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지서 소선지서 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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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아들 2017. 12. 13. 13:47

 소선지서

 


 


대선지자들이 활동하기 전부터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지적하고 그들이 바벨론의 포로가 될 것을 예언한 선지자들이 있었다. 그리고 분열왕국 시대인 주전 433년경의 말라기까지 오랜 기간 동안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책망하여 그들의 포로됨과 회복을 예언하였다. 그들을 대선지자들과 구분하여 '소선지자'라고 하며, 그들의 에언 활동을 적은 기록을 '소선지서'라 한다.

 

1. 명칭

 

소예언서라 불리우는 소선지서는 히브리어 정경의 대선지서를 뒷받침해 주는 중요한 예언서이다. 처음 소선지서는 대선지서의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과 함께 12권이 한 권의 책으로 되어 있었다. 이는 시락의 아들이 주전 2세기 초에 한 묶음으로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요세푸스(Josephus)도 12권의 소선지서가 한 책이라고 말했다. 그 흐에 유대 및 기독교회의 전통에 의하면 그것들을 '그 열 둘'(The Twelve), 또는 '12예안자의 책'이라고 불렀으며, 12권의 책으로 나누었다. 이 12권을 초대교회 이후 어거스틴 때부터 라틴 교회는 대예언서에 비해 이것들이 짧은 것으로 보아서 '소예언서'(Minor Prophets)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2. 소선지서의 배열

 

처음 소선지서의 배열 순서에는 현재의 성경의 배열 순서와는 차이가 있었다. 칠십인역(LXX)사본에서는 그 순서가 호세아, 아모스, 미가, 요엘, 오바댜, 요나 등으로 되어 있었다. 호세아에서는 아마도 가장 긴 내용이기 때문에 맨 앞 부분에 둔 것으로 보이나 다른 책의 배열은 설명하기가 어렵다.

또한 어떤 사본에는 12소선지서가 대선지서 앞에 놓여 있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히브리 정경에서는 연대기적 배려가 12소선지서의 배열에 매우 큰 영향을 미쳤다. 호세아가 이사야, 아모스, 미가의 시대에 예언했던 세 선지자 중 첫째였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상황으로 미루어 보건대, 호세아가 12소선지서의 맨 앞 부분에 오는 것은 매우 타당해 보인다. 왜 이렇게 채택되었는지에 대해서는 확실한 근거가 없다.

 

3. 소선지서의 형성 배경

 

소선지서라고 한 것은 내용이 덜 중요하기 때문이 아니라 다만 내용이 짧기 때문이었다. 소선지서 전체를 다 합해도 이사야서보다 �음을 볼 수 있다. 이 예언서들을 단권 또는 모아서 한 책으로 만든 데 대해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작은 각 개의 두루마리들이 틀림없이 분실될 우려가 있기 때문에 그들을 모두 보존하고자 한 권의 책으로 만든 것이다. 그리고 12소선지서가 형성된 순서는 일반적으로 ① 초기 앗시리아 시대의 예언서들(호세아∼미가), ② 그 이후 앗시리아와 바빌로니아 시대의 예언서들(나훔, 하박국, 스가랴), ③ 페르시아 시대의 예언서들(학개, 스가랴, 말라기)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이 소선지서들은 집회서에 이들 소선지서에 대한 내용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주전 350-200년 사이에 집성한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4. 중심 사상

 

12소선지서는 대선지서들이 가지고 있는 사상과 비슷하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① 하나님께서 열국을 들어서 이스라엘을 징계하신다는 것이다. ② 이스라엘 민족이 각국에 분산되어 흩어지는 민족이 될 것이다. ③ 이방 모든 열국이 결국에는 그 죄악으로 망할 것이다. ④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을 위로하신다는 것이다. ⑤ 메시야께서 오심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의 남은 백성이 구원을 받을 것이다. ⑥ 세계 모든 민족들 가운데서 여호와께서 돌아오는 자들이 많을 것이다로 종합해 볼 수 있다. 즉 이들이 외친 중심 사상은 이스라엘 백성이 자신들의 죄악으로 인해 겨룩에는 망할것이나, 그들이 회개하고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면 하나님께서 그들의 뉘우침을 보고 메시야를 통해 남은 백성을 영원히 구원하신다는 것이다.

 

5. 기록 목적

① 호세아 : 북방 이스라엘의 임박한 패망의 예언 가운데서도 북방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정절을 지키지 못한 아내에 대한 남편의 사랑을 그리고 새벽빛, 늦은비 등의 표현으로 이스라엘에게 메시야적 구원이 있을 것을 알리고 있다.

② 요엘 : 겸손과 회개의 필요성을 알려 주며 다가오는 심판의 확실성을 경고하고 있다. 또한 본 서는 성령강림을 예언하고 있는 것이 특징적이다. 특히 다가올 구원을 확실케 하여 하나님의 원수들에 대한 멸망을 기억케 함으로써 하나님과의 약속에 신실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③ 아모스 : 기록 목적은 하나님의 법도를 떠나 패역한 북왕국 이스라엘이 패망을 알리며, 동시에 회개한 자에는 구원을 선포하여 희망을 주기 위한 것이었다.

④ 오바댜 : 본 서는 에돔의 죄를 문책하며, 조국에는 에돔이 멸망할 것을 선포하는 것과 반대로 택한 백성 이스라엘은 징계를 받으나 완전히 버림받지 않을 것임을 선포하고 있다.

⑤ 요나 : 니느웨 사람을 위해 애쓰는 하나님의 선교 활동을 보여 주며, 하나님의 우주적인 관심과 사랑이 무엇인지를 나타내고 있다.

⑥ 미가 : 두 왕국 백성이 범하는 사회적인 악과 우상 숭배를 책망하며, 그들이 섬기는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는가를 보여 주기 위해서이다.

⑦ 나훔 : 본 서는 요나서와 같이 니느웨 성에 대한 예언의 말씀이다. 요나서는 니느웨 성이 그들의 죄로 인해 멸망 받을 것임을 예언했다.

⑧ 하박국 : 본 서는 각 처에서 일어나고 있는 강포를 묵인하시고 악인이 의인을 핍박해도 믿음을 가지고 그 때를 기다리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그 악을 방관하지 않으시고 벌하신다는 것이다.

⑨ 스바냐 : 유다 뿐 아니라 전세계에 임할 '여호와의 날'을 엄중히 선포하고 심판 중에도 회개한 이방인과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에게 주어질 하나님의 구원을 알리는 데 그 목적이 있다.

⑩ 학개 : 본 서는 바벨론의 포로 생활에서 귀환한 백성들이 성전을 건축하다 중단하자 이를 책망하고 나태하고 무관심해진 백성들을 각성시켜 빨리 성전을 재건토록 하기 위해서 기록되었다.

⑪ 스가랴 : 성전 건축을 성공적으로 마쳐 백성들의 영적 부흥을 도모하도록 격려하기 위한 것이다.

⑫ 말리기 : 포로 생활에서 귀환한 백성들이 학개와 스가랴의 명령대로 성전을 건축했으나,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지 않고 고달픈 생활이 계속되자 백성들은 불평을 하였다. 하박국 선지자는 그 고난의 원인이 그들 스스로에게 있음을 알리며, 도덕적인 각성을 촉구하였다.

 

6. 중심 주제

 

① 호세아서는 배교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배역자를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의 방법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② 요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의 날을 기억하며, 회개의 가치와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③ 아모스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하나님 만날 준비를 하지 아니하면 국가(민족)를 향해 심판을 내리시겠다는 것이다. ④ 오바댜서는 파산하는 바위(에돔 민족)와 지속적인 왕국(이스라엘 나라)을 설명하면서 이스라엘을 대적하는 행위는 악한 행위임을 시사하고 있다. ⑤ 요나서의 중심 뜻은 '너는 온 세상을 가라'이며 이방인 가운데서도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증거하고 있다. ⑥ 미가서는 불의와 의식주에 대한 하나남의 진노를 말하면서 여호와 같으신 신이 없음을 나타내고 있다. ⑦ 나훔서는 여호와께서 '화 있을 진저니느웨여'(나1:3,7,8)라고 강하게 질책하시면서 믿음을 배반한 자에 대한 무서운 심판을 묘사하고 있다. ⑧ 하박국서는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 (합2:4,20; 합3:2)를 강조하면서 죄악 속에서도 역사하는 하나님을 증거하고 있다. ⑨ 스바냐서는 황폐와 구원의 날을 강조하면서 질투하시는 하나님을 나타나고 있다. ⑩ 학개서는 "성전을 건축하라 그리하면 내가 영광을 받으리라" (학1:8)가 중심 내용이다. 이는 생활과 봉사에 있어 하나님을 우선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⑪ 스가랴서는 온 땅 위에 군림한 만군의 여호와 되시는 하나님 그의 백성에 대한 철저한 인도와 보호하심을 나타내고 있다. ⑫ 말라기서는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어디 있느냐 여호와의 날을 기억하라'고 외침으로 하나님을 기억하고 회개하여 돌아오라는 것이다.

 

7. 12소선지서의 저작 시기

 

12소선지서의 예언 연대 혹은 그 저작 연대순은 대략 다음과 같다.

① 오바댜서(B.C.889-884)

② 요엘서(B.C.875-848)

③ 요나서(B.C.824-783)

④ 아모스서(B.C.810-783)

⑤ 호세아서(B.C.790-725)

⑥ 미가서(B.C.758-710)

⑦ 나훔서(B.C.710-699)

⑧ 하박국서(B.C.650-628)

⑨ 스바냐서(B.C.628-623)

⑩ 학개서(B.C.519년경)

⑪ 스가랴서(B.C.519년경)

⑫ 말라기서(B.C.433-424)

 

대선지서와 마찬가지로 소선지서도 죄의 책망과 심판의 선포 그리고 회개한 자에게 임할 회복을 예언하고 있다. 이들은 출신 배경의 다양함 속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영적 각성과 회복 그리고 메시야 왕국이 도래에 대해서 선포하고 있다.

제 1 강 호세아 개관

1. 저자

 

이 책의 저자는 브에리의 아들 호세아라고 호1:1에서 언급하고 있다. 이것에 대해 다소 문제를 제기한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영향력을 미치지는 못하였다. 호세아의 실제적 출생지가 직접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북왕국 이스라엘 출신임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호7:5에서 북왕국의 왕을 가리켜 '우리 왕'이라고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호1:1에 유다 왕들을 먼저 기록함은 호세아가 다윗 왕의 계통을 정통으로 여기는 사상적 입장을 가졌기 때문이다.

 

2. 시대적 배경

 

대체적으로 호세아의 사역 시기를 주전 764-742로 잡는다. 당시는 이스라엘이 부와 번영을 누리던 시대였다. 왕하14:25에 따르면, 여로보암 2세(Jeroboam Ⅱ B.C.793-753)가 솔로몬 시대를 견줄 만한 부와 번영을 누렸으며, 아람의 침략으로 잃었던 영토까지 되찾는 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그 아들 스가랴(Zechariah B.C.753) 이후 살룸(Shallum B.C.753)과 혁명을 일으킨 므나햄(Menahem B.C.752-742), 므나헴의 아들 브가히야(Pekahiah B.C.742-740), 다시 혁명을 일으킨 베가(Pekah B.C.740-732)와 이스라엘 최후의 왕 호세아(Hosea B.C.732-722)를 거쳐 패망의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당시 유다는 호1:1에 언급된 대로 애굽 변방까지 강성하여 암몬 사람에게 조공을 받았던(대하26:8) 웃시야(Uzziah B.C.767-739)와 여호와 앞에서 정도를 행하여 점점 강성하였던(대하27:6) 요담(Jotham B.C.739-731)과 다윗 왕과 비교해 볼때 정직히 행하지 아니하여 하나님께 징벌을 받은(대하28:1-7) 아하스(Ahaz B.C.731-715)와 성전 중건과 개혁을 일으킨 히스기야(Hezekiah B.C.715-686)가 나라를 다스린 시대였다. 대체로 이 시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정치적인 안정 속에서 경제적으로 윤택한 삶을 향유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후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의 살만에셀 5세의 공격을 받아 수도 사마리아가 함락됨으로써 주전 722년에 멸망하고 말았다.

 

3. 전체 내용 요약

 

먼저 1-3장을 첫 부분으로 볼 수 있는데, 호세아의 결혼 이야기로 꾸며져 있다. 하나님의 명을 받은 호세아가 성실치 못한 고멜을 아내로 취하게 되고 그녀에게서 두 아들(이스르엘,로암미)과 딸(로루하마)을 낳게 된다. 이들의 이름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이 이스라엘에게 증거되고 있다. 마지막까지 고멜을 버리지 아니하는 호세아를 통하여 징계와 회복을 약속하시는 하나님을 본다.

그리고 4-11장을 두번째 부분으로 볼 수 있다. 이 부분에서는 전체가 13단락으로 나누어진다. 이중에 7단락이 이스라엘의 범죄를 나열하고 있다. 대체로 이들을 요약하면, 제사장과 백성들의 죄, 우상 숭배, 잘못된 외교 정책, 회개를 거역하는 죄, 배교 등이다. 이에 대해 4단락에서 그들의 죄에 대한 징벌(심판)이 있을 것을 예언한다. 그러나 마지막 단락에서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기록되어 있다.

마지막 부분은 12-14장인데, 전체적으로 다음의 순서를 가진다. 이스라엘의 계속되는 범죄, 이를 심판하시는 하나님, 심판을 피하지 못하는 파멸, 회복에 대한 약속 등 분명히 이스라엘은 하나님 앞에서 범죄하였다. 범죄자는 결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 그러나 호세아서 전체를 볼때 범죄자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읽을 수 있다. 결국 마지막에 호세아가 고멜을 찾듯이 하나님께서도 이스라엘의 회복을 약속하셨다.

 

4. 구속사적 의미

 

호세아에서의 전체적인 맥락에서 본다면 먼저 이스라엘은 음녀이다. 선지자는 이스라엘이 국가적, 경제적, 사회적으로 자신들의 욕구를 만족하고자 음란한 열정을 쏟고 있다고 지적한다(호4:1-2; 호12:8; 호13:2). 결국 그들은 열방의 물질주의가 주는 함정에 빠졌다. 이에 대해 하나님의 심판은 꼭 필요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의 죄악의 병은 스스로는 회복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심판을 통하여 그들을 깨우쳐야만 했으며, 그 병을 치료해야 했다. 그리고 그들은 회개하여 여호와께로 돌아와야 했다. 돌아옴에 대하여 호12:6은 하나님만 바라볼 것을 원하고 있으며, 그리하면 의를 비같이 내린다고 기록하고 있다. (호10:12)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을 출애굽시켜 광야에서 그들을 돌보시고 계시를 주시며 가나안을 정복케 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보다 가나안의 문화를 더욱 사랑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여호와는 이스라엘을 사랑하시고 계신다고 호세아서는 기록한다. 이제 그 사랑을 받은 이스라엘은 회복의 소망을 가지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약속이다. 호세아서는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세 가지의 구속사적 의미를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1) 언약갱신

이 언약 갱신은 호세아의 자녀들의 이름을 변경하는 데서 나타난다. ym[al (로암미; 내 백성이 아니다)가 ym[ (암미; 너는 내 백성이다,호1:10; 2:1)가 되고, la[rzy(이스르엘; 피흘림)이 하나님께서 풍요를 주신다는 뜻(호2:22, 23)으로 되며, hmjral (로루하마;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는 자)가 hmjr (루하마;긍휼히 여김을 받는 자)로 되어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하여 그들의 저주가 축복으로 변했다. 이들의 새로운 이름을 정리하면 내 백성, 소망, 긍휼 등이며, 이들은 하나님의 새 백성의 이름이다.

 

2) 하나님의 새 백성

이 새 백성은 신랑과 신부의 개념에서 나타난 것이다. 하나님은 신랑이고 언약 백성은 신부이다. 하나님은 그들을 신부, 즉 새 백성으로 맞이한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창조 언약과 아브라함, 모세, 다윗 언약의 혜택을 모두 베푸신다. 이는 신약에서 교회를 그리스도의 신부에 비유한 상징들을 이해하게 한다(엡5:26,27; 계21:2,9; 계22:17).

 

3) 새 지도권

호세아 첫 부분에 유다 왕을 나열함(호1:1)과 남북이 통일됨으로써 북이스라엘도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된다는 것(호1:1)그리고 이스라엘이 돌아와서 다윗 왕을 구한다는 것(호3:5) 등은 호세아의 사상이 다윗 계통임을 가리킨다. 즉 다윗의 혈통에서만 예수그리스도(메시야)가 올 수 있음을 알았다. 그러므로 호세아는 언약의 새 백성에 대한 지도권은 이스라엘의 왕들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에게 있음을 지시한 것이다. 그리고 그에게 복종하는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언약주가 될 것이다(호6:6). 이는 이방이나 유대 모두에게 속한 것이다(롬10:1).

제 2 강 요엘 개관

1. 저자와 기록 연대

 

1) 저자

본 서에는 '브두엘의 아들'이라는 언급(욜1:1) 외에는 선지가 요엘에 관한 직접적인 자료가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성전과 제사에 관한 그의 지식이나(욜1:13,14) 예루살렘에 대한 잦은 인용으로 미루어 보아, 요엘이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 근처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또한 제사장들에 대해서 신랄한 비난을 서슴지 않았던 것을 보면, 요엘 자신이 제사장은 아니었던 것 같다(욜1:13). 요엘은 예루살렘 성전에 관한 메시지를 전했던 선지자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분류된다.

 

2) 기록 연대

본 서의 기록 연대에 대해서는 본 서의 표제 속에도, 본문 속에도 연대에 대한 정확한 언급이 없기 때문에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그래서 본 서의 기록 연대에 대한 추측은 주전 9세기부터 마카비시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그런 견해는 크게 바벨론 포로 이전설과 바벨론 포로 이후설로 나누어진다.

  ① 바벨론 포로 이전설: 바벨론 포로 이전설은 다시 초기 바벨론 포로 이전설과 중기 바벨론 포로 이전설로 나누어진다. 초기 바벨론 포로 이전설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요엘이 제사장과 장로들에 대해서는 언급한 반면 왕과 방백들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학자들은 그 사실이 대제사장 여호야다의 섭정을 통해 통치를 시작했던 소년 왕 요아스(B.C.835-796)의 시대를 가리킨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중기 바벨론 포로 이전설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요엘의 사역 시기를 주전 8세기 초엽으로 보고 있다. 그들은 본 서가 앗시리아, 바벨론, 페르시아를 유다의 대적으로 언급하고 있지 않다는 점과 3장 가운데 등장하는 여섯 이방 국가들이 초기 8세기 연대설을 뒷받침한다는 점 그리고 본 서의 메뚜기 침입 사건 등과 같은 내적인 강조점들이 웃시야 시대를 반영해 준다고 보기 때문이다.

  ② 바벨론 포로 이후설: 바벨론 포로 이후설을 지지하는 학자들은 본서에서 북왕국에 대한 언급이 없고, 제사장들이 백성들의 지도자로 언급 되어 있는 것들을 통해 본 서가 주전 4세기 중엽에 기록되었음을 암시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본 서의 문학 형태, 본 서의 뭄시적 성격들이 바벨론 포로 이후설을 지지해 주는 증거라고 주장한다.

본 서에서 제사장에 대한 언급이 많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요아스 왕 초기인 주전 830년경으로 기록 연대를 잡고 있다.

 

2. 주제와 기록 목적

 

1) 주제

본 서의 주제는 여호와의 날이다. 여호와의 날은 하나님의 섭리로 열국을 심판하시고 이스라엘만이 구원받는 국가적 선민의식이 반영된 날이었다. 그러나 본 서에서는 그 소망의 날이 죄로 인해 심판과 애통의 날이 될 것임을 선포한다. 죄가 있는 한 이스라엘의 선민의식은 근거 없는 교만으로, 두려운 심판만이 그들의 목전에 있다. 그러나 죄악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자들은 여호와의 날을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날에는 이처럼 은혜와 심판이라는 양면성이 있다.

 

2) 기록 목적

본 서의 기록 목적은 첫째, 유다의 죄로 인해 여호와의 날이 무서운 심판의 날임을 경고하기 위해서이다. 당시 백성들은 여호와의 날이라고 하면 구원의 즐거운 날로 알았기 때문에 그 날을 사모하였으나 요엘 선지자는 그 날을 '멸망의 날'(욜1:15), '캄캄한 날'(욜2:2), '심히 두려운 날'(욜2:11)임을 알리려고 하였다. 둘째, 임박한 여호와의 날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를 알리기 위해서였다. 요엘은 겸손히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권면하였다. 셋째, 하나님이 주실 영적 축복을 체험하도록 준비하게 하면, 또한 여호와의 날이 온 세상을 최종적으로 심판하시는 때임과 동시에 하나님 나라가 완성되는 날임을 만인에게 가르치는 데 목적이 있다.

 

3. 특징과 내용 구성

 

1) 특징

요엘서의 특징은 첫째, 메시야 예언의 책이라는 점이다. 욜2:23의 '이른 비와 늦은 비'는 성격상 '의의 교사' 즉 메시야를 가리킨다. 둘째, 성령 강림의 약속이다. 욜2:28의 '내 신'은 성령에 대한 일반적인 표현으로, 성령은 언약을 통하여 새롭게 된 사람들 모두에게 임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성령받은 사람은 다가올 심판을 견딜 만큼 강건해지며, 하나님과 직접적인 관계가 열려질 것이다(욜2:28,29). 셋째, 묵시적 종말론의 책이다. 요엘 선지자는 여호와의 날을 언급하면서 이 여호와의 날이 종말론적인 구원의 날이 될 것이라고 선포하였다. 그래서 많은 학자들은 요엘서가 묵시적인 종말론, 곧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이방 나라들을 포함한 우주적인 종말론을 맨 처음 선포한 책이라고 본다.

 

2) 내용 구성

요엘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곧 히브리 성경의 1, 2 장(한글개역성경은 욜1:1-2:17)과 3,4장(한글개역성경 욜2:18-3:21)으로 나눌 수 있다. 첫번째 부분은 메뚜기 재앙에 관한 내용으로, 여기에서 언급된 메뚜기는 여러 가지로 해석된다. 곧 실제 메뚜기 떼의 출현, 이방인들의 침략 물결에 대한 풍유적 표현, 유대인들이 가장 최근에 겪었던 하나님의 징계에 대한 묵시적인 설명 등 다양한 의미로 해석된다. 두번째 부분은 '여호와의 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 날에는 이방 나라들 위에 징계가 내릴 것이나 유다와 예루살렘 위에는 축복이 임할 것이다. 그리고 성령을 부어 주시고 여러 가지 이적과 기사에 관한 소식이 마지막 그 날에 들려올 것이다.

 

4. 요엘서가 주는 의미

 

여호와의 날은 준비된 자에게는 축복과 구원의 날이지만 준비되지 않거나 하나님 앞에 돌아오지 않은 자들에게는 심판과 무서운 멸망의 날이 될 것이라고 본 서는 가르쳐 주고 있다. 이처럼 여호와의 날은 심판과 구원이라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본 서는 지금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구원의 큰 기쁨의 날로만 알려져 왔던 여호와의 날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개하지 않고 죄에서 돌이키지 않는다면 무서운 심판의 날이 될 수 밖에 없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종말론적인 상황과 메시야와 성령의 약속을 대비시킴으로써 여호와의 날을 위해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한다. 회개하지 않고 악한 길에서 돌아오지 않는 자에게는 오늘날도 마찬가지로 여호와의 날은 구원과 은혜의 날이 아닌 무서운 심판과 멸망의 날이 될 수밖에 없다.

제3강 아모스 개관

1. 저자

 

이 책의 저자 아모스는 드고아 출신이라고 기록했다. 드고아는 예루살렘에서 약 20km 베들레헴에서 남쪽으로 약 9.7km 가량 떨어진 곳이다(대하11:6). 지중해를 기준할 때는 해발 780m요, 사해를 기준할 때는 1,140m의 고지대이다.

그는 평민 출신의 선지자였는데, 그가 부유한 자였는지 가난한 자였는지 확답하기 어렵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암7:14에 본래 "선지자가 아니며 선지자의 아들도 아니요 나는 목자요 뽕나무를 배양하는 자"였다고 한다. 자신이 목자였다고 했기에 거처하는 곳이 약간의 고지대임을 알 수 있다. 반면에 뽕나무를 재배하는 자이므로 저지대에 거주했을 가능성도 있다. 왜냐하면 한국역의 뽕나무는 누에를 위한 뽕나무가 아니고 열매를 얻고자 심는 무화과나무의 일종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저지대와 고지대를 왕래해야 하는 직업으로 봐서 상당히 일거리가 많았을 것이다. 이 추측이 옳다면 일을 열심히 하는 부유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추측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그의 직업만으로 그의 부유함을 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지식을 효과적으로 사용하여 하나님 말씀을 전한 자로도 평가되고 있다.

 

2. 역사·지리·시대적 배경

 

암1:1의 "유다 왕 웃시야의 시대 곧 이스라엘 왕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의 시대의 지진 전 2년"은 아모서의 기록 연대를 가늠케 한다. 그는 남방의 이사야와 미가보다는 훨씬 빠른 시대의 인물이며, 호세아와는 동시대 인물이다. 여기 여로보암(Jeroboam)은 여로보암 2세를 말한다. 그리고 천문학자들에 의하면 이때의 지진이 주전 763년 6월 15일에 일어났다고 계산한다. 이렇게 보면 아모스의 활동 시기는 대략 주전 760년경으로 확정된다.

왕하14:25에 의하면, "하맛 어귀에서부터 아라바 바다까지" 여로보암2세가 통치했다고 한다. 이는 통일 왕국의 전성 시대인 솔로몬 왕 당시와 같은 것이다(왕상8:65). 또한 이것은 일찍이 모세를 통하여 약속했던 이스라엘의 전영역이었다(신32:36).

그러나 나라의 부강과 더불어 국민의 사치와 죄악은 더욱 심각했던 것이다. 암6:4은 그들의 사치를 비판하고 있으며, 이에 반하여 암2:6,7은 빈부의 격차와 가난한 자에 대한 착취를 고발하고 있다. 또한 암4:1은 여성의 타락을 말하고 있다. 이렇듯 이 시대는 부요함과 더불어 죄악이 관영한 시대임을 알 수 있다.

 

3. 전체 내용 요약

 

본 서는 전체적으로 서론, 본론, 결론으로 구분을 지을 수 있을 정도로 내용의 구분이 확실하다.

서론 부분(암1,2장)에서 저자는 주변 강국들의 죄악과 심판을 선포한 후에 남방 유다의 죄를 지적하며 심판할 것을 말한다. 이는 이스라엘이 주변 강국들의 죄악보다 더 심하게 타락하였기에 이스라엘의 심판은 피할 길이 없음을 선포한다(암2:6-16).

본론(암3:1-9:6)에 들어가면, 먼저 3개의 설교(암3:1-15; 암4:1-13; 암5:1-6:14)와 4개의 환상(암7:1-3; 암4-6; 암7-14; 암8:1-3)을 보게 되며, 최후의 설교(암8:4-14)와 최후의 환상(암9:1-4)을 보게 된다. 이 마지막 설교와 환상은 이스라엘의 멸망이 확정적임을 알린다. 저자의 설교와 환상은 이스라엘의 죄악으로 인한 하나님의 심판이 확정적임을 선포하지만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암5:4,6,8)는 말씀으로 심판을 면할 수 있는 길을 간곡히 권면하고 있다. 그리고 이 심판을 면하는 구체적인 행동은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며 성문에서 공의를 세우며"(암5:15), "오직 공법을 물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흘릴 것"(암5:24)임을 가르치고 있다. 아모스가 지적한 이스라엘의 죄악들은 다음과 같다. 안일함, 사치, 빈부의 격차로 인한 가난한 자의 학대와 착취, 도덕적인 부패(암2:6-8; 암4:1; 암6:1,4-6; 암8:5,6)등이다. 그리고 이러한 타락의 근원이 되는 것은 신앙적 부패에 있음을 탄식했다(암2:1; 암5:21-23; 암8:5,14).

결론 부분(암9:11-15)에서는 이스라엘의 소망을 기록하고 있다. 이는 호세아의 메시지와 같은 맥을 이루는 것으로 남은 자들이 돌아오며 황무해진 성읍이 재건될 것을 약속하고 있다. 이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진 것이며, 우리에게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4. 구속사적 의미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서 우리의 친구요, 우리의 아버지요, 우리의 창조자요, 우리의 구주 되심만응 강조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러나 아모스서는 하나님의 포효하는 사자와 같은 이미지를 남게 해준다. 이는 죄를 미워하시는 하나님의 속성에서 나온 것이다. 인간을 심판하시게 된 것이다. 이 심판의 정당성을 살려 주고 있는 책이 아모스서이다.

물론 모든 인간이 심판을 받게 되어 있다. 그러나 그 심판의 이유를 모른다면 심판의 의미를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모스서는 심판의 이유를 잘 설명해 주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이 심판은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것으로서 아무도 피할 수 없다. 이는 예수그리스도의 구속하심을 더욱 빛내고 있는 것이다. 어두우면 어두울수록 작던 빛도 그 광채가 드러나듯이 심판이 강하면 강할수록 구속함의 의미가 살아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예수그리스도의 구속사의 절실한 필요성을 강조함으로써 복음의 은혜만이 모든 것을 올바로 고칠 수 있음을 뒷받침 해 주고 있다.

 

5. 타성경과의 연관성

 

아모스에서는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라는 말이 여러 번 언급되고 있다(암1:3,6,9,11,13). 이는 아모스서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고 있음을 가리키는 좋은 단서가 되며, 모든 예언서가 이러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욜1:1; 호1:2).

그리고 이 예언서의 내용은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 즉"(신30:19)에서와 같이 자신의 행할 일에 대해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에 근거하여 이 책을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설교와 환상의 형식이 다른 예언서와 같고(렘24:1-3; 겔20:3; 암8:1,11,12), 마지막 결론의 회복에 대한 약속은 메시야의 왕국을 지향하고 있다. 이는 신약의 예수그리스도가 오셔서 이 땅의 진정한 평화의 의미가 살아남을 가리킨다. 이것은 모든 신약서들을 겨냥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제 4 강 오바댜

1. 서론

 

오바댜서는 구약성경 중 가장 짧은 내용을 담고 있다. 이같은 본 서는 에돔 족속을 향한 심판의 예언이 강력하게 기록되어 있다. 에돔 족속은 에서의 후손으로, 야곱의 후손인 이스라엘과는 가까운 형제지간이다. 하지만 이들은 끊임없는 하나님의 선민인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불의를 행하였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에돔 족속을 비롯한 그 밖의 이방의 모든 원수들을 마지막 '여호와의 날'에 엄중히 심판하실 것을 경고하고 있다. 아울러 선민 이스라엘이 이날 어떻게 구원을 얻으며, 메시야 왕국이 어떻게 건설될지에 대한 소망의 메시지를 선포해 주고 있다.

 

2. 저자와 기록 연대

 

1) 저자

본 서의 오바댜서에 대해 알려져 있는 것은 거의 없다. 다만 그의 이름이 헬라어로 '여호와이 종' 또는 '여호와를 예배하는 자'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것과 그가 남유다에서 활동했을 것이라는 사실만 알려져 있을 뿐이다. 구약성경에는 13명의 '오바댜'라는 이름이 등장하는데, 대부분의 학자들은 다음에서 언급하는 네 명 중 한 사람일 것으로 추정한다.   아합의 궁내 대신 오바댜로서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굴 속에 숨겨주었던 자(왕상18:3-16).   유다 왕 요시야 때에 성전 수리를 위해 감독으로 임명받은 외국인(대하34:12).   유다 왕 여호사밧에 의해 각 도시를 두루 다니며 여호와의 말씀을 가르쳤던 방백(대하17:7).   느헤미야 당시의 제사장(느10:5).

이 모든 견해들 중 누가 과연 본 서의 저자인 오바댜인지는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고 있다.

2) 기록 연대

본 서의 기록 연대에 대해서는 저자인 오바댜가 어느 시대에 살았던 인물인가가 아직 규명되지 않았고, 또한 본문 속에는 연대에 대한 어떠한 언급도 하고 있지 않기에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다만 옵1:11 말씀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기록 연대에 대한 견해가 다양하게 표출되어질 수 있다. 이러한 견해들 중 대표적인 두 가지 경우를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유다 왕 여호람(B.C. 848-841)이 통치하던 시기를 기록 연대로 본다. 이때에 블레셋과 구스 그리고 아라비아가 연합하여 예루살렘을 침공하였다. 이들은 유다의 왕족을 멸절 시키고 많은 보물들을 전리품으로 약탈해 갔다. 이때 에돔은 유다의 패배를 즐거워하였다. 따라서 에돔은 유다의 원수가 되었던 것이다.

둘째,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이 유다를 침략하여 예루살렘을 함락시켰던 당시(B.C. 586년)를 기록 연대로 보고 있다. 이때에도 에돔은 유다의 몰락을 보면서 의기 양양해 하며 조롱을 퍼부었던 것이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이같은 에돔의 행위에 대해 예레미야애가에서 비난하기도 하였다(애4:21,22). 본 서는 일종의 예언서이기에 저자의 역사적 사건의 체험뿐만 아니라 자신이 경험치 못한 과거나 미래의 일을 예언할 수도 있다. 따라서 기록 연대를 단정하기란 매우 어렵다.

 

3. 주제와 기록 목적

 

1) 주제

본 서의 주제는 에돔에 대한 심판과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예언이라 할 수 있다. 에돔은 선민 이스라엘의 고통을 즐거워하였고 원수들의 침략에 동참하였다. 결국 에돔은 선민 이스라엘을 적대시하는 모든 원수들의 모형이 된 것이다. 에돔에게 임할 심판은 마지막 날에 하나님을 반역한 죄인들에게 임할 무서운 심판을 예표하는 것인 반면 죄인들에 대한 심판의 결과로 이루어질 이스라엘의 회복은 앞으로 다가올 하나님의 나라를 예표하는 것이다.

 

2) 기록 목적

본 서의 기록 목적은 첫째, 하나님의 공의를 보여 주고 있다. 하나님의 택함받은 백성들을 괴롭힌 에돔에 대해 하나님은 반드시 심판하신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반면 하나님의 백성은 어떠한 상황속에서라도 이들을 구원으로 인도하신다. 결국 하나님의 공의는 악인에게는 영벌의 저주로, 의인에게는 영생의 축복으로 임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둘째, 여호와의 날에 임할 심판을 대비하는 성도들에게 마귀에 대한 궁극적 승리를 통한 영원한 구원 소식을 전하기 위함이다. 난공 불락의 요새로 알려진 에돔도 결국은 망하고 만 것이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영원한 승리 속에서 회복하게 된다는 본 서의 내용은 마지막 날에 멸망당할 사단의 나라를 암시하면서, 이같은 날에 완성될 메시야 왕국을 소망하며 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4. 교훈과 내용 구성

 

1) 교훈

첫째는, 하나님의 심판 속에 담겨 있는 양면성을 보여 주고 있다. 사실 에돔이나 이스라엘 모두는 각각의 지은 죄로 심판을 받았다. 하나님은 죄악된 이스라엘을 징계하시기 위해서 에돔을 비롯한 주변 국가들을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셨던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이 행하신 심판에는 소망과 저주라는 이중성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 즉 이스라엘을 심판하신 목적은 그들이 하나님께서 택하신 선민답게 회개하여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삼고자 하는 하나님의 사랑이 담겨져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방 원수 국가에 대한 심판의 목적은 그들이 지은 죄에 대한 보응으로 멸망시키고자 하는 저주가 담겨져 있다.

둘째는, 하나님의 심판의 궁극적 목표가 메시야 왕국의 건설에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 세상의 모든 악과 불의는 심판하시면서 신실한 '남은 자'들을 보호하시고 인도하셨다. 이는 그들을 통해 하나님은 '메시야 왕국'을 건설하시기 위함이었다. 따라서 이같은 하나님의 구속사적 섭리를 깨달은 성도들은 이 세상의 어떠한 환난과 역경 앞에서도 흔들림 없이 궁극적인 승리를 향해 전진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2) 내용 구성

본 서의 내용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번째 부분(옵1:1-14)은 에돔의 완전한 멸망이라는 심판이 선포되었다. 절대적인 안전 지대라 자처하던 에돔에 어떻게 멸망이 이루어졌으며, 이들이 왜 멸망받을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두번째 부분(옵1:15-21)은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에돔에 대한 심판은 하나님을 적대시한 열방의 심판을 예고해 준다. 이는 곧바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떻게 궁극적인 승리와 구원을 얻게 되는지에 대한 그 해답을 제시해 준다. 선민 이스라엘은 온전히 회복되어 메시야 왕국을 이루게 될 것을 예언하고 있는 것이다.

제 5 강 요나

1. 저자와 저작 연대

 

본 서의 저자는 선지자 요나이다. 요나는 아밋대의 아들로 왕하13:25에 잠깐 나타나는 요나라는 인물과 동일인으로 생각된다. 요나는 갈릴리의 스불론 지역에 위치한 가드헤벨에서 태어났다. 열왕기하의 기록에 의하면 요나는 여로보암 2세의 성공적인 정복 사업에 관해 예언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비평가들은 이 책이 에스라, 느헤미야의 베타주의를 반대하기 위해서 주전 430년에 하나의 비유로 쓰여진 책이라고 한다. 즉 편협한 민족주의를 반대하고 보편주의를 도입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하나님께 예배하지 못하도록 몰아내고 아내로 맞아들였던 이방 여인과 이혼하려는 유대인들의 그릇된 행위에 대항하기 위해 무명의 한 저자가 요나서를 기록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견해를 뒷받침하기 위해 그들은 이 책이 3인칭으로 씌었으며 또한 실제로 요나가 썼다는 기록도 없다고 밝힌다. 그러나 이러한 배타주의는 요나가 활동하던 시기에도 이스라엘에 만연되어 있었다. 그리고 2장의 기도가 1인칭 단수로 서술되어 있는 것을 보아 요나 자신이 이 책을 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본 서의 저작 연대는 본문 자체에서 측정할 수 없으나 요나가 느니웨에서 돌아온 즉시 기록했을 것이므로 주전 760년경으로 추정된다.

 

2. 시대적 배경

 

아밋대의 아들 요나는 기원전 8세기 살았다. 그는 나사렛에서 북쪽으로 약 5마일 떨어진 스불론 지역 갓-헤펠(Gath-Hepher)에서 태어났다. 왕하14:25에 따르면 그는 여로보암 2세(B.C. 793-753)가 재위한 때에 예언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사역 초기에 이스라엘의 승리와 원래 국경까지의 회복을 예언하였다. 따라서 그의 인기가 매우 높았을 것이다. 하나님의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을 일시적으로 중단하고 백성들에게 여로보암 2세 치하에서 유례 없는 번영의 시기를 누리게 하였다(왕하14:24). 당시 백성들은 여러 해 동안 침체된 분위기가 걷히고 민족적 사기가 고조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번영은 이스라엘이 회개하여 완전한 위치에 섰기 때문이 아니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뜻을 바로 깨닫지 못했고 오히려 이방인들을 무시하고 멸시했다.

한편 호세아, 아모스 등은 이방이 이스라엘을 멸망시킬 것을 예언하였다(호9:3 ; 암6:14). 이러한 때에 하나님께서는 임박한 심판을 경고하기 위해 요나를 니느웨로 보내셨다. 이 시기에 앗수르는 그 세력이 약화되었고 나약한 왕들이 다스리고 있었기 때문에 다시 쇠퇴한 듯하였으나 그래도 이스라엘에게는 위협적 존재였다. 니느웨의 회개는 아마도 아슈르단 3세(B.C. 773-755)의 통치 기간에 있었던 것 같다. 두 번에 걸친 온역과 일식은 니느웨 사람들이 요나의 심판에 대한 예언을 받아들이는데 큰 작용을 했을 것이다.

 

3. 문화 형식

 

요나의 예언은 다른 선지서와 다르다. 그것은 예언적 신탁을 전혀 포함하지 않고 저자에 대해서도 전혀 암시하는 바가 없다. 이 책의 목적을 이해하기 위해 문학적 장르를 규정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문학적 장르에 대한 많은 의견들이 제시되고 있으나 비유 효과를 지닌 역사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비유의 목적은 현명한 삶을 위해 그것이 제시하는 시각에 있기 때문에 비유가 반드시 비역사적일 필요는 없다.

본문의 비유를 살펴보면 첫째, 그 선지자는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그의 축복을 받지 못하게 된 하나님의 백성을 대표한다. 둘째, 하나님은 자유롭게 피조물을 통치하며 이방인들을 그들의 환난에서 구출하는 분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은 그의 위대함과 자유를 보지 못할 수 있다. 위대한 왕 여호와는 열방을 축복하고 그들에게 은혜를 베풀며 그들에 대해 참으시는 것에 자유한다. 그는 심지어 동물들에게도 관심을 가지시는 분이다. 셋째, 요나는 엘리야를 부정적으로 모방했다. 엘리야처럼 그도 사명을 띠고 파송되었고 그의 사명이 실패한 것으로 보이자 그도 역시 스스로 죽기를 구한다. 그러나 엘리야와 달리 요나는 낙담할 이유가 없었다. 여기서 요나는 아무도 그 역할을 변호하고자 하지 않는 우스꽝스러운 인물로 등장한다.

  본 서는 요나의 어리석음에 주의를 돌리게 하고 스스로 의롭다 하는 자들에게 현명한 반응을 촉구하는 예언적 잠언이다.

 

4. 해석의 방법들

 

1) 전설적 해석 방법

실제 이름이 전해지지 않은 전설적인 인물에 근거해서 지어낸 이야기라는 주장이다.

 

2) 비유적 해석 방법

요나서의 특징은 포로기 이후 에스라, 느헤미야의 배타적인 유대적의에 대한 분석과 비판에서 비롯된 것이다 여기서 니느웨 성은 하나님의 복음에 의한 각성을 기다리는 비유대적 세계를 나타낸다. 이 비유는 죄를 회개할 사람에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를 묘사하고 있다.

 

3) 풍유적 해석 방법

요나는 하나님의 진리를 이방에 선포하는 이스라엘의 선교적 사명과 동일시된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그 사명을 감당하지 않았다. 그래서 하나님은 바벨론을 일으켜서 이스라엘을 포로로 끌어갔다. 이것이 요나를 삼켰던 큰 물고기가 상징하는 것이다. 또한 물고기가 요나를 육지에 토해낸 것이 바벨론 포로로부터 이스라엘이 귀환할 것을 상징한다. 이방인들의 회개에 대한 요나의 불만은 귀환 후의 배타적 유대주의 정신의 발로가 된다.

 

4) 역사적 해석 방법

실제 인물인 요나가 이 책에 기록되어 있는 일들을 직접 체험했으며, 아브라함의 자손인 이스라엘을 통하여 열방이 복을 받고 하나님의 구원을 이방에 전달하려는 이스라엘의 선교적 임무를 부분적으로 달성했다는 것이다.

 

5. 내용

 

본 서의 주제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자비와 인자로써 다루신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이스라엘의 열방에 대한 사명이 강조되었고 이스라엘의 완고한 편협성이 배격되어 있다. 하나님은 히브리 민족을 통하여 온 세계에 축복을 주시려는 계획을 갖고 계셨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하셨다(창12:3). 출애굽기의 말씀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제사장의 나라로서 다른 나라 백성들을 섬겨야 할 사명을 부여받았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편협한 민족주의적 사상은 요나의 특별한  하나님의 마지막 말씀으로 교정된다. 따라서 본 서의 주제는 하나님의 통치와 구원의 계획은 범우주적이며 그의 사랑은 보편성을 띠고 있다는 것이다.

제 7 강 나훔

1. 저자와 기록 연대

 

1)저자

나훔서는 선지자 나훔의 이름을 따서 붙여졌다. 히브리어 성경에서는 '나훔'으로, 칠십인역(LXX)에서는 '나움'으로, 벌게이트(Vulgate)역에서는 '나훔'으로 명명되고 있다. 그 뜻은 '위인자'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뜻을 지닌 '나훔'이 본 서의 저자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학자들간에는 이견이 없다. 왜냐하면 나1:1에 기록되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사람에 대해서는 그의 출생지가 엘고스라는 것밖에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그러나 이 엘고스라는 마을은 그 위치가 있어서 학자들간에 이견이 분분하다. 어떤 학자들은 신약에 나오는 가버나움의 뜻이 '나움의 마을'임을 들어서 가버나움과 동일시하기도 한다. 그리고 오늘날 모술로부터 북쪽으로 약 80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알쿠시라고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저자 나훔이 남유다 출신인 것을 볼 때 부적절한 것이 된다. 한편 이 도시가 예루살렘과 가사 지방의 중간 지점에 위치해 있는 엘케세이라고 하는 학설도 있는데, 많은 학자들이 이 주장에 동의하고 잇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그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

 

  2) 기록 연대

본 서의 저작 시기는 대략 주전 663-612년으로 보고 있다. 왜냐하면 본 서의 기록(나3:8)에 나타나 있는 것처럼 현재의 '티벳'인 노사몬의 멸망을 주전 661년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니느웨의 멸망(나1:12)을 미래적인 사건으로 보고 있는데, 이 예언은 니느웨가 멸망당하기 이미 4년 전에 되어진 것이라고 한다. 이것은 니느웨가 멸망하기 이전에 항상 번영을 누리며 살고 있었던 도시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즉  그 시기가 멸망당하기 전인 주전 654년경이었다고 증거한다. 그러나 본 서에 기록된 예언은 사건 후의 예언이라고 하면서 주전 612년 후에 기록되어진 것이라고 하는 기자도 있다.

 

2. 특징과 목적

 

  1) 특징

본 서는 요나서와 함께 동일한 대상에게 내려지는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이지만 그 내용상 정반대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즉 요나의 예언으로 인해 니느웨에게 내려질 심판이 유보되었지만, 나훔의 예언으로 인해 니느웨는 멸망당하게 된다는 것이다. 니느웨인들의 신앙을 역사 속에서 고찰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구약의 다른 책들과 비교하여 볼 때 문학적으로 뛰어난 형태를 보이고 있다. 즉 본 서에서는 나훔의 시적인 재능을 엿볼 수 있다. 그의 표현은 본 서 전체에 걸쳐 생동감이 넘쳐 흐르고 있다. 본 서는 이사야서와 많은 유사점을 내포하고 있는데, 시적인 표현이기는 하지만 그 내용은 하나님의 심판의 모습을 생동감 있게 그리고 강하게 표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표현되고 있는 내용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달리고 있는 말과 같이 극단적인 대조를 이루고 있다. 즉 하나님의 백성인 유다에 대한 구원과 니느웨에 대한 심판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예언을 한 나훔은 아마도 예언에 대한 정규 교육을 받았으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창의력을 발휘한 자였음을 알 수 있다.

 

2) 목적

본 서의 목적은 한마디로, 하나님의 대적자들은 결국에 가서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을 기록하고 있다. 요나서와는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악인과 의인들에게 보여지는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나타내고 있다. 앗수르의 심판은 유다의 구원을 의미하고 있으며, 유다가 당하는 고통은 앗수르의 죄악된 모습을 전제로 하고 있다. 본 서의 내용으로 보아 앗수르의 압제를 받는 유다가 그들에 대한 증오로 가득차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따라서 앗수르가 멸망할 것이라는 예언은 유다인들에게는 기쁨의 소식이요, 희망의 소식이었다. 따라서 앗수르에 대한 유다인의 입장이 정확히 나타나고 있다. 본 서의 내용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그것은 모두 니느웨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예언이 연계되어 있다. 이러한 내용들이 보여 주는 것은 한결같이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이다. 한 도시 니느웨의 멸망은 결국 하나님을 대적하는 무리들이 어떠한 삶을 살지라도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주지시키고 있는 것이다.

 

3. 메시지와 주제들

 

1) 메시지

나훔서의 역사적 배경이 불분명한 것에 비해 본 서신이 전하고자 하는 예언은 정확한 것이다. 나훔의 메시지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즉 니느웨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모습과 심판당하는 니느웨의 모습이다. 먼저 하나님의 모습은 보수하시는 하나님으로 그리고 질투하시는 하나님으로 묘사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니느웨를 심판하시며, 하나님께 대적하는 어떠한 세력도 용서치 않으신다. 그러한 반면 하나님의 의인들에 대한 사랑이 보여지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을 모르는 제국의 무자비한 압제로부터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시는 것을 말한다. 즉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이라는 두 측면이 보여지고 있다. 하나님의 대적자들을 보수하시나 택한 백성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한편 니느웨에 대한 심판의 메시지는 니느웨에 대한 조롱에 잘 나타나 있다. 학자들은 니느웨와 노아몬의 멸망에 대한 조롱시가 당시에 널리 유포되고 있었다고 한다. 결국 나훔서는 하나님의 종말론적인 승리를 보여 주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 속에서 성도들은 하나님의 한없는 사랑의 모습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을 피난처로 원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사랑을 베푸시는 것이다.

 

2) 주제들

본 서의 주제는 한 가지 통일된 주제를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유다인을 억압하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니느웨의 모습이 완전히 폐허가 될 것이라는 것이다. 니느웨가 완전히 멸망당하였다는 흔적은 그곳을 지나던 헬라의 군인들이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나훔은 니느웨가 멸망당할 상황을 아주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니느웨의 멸망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묘사되고 있다. 이것은 선택받은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지속되리라는 사실과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해 앗수르는 멸망을 당하였고, 유대인들은 구원을 얻은 것이다. 하나님은 역사의 주관자이시다. 택한 백성들을 끝까지 보호하여 주시며

제 7 강 나훔

1. 저자와 기록 연대

 

1)저자

나훔서는 선지자 나훔의 이름을 따서 붙여졌다. 히브리어 성경에서는 '나훔'으로, 칠십인역(LXX)에서는 '나움'으로, 벌게이트(Vulgate)역에서는 '나훔'으로 명명되고 있다. 그 뜻은 '위인자'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뜻을 지닌 '나훔'이 본 서의 저자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학자들간에는 이견이 없다. 왜냐하면 나1:1에 기록되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사람에 대해서는 그의 출생지가 엘고스라는 것밖에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그러나 이 엘고스라는 마을은 그 위치가 있어서 학자들간에 이견이 분분하다. 어떤 학자들은 신약에 나오는 가버나움의 뜻이 '나움의 마을'임을 들어서 가버나움과 동일시하기도 한다. 그리고 오늘날 모술로부터 북쪽으로 약 80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알쿠시라고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저자 나훔이 남유다 출신인 것을 볼 때 부적절한 것이 된다. 한편 이 도시가 예루살렘과 가사 지방의 중간 지점에 위치해 있는 엘케세이라고 하는 학설도 있는데, 많은 학자들이 이 주장에 동의하고 잇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그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

 

  2) 기록 연대

본 서의 저작 시기는 대략 주전 663-612년으로 보고 있다. 왜냐하면 본 서의 기록(나3:8)에 나타나 있는 것처럼 현재의 '티벳'인 노사몬의 멸망을 주전 661년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니느웨의 멸망(나1:12)을 미래적인 사건으로 보고 있는데, 이 예언은 니느웨가 멸망당하기 이미 4년 전에 되어진 것이라고 한다. 이것은 니느웨가 멸망하기 이전에 항상 번영을 누리며 살고 있었던 도시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즉  그 시기가 멸망당하기 전인 주전 654년경이었다고 증거한다. 그러나 본 서에 기록된 예언은 사건 후의 예언이라고 하면서 주전 612년 후에 기록되어진 것이라고 하는 기자도 있다.

 

2. 특징과 목적

 

  1) 특징

본 서는 요나서와 함께 동일한 대상에게 내려지는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이지만 그 내용상 정반대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즉 요나의 예언으로 인해 니느웨에게 내려질 심판이 유보되었지만, 나훔의 예언으로 인해 니느웨는 멸망당하게 된다는 것이다. 니느웨인들의 신앙을 역사 속에서 고찰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구약의 다른 책들과 비교하여 볼 때 문학적으로 뛰어난 형태를 보이고 있다. 즉 본 서에서는 나훔의 시적인 재능을 엿볼 수 있다. 그의 표현은 본 서 전체에 걸쳐 생동감이 넘쳐 흐르고 있다. 본 서는 이사야서와 많은 유사점을 내포하고 있는데, 시적인 표현이기는 하지만 그 내용은 하나님의 심판의 모습을 생동감 있게 그리고 강하게 표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표현되고 있는 내용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달리고 있는 말과 같이 극단적인 대조를 이루고 있다. 즉 하나님의 백성인 유다에 대한 구원과 니느웨에 대한 심판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예언을 한 나훔은 아마도 예언에 대한 정규 교육을 받았으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창의력을 발휘한 자였음을 알 수 있다.

 

2) 목적

본 서의 목적은 한마디로, 하나님의 대적자들은 결국에 가서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을 기록하고 있다. 요나서와는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악인과 의인들에게 보여지는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나타내고 있다. 앗수르의 심판은 유다의 구원을 의미하고 있으며, 유다가 당하는 고통은 앗수르의 죄악된 모습을 전제로 하고 있다. 본 서의 내용으로 보아 앗수르의 압제를 받는 유다가 그들에 대한 증오로 가득차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따라서 앗수르가 멸망할 것이라는 예언은 유다인들에게는 기쁨의 소식이요, 희망의 소식이었다. 따라서 앗수르에 대한 유다인의 입장이 정확히 나타나고 있다. 본 서의 내용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그것은 모두 니느웨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예언이 연계되어 있다. 이러한 내용들이 보여 주는 것은 한결같이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이다. 한 도시 니느웨의 멸망은 결국 하나님을 대적하는 무리들이 어떠한 삶을 살지라도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주지시키고 있는 것이다.

 

3. 메시지와 주제들

 

1) 메시지

나훔서의 역사적 배경이 불분명한 것에 비해 본 서신이 전하고자 하는 예언은 정확한 것이다. 나훔의 메시지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즉 니느웨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모습과 심판당하는 니느웨의 모습이다. 먼저 하나님의 모습은 보수하시는 하나님으로 그리고 질투하시는 하나님으로 묘사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니느웨를 심판하시며, 하나님께 대적하는 어떠한 세력도 용서치 않으신다. 그러한 반면 하나님의 의인들에 대한 사랑이 보여지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을 모르는 제국의 무자비한 압제로부터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시는 것을 말한다. 즉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이라는 두 측면이 보여지고 있다. 하나님의 대적자들을 보수하시나 택한 백성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한편 니느웨에 대한 심판의 메시지는 니느웨에 대한 조롱에 잘 나타나 있다. 학자들은 니느웨와 노아몬의 멸망에 대한 조롱시가 당시에 널리 유포되고 있었다고 한다. 결국 나훔서는 하나님의 종말론적인 승리를 보여 주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 속에서 성도들은 하나님의 한없는 사랑의 모습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을 피난처로 원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사랑을 베푸시는 것이다.

 

2) 주제들

본 서의 주제는 한 가지 통일된 주제를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유다인을 억압하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니느웨의 모습이 완전히 폐허가 될 것이라는 것이다. 니느웨가 완전히 멸망당하였다는 흔적은 그곳을 지나던 헬라의 군인들이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나훔은 니느웨가 멸망당할 상황을 아주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니느웨의 멸망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묘사되고 있다. 이것은 선택받은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지속되리라는 사실과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해 앗수르는 멸망을 당하였고, 유대인들은 구원을 얻은 것이다. 하나님은 역사의 주관자이시다. 택한 백성들을 끝까지 보호하여 주시며

제 6 강 미가

1. 저자와 기록 연대

 

1) 저자

열두 소선지자 중 여섯번째인 미가는 자신의 예언서에서 자신의 신분을 확실하게 밝히고 있다. 미가(Micah)라는 이름은 미가야후(MiKaYahu)가 줄어진 형태로서 이것은 "여호와와 같은 자 누구인가"하는 의미이다. 그의 고향은 모레셋인데, 이곳은 예루살렘에서 남서쪽으로 약 32km 떨어진 유다의 서부 저지대에 위치한 가드모레셋과 동일한 곳이다(미1:14). 모레셋은 작은 전원 도시였기에 미가는 어려서부터 대부분 가난한 계층인 농부들과 접촉했는데, 그의 예언은 당신 가난한 자들에 대한 깊은 관심을 보여준다. 그리고 미가는 이사야와 동시대의 예언자로서 이사야와는 달리 웃시야에 대한 언급이 없었으므로 이사야보다 늦게 사역했으며, 히스기야 시대에 있었던 산헤립의 침입에 대해서 언급이 없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그 이전에 그의 사역을 끝마쳤을 것이다. 따라서 그의 사역 연대는 주전 735-710년 사일 것이다.

 

2) 기록 연대

본 서의 기록 연대는 표제(미1:1) 속에 나타난 저자의 활동 시기이다. 학자들마다 약간씩 다르긴 하지만 그의 사역 시기는 기록 연대를 추측할 수 있는 유일한 자료가 된다. 어떤 학자는 그의 사역 시기를 표제에 근거하여 주전 757-698년까지의 약 60년간으로 이해한다. 어떤 이는 이사야의 초기 생애, 즉 아하스와 히스기야의 통치 시대인 주전 736-725년으로 이해한다(사2:2-4 ; 미4:1-1-3). 그러나 미가의 사역 시가는 주전 735-710년으로 추측할 수 있다. 이유는 그가 히스기야 시대에 사역했다는 사실이 예레미야에 의해서 직접 언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예레미야는 렘26:18, 19에서 미가가 히스기야 시대에 예언 활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언급하면서 미3:12을 인용하고 있다. 또한 그가 사마리안인의 멸망(B.C. 722) 이전에 예언 활동을 했다는 사실은 미1:2-6에서 직접 예언하고 있다. 그리고 그가 요담 시대에 활동을 했다는 사실은 미5:10에서 당시의 번영의 상징인 말과 절차에 관하여 언급한 사실에서 드러난다. 이와 같은 증거로 보아서 미가의 사역 시기를 주전 735-710년까지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러므로 본 서의 제작 연대는 이 기간 중에 기록되었을 것이다.

 

2. 주제와 기록 목적

 

1) 주제

미가서의 메세지의 어떤 특별한 예언을 한 것이다. 그의 예언은 그의 선배들이 아모스, 호세아 및 아시야 등이 이미 예언한 것들이었고 그는 그것을 종합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그의 메시지 속에는 무한한 주제를 가지고 있다. 그의 메시지의 기본적인 주제는 구원적 신앙의 필수적인 결과가 하나님의 의와 주권에 기초하고 있는 사회 개혁과 실제적인 거룩(구별된)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구원적 신앙이 대체적으로 결핍되었기 때문에 북방 왕국과 남방 왕국은 하나님의 진노를 경험하게 된다. 그러나 형벌이 끝난 후에 그 나라는 다시 회복될 것이며 종국에는 메시야가 임하실 것이다.

 

2) 기록 목적

본 서의 기록 목적은 첫째로 유다와 이스라엘이 임박한 심판을 선포하며 경각심을 주기 위해서이고(미1:2-16), 둘째로 유다와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의 부패와 타락을 책망하기 위해서이며(미3:1-12), 셋째로 유대와 이스라엘의 사회적 지도자들의 부패와 타락을 책망하기 위해서이다(미2:1-13). 그리고 넷째는 심판과 죄악상을 고발함으로써 회복자이자 통치자이신 메시야의 탄생을 예고하기 위함이다(미5:1-5).

 

3. 특징과 내용 구성

 

1) 특징

본 서는 하나님의 심판과 메시야의 탄생을 예고하고 있는 책이다. 동시에 신학적인 다양한 특징들도 포함하고 있다.   미가서의 문체는 농민의 저작답게 소잡하고 단편적이다.    본 서는 이사야서와 문자적 또는 내용적인 유사성이 많아 이사야서의 축소판이란 별명까지 받고 있다. 이사야서의 메시야 왕국에 대한 예언은(사2:2-5 ; 미4:1-5) 문자 그대로 축소판이다.   본 서는 미가보다 130년이나 후배인 예레미야에 의해 인용되어(렘26:17-19 ; 미3:12) 양서간의 연결을 보여 주고 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심판주로 선포하고 있다(미3:12).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에 의해서 실현된 이스라엘의 선택을 선포한다(미6:4-8).   다른 선지서에서 선포된 '여호와의 날'을 더 발전시켜 '그 날'로 표현하고 있다(미3:9-12 ; 미6:13-15).   메시야와 메시야적 왕국을 독특하게 선포하고 있다(미2:12, 13 ; 미4:7).   선지자적 종말론 곧 말세에 이스라엘의 회복을 선포하고 있다(미2:12, 13 ; 미4:10).   요엘서와 마찬가지로 성령 강림을 예언하고 있다(미2:7 ; 미3:8).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땅에서 살아갈 때에 삶의 모든 영역에서 경건한 생활을 요구하고 있음을 선포한다(미2:1 ; 미6:8-12).  본 서에는 회개와 믿음과 중생에 대한 메시지를 함축하여 선포한다(미6:8 ; 미7:1-7).  본 서는 하나님의 우주적인 통치를 예언하고 있는 책이다.

 

2) 내용 구성

본 서는 크게 세 부분으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부분인 1, 2장은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에 대하여 심판이 기록되어 있다. 미1:2-16까지는 죄 때문에 심판하시는데, 하나님은 죄를 짓밟으시며 예루살렘을 폐허로 만드시겠다고 하며, 특히 압제자들이 심판하실 것을 약속하고 있다. 가난한 자는 압제자들의 피할 수 없는 형벌(미2:12, 13). 그래서 2장에서는 유다의 보편적인 심판의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둘째 부분인 3-5장은 메시야와 메시야 왕국에 대한 예언이 기록되어 있다. 3장에서 종교 지도자들을 고발하고 있으며, 4장에서는 메시야 왕국과 유다의 회복, 그리고 5장에서는 장차 이 땅에 도래할 메시야의 약속이 기록되어 있다. 특히 메시야의 탄생과 메시야 왕국은 유다와 이스라엘에게 새로운 소망을 주며 남은 자들에게 빛이 되기도 한다. 셋째 부분은 6, 7장인데, 이스라엘에 대한 고발 및 심판, 회복과 찬양이 기록되어 있다. 6장에서의 고난 내용은 2장과 3장에서의 고발을 조치하며, 7장에서는 이스라엘의 빛되신 주님을 향하여 찬양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그리하여 저자는 심판과 경고 속에서도 새로운 빛을 찾고 회복시킬 주님을 대대로 언약에 충실하심을 기뻐한다.

제 7 강 나훔

1. 저자와 기록 연대

 

1)저자

나훔서는 선지자 나훔의 이름을 따서 붙여졌다. 히브리어 성경에서는 '나훔'으로, 칠십인역(LXX)에서는 '나움'으로, 벌게이트(Vulgate)역에서는 '나훔'으로 명명되고 있다. 그 뜻은 '위인자'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뜻을 지닌 '나훔'이 본 서의 저자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학자들간에는 이견이 없다. 왜냐하면 나1:1에 기록되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사람에 대해서는 그의 출생지가 엘고스라는 것밖에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그러나 이 엘고스라는 마을은 그 위치가 있어서 학자들간에 이견이 분분하다. 어떤 학자들은 신약에 나오는 가버나움의 뜻이 '나움의 마을'임을 들어서 가버나움과 동일시하기도 한다. 그리고 오늘날 모술로부터 북쪽으로 약 80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알쿠시라고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저자 나훔이 남유다 출신인 것을 볼 때 부적절한 것이 된다. 한편 이 도시가 예루살렘과 가사 지방의 중간 지점에 위치해 있는 엘케세이라고 하는 학설도 있는데, 많은 학자들이 이 주장에 동의하고 잇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그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

 

  2) 기록 연대

본 서의 저작 시기는 대략 주전 663-612년으로 보고 있다. 왜냐하면 본 서의 기록(나3:8)에 나타나 있는 것처럼 현재의 '티벳'인 노사몬의 멸망을 주전 661년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니느웨의 멸망(나1:12)을 미래적인 사건으로 보고 있는데, 이 예언은 니느웨가 멸망당하기 이미 4년 전에 되어진 것이라고 한다. 이것은 니느웨가 멸망하기 이전에 항상 번영을 누리며 살고 있었던 도시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즉  그 시기가 멸망당하기 전인 주전 654년경이었다고 증거한다. 그러나 본 서에 기록된 예언은 사건 후의 예언이라고 하면서 주전 612년 후에 기록되어진 것이라고 하는 기자도 있다.

 

2. 특징과 목적

 

  1) 특징

본 서는 요나서와 함께 동일한 대상에게 내려지는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이지만 그 내용상 정반대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즉 요나의 예언으로 인해 니느웨에게 내려질 심판이 유보되었지만, 나훔의 예언으로 인해 니느웨는 멸망당하게 된다는 것이다. 니느웨인들의 신앙을 역사 속에서 고찰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구약의 다른 책들과 비교하여 볼 때 문학적으로 뛰어난 형태를 보이고 있다. 즉 본 서에서는 나훔의 시적인 재능을 엿볼 수 있다. 그의 표현은 본 서 전체에 걸쳐 생동감이 넘쳐 흐르고 있다. 본 서는 이사야서와 많은 유사점을 내포하고 있는데, 시적인 표현이기는 하지만 그 내용은 하나님의 심판의 모습을 생동감 있게 그리고 강하게 표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표현되고 있는 내용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달리고 있는 말과 같이 극단적인 대조를 이루고 있다. 즉 하나님의 백성인 유다에 대한 구원과 니느웨에 대한 심판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예언을 한 나훔은 아마도 예언에 대한 정규 교육을 받았으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창의력을 발휘한 자였음을 알 수 있다.

 

2) 목적

본 서의 목적은 한마디로, 하나님의 대적자들은 결국에 가서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을 기록하고 있다. 요나서와는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악인과 의인들에게 보여지는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나타내고 있다. 앗수르의 심판은 유다의 구원을 의미하고 있으며, 유다가 당하는 고통은 앗수르의 죄악된 모습을 전제로 하고 있다. 본 서의 내용으로 보아 앗수르의 압제를 받는 유다가 그들에 대한 증오로 가득차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따라서 앗수르가 멸망할 것이라는 예언은 유다인들에게는 기쁨의 소식이요, 희망의 소식이었다. 따라서 앗수르에 대한 유다인의 입장이 정확히 나타나고 있다. 본 서의 내용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그것은 모두 니느웨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예언이 연계되어 있다. 이러한 내용들이 보여 주는 것은 한결같이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이다. 한 도시 니느웨의 멸망은 결국 하나님을 대적하는 무리들이 어떠한 삶을 살지라도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주지시키고 있는 것이다.

 

3. 메시지와 주제들

 

1) 메시지

나훔서의 역사적 배경이 불분명한 것에 비해 본 서신이 전하고자 하는 예언은 정확한 것이다. 나훔의 메시지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즉 니느웨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모습과 심판당하는 니느웨의 모습이다. 먼저 하나님의 모습은 보수하시는 하나님으로 그리고 질투하시는 하나님으로 묘사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니느웨를 심판하시며, 하나님께 대적하는 어떠한 세력도 용서치 않으신다. 그러한 반면 하나님의 의인들에 대한 사랑이 보여지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을 모르는 제국의 무자비한 압제로부터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시는 것을 말한다. 즉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이라는 두 측면이 보여지고 있다. 하나님의 대적자들을 보수하시나 택한 백성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한편 니느웨에 대한 심판의 메시지는 니느웨에 대한 조롱에 잘 나타나 있다. 학자들은 니느웨와 노아몬의 멸망에 대한 조롱시가 당시에 널리 유포되고 있었다고 한다. 결국 나훔서는 하나님의 종말론적인 승리를 보여 주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 속에서 성도들은 하나님의 한없는 사랑의 모습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을 피난처로 원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사랑을 베푸시는 것이다.

 

2) 주제들

본 서의 주제는 한 가지 통일된 주제를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유다인을 억압하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니느웨의 모습이 완전히 폐허가 될 것이라는 것이다. 니느웨가 완전히 멸망당하였다는 흔적은 그곳을 지나던 헬라의 군인들이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나훔은 니느웨가 멸망당할 상황을 아주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니느웨의 멸망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묘사되고 있다. 이것은 선택받은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지속되리라는 사실과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해 앗수르는 멸망을 당하였고, 유대인들은 구원을 얻은 것이다. 하나님은 역사의 주관자이시다. 택한 백성들을 끝까지 보호하여 주시며, 하나님의 대적자들에게는 보수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이다.

제 8 강 하박국

1. 저자와 저작 시기

 

  1) 저자

하박국이라는 이름은 앗수르 사람들이 부르는 원예 식물의 이름인 '함바쿠쿠'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거기에 대한 확실한 증거는 없다. 칠십인역(LXX)에서는 암바쿰이라고 한다. 벌레이트(Vulgate)역에 서는 아바쿠크로 표현되어 있다. 이러한 모든 뜻은 '껴안는다, 혹은 껴안김을 받는 사람'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본 서의 저자인 하박국에 대해서는 내적인 증거로밖에 추론할 수 없다. 그가 사역한 시기는 갈대아인들의 세력이 막강한 세력임을 피력한 것으로 보아(합1:6-10) 여호야김 시대에 사역한 것을 추정할 수 있다. 하박국은 유다 왕국을 위해 일한 마지막 선지자이다. 그는 아마도 성전 봉사를 맡은 레위 지파 가운데서도 성가대원으로 봉사하는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일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왜냐하면 하박국 3장은 예배 의식에 사용되는 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박국서가 한 저자의 작품이 아니라고 하는 학자들도 있다. 이들은 포로기의 암울한 상황 속에 있는 한 변심자에 의해 기록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본 서가 앗수르보다 바벨론에 대한 언급이 더 많이 나온다는 것을 들어 부인하고 있다. 결국 이들 학자들이 주장은 본 서가 후대에 편집되었다는 주장이다.

 

2) 저작 시기

본 서의 기록 시기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본문(합1:6-11)에 나타나는 상황을 살펴봄으로써 추론할 수 있을 것이다. 본문은 갈대아인들이 유다인들을 침공할 것이라는 예언을 하고 있다. 이 침공은 주전 605년에 있었던 갈그미스 전쟁을 염두에 두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이 심증은 앗수르가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에게 완전히 패하게 된 전쟁을 말한다. 갈대아인들은 주전 625-530년 사이에 막강한 군사력을 지니고 있었다. 따라서 본 서의 주전 625년 이전에 기록하였다고 볼 수 있다. 본 서의 저작 시기는 주전 605-508년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이때가 바로 여호야김이 다스리던 시기였다. 이러한 저작 시기에 대해 일부 진보적인 학자들은 주전 625년 이전에 그리고 주전 605년 이후에 기록되었다고 한다. 한편 본 서의 마지막 장인 3장이 시편의 한 부분이라고 주장하면서 본 서의 저작 시기를 주전 539년 이후로 보고 있다.

 

2. 특징과 목적

 

1) 특징

본 서의 특징은 삶의 현장 속에서 일어나는 불공평해 보이는 문제들을 실질적이고 생생하게 시적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표현은 하나님과 대화로 이루어지는 질문과 답변으로 전개되어 가고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에 대해 의심하는 하박국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바벨론에게 내려지는 다섯 가지 조롱섞인 죄악이 나열되고 있다. 하박국은 하나님께 질문하고 하나님의 답변을 하시고 다시 하박국은 바벨론에게 말을 하는 과정 속에서 하박국이 지혜의 방법을 사용하였을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본 서의 마지막 부분인 3장은 하나님의 현현하시는 모습을 그리고 있으며,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돌리는 찬양시로 끝맺고 있다. 그리고 본 서의 내용이 신약에 많이 인용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내용의 전개를 통해 하박국 선지자의 심정을 읽을 수 있다. 즉 슬픔과 불평으로 시작한 하박국은 이제 기쁨과 감사로 본 서를 끝맺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신앙인의 위대한 승리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2) 목적

하박국이 본 서를 기록할 당시의 상황은 강대국들끼리의 싸움으로 인해 불안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고통당하는 유대인들이 어떠한 삶(합2:4)을 살아야 될 것인가를 일러주기 위함이다. 하박국은 지금 당하는 고난을 피하기보다는 믿음으로 극복할 것을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불공평해 보이는 세상-악인이 잘되고 의인이 고난을 당하는 현실-에 대해 하나님께 불평을 토로하는 하박국은 결국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현재 당하는 고난을 극복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인 여호와를 의지하는 삶을 살 때 의인은 구원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악함을 보시고 결코 방광만 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시며 그들에게 심판을 내리시는 하나님이심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역사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적인 사역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임을 깨닫고 믿음으로 정진할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3. 하박국서의 메시지와 3장에 대한 견해들

 

1) 하박국서의 메시지

유다의 타락한 종교 지도자들과 불의한 귀족들은 온갖 악행을 저지르고 있었다. 세대가 악할 대로 악하여져서 의인들의 수는 날로 줄어들고 있었으며, 저주받은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리고 악인은 늘어나며 성공한 사람으로 보여지는 세상이 되었다. 이러한 현실을 하박국은 바라보고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그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하나님께서는 갈대아 사람들을 급히 유다로 심판하신다. 그러나 하나님의 응답에도 하박국은 만족을 느끼지 못하였다. 오히려 반문을 하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환경과 처지에 관계없이 믿음으로 인내할 것을 말씀하고 계신다. 여기서 보여지는 악인의 생활은 세상적인 의식주를 해결하는 생활이 아니라 하나님과 교제를 통한 삶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하박국은 본 서를 통하여 의인들은 하나님께서 과거에 자신들의 조상들에게 행해 오셨던 사역들을 묵상하고, 현재 당하고 잇는 위기를 위해 기도하며 인내함으로 말미암아 구원의 승리를 맛볼 수 있는 미래를 기다리라고 한다. 이것은 이 세상에 펼쳐지고 잇는 하나님의 공의가 종말에 가서는 승리한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의인이 승리하게끔 하시는 하나님의 공의에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2) 하박국서의 3장에 대한 견해들

본 서는 내용 면으로 볼 때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부분은 1,2장까지로 하박국 선지자와 하나님과의 대화 속에서 보여지는 심판의 예언이 나타나고 있다. 두 번째 부분은 그 심판이 이루어진 사실에 대한 기도가 나타나고 있다. 여기서 마지막 부분에 대해 많은 견해들이 있다. 이 부분을 서정적인 시로 보고 있다. 한편 본 서를 제의적 성격을 지닌 찬양시라고 하기도 한다. 이들은 여기에서 보여지는 하나님의 위대하신 현현의 모습이 주술적인 요소가 들어 있다고 한다. 그리고 폰라드(Von Rad)는 "이 시를 기록한 사람이 제의적인 찬양시의 형식을 빌어 기록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은 본 시가 하박국의 기록이라는 사실을 부인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본 시를 서정적인 신앙의 승리를 노래한 시라고 보는 학자들도 있다. 하박국은 이 시를 통하여 하나님의 공의가 궁극적으로 승리한다는 확신을 기도하였던 것이다.

제 9 강 스바냐

1. 스바냐서의 서론

 

어느 시대나 악한 통치자 시대가 끝나면 선한 통치자가 등장하여 새로운 역사를 창출하곤 한다. 스바냐서는 유다 왕 중의 가장 악한 왕 중의 한 명인 아몬드의 시대가 끝나고 요시야 왕이 등장하여 종교개혁을 이룬 초기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이런 스바냐서는 스바냐라는 상류 계층의 예언자의 예언을 기록한 책으로서 주로 '여호와의 날'을 선포하기 위한 목적으로 기록하게 되었다.

 

2. 저자와 기록연대

1) 저자

본 서에 나오는 내증(습1:1)으로 보나 유대교와 기독교의 전승으로 보나 스바냐가 본 서의 저장인 것이 명백하다. 본 서의 저자의 족보가 4대까지 기록된 것과 큰 종교개혁을 일으켰던 유다 왕 히스기야의 후손임(습1:1)을 나타내 주는 것으로 보아 스바냐는 상당한 상류 계층의 예언자로 추측된다. 또한 스바냐가 예루살렘 지도자들의 죄악을 꾸짖은 사실(습1:7-9 ;  습3:3-5)과 그에 관한 긴 족보로 보아 왕가의 혈통임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스바냐의 설교는 요시야 왕의 통치 기간 중에 행하여진 것으로서(B. C. 640-609년), 주전 621년의 종교개혁보다 앞서 선포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2) 기록연대

본 서의 저자인 스바냐가 어느 시대에 예언을 하였는가를 밝히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예언의 시기를 결정할 만한 내적 증거가 습1:4-6에만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단지 여기에서는 므낫세 왕때 유행했던 이방신에 대한 제사와 발알 숭배가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요시야 왕의 종교개혁 운동은 주전 621년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므로 문제는 예언의 시기가 요시야의 종교개혁 시대 이전이냐 이후이냐가 초점이 된다. 우상 숭배에 대한 책망이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요시야 왕의 종교개혁(B. C. 622년) 이전에 기록된 것으로 보인다. 결론적으로 본 서의 기록연대는 요시야의 종교개혁이 일어나기 전인 주전 640-622년경으로 추측할 수 있다.

 

3. 기록 목적과 주제

 

1) 기록 목적

본 서의 기록 목적은 요엘이나 아모스와 같이 여호와의 날을 선포하기 위한 것이다. 본 서에 나오는 '여호와의 날'은 심판의 날을 상징한다. 일반 민중들은 여호와의 날을 선민으로서의 구원이라는 관념에서 생각하고 있으나 선지자들의 이날에 대한 관념은 두려움 심판의 날로 생각하고 있다. 또한 본 서는 여호와의 날에 구원받을 남은 자(습3:13)들의 영광을 노래하기 위하여 기록하였다. 여호와의 날은 심판의 날로 다가오나 그 처절한 심판 속에서 구원의 희망을 간직한 자들인 남은 자들의 모습도 등장한다.

 

2) 주제

본 서의 주제는 한마디로 말하면 '여호와의 날'이다. 요엘이나 아모스와 같이 여호와의 날을 주제로 삼고 있다. 이 여호와의 날은 정확히 표현하면 '심판과 축복의 날'이다. 따라서 여호와의 날은 먼저 심판의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이것은 선지자들의 공통된 예언 형태이다. 그리고 본서에 나타나는 심판은 유다에서 시작되어 유다 땅은 황폐케 되고 결국 모든 열방에까지 번지며 그 엄위와 능력을 일깨운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께 선택하신 '남은 자'들은 그 날을 인하여 오히려 기뻐하게 된다.

 

4. 특징과 내용 분해

 

1) 특징

본 서의 가장 큰 특징은 '여호와의 날' 사상이다. 여호와의 날은 본서의 주요 메시지를 이루고 있으며 희생의 날(습2:8)로서, 분노의 날, 고통의 날, 캄캄한 어두운 날, 구름과 흑암의 날(습2:14)을 가리킨다. 그리고 본 서는 여호와의 날이 지니는 심판과 구원의 양면적 성격을 자세히 부각시키고 있다. 하나님이 진노하시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하나님께 대한 거짓 예배에 있다. 즉 하나님을 무시하며, 더 나아가 그의 존재를 인정치 아니한 데 있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본 서의 특징으로는 건조하고 사실적인 문체를 들 수 있다. 수식어를 거의 사용하지 아니하고 운율성을 강조하지 않은 간결하고 사실적인 문체를 사용하고 있다.

 

2) 내용 분해

본 서는 여호와의 날이 지니는 심판과 구원의 양면성을 중심으로 크게 두 개로 나누어진다. 먼저, 서론(습1:1)이 있고 그 다음에 '여호와의 날'의 심판(습1:2-3:8)이 나온다. 그리고 '여호와의 날'의 축복(습3:9-20)이 나온다. '여호와의 날' 의 심판(습1:2-3:8)에는 유다가 임하는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경고(습1:2-13)와 진노(습1:14-18)가 먼저 나오고 그 다음에 회개의 권고(습2:1-3)가 나온다. 그리고 난 후에 모든 열방에 미치는 심판(습2:4-15)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예루살렘의 죄악(습3:1-8)이 기록되어 있다. 그 다음에 나오는 '여호와의 날'의 축복(습3:9-20)의 부분에서는 먼저 '남은 자'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습3:9-13)이 나오고 그 다음에 '남은 자'가 누릴 구원의 기쁨(습3:14-20)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다.

 

5. 스바냐서가 주는 의미

 

하나님은 하나님을 무시하며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곳은 반드시 심판하신다. 비록 그들이 하나님의 택함받은 선민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심판은 예외가 없다. 스바냐서는 '여호와의 날' 사상이 중심이 되어 나타나고 있다. 이 '여호와의 날'은 심판과 구원의 양면성을 지닌 것이다. 여호와의 날은 스바냐 선지자가 활동하던 시대뿐 아니라 오늘날까지도 똑같은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심판과 구원의 양면성은 오늘날 하나님의 은혜만 강조하고 공의와 심판이라는 측면을 무시하고 강조하지 않는 교회의 현실 앞에 새로운 빛을 던져 주고 있는 것이다. 어느 시대나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생활 속에서 참으로 예배하지 아니하면 반드시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도 심판하신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겠다.

제 10 강 학개

1. 저자와 기록 연대

 

1) 저자

본 서의 저자는 선지자 학개이다. 그는 포로귀한 이후에 활동했던 스가랴, 말라기 선지자보다 먼저 활동했다. 에스라는 스가랴와 동시대 인물로 그들이 함께 사역하며 성전 재건을 독려했다고 전하고 있다(습5:11 ; 습6:14). 이들 두 선지자들은 유다 백성들뿐 아니라 유다의 지도자들, 곧 스룹바벨과 여호수아에게 성전을 재건하라고 촉구하였다. 그리고 학개에 대해서는 그가 주전 536년에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귀환하여 새로이 정직한 유대 거민의 첫 선지자라는 사실 이외에 개인적인 삶에 대해서는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았다.

 

2) 기록 연대

본 서의 기록 연대는 학개 자신이 에스겔처럼 자신의 사역 연대를 정확하게 기록하였기에 의심의 여지가 조금도 없다. 구약의 모든 책 중에서 오직 본 서만이 비평가들의 비평에서 벗어나 정경으로서 아무 문제점이 없었다. 그것은 학개 선지자 자신의 작품이며, 그가 제시하고 있는 연대의 신빙성을 인정받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 메시지는 다리오 2년 엘룰월 1일에 전해졌다. 두 번째 메시지는 같은 해 티쉬리월 21일에 주어졌고, 셋째와 넷째 메시지는 같은 해 치슬렙월 24일에 주어졌다. 따라서 이 네 개의 설교는 약 3개월 동안에 주어진 것이다. 이 예언들은 정확하게 바벨론 왕 다리우스 히스타스페스(Darius Hystaspes), 즉 다리오 재위 2년인 주전 520년에 주어졌다. 그러므로 본 서의 기록 연대는 주전 520년이라 할 수 있다.

 

2. 주제와 기록 목적

 

1) 주제

학개는 스가랴와 말라기 선지자와 함께 성전 재건과 성전 예배 회복에 같은 관심을 보였다. 특히 스가랴와 학개 선지자는 나태한 가운데서 일어나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라는 내용을 중심으로 메시지를 전파하였다. 성전 건축이야말로 학개가 가진 관심의 중심이었고, 그가 설교한 모든 것의 초점이었다. 그에게 부여된 가장 중요한 사명은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인들을 일으켜서 느부갓네살 왕에 의해 파괴된 솔로몬 성전을 재건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저자는 유대인들이 하나님과 그의 전에 우선권을 둘 때에 그들이 받을 보상은 저주가 아니라 축복임을 역설하기도 했다. 학개서의 주제는 만약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계획과 하나님의 집 그리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을 먼저 구하면, 현재의 가난과 실패는 끝나고 복된 번영이 올 것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그들이 언약에 얼마만큼 충실하느냐에 따라서 결정된다.

2) 기록 목적

학개 선지자가 유대인들에게 예언 활동을 시작했을 때는 백성들이 영적인 무관심으로 성전 재건을 포기하고 있었던 시기이다. 백성들은 모두가 낙담하여 자신들에게 닥친 어려움이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영적 질병의 현상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학개는 하나님의 뜻을 제쳐놓고 자신들의 이기적 욕망을 앞세울 때는 언제나 상황이 어렵게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백성들에게 일깨운다. 유다 백성들이 포로귀환 후에 가장 먼저 시작했던 일은 성전 재건이었다. 이것은 70년간의 바벨론 포로 생활을 통해서 배운 인본주의적 사고에서 신본주의 사고로의 전환을 의미하기도 한다. 따라서 성전 재건이 14년이나 중단되어진 것은 큰 위기였다. 이에 대해 저자는 지난 14년간을 회고하면서 하나님 중심의 삶만이 자기 백성을 지키는 일이며, 성전 재건만이 유일한 일임을 주장했다. 본 서의 기록 목적은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는데, 첫째는 백성들을 독려하여 14년이나 중단되었던 성전을 재건축하여 완성하게 하기 위함이요, 둘째는 백성들의 이기적인 욕심을 제거하고 하나님의 일을 우선적으로 하는 바른 신앙으로 인도하기 위한 것이다.

 

3. 특징 및 내용 구성

 

1) 특징

학개의 사역에 있어서 주목할 만한 것은 그의 메시지의 신적 기원에 대한 자각이다. 2장으로 된 짧은 책에서 그는 25회 이상이나 그의 메시지의 신적 권위를 확증하고 있다. 그는 설교를 시작할 때와 끝날 때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는 말을 사용한다. 학개 선지자는 자신이 하나님의 사신인 것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으며(학1:13), 또한 하나님의 메시지를 설교할 때에 듣는 이들로 하여금 정확하게 깨닫게 하고자 몇 가지의 독특한 문화적인 방법을 사용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예를 들면 "소위를 살펴볼지니라"(학1:5,7)와 "내가 너희와 함께하노라"(학1:13 ; 학2:4)등의 반복법을 사용하여 전하고자 하는 내용을 효과 있게 하였으며, "너희가…하는 것이 가하냐"(학1:4)라는 질문식 표현법을 사용하여 주제에 상응하는 내용들을 질문으로 표현했다.

이와 같은 특징 외에도 여러 가지가 더 있을 수 잇다. 첫째로 본 서는 스가랴와 말라기서와 상통되는 점이 많다는 것이고, 둘째는 결국 후기의 선지자서의 특징으로 우상 숭배와 도덕적인 불의에 대한 질책도 없다는 것이다. 셋째는 본 서의 문장이 평범하고 간략하여 어떤 특색도 없다는 점이다. 넷째는 본 서의 주요 단락의 여호와의 말씀이 학개에게 임한 시기에 의해서 나누어져 있다는 점이다.

 

2) 내용 구성

본 서는 매우 짧은 분량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그 내용은 매우 중요하다. 본 서의 내용은 날짜별로 쉽게 넷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는 학1:1-15이며, 학개는 이 첫 번째 메시지에서 성전에 대한 무관심을 질타하고 자기의 소위를 살펴볼 것을 강력하게 권고한다. 둘째는 학2:1-9로 여기서는 비록 재건되는 성전이 소박하지만 영적 성전보다 더 영광스러운 것임을 확신시킨다. 셋째는 학2:10-19로 성전 건축의 활발치 못함을 질책하며 하나님의 축복이 선포된다. 넷째는 학2:20-23의 마지막 메시지로서 스룹바벨이 여호와의 인치심으로 세우심을 받게 되는 축복이 선포되었다. 학개서의 전체적인 내용을 통해서 하나님은 미래의 성도들에게 두 가지의 교훈을 준다. 하나는 본 서에는 다른 선지서와 마찬가지로 메시야와 그의 왕국이 도래할 사인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이다(학2:7 ; 히12:27-29). 그래서 두 번째 성전은 구속 역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이 성진에서 예루살렘 사역을 하였기 때문이다. 이것은 학2:9의 약속 성취이기도 한다. 또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왕 되심의 지고의 상징인 왜 재건되어야 했는가 하는 것이다. 그것은 유다의 메시야 소망이 이 성전과 연관되어 있으며, 여호와의 영광을 계시하기 위해 이스라엘이 평강을 찾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제 11 강 스가랴

1. 저자와 시대적 배경

 

1) 저자

본 서의 저자는 '여호와께서 기억하신다'라는 뜻을 지닌 스가랴이다. 스가랴는 구약성경에만도 29명 이상이 등장할 정도로 당시에는 흔한 이름이었다. 스가랴는 잇도의 후손인데, 잇도는 포로 시대 이수에 유다로 돌아온 제사장들 중에 한 명이었다. 따라서 잇도의 손자인 스가랴는 제사장이면서 동시에 선지자였을 것이다.

그런데 일부 학자들 가운데는 스가랴서의 후반부인 9-14장은 저자가 다르다고 주장하며, 혹자는 슥11:13마27:9,20을 인용하면서 예레미야가 저자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리고 일부 학자들은 헬라 시대 또는 마카비 시대의 어떤 사람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자들은 본 서의 전반부(1-8장)는 스가랴의 초기작이요, 후반부(9-14)는 그의 말리 작품으로 보고 있다.

 

2) 시대적 배경

스가랴는 학개 선지자와 스룹바벨과 동시대 인물이었다. 스가랴서의 내용이 전반부(1-8장)와 후반부(9-14장)로 나뉘어지듯 당시의 시대적 배경도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전반부인 1-8장은 학개 시대와 동일하다. 즉 주전 538년에 바사 왕 고레스의 칙령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본국으로 귀환하였다. 본국으로 귀환한 이들은 주전 536년부터 성전 재건을 시작하였으나 여러 가지 방해로 2년(B. C. 534년)만에 공사는 중단되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학개와 스가랴 선지자로 하여금 성전 재건 공사를  독려케 하여 주전 520년에 공사가 다시 시작되어 주전 516년에 성정 재건 공사가 끝마치게 되었다. 이때가 전반부의 시대적 상황이었다.

그리고 후반부인 9-14장은 당시의 시대적 배경이 언급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불분명하다. 다만 주전 480-470년경으로 다리오 1세가 물러나고 아하수에로 왕이 통치하던 시대적 배경을 갖고 있다.

 

2. 기록 연대와 기록 목적

 

1) 기록 연대

본 서의 기록 연대를 앞에서 언급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쉽게 알 수 있다. 즉 전반부(1-8장)는 주전 520년경 학개가 예루살렘에서 사역을 시작한 지 두 달 후에 시작되었다. 그리고 스가랴 7장은 주전 518년경 기록되었다. 따라서 전반부(1-8장)는 주전 520-518년 사이에 기록되었다. 그리고 후반부(9-14장)는 슥9:13에 헬라가 언급된 것으로 보아 수 십년이 지난 주전 480년경에 기록된 것으로 보고 있다.

2) 기록 목적

본 서의 기록 목적은 전반부와 후반부가 약간은 다르다. 전반부에 있어서 첫 번째 기록 목적은 포로에서 귀환한 백성들의 성결한 신앙을 확립하는 데 있었다. 이들은 본국으로 귀환했으나 영적인 무관심과 율법의 무지 그리고 도덕적인 불의한 삶이 심각한 문제였다. 따라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 전에 먼저 선결되어야 할 문제는 그들의 성경이었던 것이다. 둘째로, 성전 재건을 중단한 그들을 위로하고 격려하여 성전 재건을 완성하도록 독려하기 위함이었다. 셋째로 성전 완공은 메시야의 영광을 상징하며, 그분의 임재하실 처소를 마련하는 성스러운 일로 미래에 대한 소망을 일깨워 주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후반부의 기록 목적은 예수그리스도에 관한 예언을 기록함으로써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에게 메시야의 왕국의 승리와 영광을 마음속으로 간직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3. 특징과 내용 구성

 

1) 특징

본 서의 특징으로는 첫째로 메시야의 초림과 재림에 관한 많은 예언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오실 메시야에 대해 순 (슥3:8 ; 슥6:12), 종(슥3:8), 목자(13:7), 왕, 제사장(6:13)으로 표현하고 있다. 또한 그리스도의 주활 승천 이후에 있을 복음의 부흥(슥12:10-13:1), 마지막 날에 있을 심판과 메시야의 통치 그리고 하나님 왕국에 관한 예언 등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스가랴는 마치 구약의 요한계시록이라 할 수 있다. 동시에 신약에 있어서 메시야를 언급할 때에 스가랴서를 많이 인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둘째로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과 구원받은 자의 삶의 윤리도 언급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스가랴 3장에서는 그리스도의 속죄가 죄씻음의 차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의롭고 영화롭게 할 것을 말해 주고 있다. 동시에 구속받은 성도의 신앙이 삶 속에서 분명히 나타나야 함을 가르쳐 주고 있다(슥7:9,10 ; 슥8:16,17). 셋째로 본서는 요한계시록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말세론에 많은 언급을 하고 있다. 요한계시록은 본 서의 말씀을 30개 정도로 인용하였다. 스가랴서의 말세론은 '그 날'로 언급된 여호와의 날에 집중되고 있다. 이날은 성도에게 구원의 날이지만 악인들에게는 저주와 심판이 임하는 날이다. 동시에 본 서에는 메시야 왕국과 메시야의 통치를 언급하면서, 새 예루살렘이야말로 성도들이 거처할 영원한 낙원임을 강조하고 있다. 

 

2) 내용 구성

본 서의 내용은 크게는 두 부분, 적게는 네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크게 나눌 때 전반부는 1-8장까지로 회개에의 촉구와 여덟 가지 환상을 기록하고 있다. 후반부인 9-14장은 메시야에 대한 예언을 담고 있다. 한편 본 서의 내용을 네 부분으로 나눌 때 첫 단락은 슥 1:1-1:6까지로 서 조상들처럼 여호와께로 돌아올 것을 요청하고 있다. 두 번째 단락은 슥1:7-6:15로서 스가랴가 본 8가지 환상을 기록하고 있다. 이 환상들은 이스라엘의 운명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세 번째 단락은 7,8장으로서 금식 문제에 대한 벧엘 사람들의 질문과 이에 대한 답변을 기록하고 있다. 끝으로 네 번째 단락인 9-14장은 메시야에 대한 예언을 언급하면서 메시야에 간한 거부와 메시야의 통치에 대해 두 번의 경고를 하고 있다. 

루터(Luther)는 생전에 스가랴서에 대하여 모든 예언서의 정수라고 설명하였다. 이만큼 스가랴서는 예언으로 가득 창 있는 심오한 진리의 말씀이다. 특별히 본 서는 외적으로는 성전 재건에 대한 말씀을 담고 있으나 실제적으로는 성전 자체에 담겨져 있는 의미 곧 성전이신 예수그리스도에 관한 풍부한 기독론적 의미를 담고 있다.

다시 말해 본 서는 그리스도 나라의 완성에 대해 우리들에게 참된 소망을 던져 주고 있다. 이처럼 메시야 왕국과 그의 통치에 대한 영광스런 소망은 유대의 남은 자들에게 구원에 대한 새로운 용기와 각오를 새롭게 심어 주었다. 마찬가지로 현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은 장차 심판주로 재림하실 그리스도를 대망하면서 어두워져 가는 현실 속에서도 용기와 새 힘을 가져야 하겠다.

제 12 강 말라기

1. 저자와 시대적 배경

 

1) 저자

전통적으로 말1:1의 표제를 근거로 하여 본 서의 저자를 말라기로 보고 있다. 그러나 성경에는 말라기의 개인 신상에 대해 일체 언급이 없고, 말라기가 이름을 말하는 고유 명사가 아니라 '나의 사자' 또는 '전달자'라는 단순한 일반 명칭이라는 의견이 제시되고 있기에 말라기가 저자인지는 불분명한 상태이다. 한편 제롬(Jerome)과 칼빈(Calvin)은 말라기가 서기관 에스라의 다른 이름이거나 별명으로서 본 서의 저자로 에스가라를 지목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다른 선지서에서 보듯이 표제에 저자 이름을 기록하는 전통을 보아서는 말라기로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2) 시대적 배경

본 서의 시대적 배경을 알 수 있는 증거로는 말1:8hjp(페카)라는 단어를 들 수 있다. 페카는 '총독 폐하'의 뜻으로 페르시아 제국의 총독 관직에 대한 용어이다(느5:14 ; 학1:1). 따라서 이스라엘은 페르시야의 통치를 바도 있던 시기로서 명백히 바벨론 포로 이후의 시대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본 서는 학개, 스가랴와 함께 포로귀한 시대부터 느헤미야가 활동하던 당시의 시대적 상황임을 알 수 있다. 이 시기는 한마디로 영적 암흑기였다. 이때에 이미 성전은 재건되어 성전 제사가 행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학개가 외쳤던 예언(학2:6,7), 즉 완공된 성전에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리라는 예언은 실현되지 않았다. 이에 백성들은 신앙적인 회의와 탄식에 잠겨 있었다. 이들의 종교적 의식은 형식적인 것이 되었고, 열정도 식어버렸다. 남은 것이라곤 타락과 죄악 뿐이었다. 바로 이 때문에 활동한 선지자가 바로 말라기였다.

 

2. 기록 연대와 기록 목적

1) 기록 연대

본 서에는 연대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다. 하지만 본문에 나타난 몇 가지 정황이 기록 연대를 근접하게 추정할 수 있게 한다.

첫째, 성전은 이미 재건되었으나 제사 의식이 심히 부패한 점으로 보아(말1:7,10) 스룹바벨 성전이 재건된 해 (B. C. 516년)로부터 오랜 시간이 지난 것으로 추정된다.

둘째, 페르시야 총독이 다스리고 있었기에 느헤미야 총독 시절(B. C. 444-432년)은 아닐 것이다.

셋째, 말라기가 지적한 죄, 곧 제사장들의 부패, 십일조 무시, 이방 여인과의 결혼 언급 등이 느헤미야가 두 번째로 이스라엘에 와서 (B. C.425년) 지적한 죄와 동일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본 서의 기록 연대는 주전 432년부터 주전 425년 사이로 추정되고 있다.

 

2) 기록 연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첫째로 학개와 스가랴의 예언들이 가시적으로 성취 되지 않았고, 둘째로 포로귀환과 성전 재건 때 가졌던 뜨거운 신앙이 식어졌다는 이유에 의하여 영적인 회의와 실의에 빠지게 되었다. 이는 신앙적인 회의주의와 형식주의 그리고 율법에 대한 무시와 도덕적 타락으로 연결되었다. 따라서 하나님은 말라기 선지자를 통해 백성들에게 여러 가지 질문과 답변을 하시었다. 이를 통해 백성들의 영적 타락의 원인을 지적하며, 동시에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의 지름길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이는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끝없는 사랑을 엿보게 한다. 결국 하나님은 본 서를 통해 죄악된 백성일지라도 회개하고 여호와께로 돌이키면 자비와 긍휼을 베푸시리라 약속해 주고 있다.

 

3. 특성과 내용 구성

 

1) 특성

본 서는 몇 가지 점에서 특성을 지니고 있다.

첫째로 말라기서의 강조점이 하나님의 언약에 있다는 것이다. 본 서의 처음과(말1:2-5) 종결 부분(말4:4)이 언약을 기억하고 순종하라는 말씀으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언약 관계를 부자관계로 설명하고 있다(말1-6 ; 말3:17). 그리고 이스라엘의 가장 심각한 죄가 하나님과의 언약을 어긴 것으로 말하고 있다(말2:1-30). 따라서 말2:2,3에서는 언약을 어긴 징계가 어떠한지 분명하게 보여 주고 있다.

둘째로 다른 민족 곧 열방들에 대한 심판의 언급이 없다는 것이다. 이는 본 서의 기록 목적은 이스라엘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본서의 메시지 이면에는 열방들에 관한 심판이 적지않게 내포되어 있기도 하다(말91:5,11,14).

셋째로 예배에 대한 언급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특별히 예배의 형식적인 의식보다는 여호와께 대한 순종이 더욱 고귀한 것임을 지적해 주고 있다. 끝으로 본 서에는 의인의 이름이 적힌 기념책(말3:16)과 주의 길을 예비할 엘리야(말4:5)를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2) 내용구성

말라기의 내용은 크게는 두 부분, 작게는 여섯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때 전반부는 1-3장으로 하나님과의 단절을 야기시킨 이스라엘의 타락을 다루고 있으며, 후반부는 4장으로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다루고 있다.

한편 여섯 부분으로 내용을 구성해 보면.   말1:1-5은 타락한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다루고 있다.   말1:6-2:9은 타락한 제사장들의 죄와 그들에게 임할 저주를 언급하고 있다.   말2:10-16은 타락한 가정 생활을 통해 일반 백성들의 죄악상을 기록하고 있다.   말2:17-3:6은 심판주 되시는 메시야의 도래와 주의 길을 예비하는 사자가 임할 것을 예언해 주고 있다.   말3:7-12은 불성실한 십일조로 표현된 이스라엘을 지적하면서 여호와께로 돌아올 것을 촉구하고 있다.  말3:13-4:6은 알곡과 쭉정이를 가르는 여호와의 날에 있을 악인과 의인들의 극명한 대조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약속해 주고 있다.

 

4. 말라기서가 주는 의미

 

말라기서는 구약성경의 마지막 예언을 기록하고 있다. 동시에 말라기 선지자는 앞으로 있게 될 40년의 영적 암흑기라 할 수 있는 신·구약 중간기를 준비하는 사명을 감당하였던 것이다. 특별히 그는 메시야의 길을 예비할 세례 요한의 출현을 예고함으로써 구약과 신약의 완벽한 연결점을 제시해 주고 있다. 그리고 비록 타락한 이스라엘이지만 회개하고 돌이킬 때 마지막 심판의 날에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리라는 축복을 예언함으로 본 서를 마무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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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창골산 봉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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