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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루머 스캔들 휘말렸을 때 어떻게 대처할까?

하나님아들 2017. 12. 16. 14:40
루머 스캔들 휘말렸을 때 어떻게 대처할까?
복음주의 변증가 재커라이어스 박사의 사례 주목거리
2017년 12월 15일 (금) 12:10:35김정언 기자 skm01_@daum.net

<교회와신앙> : 김정언 기자 】 유부녀의 누드 사진을 탐하는 저명한 복음주의 변증가 때문에 피해를 입었다는 유부녀 측 주장과 루머가 퍼지자 라비 재커라이어스 박사(71세)가 반박성명을 내놓았다. 그는 인도 태생의 캐나다-미국인으로 <하나님 없이 살 수 있나?> 등 베스트셀러 저술을 통해 '골드메달상(GMBA)'을 수상했고 다년간 교수 생활도 했다.

재커라이어스 박사는 자신의 단체인 라비재커라이어스국제사역회(RZIM) 사이트에 올린 성명서에서 문제의 유부녀가 뿌린 스캔들과 루머는 일방적인 상대측 억지 주장일 뿐 아무 실근거가 없다고 밝혔다.

그에 따르면, 2014년 10월 자신이 캐나다에서 한 강연 끝에 한 부부가 나타나 RZIM에 대한 관심을 표명했다. 그 부인은 "남편이 기독교 신앙에 대한 의문을 갖고 있으니 상담해 줄 수 없냐?"고 요청해왔고, 박사는 그에 응해 이메일과 도서를 그 남편에게 보내준 뒤 RZIM의 교육 프로그램에 초청했다.

몇 달 뒤 재커라이어스 박사 부부와 딸이 재차 캐나다를 방문했을 때, 또 다시 그 부부가 참석해 박사 부부를 인근 식당 디너로 초청했다. 박사는 그것이 '그 부부와의 마지막 만남'이라고 주장했다. 그후 문제의 ('피해자')부인은 애당초 그 남편에게 박사가 접속했던 해당 이메일 주소로 박사에게 접근해 왔고 박사는 "평소 간단한" 답변을 해 주곤 했다.

  
▲ 유부녀의 누드 사진을 탐했다는 루머는 사실 무근이라고 밝힌 변증가, 재커라이어스 박사. 괌 섬을 방문했다. ⓒRZ

그러던 2016년 어느 날 그 부인은 "극도로 부적절한 (그녀 자신의) 사진들을 일방적으로 보내와" 박사를 '충격'에 빠뜨렸다. 박사는 어떤 연락도 중단하라며 메시지를 끊어버리고 모든 접속 수단을 차단했단다. 그해 후반기, 그 여성은 자기 남편에게 이런 사실을 알릴 생각이라며 박사가 그 사진들을 "요청했다(solicited)"고 주장했다. 올해 4월이 되자, 그 부부가 함께 손해보상금을 요구하는 서신을 변호사를 통해 보내왔고, 재커라이어스는 즉시 RZIM 이사회에 이 사실을 알려서 그들의 자문을 통해 변호팀을 구성했다는 것.

박사의 변호사는 돈을 요구하는 상대방에게 갈취매수조직관련령(RICO)에 근거한 소송을 내자 상대측은 재판 대신 조정을 요청해왔다. 올해 11월 양측은 조정 합의안을 마련했고, 재커라이스 박사는 소를 취하했다. 양측은 각각 법률비를 지불했고, 사역체 기금은 전혀 사용되지 않았다고 박사는 밝혔다. 그러나 박사는 "현재 본인은 법적으로 그 어떤 질문이나 주장에 대해서도 아무 답변을 할 수 없게 돼 있다."고 덧붙였다.

재커라이어스 박사는 "이번 사태를 통해 어렵사리 뼈저린 공부를 했다."면서 남편과 아버지, 할아버지와 한 기독교 단체의 리더로서 아내 외에는 그 어떤 여성과 어떤 교류도 해서도 안 된다는 교훈을 얻었다."고 술회했다. 그는 "현명한 몸조심과 부적절한 모습을 삼가는 데 실패했다."며 "이 점에 심대한 유감을 느끼며 주님과 아내 및 자녀들, 사역회 이사회, 동료들에게 이를 시인한다."고 고백했다.

박사는 또 "단언컨대, 그 여성을 공석에서나 사석에서 일대일로 만난 적이 전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또 "문제는 내가 어떤 금단의 사진이나 메시지를 다른 여성에게 보내거나 요청 했나 않았나가 아니라, 아내 아닌 딴 여성과의 확대교류에 자발적으로 참여했나 안 했나."라고 자문, 답은 '절대 노'라며 "이 답에 대한 온전한 책임을 진다."고 밝혀 힘껏 신뢰도를 부추겼다. 그는 또 지난 45년간의 사역기간 중에 대했던 수만 명의 사람들과 이런 상황이었던 적은 한 번도 없다며 하나님과 내 가족, 친지들이 내가 얼마나 근심에 빠졌는지 다 안다고 말했다.

재커라이어스 박사는 또 아내 마지(마거릿) 여사와의 사이에 "단 한 번도 부적절한 행동으로 인한 사태에 휘말린 적이 없다."며 "온 맘으로 아내를 사랑하며 결혼 후 16,000여일동안 그녀에게 절대 충실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나를 아는 모든 이가 느끼는 대로 나는 매일의 삶과 여행 중에도 극도로 행동거지를 조심한다."며 "식당에서든 차 안에서든 아내나 딸 외에 딴 여성과 단둘이 있지 않는 건 오랜 습관이며 디지털 교신에서도 마찬가지."라고 확언했다.

박사는 또 남을 상담해주는 변증가로서 자신의 이런 표준이 남들보다 당연히 높아야 한다고 믿는다며 자신의 신앙여정과 소명관도 소개했다.

"주님께서는 내 나이 17세 때 나를 구원해 주신 뒤로, 진리를 추구하는 나의 족적에 거침이 없길 나는 다짐했습니다. 그분께서 이 소명을 맡겨주셨으니 그 분의 것이며, 내게 주어진 모든 기회도 그분이 주신 것입니다. 내 생명도 내 것이 아니며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생명과 호흡을 주신 이상 나는 그분이 주신 이 소명을 섬겨낼 것입니다. 또한 그분이 주신 삶의 햇수동안 그분이 베풀어주신 사랑과 용서, 진리와 은혜를 의미와 목적, 희망을 찾는 각처의 모든 사람들과 나눌 것입니다. 나는 그 누구에게도 악감정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치유의 하나님이셔서 누구에게나 새 날을 약속해 주십니다. 이 고백이 은혜로 말미암아 참되기를."

재커라이어스 박사는 1980년대에 얼라이언스 신대원 석좌교수를 역임했고, 자신이 과거 도덕주의 철학과 낭만주의 문학을 연구했던 리들리홀의 방문학자이기도 하다. 보수주의자였던 (고)척 콜슨은 그를 '우리 시대의 위대한 변증가'라고 찬하하기도. 그는 인도 마드라스(현 첸나이)의 상류계층 성공회인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17세까지 무신론자로, 독극물을 마시고 자살을 기도한 뒤 입원 도중 크리스천 근로자에게서 성경을 선물로 받아 어머니께 요한복음 14장을 읽어달라고 하여 듣던 중 14:19에서 유일한 희망인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했다.

재커라이어스는 1966년 온 가족과 함께 캐나다로 이민을 가, 온태리오성경대학(현 틴데일대학교 신대원)을 졸업한 뒤 트리니티국제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으며, 이후 여러 개의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베트남과 캄보디아 등에서 현장 선교를 한 뒤, 1983년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빌리그래엄전도협회 주최 연례 복음전도자 컨퍼런스에 강사로 참석했다가 기독교변증의 중요성을 깨닫고 이에 평생을 바치기로 결심한다. 1984년에는 이를 위한 RZIM을 창설했고 이후 미국과 캐나다, 인도, 싱가포르, 영국, 중동, 홍콩, 루마니아, 터키, 오스트리아, 남아프리카, 스페인 등에 지부를 두고 있다.

그는 C&MA(기독교복음선교회) 교단에서 안수와 함께 국제전도자 임명을 받았다. 베를린 장벽 붕괴 당시 모스크바에 초청 받아 레닌군사학교 학생들에게 연설하기도 했다. 아울러 미국내외의 다양한 명문대학교에 강연초청을 받아왔다. 2004년엔 유타주 몰몬교 본부의 초청으로 솔트레이크 태버너클 강단에서 시리즈 메시지를 전한 뒤 기독교와 몰몬교 양측간 토론을 이끌기도 했다.

그밖에도 수많은 기독교 변증 ․ 방어 이벤트에 참여해오면서 수많은 저서를 낸 재커라이어스의 핵심 변증 노선은 일관성 있는 세계관이라면, ①생명의 기원과 ②의미성, ③도덕과 ④운명이라는 네 가지 명제에 만족스러운 답변을 해야 옳다는 기독교 철학적 견해이다.


출처 : 은혜동산 JESUS - KOREA
글쓴이 : 임마,누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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