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적인 가정생활
*성경이 말하는 결혼의 원리(마가복음 10장 1~12절)
1) 상호인격의 보완과 성숙의 원리이다.
6절에 보면 '창조 시로부터 저희를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으니'라고 말씀하심을 따라 결혼은 남자와 여자의 보완적인 관계임을 밝히고 있다. 창세기 2장에 의하면 하나님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창 2:18). 하나님은 배필을 지으시되 돕는 배필을 지으심을 통해 보다 온전한 결혼이 되도록 설계하셨다. 그러므로 결혼이란 남자와 여자가 서로를 도와 하나 더하기 하나(1+1)는 둘이 아닌 온전한 하나를 이루는 평생의 과정이다.
2) 떠남의 원리이다.
7절을 보면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결혼을 떠남을 전제로 하고 있다. 먼저는 외적인 떠남이 있다. 부모와의 의존 상태에서, 부모의 간섭으로부터 떠나는 것으로 경제적 독립을 뜻한다. 떠남의 내적인 면으로는 인격적인 떠남을 의미하는 것으로 여기에는 불행한 요소들, 어릴 때 받은 상처나 굴절되고 왜곡된 잘못된 배움과 영향으로부터의 단절을 포함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영적으로는 신앙적인 요소까지 포함되어야 한다. 이제는 단순히 내 부모가 믿는 하나님에서 내가 믿는 나의 하나님으로 고배하는 질적인 변화, 신앙의 주체성이 확립되는 것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떠남의 원리는 부모와의 종속적 관계에서 진정한 자기 자신이 되어야 하는 개별성을 확립하는 것이다.
3) 하나됨의 원리이다.
8절에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하나됨의 원리, 연합을 말하고 있다. 진정한 떠남과 독립이 있을 때 연합이 가능하다. 이 연합은 육체적이고 심리적이며 영적인 연합이다. 여기에 결혼의 신비가 있다.
4) 하나님 앞에서의 불변의 언약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예수님은 이혼과 재혼을 오직 음행이라는 부도덕의 근거에서만 허락하셨다. 음행이라는 뜻의 헬라어 포르네이아는 육체적인 성적 부도덕을 뜻한다. 예수께서 음행을 이혼이 허용될 수 있는 유일한 근거로 삼으신 이유는 그것이, 신성하게 제정되었고 성경에서 뜻을 밝힌 대로 결혼의 토대가 되는 '한 몸' 원리를 어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다 적극적으로 말하자면 부도덕 때문에 이혼하는 것이 허용은 되지만 반드시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예수께서 본문 전체를 통해 강조하신 것은 결혼의 영속성이다. 본문에서 '짝지어 주신 것'을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함께 멍에를 메다'라는 뜻이다. 부부의 결속은 인간의 계약과 수시로 흔들리는 감정을 뛰어넘는 신성한 멍에이다. 결혼 생활의 갈등과 어려움 에도 불구하고 이 멍에를 기꺼이 지고자 할 때 고통은 소망을 이루어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해 결코 소망이 부끄럽지 않게 될 것이다.
"부부의 영성 개발"
1) 하나님 앞에 홀로 서는 존재, 자기 자신이 되어라.
서정윤은 그의 시<홀로 서기>에서 '홀로 선다는 것은 둘이 만나 서는 게 아니라 홀로 선 둘이가 만나는 것이다'고 말했다. 그렇다. 홀로 설 수 있는 사람만이 건강한 결혼을 만들 수 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스스로 자신이 되는데 있다. 타인의 인정이나 칭찬 혹은 비난 때문에 자기 자신이 되지 못한다면 결코 영적인 성장을 할 수 없다. 세상은 우리를 나 아닌 다른 존재가 되라고 밤낮 없이 등 떠밀고 있다. 그런 세상에서 자기 자신이 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영적인 싸움이다. 영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하나님 앞에서 내가 누구인가에 대한 바른 정체성의 확립이 무엇보다 선결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자신을 사랑하는 않는 한 다른 이의 사랑을 받아들일 수 없으며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 또한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아프도록 연야한 모습이야말로 인간의 특성이며, 우리가 반드시 끌어안아야 할 모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그러한 자신의 진실보다 그럴듯한 가면(거짓 자아)를 쓰고 연기하듯 살아간다. 그러나 영적인 삶이란 자신의 연약함을 받아들이는데서 시작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참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참된 모습을 발견해야 한다. 허물 많은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있는 그대로의 나의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눈이 열려 자신이 '하나님께 사랑 받는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존재의 핵심적 진리이다. 하나님 앞에 홀로선 존재임을 알고 자기 자신이 되는 것, 영적 성장의 첫 관문이다.
2) 부부는 서로의 다름을 통해 성장해야 한다.
융은 부부관계만큼 서로를 성장시키는 것은 없다고 하였다. 대부분의 경우, 부부는 판이한 역사과 개성의 결합이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말이 상징하듯이 남자와 여자는 매우 다르다. 그 뿐인가? 영적으로도 서로 다른 존재이다. 그러므로 가정이란 서로를 알아 가는 평생 학습장이다. 먼저 우리는 내가 누구인지를 알아야 한다. 나란 존재의 기질과 성격, 가치관 등 나됨에 대해 알아야 한다. 배우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제대로 알기도 전에 서둘러 학습장을 빠져 나오지 않은가? 그 결과 남는 것은 상대에 대한 피상적이고도 단편적인 지식과 편견, 그로 인한 상처뿐이다. 존 파웰은 자기 부모의 묘비에 "여기 전혀 서로를 몰랐던 두 사람이 잠들다"라고 새겨야 될 것 같다고 서글프게 토로한 바 있다. 그의 아버지는 전혀 감정을 털어놓을 줄 몰랐고 따라서 그의 어머니는 남편의 속을 알 길이 없었다. 부부가 다름을 통해 성장하기 위해서는 상대에게 나를 열어 보이는 것, 내 외로움과 두려움에 대해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 내 감정에 솔직해지는 것, 그리고 그 감정이 내게 얼마나 중요한지 말하는 것, 나아가 상대의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수용하는 자세가 요구된다. 서로를 알려면 서로의 내면으로, 의식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서로의 마음 깊은 곳에 영혼의 닻을 내리게 된다. 다른 것은 틀린 것이 아니다. 다만 다를 뿐이다. 다름은 오히려 풍성함을 위한 축복이다. 이때 우리는 비로소 서로를 세우는 '돕는 배필'로서 가정을 만드신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3) 부부는 함께 예배드리며 하나님을 경험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숨이 막힐 듯한 그런 경험, 우리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믿는 그런 자기중심적인 신념에서 벗어나도록 우리를 승화시킬 곧 경외감을 맛보는 것이 필요하다. 모세가 가시떨기 불꽃 가운데 하나님을 만난 것처럼 거룩한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들어가기를 원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진정한 예배를 경험하고 싶어한다. 이럴 때 우리의 심령 깊은 곳에 불꽃이 일어나며 영혼이 새롭게 된다. 건강한 영혼은 우리에게 두 가지를 제공해 준다. 첫째, 그것은 우리의 삶에 신성한 불꽃을 일으키고 우리로 하여금 계속 활력이 넘치게 해주며, 기쁨과 감사가 가득한, 궁극적으로 인생은 아름답고 살만한 가치가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해 주어 소망으로 가득 차게 한다. 둘째, 건강한 영혼은 우리를 하나되게 한다. 그것은 계속적으로 우리가 누구이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 그리고 이 모든 것에는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지를 깨닫게 하며 그 소중한 체험을 함께 나누며 거룩한 비전을 공유하게 한다. 부부가 함께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며, 함께 기도하며, 서로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알고 비전을 이루어 가는 것보다 서로를 온전하게 매는 띠가 어디 있겠는가?
4) 부부는 가정의 공동체적 영성을 회복해야 한다.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꿈은 공동체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시 133:1) 여기에 자신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꿈이 담겨 있다. 이 꿈을 위해 성숙한 부부는 내 가정만의 울타리를 넘어 이웃, 젊은 부부나 결혼생활의 어려움 가운데 있는 이들에게 열린 마음으로 나아가야 한다. 오늘 외로움에 지친 영혼을 돌아보며 무너지는 가정을 되사리기 위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더불어 함께 살고자 하는 마음의 회복, 가정의 공동체성을 다시 찾는데 있다. 구체적으로 이웃을 초청하여 나누는 식사나 차 한잔의 만남, 따뜻한 대화와 격려, 기도, 영적 멘토링 관계 등 다양한 방법이 있다. 수고와 헌신 없이 되지 않는다. 공동체 영성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이 통하는 관계이다.
부부의 궁극적 문제 해결
가정이 해체되고 무너져 내리는 이 시대의 아픔을 해결하는 궁극적인 길은 부부가 영적으로 함께 성장하는 데 있다. 모든 사람은 그 영혼 내면에 심각한 비밀을 숨기고 있는데 그것은 결코 사라지지 않으며 끊임없이 은밀한 고통을 자아낸다. 그 비밀이란 결코 찾을 수 없는 하나의 사랑을 평생토록 갈망하는 것이며,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 강렬한 친밀성에 대한 내적 자아의 열망이고, 결코 개어지지 않을 강한 유대 관계에 우리 존재를 있는 그대로 내맡기고자 하는 갈구이다. 또한 누군가를 알고 그가 자신을 알아주기를 바라며, 누군가를 이해하고 누군가로부터 이해 받기 원하고, 누군가를 나의 사람으로 소유하는 한편 누군가의 소유가 되기 원하며, 상실과 배반이나 거부에 대한 두려움 없이 무조건적으로 영원히 받아들여지려는 갈망이다. 한마디로 깊은 친밀감에의 욕구이다. 이를 위해 가정과 공동체를 찾는 것이 아닌가?
무엇보다 가정이 회복되어야 한다. 오늘날 무너진 가정의 하나됨과 친밀감, 이것을 회복하는 것이 영성이다. 그러므로 영성이란 삶의 한 부분이나 영역이 아니다. 오히려 영성이란 생활방식, 즉 믿음의 비전으로 살아가는 삶의 전인적 과정이다. 관계 속에서의 사랑과 섬이다. 긍휼과 용서다. 그러므로 우리의 결혼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러한 영적인 흑면, 영성이 자라는 것이다. 모래시계의 모래알처럼 빠져나가는 소중한 시간 앞에 우리는 즉각 모든 소소하고 주변적인 것을 밀쳐 두고 궁극적으로 중요한 일, 서로를 사랑하며 섬기며 더불어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정과 공동체를 주신 하나님의 꿈을 이루어 가는 데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
글/박명수(아름다운 가정연구소 대표)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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