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시리즈 – 제자도②
주일설교(2014/07/27)
나는 제자입니다
행11:2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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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보면 예수님의 가장 가까이에 있던 사람들이 12제자입니다. 그 다음이 70명의 제자입니다. 그 다음이 120명의 제자입니다. 그 다음은 예수님을 그냥 따라 다닌, 예수님께 떡이나 얻어먹고, 병이나 고칠 목적으로 따라 다닌 허다한 무리가 있습니다. 예수님 주위에는 항상 수 많은 무리들이 따랐습니다. 병을 고치고, 떡을 얻어 먹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도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요6:26) 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사도행전 2장에 보면 나중에 성령을 충만히 받고 교회의 공동체가 되고, 예수님의 영원한 제자가 된 사람들은 120명까지입니다. 교회에서 아무리 떡을 먹고, 도움을 받아도 예수님의 제자는 되지 못합니다. 무언가 자기의 이익만을 추구하고 예수 믿는 사람은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없음을 볼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 때에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제자라고 불렀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믿기만 하면 제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 믿는 사람들을 처음에는 ‘성도’ 라고 부르지 않았습니다. ‘교인’ 이라고 부르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을 “제자” 라고 불렀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을 다시 보시면,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컫음을 받게 되었더라.”(행11:24-26) 했습니다.
이 말은 안디옥 교회에 갑자기 많은 무리가 모여들어 교회가 부흥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이 전도되어 너무 많이 모여오니까 ‘바나바’ 라는 사람이 혼자 감당할 수 없어서 ‘사울(바울)’ 이라는 젊은 청년을 다소에 가서 데리고 와서 함께 목회를 하게 됩니다. 그래서 바나바와 사울(나중에는 바울로 바뀐다)이 열심히 무리를 1년 동안 가르쳐서 제자가 되게 합니다. 이 가르침 받은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 이라고 일컬음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무리는 아무리 많아도 제자가 아닙니다. 무리는 아무리 많아도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제자가 그리스도인이요, 그리스도인이 제자입니다. “일 년 동안 모여 큰 무리를 가르쳤는데, 가르침 받은 큰 무리가 제자가 되었고, 그 제자들이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워지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제자가 진짜 그리스도인입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누구나 다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제자가 된 사람과 그냥 교인으로 남아 있는 사람의 차이점이 뭐겠습니까? 차이점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우선 가장 중요한 게 예수 믿다가 힘들고 어려움이 오면 제자는 절대로 예수님을 버리지 않습니다. 교회를 떠나지 않습니다.
요한복음 6장 60절이하를 보면, 예수님의 말씀이 너무 어려워 좀처럼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도 있었는데, 얼마 안 가 “말씀이 너무 어렵다. 누가 들을 수 있겠는가?” 하면서 하나 둘 예수님을 떠나 갔습니다. 이 일이 거듭되면서 결국 열둘만 남았습니다. 예수님이 직접 기도하시고 가르치신 열둘만 남았습니다. 이 때 ”너희도 가려느냐?“ 하고 물었습니다. ”(68)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69)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 라고 고백합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고 깨달았습니다. 그들은 끝까지 떠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왜 우리가 예수를 믿어 복을 받지 못합니까? 왜 성경에서 말씀하시고, 약속하시는 복을 누리지 못할까요? 제자의 삶을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부터 제가 드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복을 받기를 원합니다.
여러분, 가장 중요한 것은 ‘나는 제자이다’ 라는 의식입니다. “나는 제자입니다” 이 자존감과 이 의식을 잊어버리면 안됩니다. 오늘은 “나는 제자입니다” 라는 의식을 가지며, 오늘은 제자의 특징 여섯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는, “나는 예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았다” 라는 의식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모든 제자들은 “나는 예수님께 부름받았다” 라는 철저한 의식 속에 살았습니다.
바울서신을 보면 제일 먼저 항상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롬1:1)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울은..”(고전1:1),
모든 제자들은 무슨 일을 만나든, 어떤 어려움이 오든 항상 “나는 주님의 부름받은 제자다” 라는 의식으로 뭉쳐 있었습니다.
그 당시 랍비들의 세계에서는 제자가 스승을 선택해서 학교에 입학했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 헬라와 로마에서도 학생이 선생을 선택했고, 제자가 학교를 선택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실 때 자신이 주도권을 가지고 전적으로 예수님이 자신이 선택했습니다.
(요15: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여러분, 제자는 내가 먼저 예수님을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먼저 나를 선택한 것입니다. 이 말은 “주님이 나를 먼저 선택했으니, 나를 늘 붙잡고 계신다.” 라는 확신입니다. 우리는 이 확신위에 늘 서 있어야 합니다.
둘째는 “나는 예수님을 위하여 부르심을 받았다” 라는 의식입니다.
유대 랍비들이나, 헬라의 철학자들은 제자들에게 가르친 것을 무족건 따르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름은 사뭇 달랐습니다. 예수님을 따라야 했고, 예수님과 함께 있어야 했고, 전심으로 그에게 헌신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에 대한 신앙을 가져야 했고,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어야만 제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에수님 자신이었습니다. 예수님이 가르치신 그 가르침보다 더 중요한 것이 예수님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석가모니가 죽을 때 그의 제자들은 ‘어떻게 하면 자신들이 석가를 잘 기억할 수 있겠습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석가는 그들에게 ‘애써 자기를 기억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 자신이 아니라 나의 가르침이기 때문이다’ 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달랐습니다. 모든 것이 예수님 자신에게 집중되게 했습니다. 예수님이 가르친 모든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수님 자신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을 믿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여러분, 기독교의 복음은 나를 위해서 예수 믿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이익과 나의 가족의 이익을 위해서, 내가 무언가 받을려고 교회에 나오고, 예수 믿는게 아닙니다. 내가 무언가 얻으려고, 내가 무언가 받으려고, 내가 무언가 이익을 챙길려고 예수 믿는게 아닙니다. 그러면 복을 못 받습니다. 예수님을 위해서입니다. 오늘날 현대 교인들은 나한테 얼마나 이익이 되나, 나한테 얼마나 더 도움이 되고, 좀더 좋은 것을 얻을 수 있는 가를 보고 교회를 찾아 선택합니다. 그러면 복을 못 받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이유가 떡이나 얻어 먹고 병이나 고치기 위해서 예수를 따랐던 많은 무리들과 다를바가 없는 겁니다. 이런 사람은 복을 못 받습니다.
‘내가 많이 섬기고, 줄 수 있고, 희생할 수 있는 교회가 없나’, 이것을 생각하면서 교회를 다니고 예수를 믿어야 하는 겁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복이 있는 겁니다. 항상 기독교는 역설적입니다. 주는 자가 복이 있고, 낮아지는 자가 높아지고, 섬기는 자가 존귀하게 되는 겁니다.
누구를 위하여 예수 믿느냐? 나를 위하여 예수 믿느냐? 예수님을 위하여 예수 믿느냐? 이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이 가르치신 말씀은 소중히 여기고, 마음에 품고 사는데, 정작 예수님 자신은 잊어버리고 예수님 없는 삶을 살면 안 되지 않습니까? 애인이 보낸 편지는 소중히 여기고 마음에 품고 다니는데, 정작 애인은 잊어버리고 생각하지 않는 것 하고 똑같습니다. 제자는 예수님 위해서 살고 신앙생활합니다. 할렐루야!
세 번째는, “나는 순종을 위하여 부르심을 받았다”라는 의식입니다.
유대 랍비의 제자들은 학습을 다 마치고 스승, 즉 랍비가 되기 전까지는 완전히 노예처럼 복종했습니다. 예수님도 자기 제자들을 부르실 때 모든 삶을 무조건적으로 그에게 헌신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말은 그분을 믿고 따르며, 그분의 뜻을 받아들인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16:24). 이것은 과거의 이기적은 죄의 삶에 대하여는 “아니요(No) 라고 할 수 있으며, 예수님에게 대하여는 ”예“(Yes) 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내적인 신앙은 외적인 순종을 동반해야 한다’ 라는 것입니다.
키에르케고르(Kierkegaard)라는 실존주의 철학자는 “믿기 어렵다는 것은 순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순종이 없다면 진정한 믿음도 제자도도 없습니다.
요즘 세계를 보면 나쁜 제자도가 판을 칩니다. 테러리스트들의 공동체 속을 보면 극단적인 충성심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폭력조직들도 보십시오. 극단적인 순종을 요구합니다. 이단들의 단체를 보십시오. 극단적인 철저한 순종으로 뭉쳐져 있습니다. 이슬람교는 철저한 순종의 교리와 순종의 공동체를 요구합니다.
그에 비해 서구의 기독교들은 철저한 이기적이요, 개인주의적입니다. 그래서 서구의 기독교가 무너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개인주의가 오늘 우리 한국교회에도 침투해 들어 왔습니다. 교회 안에 많은 사람들이 핑계를 대면서 편한 쪽으로 타협하면서 제자도가 무너지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름 앞에는 언제든지 “예”하고 “아니오”가 없습니다(고후1:18-20). 여러분, 진리는 냉혹하리만큼 명백합니다. 여러분, 제자가 가는 길에는 절반이라는 개념이 없습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예수님이 모든 것에 주님이 아니라면 우리의 인생은 성공이 아니요, 기독교인이 아닙니다. 제자는 예수님을 나의 모든 것에 주님이라고 고백하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네 번째는, “나는 섬김을 위하여 부르심을 받았다” 라는 의식입니다.
불행하게도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하나님 중심이 아닌 인간 중심으로 살아 갈려고 합니다. 그리고 오늘날 교회도 이것을 그냥 방치해 놓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의 필요를 충족시켜 주시는 분” 정도로만 알고 있고, 또 이렇게 접근하고 있습니다. ‘근심하는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평화를 주실 것이다. 절망하는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삶을 기쁨으로 가득 채우실 것이다’ 이렇게만 알고 접근합니다. 우리의 신앙이 이 정도 밖에 안되는 겁니다. 여기에 머물러 있는 겁니다. 이것은 반 밖에 모르는 반쪽 신앙입니다.
실제로는 우리가 많은 부분에서 예수님과 다른 사람을 섬길 때 모든 것이 충족 되어 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줄 때만 온전히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주는 자가 복이 있는 것입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눅6:38)
여러분, 제자는 섬기는 자입니다. 섬길 때 복이 오고, 섬길 때 신앙이 자라고, 섬길 때 높아지는 것입니다.
다섯 번째는, “나는 고난을 위하여 부르심을 받았다” 라는 의식입니다.
여러분, 제자는 주님을 위해서 고난받는 자들입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따르라고 부르셨을 때, “십자가의 길도 기꺼이 걸어가야 한다”라고 했습니다. 제자는 모든 삶을 예수님과 나누고자 했던 자들입니다. 기쁨만 나누는 것이 아니고 슬픔과 아픔과 고난을 함께 나누어야 했습니다.
“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빌1:29)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16:24)
예수님은 교회를 보면서 우셨습니다. 예루살렘을 향하여 우셨습니다. 고난당할 제자들을 바라보면서 ‘너희가 고난당하는 것은 나를 믿었기 때문에, 나 때문에 고난을 당한다고 하시면서 마음 아파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한다면 고난을 당할 수 있어야 합니다. 평안과 안식만 찾으면 안됩니다.
고난은 제자도와 떨어질 수 없는 요소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가장 심오하게 다가와 역사하시는 때가 우리가 고난의 한 가운데 있을 때라고 했습니다. 깊은 영적 감수성을 가진 사람은 대부분 큰 고난을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신앙 때문에 체코슬로바키아 공산주의 속에서 십여 년 동안 고통을 당했던 어느 그리스도인이 “고문은 뼈를 꺾었지만 영혼은 꺾지 못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그 기간이 자기에게는 가장 부요했던 기간이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또 말하기를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핍박받지 않게 해 달라고가 아니고 우리 스스로 핍박당할 만큼 가치 있는 존재가 되도록 기도해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핍박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여섯 번째는, “나는 가난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라는 의식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제자는 가난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가난 하다고 기죽지 않습니다. 반대로 교회 안에서 부하다고, 돈 좀 있다고 교만하면 안됩니다. 돈 좀 있다고 없는 사람을 멸시하면 안됩니다. 제자는 돈을 앞세우는 자가 아닙니다.
성경은 “가난한 자를 택하여 부한 자를 부끄럽게 하려 하심이라”(고전1:28) 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가난한 자를 택하여 부한 자로 바꿀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똑같이 부한 자를 가난하게도 하실 수 있습니다. 가난한 자가 부하게도 될 수 있고, 부한 자가 가난하게도 될 수 있습니다. 50:50입니다. 그러므로 좀 있다고 교만해도 안되고 없는 자를 무시해도 안됩니다. 그리고 가난하다고 기 죽을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제자는 가난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제자는 가난하다고 못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랍비의 제자들은 랍비가 되기 위해 공부하면서 물질적인 이익을 포기했습니다. 그러나 랍비가 되면 물질의 보상을 받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주님은 제자의 길을 가는 자들에게 물질의 보상을 주셨습니다.
여러분은 모두 주님의 제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나는 제자입니다” 라는 확신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제자는 항상 주님의 은혜 안에 놓여 있는 자들입니다. 은혜에 붙잡혀 삽니다. 제자의 길을 가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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