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침체를 치료하는 수단 - 4
시련과 고통
시련, 고통, 불가능, 그리고 십자가의 섭리도 역시 하나님이 손에서 타락한 백성들의 영혼을 치유하는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호세아 11장에서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신실하고 충성스런 농부로, 그리고 자기 백성을 고집 센 황소에 비유하십니다. 황소들이 바른 길에서 벗어나 배회하고 있을 때, 마치 성실한 농부가 소들을 좁고 바른 길로 몰기 위해 몰이용 막대(끝에 뾰족한 철심이 달려있는 길다란 지팡이)를 사용하는 것같이, 하나님께서 시련과 곤궁함을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폭군 같은 통치자라서 그처럼 고통스런 수단을 자기 백성에게 사용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고통에 빠진 자기 백성을 보면서 즐기는 분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는 것은 시련에서 벗어나는 바로 그 순간, 하나님의 백성들은 곧장 하나님을 떠나 삭개오와 같이 자기 만족의 나무 위로 올라가기 때문에, 그와 같은 고통스런 수단이 그들에게 필요하고 훨씬 유용하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아시기 때문입니다.
야곱의 경우를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가 언제 영적으로 타락했을까요? 외삼촌 라반을 섬기고 있었던 시기에 그가 타락했을까요? 결코 아닙니다. 그 때는 야곱이 라반과의 관계에서 뿐 아니라, 두 아내와의 관계에서 14년간이나 갈등을 경험했던 고통과 시련의 시기였습니다. 언젠가 헌팅턴(Huntington)이 설교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들은 서로에게서 묵은 때를 벗겨 냈으며, 그들은 모두 야곱의 묵은 찌꺼기를 제거할 목적으로 하나님에 의해 사용되었습니다.” 야곱의 경우와 같이 하나님의 백성들은 세상보다 오히려 하나님의 자녀들 때문에 더 많은 시련을 경험할 때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야곱은 자기 부모와 가족들이 살고 있는 땅으로 돌아오던 중에 타락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뒤에는 외삼촌 라반이 그를 쫓아오고 있었으며, 앞에는 형 에서가 그를 맞기 위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4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자신을 잡아 죽이려고 서슬 퍼렇게 버티고 서 있는 상황이라면, 아무리 용감한 하나님의 자녀라도 감히 타락할 엄두조차 내지 못할 것입니다. 격노하는 라반과 적개심으로 이글거리는 에서가 목숨을 위협하며 서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상황에서, 야곱은 다음과 같이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나는 주께서 주의 종에게 베푸신 모든 은총과 모든 진리를 조금이라도 감당할 수 없사오나, 내가 주께 간구하오니 내 형의 손에서 나를 건져 내시옵소서”(창 32:10-11).
그런 후에 어떤 일이 발생했습니까? 야곱은 자신을 죽이고자 달려드는 에서보다 더 몸서리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달려와 끌어안고 입을 맞추는 에서와 맞닥뜨렸던 것입니다. 육신적으로 볼 때 그것은 반가운 일이었지만,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그렇게 입맞춤하는 에서 한 사람이 칼을 들고 덤비는 400명의 원수들보다 더 끔찍한 것입니다. 야곱의 경우, 에서의 입맞춤은 삼손이 베고 누었던 들릴라의 무릎과 같았습니다. 이렇게 곤경에서 벗어나게 되자, 영적 침체의 그림자가 즉각 야곱을 엄습해 왔습니다. 그는 자신이 거처를 짓고 난 후에 얼마나 동안 너무나 안락하게 살았던 나머지, 자기 딸이 이방인과 결혼하는 것을 용납함으로서 하나님께서 엄격히 금하셨던 명령을 어기고 말았습니다.
그렇습니다. 그처럼 영적 침체가 한번 시작되면, 온갖 고통거리들이 곳곳에서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것은 자명한 이치입니다. 자신의 본 모습을 찾기 위해, 야곱은 자기 자녀들이 고통 당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으며, 때로 그들의 불순종을 뼈아프게 경험해야 했습니다. 야곱이 그랬던 것처럼, 하나님의 모든 자녀들에게도 고통과 난관은 괴로운 것이지만, 그것들은 하나님께서 “내가 곤고하고 가나한 백성을 너의 중에 남겨 두리니 그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의탁하여 보호를 받을지라”(습 3:12)라는 말씀을 확증하시기 위해 반복적으로 사용하시는 불가피한 수단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고통들이 어떤 방식으로 그들을 치료하게 될까요? (1)고통을 통해 자기 백성들을 철저히 낮추심으로써 하나님께서는 원래 자시들이 누구이고 어떤 존재이며 어떠한 상태에 있는지, 즉, 그들이 죄와 교만과 타락 그 자체(신명기 8장)임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십니다. 고통은 그들의 교만함을 부추기는 모든 것들을 말끔히 제거해 줍니다. (2)고통을 통해 하나님의 양 떼는 죄가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고 모독하며, 영원한 파멸을 초래하는 본성을 가졌다는 사실을 배우게 됩니다. 그들은 죄가 사탄으로부터 유래한 것이며 치욕과 수치의 벗으로서, 그 결과가 죽음이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들은 고통을 통해 존 번연(John Bunyan)과 같이, ‘죄가 하나님의 공의에 도전하는 것이며, 그분의 자비를 강탈하는 것이며, 그분의 오래 참으심을 조롱하는 것이며, 그분의 권능을 무시하는 것이며, 그분의 사랑을 업신여기는 것이다’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3)흔히 고통이라는 치유책을 통을 죄라는 치명적인 질병의 진행이 저지될 뿐 아니라, 건강하고 거룩한 열매를 맺어서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수확하게 됩니다. 고통은 늑대처럼 양 떼를 약탈하고 흩뜨리는 것이 아니라, 목자의 통제를 받는 양치기 개와 같이 그 양 떼를 안전한 우리로 인도합니다. 역사가들을 통해 우리는 추운 겨울이 없는지역에서 자라난 수목들이 열매 않는다는 사실을 배우게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보여 주는 삶의 모습은 방울과 같아서, 강하게 흔들면 흔들수록 더 크고 분명한 소리를 내게 된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자신을 다독이고 안락함을 주는 지팡이보다는, 오히려 가차 없이 내리치는 회초리를 통해 보다 완전하게 치료됩니다. 경건한 믿음의 사람인 라이턴(Leighton)은 ‘고통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보석들을 연마하는데 사용하시는 연마용 다이아몬드다’라고 말했습니다. (4)폭풍이 불면 양 때가 목자 곁으로 바짝 다가가 붙는 것처럼, 고통 역시 여호와의 양 떼로 하여금 하나님 곁에 바짝 붙어있게 만듭니다(호 5:15). 사람들이 스데반 집사를 향해 던졌던 돌들은 그를 무의미한 죽음으로 내 몰았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성전 모퉁이 돌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더욱 가까이 나아가도록 했으며, 그의 영혼을 위해 하늘의 문을 보다 활짝 열어 주었습니다. 그들에게 닥쳐오는 온갖 고통은 영광의 왕이신 하나님을 알현할 수 있는 응접실의문을 여는 녹슨 자물쇠와도 같습니다. (5)때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가하시는 고통의 회초리는 하나님의 백성들 위해 그리스도의 형상을 보다 선명히 새겨 주는 철필(鐵筆)과 같아서, 그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거룩함에 동참하기 위해 그분의 고난에 동참하는 자들로 만듭니다(히 12:11). 예수님만이 죄와 허물이 없은 유일한 아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양자로 입양된 모든 백성들은 고통을 피할 수 없습니다. 영광으로 향하는 고통의 수단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들은 피묻은 발걸음으로 자기 양 떼를 이끄셨던 하나님의 아린 양을 본받는 자가 됩니다. (6)그들이 감수하는 온갖 고통은 위로와 기쁨(요 16:20; 호 2:14; 고후1:4-5)을 동반함으로써 치료를 수행하게 됩니다. 목자의 막대 끝에는 꿀이 발라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종 바울 사도가 그랬듯이, 하나님의 일로 인해 고통을 당하고 감옥에 갇혀 있을 때, 그들에도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십니다. 언젠가 러더포드(Rutherford)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내가 고통의 음습한 지하실에 홀로 남겨져 있을 때, 나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극상품 포도주를 맛보게 되었다.” (7)고통은 세상으로부터 그들을 격려함으로써 그들을 치료합니다. 왓슨(Thomas Watson)은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마치 흔들리는 이빨처럼 매달아 두셨기 때문에, 그것을 실로 홱 잡아당겨도 우리는 그다지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라고 말합니다. (8)결국 고통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자신에게 허락된 천국의 유산을 얻기 위한 준비 과정에 유익을 줍니다. 고통은 영광으로 나아가는 길을 예비합니다(고후 4:17). 트랩(Joun Trapp)은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대관식에 나아가는 사람은 날씨가 아무리 궂어도 크게 상관하지 않을 것이다.” 비록 고통의 바람은 목자의 치료용 막대로서, 양 떼가 지옥에서 벗어나 천국으로 향할 수 있도록 훈련시키기 때문에, 그들이 이 땅의 삶을 마감하는 그 시간에 은혜로 말미암아 후커(Tmomas Hooker)와 같이, ‘오늘 지옥이 천국으로 변할 것이다’라고 고백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출처: 포도나무선교회
출처 : 생명나무 쉼터
글쓴이 : 한아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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