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과 순종
성경: 히5:7-10절
사람들은 영웅을 좋아합니다. 할리우드 영화는 영웅을 만들어냅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어떤 어려움이던지 반드시 해결하고 구원하는 것입니다. 여기는 완벽한 영웅들이 등장합니다. 총알도 피하고 맞아도 안 죽습니다. 하늘을 나르고, 공간이동도 하며, 심지어 죽었다가 살아나기도 하고, 분신을 해서 영웅이 몇 사람이 되어서 싸워서 이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 예수님은 우리를 도우시고, 구원하시는 영웅 중의 영웅이시지만, 특이하게도 고난을 당하는 영웅이십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써 천사보다, 모세보다, 여호수아 보다 권세가 있지만, 그러나 그의 권세는 고난을 받는 것을 통해서 나타났습니다. 인간의 연약함을 짊어지시고, 채찍에 맞으시고, 배신과 모욕을 당하시면서 슬픔을 겪으십니다. 그러나 이것을 아버지의 뜻으로 알고 순종하셔서 구원을 완성하시고, 순종의 본보기가 되신 예수님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고난당하는 사람들에게 순종으로 믿음을 보이고,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다고 하시는 모범 답안이 예수님이십니다.
어떤 사람이 아침 식사를 하기 무섭게 양복을 걸치고 넥타이는 손에 든 채 1층 화장실로 거의 뛰다시피 달려가다가 넘어졌습니다. 이렇게 급하게 1층으로 달려가는 것은 매일 아침마다 반복되는 습관인데, 담배를 피우기 위해입니다. 이 사람은 하루 두 갑씩 피우는 골초인데 밤새도록 단 한 대도 피우지 못했으니, 아침 식사 후 담배 욕구는 극에 달해서, 달려 내려가지 않을 수 없었던 겁니다. 넘어진 후 "창피하고 아픈데도 불구하고 몸 추슬러 일어난 뒤 화장실 변기 위에 앉아 담배 한 대 피우는 순간 "대체 이게 뭔 짓거리인지"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더라는 겁니다.
"이렇게 해서라도 이걸 피워야 하는 건지" "나이가 몇인데, 이 짓거리를 해야 하는지" 그동안 담배로 인해 받은 고통, 차별 등등의 장면이 순간 파노라마처럼 뇌리에 스치더라는 것입니다. 그는 결국 화장실이라는 공간에서 30여 년 가깝게 지내온 담배라는 친구와 결별했답니다. 이별의 의식이라는 건 별 것 없었습니다. 그저 열댓 개비 남은 담배 갑을 쓰레기통에 던져버린 것으로 끝났습니다.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고, 나름 사회지도층이라는 인간으로서 "가오도 떨어지고 해서" 끊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신자들입니다. 우리가 믿는 믿음은 지식이나 형식이 아닙니다. 깨달음입니다. 오늘 제가 하는 말씀을 머리로, 지식으로만 듣지 마시고 영으로 받아 들으시면 여러분에게 큰 역사가 있을 것입니다.
1. 믿음은 순종입니다.
신앙의 핵심은 믿음입니다. 믿어야 역사(役事)가 일어납니다. 그런데 믿음이 무엇입니까. 믿음은 반드시 행위로 나타나야 합니다. 그 행위가 바로 순종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다른 말은 순종입니다. 사람들은 믿음은 믿음이고, 순종은 순종이다, 라고하면서 믿음과 순종을 분리시켜 생각합니다. 그러나 믿음과 순종은 별개가 아닙니다. 믿음은 곧 순종입니다. 믿음과 순종은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동전의 양면을 뗄 수 없습니다. 동전의 양면을 뗀다면, 돈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동전의 양면은 붙어있어야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믿음과 순종은 붙어있습니다.
믿는다면 행동해야 합니다. 믿음과 순종은 서로 독립되어있지 않습니다. 순종이 따르지 않는다면, 믿음이 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말로만 믿을 때가 많습니다. 모든 것을 말로 합니다. 그러나 순종할 때까지는 믿음이 아닌 것입니다. 순종이 없다면, 아직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고민만 할 뿐입니다. 작년에도 올해도 생각만 합니다. 그리고 믿음이 행위로 나아가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 안에 죄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죄성 안에 불순종의 뿌리가 있습니다. 이 뿌리는 아담에게까지 이어집니다. 에베소서 2장에 마귀를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고 했습니다.(엡2:2). 사탄은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합니다. 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는 역사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불순종하면, 마귀의 부하가 되는 것입니다. 마귀의 속성 자체가 불순종입니다. 불순종으로 태어난 영이 마귀입니다. 그래서 마귀가 하는 가장 핵심적인 일은 불순종하게 하는 것입니다. 불순종의 영은 오늘도 온 세상을 지배하는 강력한 영입니다. 세상 어디를 가든 불순종의 영이 역사하지 않는 곳은 없습니다.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 사람이라면,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불순종합니다. 불순종의 영이 더덕더덕 붙어있는 것입니다. 아이들을 보십시오. 스스로 밥을 먹을 정도만 되어도 불순종이 나타납니다. 말을 안 듣습니다. 인간의 고통은 불순종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불순종이 떠나지 않는 한, 우리의 삶에서 고통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인류에게 찾아온 저주와 모든 고통의 원흉은 불순종에 있습니다. 불순종의 뿌리, 불순종의 잔재가 사라지지 않는 한, 우리의 삶에 고통이 끊임없이 밀려올 것입니다. 이것을 해결하는 것이 믿음으로 순종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2. 믿음의 목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아브라함은 우리에게 순종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그의 순종은 믿음으로 출발하여 모리아 산에서 아들을 바치는 것에서 절정에 도달합니다. 이것을 통해 그는 불순종의 고리를 끊어버렸습니다. 믿음의 최상(最上)의 질은 순종으로 결정됩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순종으로 증명이 되었습니다.
이 순종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더욱 확실하고 구체적으로 드러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의 위력은 순종하심에 있습니다. 예수님의 생애의 키워드(keyword)는 순종입니다. 예수님의 생애를 한 마디로 정의 내린다면, 순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동안 아버지께 순종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사셨습니다. 예수님의 삶의 모든 것은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복음서를 통해 예수님께서 능력을 행하시는 것을 봅니다. 병을 고치시고, 많은 기적을 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사역의 초점은 기적과 능력을 행하신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병을 고치시는 것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었다면, 모든 병을 다 고쳐주셨을 것입니다. 아니 믿는 사람을 아예 병에 걸리지 않게 하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삶의 목적은 단 하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6:38).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삶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령은 우리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도록 이끄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때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의 클라이맥스(climax)는 십자가입니다. 아브라함의 생애의 클라이맥스인 독자(獨子)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바치는 사건과 갈보리의 십자가는 오버랩(overlap)됩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순종이 이 땅에 불순종의 고리를 모두 끊어버리고, 저주를 사라지게 만들었습니다. 이 깊고 깊은 불순종의 뿌리를 끊어버리기 위해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해 참 순종을 배웁니다.
하나님은 왜 우리에게 순종을 배우라고 하십니까. 순종을 통해 우리의 삶을 회복시키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예비하신 축복이 있습니다. 그것은 순종을 통해서만 주어집니다. 예수님의 위대함은 순종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위대함은 하나님 아버지께 순종하는 것에 있습니다. 예수님의 관심사는 오직 하나, ‘어떻게 하면, 아버지의 뜻에 순종할 것인가’입니다. 그것 밖에 없습니다. 순종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순종의 길은 죽음의 길입니다. 순종은 자아(自我)의 죽음을 의미합니다.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바치는 사건은 “순종은 쉽지 않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해줍니다. 아브라함은 100세에 낳은 아들을 바쳐야 했습니다. 아들의 죽음은 곧 자신의 죽음을 의미합니다. 그런 점에서 십자가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열심히 하는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열심히 사는 것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아버지의 뜻에 순종했는가.’입니다. 여기에 초점을 맞추지 못하면, 인생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사역을 하더라도 여기에 초점을 맞추지 못하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불순종은 딴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의 뜻은 전혀 상관하지 않고, 아버지께서 하라고 하신 그 일, 성경이 말씀하는 진리를 멀리하고, 나의 일에만 빠져 정신없이 살아가는 것이 불순종입니다. 기도를 하더라도 기도 안에 하나님의 뜻이 없으면, 그 기도는 불순종입니다.
3. 믿음은 결과가 있습니다.
순종하는 삶은 능력입니다. 예수님이 순종하실 때,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주님은 십자가를 통해 순종을 나타내셨습니다. 십자가는 능력이 되었습니다. 온 세상을 구원하는 능력이 되었습니다. 로마서 1장 16절에 보면,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순종이 능력을 낳습니다. 우리가 순종할 때, 능력이 따라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능력을 구하지 마시고, 말씀에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능력은 자동적으로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무엇을 달라고 기도하지 않아도, 말씀에 순종하면 저절로 이루어지게 되어있습니다. 순종하면 그곳에 하나님의 기적이 나타납니다. 순종하는 곳에 해결되고, 풀리는 일이 일어납니다.
내가 순종하면, 예상하지 못한 기적이 따라옵니다. 순종할 때에 말씀이 실현됩니다. 말씀이 능력인 것을 경험하려면, 순종하면 됩니다. 성경에서 기적이 일어난 현장, 하나님의 능력이 일어난 현장에는 언제나 순종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리고 성을 돌게 하신 것도 백성들에게 순종을 요구하신 것입니다. 아이 성에서 패배도 순종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모든 축복을 가로막는 주범(主犯)은 불순종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를 지나가는 동안 불순종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들이 불순종하는 만큼 방황이 길어졌습니다. 쉽게 지나갈 수 있는 거리를 40년 동안 돌고 돌며 고생했습니다. 불순종입니다. 불순종은 겪지 않아도 될 생고생을 불러왔습니다.
삶의 축복은 순종으로 옵니다. 순종의 삶을 살면, 하나님께 복을 달라고 구하지 않아도 됩니다. 고민할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걱정 할 것은 단 하나, 내가, 우리 가정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가, 그렇지 않은가’입니다. 인생을 왜 복잡하게 생각하려고 하십니까. 내가 오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있는가를 확인해 봐야 합니다. 우리가 말씀에 순종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을 풀어주실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삶에 꼬인 것이 있습니까. 무엇에 묶여있습니까. 자세히 들여다보세요. 왜 꼬였는지 살펴보세요. 반드시 순종해야 하는 영역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것을 가르쳐주시려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의 순종은 타협이 불가능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에 항상 명령형을 사용하셨습니다. 말씀은 타협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입니다. 불순종으로 인해 묶어있던 것을 순종을 통해 푸는 은혜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순종은 성경에 거대한 핵심주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복을 주고 싶어도 불순종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실 길이 없습니다. 예배 순서와 의식(儀式) 자체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순종이 참된 예배의 근본입니다. 우리가 매일 순종하고 사는 것 자체가 예배입니다. 걸어가는 것이 예배이고, 모든 행위가 예배입니다. 우리가 순종의 삶을 살면, 교회 안에 있든 밖에 있든 그 가운데 하나님의 축복이 임합니다.
순종은 조건과 상황을 따지지 않고, 말씀에 모든 것을 내어 맡기는 것입니다. 순종학교의 주 과목은 십자가입니다. 순종은 위험한 것이지만, 우리를 가장 완전한 길로 이끕니다. 왜 우리가 성경을 읽고 공부합니까. 성경적 지식을 쌓기 위해서입니까. 성경적 지식을 쌓아서 무엇 하겠습니까. 헬라어와 히브리어를 공부해서 무엇 하겠습니까. 묵상하고 큐티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설교를 들으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왜 좋은 설교를 들으려고 합니까. 목적은 단 하나, 순종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순종할 마음이 없다면, 귀가 닫힙니다. 안 들립니다. 재미도 없습니다. 순종 할 마음이 없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계시가 닫혀버립니다. 엘리 제사장이 불순종의 삶을 살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 희귀(稀貴)해져버렸습니다. 우리가 왜 기도합니까? 기도의 최종적인 목적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순종할 수 있는 힘을 주세요.”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은 순종에 초점이 맞추어져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순종으로 귀착(歸着)됩니다. 예수님은 순종하시되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오늘 우리의 신앙의 핵심은 순종입니다. 믿음도 사랑도 순종으로 결론 나야 합니다. 믿음이 없으면, 순종할 수 없습니다. 참 믿음은 순종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지금까지 하나님 앞에서 “No”라고 했기 때문에 잃어버린 것이 있다면, 오늘 이후로는 “Yes”라고 반응하셔서 묶인 것이 모두 풀리는 은혜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신앙으로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불순종의 영이 떠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신앙의 키워드는 순종입니다. 순종을 미루지 마시기 바랍니다. 완전한 순종을 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편에서 99% 순종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편에서 보면 불순종이 있습니다. 온전한 순종을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적으로 순종할 때, 인생이 도약하고, 변화가 일어나고, 새로운 역사가 일어나고, 회복이 일어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여 우리의 삶 전체가 순종이 되면,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일이 우리의 삶에 일어날 것입니다.
어거스틴이 어느 날 꿈을 꾸었습니다. 꿈에 천국에 갔습니다. 천국의 입구에서 그는 천사로부터 너는 누구냐 하고 제지를 받습니다. 나는 어거스틴이고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합니다. 천사가 자세히 보더니 “너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네 머릿속에는 키케로의 철학만 가득 들어있다. 너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다“하고 호통 치며 내려가라고 하더라고 합니다. 놀라서 눈을 떠 보니 꿈이었습니다. 그는 지금까지 자신이 믿음이 좋은 줄로 알았습니다. 예수의 진실한 제자인 줄 알고 살았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충격이 컸겠습니까. 그래서 그는 철저하게 회개하고 그 다음부터 예수에 대한 지식으로 마음을 채우기 시작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결국 성자가 됩니다.
한 분이 어느 명절에 이런 일기를 썼습니다. “명절을 보내기 전 주님께서 주신 마음이 있었다. 가급적 TV 앞에 앉지 말고, 아들과 놀거나, 음식 준비하는데 도우라는 마음이다. 마음이야 편하게 누워서 그동안 보지 못했던 TV를 맘껏 보고 싶었다. 그런데 주님은 그런 모습을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려 주셨다. 결심하고 아내를 도왔다. 눕고 싶어졌지만 일어나서 상 차리는 것 돕고, 음식 나르고, 또 말썽장이 아들 두 녀석을 데리고 놀았다. 연휴를 마치고 올라오는데 아내가 한 마디 한다. "이번 명절이 그동안의 어느 명절 때 보다 훌륭했어요." 이 칭찬은 주님이 받으셔야 하는 것이었다. 난 그저 하라고 한대로 한 것뿐이니까!! 주님의 마음에 순종했더니 칭찬도 받고 좋다.“
아프리카에 가면 비서새 즉 Secretary Bird가 있다고 합니다. 귀 뒷부분에 펜을 꽂은 것 같이 생겼고 걷는 자태가 품위 있어 보인다고 붙여진 별명인데요. 평상시에는 하늘을 곧잘 날고 친구들과 놀기도 하고 벌레를 잡기도 하고 또 지저귀는 새 소리 또한 얼마나 아름다운지요? 하지만 갑작스런 위기를 만나게 되면 날개가 꽁꽁 얼어붙고 온몸이 마비가 되어 다른 짐승들의 밥이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믿음 생활하는데도 꼭 비서 새와 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평상시에는 감사도 하고 찬양도 하고 곧잘 예배도 합니다. 그러나 순종에서 실패합니다. 결단이 필요합니다.
결론
1999년4월 20일, 미국 콜로라도의 덴버의 한 고등학교에서 두 남학생의 총기 난사로 13명의 학생과 교사가 사망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히틀러의 생일을 맞이하여 해리스와 클리볼드라는 이 두 학생은 학생들을 캠퍼스 한 군데에 모아 놓고 한 사람씩 총구를 갖다 대며 이렇게 물었습니다. “너는 하나님을 믿느냐?” 이 질문에 대부분의 학생들이 살기 위해 “믿지 않는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면 해리스와 클리볼드는 음흉한 미소를 띠우면서 그들을 살려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공포 분위기 가운데 한 학생이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케이시 버넬이었습니다. 그녀는 죽음의 총구 앞에서 대답했습니다. “그래,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살아계신다. 그리고 너희도 역시 하나님의 길을 따라야 한다.”
이 말을 들은 해리스와 클리볼드는 “네가 믿는 하나님 곁으로 가라.”하고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케이시 버넬은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건이 일어난 후 어떤 일이 일어난 지 아십니까? 그들은 케이시 버넬의 순교 앞에 자기들의 비겁함을 한없이 부끄러워했습니다. 얼마 후, 남아 있던 학생들 사이에서 자신들도 케이시 버넬처럼 담대하게 증인으로 서야 하겠다는 신앙운동이 일어났습니다. 마침내 미국 전역의 각 학교에서는 “우리도 케이시 버넬의 길을 따르자!”는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국기 게양대에서 만나자"(See You at the Pole)는 전국적인 학생 기도 모임으로 발전하고 또 캐나다 괌 오스트레일리아 한국 일본 터키를 비롯한 전 세계 20 여개 국가에서도 300만 명 이상의 학생들이 참여하는 캠퍼스 집회로써, 시편 24편 3절에서 6절.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며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구인가를 주제로. 각자 학교 국기게양대에 모여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죽었으나 살아 있습니다.
여러분 믿음이 시험대위에 오를 때 어떻게 행동합니까. 물질로 시험해 옵니다. 때로는 의심으로 다가옵니다. 세상 사람들처럼 적당히 살라고 속삭입니다. 자녀가 우상이 되고, 돈이 우상이 됩니다. 자기가 허용하는 한도가 넘으면 광신이요, 자기 방법이 아니면 비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 같으나 마지막에 가서는 불순종합니다. 그러면서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믿고 살 수 있느냐고 말입니다. 혹시 내가 그런 사람이 아닌지요. 그리고 다시 한 번 믿음을 다잡고 새롭게 해야 합니다.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롬1:17절)
조영호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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