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란! 예배 기타!!!

[스크랩] 교회란 무엇인가

하나님아들 2018. 6. 2. 23:35

 교회란 무엇인가

 

 

 

 

  I  교회란 무엇인가?

그리스도 없이는 교회도 없다. 이 단순한 명제는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사실 내용을 포함한다. 나사렛 예수가 하나님의 그리스도로 믿어지고 고백되는 한, 또 그때에 교회는 존재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라는 말은 그리스도를 그의 교회의 주체로서 간주하기를 교회의 삶을 그리스도에 따라서 수행하기를 요구한다. 교회론은 그러한에 있어서 그리스도에게서부터, 그 결과로써, 또 그것에 상응하여 전개될 수 있다.1)

나는 이 글에서 먼저 교회의 본질적 실체에 대하여 다루고 특히 그 교회의 본질적 실체에 대하여다루고 w.c.c. 헌장의 에큐메니칼 운동의 교회론 즉 교회의 본질과 사명에 대해 다루어 현대의 교회론에 대해 살펴보고 교회의 본질적 요소와 하나님 나라의 관계에 대해 다룸으로 교회의 세속과의 관계에 대해 다루어 보고자 한다.


a.교회의 본질(칼.바르트의 교회론을 중심으로)

1) 그리스도와의 신비로운 연합(그리스도의 몸)

 교회의 참된 존재는 무었일까? 이 질문에 대해 칼 바르트는 이렇게 대답한다. 참된 존재의 타당한 현실로서의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적 역사적 실존형태이다.2) 즉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다.3) 교회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요 그리스도인은 그 지체가 되는 것 이다. 한 육체에서 머리가 모든 다른 지체를 지배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교회에서도 머리가 되신 그리스도가 모든 그리스도인을 지배한다. 지체가 머리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다.4) 교회가 몸인 것은 교회가 그 자ㅊ체상 일종의 유기체적인 특성을 가지는 사회단체이기 때문이 아니라 실로 예수 그리스도에 근거해서, 오직 그로부터만 그의 몸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바르트에 의하면 교회가 ㅇㅇㅇㅇㅇㅇㅇ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근거는 그가 교회를 자신의 몸으로 구성, 조직, 보증하는 머리라는 사실에 있다.5)

예수와 바울은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인(교회)의 이와같은 관계를 그리스도 안에 그리스도인이 살고 그리스도인들 안에 그리스도가 살고 있다는 말로 설명한다.

 곧,내가 저희 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요 17:23)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저희 안에 있고 나도 저희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라.(요 17;26)


 이러한 말은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인은 생명을 공유하는 생물체적 관계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6)

2)성도의 교제

 제일 오래되었고 표준적인 신앙고백서 사도신조의 내용 중에 교회에 관한 것은 다음과 같다.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툥하는 것.  이 두 가지 말이 교회의 본질적인 면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 사람이 모이는 단체이기 때문에 그 자체가 거룩할 수는 없으나 그 모임의 머리가 거룩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시기에 단순한 인간적 모임이 아니라는 것이다. 교회가 거룩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거룩하시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의 모임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을 받고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 된 사람들의 모임을 의미한다. 그 모임에는 거룩한 목적이 있다. 하나님이 하신 구원사역을 감사하여 예배드리고,같은 체험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그 사실을 재확인하고, 세상에서 사는 동안에 하나님의 은총에 보답하기 위해 새롭게 다짐하려고 모인 공동체이다. 이러한 뜻에서 교회는 성도의 교제라고 한다.7)

이 성도들의 교제는 성도들의 교제는 성령의 능력 안에서, 그리고 성령의 역사에 의해 회집되고 생동된 인간들의 활동 안에서 일어난다. 바로 이처럼 성령의 역사에 의해 모여든 인간들이 그와 상응하는 일을 하도록 사명받은 인간들이 곧 성도들이다.8) 이와같은 점에서 교회는 하나님 나라와 연관성을 가진다 할 수 있다.

b)w.c.c. 헌장에 나타난 교회의 본성과 사명

 주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교회를 세상으로부터 그의 말씀과 성령을 통하여 부르신다. 그는 죄를 용서하시고, 인간들을 파괴와 권세의 주권으로부터 구출하시고, 깨어진 세계로부터 칭의받고 성화된 사람들의 공동체인 하나님의 한 백성을 모으신다. 이들의 생명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숨겨져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말씀과 성령을 통하여 그의 교회를 세상 속으로 파송하사 이 땅의 소금과 빛이 되게 하신다. 예수 그리스도는 예언자,제사장,왕으로서 그의 교회로 하여금 자신의 화해사역에 참여케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백성을 부르시고 보내시며 이들에게 다양한 영적 은사들을 베풀어 주사 교역하게 하심으로 그의 교회를 하나님의 살아계신 성전이 되게 하신다.9)

c)교회와 하나님 나라

 1)하나님 나라의 개념

 첫째, 하나님의 나라는 지상의 특정 장소에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저쪽(하나님의 세계)에서 온다둘째, 그 나라를 지배하는 이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셋째, 그 나라는 유형적으로 지상의 나라와 같은 구조가 아닌 영적인 나라이다.

 넷째, 미확정적인 미래의 어떤 때에 오는 것이 아니라 현재 지상에서도 이미 시작되어 움직이고 있다.

 다섯째, 예수를 통해야만 그 나라의 시민이 될 수 있다.

 여섯째, 그 나라의 시민은 매우 겸손하고 온유하며 의를 위하여사는 사람들이다.다시 말하자면 하나님이 직접 지배하시고 통치하시고 절대권을 가지고 있는 영적 나라인 것이다.10) 이 하나님의

나라는 과연 교회와 어떤 연관성을 가지는가? 이 문제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살펴보자.


2교회와 하나님 나라의 관계에 대한 해석들

 이 문제에 대한 해석들은 다양하다. 이글에서는 이종성교수의 이야기로 푸는 조직신학 에 소개된 해석들을 중심으로 서술하고자 한다.

 첫째, 로마천주교회는 지상에 있는 교회를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의 보이는 기구라고 해석한다. 그렇기에 로마교회는 모든 인류를 위한 구원의 관리자라고 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현재 로마천주교회를 통하여 지상에서 그 통치권이 수행되고 있다고 한다.

 둘째,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는 전연 별개의 것이라고 하는 해석이 고대로부터 있었다. 그들은 강한 이원론적 세계관에서 출발하여 하나님의 나라는 본래 의의 나라이기 때문에 악에 물들어 있는 지상에 있는 어떤 기구나 조직체와도 관계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교회는 신자들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때까지 일시적으로 몸담아 있는 곳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교회를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훈련 장소로 생각하고 열심히 교회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견해를 갖는 신자들은 주로 보수주의자와 열광주의자와 신비주의자들이다.

 셋째, 일부 사이비 이단 종파에서는 하나님은 특별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나라와 직결되는 이상적인 공동체를 세우시며 자신들의 집단이 곧 하나님의 나라와 연결된다는 주장이 있다.

 넷째, 낙관주의적 역사관을 가진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현 역사가 가장 이상적으로 발전될 때 실현되는 역사의 목표로서의 상태를 의미한다고 이해한다.

 위의 언급한 네 가지 견해는 성서의 가르침을 참고하면서 비성서적 결론을 내린 우리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견해로 보인다. 이제 성서적이고 신학적인 타당성을 지닌 견해를 다음에 알아보고자 한다.

 다섯째,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인 동시에 영적인 나라이다. 그 나라는 인간적인 구조를 가지지 않는다. 동시에 그 나라는 시간과 공간의 지배를 받지 않으며, 지상 왕국에서통하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 본질을 가지고 있다. 아우구스티누스와 칼빈은 그들의 특유한 신국관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지상에서 예수의 성육신과 함께 시작되었으며 현재 교회 안에서 그리고 교회를 중심으로 건설되며 확대되고 있다. 또 역사 안에 실존하는 교회 안에는 구원을 받을 사람들과 받지 못할 사람들이 같이 있으며, 지상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는 역사의 어느 시점에도 완성되지 않고 역사의 오메가 포인트인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순간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로 승화되어 영속하게 된다.11)

 위에서 살폈듯이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모든 믿는 사람들의 축복된 사귐이요,땅에 있든 하늘에 있든 성도들의 교제이다. 하나님은 이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 자신의 통치권을 확장시켜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더불어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시킬 것이다.

 교회의 기능은 자신의 삶과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고, 인종과 국적에 관계없이 모든 믿는 사람들을 성령의 사귐과 생명 안에서 세워가는 것이다. 이 목적을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말씀설교와 성례전을 통해 교회 안에서 그의 지체들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성령의 항존 안에서 은혜를 베푸신다.12)

 교회가 교회되는 것이야말로 교회 성장의 가장 중요한 요소이며 그렇기에 교회가 무었인가 하는 것이 교회 성장에 있어 핵심이 될 것이다.


II) 교회 성장이란 무엇인가?

 교회 성장이란 용어의 진정한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와 아직 개인적 관계를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와 더불어 교제를 가지도록 해주며 책임있는 교인이 되도록 만들어 주는데 관련된 모든 사항을 의미하는 것이다.13)곽선희 목사는 교회 성장이란 곧 그리스도의 몸의 성장을 뜻하는 것이며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그리스도의 주권의 확대이며 그리스도의 사역의 계속적인 확장을 뜻하고 그 나라와 의, 그 의가 성장하는 것을 의미한다.14) 고 정의하여 교회 성장은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란 의미로 보았다.

 한스 큉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성장해야 하고 하나님의 계획대로 자라나야 한다.15) 고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적으로 만나 교제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을 책임있는 교인으로 만들어 주는 일, 그리스도의 주권이 확대되는 것은 지속적으로 성장해 가야 하는 것이다. 교회 성장이란 곧 하나님의 성실성16) 을 표현하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성장을 열망하신다.17)

 교회 성장이란 인간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경험과 구원받은 자의 성실된 교인으로서의 생활을 요구한다. 교회 성장은 인간 개인과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성립을 그 최고의 목적으로 받아들인다. 이 구원을 받은 인간은 교회의 일원으로 가입한다. 이 것은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에 절대적으로 순종할 때, 예수의 재림에 대한 종말론적인 자세를 가지고 현실세계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재해석해줄 수 있을 때 가능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신학이란 중요한 것이다. 다음에서는 바로 이 문제 신학에 대해 다루고자 한다.

 III 교회 성장과 신학 

  1.신학이란 무엇인가?

 신학이란 무었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하나의 절대적인 신학, 영원히 변할 수 없는 고정된 형태의 신학을 말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신학이란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을 부족한 인간의 통찰과 언어를 통하여 특정한 시대 속에서 해석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학은 그 시대와 상황에 따라 변할 수밖에 없다.18)

 한 마디로 신학은 신에 대한 학문, 즉 하나님에 대한 학문을 의미한다. 어원적으로 theologia 로 분석해 본다면 theos 에 관한 logia, 즉 하나니메 관한 논술, 이야기를 뜻한다.19) theologia 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사용한 학자는 플라톤이었으며 따라서 이 개념의 창시자는 플라톤이라 할 수 있다.20) 희랍 철학자들이 사용한 신학, 즉 theologia 라는 개념은 신에 대한 서사시 내지는 설화들과 이에 대한 철학적 해석을 뜻하였다. 이와 같은 의미를 가진 신학이라는 개념을 초기 기독교의 변증가들이 받아들였던 것이다.21) 이 개념은 초대교회에 있어서 좁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즉 theologia 라는 개념은 신론 특히 삼위일체론을 뜻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아우구스티누스는 신학을 가르켜 신성에 관한 논술 내지 설명 이라고 정의했다. 중세기에 이르러 신학이라는 개념은 교의학의 모든 분야를 포괄하게 되었다. 나아가서 1200년 이후부터 대학에 신학 외의 다른 학문 분야, 예를 들어 법학, 의학이 설립됨에 따라서 신학은 이들 학문 분야, 즉 기독교의 진리 전반을 포괄하는 넓은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22) 초기 개신교 신학자들은 신학이란 기독교 진리의 전체를 연구하고 기술하는 학문이라고 생각하였다. 넓은 의미의 신학을 가리켜 그들은 교의학 이라고 생각했다.23)

 그렇다면 신학이 전통적 구분으로 네 분야로 나뉘어 있다는 전통(?), 즉 신.구약 성서에 대한 연구인 성서신학과 3000년 동안 이어져 내려온 교회 생활을 연구하는 역사신학과, 교회의 실제적 문제를 연구하는 실천신학으로 그리고, 교회 생활의 모든 것을 체계적으로 검토하여 모든 사람이 수긍할 수 있는 교리로 만들고 재확인하는 조직신학24) 으로 구분되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 인가?

 17세기 말엽에 성서 비판학이 발전되기 시작하면서 성서신학이 신학의 한 독립된 분야로 성립되었고 교회사학도 이 시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신학의 한 분야로 독립되었고, 실천신학은 19세기에 이르러서야 독립되었다. 이와 같이 독립에 있어서 각 분야들은 서로 독자적인 연구방법을 택하였다. 성서신학은 언어학과 역사적, 비판적, 방법을 택하였으며 교회사는 일반적인 역사학으로부터 그의 방법을 받아들였다. 교의학과 기독교 윤리학은 그의 연구방법을 철학으로부터 받아들였으며, 실천신학은 일반적인 수사학이나 교육학 등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이런 흐름을 살핀 후 김균진은 신학에 대해 이렇게 정의한다. 본래 신학이란 하나님에 관한 학문으로 출발하였으나 기독교 진리 전반에 대한 학문으로 발전되었으며 전통적으로 교의학, 오늘의 조직신학을 뜻하였다. 또, 신학은 하나님에 관한 학문이다. 그런데, 그 하나님은 어디까지나 인간과 그의 세계와의 관계 속에 있다. 그런데, 인간과 그의 세계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언제나 다시금 변하고 있다. 또한 신학은 인간의 제한된 언어와 논리와 사고방식을 사용한다. 그리고, 하나님과 관계되어 있는 인간과 그의 역사적, 문화적, 종교적, 정치적 상황들은 모두 다르다. 이러한 다양성과 제한성 때문에 다양한 형태의 신학들이 형성될 수밖에 없다.25) 고 한다.

 정리하면 신학이란 하나님에 대한 학문이며 인간과 그의 세계와 관련되는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신앙의 고백이며 인간의 언어와 논리에 의해 표명된다. 그렇기에 신학은 다양성과 제한성을 가지고 신학은 그 시대와 문화 속에서 다시 쓰여져야 할 필요가 있다.    

2.신학의 한계와 그 규범

  신학의 근거와 규범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이다. 신학적인 모든 진술뿐만 아니라 교회의 모든 활동은 성서로부터 출발하여 이루어져야 하며 그 타당성 여부는 언제나 다시금 성서에 의해 비판적 으로 검토되어야 한다. 그러나, 성서가 신학의 근거와 규범이라고 말할 때 성서에 기록된 개개의 단어나 문장 자체가 신학의 근거와 규범이라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성서를 신학의 규범과근거로 만드는 것은 중심 즉 예수 그리스도이다. 하나님의 자기계시인 예수 그리스도는 기독교 신학의 궁극적 근거요 규범이다. 신학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인하여 형성되고 성립된다. 이와 동시에 신학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에 의하여 언제나 다시금 비판을 받아야 하며 자기를 부인해야 한다.26)  몰트만은 이렇게 말한다. 기독교 신학은 그의 내적 기준을 십자가에 달리신 그 분에게서 발견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루터의 간결한 다음의 명제에 돌아서게 된다. 십자가가 모든 것을 시험한다. 기독교에 있어서 기독교적이라고 불릴 수 있는 모든 것을 증명하는 것은 십자가이다.27)

 정리하면 신학의 모든 근거는 전적 타자로서 아무 부족함이 없으신 하나님, 그러나 죄된 피조물들을 사랑하셔서 그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인간의 몸을 입으신 하나님, 인간의 영접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버림을 받아 십자가에 달리시고 고난 당하시는 하나님, 이 모든 고난을 통하여 인간이 당해야 할 모든 죄의 벌을 대신 당하여, 그리하여 인간과 그의 세계를 시작하시는 하나님, 그 때 활동한 성령을 통하여 오늘도 활동하면서 구원의 새로운 세계를 이루시는 하나님, 이 삼위일체되신 하나님이 신학의 근거와 규범이시다.28)

3. 신학의 대상과 방법

 전통적으로 신학의 대상은 하나님이라 생각되어 왔다. 초대교회에 있어서 신학은 무엇보다도 먼저 신론을 뜻하였으며, 그 가운데서도 특히 삼위일체론을 뜻하였다.29) 그런데 신학의 연구 대상인 하나님은 어디까지나 인간 및 그의 세계와 관련되어 있다. 인간 및 그의 세계와 관련되어 있지 않은 하나님에 대해 성서는 아무런 관심도 보여 주지 않는다. 신학의 가장 본질적 연구 대상인 하나님은 그의 활동은 어디까지나 인간 및 그의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것이기에 신학은 인간과 그의 세계,특히 인간을 그의 연구 대상으로 삼을 수밖에 없다. 또 하나님에 대해 이야기 할 때 인간만이 하나님의 피조물이 아니라 이 세계도 하나님의 피조물이기에 연구 대상에 포함되어야 한다.30)

 이러한 대상들을 연구함에 있어서 신학은 어떠한 방법을 사용하는가? 이 방법에는 크게 나누어 위로부터의 방법과 아래로부터의 방법으로 나누어질 수 있다.

 위로부터의 방법은 위에 계신 삼위일체의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하여 아래에 있는 인간의 문제를 다루는 가장 전통적인 방법으로 이 방법을 따를 때 신학은 신론, 특히 삼위일체론으로부터 시작하게 된다.

 아래로부터의 방법은 아래로부터, 즉 이 세계 안에 있는 것으로부터 출발하여 하나님과 그의 진리를 연구하는 방법이다. 즉,세계에 대한 인간의 경험이나 종교적 감정이나 실존적 문제를 분석함으로써 시작하여 하여 하나님의 존재와 진리를 논하는 방법이다.


 IV.교회와 신학의 만남의 장이 되는 목회

 1.목회란 무엇인가?

 앤더슨 교수는 이 질문은 우리로 하여금 이 세상에서 계시와 화해의 사역을 세우신 하나님 자신의 기초적인 역사에 나타난 목회의 근본적 공식을 찾게 되는 질문이라고 하면서 하나님 자신과 그 분의 말씀 및 행위를 묻지 않고서는 어떤 질문도 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는 목회란 첫째로,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 주어진 계시(말씀)과 화해(응답)의 상호 참여로써 그리스도의 사역으로 이해해야 하며,33) 다음으로 모든 목회는 하나님의 목회이며 아버지의 뜻인 화해의 역사를 이루려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일하시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최상의 목회자이시며,34) 끝으로, 성령께서는 우리의 목회를 계속시키고 있다고 하였다.35)

 1) 목회의 의미

 목회는 목자가 양을 치듯이 영혼의 목자인 목사가 양과 같은 신자들을 진리의 가르침으로 가르치며 기르는 것을 의미한다.36)

 첫째, 목회의 어원적 의미 ; 종교개혁이 일어난 후 목회라는 용어가 쓰여졌고, 목사라는 사람이 하는 일은 모두가 다 목회라고 볼 수 있으며, 그 어원적 기원은 포이메닉스(        )라는 말이 포이멘()이라는 말에서 유래되었고 그 뜻은 양 떼를 먹이고 돌본다는 동사에서 왔다.37)

 둘째, 성서적 의미; 구약성서에서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의 택함받은 백성이 되었고 하나님은 이 양들을 돌보기 위해 제사장, 선지자, 왕을 세워 그의 말씀을 선포하였고 제사를 드리며, 백성들의 회개를 촉구하였다. 그리고, 축복하고, 재판하는 일로 백성들을 돌보는 사역을 담당하였다.

 신약성서에서는 주님께서 양을 먹이시고 인도하시며 보호하는 일을 제자들에게 맡기셔서 목회의 사역을 담당하게 하셨다. 그러나, 성서의 중심은 구약의 하나님은 자신이 이스라엘의 목자로써, 계시하셨고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는 온 인류의 선한 목자로 계시되어 있다.

결국 하나님 자신이 직접 온 인류를 돌보신다는 것이다. 목회의 성서적 의미는 내용상 구원의 메시지인 복음을 선포하여 양들로 구원을 얻게 하는 것이며 형태상으로는 말씀 안에서의 봉사이다.

 셋째, 목회의 신학적 의미 ; 칼빈은 그리스도께서 목회에 사도와 선지자와 복음 전하는 자와 목사와 교사를 주셨는데, 그 주신 목적은 성도를 온전케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게 하심이라.(엡 4:11)는 말씀에서 목회의 신학적 의미를 찾고, 교회의 기능이 곧 목회적 동기임을 말하였다38)

 2) 목회사역의 본질

 첫째   




들어가는말


   기독교 역사는 확장과 내적 충실이라는 두 경향을 항상 그 특징으로 삼고 발전해 왔다. 특히 19세기에는 확장의 물결이 거세었다.1) 선교 2세기를 맞이한 한국교회는 세계교회 역사상 그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놀라운 부흥과 성장을 이루게 되었다. 불과 100년의 짧은 선교역사 속에서도 하나님의 열심과 순교의 피를 뿌리신 신앙의 선배들의 피 위에서 한국교회는 놀라운 교회부흥을 경험하였다. 하지만 부끄럽게도 이 100년의 한국교회 역사는 무려 130 여개나 되는 교단을 생성하는 세계교회 역사상 또 하나의 기록을 만들어 놓았다. 이는 그리스도의 몸을 찢어놓은 죄요 우리에게 있어서 극복해야할 부끄러움이라 하겠다.

   지금의 한국교회는 아시아 제일은 물론 2000년 대에는 세계적 교회로 성장하리라는 예견들을 받고2) 있으며 이것은 한국교회에 베푸신 하나님의 축복이며 감사의 제목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우리가 “과연 하나님께서는 무엇 때문에 한국교회에 이같은 축복을 허락하셨을까?” 를 생각한다면 우리는 또한 하나님 앞애서 분명히 회개해야할 부분이있다. 구약시대 하나님께서는 그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시기 위하여 또 그들 때문에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열방이 있게 하기 위하여 이스라엘을 제사장의 나라로 부르셨다. 신약시대에도 하나님은 선택된 민족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된 우리를 그의 기이한 덕을 선전하게 하시기 위하여 우리 성도를 부르신다고 성경은 증언한다. 우리는 이 하나님의 지상명령이 되는 선교를 위해 어떤 준비를 해왔으며 어떤 사역을 하고 있으며 어떤 준비를 하여야할 것인가?

   2000년대 세계선교는 한국교회에 달려있다라는 이야기를 우리는 듣고 있다. 그것은 우리 내부의 이야기만이 아닌 세계교회가 인정하는 사실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 하나님의 위대한 선교의 부르심에 우리는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지금 한국교회에 있어서 최우선의 과제는 바로 하나됨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우리가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화해자로 중보자로 오셨다. 바로 그 주님을 전하는 교회는 하나됨을 보여야 한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런 관점에서 19세기 위대한 선교의 세기라 불려지는 이 시기3)에 선교의 현장에서 제기되었던 교회의 하나됨에 대한 요청들과 그 요청에 대한 결과로 탄생하게 되는 세계교회협의회에 대해 살핌으로 21세기 한국교회의 과제에 대한 대안점들을 찾으려 한다.


  연구의 목적과 방법, 그리고 그한계


   나는 먼저 이 글의 목적과 한계를 교회일치를 위한 대안의 탐색에 한정시키고자 한다. 그와같은 한계설정에 의해 나는 1948년 이후 W.C.C.의 변화에 대해 취급하는 것과 19세기 이전의 에큐메니칼운동에 대해 살펴보려는데 그 목적을 두지않을 것이다. 즉 나의 연구는 에큐메니칼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운동을 통한 한국교회일치를 위한 시사점 찾기에 그 목적을 두는 것이다.나는 먼저 에큐메니칼이라고 하는 용어의 의이를 그 변천과정에 따라 살펴보고 현대적 에큐메니칼운동의 태동과 그태동에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흐름들과 특징들 그리고 세계교회협의회의형성에 대해 에딘버러 선교대회와 그 특징사항, 신앙과 직제운동을 통한 교리와 의식의 문제,사회개혁의 생활과 봉사운동에 대해 다루고자 한다. W.C.C.헌장을 통해 세계교회협의회의 기능과 성격에 대한 정의에 대해 고찰하며 결론적으로 오스카.쿨만의 “다양성을 통한 일치”를 통한 한국교회일치에 대한 방안을 찾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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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창골산 봉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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