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제자도(5)-나는 제자를 양육합니다.

하나님아들 2017. 6. 24. 09:04

제자시리즈 제자도

주일설교(2914/08/17)

나는 제자를 양육합니다

마태복음 28: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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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크게 둘로 나누면, 사람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땅에 속한 사람, 다른 하나는 하늘에 속한 사람. 땅에 목적을 두는 사람과 하늘에 목적을 두는 사람. 영적인 사람과 육적인 사람. 물질에 속한 사람과 하나님의 은혜에 속한 믿음의 사람. 이렇게 둘로 나누어지는 겁니다.

우리는 영적인 사람, 믿음의 사람,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창조주 아버지다’, ‘우리의 고향은 하늘나라이다’, ‘우리가 하늘에서 이 땅에 왔다이것을 믿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우리의 삶의 질서와 생활을 하늘에 목적을 두고, 거기에 맞춰 환경과 사물을 해석하고, 이해하며 삽니다.

 

유명한 독일의 학자, 에리히 프롬은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소유냐 존재냐하는 물음을 던졌습니다.

사람이 어디에 목적을 두고 있느냐? 소유에 목적을 두고 있느냐? 존재에 목적을 두고 있느냐?” 오늘 우리 인류의 불행과 고통은 소유에 너무 지나친 목적을 두는 겁니다. 소유를 위해, 가지려고, 더 가지려고 합니다. 이러한 삶은 안정이 없고, 끝없이 항상 불안하고, 고립되고, 긴장하고, 갈등, 대립합니다. 삶에 평안과 기쁨이 없습니다. 만족이 없습니다.

 

그러나 존재에 목적을 둔 삶은 다릅니다. “내가 누구냐? 내가 어디서 왔느냐? 어디로 가느냐?” 좋은 전통을 간직하고 지키며, 내 심령과 영혼에 내 속사람을 항상 생각하고, 고민하고, 염려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이런 삶은 믿음으로 살려고 하고, 자기 존재에 가치를 두고 사는 삶입니다.

 

남극의 펭귄은 아내가 알을 딱 하나밖에 안 낳습니다. 알을 딱 하나 낳고는 이 어미는 무슨 끼가 있는지 바다로 바로 떠나 가버립니다. 남편에게 네가 책임져라하며, 이 알을 넘기고는 이 펭귄은 바다로 가서 자기 맘대로 해수욕도 하고, 헬스도 하고, 온천에 다니고, 좋은 뷔페 음식을 다니면서 먹고, 살이 통통 쪄서 몇 달 동안 안 돌아옵니다. 이 넉 달 동안 이 펭귄의 남편이 그 알을 품는 겁니다. 아빠가 알을 자기 다리에 올려놓고 지냅니다. 남극 기온이 얼마나 낮은지 그 알을 잠깐만, 1분만이라도 내려놓으면 곧 얼어버립니다. 영하 30도에서 50도까지 내려가니 살인추위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딱 발위에 올려놓고 몇 달을 안 먹습니다. 몇 달을 안 먹고, 딱 수분만 섭취하고, 빠짝 마르면서 조금만이라도 알이 굴러가지 않게 합니다. 움직여도 조금씩 움직이고, 많이 움직이면 안 됩니다. 그래서 첫 애기 아빠는 알을 잘못 굴리다가 떨어뜨리는 일도 있답니다. 잘못해서 밖으로 떨어뜨리면 1분 안에 얼어버립니다. 노련한 애기 아빠는, 벌써 세 번, 네 번 부화시켜본 아빠들은 그것을 철저하게 다리에 올려놓고 밤낮으로 잘 품는 겁니다. 아내가 돌아오기를 늘 사모하며, 기다리면서 절대로 불평하지 않습니다. 감사하면서, 물론 감사하다는 말은 안 하지만,,, 하여튼 그렇게 알을 품는 겁니다.

그런데 남극이 춥지 않습니까? 어떤 때는 영하 50도까지 내려갈 때는 어떻게 하느냐? 펭귄들이 추위에 못 견뎌 알은 고사하고 아빠도 죽는 겁니다. 그 추위를 못 이길 때는 어떻게 하느냐? 놀라운 광경이 펼쳐집니다. 펭귄끼리 모두 모입니다. 전부 털을 가지고 서로를 보호합니다. 그래서 바람이 불어도 바람이 모인 펭귄 무리 안으로 못 들어오게 전부 막아서서 추위 50도를 이겨내는 겁니다.

그러면 무리 맨 밖에 있는 펭귄이 얼 텐데 어떻게 하느냐? 순번을 돌리는 겁니다. 골뱅이 형상 같이 안에 있는 모든 펭귄은 밖으로 나오고 밖에 있는 아저씨 펭귄들을 전부 안쪽으로 다시 들어오면서 계속 순번을 돌리는 것입니다. 이것을 허들링(huddling)이라고 합니다.

어떻게 이렇게 펭귄들이 서로를 배려합니까? 미물인 이런 새들이 어쩜 그렇게 놀라운지 모릅니

. 하나하나가 감동적입니다. 수많은 몇 만 마리 새끼가 모여 있어도, 부모 펭귄은 음성으로 자기 새

끼를 알아냅니다. 다 알아냅니다. 전부 찾아냅니다. 펭귄들이 모두 똑같이 생겼지 않습니까? 그러나

똑같아도 전부 자기 새끼를 다 압니다. 놀랍죠?

 

여러분, 보세요. 오늘 우리가 살면서 하나님 앞에서 존재의 본질에 충실하면 이렇듯 동물조차도 아

름답게 삽니다. 길 잃지 않습니다. 멋지게 삽니다. 우리 인간도 본질에 목적을 두고 살면 이 사회가

절대로 이렇게 되지 않습니까? 요즘 학생들은 학생들대로, 군대에서는 동료들끼리 폭력이 난무하고,, 서로 죽이고,, 세상에 이게 무슨 난리입니까? 이것은 전부 이익만 앞세우고, 자기만 앞세우고, 자기 성공, 자기 기쁨, 자기 만족을 채우려하니 이 사회가 뿌리까지 깊이 병드는 것입니다. 헌신이 없고,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자기의 목적을, 욕망을 채우는데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남을 이용해서 내 이익을 채울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주님이 왜 이 땅에 교회를 주셨습니까? 교회는 내 이익을 채우는 곳이 아닙니다. 교회는 하늘의 축복을 받는 곳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은혜와 축복을 받는 곳입니다. 교회는 이 세상에서 물질의 축복을 누리고, 내가 성공하고 풍성해져서 내 혼자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이 땅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다 주님의 제자되어 주님의 복음을 위해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섬기고, 낮아져서 희생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내가 교회를 통해 예수 믿고 제자되어 다른 사람을 전도해서 가르치고 제자 세우라고 교회를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마귀가 주는 복을 받으면 안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바로의 종이 되어 종살이하면서, 아무리 기름지고 좋은 음식을 먹으며 살아도 종살이 일뿐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쾌락을 즐기며, 풍요를 누리며 산다고 해도 죄악 속에서 종살이하는 것뿐입니다.

우리는 하늘로부터 오는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늘로부터 오는 축복은 아무나에게 주는 것이 아닙니다. 제자되어 주님을 위해 낮아져서 섬기고 희생하는 자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제자는 예수님을 따르는 자입니다. 제자는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헌신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따르며, 그리스도의 삶을 살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사랑과 진리를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자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에서도 제자를 삼아, 세례를 주고,, 주님의 말씀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19-20) 라고 명령하십니다. 이것은 우리 예수님의 지상 명령입니다. 이 후부터 제자들은 다른 사람을 격려하고 가르쳐서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을 만들어 갔습니다.

 

18세기 독일에 진젠도르프(Nikolas Ludwig Zinzendorf) 백작이 살고 있었습니다. 많은 재산과 토지를 가진 사람입니다. 어느 날 미술관에 그림을 보러 갔습니다. 이 그림, 저 그림을 보다가 한 그림에 눈이 멈춰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서 죽으신 그림이었습니다. 머리에는 가시면류관이 쓰여 있습니다. 양손에는 대못이 박혀 있습니다. 그리고 허리는 창에 찔린 채 피가 흘러내리는 그림이었습니다.

진젠도르프는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의 모습을 보는 순간, 예수의 허리에서 실제로 피가 흘러내리는 광경을 보게 됩니다. 그때 진젠도르프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고 회개의 기도를 합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죄 때문에 피를 흘리고 죽으셨는데, 나는 예수님을 위해 아무것도 한 것이 없습니다. 저의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그 충격적 사건이 진젠도르프 백작의 삶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자기만을 위해 살던 진젠도르프는 하나님을 위해 살고 이웃을 위해 사는 사람으로 변화되어졌습니다. 많은 토지를 떼어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마침 그 때 모라비안 교도들이 신앙의 박해를 피해 진젠도르프의 영지 가까이 피신을 왔을 때 그들에게 많은 땅을 내어주었습니다.

모라비안 교도들은 그곳에 헤른포트 신앙공동체를 만들고 경건 운동을 펼치게 됩니다. 진젠도르프 백작은 8명에서 12명 정도로 구성된 작은 소그룹들을 만듭니다. 여기서 성경공부와 영적각성운동과 전도운동을 하면서 신앙공동체를 계속 만들어 갔습니다.

 

여러분, 교회는 하나님의 특별한 공동체요, 교회는 하나님의 한 가족입니다. 가족은 부모가 계시고, 형이 있고, 누나가 있고, 동생이 있습니다. 동생도 첫째 둘째 셋째,,,, 이렇게 동생들이 있습니다. 위로는 첫째 둘째 셋째 이렇게 형들이 있습니다. 형은 동생을 키우고 돌봅니다. 누나도 마찬가지 자기도 어리지만 더 어린 동생을 돌보고 키웁니다.

저희들이 시골에서 자랄 때는 다 그렇게 컸습니다. 부모님은 농사짓고 일하기 바빠서 동생을 돌볼 시간이 없습니다. 그러면 형과 누나가 어리지만, 밑에 동생들을 돌보면서, 먹을 것 챙겨 주고, 데리고 다니고 놀아 줍니다. 어릴 때 시골 교회는 누나나 형이 교회에 나올 때, 밑에 동생들이 다 딸려서 교회에 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먼저 믿은 성도들이 나중 믿는 성도들을 잘 돌보았습니다. 특히 구역 구역마다, 먼저 믿은 성도들이 새 성도가 전도되어 들어오면, 너무 너무 아끼고 사랑하고 잘 돌보았습니다. 그래서 다 제자를 기르는 겁니다. 또 이들이 훈련받고 신앙이 들고 온전한 교인이 되면, 또 그렇게 다른 사람을 위해서 섬기고 돌보고 잘 해 주는 겁니다. 이게 교회입니다. 교회는 한 가족이기 때문에 서로 서로 잘 돌보는 것입니다.

 

또 교회는 훌륭한 목회자를 길러냅니다. 신학생들을 잘 도와 주어서 훌륭한 종으로 길러 줍니다. 교회는 좋은 목회자를 길러내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한국교회는 훌륭한 목회자를 길러내지를 못합니다. 옛날에는 다 교회에서 훌륭한 목회자를 길러냈습니다. 다 신학교 보내서 공부시키고, 그리고 때가 될 때까지 기다려줍니다. 오늘날에는 교회들이 월급 많이 주어서 공부 다하고, 외국에서 공부 다 마친 목사님들을 그냥 데리고 옵니다. 그러다가 잘 못한다 싶으면 그냥 내 보내 버립니다. 조금도 기다려 줄 생각을 안 합니다. 교회가 목회자를 키우는게 아니고, 다 된 목회자를 월급 많이 주고 데리고만 올려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큰 교회에서는 훌륭한 목회자가 안 나옵니다. 그들은 기다려주지를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작은 교회나, 개척교회에서 이리 치고, 저리 치고, 여러 가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실수도 하고, 실패도 해 보면서 자라고, 시간이 흐르면서 배우고 해서, 훌륭한 목회자가 만들어지는 겁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기다려주는 교회에서 좋은 목회자, 영성이 풍성한 목회자가 나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는 제자를 양육해야 합니다. 제자는 또 다른 제자를 양육해야 합니다. 한번 따라합시다. “나는 제자를 양육합니다제자가 제자를 양육할려면 몇 가지의 조건이 있습니다.

 

첫째는, 나도 먼저 믿은 자로서 제자를 양육해야겠다는 마음과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교회는 클럽활동을 하는 곳이 아닙니다. 소정의 회비를 내고 그 클럽 내에서 다른 사람들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좋은 회원을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를 사교단체 혹은 클럽 활동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좋은 교인좋은 회원과 같다라고 생각하고, 나에게 이득이 없으면 언제든지 회를 탈퇴하듯이 교회를 떠나버립니다.

여러분, 교회는 먼저 믿는 자들이 절대적인 헌신이 있어야 합니다. 절대적인 헌신이 없고, 제자양육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교회는 성도의 교제에서 아주 천박한 모습을 드러내고, 전도가 없으며, 열정적인 봉사가 없으며, 성령의 은사도 없고, 예배도 열정적으로 드리지 않고, 기도도 없고, 사랑의 결핍으로 나타난다는 겁니다. 오늘 우리는 먼저 나도 제자가 되어 제자를 양육하는 리더가 되어야겠다는 필요성을 간절히 느끼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둘째는, 제자양육을 진지하게 한다는 이유로 율법적이고, 지나친 권위를 강조하면 안됩니다.

제자양육에서 범할 수 있는 위험이 바로 이것입니다. 너무 지나치게 경직되거나, 압박을 가하면 간섭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마음의 문이 열리지 않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목회하면서 강요를 하지 않았습니다. 늘 기다려 주는 자세로 목회를 했습니다. 교회에 잘 안 나오는 사람에게 심방을 가거나, 전화를 하면,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는 좀처럼 교회에 나오라고 강요를 하지 않습니다. 어떤 때는 교회에 나오라는 말을 한 마디도 안할 때가 더 많습니다. 어차피 심방 간 자체가 교회에 안 나오기 때문에 교회에 나오라고 심방 간 것이고, 전화하는 것도 교회에 잘 안 나오니까 잘 나오라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굳이 교회에 나오라고 강조할 필요는 없는 겁니다. 여러분, 제자양육은 섬김이고, 헌신이고, 기다림입니다. 묵묵히 말없이 기도하면서 그가 성장하기를 바라면서 기다려 주는 것입니다. 어떤 때는 별별 소리를 다하고 비판의 소리가 들려 올 때도 있습니다. 섭섭한 불만의 말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기다려주어야 합니다. 할렐루야!

 

셋째는, 먼저 지도자는 잘 배워야 하고, 잘 배워야 좋은 지도자가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여러분, 열심히 배우십시오. 예수님의 열 두 제자들은 다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인간적인 결함이나 고통이 우리도 똑 같이 가지고 있는 것들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야망에 가득차 있었고, 이기적이었으며, 심지어 가끔 자기들끼리 누가 제일 큰지 논쟁하기도 했습니다. 제자들은 연약했고, 미래를 걱정했고, 사람들을 두려워했으며, 서로 간에 시기하고 비판했습니다. 어떤 때는 하나님을 믿지 못함으로 예수님께 책망을 듣기도 했으며, 그들은 말할 때 충동적이기도 했으며, 남을 미워하기도 했으며, 예수님이 장차 닥칠 시험을 경고했을 때에는 자만했으며, 기도를 안 해서 기도하라고 권고를 받기도 했으며, 아이들이 예수님께 오는 것을 보고 꾸짖어 보내려다가 예수님께 꾸중 듣기도 했습니다. 군중들이 예수님께 몰려오는 것을 보고 짜증을 내기도 했으며, 예수님이 반복해서 말씀했는데도 불구하고 정작 십자가 앞에서는 다 도망 가 버렸습니다. 그들은 얼마나 더디게 배웠고, 성장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계속 그들을 인정하고 기다려 주셨습니다.

여러분은 너무 더디게 하지 마시고, 열심히 배우십시오. 열심히 듣고, 나를 빨리 성장시키는 제자가 되십시오. 할렐루야!

 

넷째는, 제자는 제자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열 두 제자는 처음 부름 받아 제자가 되어 그냥 따라다니며,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도 하고 기적을 보기도 하고 하면서 3년 반을 보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그들을 조금씩 훈련을 통해 제자가 되어 갔습니다. 그들은 너무나 느리게 제자가 되어 갔습니다. 그들 중에 한 명인 가룟 유다는 자기의 이익을 위해 예수님을 배반하고 팔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후에도 승천하지 못하시고, 40일 동안 함께 계시면서 제자훈련을 했습니다. 그 후 예수님이 승천 하신 후 10일 뒤 오순절에 성령을 받음으로 그 때부터 그들은 사도가 되었습니다. “사도라는 말은 대사또는 대리자라는 뜻입니다. 그들은 처음에 부름 받아 제자가 되고, 그 후 성령을 받은 후 사도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제자는 훈련으로 됩니다. 가만히 있는다고 제자가 되는 게 아니고, 제자는 훈련으로 됩니다.

훈련은 말씀으로 합니다. 여러분, 말씀을 많이 들으십시오. 그리고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 많이 하십시오. 그리고 모이기를 힘써야 합니다. 섬기고, 다른 사람을 돌보고, 헌신해야 합니다.

 

딤후 22에서 사도 바울은 사랑하는 제자 디모데에게 이렇게 부탁하고 있습니다.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딤후2:2)

 

저는 오늘 여러분들에게 부탁합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저의 충성된 사람들이라고 믿습니다. 여러분들은 이 교회에서 저에게 배우고 들은 바를 또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서 가르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그들이 또 다른 사람에게 전해서 가르칠 것입니다.

 

한번 따라합시다. “나는 제자입니다. 나는 리더입니다. 나도 리더가 될 수 있습니다기도하십시다.

출처 : 대구영은교회
글쓴이 : 주님의 머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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