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 이란!

[스크랩] 데이비드 클락슨, "구원 얻는 믿음", 2장, 3장 믿음은 어떻게 역사하는가

하나님아들 2017. 12. 28. 20:34


 

2 장 믿음의 대상은 누구인가

 

1. 일반적인 대상

 

우리를 의롭게 하거나 구원 얻는 믿음의 대상은 그리스도입니다. 믿음이 죄의 사면과 구원을 가져다주는 것은 바로 그분에 의해서이며, 또한 그분 안에서입니다. 바로 이 목적을 위해서 신자들은 그분께 날아가고, 기대고, 나아가고, 붙어 있는 것입니다. 신자가 섭취하고,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껴안는 것은 다름 아닌 그리스도이며, 그때에야 그 신자는 죄의 용서와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2. 특수한 대상

 

1) 하나님의 말씀

모든 하나님의 말씀은 믿음의 구체적이고 합당한 대상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구원 얻는 믿음이 되기 위해서는 그것이 오직 그리스도와 관련되어 있을 때만이 가능합니다.

 

2) 하나님의 자비

하나님의 자비는 믿음의 부분적인 대상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자비만으로는 믿음을 가지기에 충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서는 자비를 얻을 수가 없습니다. 믿음에 대하여 자비가 온전한 대상이 되려면, 반드시 그리스도께서 함께 계셔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통할 때 자비가 믿음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3) 복음의 약속

복음의 약속은 믿음의 대상에 종속적인 것으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약속은 마치 그리스도, 즉 생명의 빵과 하늘로부터 내려온 만나가 잘 차려지고, 제공되는 접시와도 같습니다. 믿음은 접시를 주된 것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만나와 그 접시 안에 있는 생명의 빵을 주된 것으로 여깁니다.

 

4) 그리스도의 인격

그리스도의 인격은 합당하고 중요한 믿음의 대상입니다. 믿음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약혼입니다. 믿음은 우리 영혼을 그리스도와 묶는 것입니다. 이것은 부부간의 연합과도 같습니다. 우리가 결혼 지참금과 결혼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결혼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믿음은 그리스도를 가장 중요시하는 것임을 성경을 통하여 우리는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믿음은 영혼의 손입니다. 그것으로 하나님의 선물인 그리스도를 받습니다(6:10 참고). 또한 믿음은 영혼의 팔입니다. 그 팔로 그리스도를 끌어안습니다(3:4 참고). 믿음은 영혼의 눈입니다. 이스라엘이 놋뱀을 바라보았듯이, 그 눈으로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입니다(3;14-15 참고). 믿음은 영혼의 입입니다. 이 입으로 하늘로부터 오는 생명의 떡인 그리스도를 먹습니다(6:32-34 참고). 믿음은 영혼의 발입니다. 그 발로 그리스도께로 나아옵니다(11:28, 6:35,37 참고). 믿음은 영혼의 입술입니다. 그것으로 그리스도께 입맞춤합니다(2:12 참고). 이 모든 것으로 믿음은 그리스도, 즉 그분의 인격을 귀하게 여기게 되는 것입니다.

 

3 장 믿음은 어떻게 역사하는가

 

1. 믿음이 역사하는 방법

 

1) 유아들에게 있어서 믿음의 역사

믿음의 역사가 유아기 때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성경은 밝히 말하지 않습니다.

 

2) 특별한 믿음의 역사

주님께서 특별한 방법으로 역사하시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단 한 가지 방법으로 자신을 제한하지 않으십니다. 자신이 기뻐하는 시간에 자신이 기뻐하는 방법으로 역사하십니다.

 

2. 믿음이 역사하는 단계

 

주님께서는 복음을 즐거워하고 믿음을 증진시킬 수 있는 사람들에게 믿음의 역사를 시작하십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단계로 진행시키시며, 다음과 같은 정도로 믿음으로 이끄십니다.

 

1) 율법과 성령으로 죄를 발견

주님께서는 율법과 성령으로 죄를 발견하게 하십니다(7:7 참고). 하나님의 법은 빛입니다. 죄인이 불신의 상태로 계속 머물 때에는, 이 빛을 불청객으로 여겨 추방해 버립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이 빛을 영혼과 양심에 가져 오시면, 이 빛이 지은 죄만이 아니라 지을 죄까지도 발견하게 해 줍니다.

 

성령님은 율법과 함께 작용하십니다. 책망하시는 것은 성령님께서 믿지 않는 세상에서 처음으로 수행하시는 일들 가운데 하나입니다(16:8 참고). 의에 대한 확신 이전에, 성령님께서는 죄인에게 그 자신의 죄를 확실하게 보이시고, 자신의 죄를 분명히 드러나게 하십니다. 이것이 성령님께서 말씀으로 일하시는 첫 번째 사역입니다. 이 말씀의 효력으로 죄인의 눈을 여십니다(26:18 참고). 주님께서 그들을 하나님께로 되돌리시기 전에 그들의 눈을 먼저 여십니다. 그때에 전에 가졌던 죄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입니다.

 

마치 맹인이 가지고 있는 색에 대한 이해가 그의 눈이 열리고 난 다음 판이하게 달라지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는 자신의 죄의 횟수와 위험과 죄책과 오염과 그 무게와 사악함을 제대로 인식하며, 그것이 하나님께 불명예와 진노를 일으키는 것이며, 자신을 불결하게 만들고 저주하는 힘이 됨을 이해하게 됩니다. 성령님께서는 죄인 자신의 죄를 가볍게 여기고 작은 것으로 보게 하는 모든 변명들을 제거하시고, 양심이 계속 그 죄의 무게에 눌리도록 하십니다. 더 나아가 성령께서는 죄가 더욱 무겁게 느끼게 하시며, 극도로 죄스럽고 저주스러운 것으로 여기도록 하십니다. 비록 이러한 발견은, 처음에는 주님께서 양심에 일어나는 특별한 하나의 죄에서부터 시작하시지만, 그 한 가지에 머물지 않고 더 많은 것으로 진행하십니다.

 

2) 죄에 상응한 벌의 적용

주님께서는 죄에 대하여 내려진 모든 무서운 결과들이 자신에게 해당한다는 것을 그에게 확신시키시며 구체적으로 적용하십니다. 죄의 결과가 무엇이며, 율법의 저주와 위협이 무엇이며, 정죄의 판결과 하나님의 진노 등이 무엇인지를 일반적인 이해뿐 아니라, 그런 것들을 자신에게 적용하게 됩니다. 여태까지 그 죄인은 이러한 것들을 개인적인 적용 없이, 일반적인 시각으로만 보아 왔습니다. 그러나 그의 양심은 마치 나단 선지자가 다윗에게 당신이 바로 그 사람이다라고 질책한 것처럼 자신에게 적용합니다. 또 요나가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나의 연고인 줄을 내가 아노라라고 말했듯이 그 죄인의 양심이 그렇게 말합니다.

 

3) 양심의 가책

영혼은 진노와 죄의 이해로 상처를 받습니다. 저희가 이 말을 들었을 때, 그 무게가 양심을 무겁게 누르고, 그의 영혼 속에 비수처럼 파고듭니다(2:37 참고). 그것은 마치 칼과 창에 찔리는 것과 같습니다. 진노의 적용에는 반드시 공포와 두려움과 고통과 심판에 대한 무서운 기대가 따르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때때로 외부적으로 드러나는 섭리를 사용하시기도 합니다. 어떤 무시무시한 광경을 보게 하시거나 죽음에 대해 순간적으로 이해하게 하여 죄인을 놀라게 하심으로써, 자신의 불쌍한 상태를 이해하도록 하십니다.

 

진노에 대한 이해가 어떤 이들에게는 지진과도 같아서 그 영혼의 근본을 흔들고, 마음의 문을 깨뜨려 버리거나, 떼어 버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다른 이들에게는 그 문이 열쇠로 열려져서 보다 부드럽게 그리스도에게로 문을 열게끔 합니다. 주님께서는 그 영혼이 그리스도께 집중하게 하시며, 마치 용광로 속에서 철이 녹을 때까지 계속해서 철을 붙들고 있듯이 그 영혼을 붙드십니다.

 

4) 진노를 피할 고민

죄인은 이 비참한 상태를 어떻게 피할 수 있으며, 자신을 파멸로 이끌 죄와 진노로부터 자유롭게 되려면 무엇을 해야 하고, 자신을 삼켜 버릴 것 같은 불같은 진노를 어떻게 진정시킬 수 있는지에 대하여 질문을 하게 됩니다. 베드로가 유대인들에게 죄의 감각으로 그들에게 상처 내었을 때, 우리가 어찌 할꼬?”(2:37)라고 한 것은 바로 이런 것에 대한 즉각적인 반응입니다. 이것은 마치 간수가 감옥이 지진으로 흔들렸을 때, 그로 하여금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16:30)라는 질문을 하게 만든 것과 같습니다.

 

5) 평안을 얻기 위한 모든 간접적인 방법의 포기

사탄과 세상적으로 아는 사람들은 그에게 이전의 죄악된 코스로 되돌아가도록 조언할 것입니다. 과거의 즐겁고 선택하기도 쉬운 길로 말입니다. 그러나 죄인은 모든 안전치 못한 방법들과 평안을 획득하기 위한 모든 간접적인 방안들을 포기할 것을 선언하고 폐기합니다. 믿음은 그리스도께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자신의 악함이나 스스로의 의로움으로부터 나오게 하기 위해서, 주님께서는 그것의 허영심과 연약함을 보여 주십니다. 사도의 고백처럼 스스로 가진 지위나 의로움은 단지 쓸모없는 것이나 배설물로 여기도록 이끄십니다(3:8 참고). 그러할 때에 그 죄인이 그리스도께로 향하는 고속도로로 달리게 됩니다.

 

6) 그리스도의 계시

주님께서 자신을 잃어버릴 수도 있는 죄악과 자만심 사이에서 나오게 하실 때에, 그 죄인에게 진실한 길, 즉 유일한 용서와 생명의 길을 보이십니다. 죄인이 자신의 기만적인 피난처로 돌아가지 않을 때, 주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열려져 있는 도피성을 보여 주십니다. 또한 주님께서는 사람의 자녀들보다 공평하시며, 무한히 사랑하시며 사랑할 만한 분이심을 보여 주시며, 그리스도의 영광과 탁월함을 보여 주십니다.

 

주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충분성을 보여 주셔서 겸손한 죄인을 기쁘게 하시며, 구원하기 위해서 다른 어떤 것이 요구되는 것이 없다는 것을 보여 주시고, 그 안에 구원이 있으며,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실 수 있는 분이심을 보여 주십니다(7:25 참고). 이렇게 주님께서는 그리스도의 필요성을 보여 주심으로써 다른 이름이 없음을 알게 하십니다(4:12 참고). 다른 지성소가 안전을 보장할 수 없으며, 다른 값으로는 자신을 해방시킬 수 없으며, 다른 안전한 보장이란 받아들여질 수 없음을 보이십니다.

 

또한 주님께서는 그에게 그리스도께서 죄인을 구원하고 용서하여 주실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 주시고, 그분께서 이런저런 엄청난 죄를 지은 사람을 용서하셨다는 것을 가르쳐 주시고, 잃어버린 것을 구원하기 위해서 오셨다는 것을 보여 주십니다.

 

또한 우리가 주님을 믿게 되면, 그리스도께로 나아오는 자는 아무도 내버리지 않으며, 주님께 자신을 던지는 사람은 그 누구도 잃어버리지 않으시고, 아무도 잘못 인도받는 고통을 겪게 하지 않으신다는 것이 얼마나 확실한지를 보여 주십니다.

 

죄인은 이런 말들을 이전에도 자주 들어왔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마치 이전에 듣지 못했던 것처럼 듣게 됩니다. 그 죄인은 전에는 얼굴에 베일이 덮힌 유대인과도 같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런 말을 자신이 마치 다른 사람이라도 된 것인 양 들을 것이며, 다른 영혼을 가진 사람인 양 듣게 됩니다.

 

7) 소망

죄인은 자신에 대하여 절망할지라도, 이제 주님께서는 그리스도께 대하여 절망하지 않도록 그를 지키십니다. 인간 자신에게는 어떤 소망도 가질 수 없지만, 복음과 복음에 관련된 것에서 소망을 가지도록 하십니다. 비록 죄와 진노의 무게 아래에서 가라앉을 수밖에 없지만, 복음의 발견으로 그를 물 위에 떠 있도록 합니다.

 

복음은 살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다가올 진노로부터 구원해 주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이 지각 있는 죄인에게는 얼마나 달콤하게 들리겠습니까! 정죄 받은 사람에게도 용서가 있다는 것, 바로 이것이 죄인에게 소망이 되는 것입니다. 비록 죽음의 판결이 자신에게 내려졌다 할지라도, 우리가 그분을 믿기만 하면 그 처형은 중단될 것입니다. 믿기만 하면 정죄 받은 사람도 생명을 가질 수 있습니다. 믿기만 하면 그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8) 자기 혐오

이것은 이전의 자신의 모습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비로 생긴 소망과 그리스도로 인하여 죄를 용서받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하면서 그에게 죄와 죄를 짓는 자신에 대하여는 분노로 채워집니다. “! 나는 죄인의 괴수와 같은 자입니다. , 나의 죄악은 극도로 악합니다.” 이렇게 죄인은 자신을 혐오하게 만듭니다. 죄에 대하여 진저리 치게 만듭니다. 이전에는 달콤하기만 하던 것이 이제는 메스껍게 느껴집니다.

 

9) 그리스도에 대한 가치 평가

죄인은 과거와는 다르게 그리스도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그가 자신이 죄악으로 가득하고 비참하며, 무능력하다는 것을 보고, 또한 그리스도의 모든 충분함과 탁월함을 복음 속에서 발견하게 될 때, 그리스도에 대한 자신의 생각은 더욱 커지게 됩니다. 그는 과거에는 그리스도의 피와 의로움, 그리고 대속과 중보,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를 예사로 들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에 대해서도 그냥 일반적인 말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죄인은 그것들의 필요성과 가치에 대한 생각에 강력하고도 신비한 변화를 가지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이제는 지겨운 것이 되지 않습니다. 이제는 말씀을 흘려듣지 않습니다. 그는 한 말씀 한 말씀 가운데서 그리스도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 점점 고양됨을 발견하게 됩니다.

 

10) 그리스도를 향한 강한 열망

그리스도를 향한 강한 열망은 우리가 가진 열망의 목적이 되도록 하는 진수입니다. 이 진수의 탁월함을 알면 알수록, 우리의 열망이 더욱 뜨거워질 것입니다. 또한 이것의 필요성을 더욱 깊이 알면 알수록, 우리의 열망은 더욱 쉬지 않고, 끈질기게 되며, 만족할 줄 모르며 목적을 달성하려고 더욱 몰두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열망은 라헬이 아이에 대해 가진 열망과 같습니다(30:1 참고). “제게 주님을 주십시오. 그렇지 않으신다면 저는 죽게 됩니다. 진노가 저를 덮칠 것이고, 지옥이 저를 삼켜 버릴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주십시오.” 그 마음은 마치 다윗이 사모하고 숨을 쉬고, 헐떡이며 율법과 말씀과 하나님의 증거를 구한 것처럼 그리스도를 향하여 움직입니다.

 

11) 효과적인 열망

어떤 수치와 조건을 무릅쓰고라도, 그 죄인은 그리스도를 소유하려 할 것입니다. 죄인은 그리스도를 소유하는 것을 자신의 모든 것으로 삼을 것입니다. 어떤 고통도 감내하며 어떤 역할이든지 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그는 그리스도를 얻고자 할 것입니다. 이것은 빌립보서 3장에 나오는 사도 바울의 태도와 같습니다. 그리스도를 얻기 위하여 이전에 영광스럽게 여기던 것을 배설물과 같이 여기는 것입니다.

 

또한 죄인은 세겜이 디나를 사모하듯이 그리스도를 사모합니다. 세겜은 자신이 바라는 것을 얻을 수만 있다면, 모든 것을 주려고 했습니다(34:8,11,12 참고). 그리스도에게 사로잡혀 있으며 그리스도를 간절히 사모한다면 그리스도께서 어떠한 조건을 내놓으시든지 간에 그분으로 인해 기뻐하며, 그리스도의 질책이나 그분을 위한 고통과 위험도 기꺼이 기쁘게 받을 것입니다. 그는 오로지 그리스도를 즐기는 것입니다.

 

12) 그리스도께 나오도록 하는 설득

주님께서는 기꺼이 그들을 구원할 것이라고 믿게 함으로써 용서와 생명을 위해 그리스도께로 나아가 안식하도록 설득하십니다. 주님께서는 그리스도께로 나아오는 사람을 받으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직접 나아오도록 하십니다. 또한 그리스도께 의지하는 자를 잃어버리지 않으시고 그들이 그리스도를 의지하도록 하십니다.

 

13) 주님의 초청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함

그 죄인은 주님의 초청에 응하고, 그분의 명령을 따름으로써 자신을 그리스도께 의탁하며, 그분께로 나아가 그분 안에서 쉬고, 그분을 껴안고 그분을 단단히 붙들기로 다짐합니다.

 

14) 믿음

주님께서는 자신에게 나아오는 죄인의 믿음을 발견하시고, 그를 진실로 믿는 자로 여기시며 그를 소유하십니다. 이전의 것이 믿음의 직접적인 행동이라면, 이것은 반사적인 행동입니다. 곧 죄인이 믿음을 행동으로 옮겼을 때, 그가 행하는 것을 주님께서 믿음이라고 여기시는 것입니다.

 

15) 확신

다음으로 확신으로 가는 길을 만듭니다. 그 확신을 우리는 추론적인 것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성령님께서 회심하는 자의 영과 함께 증거하신다는 점에서 볼 때, 그 죄인은 신자입니다. 그러고는 그 죄인은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자라는 증언으로써 그를 데리고 오십니다. 믿는 그는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자입니다.

 

16) 하나님 안에서의 영광

이런 확신은 때로는 평화로, 때로는 안식으로, 때로는 즐거움과 승리와 하나님 안에서의 영광으로 진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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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보좌로부터흐르는생명수
글쓴이 : 하늘샘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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