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시리즈 – 제자도③
주일설교(2014/08/03)
나는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막3:3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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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예수님이 가버나움 집에서 말씀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의 가족들이 예수님을 찾아 왔습니다. 찾아 온 이유는 오늘 본문 앞에 21절에 보면, 그 가족들이 예수님을 붙잡으러 왔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은 귀신들려 – 귀신의 왕 바알세불이 들어 – 미쳐서 방랑하는 방랑자라고 소문을 내었습니다. 그래서 가족들이 그 소문을 듣고 예수님을 붙들러 왔다고 했습니다. 아직까지 예수님의 가족들은 예수님이 하시는 사역을 잘 이해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말씀을 가르치고 있는 중에 어떤 제자가 예수님께 ‘가족들이 찾아 왔다’고 보고를 합니다. 이 때 이미 알고 있던 예수님은 거기에 둘러 앉아 있는 사람들을 향하여 “누가 내 어머니이며 동생들이냐? - 즉 누가 내 가족들이냐?” 라고 말씀하시면서, 거기 둘러 앉아 있는 제자들을 보시면서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을 보라” - 즉 “내 진짜 가족들을 보라” 하시면서,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즉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들이 내 가족들이다” 라고 하셨습니다. “내 진짜 가족은 여기에 있는 제자들이요,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들은 다 내 가족들이다” 라고 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진정한 참된 가족을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진정한 참된 가족은 단순한 혈육관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와 아무런 혈육관계가 없는 사람이라도, 실제로 친척이나 혈연 관계자 이상으로 친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여러분, 교회는 진정한 가족입니다. 교회의 제자들은 진정한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우리가 멀리 하나님 나라까지 내다본다면, 혈육관계의 가족은 일시적인 것입니다. 이 땅에 있을 동안에만 일시적으로 유지되는 관계입니다. 그러나 멀리 하나님 나라까지 내다본다면, 하나님 나라와 연결되어 있는 가족관계가 진정한 가족관계입니다. 그래서 교회와 하나님 나라의 가족관계는 혈육의 관계가 아닙니다. 교회와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뭉쳐진 신앙고백의 관계요, 믿음의 공동체 관계입니다.
이러한 사고가 잘 발달된 나라들이 서구사회입니다. 미국이나 유럽 사회는 기독교 사상, 기독교 정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족을 혈연중심으로 보지 않습니다. 같은 공동체, 같은 소속, 같은 믿음 안에 있으면 다 한 가족으로 봅니다. 예를들면 그들은 입양을 잘합니다. 인종을 초월해서 그들은 입양을 해서 한 가족이 되면 혈연관계보다도 더 찐한 한 가족이 됩니다. 한 가족이 되면 서로 사랑하고 섬기고 희생하고 서로 배려하고 함께 해 줍니다.
우리가 복음서를 읽어보면, 예수님은 한 사람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가지셨습니다. 예수님은 개인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가지셨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을 부르실 때도 한 사람 한 사람 개인적으로 부르셨습니다. 누가복음 19장에 보면 예수님이 세리장 삭개오를 부르시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뽕나무 위에 올라가 예수님을 보고 있는 삭개오를 향하여 가셔서 “삭개오야,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너희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눅19:5) 라고 부르십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각각 개인적으로 부르십니다. 예수님은 개인적인 사랑을 갖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죄 가운데 있고, 지치고, 힘든 자들에게 접근하셔서 개인적이며 인격적인 사랑으로 사랑하시고 부르십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개인적으로 부르셔서 예수님의 특별한 공동체를 만들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제자들 하나 하나를 개인적으로 부르셔서 하나의 공동체를 만들었습니다. 이 공동체가 교회입니다. 예수님은 개인 한 사람 한 사람을 부르셔서 교회를 만드시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첫 번째로, 제자는 교회 공동체를 우선시해야 합니다.
제자는 교회 공동체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여러분, 제자의 여러 특징 중에 하나가 교회 공동체를 먼저 생각한다는 겁니다. 예수님은 3년 동안 제자들과 아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제자들을 가르쳤습니다. 이게 오늘날 교회의 모델이 되었습니다. 그는 제자들을 사랑하셨으며, 그들의 필요를 채워 주셨으며, 그들을 가르치셨고, 그들의 언행심사를 고쳐 주셨으며, 그들의 신앙을 자극하셨으며, 하나님의 나라를 알게 해 주셨으며, 자기 이름으로 그들을 보내셨으며, 용기를 주고, 그들을 인도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너희들도 이와 같이 하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교회는 예수님의 진정한 제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교회는 하나님의 진정한 가족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세상을 향하여 강한 설득력과 신뢰심과 영적인 능력을 가지고 “너희도 교회 공동체에 들어와 우리처럼 되라”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교회 공동체는 하나님의 한 가족입니다. 하나님이 이 특별한 가족 공동체를 통하여 새로운 창조행위를 하실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인간이 범죄함으로 망가져 버린 하나님의 나라의 공동체를 새롭게 창조하실려고 하시는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고, 예수님은 한 사람 한 사람을 불러서 교회 공동체를 통해서 하나님의 가족으로서의 하나님의 나라를 창조하시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1장 9-10절에서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신 것이요 그의 기뻐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비밀을 알았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제자들을 통하여 교회를 만드시고, 그 교회를 통하여 인간이 범죄함으로 망가져 버린 하나님의 나라를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로 창조하시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여러분, 오늘날 우리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병든 사회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인간들의 죄로 오염되었고, 악한 사탄의 손아귀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창조 세계가 “썩어짐의 종노릇”을 하고 있습니다(롬8:19-22). 이러한 이유 때문에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고, 참 하나님의 나라, 참 하나님의 공동체인 하나님의 가족을 세우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하나님의 한 가족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제자는 교회 공동체는 “하나님의 가족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진정한 가족이다” 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 교회는 하나님의 한 가족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공동체를 가장 귀하게 여기고, 우선시해야 합니다. 할렐루야!
두 번째는, 하나님의 백성들과 연합해야 합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요한복음 17장에서 십자가를 앞두고 제자들을 위하여 ‘대제사장적인 기도’를 하면서 하나님 아버지에게 반복적으로 간절히 기도한 그 마음을 생각해야 합니다.
“(11)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21)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22)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23)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11, 21-23절)
삼위일체 하나님은 삼위일체 그 자체로 하나입니다. 하나님 자체가 하나이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하나 되는 것을 좋아하십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간곡하게 하나 될 것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은 자기 혼자 신앙생활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은 교인들과의 연합입니다. 그래서 예배도 하나 되어 함께 드리는 것이고, 교회의 모임도 하나 되기 위해 함께 하는 것입니다. 교회를 섬기고 봉사하는 것도 연합해서 함께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제자는 함께 하고 연합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 그 자체가 하나님의 삶을 표현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세계를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세 번째로, 하나님의 가족은 낮아짐으로 섬겨야 합니다.
독일의 본회퍼 목사님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에는, 와서 죽으라고 명령하시는 것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순교의 정신을 말하는 것입니다. 육신이 핍박받아 죽는 것도 순교이지만, 내 자아가 죽고, 내 주장이 죽고, 내 고집이 죽고, 희생하고 낮아져 섬기는 것도 순교의 정신입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물질에 노예가 되어 사는데, 이 피와 같은 나의 돈을 아끼고 덜 쓰고, 하나님께 헌금하는 것도 순교의 정신이 아니고는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독교는 관계입니다. 기독교인의 신앙은 한 마디로 관계입니다.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이며, 우리와 다른 사람과의 관계입니다.
여러분, 죄의 속성도 관계입니다. 어둠의 세력인 사탄도 강한 관계를 가지고 얽어맵니다. 그러나 사탄의 관계는 그 속에 내 정욕과 욕심과 이기심이 숨어 있습니다. 내 중심으로 모든 관계가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기독교인의 관계는 그 중심에 십자가가 있습니다. 기독교의 순교의 정신 속에는 십자가가 그 중심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16:24)
성도의 교제 중심에는 십자가가 있어서 더욱 깊고 성숙해 집니다. 진정한 친구는, 진정한 교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아래에서 무릎을 꿇고, 그의 긍휼과 사랑에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형태의 자기 자아 – 자기 추구, 자기 중심, 자기 의, 자기 주장, 자기 뜻 –을 십자가에 다 못 박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다른 성도들과 소극적인 자세로 교제할려고 하는 자세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교회에서 자랑할려고 하는 세상적인 지위도, 세상적인 성공도 십자가에 못박아야 합니다.
여러분, 기독교인들의 사랑과 우정은 십자가로부터 시작됩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모든 죄는 십자가 아래에서부터 깨닫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서면 죄인임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선 경험이 있고,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자기의 죄를 깨달은 자들이 모인 공동체가 교회요, 거기에서 나온 사랑과 우정을 공유하는 자들이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예수님의 십자가 아래 있다는 사실을 의식해야 합니다. 십자가 아래는 가장 낮은 장소입니다. 십자가 아래는 하나님의 치유의 역사가 일어나고, 은혜가 충만한 장소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 아래로 다 내려가야 하고, 십자가 아래에 다 엎드려 낮아짐을 체험해야 합니다.
교회에 다니는 어떤 그리스도인이 이런 글을 썼습니다. “나는 교회에서 내가 누구인지 당신에게 말하기가 두렵다. 왜냐하면 내 진실한 모습을 당신이 싫어할 수도 있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반기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늘 가면을 쓴 채로 진실한 자신의 모습을 숨기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오늘날 교인들은 교회에서 가면을 쓴 채로 자신의 진실한 모습을 숨기고 자연스럽게 행동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겉으로는 평안하고 만족스러워 보이지만, 내적으로는 나를 사랑해 달라고 외치는 사람들로 가득차 있고, 혼란에 빠져 있으며, 좌절해 있으며, 가끔 공포에 젖어 죄의식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으며, 심지어 가족과도 대화가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볼 때, 다 행복해 보이고, 문제없이 만족하게 사는 것 같고, 나 혼자만 문제 있고, 나 혼자만 힘들게 사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감히 자기의 속마음을 털어 놓을 수 없다는 겁니다, 이것이 현대 교회의 문제요, 모습이라는 겁니다.
그러나 십자가 밑에 서 본 경험이 있는 자들, 십자가 밑에서 내가 죄임을 깨달은 자들은, 항상 내 삶의 중심에 십자가를 두고 삽니다. 낮아짐으로 섬기며 삽니다. 인간은 누구나 부족하고, 죄인임을 압니다. 아무리 가면을 쓰고 겉으로 평안해 보이지만, 그 속은 평안치 않다. 힘들고 어렵다. 고민하고 있다. 고독하고 외롭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그를 십자가 밑에 데리고 와서 십자가를 경험하게 해야 하며, 죄인임을 깨닫게 해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낮은 자리에서 그를 섬길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영적인 사람, 예수님의 진정한 제자는 사람을 겉으로 보지 않습니다. 겉을 보고 평가하지 않습니다. 그 속은 다 추하고, 죄인이요, 사랑에 메말라 있고, 행복을 좇는 파랑새요, 다 가면을 쓰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므로 제자는 항상 십자가를 삶의 중심에 두고, 낮은 자리에서 섬겨야 합니다. 할렐루야!
제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 선생님이 늘 전도해 오라고 합니다. 전도를 많이 해서 우리 반이 많아지면 그 해에 종합우승해서 1등 하게 되면, 상이 제일 많습니다. 또 상중에도 전도상이 제일 크기 때문에 늘 전도해 오라고 독려했습니다. 그래서 늘 어떻게 하면 친구들을 설득해서 교회에 데리고 가나 이것만 생각합니다. 어디에서 친구들을 만나든, 특히 우리 집에 놀러 오는 친구가 있다면, 어떡하든 잘 해 주어서 교회를 데리고 갈려는 생각이 늘 앞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동네친구들 한테 교회 가자고 하면 잘 안갑니다.
그 중에 두 친구를 전도해서 교회에 데리고 가는데, 이 친구들이 요구조건이 많습니다. 학교 갈 때 올 때, 책가방을 들어 달라느니,, 자질구레한 심부름을 다 시킵니다. 심지어 숙제까지 해 달라고 합니다. 안 해 준다고 하면 다음주일부터 교회에 안 간다는 겁니다. 교회에 안 간다고 하면 제일 무서운 겁니다. 우리 반이 종합 1등을 해야 되는데 그 친구들 교회에 안 오면 안되거든요. 그래서 할 수 없이 싫어도 책가방도 들어 주고, 심부름도 해 주고, 숙제도 해주고,,,,,,,,, 그것 때문에 마음에 상처가 많습니다. 이 친구들은 계속해서 나의 이 약점을 울거 먹습니다. 제일 힘들때가 언제냐 하면, 우리 아버지가 교회에 못 가게 한다는 겁니다. 이 때는 어쩔 방법이 없습니다. 울고 싶습니다. 한 번은 이 친구들이 교회에 안 오는 겁니다. 그렇게 열심히 공을 들이고, 해 달라는데로 다 해 주었는데, 교회에 안 오는 겁니다. 나중에 물어 보니 아버지가 못 가게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 친구 아버지가 우리 집에 찾아 와서 친구를 교회에 데리고 갔다고 막 욕을 하면서 다시는 교회에 꼬셔서 데리고 가지 말라고, 고함을 지릅니다. 교회는 너희들 같은 상놈들만 교회에 다닌다는 겁니다. 그래서 혼자서 많이 울었습니다. 그리고 교회에 가서 선생님 한테 친구가 교회에 못 온다고 하면서 우니까 선생님이 나의 손을 잡고 기도해주기도 했습니다. 그러고도 학교에 같이 다니면서 전도할려고 애를 썼습니다. 책가방도 들어주고 요즘 말로 많이 섬겼습니다. 결국 그 친구를 전도 못했습니다. 지금 그 친구 중에 한 명은 울산의 현대 중공업에 있는데, 1년에 몇 번 전화가 옵니다. 초등학교 시절에 그 친구 전도할려고 책가방 들어주고, 숙제도 해주고 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너 전도할려고 얼마나 애를 썼는지 모른다. 너무 안타까워서 울기도 했다” 고 했더니, 안 그래도 교회만 보면 너 생각이 난다는 겁니다. 이제 퇴직도 앞두고 있는데, 교회를 나갈려고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같은 회사에 중학교 동기인 장로님이 한분 있는데, 그 친구한테 전화해서 그 이야기를 했더니 자기가 책임지고 교회에 데리고 나가겠다는 겁니다.
여러분, 교회는 하나님의 한 가족입니다. 낮은 자세로 섬기는 것입니다. 가족은 섬김에서 출발합니다. 가족은 섬김 받을려고 하면 안됩니다. 한 알의 씨앗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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