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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로마카톨릭주의의 정체 정리

하나님아들 2017. 12. 2. 15:02

로마카톨릭주의의 정체 정리



로마 카롤릭주의의 정체(Babylon Mystery Religion)를 저술한 저자 랄프 우드로우는 머리말에 고대 이교주의가 언제, 어디서, 왜, 어떻게 그리스도교와 혼합되었는가를 성서적, 역사적으로 기록하여 이 책을 읽는 나에게 정말로 믿을 수있는 내용(너무나 상상을 초월하고 믿을 수 없는 사건 내용: 마리아 경배, 십자가, 베드로가 첫 번째 교황인가, 교황의 부도덕성, 등등)인가를 처음 생각게 했으나 읽어 갈수록 로마 카토릭주의, 즉 우리에게 다가와 있는 '로만카토릭'에 대한 지식의 분량을 쌓아가면서 느끼게 하는 내용으로 앞으로 목회사역의 길에서 부딪칠 수 있는 문제에 대한 배움을 준책으로 다음에 간단히 요약하여 정리하여 사역현장에서 도움이 되길 바란다.



제 1장 바벨론- 거짓 종교의 근원

저자는 바벨론의 비밀 종교는 “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와 가증한 것들의 머리라”라고 요한계시록17장 1~6절에 상징적으로 묘사되었다고 책의 서두에 쓰고 있으며 ,성경에 상징적인 언어로 여자는 교회로 비유되며 여기서 여자는 부정한 여인,더럽혀진 여인,음녀라고 한다. 고대 바벨론 종교는 바로 무엇인가? 그것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또 현대에 어떠한 의미를 갖고 있는가? 시간의 페이지를 홍수 직후 기간으로 돌리면 동방으로 옮기다 , 바벨론 도성이 세워졌던 땅이 시날 평지였으며 이곳이「바벨로니아」, 메소포타미아라 알려진 곳이다(창11:2).
니므롯은 특이한 사냥꾼(창10:8,9)으로서 고대 사람들 사이에서 아주 유명하게 되었고, The Jewish Encyclopedia는 “모든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대적하여 반역케 한 자”라고 하고, 그가 죽은 후 바벨론의 백성들은 심히 애도하였고 아내 세미라미스(Semiramis)는 니므롯이 이제는 태양신이 되었다고 주장하였고, 아들을 낳고 담무스(Tammuz)인 자기 아들이 그들의 영웅인 니므롯(Nimrod)의 재탄생이라고 주장하였다. 하나님께 대한 반역과 세미라미스는 아들을 초자연적으로 잉태하게 되었고 이 아들이 약속된 후손, 즉 구세주라고 주장하였다. 그렇지만 이렇게 발전된 종교에서는 어린이를 경배하는 것뿐만 아니라 어머니까지도 경배한 것이다! 바벨론 사람들의 대다수는 예배 중 신비적인 상징들을 통하여 진행되었으며 이것이 비밀(신비)종교였다. 여기서 니므롯과 세미라미스 아들 담무스를 기억하여 이교도의 시작임을 알아야 한다.
로마가 세계적인 제국이 되었을 때, 통치한 이교 국가들의 여러 신들과 종교들을 자기들의 종교에 흡수하였다. 바벨론이 이러한 국가들에 있는 이교주의의 원천이 되었기 때문에, 초기 이교 로마 종교 역시 이교주의가 잠입 되어간 나라들에서 여러 형태와 상이한 이름으로 발전되었던 것과 같은 바벨론 예배에 불과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오래지 않아 사람들은 그들 자신이 하나님 백성위에 성령 대신에 “군주들”로 군림하기 시작했다. 맨 처음에도 그랬듯이 신령한 방법과 진리로 승리하는 대신에 사람들은 자기들의 사상과 자기들의 방법들로 대체시키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교는 로마제국에 뿌리를 내린 여러 형태의 바벨론적 이교주의와 부딪치게 되었다. 로마의 황제가 그리스도교로 개종을 고백하였다. 박해를 중지하라는 황제의 칙령이 전 제국에 선포되었다. 교회는 이교주의와 수많은 타협을 하였다. 이때부터 이교주의가 그리스도교 교회 안으로 혼입되어 들어 왔다. 우리는 훌륭하고 신실하고 헌신적인 카톨릭 교인이 있음을 의심치 않는다. 그들이 소속하고 있는 교회에 관계없이- 그들을 격려하여 바벨론의 교리와 사상들을 떠나 성도들에게 단번에(once)주신 참 믿음(the faith)에 돌아오기를 희구하는 것이다.



제 2장 어머니와 어린이 경배

바벨론의 이교주의가 계속되어왔는가를 보여주는 보기 중 하나가 고대 어머니 여신 경배를 대체한 로마 카톨릭 교회가 만든 마리아 숭배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바벨론에서부터 여러 국가로 다른 이름과 형태로 확산된 이 거짓 경배는 결국 로마와 로마제국 전역에서 국교화 되었다.
어머니와 어린이 이야기는 고대 바벨론에서 널리 알려졌으며 하나의 국교적 경배로 발전되었다. 이교주의의 위대한 어머니 세미라미스를 누구하고 대체할 수 있겠는가? 예수의 어머니인 마리아가 그들의 선택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그들은 이미 알려져 있던 여신 이름 대신 백성들이 마리아라는 이름만을 부르게 하므로 어머니 여신에 대해 기도하고 경배하는 것을 계속토록 허락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이리하여 점차로 이교도 어머니께 경배하던 것이 마리아에게로 옮겨지게 되었다.
교회의 처음 1세기 동안에는 마리아에 대해 어떤 강조도 하지 않았다. 4세기 초 콘스탄틴(Constantine) 시대에 가서야 마리아를 여신으로 보기 시작하였다. 수년 안에 마리아 예배는 오늘날 로마 카톨릭 교회에서와 같이 용인되었을 뿐만 아니라 431년 에베소 회의(The Council Ephesus)에서 마리아 숭배가 공식적인 교리가 되었다. 마리아는 마돈나라고 불렸으며 ,니므롯은 바알로 그의 아내는 바알티로 이는 나의 부인,라틴어로 메아 도미나에서 이탈리아어로 “마돈나”로 변모했다.
성경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 한 중보자가 있다고 하고 있다(딤전 2:5). 그러나 로마 카톨릭주의는 마라아도 역시 “중보자”라고 가르친다. 마리아에게 기도드리는 것은 카톨릭의 예배에서 매우 중요한 한 부분을 이루고 있다.



제 3장 마리아 경배

마리아 경배가 고대 이교도의 어머니 여신 경배에서 발전되어 왔다는 가장 명확한 증거는 이교도 종교에서 어머니가 아들만큼 또는 더 경배받는 사실에서 알 수 있다. 참 그리스도교는 주 예수 그분만이 길이요 ,진리요,생명이고 ,그분만이 죄를 용서하실수 있고,세상의 모든 피조물 가운데 그분만이 죄로 더렵혀지지 않은 삶을 사셨으며, 그분만이 경배 받아야되지 그어머니는 경배 받아서는 안된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로마 카톨릭주의는 수다한 방법으로 역시 어머니를 높이고 있다. 저명한 로마 카톨릭 저술가인 알폰수스 리규오리(Alphon년 Liguori)는 마침내 그리스도보다 마리아에게 기도드리는 것이 얼마나 더 효과적인지 설명하고 있다. 죄인이 한쪽 사다리를 올라가려고 노력할 때 그는 그리스도의 노한 얼굴을 보고 좌절한 채로 떨어져 버렸다. 그러나 그가 마리아의 사닥다리를 기어 올라갈 때 쉽게 올라갔다.
카톨릭주의 안에서는 더 나아가 마리아를 영광된 위치로 찬양하기 위한 시도가 ①“무원죄회태”(Immaculate conception)교리 1854년 비오9세가 선언,②“영원한 동정녀 교리”451년 칼케돈 회의,③ “몽소승천”교리(1951년 교황 비오12세가 마리아의 몸이 썩지 않았고 하늘로 오리워 졌다고 선언) 속에서 들어나고 있다.
성경에서 마리아의 무원죄회태 사상은 단 하나의 증거도 없고 오히려 반대되는 증거만 있을 뿐이다. 마리아는 주님의 선택된 그릇으로 경건하고 덕성 있는 여성, 즉 동정녀 이지만 다른 아담 가족과 마찬가지로 그 역시 한 인간일 뿐이었다. 유일하게 예외이신 한 분 예수 그리스도 그 자신 외에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라”(롬 3:23).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마리아도 구주를 필요로 하였고 “내 마음이 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다”(눅 1:47)고 말함으로써 이것을 솔직하게 시인 하였다.
마리아가 구주를 필요로 한다면 그 자신은 구주가 아니다. 만약 그가 구주를 필요로 했다면 다른 사람처럼 구원받고, 용서받고, 구속함을 받을 필요가 있는 것이다. 우리 주님의 신성이 어머니가 높임 받은 신격체가 된다는 것에 의존하지 않았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 대신에 하나님의 독생자이기 때문에 그는 거룩하셨다. 그의 신성은 하늘 아버지로부터 왔다. 배도로 기간 중에 마리아를 더욱 더 어머니 여신과 동일시하여 혹자는 ‘마리아의 몸이 썩는 것을 결코 보지 못했다’하고 또 그녀는 몸채로 하늘로 승천하여 현재 “하늘 황후”가 되었다고 가르쳤다.
마리아에게 기도하는 사상과 깊이 관련된 것이 로사리오(rosary)라 부르는 묵주 도구다. 이 로사리오는 작은 염주로 즉 15개의 묶음으로 된 사슬로 가 묶음마다 큰 염주 하나가 돋보이게 되었다. 로사이오에서 가장 많이 되풀이 되고 있는 기도와 로사리오의 주된 기도는 다음과 같은 “성모송”이다. 성모송은 로사리오 묵주를 사용하며 로만 카톨릭, 이슬람,일본 불교도,페니키아.브람난,비쉬누예배자들,시바예배자들이 사용했다.
완전한 로사리오는 성모송을 53번, 주의 기도문은 6번, 성체 신비 5번, 성체 묵도에 5번, 송영과 사도신경에 5번을 반복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예수께서는 반복하는 기도를 이방인의 하는 기도라고 하였다 그는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그러므로 저희를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고 말씀하셨다(마 6:7~13).



제 4장 성인들, 성인들의 날 및 상징들

로마 카톨릭교도들은 마리아에게 드리는 기도와 신앙에다가 여러 “성인”들을 높여 그들에게 기도하는 것을 덧 부치고 있다. 카톨릭의 견해에 따르면 이러한 성인 들은 순교자들이거나 또는 이미 죽은 자로 교황이 성인으로 선언한 교회의 유명 인사들이다.
그러나 성경은 “모든 참 그리스도인을 성도(성인)”들 이라고 말하고 있는 이에는 슬픈 일이지만 영적 성숙이나 지식이 부족한자 까지도 포함시키고 있다. 성인은 살아있는 사람이지 죽은 자들이 아니라는 것을 주목하여야 한다. “성인”이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기 원한다면, 그 성인은 살아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성경은 죽은 자들과 교통하려고 시도하는 것을 반복헤서 꾸짖고있다(사8:19~20)
바벨론 거짓 종교의 “어머니”에게로 다시 돌아 가보면, 우리는 사람들이 다수의 신들에게 영광을 돌리고 기도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은 바벨론 종교는 5,000명의 남신들과 여신들을 섬기는 것으로 발전되어 갔다. 카톨릭이 한 때 지상에 살아 있는 영웅들이라고 믿었으나 지금은 높은 곳에 있다고 믿는다. 위대한 어머니 경배와 같이 바벨론으로부터 그런 “신들”에 관한 사상이 각 나라들로 확산되어 갔다.
특정 직업과 날에 관련된 고대 신들에 관한 사상은 성인들과 성인들의 날에 대한 로마 카톨릭 신조에서 계속되어졌으며 질병에 도움을 박기위해 성인들에게 기도하는 것을 가르치고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하나님께 나아갈 때 왜 성인들에게 기도하여야 하는가? 카톨릭교인들은 성인들에게 기도함으로 하나님께서 다른 방법으로는 주시지 않는 도움을 얻을 수 있다고 가르침을 받는다. 그들은 하나님께 경배하고, 그리고 “첫 번째로 성모 마리아에게, 그 다음 거룩한 사도들에게, 그리고 거룩한 순교자들과 모든 하나님의 성도들에게 각각 기도한다.
로마 전 제국에서 이교주의는 그 한 가지 형태에서는 사명 되었지만, 로마 카톨릭 교회 내에서 다시 소생했던 것이다. 고대 신들에 대한 경배가(새로운 형태로) 계속 되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이와 같은 신들의 상(傷)도 사용하였다.
로마 카톨릭 교회 내에서 그러한 신상을 사용하고 있는 것은 현대 바벨론의 비밀을 푸는데 또 하나의 단서를 제공하는 있는 것이다. 헤로도터스가 말하였듯이, 바벨론은 각 나라들에 파고 들어간 모든 우상 숭배 제도의 원천이 되기 때문이다. 이교도들은 성화에 나오는 “신들”의 머리에 원이나 혹은 후광을 그렸다. 이 관습은 로마 교회 미술에서 그대로 계속되었다. 성 어거스틴의 머리 주의에 후광 원반이 있는 모습이다. 이 관습이 이교주의에서 차용된 것이라는 것을 알려면 머리 주의에 역시 원으로 된 상징이 있는 부처 그림을 주목하면 된다.



제 5장 방첨탑들(Obelisks)과 신전들 및 탑들

고대 국가들에서는 인간 모습의 남신 상, 여신 상들이 만들어지고, 또한 이교도 예배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는 “숨겨져 있는” 혹은 “신비”의 뜻을 지닌 많은 대상들이 만들어 졌으며. 이 예를 고대 오벨리스크(Obelisks)의 사용에서 찾아 볼 수 있으며, 오벨리스크는 “바알(니므롯의 칭호였음)의 상징인 태양 경배와 관련이 있다. 오벨리스크가 그 의도된 상징성을 성취하려고 하면 똑바로 세워져야 한다. 이리하여 태양을 향하여 위를 향하도록 해야 한다. 남근의 상징으로 똑바른 자세는 분명한 의미를 가졌다. 이것을 마음에 두고 보면 하나님의 심판이 이 거짓 경배에 선고될 때에 이러한 우상들이(오벨리스크) “서지 못하고” 넘어질 것이라고 한 것은 흥미있는 것이다.(사 27:9) 로마의 성 베드로 성당 앞에도 한 오벨리스크가 서있는 것은 흥미진진하다. 이교 시대에 비밀 종교가 로마에 들어 왔을 때 로마에서 오벨리스크를 만들어 세웠을 뿐만 아니라 막대한 비용을 들여 로마 황제들이 이집트의 오벨리스크를 운반하여 세워둔 것이었다.
로마 카톨릭의 지도자들이 이교주의에서 다른 아이디어를 차용해 왔듯이, 정교하고 화려하게 신전을 건축하는 일이 관례가 된 것은 하나도 이상스러운 것이 아니다. 세속적 사상을 지닌 지도자들은 고대 로마 종교의 신전보다 훨씬 더 광휘 찬란한 신전을 건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신약 성경에서는 성령이 더 이상 인간의 손으로 만든 전에 거하지 않음이 분명하다(행17:24). 하나님께서 이제는 성령으로 당신의 백성 -참 교회- 가운데 거하신다. 할레이 성경 핸드북에 의할 것 같으면 기원 후 222~235년 이전까지 교회 건물이 건축되었다는 것과 같은 기록이 나오지 않는다.
교회가 콘스탄틴 통치 때 정치적 권력을 가지고 부자가 되었을 때 정교한 건물 양식과 값비싸게 짓는 교회 건물들이 정착하게 되어 오늘날까지 계속되었고. 여러 세기에 걸쳐서 값 비싸게 건축된 대다수 교회 건물들은 탑 모양이 되어 왔다. 그러면 어떻게 교회 건축에서 이 탑 전통이 시작되었는가? 바벨론으로 소급하는 이론을 제시하겠다. 고대 탑들은 군사적 목적 즉, 망대(감시탑)로 세워졌다. 그러나 바벨론 제국에 세워진 많은 탑들은 전적으로 하나의 신전과 관련된 종교적인 탑들이다.
바벨론(우리가 언급한 다른 것들과 함께)은 종교적 탑들의 근원이 될 수 있는가? 인구 분산이 시작된 것은 거대한 바벨탑을 건축하고 있었던 동안이었다. 사람들이 각 지역으로 이주할 때 그들이 “탑”에 관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갔다는 것은 확연하다.
중국 종교에서도 이 탑들은 오랫동안 중요한 한 부분이 되었다. 힌두교에서는 “대사원 경내 위로 큰 파고다 탑들이 여기 저기 있는데 주변 지역 위에 우뚝 솟아 있어 어디서든지 사람들이 볼 수 있었다. 파고다가 수백 피트씩 높은 것이 많았고 사원의 신들이 생애 혹은 유명한 성인들의 생애(장면)를 새긴 조각들로 덮여 있다. 약간은 다른 형태이지만 이슬람교도들도 역시 종교 탑들을 두고 있다.
기독교계에서도 역시 탑들은 세웠다. 콜롱(Cologne)의 대성당의 탑은 길로부터 515피트나 솟아 있고, 독일에 있는 울름(Ulm) 성당의 탑은 528피트나 우뚝 솟아 있다. 비록 작은 교회아도 일정한 종류의 탑을 가지고 있음을 자주 볼 수 있다. 이것은 거의 의문이 제기되지 않고 있는 하나의 전통이 되어 버렸다. “오늘날까지 본래 남근 상징의 두드러진 표본이 아직도 존재하고 있으니...교회의 뽀족탑...그리고 오벨리스크...이 모든 것이 남근을 경배하는 조상들의 영향을 보여 주고 있다.”고 말한다.



제 6장 십자가는 그리스도인의 상징인가?

로마 카톨릭 교회는 십자가를 가장 중요한 상징들 중의 하나로 여기고 있다. 유아에게 물을 뿌릴 때, 신부는 이마에다 십자가 표시를 하고 “네 이마에 십자가의 표를 받으라”라고 말한다. 견신성사 때에 지원자들에게 십자가 표를 한다. 미사 때 사제는 십자가 표시를 16번이나 하고, 제단을 축복할 때에는 30번이나 한다.
개신교회의 대부분은 손가락으로 십자가 표시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십자가 앞에서 절하지도 않고 예배의 대상으로 사용치도 않는다. 개신교 신도들은 이런 것들이 비성경적이고 미신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뽀족탑이나 강대상 또 여러 가지 장식하는 방편으로 십자가를 보통 사용하고 있다.
십자가의 형상이 그리스도인 상징으로 여겨진 것은 그리스도 교회가 이교도화되기 시작할 때부터였다. A.D 431년에 교회와 사무실 안에 십자가가 도입되었다. 뽀족탑 위에 십자가가 세워진 것은 A.D 586년경부터 였다. 로마 교회는 6세기에 그리스도가 새겨진 십자가 형상을 재가하였다. 개인 집마다 하나의 십자가를 지녀야했던 것은 제 2차 에베소 회의부터다.
십자가가 그리스도인의 상징이라 해도 십자가의 기원이 그리스도인이라고 정확히 말할 수는 없으니 이는 십자가가 한 가지 형태나 또는 다른 형태로 그리스도인 시대 전에 그리고 많은 비 그리스도인 가운데서 오랫동안 신성한 상징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십자가의 형태는 고대 갈데아(Chaldea)에서 기원되었고 그 나라와 이집트를 포함한 인접 국가에서 담무스(Tammuz) 신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
중국인들은 “십자가를 가장 오래된 고안도구 중의 하나로 여기었다. 아프리카 대륙의 수사(Susa)에서는 원주민들이 깃체(Gitche)강에 십자가를 던진다.
카톨릭 백과사전은 “직각으로 두 선이 교차되는 가장 소박한 형태로 나타난 십자가의 상진은 동양이나 서양에 있어서 그리스도교가 도래된 것보다 훨씬 앞선다. 그것은 인간문명의 아주 먼 기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인정하고 있다. 그리고 40개의 십자가를 소개한다(라틴십자가,이집트 타우십자가,갈바리,켈트,성안드레,그리이스,모올타십자가등등.
십자가의 참 의미는 나무조각들이 문제가 아닌 그리스도의 영원한 구속이며 나무에 관한 논란은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이다.



제 7장 콘스탄틴과 십자가

로마교회에서 십자가 형상에 대한 숭앙에 기여한 두드러진 요인은 콘스탄틴의 “십자가 환상”과 그에 이은 그의 “개종”에 있다. 콘스탄틴의 환상의 십자가가 보다 더 로마교회 내부에서 더 강하게 영향을 끼친 십자가 예배 이야기는 그의 어머니 헤라나에 직결되어 있다. 326년 헬레나의 예루살렘 방문은 역사적으로 정확한 것으로 보인다. 밀비안 다리 전투에서 십자가가 콘스탄틴을 도아주지 않았다면 어떠하였을까? 십자가가 헬레나를 위해 기적을 행치 않았다면 은 어떠했을까? 그런데 십자가를 악한 영을 쫓아 낼 수 있는 형상으로 보아 온 것이다. 십자가를 부적 같이 지녀왔다. 번개를 쫓고자 교회 뽀족탑 꼭대기에 설치되었으나 꽤 높은 위치 때문에 번개를 끄는 것이 되어 버렸다. 콘스탄틴은 그리스인들에게 많은 혜택을 베풀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이는 사형을 폐지하고 로마에서 잔악하게 가하던 박해도 중지시켰다. 그러나 콘스탄틴의 개종이 진실된 것인지 신앙적 신조의 행동이었는지,노숙한 정치적 지혜의 발로였는지, 후자일 공산이 크다고 말한다.그에게 있어서 그리스도교는 수단이 될뿐이지 목적은 아니었다. 모세의 놋뱀같이 또 가정에서는 고통과 질병을 피하게 해준다고 상상하여 십자가를 사용하였다. 많은 나무 조각들이 보호자와 부적으로서 매매되고 교환 되었다.

제 8장 로마주의의 유물들

유물사용이 수반되는 심한 미신이야 말로 여러 세기동안 고질이 되어온 로마주의의 기만과 모순을 들어내 보이고 있다. 유물들에는 “참 십자가의 조각”,가시 면류관,가나 혼인잔치의 물항아리, 불에구운 생선 토막,예수의 구유,어린 예수가 입은 옷, “거룩한 포피” 예수님이 탄 나귀 뼈들,홍포,머리카락 , 마지막 만찬때의 사용한 컵, 유다의 빈 지갑, 빌라도의 세수대야, 동정녀 마리아의 머릿카락 견본, 나사렛에서 마리아가 살던 집등의 유물로 사용했고, 또 순교자들의 사체 숭배는 트렌트회의에서 결정되었다. 참된 예배는 신령과 진정으로 하는 것이지 과오의 계속이 아닌 것을 지적코자 한다. 설사 우리가 마리아 머리카락 한 오래기나, 사도 바울의 뼈나 예수의 옷을 가졌다 해도 하나님께서 이러한 것들을 예배의 대상으로 하는 것을 기뻐하실까? 모세의 놋뱀의 사건을 따르면 하나님은 기뻐하시지 않는다. 우리는 오직 실제의 머리나, 뼈나, 또는 옷의 실재의 공덕이 없다면 위조품으로 알려진 것에는 공로가 얼마나 보잘 것이 있겠느냐고 물을 뿐이다.



제 9장 종교적 사기

유물들과 교회직책 및 면죄부 판매는 중세시대 교회내의 수지맞는 사업이 되었다. 교회 보니파시오 8세는 1300년을 희년으로 선포했고 성 베드로 성당까지 순례 여행하는 이들에게 푸짐한 면죄부를 주었다. 연옥에 관한 사상과 몰렉 경배와 관련된 사상이 똑같은 원천에서 뻗어 나왔다는 것은 가능성이 매우 크다.
구원은 은혜로 주어지는 것 돈이나 인간의 행함이나 희생의 공로로 얻을 수 없는 은총에 의해서 주어지는 것이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하려함이라”(엡2:8,9).

제 10장 베드로가 첫 번째 교황이었는가?

로마 카톨릭 교회의 상설 수장은 로마교황이다. 카톨릭 교리에 의하면 이 사람은 지상 교회의 머리이고 사도 베드로의 후계자이다. 이 신조에 따르면 그리스도께서 베드로를 첫 번째 교황으로 임명하였고, 이 베드로는 로마에 가서 25년동안 이 직분에 봉사 하였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성경은 교회의 구성원이 동등한 것과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엡 5:23)이고 교황이 머리가 아니라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로마 카톨릭 교인들은 모든 교회가 그 위에 세워질 높은 지위가 베드로에게 부여되었다고 가르치고 있다. 이 주장은 지지하고자 마태복음 16장 18절을 내 세운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성경에서 베드로에 관하여 면밀하게 고찰한다면 그가 교황이 아니었다는 것은 명확하다.
1. 베드로는 결혼한 사람이었다. 2. 베드로는 사람들에게 그에게 무릎 꿇어 절하는 것을 허락지 않았다. 3. 베드로는 유전(Tradition)을 하나님의 말씀의 위치에다 놓지 않았다.
4. 베드로는 면류관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교황이 아니었다.
성경적으로 말한다면, 베드로가 로마 근처에 갔다는 증거가 없다. 신약 성경은 그가 안디옥, 사마리아, 욥바, 가이사랴 및 다른 지역에 간 것을 말하고 있으나 로마에 갔다고는 하지 않는다.



제 11장 교황 직무의 이교적 기원

바벨론의 왕, 창설자인 니므롯은 바벨론의 정치적 지도자이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종교지도자였다.
로마가 세계를 정복하였을 때에 바벨론으로 부터 확산되어 많은 국가에 잠입 발전되어 온 이교주의는 로마의 종교제도 안으로 흡수되었다. 이것에는 이교 대제사장인 최고 승원장(Pontifex Maximus)사상이 포함되었고 니므롯 통치하에서 원천적으로 수행되어 왔던 바벨론 이교주의는 로마에서 율리어스 케에자르 통치권 아래서 혼합되어졌다.
로마황제는 (콘스탄틴을 포함) 그라시아노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로 거절할 때인 376년까지는 최고 승원장 직무를 계속했으며 그라시아노는 이 명칭과 직무를 우상적이고 참람된 것으로 보았다, 이때쯤 되어서 로마의 주교인 데마수스(Demasus)가 비밀종교의 공식적인 최고 사제인 최고 승원장(Pontifex Maximus)로 선출되었다. 사도 베드로가 시몬베드로로 알려졌는데 그때 베드로 뿐만 아니라 1세기에 로마에간 종교 지도자가 있었으며, 사실은 후에 로마에 가서 가짜 그리스도인 종교를 세운 것은 사마리아에서 마술을 하던 시몬이었다(행 8:9) . 어두관을 볼때 H.A아이론사이드는 교황이야 말로 “바벨론 비밀 종교의 대 사제의 직계 후계자이며 어신(魚神) 다곤의 신하다”.라고 했다. 교황 직무가 이교주의와 그리스도교의 혼합물의 소산품이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팔륨, 어두관, 바벨론식 예복들과 신비의 열쇠들, 그리고 이교 대제사장인 최고 승원장이란 명칭은 모두 이교주의에서 차용해 온 것들이다. 팔륨은 그리스도교 이전에 그리스와 로마 이교 성직자가 입은 제복이다, 이 모든 것들과, 그리스도가 당신의 교회에 교황의 직무를 결코 제정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교황이 그리스도의 대리자나 사도 베드로의 승계자가 아닌 것을 확실히 보여 주는 것들이다.



제 12장 교황의 부도덕성

제시되어 온 결정적 증거에 따르면 많은 교황들은 그 품성과 도덕성에 있어서 그리스도 또는 베드로의 대표자라기보다는 이교 제사장들의 계승자들임을 들어내 보이고 있다. 어떤 교황들은 그들 행동이 심히 타락하고 너무 야비하기 때문에 신앙을 전혀 갖지 않았다고 공언하는 사람들까지도 교황을 수치스럽게 여겼다. 교황이 자행해 온 죄상들은 간음, 남색, 성직매매, 강간, 살인, 술 취하는 것과 같은 죄 상들이었다.
교황 세르지오3세는 교황 직무를 살인이란 방법을 통하여 얻게 되었고 통치시 “음녀들의 통치”로 알려진 기간(903~963)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세미라미스에 비등한 (그녀의 타락한 도덕성으로 인하여)Theodora라고 한 여인은 교황의 첩 마로지아와 함께 “자기들의 정부(정부)들과 사생아들로 교황의자를 채웠고 ,교황청을 도둑때의 소굴로 만들었다”. 교황의 선출과 생활은 상대를 제거하고 음모하여 암살하는 반복되는 일이있었다. 교황요한10세지지하고 마로지아가 그를 질식사 시켜 제거하고 레오6세를 교황이 되게하고 또 마로지아의 아들 요한 9세가 교황이되고 955년에는 마로지아의 손자 요한12세 교황이 되었으며 카톨릭백과사전은 그를(추잡하고 부도덕적인 사람으로 그의 생애는 라테란(교황궁전)을 갈보집이 돼 버렸다고 말하리만큼 되어 로마의 도덕적 부패는 일반이 증오하는 주제가 되어버렸다. 또 보니파시오7세는 도둑질한 돈을 마구뿌림으로 자기 직위를 지탱하였고, 베네딕도 8세는 “공개적으로 뇌물로 교황의 직무를 매수하였다” 그다음 요한 19세도 역시 교황권을 매수했다.
그래서 성직매매가 일반적이고 부패가 너무 심해 결과적으로 세속적 통치자가 개입하게 되고 왕 헨리3세는 클레멘스2세(1046~1047)를 교황의 직위에 임명하였는바 “이는 더러운 성직매매나 간통에 물들지 않은 성직자를 로마에서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또 많은 교황들이 살인을 저질렀으나 인노첸시오 3세는 살이하는데 전임자들을 능가했다.
단테가 로마를 방문하고 바티칸을 “부패 타락의 파종자”로 표현 하였을 정도다.단체는 보니파시오를 교황 니콜라스3세와 클레멘스5세와 더불어 “지옥의 낮은 부분들”로 낙인 찍었다. 또 교황 레오10세가 “무한대의 쾌락에 무제한하게 자기 자신을 바쳤다고 한다”. 로마카톨릭 교회가 유일한 참 교회라는 주장은 “사도직 계승” 교리이며 이 계승을 완전케 하자면 여자교황의 가능성까지도 고려해야한다. 그러나 구원이라고 하는 것은 베드로까지 소급하는 교황 계통을 탐색하는데 의존되는 것도 아니다. 물론 그리스도를 나타낸다고 주장하는 종교 제도들에도 의존되지 않는다. 구원은 그리스도 그 분안에서만 있다.



제 13장 교황은 무류(無謬)한가?

로마의 제도에서 이미 만연해온 많은 모순들에 덧붙여 고대 야누스 신처럼 자기들에게 “오류가 없다고” 주장하기 시작한 교황들이 있었고. 도덕성과 정직성에 있어서 매우 볼품없는 모습을 보인 교황들 때문에 모호성이 그들 직무와 얼마만큼 관련 될 수 있는지에 대하여 당연히 의구심을 갖게 된다.
1870년 바티칸 회의에서 “로마 교황이 권위를 가지고 말할 때, 모든 그리스도인의 목자와 교사로써 직무행사시 전 교회가 받아드려야 하는 신앙 또는 도덕의 교리를 규정할 때 복되신 베드로안에서 약속하신 신의 도우심 때문에 무오하며.......결과적으로 로마교황의 이러한 정의들은 변경할 수 없다” .이 교황 모오류론이 로마 카톨릭 교회의 공식교리가 되어 버렸다.
교황은 친히 “가장 거룩한 주”, “세계 교회의 우두머리”. 주교들의 주권적 최고 사제“. ”대 제사장“ ”예수 그리스도의 입”“그리스도의 대리자”등의 칭호를 사용해 왔다. 예수께서는 그의 지상 사역 생애 동안에 가시 면류 관외에는 어떤 관도 쓰시지 않았다. 많은 교황들의 부도덕성은 특별히 지나간 세기들에 있어서 거룩함과 순결함으로 완전하신 그리스도와 아주 대조적이다.
이것들을 볼 때 교황이 “그리스도의 대리자”라고 하는 주장은 사실상 근거 무근인 것으로 믿는다. 1612년 초에 안드레아스 헬 위그(Andreas Helwig)는 자기가 저술한 로마의 적그리스도라는 책에서“ 그리스도의 대리자(Vicar of Christ)란 칭호가 666이라는 수의 합이라고 지적했다. 라틴어로 ”하나님의 아들의 대리자(Vicarius Filii Dei)라고 쓴 것에서 각 알파벳의 수치는 다음과 같다. i는 1(여섯 번 사용됨) I는 50, U나 V는 5, C는 100, D는 500을 나타내 이 모두를 합산할 때 전부는 666이 된다.
신약 성경중 200개의 헬라어 명사들 중에서 이 666수치를 가지고 있는 것이 오직 하나가 있는데 그것은 paradosis로 “유전”으로 번역된다(행 19:25;마15:2) 부와 유전은 로마 교회를 썩어 지게 하는 두 요인이었으며 부는 행실과 정직을 부패시켰고, 유전은 교리를 부패 시켰다.



제 14장 잔악스런 종교 재판소

중세기에 타락한 교회가 너무 공공연하게 썩어 버렸기에, 많은 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항의하여 일어선 이유를 쉽사리 이해할 수 있다. 교황의 거짓 주장들을 반대하고 그 대신 구원과 진리를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 본 고귀한 영혼들이 많았다. 이들은 “이단자”로 낙인 찍혔고 로마 카톨릭 교회에 의해 참혹하게 박해 당했다.
1252년 교황 인노첸시오 4세가 발표한 비 인도적인“박멸에 관하여”(Ad Exstirpanda)는 그러한 박해들을 명령한 문서중 하나였다. 이 문서에서 이단자들을 “독있는 뱀처럼 박살 내 버리라”고 기록되어있다. 이 문서는 고문 사용을 정식으로 인정했다. 세속 권력으로 이단자들을 화형시키라고 명령하였다. 또 알렉산델 4세,클레멘스4세,니콜라오 4세,보니파시오 8세등이 쇄신 또는 강화시켰다.이들이 행한 고문,고통의 방식은 입으로 이루 말할 수 없는 처참한 방법들이 책에서 나타난다. (파문,화형,손발을 묶고 뒤로눕혀서 밧줄로 감아 죄여 올리는 기계,무거운 집게로 손톱을 뽑아 내거나 신체의 민감한 부분들을 뜨겁게 지졌다.관절을 탈골시키고,스페인 구두,철갑처녀,로마교회의 가르침에 반대한 사람들의 귀와 입속에 끓는 납을 부어 넣기도 했다). 종교 재판소에서 자행된 이 신앙적인 편협이 전쟁을 일으켜 전도시가 휩싸이기도 했다(1209년 베지에르즈 에서는 6,000명이 칼에 도륙되어 그 피가 흥건하게 거리로 흘러 내렸다. 또 1572년 파리에서 “성 바돌로매의 축제일”에 100,000의 유그노교도들(개신교도)이 피의 대학살을 당했다.
면죄부 판매나, 사람들이 신상을 우상으로 경배하는 것, 혹은 교황들이 부도덕하게 살았던 이러한 것들이 교회의 공식적인 법들과 상치되기 때문에 “남용”으로 보거나, 혹은 용서 받을 수 있는 것으로 설명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비록 고문이 실제로 규정한 것 이상으로 행해졌다 할지라도, 교황이 조서로 종교 재판소에 명령했고 교황들이 계속해서 확인하였다는 사실은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조치들이 과연 우리의 원수들에게 뺨을 돌리고 그들을 용서하고, 우리를 멸시하는 자들을 선대하라고 말씀하신 그분의 대표자들의 행위라고 누가 믿을 수 있겠는가?



제 15장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

로마 카톨릭 교회에서 교황 다음의 고위서열에 속한 사람들은 “추기경”단이다.상경은 그리스도께서 사도들, 선지자들,복음 전하는 자들,목사들과,교사들을 교회에 두셨다고 엡4:11에서 말하지만 그리스도께서 추기경을 임명했다는 기독을 찾을 수없다. 고대에는 추기경들이 로마의 주요한 성직자였고 라틴어cardo로 이는 “돌쩌귀”를 뜻하는 바 중추적 성직자 요원들을 가르킨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돌쩌귀는 이교신 야누스의 사제들이었다. 야누스는 시작의 신으로 달력 1월(January)이 유래되었다. 야누스는 “여는 자와 닫는 자”로 알려졌고 경배를 받았기 때문에 우리는 빌라델비아 교회에 보내는 예수의 다음 말씀을 이해할 수 있다, “거룩하고 진실하다.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 이가 가라사대....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계3:7,8절) 여기서 보듯이 야누스는 위조품이고 예수께서만 참으로 여시는 자요 닫으시는 자시다. 그리고 교황 추기경다음으로 주교들(감독관들)이다. 이교 직책과 이교의 대제사장(Pontifex Maximus)의 칭호가 로마주교에게 적용되었다. 또 “사제”란 말의 그 참 뜻은 교회의 지도자들에게만 국한 시키지 않고 그리스도인 신자 개개인에게 적용된다.-베드로는 목회자들에게 “밑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말라고 가르쳤다. 여기서 맡기운자(heritage)로 번역된 단어는 kleeron으로 성직자를 뜻한다. 성직자와 백성(평신도)사이와 이 인위적인 구분을 반대한다고 해서 목회자들이 합당한 존경과 영예 즉,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을 더 할것이니라(딤전5:17)한 존경을 받지 말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예수께서 아부하는 칭호를 반대하는 말씀을 하셨을 때 제자들 사이의 겸손과 평등이 그 기본적으로 뜻하는 사상이었다. 그러면 우리는 인간들이 자기 자신을 “하나님의 맡기운 자들 위에” 주장하는 것을 추구하는 엉터리 고위직의 권위를 받아 들여야 하는가 아니면 거절하여야만 하는가? 인간이 영광을 받는 것 대시에 그 모든 영광을 하나님에게 돌려야 하는가?



제 16장 사제직과 독신생활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을 가르침을 쫓으리라 하셨으니 자기 양심이 화인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 하는 자들이라 결혼을 금하고” (딤전 4:1~3).
바울은 이 구절에서 참된 믿음으로부터 떠나는 일이 후에 혹은 후세에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믿음으로 부터의 이탈은 역사를 알고있는 사람들이 이해하고 있는 바와 같이 초기 세기들 때부터 일어났다.
위 성경절은 사제의 독신 생활 교리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히스롭은 그러한 결혼하지 않는 세자들의 황후 세미라미스(Semiramis)의 사제직의 고위 계층 구성원들이었다고 지적한다. 성경에는 성직자들이 독신 생활을 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법이 나오지 않는다.성경은 결혼을 금하는 것은 “마귀들의 교리”라고 규정하고 있다. “결혼을 금하는”교리는 카톨릭 교회 안에서 점진적으로 발전되었을 뿐이었다.
이 강요된 독신 생활 때문에 수많은 사제들이 그들이 걸려 넘어지고만 부도덕성으로 인하여 그 양심에 화인 맞는 것으로 끝나고 외식하므로 거짓말하였다.사제들에게 결혼을 금하는 이 교리는 여러 세기에 걸쳐 “고해성사” 때문에 곤경에 처하였다. 사제에게 고해하는 사상은 성경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바벨론에서 나왔다. 검은 색은 로마 카톨릭 교회의 사제들이 입은 성직자의 예복의 독특한 색이고, 어떤 개신교파에서도 이 관행을 따르고 있다. 그러나 무엇 때문에 검은 색을 사용하는가? 우리들 중 어느 누구라도 검은 예복들을 입은 예수와 그의 제자들을 그릴 수 있겠는가?
성경은 바알 제사장들이 검은 색 옷을 입었다고 하고 있다. 우리 성직자들이 바알의 제사장들의 예복을 흉내 내는 것이 왜 생각하기 이상하고 말하기 곤란하단 말인가!“ 그러나 이 체발이 이교국가들 가운데서는 행해졌었다! 부처는 신의 명령이라고 가상된 것에 순종코자 그의 머리를 밀었다. 이집트의 오시리스의 사제들은 머리를 미는 것으로 구별되었다. 박쿠스(BACCHUS)의 사제들은 이 체발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이러한 체발이 제사장들에게는 금지되었었다: ”제사장들은 머리털을 깍아 대머리같게 하지 말며:(fp21;5)이 “대머리가” 레위기19:17에서 “머리가를 둥글게 깍지 말며”한 것으로 미루어 보아-둥글게 머리를 깍은 체발인 것으로 암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제 17장 미사

사제들이 떡과 포도주를 마사 예식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바꿀 권세를 가지고 있는가? 카톨릭의 입장은 카톨릭 백과사전에서 인용한 다음 말로 요약할 수 있다. “거룩한 의식 때 떡과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바꾸어진다. 이것은 화체설(化?設)이라고 부르니 성찬 예식 시에 떡과 포도주의 실체는 남아 있지 않고 떡의 전 실체가 그리스도의 몸으로 변하고 포도주의 전 실체가 그의 피로 변하여, 떡과 포도주 종류나 외적인 형태만 남아 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축사하신” 후라도 떡과 포도주가 그분의 문자 그대로의 살과 피로 변하지는 않았다. 예수께서(문자 그대로) 그 자리에 아직도 계셨기 때문이다. 포도주가 사실 그대로의 피였다면 피를 마시는 것이 성경에서 금지되었던 것이 아닌가?(신 12:16; 행 15:20)
트렌트회의에서 신자들은 화체설의 신조가 구원에 필수 불가결 하다고 선언하였으며 이를 부인하는 사람들에게 저주를 선포하였다. 동 회의에서는 목사들에게 미사의 물질적인 이 요소가 그리스도의 한 부분으로 살, 뼈들 및 신경들을 포함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그리스도 전부를 포함하고 있다”고 설명하도록 명령하였다.
화체사상이 그리스도와 함께 시작되었는가? 역사가 두란트(Durant)는 로마 카톨릭 교회 내에서 거행되고 있는 화체 신조가 “고대의 원시 종교 의식들 중 한 가지”라고 말하고 있다.
카톨릭 주의에 관한 저명한 한 저술에서는 미사 때에 사제들이 하는 기계적인 행사를 이렇게 요약하였다. “그는 16번 십자가 표시를 한다. 돌아서서 회중들을 향하여 6번 하고, 눈을 하늘로 향하고 11번 하고, 제단을 8번 입 맞추고, 손을 4번 접고, 가슴을 10번 치고, 21번 머리 숙여 절하고, 8번 무릎을 구부리고, 어깨를 7번 숙이고, 십자가 표시를 30번 하는 것으로 제단을 축복하고, 손을 제단에 21번 놓고, 11번 은밀하게 기도하고, 13번 큰소리로 기도하고, 떡과 포도주를 들고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바꾼 후, 거룩한 잔을 10번 열었다 덮었다 하고, 20번 앞으로 뒤로 왔다 갔다 한다.” 이 복잡한 의식주의에 부가하여 현란한 색깔의 제복들, 양초들, 종소리, 분향, 음악 및 로마주의를 알리며 보이기위한 화려한 구경거리를 사용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단순한 기념 만찬과 이 얼마나 대조적인가!



제 18장 물고기, 금요일 및 봄 제전

많은 카톨릭 교인들이 추측컨대 금요일에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매 금요일마다 고기를 먹지않는다. 성경에 따르면 금요일과 물고기가 관련되어있지 않은 것이 확실하다. 금요일의 유래는 Freya(프레야)란 이름음으로부터 왔으며.프레야는 평화,기쁨,다산의 여신 즉, 다산의 상징인 물고기로 알려졌다.물고기는 중국인,앗시리아인,페니키아인,바벨론인등에게 다산으 상징이었다.물고기(fish)는 번식혹은 다산을 암시하는 “다그(dag)"에서 유래.
또 비너스(Venus)는 로마인들 중 성적 다산의 여신으로 불리워 졌다. veneral disease(성병)도 비너스에서 유래, 그러면 부활절의 유래는 어디서 왔나? 부활절(Easter)은 흠정역 성경에서 한번나오며, “유월절후에 백성앞에 끌어 내고자 하더라”행 12:4,여기서 유월절은 파스카이고 부활절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본래적의미는 이교여신 즉, 낮과 봄의 떠오르는 빛의 여신 이름으로부터 온다. Easter는 Eostre, Ostera, Astarte, Ishtar의 현대적 표현이며 Hislop에 의하면 Ishtar가 Easter란 발음으로 일컬어지게 되었다.
카톨릭 학자들은 교회 안에 이교주의에서 빌려온 관습들이 있다는 것을 시인하고 있다. 그 유래가 이교도부터였다 하여도 많은 것들이 그리스도교화 될 수 있다고 판단을 내린다.
고대 신화에 의하면 -여신이 굉장한 달걀로부터-아스타르테(Astarte-Easter)가 부활되었다. 달걀은 여신 이스터(Easter부활절)을 상징하게 되었고, 고대 드루이드교도는 거룩한 상징으로, 로마 풍작의 여신 케레스행렬에서 달걀이 앞서 갔고, 박쿠스를 성별했고, 중국인은 거룩한 축제에 염색또는 색칠한 달걀을 사용했다. 그러면 그리스도교와 어떻게 연관이 되었는가? 어떤 사람은 병아리가 달걀에서 나오듯이 , 그리스도께서 무덤으로부터 나오셨다고 제시하여 달걀을 그리스도교회화 시키려고 하는 것 같다. 비록 달걀이 이교도들에 의해 사용되었지만 무덤 앞에 놓인 큰 돌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아 계속 사용할 수 있지 않는가? 환언하면 이런 것들을 이교도들이 한 것처럼 이교 신들에게 영광을 돌리기 위해 사용하는 대신에 오직 그리스도께 영광 돌리기 위해 이 모든 종류의 인기 있는 관심들을 받아들이면 어떤가? 이 모든 것이 논리성을 띄고 있는 것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성경 그 자체 안에는 보다 더 안전한 지침이 있다. 즉, “너는 스스로 삼가서... 또 그들의 신(이교도)을 탐구하여 이르기를 이 민족들은 그 신들을 어떻게 위하였는고, 나는 그와 같이 하겠다 하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는 네가 그와 같이 행하지 못할 것이다...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이 모든 말을 너희는 지켜 행하고 그것에 가감하지 말지니라”(신 12:30~32)



제 19장 겨울축제

우리가 달력에 표시한 12월 25일 크리스마스는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신 날인가? “크리스마스”란 말을 일별하면 그 자체가 혼합물인 것을 보여 주고 있다. 이 말이 그리스도(Christ)의 이름을 포함하고 있지만 또한 “미사(Mass)”도 들어 있다. 우리가 정교한 의식들, 죽은자들은 위한 기도, 성체 예식 및 복잡다단한 로마 카톨릭 미사 의식들을 점검할 때, 어느 누구라도 이것을 복음서의 역사적 예수와 참으로 관련 지을 수 있는가?
예수의 생애와 봉사는 그러한 의식주의와 같이 복잡하지 않았다. 바울이 그랬던 것처럼 미사같은 것들에 준 이교도의 영향 때문에 사람들이“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Simplicity)에서 떠나 부패할까봐 우리도 두려워”한다(고후11:3). 이러한 방법으로 고찰할 때 “크리스마스”(Christ-mass)는 자기 모순성을 간직하고 있다.
성경이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일자를 표명하지 않았지만, 아마도 일년 중 가을에 있었을 것이라고 보여주는 징후들이 있다. 물론 예수께서 태어나신 정확한 일자를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분이 태어 나셨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예수의 죽으심을 기념하였지(고전 11“26). 탄생을 기념한 것이 아니었다. 카톨릭 백과사전은” 크리스마스는 교회의 초기 축제일에 들어 있지 않았다.
프레이저(Frazer)는 “전 로마와 그리스에서 12월 25일을 공휴일로서 축하는 최대의 이교 예배는 이교 태양 신 예배인 미트라 종교였다. 이 동계 축제를 탄생 즉, 태양의 탄생(The Nativity of the Sun)이라고 불렀다. 이교 태양 관습이 로마에서 “그리스도교화”되었을 때 혼란이 야기된다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이야기다.



제 20장 혼합물의 비밀

우리는 수많은 예증들을 통하여 이교주의와 그리스도교의 한 혼합물이 로마 카톨릭 교회를 만들어 낸 것을 보아왔다. 이교도들은 어머니 여신을 예배하고 기도하였다. 마찬가지로 배도한 교회는 마리아란 이름 아래서 어머니 예배를 채택하였던 것이다. 이교도들은 남신과 여신들을 생활상의 여러 가지 날들, 직업들 및 사건들과 관련시켰던 것이다. 이러한 제도가 채택되었고, “신들”은 “성인“들로 불렸다. 이교도들은 자기들 예배에 있어서 이교신들의 신상이나 우상을 사용했던 거처럼, 배도한 교회도 그런 것들을 단지 이름만 달리하여 마찬가지로 사용했다. 고대로부터 여러 형태의 십자가 미신적인 방법으로 사용되었다. 이들 사상 중 어떤 것이 채택되어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관련되었다. 십자가가 하나의 상(像)으로서 그 외형이 높여 졌을 때 십자가상에서 ”다 이루신“ 참된 희생이 화체설, 비밀극 및 죽은 자를 위한 기도와 함께 미사의식에 의하여 애매하게 되어 버렸다. 반복되는 기도, 묵주 및 유물 - 이 모두가 이교주의로부터 얻어온 것이며 그리스도의 표면적 모습으로 나타난 것들이다. 이교 직책과 이교의 대제사장(Pontifex Maximus)의 칭호가 로마주교에게 적용되었다. 예수께서 어느 누구에게도 아버지로 부르지 말라고 했건만, 이 사람이야 말로 아버지들 중의 아버지, 곧 교황으로 알려졌다.
카톨릭 학자들도 자기네 교회가 이교주의와 그리스도의 혼성물로부터 발전해 온 것을 수긍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학자들의 견해로는 이 혼합물이야 말로 그리스도교의 승리였던 것이다. 카톨릭 백과사전은 다음과 같이 진술하고 있다. “교회가 음악, 빛 향수, 세정식, 꽃장식, 천개, 부채, 스크린. 종, 제복등과 같은 많은 다른 것들을 채택한 것과 같이 초, 분향, 정결케하는 물을 초기부터 예배에 짜 넣었다. 이런 것은 어느 특정 우상 종파에서만 있었던 것이 아니고 거의 모든 우상숭배 종교들에 공통적으로 있었던 것들이다!”
성수, 기름, 빛, 분향, 노래, 행렬, 부복, 제단장식, 사제의 제의(祭衣)는 자연히 보편적으로 종교적 본능이 되는 것들이다.
구약성경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되풀이하여 빠져 들어간 배도는 혼합물의 배도였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통상적으로 참 하나님의 예배를 전적으로 배격하지 않은 채로 이방인의 의식을 자기들 예배에 혼합시켰던 것이다. 그들은 금송아지를 섬긴 것도 이런 경우와 해당한 것이다(출 32장). 우리 모두는 그러한 예배가 거짓되고 이교주의적인 것이며, 하나님 보시기에 가증한 것으로 알고 있다.
광야에서 40년간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장막(성막)을 운반하였다. 그러나 그들 중 어떤 사람들은 이것에 만족치 않고 어떤 것들은 부가시켰다. 그들은 또한 바벨로니아의 장막을 만들어 운반 하였다. “너희가 몰록과 너희 우상 기윤의 장막을 지고 가리라”(암 5:26, 행 7: 42,43) 이들은 태양신 바알과 어머니 신 아스타르테(Astarte)의 다른 이름에 불과 하였다. 이 혼합물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의 예배와 찬미와 희생과 제물을 거절하시었다.
또 다른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비밀의식을 거행하였고, 성소들은 건축하였으며 부적을 사용하였으며, 자기 자녀들로 불을 지나게 하고, 일,월,성,신을 예배하였다(왕하 17:9~17). 사사시대 여호와의 말씀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한 레위인 제사장이 “신들의 집” 안에서 섬겼고 “아비”라는 칭호로 불렀다(삿 17:3,10:13,18:6) 에스겔 시대의 예루살렘 성전 입구에 한 우상이 놓여 있었다. 제사장들이 벽에 그려진 거짓 신들께 분향 올렸다. 이 많은 성서적 예증들을 성찰하면 하나님께서는 혼합물로 하는 경배를 기뻐하시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
참된 예배는 “신령과 진리로” 해야지(요 4:24), 이교적 오류로 해서는 안 된다. 참된 그리스도인의 목표가 혼합물에 기초한 종교가 아니고, 한 때 성도들에게 전수된 본래의 단순하고, 권능 있으며, 신령한 신앙으로의 복귀라고 확신한다. 더 이상 의식의 미로나 무력한 유전에서 방황하지 말고 “그리스도를 향하여 진실함(단순성)”을 찾아 “그리스도께서 종의 멍에로부터 우리로 자유케 하신 자유”안에서 기뻐하자(고후 11:3; 갈 5:1)
구원은 인간 사제, 마리아, 성인들, 또는 교황을 의지하는데 있지 않다. (요14:6. 행 4:12)
우리의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는 분, 우리 믿음의 도리의 사도이며 대 제사장, 하나님의 어린양, 우리 구원의 선장, 하늘로부터 오신 떡, 생명수, 선한 목자, 평강의 왕, 왕중의 왕, 그리고 만주의 주이신 예수를 바라보자!

출처 : 창골산 봉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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