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제자도(1)-믿음과 삶으로 증명하는 제자도

하나님아들 2017. 6. 24. 09:05

제자시리즈 - 제자도①

주일설교(140720)

믿음과 삶으로 증명하는 제자도

28: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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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몇 주 동안 제자도에 대해서 설교하겠습니다.

제자가 무엇인지, 왜 제자가 되어야 하는지, 성경에 초대교회 성도들은 제자가 되는 것에 목표를 두었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누구든 제자가 되었습니다. 왜 제자가 되어야 하며, 왜 제자가 될려고 했는지, 왜 예수님은 교회를 와서 예수를 믿기 시작하면 제자가 되기를 원했었는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여러분, 성도는 그냥 교회만 다니는 교인으로만 남아 있으면 안됩니다. 왕 같은 제사장이 되어야 합니다.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왕 같은 제사장들이요,거룩한 나라,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2:9) 라고 했습니다.

택하신 족속만으로는 안됩니다. 왕 같은 제사장이 되어야 합니다. 이 왕 같은 제사장들이 모인 나라가 거룩한 나라입니다. 이 나라가 주님의 소유된 백성들입니다.

왕 같은 제사장이 제자요, 제자가 왕 같은 제사장입니다.

여러분, 성도가 제자가 되어야 복을 받습니다.

여러분, 성도가 제자가 되어야 하나님 쓰십니다. 여러분, 제자가 되어 복을 받고 쓰임받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믿지 못하는 제자들>

오늘 본문 1절부터 보면 예수님의 부활을 처음 목격한 자들이 나옵니다. 안식일이 다 지나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새벽에 몇몇의 여인들이 예수님이 묻힌 무덤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별안간 큰 지진이 나며 천사들이 내려와서 무덤을 막고 있던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들의 형상은 번개 같고 그 옷은 눈과 같이 희었습니다. 뭔가 기쁜 소식을 전해 주려고 했습니다 여인들은 떨리는 마음으로 무덤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이미 텅 비어 있었습니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몰라 놀라고 겁에 질린 여인들에게 천사가 더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너희는 무서워하지 말라. 십자가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하신 대로 살아 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 또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 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라.”(28:5-7)

1)제자들에게 가서 전해라. 2)예수님은 부활하셔서 여기에 계시지 않는다. 3)갈릴리로 갈 것이며, 그곳에서 예수님을 만나게 될 것이다

 

여인들이 놀람과 기쁨으로 돌아 가던 중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나십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제자들에게 전할 말을 확증해 주십니다. 급하게 예수님을 만난 이 여인들은 제자들이 묵고 있던 곳으로 찾아갑니다. 그리고 숨을 몰아쉬며 차근차근 천사와 예수님을 만난 것과 예수님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그런데 여인들의 말에 제자들의 반응이 신통찮습니다. 4복음서를 다 읽어 보아도 예수님이 살아 났다고 말하는 이 여인들의 보고를 듣고도 제자들은 반응이 별로입니다. 너무나 좋아하고 기뻐하는 반응이어야 하는데, 자기들의 스승이 죽음에서 살아났다는 데도 왜 반응들이 다 신통찮습니까? 아마 믿음이 없었는 것 같습니다

 

누구복음 2411에 보면 여인들이 전하는 말을 듣고 제자들 중에 대부분은 그 여자들의 말을 허탄한 듯이 들려 믿지 아니했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마가복음 169절 이하를 보면 세 번씩이나 그들이 예수님의 부활하심을 믿지 아니하니라.” “믿지 아니하니라.”고 말씀합니다(11,13,14). 오늘 읽은 본문 17에서도 아직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더라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아직도라는 말은 그 전부터 쭉 계속 의심하고 있었다라는 것을 암시해주고 있는 말입니다.

 

이런 상태에서 제자들은 예수님의 지시대로 갈릴리로 향해 갔고, 예수님이 지시하신 어떤 산에 이르렀습니다. 거기서 예수님을 뵈옵고 경배(예배) 드리면서도 그 의심이 계속해서 없어지지 않고, 아직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었다(17)” 는 것입니다.

 

제자들의 반응이 너무하지 않습니까? 모두가 열광하고, 춤추며, 노래하고, 기뻐하고 난리법석을 떨어야 되는데, 모두들 반응이 별로입니다. 그들 중에 오히려 의심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같은 공동체가 되어 예배를 드리는데도 여전히 의심합니다. 여전히 모호한 반응을 보입니다. 같은 공동체에서 예배와 의심, 헌신과 망설임이 섞여서 나오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럴 수 있는가? 너무하지 않는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는데도 의심과 망설임이 있다니. 한 공동체 안에, 함께 예배하면서 어떻게 의심과 망설임이 있을 수 있다니,, 여기에 대해서 오늘 본문에서도 그렇고, 다른 복음서에서도 그렇고, 예수님은 아무 말을 하시지 않는다는 겁니다. 예수님은 믿음이 없고, 의심이 많은 것에 대해서 책망으로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나면, 때가 되면, 이런 신앙은 문제가 안되고 저절로 다 해결 될 것을 알기 때문일 것입니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믿음이 적은 자들아!, 왜 의심하느냐!, 믿음이 없는 세대여!” (8:26, 14:31, 16:8, 9:19) 라고 한탄한 말씀이 몇 군데 있습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 부활을 믿지 않는 것은 아주 많이 세게 책망해야 되는데, 성경 어디를 보아도 여기에 대해 책망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은 없습니다. 이것은 큰 믿음을 요하는 것이고, 서서히 시간이 필요로 한 것이고, 언젠가 때가 되면 저절로 믿어질 것을 아시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오늘날 믿지 못하는 사람들>

믿음과 의심이 뒤섞인 반응은 제자들만 갖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우리들도 늘 믿음과 의심의 반복 속에 있습니다. 교회를 다니면서도 늘 온전한 믿음을 가지지를 못합니다. 늘 확신하지 못하는, 의심하는 반쪽 믿음만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특이하게 어떤 사실(진실) 앞에 안 믿으려고 하고, 믿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내가 인터넷에서 알았는데, 우리나라에 타블로라는 가수가 있습니다. 본명이 이선웅인데, 가수이면서 작곡도 합니다. 꽤 유명합니다. 자신의 주관이 뚜렷하고 젊은이들의 공감을 살 만한 내용을 잘 전달하는 인물입니다. 특히 그가 미국 유명대학(스탠퍼드 대학교 영문학 석사)을 졸업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유창한 영어와 해박한 지식은 충분한 증거가 되어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의 학력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타블로에게 진실을 요구합니다.”라는 카페 타진요를 조직한 네티즌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타블로에게 진실을 밝히라고 공개적으로 요구하고 의혹을 제기하였습니다. 타블로의 인생은 처음부터 완전히 거짓이라고 주장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처음에는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던 타블로는 사건이 너무 커지자 출신학교 졸업장과 성적증명서까지 타진요회원들에게 보여주면서 믿어달라고 호소를 했습니다. 그러나 타진요는 증거가 분명한 데도 믿지를 않았습니다. 오히려 모든 증명서가 위조되었을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처음부터 믿고 싶지 않고, 믿기 싫었던 것 같습니다. 더 많은 증거와 자료를 요구했고, 타블로는 보여주었지만 돌아온 것은 생떼와 고집, 심지어 비난뿐이었습니다. 결국 법원의 판결로 사건은 마무리되었습니다. 타블로의 말은 모두 진실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계속해서 타진요회원들은 집요하게 믿을 수 없다고 하면서 인터넷상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결국 타블로와 그의 가족에게는 씻기 힘든 상처와 아픔을 남겨주었습니다. 어느 인터뷰에서 타블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정보의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믿지 않고 싶은 마음의 문제입니다. 자신은 대중의 마음을 얻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는 것이 그의 고백입니다.

 

<의심하는 이들에게 사역을 맡기시는 예수님>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이 자신을 완전히 믿지 않는다는 것을 충분히 아셨을 것입니다. 더 많은 정보를 요구하고 설명을 요구하며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지 묻는 제자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에게 더 많이 설명하고, 더 열심히 설득시키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더 많은 정보를 주면서 믿게 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부활을 믿지 못한다고 책망하지도 않았습니다. 언젠가 때가 되면 성숙해지고, 알게 되고, 굳게 믿을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제자들을 믿고 신뢰하고 기다려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오히려 의심하는 이들을 포함하여 모든 제자들에게 사역을 맡기십니다. 100% 확실히 믿는 제자들도 제대로 감당하기 어려운 하나님 나라 사역인데 말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제자들에게 그 사역을 맡기셨습니다. 믿든지 의심하든지 맡기셨습니다. 제대로 할 수 있는 제자들을 추려내시면 더욱 효과가 더 있을 텐데,,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설득하거나 확실한 증거를 보여주려고 하시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믿음이 반 밖에 없는, 그런 제자들에게 다시 제자를 삼으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믿음과 의심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이들에게 그런 중차대한 사명을 맡기신다는 것이 말이 되냐?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제자들에게 사역을 위임하시면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19-20).

이러한 위대한 지상명령을 아직도 확신이 없고, 믿음과 의심에서 오락가락하는 제자들에게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교인은 그냥 교인으로 평생 남아 있으면 복을 받지 못합니다.

교인은 시간이 지나면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처음 믿을 때처럼 어린 신앙이 자라지 못하고 늘 그대로 있는 것은 성도가 아닙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초대교회 성도들은 다 제자가 되었습니다. 처음 교인으로 출발해서 시간이 지나면 다 제자가 되어 갔습니다.

 

오늘 예수님도 예수님의 부활도 제대로 믿지 못하고 의심하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눈으로 보고도 의심하는 제자들을 향하여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자기들의 믿음도 제대로 지킬 수 있을까 하는 정도로 아직 믿음과 의심에서 오락가락하는 제자들에게 이 큰 일을 부탁하고 있는 것습니다.

 

이것은 주님이 주의 일 하다가 보면, 전도하고 제자가 되어 사역을 하다가 보면, 나도 모르게 신앙이 자라고 믿음이 점점 더 강해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식들이 부모 밑에서 늘 얻어 먹기만 하고, 나가서 일도 하지 않고, 부모 밑에서 안식하고 누리고 살면 생각과 사고가 어른이 되지 못합니다. 육체는 다 커서 어른이 된 것처럼 보이지만, 생각과 사고가 늘 어린아이입니다.

또 자식들이 장가가고 시집가서 자식을 낳고 길러보고, 가정을 꾸려 보면 부모의 마음을 알고, 어른이 되는 거지요.

 

마찬가지로 성도가 신앙이 자라서 전도도 하고, 길러서 제자 삼고, 교회의 사역도 하고, 주를 위해서, 복음 위해서, 교회 위해서 일을 할 때에 나도 신앙이 자라는 것입니다. 어른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큰 축복은 성장해서 제자가 되어야 주시는 것입니다. 아이들에게는 아이에게 맞는 복을 주시고, 청년들에게는 청년에게 맞는 복을 주시고, 어른들에게는 어른에게 맞는 복을 주시는 겁니다.

 

여러분, 교인은 성장해서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제자가 되었을 때 거기에 맞는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모든 성도가 제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여러분, 평생 교인으로만 머물러 있지 말고 제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초대교회 때는 교회에 들어와 예수를 믿기로 다짐하는 순간부터 나는 제자입니다. 나는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나는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라고 세 번씩 외치게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예배를 다 마칠 때, 목사님이 축도하기 전에 온 성도들이 일어서 주먹을 불끈 쥐고, 나는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나는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라고 외쳤다고 합니다.

아시아에서 제일 큰 교회가 인도네시아의 솔로에 있는 GBI 교회입니다. 그 교회의 오바자 목사님은 예배를 마치고 축도하기 전에 나는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나는 리더입니다이것을 꼭 함께 복창하면서 외친답니다.

 

예수님이 가장 기뻐하시고, 축복하시는 것이 제자되는 것이고, 가서 다른 사람을 전도해서 제자삼는 것입니다

 

<제자도 - 믿음과 의심이 동행하는 길>

믿음과 의심이 동행하는 길 - 이것이 제자도입니다. 제자도란 그런 것입니다. 미래를 알지 못한 채 여행을 떠나는 것, 100% 확신으로 가는 길이 아니라 의심과 확신이 함께하는 길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함께 함을 체험하고, 하나님이 기적을 베풀어 나감을 체험하고, ‘하나님이 일하시는 구나!’ 하는 것을 체험하면서 조금씩 알아가고, 신앙이 확실해져 가고, 제자가 되어 가는 것입니다.

 

제자도는 확실함과 분명히 만짐 바 되고 눈에 확실히 보이는 명쾌한 길로만 가는 것이 아니라, 불확실함과 모호함으로 출발하는 겁니다. 그렇게 불확실과 모호한 상태에서 내딛는 발걸음에서 제자들은 교회 공동체를 세우고, 함께 울고 웃으면서 믿음의 삶을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복음은 분명한 객관적인 사실과 분명한 설명과 분명한 확신이 있어야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도 분명한 사실과 분명한 설명과 분명한 이해가 있어야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행함과 삶으로 복음은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먼저 우리에게 제자도의 길을 가라고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 뵈어도 믿음만을 가지고서 늘 걸으며,

이 귀에 아무 소리 아니 들려도 하나님의 약속 위에 서리라.

걸어가세 믿음 위에 서서 나가세 나가세 의심 버리고,

결어가세 믿음 위에 서서 눈과 귀에 아무 증거 없어도

 

여러분, 우리는 주님의 나라를 향해 가는 순례자와 같습니다. 존 번연이 쓴 천로역정의 순례자와 같이 처음에는 희미한 상태에서 출발합니다. 점점 더 하나님의 나라를 향하여 가면서 더 많은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기적,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을 더 확실하게 분명하게 체험하게 됩니다. 점점 더 빛의 세계도 체험하고, 어두움의 세계도 체험합니다. 점점 더 시간이 흐를수록 하나님을 향한 신앙고백도 찐해집니다. 희미했던 것이 점점 더 확실하게 다가옵니다.

 

여러분, 우리는 아직도 믿음도 여리고, 의심의 부분이 더 많지만, 오늘 우리도 주님의 부르심 앞에 서 있습니다.

삶으로 배운 것만 남는다.” 는 말이 있습니다. 제자도는 삶으로 증명하고 믿음으로 증명하는 것이기에 제자들의 삶을 하나님은 인정하시고 축복하십니다.

 

여러분, 우리 주님 앞에 신실하게 제자의 길을 달려가 봅시다. 우리에게 아직 희미하지만, 아직 이룬 것이 별로 없지만, 아직 믿음과 의심의 교차하는 신앙이지만, 교회를 끌어 안고, 열심히 예배하고, 신앙생활하는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출처 : 대구영은교회
글쓴이 : 주님의 머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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