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변명을 하자면, 그동안 운영자가 신천지와는 토론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며, 신천지의 교리가 기록된 책자나 문헌을 구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교회와 신앙의 기사를 보면, 신천지 측에서 자신들의 교재나 자료가 외부에 유출되는 것을 극도로 제한하고 있다고 한다.
마침 어느 한분이 신천지에서 발행한 책자와 자료를 보내주었기에 시간이 허락하는대로 이 자료를 철저하게 분석하여 신천지의 교리를 성경적으로 비판할 예정이다. 물론 본인은 정확한 자료적인 근거를 인용하며, 단지 교리만을 성경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신천지의 책자에 있는 내용은 붉은 색으로 올린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고 하시며(요16:12) 많은 것을 말씀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하늘로 올라가신 후 제자 요한에게 계시를 주셨으니 요한계시록 1장부터 22장에 기록한 내용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기록한 요한계시록은 장래 이룰 일을 미리 알린 예언서이므로 그 성취 때 약속한 말씀대로 나타날 실상을 입증하는 증거 서류와도 같다. 주께서 명하신 대로 하나라도 가감하지 말아야 할 계시록의 말씀(계22:18-19)은 기록한 실상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그동안 어느 누구도 참뜻을 해석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 성취 때가 되어 계시록의 예언이 홀연히 이루어졌으므로 필자는 그 실상을 직접 보고 성령에게 설명 들은 대로 낱낱이 증거하려 한다. 그 전에 총론을 간략히 말해본다.(요한계시록의 실상, 총론 12쪽)
(1) 신천지의 이만희는 요한복음16장12절을 인용하면서, 예수님이 제자들이 감당하지 못할 것을 우려하여 말씀을 모두 다 하지 못하였고, 나중에 예수님이 사도요한에게 나타나 그 못다한 말씀을 요한계시록에서 말씀하였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주장은 오직 이만희만이 계시록을 해석할 수 있다는 황당한 주장을 하기 위함이 그 목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다른 성경은 모두 완전하지 않으며, 오직 계시록만이 주님의 완전한 말씀이 있는 계시라는 이상한 주장이 되어진다.
(2) 이만희의 성경인용은 적절한 것이 결코 아니다.
요한복음16장12-14절을 보자.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리라.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라”
요16:12장의 본문은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고별설교를 하시는 장면이다.
이만희가 본문을 인용한 이유는, 다른 성경은 예수님이 못다한 말씀으로서 불완전하며, 계시록이 완전한 말씀이라는 주장을 하려는 것인데, 요한복음 본문은 예수님이 그 못다하신 말씀을 사도요한에게 계시록으로 말씀하신 것이 결코 아니며, 곧 성령이 오시게 되어 진리를 알려 줄 것이라고 제자들에게 설명하고 계시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요한복음16:12은 예수께서 못다한 말씀을 요한계시록에서 보충하여 준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곧 보내실 성령께서 진리를 알려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진리로 인도하실 약속의 성령이 언제 오셨는가?
실제로 사도행전 2장1-33을 보면 오순절에 그 약속하신 성령이 오게 됨을 알 수가 있다.
(3) 또한 이만희가 실상을 직접 보았고, 성령께서 요한계시록의 성경해석을 하여주었다는 이만희의 주장은 황당하다.
요한복음에서 성령이 진리로 인도하여준다는 것은 성경을 해석하여준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나게하고 깨우쳐 준다는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성령으로 거듭나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사람들은 성경을 공부하거나 해석할 필요가 없게 될 것이다. 더욱이 아무도 계시록의 참뜻을 해석한 사람이 없었다는 것은 오직 자신 혼자에게만 성령이 성령해석을 하여 주었다는 뜻이 된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이 보내실 보혜사 성령은 제자들에게 진리로 인도하며,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여 주신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요14:26)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할 것이요.(요15:26)
실제로 제자들이 성령을 받은 후에 예수의 말씀을 생각하고 깨닫는 기록이 있다.
“제자들은 처음에 이 일을 깨닫지 못하다가 예수께서 영광을 얻으신 후에야.............생각났더라“(요12:16)
만일 성령이 이만희에게 요한계시록을 해석하여 주었다면, 그리고 다른 사람은 계시록의 참뜻을 해석한 적이 한번도 없다면, 그동안 어떤 사람에게도 성령이 임한 적이 없었다는 뜻이 된다.
이만희의 주장대로라면, 기독교사 2000년 동안 성령께서는 요한계시록을 거짓으로 해석하도록 내버려 두신 것이 된다.
그러나 성령은 예수님이 약속하신 보혜사 성령은 언제 오셨는가?
사도행전 2장 오순절에 오신다는 것이 엄연히 기록되어 있다.
(4) 보혜사란 무슨 뜻인가?
보혜사란 파라클레토스라는 헬라어로서 “파라”(옆에)와 “클레오”(부르다)의 합성어로서, 보혜사라는 단어는 헬라어를 한문으로 음역한 것이다.
기독교에서 초대교회에서 사도들조차 자신을 보혜사라고 말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보혜사라는 단어 자체가 “성도들의 옆서 함께하는 신적인 존재”를 의미하며, 종말론적으로는 하나님의 심판에서 “피고측 변호자”를 뜻하는 법적용어이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보혜사에 대해서 언급한 구절을 살펴보자.
(요 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요 15:26)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요 16:7)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요 14:17)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예수님이 말씀하신 보혜사는 성령을 말한다. 그리고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약속하신 보혜사 성령께서는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에 만인에게 오시게 된다.
그런데 보혜사라는 단어가 성령외에 예수님 자신에게 적용된 적이 있다.
(요 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예수님이 성령을 또 다른 보혜사라고 하신 이유는 예수님이 바로 보혜사이기 때문이다.
(요일2:1)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파라클레토스)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라
이것에 대해서 이만희의 주장을 들어보자.
예수님의 말씀을 대언한 본문의 천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와서 ‘예수님의 말씀’을 대언하기로 약속한 ‘진리의 성령 보혜사’의 입장에 있다(요14:26). 진리의 성령이라 함은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요17:17)을 가지고 오는 자(계1:1)라는 말이며 보혜사는 은혜로 보호하는 스승이라는 뜻이다. 그는 ‘하나님의 이름(요5:43)’으로 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한(요14:24) ‘보혜사 예수님(요일2:1 난하주)’이 하나님께 구하여 보낸 대언자이므로 ‘다른 보혜사’라 한다(요14:16). 승천하신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대언자로 삼으신 것처럼 보혜사 성령을 자신의 대언자로 삼아 말씀을 전하시며 직접 우리에게 나타나 말씀을 가르쳐 주시지 않는다.(요한계시록의 실상, 417쪽)
그는 천사가 보혜사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오는 자가 보혜사라고 말하며, 또 보혜사가 은혜로 보호하는 스승이라고 한문풀이를 하고 있다.
자칭 보혜사이며, 성령께 해석을 들었다는 이만희는 보혜사라는 뜻도 황당한 임의적인 해석을 하며, 성령과 천사도 구별하지 못한다.
이만희가 과연 성령에게 해석을 들었는지는 독자가 판단하기 바란다.
이만희의 글을 계속 보자
보혜사 성령은 요한복음 16장 14절 말씀대로 예수님의 것을 가지고 와서 장래일을 알린다. 계시록 1장 1~3절과 10장에 본 바 보혜사의 입장에 있는 천사가 택하여 쓰는 사람은 그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전해 받는 사도 요한이다. 그러므로 요한은 ‘성령의 대언자’로서 보혜사의 입장에 놓인다. 그는 진리의 성령은 아니지만 그와 함께 하는 영(요14:17)으로 말미암아 보혜사의 위치에서 대언하게 된다. 계시록 성취 때가 되면 보혜사 성령이 함께 하는 대언자 곧 사도 요한의 입장으로 오는 목자가 출현하여 밤과 같이 어두운 심령을 밝힌다. 성경에 무지한 사람들은 그를 핍박할 것이나 그것은 보혜사 성령을 보내신 예수님을 찌르는 행위가 된다.(요한계시록의 실상, 418쪽)
이만희는 성경을 진리의 근거로 보는 것이 아니라, 헬라어를 한문으로 음역한 한문풀이를 진리의 근거로 알고 있는 모양이다. 이만희에게 나타난 성령은 한문풀이를 가르켜 주었나 보다.
이만희는 천사가 보혜사라고 하고, 스승이 보혜사라고 하더니, 이제는 사도요한도 보혜사라고 주장한다.
물론 그 이유는 이만희 자신을 사도요한격이라고 말하므로서 자신을 보혜사라고 주장하기 위함이다.
자신을 핍박하는 자는 예수를 찌르는 자가 된다는 말에는 설명할 필요와 가치가 없어 언급을 생략하겠다.
(5) 이만희가 자신을 보혜사라고 하는 또 하나의 증거를 올린다.
물론 위에서 인용한 두 책자의 표지에는 “보혜사 이만희 저”라는 이름이 적혀 있다. 자기가 보혜사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만희는 자신이 요일1:2의 대언자라고 주장을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시대마다 택한 목자를 통해 계시해 주시니 이 택한 목자가 하나님의 대언자(보혜사, 요일2:1)이다. 성도는 보냄을 받은 대언자(목자)를 통해 계시를 받게 된다. (천국비밀계시, 총론 17쪽)
이만희가 성경을 인용하는 것은 부분적인 단어만을 황당한 방법으로 인용하고 있다. 요일2:1을 보면 택한 목자가 대언자라는 내용이 전혀 아니다.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파라클레토스)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요일2:1)
요일2:1은 예수님이 대언자(파라클레토스)라는 말씀이다.
이 대언자에 대해서, 공동번역과 표준새번역, 현대인의 성경은 모두 변호하는 자라도 번역하였으며, KJV는 advocate로 번역하였고, NIV는 defense로 번역하였다. 이 본문은 예수님이 종말적인 심판에서 우리의 죄를 변호하여 주신다는 의미인 피고측 변호인을 뜻하며, 성경은 오직 한분의 중보자인 예수만이 존재함을 말하고 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딤전2:5)
그런데 이만희는 예수님이 대언자라는 요일2:1을 인용하면서 자신이 보냄을 받은 대언자(목자)라고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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