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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목회자의 강단에 성령의 불이 꺼진 이유와 살리는 방법

하나님아들 2017. 7. 29. 23:02

강단에 성령의 불을 꺼지지 않게 하라(레위기 6:8-13)

본문에는 "꺼지지 않게 하라"는 말씀이 세 번이나 나옵니다.

첫째는 9절에 "꺼지지 않게 할 것이요"라고 했고,

둘째는 12절에 "단 위의 불은 항상 피워 꺼지지 않게 할지니"라고 했으며,

셋째는 13절에 "불은 끊이지 않고 단 위에 피워 꺼지지 않게 할지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모세에게 명령하시면서 아론과 그 자손에게 명하여 이르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아론은 제사장입니다. 우리는 은혜 시대의 제사장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적어도 다섯 가지의 제사를 드렸으니 그것은 번제, 속죄제, 화목제, 소제, 속건제입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꺼지지 알게 하라는 말씀은 지속적인 예배를 통하여 내 제단에 붙은 불을 꺼지지 않게 하라시는 명령인줄 압니다. 그렇다면

 

은혜 시대에 제사장이

내 심령에 불이 붙게 하였습니까?

내 심령의 제단에는 불이 붙었다가 꺼지지 않았습니까 ?

내가 섬기고 있는 제단의 불은 꺼지지 않았습니까?

내 심령에 붙은 불이 꺼졌으면 내가 섬기고 있는 제단에 불이 꺼졌을 것은 뻔한 노릇입니다.

내 심령의 제단에 붙은 불이 계속 타고 있다면 내 제단에 불은 꺼지지 않을 것입니다.

 

신명기 424절에 "여호와는 소멸의 불"이라 하셨고 누가복음 1249절에는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하셨으니 사명자에게 제일 급한 것은 제단에 불을 붙이는 일이요 그 붙은 불이 꺼지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평생 불 없는 사명자가 적지 않습니다. 불 꺼진 목사, 불 없는 장로, 불 없는 권사, 불 없는 집사가 있습니다.

어느 목사님이 설교 시간마다 강대상 밑에서 조는 할머니에게 할머니는 어떻게 설교 시간마다 졸고 있느냐고 호통을 치니, 그 할머니는 더 화가 난 목소리로 그 설교에 목사님도 여기 앉아 보소 나보다 더 졸거요 하는 바람에 그 즉시로 삼각산으로 올라가 몸부림치며 기도하다가 지금은 세계적인 부흥사가 되고 성공적인 목회자가 되었답니다.

 

1. 여러분, 불꺼진 자의 상태를 생각해 보십시오.

 

첫째, 앞이 보이지 않는 절벽 강산입니다.

 

자신의 앞은 물론이요, 자녀의 앞이 보이지 않습니다. 사업의 앞이 보이지 않습니다. 사후(死後)에도 갈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누가복음 16장에 나오는 부자의 앞길과 같을 것입니다.

 

둘째, 분별을 할 수 없습니다.

 

은혜의 불이 꺼지면 만사에 분별력을 잃고 맙니다. 사울왕이 그러했습니다. 아합왕이 그러했습니다. 지금의 불꺼진 사명자가 그러할 것입니다.

 

셋째, 만사가 정지 상태가 됩니다.

 

전기가 꺼지면 돌아가던 모든 기계가 정지하는 것과 같습니다. 어떤 일에도 낙심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영의 엔진은 꺼집니다. 레위기 1924절에 아론의 제단 위의 불이 내려 번제물과 기름을 살라 그 불이 계속적으로 꺼지지 않게 조석으로 드리다가, 불이 꺼졌을 때는 바벨론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또한 레위기 101절 이하에 보면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각기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의 명하시지 않은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하였더니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키매 그들이 여호와 앞에 죽었다고 했습니다.

지금 한국 교회 제단에는 여호와의 불이 아닌 세속적인 불, 운동권의 불, 향락적인 불, 마귀의 불이 붙고 있습니다.

성도의 제단에 불이 꺼질 때는 언제입니까 ? 교회 생활에서 멀어질 때입니다. , 형식으로 신앙생활 할 때입니다. 또한 신앙에 게으름 피울 때입니다. 룻소는 말하기를 "박해자를 두려워 말고 유혹자를 두려워하라"고 했습니다. 박해자는 축복으로 가게 하지만, 유혹자는 지옥으로 가게 하기 때문입니다.

 

넷째, 불꺼진 원인을 알아야 합니다.

 

현대 신학으로 꺼진 이가 있습니다.

이성관계로 꺼진 이가 있으며

경제문제로 꺼진 이가 있으며

교권싸움에 꺼진 이가 있으며

가족관계로 꺼진 이가 있으며

너무 분주해서 꺼진 이가 있고

교인들이 이해 못해서 꺼진 이가 있습니다.

 

2. 제단에 붙은 불이 꺼지지 않는 자의 상태를 생각해 보십시오

 

첫째, 불이 꺼지지 않으니 분별력이 있어 만사에 해결이옵니다.

 

그래서 만가지 시험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길을 주시고, 빛을 주시고, 은혜를 주십니다.

 

둘째, 빛이 있으니 먼데를 볼 수 있어 그의 미래가 환하게 열립니다.

 

성공적인 목회의 길은 물론이요, 건강의 길, 사업의 길, 진학의 길, 자식의 길이 열리고 경제의 길도 열립니다. 예레미야 332-3절에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 그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자가 이같이 이르노라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고 했습니다. 시편 845절의 말씀처럼 시온의 대로가 열립니다. 찬송가 248장에서처럼 시온의 영광이 빛날 것입니다.

 

셋째, 빛이 있으니 승리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사무엘하 22장에 보면, "여호와께서 다원을 모든 대적의 손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신 그 날에 다윗이 노래의 말씀으로 아뢰어 노래하기를내가 환난 중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아뢰었더니 저가 그 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나의 부르짖음이 그 귀에 들렸도다"라고 했습니다.

 

시카고에서 대 화재가 난 적이 있습니다. 그때에 무디 목사가 섬기는 교회가 전소되었습니다. 기가 막힌 무디가 성경을 들고 잿더미 위에 서 있을 때에 기자가 찾아와서 "목사님 시카고 시내가 다 타도 교회만은 타지 않아야 정상이 아닙니까" 하고 물으니 무디는 ", 저는 이 교회가 적어서 큰 교회를 달라고 얼마나 기도를 많이 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제 기도에 응답하시려고 이 교회가 전소된 줄로 생각합니다" 했더니 그 기자는 "그럼 목사님, 건축 헌금은 다 준비되어 있습니까 ? "라고 또 묻자 ", 저는 영원히 바닥나지 않는 말씀의 금고를 가지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 후 무디 목사는 더 크고 좋은 교회를 신축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또 한번 무디 목사가 남긴 유명한 말씀을 여러분은 잘 아실 것입니다. '교회와 성경학교가 불타서 어떻게 합니까?'라는 성도의 물음에 '교회는 다 탔어도 믿음의 보화는 아직 타지 않았으니 문제없습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3. 지금 내 제단에 불이 붙게 하고 불이 꺼진 사명자 에게는 다시 불을 붙여야 하겠습니다.

 

내 심령의 불만 붙는다면 내가 섬기는 제단은 불일 듯 일어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통하여 부르심을 받을 때 붙은 불은 로마에 가서 순교의 제물이 되어 목숨이 다할 때까지 꺼지지 않았습니다.

요한 웨슬레는 올더스게잇에서 한 번 받은 불이 평생토록 꺼지지 않아 자신도 살고, 영국도 살리고, 지금은 세계를 불태우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의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네 영혼에 하나님의 불을 붙이라"고 하였습니다.

모세는 호렙산 가시덤불 속에서 타오르는 불길이 그의 가슴에 소명으로 옮겨 붙어 40년간 꺼지지 않고 자기 민족을 포로 생활에서 구출해 냈습니다.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받은 불길을 꺼뜨리지 않고 역사 할 때 아세라 선지, 바알 선지 850명을 기손 시냇가에서 제거할 수 있었습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에게 붙은 불이 꺼지지 않으매 뜨거운 풀무불도 그들을 사르지 못했습니다. 스데반의 뜨거워진 불은 돌에 맞아 죽으면서도 꺼지지 않으매 예수님이 하나님의 보좌에서 일어나서 그의 영혼을 영접하셨습니다.

로버트 슬러 목사는 별로 유명하지도 않은 이름 없는 신학교를 다니고 초청하는 교회가 없어 25불 짜리 헌 풍금을 사 가지고 극장을 빌려서 뜨겁고 긍정적인 목회를 시작하였는데, 이제는 3만 명의 교인을 확보하고 세계교회에 목회자와 신학자들과 교인들에게 존경받는 성공의 목회자가 된 것은 그의 심령에 붙고 있는 뜨거운 불이 꺼지지 않고 계속 붙어 오는데 있었습니다.

 

4. 제단에 붙은 불을 꺼지지 않게 하는 비결은

 

첫째, 단 위에 기름이 떨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라고 9절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지속적인 기도는 낙심하지 않는 기도를 말합니다. 12절에 "단 위의 불을 항상 피우라"는 것은 계속된 기도의 자세를 가리킵니다. 간절한 기도, 뜨거운 기도, 위급한 상황에서 하는 기도는 묵상 기도가 아니라 온몸의 힘을 다하고, 목소리를 높여서 부르짖는 기도입니다. 시편 34절에서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 성산 에서 응답하시는 도다"라고 했고, 912절 이하에서는 "가난한 자의 부르짖음을 잊지 아니하시는 도다"라고 했으며, 186절에는 "내가 환난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에 부르짖었더니, 저가 그 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그 앞에서 나의 부르짖음이 그 귀에 들렸도다"라고 했으며,3415절에는 "여호와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 귀는 저희의 부르짖음에 기울이시는 도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도 끈질기게 부르짖는 소리에 응답하신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 1046절 이하에 보면, 예수님의 일행이 여리고를 지나가실 때 소경 거지 바디하오가 큰 소리로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하고 있는 힘을 다해 소리 질렀더니 예수께서 그 소경을 고쳐 주시며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라고 했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부르짖지 못합니다. 더욱이 마귀에 눌린 사람은 기도 소리조차 듣기 무서워합니다. 부르짖는 기도는 능력이 있고,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이며, 심령의 문이 열리고, 여러 가지 기적을 나타냅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부르짖는 자에게 뜨거운 불을 주시며, 그 불이 꺼지지 않게 하십니다. 구원은 부르짖는 자의 선물입니다. 로마서 1613절에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로다"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또 부르짖을 때 환난에서 구원해 주십니다. 시편 5015절에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또한 부르짖을 때 슬픔과 고통에서 자유함을 주십니다. 시편 1185절에 "내가 고통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응답하시고 나를 광활한 곳에 세우셨도다"라고 했고, 1163절에 "사망의 줄이 나를 두르고 음부의 고통이 내게 미치므로 내가 환난과 슬픔을 만났을 때에 부르짖어 구원받았다"고 했습니다.

부르짖을 때 불은 더욱 뜨겁게 타오릅니다. 사도행전 4 : 2"저희가 듣고 일심으로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 가로되"기도했더니 31절에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고 했습니다.

 

둘째, 지속적인 예배 참예와 제단 봉사가 있어야 붙은 불이 꺼지지 않습니다(10-11).

 

예배가 죽으면 심령이 죽고 만사가 병들어 갑니다.

제가 섬기고 있는 교회는 매일 정오 12시에 예배를 드립니다. 매일 특별 기도를 하게 됩니다. 그것은 제단에 불이 꺼지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 또한 본문에 예배자의 옷차림과 번제의 제물의 교훈에는 문명 시대의 성도들에게 주시는 산 교훈이 있습니다. ,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드리는 자에게는 옷차림이 잘 되어야 한다는 교훈이요, 제물을 정성껏 준비하여 정성으로 예배드리라는 교훈입니다.

여러분, 살인하고 도적하고 간음하는 것은 죄이고, 하나님의 거룩한 안식을 범하는 것은 죄가 아닙니까? 십계명 중에 넷은 하나님께 향한 것이고 여섯은 인간을 향한 것이듯이, 거룩한 주일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께 향한 큰 계명입니다. 거룩한 주일을 범하는 것은 죄 중에 죄요, 내 영혼의 불이 꺼지게 하는 길이요, 하나님의 축복의 길을 막는 것입니다.

이사야 5813-14절에 보면, 주일 성수자에게도 즐거움의 축복과, 올라가는 은총과, 야곱에게 주신 물질의 축복을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거룩한 주일에 예배에 참예하고, 각 부서에서 자기에게 주신 소질과 재능과 은사를 따라 봉사하며, 나가서 전도해 보십시오. 그 영혼에 하나님의 불이 붙을 것입니다.

기도는 호흡하는 것이니 숨쉬는 것이 자랑입니까 ? 성경은 심령의 양식이니 밥 먹는 것이 자랑거리입니까? 전도는 생명을 구함이니 자랑거리요, 봉사는 축복의 길이니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꺼지지 않는 불이 붙고 있는 심령에는

만사가 중생하고 달라지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되게 하는 역사가 있습니다.

합력하며 선을 이룩합니다.

 

셋째, 매일매일 성경 말씀으로 내 영혼에 불을 붙이며 감사의 생활 십일조의 생활이 떠나지 않아야 합니다(12-13).

 

하나님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와 나와의 사이를 연결시켜 주시는 살아있는 생명의 말씀입니다(고전 12. 14-17). 지구와 달나라와의 단절된 대기권을 로켓트가 연결시키듯이, 하나님과 인간과의 단절을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어 연결시켜 주신 것을 계속해서 증명해 주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생활 속에서 성경이 떠나서는 안됩니다.

사람이 운동하지 않으면 병드는 것처럼 사명자가 봉사하지 않고 헌금하지 않으면 신앙 병이 듭니다.

 

봉사 중에 최대의 봉사는

제단 봉사요

교역자께 봉사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5대 기쁨이 있다고 합니다.

생명 주신 기쁨이요

구속과 속죄의 기쁨이요

봉사와 헌금의 기쁨이요

지금 주실 축복과 더 주실 축복의 기쁨이요

부활과 영생의 기쁨입니다.

 

스텐리 존스 박사는

너는 문제 속에서 목회 하라.

일하는 소의 외양간은 지저분하다.

교회가 죽어 무덤이 있다면 그 무덤의 주인은 목사일 것이다라고 정의한 바 있습니다.

 

결론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불로 역사 하십니다. 이스라엘을 광야에서 구름 기둥, 불기둥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은 지금도 불로 인도하시고 계십니다.

 

1) 하나님은 세상을 불로 심판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홍수 후에 소등과 고모라를 불로 심판하셨고 종말에도 불로 심판하실 것이라고 했습니다(벧후 3: 10). 마태복음 310 절에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우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342절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은 거두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모세를 원망하는 백성에게 땅이 갈라져 그 속에서 불이 일어나 멸망당한 사건이나 엘리야를 경멸할 때 하늘에서 불이 떨어져 50인이 타 죽은 역사가 불로 심판하셨던 산 경고입니다.

 

2) 지금 주시는 은혜도 먼저 불로 역사 하십니다(12 : 49-50, 2 : 1-4, 대하 7 1, 6 : 6)

 

요한복음 2022절에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고 하였습니다. 김익두 목사님이 받으신 말씀의 능력과 신유의 은사는 저절로 와진 것이 아니라 손톱이 빠지도록 돌과 나무 뿌리를 뽑으며 기도하다가 받은 불로 인한 역사인 것입니다.

 

3) 불을 받는 형태도 다양합니다.

 

은사가 다른 것처럼 불 받는 모습도 다양한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떤 이에게는 모세처럼 타지 아니하는 불로 임합니다.

어떤 이에게는 엘리야처럼 타는 불로 임합니다.

어떤 이에게는 엠마오의 젊은이나 웨슬레처럼 뜨거워지는 불로 임합니다.

주여, 나로 하여금 하나님의 불길이 되게 하소서

지금 여기에 기도와 참회의 숯불을 모아 우리의 심령이

성령의 용광로가 되게 하시고 우리의 가정과 교회가

성령의 불덩이가 되어 펄펄 타오르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저 제단에 붙은 볼이 꺼지지 않게 하사

지금 여기서부터 부흥의 불길이 요원의 불길처럼 일어나

기도가 폭발하고 전도가 폭발하고 축복이 폭발하게 하소서. 아 멘

 

출처 : 영성회복훈련원
글쓴이 : 양승식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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