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와 역사
1. 기독교는 역사를 어떻게 보는가?
삶과 역사는 동일선 상에 서 있다. 그래서 히브리인들에게 삶은 곧 종교의 문제였고 종교는 역사적으로 설명되었다. 삶 속에서 신앙을 가진 사람들에게 신앙과 역사의 관계는 하나의 절실한 문제인 것이다.
역사란 말의 다면성
역사란 넓게 보면 시간속에서 일어난 모든 변화를 말할 수 있는데, 역사란 말은 탐구,기록이라는 뜻으로 정의 할 수 있다. 역사란 탐구자 즉, 의미 부여자와 탐구 대상이 있어야 하며 두 대상사이의 상호작용의로 배태된 기록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History란 단순히 변화된 사실을 의미하는것이 아니라 탐구하여 얻어진 지식, 탐구한 내용,탐구한 결과라는 의미가 탐색되고 부여된 사실이다.
역사란 인간들에게 일어난 모든것, 어떠한 형태로든지 남아있는 인간과거의 유물들,자료들을 발굴하고 평가하는 기술을 훈련시키는 일과 이들을 잘 정리하여 타인들이 사용하고 읽을수 있도록 논리적으로 기술하는 훈련, 학습을 뜻하기도 하며, 마지막으로 역사란 역사가가 최종적으로 기술을 완료한 저작을 뜻한다.
역사란 보편적인 성격을 무시할 수 없지만 본질적으로 개별성을 추구하며,무엇이 공통성을 추구하기 보다는 무엇이 다른가에 더 중점이 주어지며 그래야만 역사는 계속적으로 그 존재기능을 확충해 나갈 수 있다.
기독교의 역사성
기독교가 역사적인 종교이고, 또 삶과 역사를 신앙 속에 포용하고 있기 때문에 기독교와 역사의 관계는 밀접한 상관 관계에 있다. 기독교의 가장 확실한 뿌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상의 부활 사건이다. 그래서 기독교는 한 발을 지상에 굳건히 딛고 서서 그 기초를 역사에 깊이 뿌리박고 있는 것이다.
구약성경의 역사기록에서 일관되게 보여준 역사의식은 모든 역사는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이며, 이 두관계는 약속 즉 계약이라는 매체를 통하여 성립된다는 것이다. 역사의 성립도 약속의 성립도 약속의 파기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구약의 역사는 바로 이 약속의 파기와 재성립의 과정이기도 하다. 또 이스라엘인들의 역사적 관심의 초점은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가 하는 것을 발견하는 것이었으며 그것을 역사 속에서 어떻게 실천해 나가느냐 하는데 집중되어 있었다.
기독교적 역사이해의 특징
신약과 구약이 보이는 역사 인식은 하나님이 이 우주만물을 창조하였다는 믿음이며 이로부터 역사의 장이 마련됐다는 생각을한다. 그리고 인간의 반항에 의해 역사시대가 열린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같은 역사를 단순히 인간들의 손에 내 맡기지 않고 역사 속에서 일어난 타락과 위약을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간섭을 통하여 해결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갖고있다는 믿음이다. 아담의 위약으로 발생된 원죄는 예수님의 피의 구속으로 수렴되고 종말과 함께 본래의 무역사 상태로 복귀한다는 계획이다. 그런데 이같은 구원계획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이고 하나님은 역사를 주관하는 자이기도 하다.
인간은 우선 원죄를 타고난 죄인으로 인간의 완성이나 구속은 인간의 힘만으로는 결코 이루어 질 수 없으며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하다. 다시말해 인간은 역사의 주체가 아니라 다만 부차적인 역할을 담당할 뿐이다. 역사는 또한 시간을 다루는데 있어서 “과거”를 대상으로 삼으나, 기독교는 시간내의 사건에 중점을 두면서도 그것은 시간을 초월하기도 한다. 결국 서구의 근대 사관이란 그열매만 달랐지 그 뿌리는 여전히 기독교에 박고있는 역설적인 현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상이한 역사인식의 교차점
어떤 의미에서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세속적인 인식과는 완전히 다른 역사의식과 가치관을 가져야 한다는 이야기도 된다. 하나님의 역사계획과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적 역사 사이의 교차점은 인간 개인에게서 발견된다. 하나님은 개인과의 관계를 맺으시며 그 개인들을 통하여 역사에 임재 하신다. 그래서 역사 전체 구조를 통해서 개인을 보는 것보다는 개인을 통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역사를 볼때 문제의 해결점이 제시된다.
기독교 사관에서의 진보는 역사의 완성점을 향한 전체적인 진전을 뜻하기도 하지만 그 진보가 개인의 경우에는 개별적인 척도가 적용된다는 점이다. 즉 개인에게 있어서의 진보는 어떤 목적지를 향한 수직적인 척도 즉 하나님께 개인이 얼마나 가까와졌느냐에 따라 평가된다고 할 수 있다.
기독교인의 역사의식
크리스챤들의 역사의식이란 것도 개인의 의식을 중심으로 하여 논의되어져야 하며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분명한 역사의식의 기준들이 있다. 그 중 하나는 개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질 때는 언제나 벌이 뒤따랐다는 사실이며, 또한 성경은 하나님 이외에 변하지 않는 존재란 없음을 명백히 하였다. 그리고 모든 인간은 죽어간다는 공통된 사실과 역사 앞에 진정한 의인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다. 역사속에서 정의는 승리하고야 말리라는 생각은 종교적차원에서만 가능하다.
인간의 삶이 이세상의 차원에서 끝나지않고 저 세상까지 연속된다는 믿음에서만 이같은 현세적 억울함에 대한 설명이 가능하다.
2. 어거스틴의 역사관
1. 어거스틴 사관의 제문제
어거스틴은 역사의 통일성을 제시하였고 고대 그리스적인 시간관과 운명관을 극복했다. 어거스틴은 직접적인 자각이나,신의 계시, 감각과 이성등을 통해 역사를 알 수 있다고 했으며, 신념이란 믿음에 의존한다고 생각했으며, 이것이 그의 역사인식의 원리인 것이다.
2. 역사가로의 어거스틴
어거스틴의 역사인용은 대부분 로마의 역사가에게 의존하고 있는데, 어거스틴이 말하는 진정한 역사란 성겅의 역사를 말하는 것이며 진실의 기준은 그것이 성경과 합치하느냐의 여부에 따라 시험받게 되었다. 그래서 성경이야말로 과거의 사건들을 배우는 기본교재가 되었고 모든 다른 문서글은 열등하거나 믿을 수없는 보충자료로 보았다. 이같은 관점에서 역사란 용어는 그리스적인 의미에 있어서 과거의 지식이라는 뜻과는 구별되어, 역사는 신의 섭리에 속하며 그 과정이란 섭리를 세상에 구현해 나가는 기독교적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어거스틴은 역사를 해석하는 3가지 기본점을 항상 배려하였다. 첫째는 성경기록에 대한 그의 충실한 태도요, 두번째는 목적행위는 무엇인가 목적을 갖고 있다는 그의 확신이며, 세번째는 신의 행위는 무엇인가 목적을 갖고 있다는 세가지 관점이다.
어거스틴의 역사해석은 그 자신의 독특한 인식론에 의해 결정했는데, 하나는 이성에의한 인식으로서, 영원을 지향하는 지혜이며, 다른 하나는 감각을 통한 인식으로서, 이것들을 지식이라 불렀다.
어거스틴의 역사적 전개는 목적론적이며, 그렇기 때문에 어떤 목적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믿음이다.
3.어거스틴의 사관구성 요소
어거스틴의 사관을 구성하는 기본 요소들은 천지창조와 종말의 문제, 그리고 원죄와 악의 문제, 인간의 선택적 행위에 있어서 매우중요한 의미를 갖고있는 자유의지와 예정론, 그리고 고대 역사적 개념과의 결별을 가져오게 한 그의 시간관으로 구성되어 진 것이다.
그는 역사의 주관자를 인격화함으로써 역사의 시작뿐 아니라 전 과정, 그리고 종말까지 관여하게 되었고 이 관여는 신과 인간의 계약을 통하여 역사속에서 구현되어 나가는 것이라고 그는 보았으며, 이를 통해 신의 역사 참여가 가능하게 되었다. 신국론에서 어거스틴은 모든것은 그 존재를 신에게 의존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존재방식이나 선의 지향성까지도 신에게 의존한다고 했다. 어거스틴은 이같은 창조관에서 악의 문제에 대한 해답도 구하고 있다.
어거스틴 사관에 있어서 이 악의 문제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차지하는데, 원죄를 저지른 이후 인류의 역사시대가 열렸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악의 종류를 두 종류로 구분 하였다. 하나는 물질적인 악의로서 자연적 재난같은 것을 말하며, 다른 하나는 도덕적 악으로서 이는 인간의지가 크게 개입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역사에 있어서 인간의지의 역할을 매우 중시하였고,선악의 선택도 결국 의지의 활동이라고 보았다.
어거스틴은 역사를 설명하는데 있어서 인간에게 주어진 조건 즉 선악행위의 두 가능성과 인간의 본성을 악한 것으로 보는 원죄를 인정함으로써 역사를 매우 현실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기초적 터전을 마련하였다. 원죄를 떠난 기독교사관을 생각할 수 없고, 원죄의 인정에서 은총을 통한 구원의 등식이 성립되며, 이 은총을 받아들일수 있는 시련의 과정으로서의 역사만이 의미가 부여 되는 것이다.
아담의 원죄로부터 시작된 “의지의 타락”이 그 인성을 더럽히고 이 타락된 인성이 바로 지상의 나라 시민을 낳게하는 연원인 것이다. 죄악은 처음 자유의지의 잘못 사용으로 인간이 스스로 역사적 도구가 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다.
어거스틴은 인간의 과거 경험마저도 현재적 결단과 연결시킴으로써 개인의 과거를 역사성속에 포함시켰다. 즉 개인의 현재적 행위는 과거와 깊은 관계가 지워져 있으며, 자유의지란 어느 면으로 경험의 반영이기도 하다. 영혼을 죄짓게 하는 것은 썩어질 육체가 아니라 육체를 썩게 하는 죄에 찬 영혼이라고 보아, 주체는 항상 의지임을 밝혔다.
어거스틴은 바울의 예정론을 보다 조직적으로 이론화시켰는데, 하나님으로부터의 선택은 인간자신의 선택이나 수락과 관계없이 신의 영원한 선언, 즉 예정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신은 무오하기 때문에 이것이 결코 인간의 자유의지에 위배되는 것이 아니라고 보고 있다.
어거스틴의 자유의지론과 함께 어거스틴의 역사 사상을 이루고 있는 가장 큰 골격은 시간관이다. 신간은 신에의해 창조 되었고 그에 의해서 단절 될 수도 있음을 의미했다. 영원한 존재에게는 변화가 없으므로 그에게는 영원한 현재가 있을 뿐이다. 이같은 가설 아래서만 신은 전지전능하며 과거, 현대, 미래를 지시하고 있고 처음이나 끝이나 그의 영원한 계획은 변함이 없다.
시간이란 존재하는 순간, 항상 현재에 남아 있는 기억 인상을 재는 것이지 사물의 변화에 의해 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곧 역사는 순환이 아니며 인간들의 과거가 죽지 않고 기억 속에 축적된 것이다. 종말은 시간을 매채로 하는 현재적 과정을 인정하고 있고, 이러한 목적을 향해 인류와 국가,개인의 역사가 통일성있게 연결되어 나간다는 사실을 감안 한다면, 어거스틴이 의식하고 있었던 없었던 전체적으로는 확실히 진보적 구도를 가지고 있다고 본다.
3. 크리스챤의 역사의식
역사의 종교
기독교는 역사와 가장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종교다. 그 신앙의 중심인 유일신 하나님이 바로 역사의 신이다. 그래서 그는 천지와 인간과 모든 피조물을 창조했을 뿐 아니라, 태초부터 역사의 진행을 주관하는 신이다. 그는 역사를 움직이는 원동력이며, 역사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 방향과 종결을 스스로 계획하고 간여한다. 그리고 기독교는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알리는데 역사적인 설명 방법을 채택하고 있다. 그래서 기독교 역사인식의 측면에서 볼 때, 역사는 곧 하나님의 역사이며, 하나님의 뜻이 역사하여 전개되는 시현장의 의미를 지닌다.
성경의 역사성
역사서들에서 구속사적인 요소를 제외시킨다면, 그 역사적 사실성이나 그 기술방법이나 시대성의 반영이라는 측면에서 세속사적 역사와 너무도 유사하다는 점이다.구약은 이스라엘 민족사를 다룬다는 점에서만 역사성을 띠고있는 것은 아니다. 룻기와 에스더에서 보여주듯이, 하나님은 바로 가까이 계시며, 인간과의 관계가 어떻게 맺어지는가를 역사적 실체를 통하여 실현해 주고 있다. 다시말해 이론은 개인의 이야기이지만 기실은 하나님의 이야기인 것이다.
역사학 발전에 미친 영향
유일신 하나님의 주관 아래있는 역사는 각국의 흥망사를 개별적으로만 다룰 수 없었다. 그래서 앗시리아, 바비로니아, 로마들과 같은 나라들의 상호 작용과 그 역할을 전체적으로 다루기에 이르렀다. 또한 유대민족사의 정통성을 세우는 과정에서 주변국들과의 연계에 주목하게 되었다. 그같은 맥락에서 보편사적인 시각이 생겼고 여기에 세계사의 구성이 가능했던 것이다.
기독교 역사인식은 목적론적이라는 점에서 진보적이다.
역사적 접근의 필요성
기독교와 역사는 불가분리의 관계에 있다. 이 말은 바꾸어 말하면 기독교의 핵심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사적 접근이 불가피하다는 사실을 예증한다. 성경을 이해하고 기독교를 이해하는 방법은 여랴가지가 있다. 하지만 적어도 역사적 접근 없는 기독교 이해는 지극히 단편적일 수밖에 없는 위험성을 안고있다.
살아있는 하나님은 역사의 신일 때만 가능하다. 역사에 간여하지 않는 하나님은 이미 사망한 것이나 다름없다. 또한 살아있는 하나님의 모습은 역사를 통하여 확인된다. 우리의 행동이 하나님 앞에서라는 경외감을 갖는 것도 역사의 하나님을 의식하는 데서 오는 것이다.
기독교 역사와 인식
기독교 역사인식은 세 가지 확신 위에 서 있다고 한다. 하나는 하나님이 역사에 간섭한다는 주장이다. 두번째는 역사를 일직선적으로 이끌어 간다는 믿음이다. 세번째로 그가 계획했던 의도대로 역사의 종결을 가져올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래서 기독교 역사인식은 창조, 과정, 종말의 단계를 갖고 있으며 역사는 약속에 의해서 움직여진다. 또한 성육신설을 통하여 하나님과 세계를 연결시켰다. 세속사를 구속사에 종속시키는 것이 기독교이며 이것이 또한 기독교 역사 인식이다.
역사를 크게 둘로 나눈다면 기록된 역사와 기록되지 않은 역사로 구분한다. 역사의 과거는 과거의 사실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역사가 자신의 현재적 인식 자체를 글로 옮기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역사를 서술 하느냐 하는 문제는 어떤 인식태도를 갖느냐의 문제와 밀접히 관계되어 있다. 오직 존재하는 것이라고 하면 현재의 시간밖에는 없는데 현재조차도 우리가 의식하는 순간에 과거가 되고 만다. 그렇게 보면 역사도 기실은 현재적 인식에 불과한 것이다.
인식과 역사이해와의 관계
역사는 인식 태도에 따라 그 원동력, 과정, 의미가 정리된다. 다시 말하면 어떤 인식태도를 갖느냐에 따라서 그 내용도,원인도,의미도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믿음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계시를 이성속에 조명하는 것을 말하며,신의 계시를 받아들일 수 있는수용성을 뜻했다. 그래서 “믿기 위해서 아는 것이 아니라, 알기 위해 믿는다.”는 그의 말도 그의 인식의 출발점이 어디에 있는가를 말해준다.
어거스틴의 두 도시
그는 신국과 지상국의 시작이 천사로 부터 비롯되었다고 본다. 인간세계에서 두 나라의 구분은 가인과 아벨의 비극에서 부터 출발시킨다. 그는 때로 로마의 개창을 가인적인 성격에서 구하고, 그리고 신국을 예루살렘과 하나님의 성 또는 교회와 비유시켜 서술한다. 그러나 그의 지상국과 신국은 이 지상의 역사 속에서 실체로서 확연히 구분되는 어떤 구획된 조직으로 설정되지 않았다.
지상국의 시민은 자기를 하나님보다 사랑하는 사람들이며, 신국의 시민은 하나님을 자기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지상역사 과정에서 외형적으로 구분되거나 구별되지 않는다. 이들은 종말 후에 나뉘어질 성질의 것이다.
어거스틴에게 역사란 이 두개의 사랑, 두개의 의지, 두개의 정서의 끊임없는 갈등과 조화이며 그것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어떤 목적지를 향해서 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이같은 어거스틴의 역사구도는 기독교 역사이해의 기본틀이 되었다.
역사의 평범화를 위한 제언
기독교의 진정한 이해는 역사적 접근이 없이는 불가능한데,인식론에만 치우칠 때 인식이 갖는 상대성 때문에 사실의 객관적 실체를 소홀히 할 수 있는 위험성은 있다.
기독교가 역사인식과 서술의 획기적인 전환점을 마련했다면, 앞으로의 역사 이해는 인간화되고, 권위의식의 산물이 아닌 평범한 인간들에 대한 역사서술 내지 역사이해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4. 역사와 개인
1. 문제의 제기
역사에 있어 뛰어난 개인 또는 영웅은 독립적인 산물인가 아니면 사회속의 일부분에 불과한 것인가 하는 문제 즉 개인이 역사의 방향을 결정짓는 결정주의적 입장에 있는가 아니면 역사는 개인의역활과는 무관하게 그 나름대로 정해진 필연적인 과정을 가고 있는가에 대한 문제로 요약된다. 이것은 한 개인의 생활관과 직결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크게는 인류역사 문명의 궁극적인 목적 의미와도 연관되어 있는 역사철학의 문제이기도 하다.
역사를 구성하는 것은 인간의 행위 뿐만 아니라 사상, 운동, 사건들을 포함하고 있지만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의 활동으로서 역사적 사건에 대한 설명이란 어느 의미에서 인간 행위에 대한 해석이다.
2. 영웅과 지도자
역사 속에 살면서 역사를 창조해 나가는 인간은 그것이 개인이든, 단체이든, 또는 재왕이든, 일개 촌로이든 모두가 역사적 존재다. 역사의 형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사람은 소수라고 할 수 있으며 역사의 형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사람은 소수라고 할 수 있다. 전래적으로 이들을 역사상의 위인,영웅 또는 지도자, 천재 등의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물론 오늘날 대중사관이라고 해서 민중이 오히려 역사의 동력이 되었다는 논의가 일고 있고, 또 기독교 사가적인 입장에서 보면 개인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전체적으로 중시되어야 하나, 참여도의 각도에서 이들은 다수의 인간들과 구별된다.
지배는 두 가지 계기에 의해 이루어 지는데 첫째는 강제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고, 둘째로는 이같은 강제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즉 피지배자측에서 갖는 정당하다는 신념이 더욱 결정적이라고 보았다. 지도자란 사회적 영웅과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고전적 의미의 영웅은 사라져 간다 하더라도 지배관계의 측면에서 결코 영웅이 없는 시대라고 한다. 물론 20세기는 영웅이 없는 시대라고 한다. 그 이유로서 20세기 민주주의 사회는 권력의 독재화를 제약하는 여러가지 제도적 장치와 민중의 감시가 있으며, 오늘과 같은 대중화 문명시대에는 예언자나 선구자적 인물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소위 위인에 영합하기 때문이며 민주주의는 평등과 기회 균등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는 점 등을 지적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모든 사람들이 영웅이 될 수 있다는 환각을 갖고 있지만 사실은 우중정치가 행해지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영웅 소멸론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역사적 역할의 중요성에 대한 논의는 결코 고개를 숙이지 않고 있다. 이태리의 사회학자 파레토가 민주주의 평등주의에 반대해서 엘리트의 사회 참여와 지배를 적극 지지하고 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상에서 영웅이란 정치적 영웅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며, 여러 분야에서 뛰어난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그 사건에 깊이 관계된 개인들을 포괄적으로 얘기하고 있고 근대에 내려오면서 영웅의 위치가 지도자로 대치되어 가는 과정에 있는 것 같다. 이들을 영웅이라고 부르던 또는 지도자라고 부르든 간에, 이들에 대한 필요성이 오늘의 사회에서 조금도 감소되어 가고 있지 않은 것만은 틀림없는 것 같다.
3. 헤로도토스가 본 개인과 역사
헤로도토스에게 역사란 주로 “복수의 여신 네메시스“ 를 통해 관장되는 무목적의 윤회에 불과한 것이었다. 이같은 역사의 운명성에도 불구하고 그는 결코 개인의 역할을 과소평가하려 하지 않았다. 그리스 사가 투키디테스나 폴리비우스와 비교해 볼 때 그가 신과 인간의 한계를 분명히 나누지 못하고 있다고 누누히 지적되고 있음에도 그의 불멸의 저서 HISTORIAI에서 수 없이 “개인의 결정적인 행위에 이르는 과정과 그것이 내포하는 의미를 면밀히 검토하고 있다. 물론 그의저작의 목적이 전쟁의 원인을 규명하는 것이지만, 사실 희랍인들에게 있어서는 전쟁이란 “영원히 존재하는 현실”로서 익서이 거의 그들의 역사를 구성하고 있는 것이자 다름이 없었다.
인간이 행하는 선택은 주로 필연에 인간이 행한 선택을 통하여서도 나타난다. 따라서 선택은 자유인 동시에 부자유이기도 하다. 이 선택과 필연의 내적연관 내지 이율배반적인 대립관계가 인간의 행위에 대한 헤로도터스의 철학이다.
후기에 희랍 사가들은 역사는 운명이라는 필연에 의해 지배된다는 견해에는 조금도 변함이 없었고 헤로도터스도 예외일 수 없었다.
4.Toynbee에 있어서의 문명과 개인
토인비에 대한 비판은 그 찬양 만큼이나 비등해 왔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역사를 거시적으로 보려고 한 점, 민족단위의 역사를 문명단위로 확대하여 포괄족으로 문명상호간의 연관을 지으며 그 성쇠의 원인을 규명하려는 의욕적인 시도와 그를 뒷받침한 해박한 지식을 통한 공헌만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가 줄기차게 추적한 명제는 문명은 어떻게 해서 성장하며, 왜 쇠퇴하는가의 문제였다. 그는 문명을 크게 두 막으로 나누었다. 제 1 막은 성장이고 제 2 막은 쇠퇴로서 붕괴되는 과정이다.성장의 기본원리는 도전과 응전으로서 이것이 성공적으로 수행되어가는 한 성장은 계속하나 만약 도전에 대해서 성공적으로 응전하지 못할 때 그 문명은 쇠퇴의 길을 걷게 되고 종국에는 붕괴하고 만다. 이같은 그의 도전과 응전의 원리에서 볼 때 도전을 수행하는 인간의 역할이 매우 중시되고 있음을 직시할 수 있다. 문명의 성장, 쇠퇴, 붕괴의 원인은 인간개인의 창조력유무에 의존한다고 했다. 그는 사회란 인간 사이의 여러 관계에 대한 체계라고 보고 사회란 “개인간의 여러 관계에서 빛어지는 소산” 이라고 보았으며, 사회란 정의를 내릴 때 그는 사회는 “ 행동범위”이기는 하지만 “모든 행동의 발원은 사회를 구성하는 개인 속에 있다.”고 했다.
개인의 창조적 활동에 기준을 두고 미개 사회와 성장하는 문명사회를 구분하고 있는데 “성장기의 문명이란 그 사회체 안에서 창조적 개인의 다이나믹한 운동이 행하여지고 있는 문명이며 그렇지 못한 경우일 때 그것은 정지 되었거나 미개한 문명사회라고 했다.”
확실히 토인비에게 있어서 개인은 역사의 주체였다. 개인의 창조적 역할이 중단될 때 그 문명의 성장이 중지될 뿐아니라 쇠퇴와 와해의 길을 걷는다. 이점에 있어서 그는 경험주의적 사가였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명은 종교의 탄생을 위해 쇠퇴한다는 역사패턴을 세워 놓음으로써 결과적으로 궁극적인 인간의 역할이 꼭 그 자신에 의해 조정된다고만은 할 수 없는 필연의 일면을 띠는 자가당착에 빠진감이 없지 않다. 이점이 바로 토인비가 그의 논지를 전개하는데 경험주의적 접근 방법을 사용하고 있으면서도 실제에 있어서는 시인다운 예언주의적 입장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는 비난 받고 있는 점이기도 하다.
5. E.H.Carr의 사회적 산물론
영국의 석학인 E.H.Carr는 역사가와 사실의 관계, 역사와 인과관계 등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그 만큼이나 중요한 문제로 사회와 개인문제를 역사서술의 입장에서 언급하고 있다.
토인비와 기본적인 차이를 드러내고 있는 것은 토인비가 사회를 이끌어 가는 것은 개인의 창조성이며 이 힘이 사회를 변화 시키며 인도해 간다고 하는 반면에, E.H.Carr는 그 개인이 처한 사회적 힘을 더 중요시 하였다. 역사상의 사실은 확실히 여러 개인에 관한 사실임에 틀림없지만 그것이 개인이 독립해서 행한것도 아니고 개인 본인들은 그렇게 상상하거나 오해하고 있지만 개인 스스로가 자신의 행동 동기였다고 생각하는 동기에 의해 자기가 움직인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 행동은 사회 속에 있는 개인 상호관계에 관한 사실이며, 그리고 그 개인 행동에 있어서도 왕왕 행위자 자신의 의도 했던 것과는 달리 별개의 아니 때로는 정반대의 결과까지 초래하는 사회적인 힘에 관한 사실들이 역사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에 있어서 개인의 역할을 강조한는 모든 입장에 반대한다.
그는 어떤 개인의 행동은 반도이든 왕국이든 그것은 그 시대와 국가의 특수 조건의 산물이며 사회적 산물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역사상의 위인이라는 것도 탁월한 개인이지만 그 개인의 역할이란 탁월한 중요성을 지닌 사회현상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그의 견해가 위인의 존재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단순히 위인을 역사 밖에 앉혀 놓고 위대하기 때문에 자신의 힘을 역사에 강요하는 그런자의 위인관을 가진 역사가에 반대한다고 말하고 있다. 위인이란 역사적 과정의 산물 내지는 그 사역인이면서도, 동시에 세계의 형세와 인간의 사상을 변화시키는 사회정신을 대표하고 창조하는 뛰어난 개인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했다. 이 점에서 그는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대립적이 아닌 상호보완적 입장에서 보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은 어디까지나 사회의 산물임을 잊지 않고 강조하고 있다.
6. 구약성경에 등장한 개인의 역사성
이스라엘이 관심을 두었던 것은 자연보다는 인간행위가 갖는 궁극적인 의미는 무엇인가 하는 본원적 문제였다. 그렇기 때문에 이 민족은 최초로 역사철학의 기틀을 마련했고 이점에서 역사연구 방법론을 제시한 헬라인과 더불어 역사학 발전에 쌍벽을 이루어온 존재다. 히브리적 사관이 아니었다면 역사에 있어서의 의미탐색이 결코 행해지지 못했으리라는 점에서 볼 때 그 중요성은 헬라의 그것에 앞서는 것이라고 본다. 이스라엘의 역사관은 구약에 전부 요약되어 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하나님이 역사를 통하여 자기를 계시했다는 점에거 구약 전체는 역사적 성경이라 볼 수 있다.
이스라엘에 있어서 역사는 Jahweh의 원대한 계획에 의거하고 걸정되고 목표를 향해서 진전하는 운동으로 이해 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에게는 역사의 시작이 있고 끝이 있다. 그 과정은 신이 자기를 계시하는 과정이며 구속의 과정으로서 의미를 지닌다. 그의 계시가 이루어지면 역사도 완성된다. 그러므로 인간은 신이 그 뜻을 이루는 중요한 대상이고 그 관계는 약속으로 맺어진다. 이렇게 볼 때 신은 인간을 통해서 역사를 관장하고 또 인간은 역사에 참여자가 된다. 여기서 우리들은 하나님이 모든 사람과 계약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고 지도적 개인들을 통해 계약을 맺고 개인을 통해 민족과 국가와의 약속을 맺었다는 점에서 평범한 일개의 개인도 중요하지만 사건을 담당하는 지도적 개인이 있었음을 구약에서 보여주고 있다.
지도자의 기본적인 자질은 그 신앙심과 도덕성에 있었다. 이점에서 볼 때 이스라엘에서의 개인은 그 자신이 존귀함을 받기보다는 그 행위에 의해서 존속이 결정되었음을 볼 수 있다.그리고 그들은 분명히 역사의 참여자가 되었다.
7. 역사와 자유의지
오늘날은 자유의지 문제에 대해서 부정적인 이론이 크게 우세인듯 하다. 이와 같이 최근의 자유의지 접근의 오류는 자유의지의 문제를 이론적으로 설명하려는데 있다.
인간을 독립된 개체적 자유의지로 보지 않고 성경에서는 이 문제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파악하고 있다. 즉 하나님 앞에서 책임이 있는 존재로, 의무를 가진 존재로, 따라서 자유의지가 주어진 존재로 반영되는 인간은 하나의 책임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 앞에 죄인 혹은 의인으로 나타난다. 이같은 책임 윤리적 면에서 어거스틴은 자유의지를 인정하였다. 물론 인간이 타락한 후 자유의지는 그 자유를 잃었다고 했지만 이는 크게 은총에 의존한다.자기에 대한 사랑의 의지를 가진자는 지상의 나라네 속하고 신에 대한 사랑이 자기에 대한 것 보다 앞설 때 천상의 시민이 된다. 그에게 인류의 역사가 시작되는 것은 아담이 타락되고 이 타락된 인성이 지상의 나라 시민을 낳게 되면서 부터다. 여기서 두 대립된 나라를 구성하는 데 있어 자유의지의 장치는 매우 중요하며 실제 이것을 인정하지 않을 때 어거스틴에게 역사의 존재란 있을 수 없으며, 동시에 역사의 의미도 상실되는 것이다. 이점이 바로 이 자유의지의 장치가 특별한 의미를 갖는 것이며 신에 의해 미리 계획되고 주관되는 역사임에도 불구하고 희랍처럼 운명적이거나 숙명론자가 되지 않는 이유다. 바꾸어 말하면 타락된 인성이 아니었다면 어거스틴에게 역사의 형성은 불가능하다.
하나님의 입장에서 볼 때 역사는 처음부터 예지되고 예정되며 섭리되는 인간의 역사 과정이지만, 인성을 가진 인간의 입장에서 볼 때 역사는 창조적인 작업이며 인간은 단순한 꼭두각시가 아니라 한정된 것이긴 해도 자유의지를 가진 대리자이며 활동사진에 나오는 무생명 무감각의 기계적인 인간이 아니라, 드라마에 직접 등장하고 숨쉬고 활동하는 실재의 연기자이다. 어거스틴은 인간의 자유의지와 하나님의 절대의지를 또한 인정하고 있다.
니버는 인간이 죄를 범한 것은 본성 때문이 아니라 자유 때문이라고 했으며, 역사는 신과 모든 인간의 싸움이라고 했다. 이것은 자유의 증대만으로는 인간을 구원할 수 없다고 본 것이며 양면성의 한계를 인정하였다. 오늘의 이 시점에서 자유의 절대적 증대가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고 역사의 완성을 가져오리라던 헤겔류의 낙관주의가 그 표적은 빗나가고 있음을 본다. 사실 인간자유의 확대는 많은 기술적 진보와 인간 영역의 확대를 가져온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자유의 증대가 결코 인간자신의 이기적 욕망과 충동을 통어하거나 지배하는데는 실패하고 있다. 다시 말해 인간은 인간외적 상황에 대한 지배권과 영향력은 확대했다 하더하도 자기자신의 본성을 통어하는데는 실패하고 있다.
모든 역사적 사건을 “신의 지상권”이라는 만병통치약으로 단순화 시키거나 뛰어 넘겨 집어 버리는 도피적이고 오만한 책임회피의 죄를 범하지 않아야 한다.
8. 결어; 경험주의적 역사연구의 지향점을 찿아서
구속사가나 세속사가가 연구하는 공동의 광장이 있다면 그것은 인간의 본성에 기초를 두고 있다는 점이며 인간활동에 미치는 영향들이다. 이 점에서 경험주의적 역사접근이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종국적으로는 하나님의 뜻과 계시를 이해하는데 보충적으로 연구의 차원을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역사를 접근하는데 있어, 섭리라는 작은 구멍을 통해 모든 것을 일반화 해버리는 연역적인 우를 범하기 보다는 보다 경험주의적, 사회과학적인 분석을 통한 충분한 연구를 통해, 이들 연구의 한계성을 인정하고 보다 차원 높은 궁극적인 힘을 발견하는 학구적 자세의 중요함을 인식해야 한다.
5. 역사와 인성
역사란 무엇인가하는 문제는 시대와 사람에 따라 그 논의의 성격을 달리해 왔다. 그럼에도 역사의 구성요소를 이야기 할 때 시간과 인간이란 두 요소를 결코 빼놓을 수 없다. 첫째로 역사란 과거를 대상으로 시간적 체계속에 구성되어야 하기 때문에 시간개념없는 역사란 상상할 수 없다. 두번째로 시간이 역사화되는 것은 인간들의 행위와 관계되었을 때만 의의를 갖는다. 역사 속에서 자연,우연, 사회 구조 같은 요소들이 배제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행위, 인간의 탐구나 본질 이해 등과 연관되었을 때만 역사화되는 것이다. 인간들의 어떤 행위가 역사가의 선택 대상이 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는 또하나의 논의의 대상이 될 수 있지만 분명한 것은 인간없는 역사의 구성이란 불가능하다는 명백한 사실이다.
인간이 역사속에서 차지하는 역할에 대한 논의의 문제중 하나는 인간이 역사의 주인공이며 역사는 인간의 결정에 따라 진행되고 있다고 주장하는 측과, 반대로 역사는 인간이 제어할 수 없는 힘에 의해 굴러가고 있으며 인간은 다만 그 같은 흐름을 따라가는 종속적인 위치에 있을 따름이라는 상반된 입장이다.
그러나 이같은 인간 주도적 역사 인식에 이의를 제기하는 주장들은 훨씬 더 다양하다. 스펜서는 개인이란 역사의 필연과 법칙의 대리 역할자에 불과하다고 했고, 헤겔은 영웅적 행동이 나타난 사건이란 결국 역사의 법칙에 의해서 이거나 그것을 가능케한 시대의 요구에 의해 결정되었을 뿐이라고 보았다.
또한 기독교에서도 역사의 주관자는 인간이 아니요, 하나님이라고 본 점에서 역사 속에서의 개인의 역할을 종속적인 것으로 보고 있다. 그 점에서 하나님을 역사의 하나님으로 파악하고 있다.
인간의 역사적 결정권을 아무리 부인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시드니훅이 말한대로 이들조차도 역사적 인물을 섭리, 정의, 현재, 변증법, 시대정신의 도구로는 보고 있으며, 적어도 인간들이 역사에서 부차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여기에 인간을 이야기하고 인간의 본성,즉 인간의 본질적인 속성이 무엇인가를 탐구해 보아야 할 까닭이 있는 것이다.
역사의 행위에는 어떠한 형태로든 인간성의 사용이 미쳤으리라는 점은 결코 무관할 수 없을 것 같다.
만일 인간성이 본질적으로 선한 것이라면 인류의 미래는 밝고 그 역사를 낙관하여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본성이 악한 것이라면 오늘의 표면적 현상이 아무리 긍정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먼 미래에는 실패를 예비하고 있다고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동양에서는 순자가 성선설을 주장하였고, 서양에서는 순자보다 약 100년 전에 과학적인 역사의 아버지라 불리는 투키디데스가 역사적인 사건의 본질을 인성의 측면에서 이해하려고 하였다. 그는 아테네와 스파르타간의 전쟁을 근본적으로 아테네의 급속한 발전에 위협을 느낀 스파르타인의 불안에서 구하고 있다. 투키디데스는 인간 본성을 구성하는 삼대 요소를 공명심, 공포심, 이기심이라고 보고 이 때문에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는 것은 필연적인 것이라고 하였다, 그는 역사의 동인을 인간 심리 현상에서 찿고 있는 것이다.
르네상스 시대의 사학자라 할 수 있는 마키아벨리 또한 인성을 악한 것으로 파악하였다.그는 인간 본성이 실제로 선하기도 하고 악하기도 하지만 정치의 목적으로는 악으로 보아야 한다고 했다.
지금까지 인간성을 어두운 측면에서 파악하고 있는 몇 사람의 예를 들어 보았다.반면 루소나 맹자와 같이 인간성을 선의 측면에서 보려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들은 인간이 악해 보이는 것은 다만 선성이 개발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한 인간이 죄를 범하고 사회적인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사회의 잘못된 것에 오염된 것이며 사회 구조 자체에 문재가 있는 것이지, 근본적으로 인간성의 걸함에 의한 것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그래서 루소는 자연으로 돌아가라 했고 맹자는 인간의 수호지심과 측은지심은 타고난 속성이지 누가 가르쳐 개발된 것은 아니라고 했다.
인간은 선한것을 지향하면서도 자신이 물려받은 죄의 유산 때문에 그로 인하여 역사 속에서 그릇된 선택을 하며 실패를 거듭하고 있다.인간은 여전히 구원 받을 수 있는 존재이며 자신의 선택에 따라 선의 길을 지향할 역사적 참여자의 역할을 담당한다.인간의 본성이 참으로 선한 것이라면 인류 역사의 모든 문제들은 이미 해결되었을 것이고 이 지상에 완전한 이상 사회가 이루어졌을 것이다.
그래서 역사안에서의 역사의 완성이 불가능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인간들이 얼마나 선과 악이라는 선택의 두 길을 넘나들고 있는가는 구약에서 아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인간의 죄성, 인간의 불완전성은 성경 곳곳에 너무도 생생하고 사실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사무엘의 인간적인 면에서 오는 숨겨진 시기심, 사울의 뼈저린 경쟁 의식, 다윗의 완전성의 뒤에 숨은 불완전함, 베드로의 고뇌에 찬 절규, 유다의 배반 등은 인간의 본 모습이 무엇인지를 숨김없이 보여주고 있다.
인간의 죄성, 자기 중심적 욕구는 무한정하게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순간에 그 한계성을 노정하게 된다는 것이다. 니버는 이것을 “하나님이 설정한 인간의 한계”라고 규정하였는데,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인간의 오만과 도전에 한계를 설정하고 오만과 도전이 지나치면 실패와 징벌을 내린다는 것이다. 인간들은 자기 중심적 욕구, 또는 본성만을 내세워 이를 밀고 나가지만 그럴 경우 인간은 불가피한 실패를 만나게 되는데 이 실패는 하나님의 ‘심판’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역사는 영웅적인 행위의 도장이 아니며 오히려 자기 내면의 죄성과의 끊임없는 싸움의 도장이라 할 수 있다.역사적 사건의 크고 작은 것이 그 역사의 위대성을 말해주는것은 아니다. 역사에서의 전쟁,정복,세력 확장,영웅주의적 행위는 어쩌면 더 많은 인간 죄성의 발로일지 모른다.
역사속의 인간을 죄성으로 파악한다면 우리들이 안고 있는 문제들에 대한 몇 가지 해답을 얻을 수 있다. 인류역사 이래 역사가 안고 있는 그 많은 문제들은 인간 내면의 죄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역사의 의미에 대한 일면의 해답을 주고 있다.그것은 허무와 보상없는 고통과 반복되는 맹목적인 삶의 의지로 표현될 수 밖에 없는 경우이다. 그러나 인간의 존재의미를 죄의 구속에 두고 역사의 의미를 인간의 속죄와 죄로부터의 구원에 둔다면 아무리 고통스러운 삶이라도 거기에 의미가 부여된다.
그리고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역사의 설명이 가능해지다. 하나님의 의를 찿는 자가 복을 받는 역사가 있어야 그 역사는 완성된 역사가 될 수 있다. 그 같은 역사는 인간을 죄성으로 파악 할 때만 성립이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크리스챤에게 역사의 완성은 외형적인 완성이 아니며 하나님의 구속을 통하여서만 자기 완성이 가능한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크리스챤에게 구원이란 역사 과정으로부터의 탈출이나 자기 주장의 성취에 있다기보다는 죄와 자아로부터 벗어나 하나님과 바른 관계가 무엇인지를 아는일이다.
6. 기독교와 역사서술의 객관성
기독교적 진보 개념은 12세기에 이르러 Jdachim에 의해 섭리와 역사와의 관계를 양분화 시킴으로써, 기독교적 진보관이 근대적 세속적 진보 개념으로의 탈 바꿈을 가능하게 되었다. 이같은 배경아래서 전통적인 유대교적 기독교적 역사이해가 방기되자 궁극적인 문제의 답을 역사 그 자체 속에서 구할 수 밖에 없었다. 역사주의 자들은 역사적 방법의 엄밀한 이용에 의해서 사실을 허위로부터 구별하려고 했으며, 역사는 가치를 탐구 할 뿐 아니라 생의 안내자의 역할 까지도 담당해야 한다고 주장하게 되었다.
결국 역사가 기독교와의 관계가 어떻게 수립되어야 할 것인가의 문제에 귀착된다고 본다.
학자적 자유를 귀중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선입견 없는 탐구적 노력을 통하여 객관적 진리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전문적인 역사가가 되는데 필요한 요소와 훌룡한 크리스챤이 되는 요소가 결코 대립적이 아니며, 공통성을 띠고 있다.
훌룡한 역사가가 갖추어야 할 첫째 요건은 좁은 지역주의나 파당주의를 극복하고 역사를 전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안목을 갖는 것이다. 토인비나 랑케등이 몇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지만 훌룡한 역사가로 평하는 것은 기독교적 형제애와 통일성의 훈련에서 온 전 체적인 파악 때문이다. 두번째의 상사점은 판단의 문제이다. 대부분의 역사들은 그들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역사 속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운동에 대해서 판단을 내리지 않으면 안된다. 세번째의 특징적 자세는, 양편 다 그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문제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현실적이라는 점이다. 끝으로 지적되는 크리스챤 사가와 비기독교 역사가와 공통점은 양쪽 다 현실의 평가에 있어서 보다 더 상대적 입장을 취하며, 역사적 현상에 대한 절대적 정당화를 삼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비기독교 역사가는 도덕적 기준이나 불변적 도덕이 있을 수 없으며 이것은 시간과 장소의 제약을 받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버터필드는, 기독교와 역사 그리고 다른 학문과의 관계를 설정하는데 있어서, 갈등관계보다는 포용의 측면에서 이해하고 있다는 점에서 해리슨과의 맥락을 같이하고 있다.
그는, 역사가의 기독교는 역사연구에 두 가지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데 첫째는 전인간 드라마 개념의 관건이 되는 역사의 방향지침을 제시하고, 둘째로 기독교적 신앙은 역사에 대한 과학적 접근의 범위를 축소하고, 역사가의 과업은 어느 의미에서 한정적이라는 사실을 인식케 하는데 있다고 밝히고 있다.
한 역사가가 선택하는 사료는 곧 그 역사가가 처한 상황의 제한을 받는다. 영국외무성에서 나온 자료만을 근거로 한 역사 서술은 결국 영국 외무성의 입장을 대변하는 결과가 되고, 다른 자료 접근의 한계는 곧 역사가의 한계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을 고려하여 볼 때 역사는 그 자체가 갖고 있는 특성에 의해서 이해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역사의 고유성을 정신적 판단, 특수 과학적 성격, 독자적 타당성으로 구분하고 있다. 역사는 단순한 피상적 편찬이 아니라 오랜시간을 거친 정신사적 축적일 뿐만 아니라 세대와 시대를 거친 오랜 연구결과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역사의 고유성의 인정은 그것이 갖고 있는 독자적 영역을 설명해 주고 있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객관성의 한계를 또한 깊게 시사해 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학술적 역사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의미를 뜻하는 것은 아니며, 그것은 어딘가 기술적인 영역에 한정되어 있다는 것을 부정하기 힘들다. 그것은 학문의 왕자도 아니며, 종교의 대용물도 아니요, 그 자체가 완전한 교육도 아니라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Butterfield의 태도는 역사적 상대주의와 일맥 상통하는 점을 갖고 있다. 물론 이같은 역사적 상대주의의 출현은 기독교와 밀접히 관게되어 등장한것은 아니지만 객관적인 역사, 결정적 역사 절대적 타당성을 지닌 역사추구가 갖는 한계점을 규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역사주의는 모든 현상을 역사성 밑에서 해석하려는 시도였다. 역사주의는 가치의 역사성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 가치, 규범, 제 규준의 절대성을 인정할 수가 없었다. 가치란 역사적 상황에서 제기되고 역사에서 일어난것은 무엇이든 그 자체로서 가치가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외적 기준에 의해서 판단되는 것이 아니다. 이처럼 역사 속의 개인, 제도, 어떤 역사적 행위도 내재적인 고유한 가치에 의해 판단이 되므로, 사실상 어떤 고정된 합리적 기준을 설치할 수 없었던 것이 역사주의 자체가 갖고 있는 성격이었다.
역사의 상대성을 주장하는 몇가지 이유 중에서 무엇보다 기본명제가 되는 것은 순수객관이 무엇이며 그것이 존재할 수 있느냐의 문제이다. 역사가 다루는 사실들은 결코 순수하게 오지 않으며, 순수한 형태로 존재하지도 존제할 수도 없고 그것은 언제나 기록자의 마음을 통해 굴절하기 때문에 순수한 객관적 사실이 역사기록 속에 존재 하기란 힘들다.
뿐만아니라 역사가가 수집한 증거나 사료는 처음부터 부분적일 수밖에 없다. 또 전 사료의 접근이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단순한 사실과 의미있는 사실들을 구분해야 되며, 그 과정에서 역사가의 인생관, 가치, 취향이 작용한다는 뜻에서 선택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선택적 행위에 의하여 기술되고, 재구성된 역사지식은 그 출발부터 대상에 대한 판단에 의해서 평가된 결과라고 볼 때 그것은 이미 가치부가적 성격을 띠고 있다.
역사는 자료로부터 뽑아낸 사실들의 전체적인 총계가 아니다. 역사는 은밀한 자료 속에 내재해 있는 것이 아니라 사실 그 전에 이미 존재해 있는 것을 역사가의 탐색을 통해 재발견하는 것에 불과하며 엄밀한 의미의 재 구성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떠한 자료도 그 자체만으로는 역사적 자료가 될 수 없으며, 그것이 역사가의 역사적 탐구정신에 의해 조명되었을 때 만이 그것은 역사적 자료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역사의 가치는 엄격하게 역사가의 능력에 의존하게 된다.
역사 자체가 갖고 있는 객관성의 문제는 종교적 전제에 의해서 희생될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역사자체가 갖고 있는 성격 때문에 안아야 할 한계적 과제라는 점을 우선 지적하고 싶다. 이것을 역설적으로 이야기 하자면 기독교와 역사적 객관성의 문제는 갈등관계에서 파악할 것이 아니라 이해적 입장에서 파악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기독교적 신앙을 가진 역사가가 서술하는 역사가 모두 편견적도 아니며, 사회과학도 또는 무신론적 입장에 서 있는 사가가 쓴 역사가 완전한 객관성을 드러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또한 기독인의 입장에서도 당위론적 이유때문에 역사적 사실을 왜곡,조작시켜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역사적 탐구의 궁극적인 목적은 어떤 객관적인 사실의 확립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생명들에 직면하여 그것들의 의미를 탐문하고 타인의 삶과 관심을 이해하는데 있을 것이다.
기독교인으로서 역사가는 삶에 대한 기독교적 조망의 관점에서 인간의 삶을 해석하려는 태도를 가져야 하며, 인간에 대한 기독교적 지식의 맥락에서 실제 역사적 사건의 본질을 파악해야 할 것이다.
이점에서 볼 때 역사학 역사신학의 입장은 그 자체의 고유성을 잘 보존하면서 상호간의 부족한 점을 서로 보완하는 관계에 서야한다. 역사적 사실의 한계성을 인정하여 그것으로 설명되지 않는 난제에 대한 해답도 구해야 한다.
7. 크리스챤은 현대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
현대사를 어떻게 볼것인가의 문제제기는 현대인들이 안고 있는 번민과 고뇌의 단적인 요약적 표현이다.
어떤대상을 어떻게 이해하느냐 하는 것은 인식의 주체가 어떤 “인식의 틀”을 갖고 있느냐의 문제이기도 하다. 어쩌면 대상보다는 인식 구조가 먼저인지 모른다. 이를 바꾸어 말하면 대상의 인식범주는 인식의 틀안에 들어오는 한에서만 허용된다.
역사에 대한 이해나 해석은 그 문제를 접근하는 태도와 시각에 따라 그 해답이 달라질 수 있다.
역사에서 일어났던 많은 사실들이 역사의 사실로 재구성 되는 과정에서 인식틀의 영향이나, 가치부과적 당파성을 띠고 이해되어 온 것도 부인할 수 없다.
현대는 절대 가치의 붕괴시대라 볼 수 있다. 그로 인해 사람들은 가치혼란을 겪고 있으며, 제 분야의 불확실성에 시달리고 있다. 또한 물질 문명의 거대한 힘을 소유하면서도 정신적으로는 심한 좌절감과 불안에 떨고 있다. 문명과 정신의 괴리에서 오는 소외와 인간존엄성의 퇴락이 곳곳에서 두드러지고 있다. 니체가 “신은 죽었다.”고 상징적으로 대변하고 있듯이 전래적인 모든 가치나 권위는 무참하게 무너져 내렸다.
현대 문명은 양적으로는 선장하였으나 질적으로는 크게 개선 된 것 같지 않다.그 이면에는 좌절과 절망감이 먹구름처럼 깔려 있는 것 같다.
이같은 현대를 위기로 볼 것인가 아니면 희망으로 볼 것인가 히는 문제는 현대사 이해의 갈림길이 되는 매우 핵심적인 질문이다. 스스로 구제할 수 없는 인류사의 한계를 인지하고 있다고 하까?비록 단계적 시련은 있을지 모르나 언젠가 인류는 이상적인 또는 유토피아적인 세계를 이 지상 위에 이룰 수 있다고 믿는 신봉자인 것이다.
인간의 힘만으로는 역사가 완성될 수 없다는 사실이 지난 수 천년간의 인류사가 증명해 주고있다.
종교는 이데올로기는 아니지만, 부의 분배, 구조적 모순의 해결, 바른 삶에 대한 바른 보상, 인간소외의 극복과 같은 개선을 역사 속에서 구현해 나가야 하는 사명을 지닌다.
하나님 사랑은 이웃 사랑이라고 했다.인간의 한계성과 역사적 미완성의 속성을 인지한다면,현대인들의 위상이 무엇이어야 하는가의 방향과 출발점은 설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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