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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교회생활과 가치관

하나님아들 2018. 6. 2. 23:34

 

 교회생활과 가치관

 

 

 

 

 

가치관에 대해서 사전은 "사람이 자신을 포함해 세계나 만물에 대하여 가지는 평가의 근본적인 태도 또는 견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사전에서 정의하고 있는 대로 가치관은 일반적으로 이 세상에 있는 유형이나 무형을 포함에 모든 것들에 대해 그 가치를 부여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은 그 나름대로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은 일반적으로 그들이 가지고 있고 배우고 들은 정보에 의해 그 모든 가치를 부여합니다.

사람들이 그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은 사탄과 하나님이라고 말할 수 있습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 세상 사람들은 이 세상에 유형 그리고 무형의 모든 것들의 대해 그 가치를 부여하고 있는데 사탄이나 하나님으로 부터 들은 정보의 의해 그 가치를 부여한다는 것입니다.

사탄이 부여하는 가치와 하나님이 부여하는 가치는 서로 다릅니다.

그래서 이 세상 사람들은 두 가지 가치관에 의해  그들의 삶을 살아갑니다.

사람들은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이후부터 가치관에 혼란을 가져왔고 하나님으로부터 듣던 정보를 사탄에게서 듣기 시작했으며 오늘날 우리가 갈등하는 것처럼 그 후로 사람들은 두 가지 가친관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습니다.

사탄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가치관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가치관과 전혀 다릅니다.

 

우리 사람들이 사탄에게 정보를 입수하지 않았다면 가치관 때문에 갈등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자기가 생각하고 있는 가치관대로 자기의 삶이 되어지지 않은 것을 발견하면서  그 마음에 갈등을 겪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거짓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사람들에게 돈이 많으면 행복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말을 믿고 많은 물질을 모아 오지만 막상 물질을 모으고 나서는 물질에서 만족을 얻지 못하고 허무함만 얻게 됩니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은 사탄이 준 정보에 근거한 것이며 성도들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 또는 성경이 말하는 가치관은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말씀하시는 진리에 근거한 가치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말씀하시는 가치관은 영원한 기초로 사실에 입각해서 진정으로 무엇이 가치가 있는가를 말씀해 주시는 것이요.

사탄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가치관은 일시적인 것에 기초해서 말하는것으로서 거짓에 근거를 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사탄의 가치관에 의해 그들의 삶의 살면 헛된 삶을 살게 되며 결국은 말하게 됩니다.

 

우리가 아침에 유리창으로 통하여 들어오는  찬란한 햇빛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햇빛을 받은 꽃들이 너무나 아름답게 피어 있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찬란한 아름다운 꽃잎 색깔을 보면서 주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마태6장:29절)

 

세상에서 가장 호화롭게 생활한 사람의 가치가 우리 주위에 흔히 피어있는  한 송이의 꽃보다.못한 것이라면 인생의 부라고 하는 것도 별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아름다운 꽃도 점점 태양이 산속으로 그 모습을 감추고 그 빛을 잃어 어두워지니까 그 아름다움이 보이지 않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가치관도 그와 같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빛이 비추일 때는 우리 주위에 있는 사물에 대해 진정한 그 모습을 보고 가치를 부여할 수 있지만 어두운 가운데서는 사물에 대해 제대로 평가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하나님이 말씀하신 말씀에 입각한 가치관은 밝은 햇빛아래서 사물을 보는 것과 같고 사탄이 우리에게 준 정보에 의한 가치관은 빛이 없는 어두움 가운데서 사물에 그 가치를 부여하는 것과 같습니다.

사실 세상에 있는 사람들은 무엇이 진정으로  가치가 있는가를 잘 모릅니다.

왜냐하면 어두움 가운데서 손으로 만져서 그 가치를 정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 진정으로 눈을 뜬 사람들은 사물을 바로 볼 수있기 때문에 사물에 대한 가치를 제대로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의 가치관과 불신자들의 가치관은 서로 다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수많은 성도들이 눈을 떴다고 말은 하면서도 아직도 여전히 세상의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삶은 변화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상 사람들이 보는 가치관 또는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성공관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세상에 사는 사람들  즉 사탄으로부터 또는 사탄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로부터 영향을 받은 사람들 그리고 눈이 가리어서 사물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가치관은 어떠하며 그들이  보는 사물은 어떠한지 그리고 무엇을 가치 있는 것으로 또는  무엇을 성공으로 보는지 다음편에 살펴보도록합시다.
 
 

교회생활과 가치관 (1)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인들이 모여 사는 곳에 가서 보고는 천국과 같은 곳이라고 말했습니다.

앞으로 자기는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그렇게 천국 같은 삶을 살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정말 세상에 그러한 곳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론적으로는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모여 살면 정말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많은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이 모여 살 때 어려움이 더 많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때로 멀리서 교회를 바라볼 때 정말 아름다워 보일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가까이서 함께 생활해 보면 그곳에도 여전히 사탄의 영향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탄은 사람들의 마음에 그의 가치관을 심어 놓고 있습니다.

사탄이 지배하는 세상에서는 그 어느 곳에도 그의 손이 미치지 못한 곳이 없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면서 심지어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에도 사탄이 가라지를 심어 놓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을 볼 때에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은 너무나도 많지만 그 중에 하나는 우리 인간의 개념으로 볼 때 하나님 앞에 사탄도 나타나서 하나님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사탄은 교회뿐만이 아니라 하나님 계신 존전에도 나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와서 여호와 앞에 서고 사단도 그들 가운데 와서 여호와 앞에 서니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서 왔느냐 사단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땅에 두루 돌아 여기 저기 다녀왔나이다”욥2장1!2절

 

분명 사탄이라고 부르는 것을 보면 그가 범죄 한 이후가 분명한데 어떻게 하나님 앞에 설수가 있었는지 잘 알 수는 없습니다.

한 가지 가능한 것은 주님이 인간의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오셨을 때에도 비록 육체를 입으시기는 했지만 하나님이신 주님 앞에 직접 나타나서 시험하는 것을 보면 조금은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지금은 우리 머리로 다 이해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늘나라에 가면 그 때는 일이 어떻게 되어서 그렇게 되었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교회 안에 사탄이 심어놓은 가라지가 추수 때까지 존재하듯 교회 안에서도 그의 역사는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교회생활을 하는 데에도 여러 가지 면에서 사탄이 가져다준 세상적인 가치관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주님은 교회가 세상과 다르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사탄은 교회가 세상과 다르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는 세상에 있는 가치관을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의 마음에 심어주어 교회를 세상과 다르지 않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는 비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

교회가 여전히 세상처럼 많이 배운 자들이나 부자들이 판치는 곳이라면 그리고 못 배우고 가난한 자들이 천시 받는 곳이며 그들의 목소리는 아무도 들어 주는 자가 없고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한 것이라면 우리는 교회를 세상과 조금도 다르게 볼 수 없을 것입니다.

초대교회 시대에 벌써 그러한 일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부한 그리스도인들이 자기들에게 있는 땅을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는 역사에도 없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는데 나중에 교회에 세상의 가치관이 들어온 다음에는 부자들이 판치는 세상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런즉 너희가 함께 모여서 주의 만찬을 먹을 수 없으니 이는 먹을 때에 각각 자기의 만찬을 먼저 갖다 먹으므로 어떤 이는 시장하고 어떤 이는 취함이라 너희가 먹고 마실 집이 없느냐 너희가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여기고 빈궁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무슨 말을 하랴 너희를 칭찬하랴 이것으로 칭찬하지 않노라”(고전11장20~22절)

 

초대교회 시대에는 주의 만찬을 대할 때 그들은 식사와 함께 하였습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서 주의 잔과 떡에 참여하러온 사람들이 다시 말해 예배드리러온 교회의 성도들이 가난한 자들을 업신여겼습니다.

한 교회에서 부자들은 너무 많이 먹어 취하고 가난한 자들은 부자들이 먹는 것이나 지켜보았던 것 같습니다.

세상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오늘날 부자들은 가나한 자들의 사정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서도 그와 같은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바울은 그러한 것을 바로 잡으려고 고린도전서를 써서 그들을 책망하였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날마다 체험하는 것은 성도들이 좋은 교회에 다니지 않으면 이런 세상적인 교회에서 세상 가치관으로 물들어 영혼이 파멸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내가 접하는 타 성도들이 있는데 대부분 큰 교회가 세상 가치관 세상적 기준으로 교회가 타락했음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교회에서 가치관으로 인하여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여러 가지 가 있지만 대략 그 원인을 찾아보면 다음과 같은 몇 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는데 먼저는 우리의 삶의 환경이 다름으로 인해서 올 수 있는 것들입니다.

예를 들자면 야고보가 말한 것처럼 돈이 많은 사람과 적은 사람 그리고 많이 배운 사람과 많이 배우지 못한 사람들 등등 이러한 문제들로 인하여 교회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올 수 있습니다.

물론 알고 보면 이 모든 것들이 다 세속적인 가치관 때문에 오는 문제들입니다.

야고보도 당시에 교회에 있었던 문제들 중에 하나를 말하였습니다.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너희가 받았으니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 만일 너희 회당에 금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들이 들어오고 또 더러운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올 때에 너희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를 돌아보아 가로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하고 또 가나한 자에게 이르되 너는 거기 섰든지 내 발등상 아래 앉으라 하면 너희끼리 서로 구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 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 대하여는 가난한 자들을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아니하셨느냐”(약2장1!5절)

 

그것은 교회 안에 부나 권력이나 어떤 외형적인 것들 때문에 사람을 차별하는 것이었습니다.

야고보는 가난한 성도들과 부한 성도들을 물질에 따라 차별하지 말라고 명했습니다.

사실상 오늘날 교회 안에는 사회적인 신분이나 부에 따라 사람들이 차별적으로 대접을 받고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돈이 많은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에 비해 보다 쉽게 장로가 될 수 있고 또 집사가 될 수 있으며 사회적인 신분에 따라 또한 그와 같은 차별이 있다고 사람들은 말합니다.

가난한 사람은 수십 년을 다녀도 장로가 되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교회 안에서 이와 같이 성도들이 세상적인 가치관에 따라 차별 대우를 받는 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만일 교회의 장로나 집사가 성경에서 말하는 영적 자격에 의해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신분이나 부에 의해 세워진다면 그곳이 어떻게 세상과 다르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야고보는 사람들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세속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성도들을 대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솔직히 고백하자면 오늘날에도 교회 안에서의 이와 같은 차이들로 인하여 성도들 가운데 많은 문제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특별히 교회 안에서 물질적으로 부한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들이 서로 가까이 지내기가 어렵습니다.

부자는 성도들 가운데서 자신을 낮추기가 힘들고 가난한 자들은 부한 성도들 앞에서 마음이 움츠러들지 않고 그냥 순수하게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형제자매로 깊은 교제를 나누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사람들 마음속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야고보가 말한 것처럼 부한 사람들에 대해 자신보다 더 나은 대접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해서 그들을 상석에 오르게 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교회 지도자들의 그런 차별이 많습니다.

 

교회생활과 가치관 (2)

 배움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배우지 못한 자들은 평생 그 마음속에 짐을 지고 살아가며 자신은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이 택하신 제자들을 보면 그들 역시 그렇게 배움이 많았던 사람들은 아니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교회 안에서 그러한 구분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초대시대에는 종과 주인이라는 신분적인 차이가 있었습니다.

주인과 종이 교회 안에서는  같은 형제와 자매였지만 사회적으로는 그렇지 않은 것입니다.

물롬 교회 안에서도 마땅히 존경할 자를 존경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것은 세상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 어디에서도 물질의 많고 적음을 따라서 그 사람을 대하라고 말하는 곳이 없고 배움이 많고 적음에 따라서 그 사람을 차별대우하라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초대시대에는 헬라인 과부들과 유대 과부 사이의 차별로 인해 문제가 일어났습니다.

유대인 과부들의 비해 헤라파 과부들이 천시를 받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들이 일어나서 그 문제를 해결하고 나서야 교회가 잠잠해 졌습니다.

아마도 당신에는  세계 여러나라 사람들이  그것에 있었고  또  노예들이 많있기 때문에 한 교회 안에서 자유인들과 종들 그리고 유대인 신자들과 이방인 신자들 사이에 상당한 문제가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한 것들은 어던 면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가지고 있는 세속적인 가치관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단일 민족인데 최근에는 단일 민족이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그래도 아직은 다른나라에 비해 이점이 있지만 동남아 즉 태국이나 미얀마 등 그쪽 지역들의 나라들을 보면 다민족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교회도 필연적으로 여러 인종이 모여서 한 교회를 이룰 수 박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그것이 여러가지 문제가 있엇다고 합니다.

그 중에 몇 가지를 생각해 본다면 우선은 교회에서의 보이지않은 인종간에 차별이 있으며 결혼 문제도 천시 받은 부족들의 경우 쉽지 않은 것도 있습니다.

아마도 우리나라에서도 외국에서 즉 태국이나 필리핀, 베트남 여성분들과 결혼하여 많은 후유증이 생가곤 합니다.

세속적인 가치관에 따라 많은 어려움들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인종간의 문제만 아니라 같은 민족인 우리나라의 교회에도 배운 자들 그리고 부자와 가난한 자들 사이에 교제가 쉽지 않음을 볼 수 있습니다.

구원을 받고 난 후에도 여전히 그러한 가지관은 변하지 않고 있습니다.

 

교회에 세상적인 가치관이 영향을 미치는 곳은 여러 영역에 있습니다.

예배당의 크기와 아름다움에 따른 차별도 있을 수 있고 교인들의 숫자에 따른 차별과 우월감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 성도들의 헌금 액수에 따른 차별도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 마음에도 한때 양심의 가책이 되었던 것은 전도할 때 노인들에 대한 관심이 젊은 사람들에 대한 관심보다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왜 그런지 생각해 보았는데 그곳에는 보이지 않은 세속적인 가치관 즉 노인들은 그 만큼 구원을 받는다 할지라도 교회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생각이 깔려 있었던 것입니다.

사실 노인들이나 젊은 사람들의 영혼 모두 귀한 것인데 그래서 동일하게 귀하게 보고 전도에 힘써야 하는데 안무래도 젊은층에 더 관심이 가게 됩니다

 

이러한 일로 인하여 주님 앞에 회개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몸이 아파 부자유스러운 분들에게는 더욱더 세속적인 가치관으로 판단하여 전도할려고 하지 않아 주님 앞에 부끄러워 회개하였던 것입니다.

여지껏 신앙 생활 하면서 다른 성도들을 세속적인 가치관에 따라 대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늘 마음을 낮추지 않으면 안 되고 주님 앞에 무릎을 굻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또 한 자지 신앙 생활하면서 지속적으로 부딪히는 문제는 세속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교회생활을 하려는 성도들간의 크고 작은 문제들을 대하는 것이었습니다.

성도들 사이에는 이 세속적인 가치관으로 인하여 늘 서로 부딪히고 그로 인해 마음 아파하고 어떤 때는 그러한 것으로 인해 교회를 떠나기도 하는 것을 지난 세월동안 많이 보아왔던 것입니다.

실제로 어떤 사람들 즉 사회적으로 신분이 있고 돈이 많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는 그냥 평범한 말이라도 가난한 자들의 마음에 상처가 될 수 있고 배운 자들의 별 의미 없는 말들이 배우지 못한 자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그냥 자기 마음에 상처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배움이 적고 가난한 성도들은 늘  교회에서 자기를 멸시 한다는 생각을 떨쳐 버리기 쉽지 않습니다.

이것 또한 가치관이 잘못되어 있는 것입니다.

많이 배운 사람들이나 부자들도 또한 나름대로 늘 사람들로부터 어떤 대접을 기대하는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살 수도 있습니다.

이것 또한 그의 가치관이 잘못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 시대에 인종간의 문제는 작은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지옥의 불이 끄지지 않게 하는 땔나무라고 생각을 했고 이방인 지역을 여행을하고 돌아와서는 옷을 빨고 발의 먼지를 털어 버렸으며 아예 이방인 지역을 여행하는 것을 꺼려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유대인들이 갈릴리에서 얘루살렘으로 가려면 사마리아로 가지 않고 돌아서 갔던 것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 기억하실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짐승취급했기 때문에 그들과 함께 교회생활을 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래소 주님은 이방인들과 유대인들 가운데 믿는 사람들로 한 교회를 이루기를 원하셨던 그것을 이루기가 쉽지 았았습니다.

 

주님은 베드로를 이방인인 고넬료의 집에 보낼 때에도 환상을 통해서 그의 생각을 변화시켜 주셔야만 햇습니다.

주님을 믿는 베드로의 생각도 다른 유대인들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주님이 택한 제자들의 대해서도 배우지 못한 자들이라고 무시했었는데 베드로 역시 같은 동족들에게 그러한 학대를 ?는 사람이었지만 우대인으로서의 긍지를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에게 환상을 통하여 그 생각을 바꾸게 하셨던 것입니다.

 

[가뢰되 내가 욥바 성에서 기도할 때에 비몽사몽간에 환상을 보니 큰 보자기 같은 그릇을 네 귀를 매어 하늘로부터  내리워 내 앞에까지 드리우거늘 이것을 주목하여 보니 땅에 네 발 가진 것과 들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보이더라 또 들으니 소리 있어 내게 이르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먹으라 하거늘 내가 가로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거나 깨끗지 아니한 물건은 언제든지 내 입에 들어간 일이 없나이다 하니 또 하늘로부터 두 본재 소리 잇어 내게 대답하되 하나님이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말라 하더라 이런 일이 세 번있은 후에 모든 것이 다시 하늘로 끌려 올라거더라"행11장5~10절]

 

그렇게 환상까지 보여 주시고 말씀하셨지만 베드로는 이방인 고넬료의 집에 가는 것을 주저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곳에 내려가는 것을 주저하지 말라고 말씀하셔서 그를 고넬료의 집으로 보내셨습니다.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 내려가 복음을 전했는데 그들에게도 유대인들에게와 꼭 같은 성령이 임하는 것을 보고는 놀랐습니다.

그는 이방인들은  구원받을 자?이 없다고 생각을 햇습니다.

아니 구원받더라도 무언가 유대인과는 차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베드로가 환상에 대하여 생각할 때에 성령께서 저더러 말씀하시되 두 사람이 너를 찾으니 일어나 내려가 의심치 말고 함께 가라 내가 저희를 보내었느니라 하시니"행10장19~20절]

 

베드로는 고넬료의 집에 가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사람들을 어떻게 보시는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방인이라고 전혀 차별하시는 것이 아니라 같게 보신다는 것을 배웠던 것입니다.

[베드로가 입을 열어 가로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시고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행10장34~35절]

 

그러나 베드로는 이방인 고넬료 집에 갔다 와서 유대인 형제들의 심한 공격을 받았습니다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에 할례자들이 힐난하여 가로되 네가 무 할례자의 집에 들어가 함께 먹었다 하니"행11장12~13절]

 

다행이 같이 갔던 형제들의 도움으로 어려움을 면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베드로와 그 동행인들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소식을 듣고 하나님의 역사로 받아드리기로 했습니다.

[저희가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행11장18절]

 

교회생활과 가치관(3)

그러나 그 후에도 유대인 신자들은 계속해서 이방인 신자들과의 차별을 위해 노력을 했습니다.

그들은 최소한 이방인들과 자신들 사이에 조그마한 차별이라도 두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하나님으로부터 분명하게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으신다는 교훈을 받은 베드로도 사람들의 눈치를 보느라고 이방인 성도들과 함께 먹다가 유대인 신자들이 오니까 슬며시 도망을 가게된 것입니다.

이방인 형제들과 함께 음식 먹는 것을 수시로 여긴다고 하는 것은 자신들을 이방인 형제들보다 더 거룩한 자들로 생각한다는 증거입니다.

 

나중에 이방인의 사도가 된 사도 바울도 그것에 대해 말했는데 그는 이제 주님 안에서의 새로운 가치관에 대해 말했습니다.

 

"거기는 헬라인과 유대인이나 할례당과 무할례당이나 야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분별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골3장11절)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롬10장12절)

 

이것뿐만 아니라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그리스도 안에서는 부한자와 가난한 자 그리고 세상적으로 높은 신분 가운데 있는 자나 천한 자  그리고 지식이 많은 자나 적은 자 사이에 차별이 있을 수 없습니다.

 

초대교회 시대에는 일상적인 삶에서는 종으로서 즉 노예로서 그리시도인인 믿는 주인에게 순종하고 살다가 주 앞에 모여서는 비록 노예일지라도 노예가 가르치는 은사가 있을 때 그 노예의 가르침을 주인 된 형제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다는 것은 참 교회 안에 있는 한 지쳬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모든 성도들이 서로 지체가 되어 한 몸을 이루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몸에 있는 지체 신분이 낮은 지체 등으로 나누어 차별 대우하지 않았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 모두는 주님의 몸된 교회의 지체들로서 한 몸을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속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지체된 성도들을 구별하거나 차별하지 말아야할 것입니다.

 

한 지체 의식을 떠난 교회 안에 있는  모든 구별은 다 세속적인 가치관으로 인하여 오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은 "너희는 다 형제니라"(마23장8절)고 말씀하셨지만 제자들은 늘 서로 크다고 다투었습니다.

주의 몸 된교회 안에서는 그와 같은 일이 있었서는 안될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많은 분쟁들이 사실은 이 세속적인 가치관 때문에 일어납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어야 할 만큼 알아주지도 않고 다른 사람들이 나를 무시했으며 멸시 했다고 생각하고 서로 시기와 질투가 있는데 이는 세속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 안에서 생활하는데 있어 우리는 이 세속적인 가치관을 버리고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이며 세상에 그 어떤 것으로도 서로를 차별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목회 하시는  목사님들은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이런 성도들 사이에 이런 담을 없애주는 목회를 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니 담을 없애 주는 것보다는 그들의 다른점을 느끼지 못하도록 그들의 가치관을 변화시켜 주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와 그 말씀에 의해 그들의 가치관을 변하도록 하는 것만이 해결책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피로사신 교회는 사탄이 주는 세상의 가치관에 따라 운영되어서는 안 되고 성도들 또한 세속적인 가치관에 따라 성도들을 대할 것이 아니라 주님이 피로 값주고 사신 귀한 지체들인 것알 기억하고 영적 가치관에 따라 대해야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려서 교회는 영적 가치관이 적용되는 곳이요 세상의 가치관이 적용되는 곳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 일어나는 많은 어려움들이 이 세속적인 가치관 때문인데 교회 안에서는 빈부나 배움 그리고 세상의 권세에 따라 성도들이 차별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같은 주 같은 믿음 같은 소망 같은 기업 같은 아버지라는 기초 위에서 아름다운 교제가 또는 교회생활이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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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창골산 봉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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