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강의 / 사복음서에 나타난 성령의 기름부음
061113(삼봉산기도원에서/이병천목사)
기름부음을 사모하라! 기름부음을 열망하라! 기름부음을 앙망하라!
기름부음을 사랑하라! 기름부음을 사랑하라! 기름부음을 사랑하라!
기름부음을 소중히 여겨라! 기름부음을 귀하게 여겨라! 기름부음을 값지게 여겨라!
하나님의 일은 기름부음이 한다! 하나님의 일은 기름부음이 한다! 하나님의 일은 기름부음이 한다!
제1장 성령의 기름부음의 배경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된 데를 찾으시니 곧 주의 ( 성령 )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 기름 )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눅4:16-19)
우리 사역의 모델은 ( 예수 그리스도 )이시다(요14:12).
예수님의 사역에 관한 부분은 사복음서에 있다. 네 복음서가 참으로 절묘하고, 오묘하다. 그리고 네 복음서의 강조점을 다 합해보면 예수님의 사역에 대한 전체적인 윤곽이 선명하게 들어오게 된다. 복음서마다 예수님의 사역의 특징들을 조명하고 부각시키며 강조하는 반면에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정확하게 동일한 사역을 명령하시고 계시는 것이다.
1. 마가복음
마가복음은 밥티스마와 함께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은(막1:9-11) 예수님의 사역이 말씀 선포와 ( 능력행함 )이 하나로 어우러진 사역이었다 하는 것을 강조하고 있고, 그 결과로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따랐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마가복음에 예수님의 사역에 대한 이러한 강조는 마가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공생애 첫 번째 사건부터 볼 수 있다.
막 1:21-28
막 1:38-39
복음서마다 처음에 기록된 사건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각 복음서마다 제일 먼저 기록된 사건이 예수님의 첫 번째 사역이기 때문에 기록한 것이 아니고, 각 복음서의 모델 혹은 패러다임으로 제시하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마가복음의 이 사건은 예수님께서 회당에 들어가셔서 가르치실 때, 사람들이 두 가지를 보고 놀랐다. 하나는 예수님의 가르치는 말씀의 권세에 놀랐고, 또 하나는 예수님을 통해서 나타나는 능력 행함의 권세 때문이었다.
마가가 이야기하는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들을 뽑으신 목적은?
막3:13-15 “또 산에 오르사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 함께 있게 )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어 쫓는 ( 권세 )도 있게 하려 하심이러라”(막 3:13-15)
오늘날은 사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의 사역 중에서 사람들이 일부만 취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마가복음에 나오는 것처럼 성령의 능력을 많이 사모하곤 한다. 그 이유는 성령의 능력만 임하면 마가복음에서 그랬던 것처럼 많은 사람이 교회로 올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2. 마태복음
마태복음도 역시 밥티스마와 함께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은(마3:16-17) 예수님의 사역이 마가복음이 말한 것처럼 말씀선포와 능력 행함이었다는 것을 그대로 전재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마태복음은 거기에 예수님의 사역이 ( 하나님 나라 )의 사역이었던 것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이런 마태복음의 강조는 1장에 나오는 족보에서부터 볼 수 있는데, 마태복음은 처음부터 예수님이 하나님의 나라의 왕으로 오신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마태복음에는 어느 복음서보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유가 많다. (마13장, 16장, 20장 참조) 일부는 다른 복음서에도 있지만 많은 비유들은 마태복음에만 있다. 왜냐하면 마태복음은 예수님의 사역이 하나님 나라의 사역이었다는 것을 집중적으로 부각시키고 강조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사역에 대한 마태의 기록을 살펴보자.
1-4장 서론, 예수님의 사역을 요약하면?
마 4:23-25 / 가르침과 선포라는 ( 말씀선포 )와 ( 능력 )행함으로 요약됨
5-9장
5-7장 하나님 나라에 대한 말씀(계속 반복된 말씀들의 진수)
8-9장 하나님 나라의 능력사역(치유사역)
5-9장의 예수님의 전체 사역을 다시 요약하면?
마9:35 “예수께서 모든 성과 모든 촌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 가르치 )시며 천국 복음을 ( 전파 )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 고치시 )니라”(마 9:35).
10장 예수님의 파송을 받는 제자들의 사역소개(예수님과 똑같은 사역이었다.)
10:7-8 “가면서 전파하여 ( 말하되 ) 천국이 가까웠다하고 병든 자를 ( 고치 )며 죽은 자를 ( 살리 )며 문둥이를 ( 깨끗하게 ) 하며 귀신을 ( 쫓아 )내되 너희가 거져 받았으니 거져주어라.”
그 모든 사역의 중심에는 무엇이 존재하는가? 10:20, 12:18, 28, 31-32 ( 성령 )
예수님의 치유사역은 두 가지였었다.
1. 8:16 ( 말씀 )으로 하는 사역
14:34-36 ( 기름부음 )으로 하는 사역 (눅6:19, 막5:30, 사10:27, 행19:11-12 참조)
※ 마태 마가 누가복음에는 능력과 권세라는 말이 상호 교환적으로 나오나 요한복음에는 오직 권세라는 말만 나온다.
(요 5:27) 『또 인자됨을 인하여 심판하는 권세를 주셨느니라』
(요 17:2)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자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요 10:18)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요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 능력사역이 제한 받게 되는 요소들
마13:19-23 인간의 심령( 상태 )
마16:5-12 잘못된 ( 신학적 ) 가르침들 (마22:29, 막7:8-13, 눅11:52 참조)
마태가 소개한 예수님의 유언(The Great Commission)과도 같은 명령을 보면,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 모든 )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마태복음 28:18-20) 이렇게 말씀하심으로써 우리들도 예수님의 제자로써 정확하게 예수님이 했던 그대로 해야 될 것을 말해주고 있다.
3. 누가복음
누가복음도 예수님의 사역이 성령의 기름부음 안에 있는(눅3:21-22) 말씀 선포와 능력 행함,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사역이었다는 것을 그대로 전제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누가복음은 예수님의 사역이 ( 성령 )의 능력으로 되어진 것을 더욱 더 강조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은 성령과 연관하여 다른 복음서에는 없는 많은 내용들이 있는데, 그것은 성령께 집중적으로 focus(초점)가 맞춰져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문안함을 들으매 아이가 복중에서 뛰노는지라 엘리사벳이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눅1:41) “그 부친 사가랴가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예언하여 가로되” (눅1:67)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이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눅2:25) 그밖에도 [눅1:15, 눅1:35, 눅2:26, 눅2:27, 눅3:22, 눅4:18, 눅10:21, 눅11:13, 눅12:10, 눅12:12) 등 누가복음은 예수님의 사역이 다른 어느 복음서보다 성령의 사역이었다는 것을 집중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또 예수님께서 침례를 받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 성령이 그 위에 임하셨다는 내용은 네 복음서가 다 말하고 있다. 그런데 누가복음 4장 1절에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 강에서 돌아오사” 이 말은 다른 복음서에는 없다. 그리고 사단에게 시험을 받으시고 돌아오실 때, 14절 “예수께서 성령의 권능으로 갈릴리에 돌아가시니” 이 내용도 다른 복음서에는 없다. 이것은 예수님이 처음부터 성령의 능력에 충만했고, 그래서 성령의 능력으로 사역을 감당한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강조가 끝나지 않는다. 앞에서 말한 대로 각 복음서에서 첫 번째 기록한 사건이 아주 중요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하나의 모델, 패러다임(paradigm 모범, 보기)으로 제시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누가복음의 첫 번째 기록을 읽어보자.
눅4:16-19
누가는 예수께서 성령의 ( 기름부음 )으로 사역하셨음을 무엇보다 강조하는 것이다.
누가가 이야기하는 예수님의 승천기사도 역시...
(눅24:44-49) “...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 하시니라”
누가는 예수님이 성령의 능력으로 사역을 감당하신 것을 강조하면서 제자들도 동일하게 성령의 능력으로 사역을 감당해야 할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예수님의 ( 기도 )가 강조되어 있다. 새벽에 기도하시고, 산에 올라가 기도하시고, 밤중에 기도 하시고, 어떤 때는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려왔을 때, 예수님은 그들을 떠나 혼자 산에 기도하러가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누가는 성령과 기도를 연결시키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는 침례의 기사도 다르다(눅3:21). “백성이 다 침례를 받을새 예수도 침례를 받으시고 ( 기도 )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뿐만 아니라 동일한 말씀을 마태복음은 좋은 것(마7:7-9)이라고 기록했는데, 누가복음에서는 성령(눅11:9-13)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 성령 )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우리는 하나님께서 누가복음의 저자를 통해 무엇을 집중적으로 강조하고 계신 것을 보아야 한다. 예수님이 성령의 능력으로 사역을 감당하신 것을 말씀하고 있고, 아울러 그 성령의 능력이 임하는 데에 있어서 ( 기도 )가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4. 요한복음
예수님의 사역은 말씀의 선포와 능력 행함으로 되어지는 하나님 나라의 사역이었다. 하나님의 온전한 통치, 신앙의 본질과 십자가의 복음,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했다. 그런데 이것을 성령의 능력으로 감당했다. 요한복음은 이 세 가지를 다 전재한다. 그런데 요한복음은 주님이 이 사역을 감당하시되 임의로 하지 않으시고, 성령께 ( 민감 )해서 감당하셨다는 것을 집중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임의로 하지 않으시고, 성령께 민감해서” 이 두 개가 중요한 것이다.
요한복음에는 예수님의 사역에 대한 전형적인 모델이 5장에 나온다.
요5:17-20 여기에 보면 예수님의 사역의 모습을 몇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아버지가 일하신다.
둘째, 나도 일한다.
셋째, 나는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넷째, 나는 아버지가 행하시는 것을 본다.
다섯째, 나는 그것만 보고 행한다.
여섯째,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아버지 하시는 것을 보이신다.
이것이 예수님의 사역이고, 요한복음 전체에 깔려있는 강조점이다.
누가복음에서는 예수님이 성령의 ( 능력 )으로 사역을 감당했다는 것을 강조하는 반면에, 요한복음은 그것을 전재하면서 예수님은 스스로 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성령께 ( 민감 )해서 사역을 감당하셨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고 동참하려면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가 전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가 없으면 그런 일은 불가능한 것이다.
요10: 37-38 , 요 12:49-50, 14:10-12, 15:1-7
예수님의 삶과 사역에서 하나님 아버지가 목자라면 예수님은 ( 양 )이었고, 하나님 아버지가 대통령이라면 예수님은 ( 대변인 )이셨고, 예수님이 자동차라면 하나님 아버지가 ( 운전자 )이시고, 하나님 아버지가 포도나무라면 예수님은 그 ( 가지 )였다.
※ 예수님과 하나님 아버지의 이상과 같은 관계는 예수님과 그의 제자 된 우리가 성령 안에서 형성되어질 관계의 Sample이 되는 것이다.
총 정리
예수님의 사역은 ( 하나님 나라 )의 사역이었으며, 그것은 ( 말씀 )선포와 ( 능력 )행함이 함께 하는 사역이었다. 그 모든 것을 가능케 한 것은 성령의 ( 기름부음 )이었다.
오늘날 우리들이 이 성령의 능력을 경험하지 못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하나님 나라의 메시지가 교회 가운데 전파되지 않고, 성도들이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살지 않기 때문인 것이다.
탁자가 온전히 서 있으려면 균형 잡힌 네 개의 다리가 다 있어야 한다. 오늘날 어떤 사람들은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처럼 성령의 능력을 강조한다. 그런데 마태복음에 나오는 하나님 나라의 메시지는 전혀 전하지 않고, 요한복음에 나오는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 가운데서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고 동참하는 그 일을 전혀 전하지 않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그것은 네 개의 다리에서 두개가 부러진 탁자와 같은 것이다. 균형이 중요하다. 균형이 깨지면 교회가 세워지지 않고, 성도의 삶이 변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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