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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애굽 후 시내 산에 이르러 하나님과 언약을 체결하기까지의 여정과 일련의 사건들의 배경을 보여 주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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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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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라는 명칭은 구약 성경의 헬라어 역본인 '칠십인역'을 따른 것으로 이 명칭은 출발,탈출,밖으로 나감 등을 뜻하는(눅 9:1; 히 11:22) '엑소도스'이다. 출애굽기는 다른 책들과 분리된 내용이 아니라 창세기에서 시작하여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로 이어지는 큰 줄거리의 교량 역할을 하며 상기책들과 상호 연속성을 가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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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와 저작연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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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출애굽기를 비롯한 오경의 저자는 모세이다(17:14;24:4;34:27). 수 8:31에서는 출 20:25의 명령을 인용하면서 '모세의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라고 하였다. 신약 성겨에도 모세의 저작권을 인정하는 구절이 많이 있다(막 7:10;12:26;눅 2:22,23;20:37;요 5:46,47;7:19,12,33;롬 10:5). 기타 유다와 사마리아 전승들도 한결같이 모세를 저자로 인정하고 있다.
■ 출애굽의 연대 출애굽의 연대에 대해서는 두 가지 견해가 대립되고 있다. 그 중 하나는 B.C. 1445-1440년 무렵 아멘호텝 2세(B.C. 1450-1425) 치하에서 일어난 것으로 보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라암세스 2세(B.C. 1299-1232) 치하에서 B.C. 1290년경에 발생한 것으로 보는 견해이다. 이 두 견해 중 전자를 뒷받침해 주는 왕상 6;1에 의하면, 솔로몬이 성전 건축을 시작한 해는 출애굽 사건 이후 480년이 지난 솔로몬 즉위 제 4년이라고 밝히고 있다. 솔로몬 즉위 제 4년이면 B.C. 약 960년경이다. 따라서 출애굽의 시기는 대략 B.C. 1440년경이 된다. 또 B.C.1100년겨에 활동했던 입다가,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거한지 300년이 흘렀다(삿 11:26)고 말한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전통적인 견해에 의하면 제18왕조인 투트모세 3세와 그의 아들 아멘호텝 2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억압했다고 한다(2;15,23;3;10). 후기설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1:11에 타나나는 '라암셋'이라는 지명을 볼대 분명 제19왕조의 세티 1세와 그의 아들 라암세스 2세(B.C. 1299-1232) 때라고 주장한다. 후기설에 대한 논쟁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1) 이스라엘 민족인 강제로 동원된 라암셋 성은(1:11) 당시 애굽을 다스리던 바로의 이름을 따서 붙였으므로, 출애굽은 라암세스 2세 이후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출애굽 당시 모세의 나이는 80세였고 라암셋 성은 모세가 태어나기 전에 세워진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후기서을 취한다면 B.C. 1299-1290년 사이, 즉 9년 만에 모세가 80세가 되었다는 모순이 발생한다.
(2) 또 요단강 동편 지역에는 B.C. 1900-1300년경에 정착민들이 없었으므로 에돔 족속 같은 이방민족들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강력하게 저항했다는 것(민 20;20,21)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고고학적 발굴에 의하면 이 지역에서 B.C. 1600년경의 유물이 발견디었다. 따라서 이 주장도 이미 설득력을 잃고 있다.
(3) 이스라엘 민족이 B.C. 1300년까지는 '하솔'을 함락시키지 못했다는 점이 제시되지만 성경은 하솔이 두 번 멸망했다고 말한다. 1차 멸망은 여호수아에 의해서이고(수 11:10,11), 그후에는 드보라와 바락이 하솔을 무너뜨렸다(삿 4;2,23,24). 하솔의 유적지에서도 이 성읍이 B.C. 1400년경에 멸망했었다는 증거가 발견된다.
(4) 또 라기스9수 10:32)와 드빌(수 10:38, 39)이 B.C. 1230-1200년 사이에 멸망한 것은 후기 연대설을 입증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성경은 여호수아가 이 도시들을 완전히 별절시켰다고 기록하지는 않았다. 우리는 이와 같은 경우를 '여리고'의 예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이상과 같이 성경적 증거와 고고학 자료들은 출애굽 연대를 B.C. 1445-1440년경으로 뒷받침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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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배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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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의 기록이 끝나는 바로 뒤에 연결되는 출애굽기는 독립적인 것이 아니라 연속성을 가지고 있다. 출애굽기는 야곱이 애굽에 이르렀을 대(B.C. 1875년경)부터 431년이 지난, 곧 광야에서 성막을 세우기(B.C. 1445년경)까지의 기간을 다루고 있다. 요셉과 모세 사이의 시대 변천이 1장에 잘 나타나 있다. 야곱의 자손은 하나님의 약속대로 크게 번성하였고, 이로 인하여 애굽의 새로운 정치 체제하에서 이스라엘 민족은 노예의 신분으로 전락했다. 바로는 이스라엘 민족을 영구히 노예화할 방도를 모색하지만,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구원 계획으 성취하신다. 이스라엘 민족의 구원이란 단지 노예 생활에서의 해방이 아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선택된 민족으로서 약속의 땅까지 인도함을 받은 사실은, 구속사적인 관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모든 히브리 역사와 예언에 나타난 역사 철학은 히브리 인을 한 민족으로 세우신 하나님의 창조적인 섭리가 흐르고 있는 출애굽기를 끊임없이 회고 있다"(Alleman & E.E.Flac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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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와 중심사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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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의 주제는 한마디로 말해서 '구속' 이다. 그의 종 모세를 통하여 택한 백성을 노예 상태로부터 구속하시고 그들 중에 임재하셔서, 결국은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구원 활동이 본서의 핵심이다. 성경의 구원 사상은 출애굽의 언약에 그 기초를 두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선택한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 과정을 통해 자신이 역사의 주인이며, 동시에 그를 따르는 자들을 구원하는 자임을 계시하였다. 구약의 출애굽 사건은 신약의 십자가 사건과 같은 중요성을 갖고 있다.
출애굽기에는 최소한 몇 가지의 기본적인 신학사상이 깔려 있다.
첫째 하나님의 자기 계시 둘째 그의 속성 셋째 구속사상 넷째 그의 율법과 하나님께 대한 예배 방법이다.
또 언약의 중재자인 모세의 소명과 사역 등으로 다양하다. 하나님의 속성은 3, 6, 33-34장에 잘 나타나 잇으며, 그 초점은 '여호와' 라는 이름과 그의 영광의 임재에 있다. 또 역사의 주관자로서의 그의 영광, 거룩함, 위엄, 능력에 견줄자가 없음(15:11)을 강조한다. 그리고 구속 신학의 핵심은 12, 24장에서 볼 수 있다. 유월절 양의 죽음은 예수 그리스도에서 성취되었다(요 1:29;고전 5:7). 그리고 이 구속은 하나님의 언약에 기초한 것(2:24)으로서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언약이 점차 발전하는 것을 볼 수 있다(3:15-17;6;2-8;19:3-8).또 '십계명'(20:22-23)을 통하여 성경적 윤리와 도덕의 기초를 확고히 하고, '언약의 책'(20:22-23:33)을 통하여 그 원리를 실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를 가르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예배학에 관한 사상으로 끝을 맺는다. 거기에서는 성막을 중심으로 한 모든 제도와 규율이 무소부재하시고 불변하시는 하나님의 임재와 더불어 강조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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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일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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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록자 : 모세 2. 기록연대 : B.C. 1450-1400년 사이 3. 기록장소 : 일반적으로 부수주의 신학자들은 모세가 시내산에 머무는 동안 이 계시를 받았다고 생각한다. 4. 기록대상 : 이스라엘 백성 5. 핵심어 및 내용 : 출애굽기의 핵심어는 "구출", "구속", "계명'등이다. 노예의 신분으로 억압받고 있던 이스라엘 민족을 구출해낸 사건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을 완전히 구속하시기 위하여 행하신 많은 이적들 가운데 하나이다. 또한 십계명과 다른 율법들은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께서 바라는 삶인가를 가르쳐 주고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