 안에 있습니다. 그것이 오늘 우리가 회복해야 할 신앙의 기본기, 십자가 복음인 것입니다.

 

현재의 삶이 고단하고 광풍 속에 있습니까? 그렇다면 십자가를 다시 바라보기 바랍니다. 십자가의 능력으로 잃어버린 평안을 되찾고 회복하는 복을 누리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 복을 누릴 뿐만 아니라 시편 23:6 이 복구되는 인생이 되기 바랍니다.

 

 

 

 

 

 


  

 

김은현 CCM -  십자가의 전달자

 

출처 : 아침이 있는 세상
글쓴이 : 아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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