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지파와 144,000명
계시록의 열두지파 144,000을 실제수로 해석하고, 자신들이 인위적으로 만드는 숫자와 조직으로 해석하는 이만희의 음모는 정말 유치하고 가증스럽기만 하다.
그동안 모든 이단교회들이 144,000명을 자기 교회에서의 구원을 받은 숫자라고 주장해 왔으며, 역으로 이러한 주장을 하는 자들은 바로 이단이라고 말하여도 전혀 무리가 아니다.
그러나 자신이 인위적으로 만든 12지파 144,000명이 지상천국을 이루게 된다는 주장은 이단 중에서도 이단이며, 나아가서는 기독교뿐 아니라, 우리나라 전체에서도 축출을 시켜야만 하는 집단이 된다.
성경적으로 이만희의 주장이 가장 틀린 점이 무엇일까?
사실 이런 설명을 한다는 자체가 정말 유치하기 짝이 없다.
(1) 구원이란, 어떤 사람이나 집단이 인위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인 사역이며 값없는 은혜라는 것을 잊으면 안된다.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만든 조직을 12지파라고 하며, 그들이 144,000명이라고 말하는 주장은 명백한 이단집단의 주장이 되어진다.
(2) 12지파, 144,000명은 상징적인 숫자일 뿐이다. 이것에 대해서는 뒤쪽에서 상세하게 설명하고자 한다.
(3) 열두지파가 오직 한국사람을 말한다는 성경구절은 일일이 대응할 필요도 없는 황당한 비성경적인 주장이다.
문자적으로만 성경을 해석한다면 열두지파는 이스라엘 백성을 말하며, 상징적으로 해석한다면 영적 이스라엘은 자발적으로 예수를 믿는 모든 사람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세가지 견해에 대해서 성경적으로 살펴보자.
(1) 구원이란 어떤 사람이나 집단이 인위적으로나 행위로 이루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인 사역이며 하나님의 값없는 은혜라는 것을 잊으면 안된다.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만든 조직을 12지파라고 하며, 그들이 144,000명이라고 말하는 주장은 명백한 이단집단의 주장이 되어진다.
“내가 인 맞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 맞은 자들이 십 사만 사천이니.....
12지파의 144,000명은 “하나님의 인맞은 자”라고 성경은 말한다.
그렇다면 인을 맞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
원래 유목민이었던 이스라엘들은 가축을 소유함에 있어서 소위 낙인을 찍었다. 그 인침은 곧 자기의 소유를 주장하는 표식이었던 것이다.
즉 하나님의 소유와 사단의 소유를 구별함을 상징적으로 “인침”이라고 설명한 것이다.
“그 안에서 너희는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엡1:13)
다시 말하자면 인간적인 행위에 위한 인치심이 아니라, 성령의 인치심을 받는다는 것이다. 즉 인침을 주시는 분은 사람이 아니라, 성령하나님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성경구절은 성경에 수도 없이 많이 있는데, 인간의 행위와 노력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의를 좇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으니 곧 믿음에서 난 의요. 의의 법을 좇아간 이스라엘은 법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어찌 그러하뇨 이는 저희가 믿음에 의지하지 않고 행위에 의지함이라 부딪힐 돌에 부딪혔느니라(롬9:30-32)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딛3:5)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딤후1:9)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되지 못하느니라”(롬11:6)
(2) 12지파, 144,000명은 상징적인 숫자이다
성경본문을 보자....
“내가 인 맞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 맞은 자들이 십 사만 사천이니 유다 지파 중에 인 맞은 자가 일만 이천이요 르우벤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갓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아셀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납달리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므낫세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시므온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레위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잇사갈 지파 스불론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요셉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베냐민 지파 중에 인 맞은 자가 일만 이천이라“(계7:4-8)
과연 144000이 유대인의 열두지파에서 인맞은 자들의 실제숫자일까?
정통교회의 해석은 상징적이라고 보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열두지파란 구약에서 구원을 받은 사람들을 뜻하는 상징적인 의미라고 본다. 왜냐하면 계시록의 열두지파는 이스라엘의 실제 열두지파와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첫째, 열두지파에서 단지파가 빠진다.
둘째, 원래 요셉지파에 므낫세와 에브라임이 포함되는데(신33:17), 계시록의 열두지파는 요셉과 므낫세가 분리되어 나타나고 있으며, 에브라임은 없다.
셋째, 신33에는 시므온지파가 빠져 있는데 그 이유는 나중에 유다지파에 흡수되기 때문입니다.(수19:1-9, 삿1:3) 그러나 계시록의 열두지파는 시므온지파와 유다지파가 분리되어 있다.
학자들에 의하면 계시록의 열두지파는 유대인들이 말하는 열두지파와도 다르며, 구약의 성경기록과 동일하게 기록된 적이 없는 열두지파 명단이라고 말한다.
2. 또한 신약시대에서 구약의 열두지파는 유명무실하여 진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사회적이며 총체적이고 기본적인 단위를 의미할 때에만 열두지파라는 단어를 사용하게 된다. 마치 "팔도강산"이 대한민국 전체를 상징하듯이 일종의 관용적인 표현으로 사용되어진 것이다.
12 라는 숫자의 의미는 이스라엘 사회에 내재하는 사회적이며 역사적인 실체를 가르킨다. 즉 민족적으로서 다양한 사회적 단위를 의미한다.
구약에서는 여호와를 믿는 신앙적 결속력이 이 이스라엘의 지파들을 하나로 결속시키는 요소가 되어 왔던 것이다.
오늘날 12 이란 의미, 역시 하나님을 믿으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다양한 민족적, 사회적, 문화적인 단위를 말한다. 그래서 사도들도 열두명이 되어야만 했던 것이며, 가롯유다가 없는 열두사도는 곧 보충되어져야만 했던 것이다.
그 12라는 숫자를 다시 12로 곱한다는 것은 구약의 열두 민족과 신약의 열두 사도들을 의미하는 "어느 누구나"라는 보편성을 말하며 또한 그 숫자에 1000이라는 많은 개념의 숫자를 곱한다는 의미를 파악하여야 할 것이다.
즉 12 X 12 X 1000 = 144,000 으로 해석한다.
3. 신약성경에서는 이스라엘만이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 즉 신약에서는 이스라엘이라는 단어가 구원을 받은 사람들의 상징적이며 영적인 개념으로 사용되어진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 같지 않도다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롬9:6)
- 대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롬2:28-29)
-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마21:43)
-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좇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마19:28)
4. 계시록에서는 이스라엘이라는 단어가 세구절(계2:14, 7:4, 21:12)이 나타난다. 그 중에서 열두지파와 열두사도가 함께 언급되는 구절이 있는데, 21장12-17절이다. 이것을 참고하여 살펴보면 숫자에 대한 해석의 힌트가 담겨져 있다.
계 21:12 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 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 두 천사가 있고 그 문들 위에 이름을 썼으니 이스라엘 자손 열 두 지파의 이름들이라
계 21:13 동편에 세 문, 북편에 세 문, 남편에 세 문, 서편에 세 문이니
계 21:14 그 성에 성곽은 열 두 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 어린 양의 십 이 사도의 열 두 이름이 있더라
계 21:15 내게 말하는 자가 그 성과 그 문들과 성곽을 척량하려고 금 갈대를 가졌더라
계 21:16 그 성은 네모가 반듯하여 장광이 같은지라 그 갈대로 그 성을 척량하니 일만 이천 스다디온이요 장과 광과 고가 같더라
계 21:17 그 성곽을 척량하매 일백 사십 사 규빗이니 사람의 척량 곧 천사의 척량이라
계21장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성을 사도요한이 환상에서 표현하는 내용이다. 그 성곽의 열두문에 열두지파의 이름이 있다(21:12)는 것은 구약에서의 구원을 상징한다.(12 지파)
그리고 성곽의 열두기초석에 사도의 이름이 있다(21:14)는 것은 곧 신약에서의 구원을 상징한다고 본다.(12 사도)
다시 말하여 열두지파의 이름과 열두사도의 이름을 사도요한이 상징적으로 비유한 이유는 구약과 신약의 구원을 모두 총괄하여 표현하고자 함이다.(12 X 12)
그런데 열두지파의 이름이 기록된 문은 네 방향(동서남북)으로 세 개의 문이 있다는 것이다. 즉 4 X 3 = 12를 말하고 있으며, 동서남북 네 방향이라는 것은 구원을 받는 자가 사방에서 들어온다는 것을 뜻한다고 본다.
또 그 성을 척량하니 일만이천(12,000) 스타디온이라는 것이다.
즉 12,000은 12 X 1000이라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사도들의 이름이 기록된 주춧돌이 있는 성곽을 척량하니 일백사십사(144) 규빗이라는 것이다. 144는 12 X 12라는 개념을 설명하고 있다.
5. 7장4절의 144000과 7장9절의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계 7:4 내가 인 맞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 맞은 자들이 십 사만 사천이니
계 7:5 유다 지파 중에 인 맞은 자가 일만 이천이요 르우벤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갓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계 7:6 아셀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납달리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므낫세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계 7:7 시므온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레위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잇사갈 지파에 일만이천이요
계 7:8 스불론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요셉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베냐민 지파 중에 인 맞은 자가 일만 이천이라
계 7:9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계 7:10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7장4절의 144000명과 7장9절의 “능히 셀수 없는 큰 무리”는 사도요한이 환상으로 본 다른 두 개의 구별되는 사건을 말할까?
각각 구별되는 두 개의 사건이 아니다.
사도요한은 7장4절의 환상을 보았고, 이 일 후에 다시 7장9절의 환상을 본 것이다. 상식적으로 이 두 개의 환상은 독립된 별도의 구원받은 숫자라고 보기보다는 동일한 구원을 상징하는 뜻으로 상호연결 되어지는 것으로 본다.
이것을 앞의 계시록 21장(열두지파의 이름과 열두사도의 이름)과 같은 맥락에서 보면, 사도요한은 먼저 구약의 구원의 상징적인 개념을 보았으며, 그리고 이 일 후에 신약의 구원의 상징적인 개념을 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6. 성경은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원에는 어떤 차별도 없다고 말한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롬10:12-13)
7. 계시록의 많은 숫자들은 모두 비유적이며 상징적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에 많은 학자들은 동의를 한다. 그런데 왜 144000 이란 숫자만이 실제수라고 말할까?
8. 계 7:9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흰 옷을 입었다는 구절은 곧 주님의 죄사함을 받았다는 뜻이다. 즉 앞구절의 “인치심을 받은 자”와 동일한 뜻이 된다는 점에 유의하여야 한다.
만일 유대인들 열두지파만이 인치심을 받는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이 본문의 큰 무리만이 흰 옷(죄사함)을 입는다는 것도 부정하여야 한다.
즉 구원을 받는 모든 사람들은 성령의 인침을 받은 자들이며, 죄사함을 받은 사람들(흰 옷을 입은 사람들)이라고 말하여야만 한다.
(3) 열두지파가 오직 한국사람을 말한다는 성경구절은 일일이 대응할 필요도 없는 황당한 비성경적인 주장이다.
동방의 의인이 우리나라의 의인이라고 주장하는 곳은 영생교, 통일교, 정명석집단, 천부교, 신천지, 하나님의 교회등이다. 모두 동일한 주장을 하는 것이다.
모두 교주 자신을 신격화시키는 거짓 이단집단이다.
그들은 이사야41:1-2, 46:11을 인용하며, 동방이 한국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어느 성경도 한국에서 구원자가 나타난다는 주장은 없으며, 한국사람만이 144000명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주장은 없다.
동방이 한국을 뜻한다는 해석은 어처구니가 없는 거짓말이다.
아가페 성경사전을 살펴보자(340쪽)
[동방사람] 일반적으로 팔레스타인의 동쪽 지역에 살던 거류민들과 유목민들을 가르킨다. 야곱이 여행했던 ‘동방사람의 땅’(창29:1)은 유브라데강과 티크리스강 사이의 팔레스타인 북동쪽 ‘밧단 아람’지역이었다. 아마 발람 선지자도 이 지역 출신이었던 것 같다(민23:7). 삿6:3에서 언급한 동방사람은 기드온에게 패하여 라바(오늘의 암만)의 동남쪽 갈골로 도주한 미디안과 아말렉의 연합군들을 가르킨다....... 사11:4의 종말론적인 예언에서는 그 범위를 남쪽 지방까지 더욱 확장하여 에돔, 모압, 암몬사람들까지도 동방사람으로 간주하였다....... 아기 예수님을 찾아온 현자들도 동방사람들이었는데, 이들은 아라비아나 시리아 혹은 파르티아나나 페르시아에서 온 사람들로 추정되어진다.(생략)
성경에서 동방이란 고유명사가 아니라, 항상 어느 지역을 중심으로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며, 그 동편도 팔레스타인 지역을 크게 벗어나지 않음을 알 수가 있다.
즉 동방은 동쪽방향이라는 뜻이다.
사이비 이단들의 교주들의 주장대로 동방이 한국을 말한다면, 성경에 바벨탑을 동방에 세웠다고 기록되어있으므로 한국에 바벨탑을 세웠다는 것이 되며(창 11:2), 유다족속의 진은 동방의 해 돋는 편에 진쳤으니, 한국 땅에 진쳤다는 말이 되며(민 2:3), 욥은 동방 사람이니 한국 사람이라는 말이 된다. (욥1:3)
더욱이 에덴동산이 동방에 있었다고 하였으니(창2:8) 에덴동산이 한국에 있었단 말인가?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탄생했을 때 경배하러 온 동방의 박사들도 한국 사람들이라는 말이 된다(마2:1).
성경 어느 곳에도 동방을 한국이라고 기록한 곳은 단 한 군데에도 없다.
게다가 사도요한이 2000년 전에 밧모섬에서 한국의 이만희가 열두지파를 인위적으로 만들 것을 예언하였다는 것인가?
이단 교주들은 모두 해 돋는 곳이 한국이라는 주장을 하기도 하는데, 동방과 해돋는 편이라는 두 장소가 동시에 기록된 성경본문도 있다.
"동방 해 돋는 편에 진 칠 자는 그 군대대로 유다의 진 기에 속한 자라 유다 자손의 족장은 암미나답의 아들 나손이요"(민2:4)
시내광야의 동방 해돋는 편에 유다자손이 섰는데, 그곳이 한국이란 말인가?
한국이 동편 시내광야에 있으며, 유다 자손들이 언제 한국에서 군대의 진을 쳤단 말인가?
다음 성경본문을 보라, 해돋는 곳이 한국이고 동방이 한국이란 말인가?
“이스라엘 자손이 요단 저편 해 돋는 편 곧 아르논 골짜기에서 헤르몬산까지의 동방 온 아라바를 점령하고 그 땅에서 쳐 죽인 왕들은 이러하니라(수12:1)
또한 “땅 끝”이란 한국이 아니다.
이단교주들은 이사야 41:9의 땅 끝을 한국이라고 해석하는데 이는 전혀 근거가 없는 엉터리 해석이다. 땅 끝은 한국을 뜻하지 않는다.
성경에서 땅 끝은 “원방”(신 28:49)이라고 했다. 원방은 문자적인 의미로서는 “먼 지역”을 말하며, 바벨론을 가리키는 지명으로 한국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곳이다(사 39:3).
“이에 선지자 이사야가 히스기야 왕에게 나아와 묻되 그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였으며 어디서 왕에게 왔나이까 히스기야가 가로되 그들이 원방 곧 바벨론에서 내게 왔나이다(사39:3)
또 성경은 때로 땅 끝을 북방이라고도 표현했다(렘 50:41). 역시 여기에서도 한국과는 관계가 없다. 또 남방 여왕은 땅 끝에서 왔다고 했는데(마 12:42), 당연히 땅 끝은 한국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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