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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약의 주요맥락 (1)
강사: 조병수 교수
신약의 맥락을 정리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할 수 있다. 책별로 마태복음에서 요한계시록까지 일괄적으로 살펴보거 나, 책의 성격에 따라 복음서, 역사서, 서신서, 묵시서 등으로 고찰하거나, 조직신학적으로 신론, 인간론, 기독론 등으로 정리 할 수 있다. 신약의 흐름을 정리하는 가장 좋은 방법 중에 하나는 신약의 주요인물들을 살펴보는 것이다: 세례자 요한, 예수 그리스 도, 사도 바울, 사도 요한, 그 외의 공동서신 기자들 (야고보, 베드로, 유다).
제1강. 세례자 요한
세례자 요한은 사복음서와 사도행전에서만 언급되고 그외에는 신약성경에서 언급되지 않는다. 사복음서는 모두 세례자 요한에 대하 여 자세히 보고하는데, 중요한 사항들에 관하여는 일치하게 보고하며 특이한 사항들에 관하여는 상이하게 보고한다. 공관복음에 묘사 된 세례자 요한의 모습과 요한복음에 들어있는 세례자 요한의 설명을 비교해 보면 가장 큰 다양성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러나 삼 공 관복음서도 세례자 요한을 설명하는 범위와 내용에 관한 한, 서로 다른 점들을 가지고 있다. 각 복음서는 세례자 요한을 기술함에 있 어서 각자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사도행전에서는 반복적으로 요한의 세례가 지시된 다 (행 1:5 1:21-22 10:37 11:16 13:24-25 18:2 19:1-7).
1. 세례자 요한의 출생
1) 요한의 부모
세례자의 출생에 대하여는 단지 누가 만이 말한다 (눅 1:5-15,39-45,57-80). 요한은 제사장가문 에서 출생하였다. 요한의 부모는 사가랴와 엘리사벳이었다. 요한의 부모들은 둘다 헤롯의 악정하에 살면서도 하나님앞에서 의인이며 율법 에 흠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하나님 앞에서 의인들이었고 주님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행하였다" (눅 1:6). 그 들은 인격의 본질적인 면에서도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유지하였고, 생활의 행위적인 면에서도 주님의 규범을 철저하게 준수하였 다.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는 공적인 면에서는 제사장으로서 성전봉사에 있어서 보수적인 충실함을 보여주었으 며 (눅 1:8-9), 사적인 면에서는 가장으로서 신앙계승을 위하여 적극적인 기도생활을 하였 다 (눅 1:13).
2) 천사의 예언
요한의 출생은 하나님의 사자가 예언한 것이었다 (눅 1:15-17). 하나님의 사자는 요한에 관하여 두가지 로 예언하였다. 첫째 예언은 요한의 인물됨에 관한 것이다 (눅 1:15). 요한은 주님 앞에서 큰 자가 될 것이 며, 포도주와 소주를 마시지 않을 것이며, 모태로 부터 성령으로 충만할 것이다. 둘째 예언은 요한의 사명에 관한 것이었 다 (눅 1:16-17). 요한은 개인적인 행복을 위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사회적인 회복 을 위하여 태어났다. 한편으로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회복하고, 한편으로는 사람들의 상호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요한의 인생 의 목적이었다 (눅 1:17).
3) 요한의 이름
요한은 하나님으로부터 이름을 얻었다 (눅 1:63). 요한의 이름은 "여호와는 위로하신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태어날 때부터 성령으로 충만한 요한은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며 기쁨이 될 자로 출생하였다.
4) 요한의 성장
요한은 성장할 때 신체와 영혼이 강함을 얻었다 (눅 1:80). 요한은 광야에서 성장하였 다 (눅 1:80). 요한이 광야에서 성장한 것은 부모의 용단에 의한 것이었다. 요한의 부모들은 요한을 위하여 기도 하면서 영적인 용단을 내렸다. 요한은 부모의 기도에 힘입어 성장하였다.
2. 세례자 요한의 활동
1) 요한의 등장
세례자 요한은 예수께서 나사렛에 거주하고 있을 때 (마 2:23 3:1)에 등장하였다. 이것 은 로마의 정치로 보면 티베리우스 (Tiberius) 황제 15년이었으며,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의 총독으로 재지하 고 있을 때였으며, 유대의 정치로 보면 헤롯과 빌립과 루사니아가 각기 분봉왕으로 유다와 갈릴리를 다스리고 있을 때였으며, 유대 의 종교로 보면 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였다 (눅 3:1-2).
이때 세례자 요한은 유대의 광야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구약의 선지자들처럼) (눅 3:2), 유대의 광야 에서 등장하였다 (마 3:1). 그는 처음부터 도시에 대하여 어느 정도 적대적인 입장에 있었다. 이것은 이사야 선지 자의 예언을 이루는 인물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예언하신 약속을 인내와 은혜와 신실가운데 이루셨다. 하나님 의 승리이다.
2) 요한의 세례
사복음서와 사도행전은 모두 세례자 요한이 요단강에서 물로 세례를 주었다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 다 (마 3:11/막 1:8 / 눅 3:16 요 1:26,31,33 행 1:5 11:16). 요한 의 세례는 흐르는 물에서 시행되었다. 이것은 당시의 바리새인 종파와 쿰란 (엣세네) 공동체가 시행하던 결례와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 었다. 요한의 세례는 "회개하게" (마 3:11) 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다. 요한의 세례의 대상은 예루살렘과 유다 와 갈릴리 그외의 여러 지역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그들 가운데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세리와 창기, 군인 등의 여러 종류의 사람들 이 있었다 (마 3:7 21:32 눅 3:10-14). 요한의 인상적인 세례운동은 폭넓 은 영향력을 가지고 심지어 소아시아에까지 퍼져나갔다 (행 19:1이하).
3) 요한의 생활방식
요한은 생활방식은 아주 특징적인 것이었다. 그는 약대털옷을 입고 메뚜기와 들꿀을 먹었 다 (마 3:4 막 1:6). 이것은 세례자 요한의 의상과 음식에 대한 간명한 설명이다. 사람들은 요 한이 와서 떡도 먹지 않고 포도주도 마시지 않는다고 말했다 (마 11:18/눅 7:33). 세례자 요 한의 생활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첫째로 이것은 문화로부터 떨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세례자 요한이 험한 옷을 입고 험한 음식을 먹 은 것은 문화와 어느정도 거리감을 가진 것을 뜻한다. 둘째로 이것은 쾌락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세례자 요한이 거친 의복을 입 고 거친 음식을 먹은 것은 인간 자신의 욕심과의 싸움을 의미한다.
4) 요한의 교훈
공관복음서에서 세례자 요한은 회개설교, 메시야설교, 신분설교를 한다.
(1) 회개설교 (마 3:2,7-10 막 1:4 눅 3:3,7-9)
세례자 요한은 가장 먼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마 3:2)고 외쳤다.
회개요구는 천국이 임박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왜냐하면 회개는 영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회개는 지성적 인 각성이나 감정적인 회심이나 의지적인 결단을 넘어서는 것이다. 회개는 영적인 변화이다. 그래서 회개를 외치는 것은 인간에 의 한 요구가 아니라 하나님에 의한 요구이다. 인간세계 밖으로부터 오는 종말론적인 하나님의 나라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회개를 외칠 수 가 없다.
천국이 임박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천국의 임박은 부정적인 면에서 보면 하나님의 심판이 다가온 것을 의미한다. 세례 자 요한의 말을 빌자면 하나님의 진노가 임박한 것이다 (마 3:7).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여 있는 것이 다 (마 3:10). 쭉정이를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는 것이다 (마 3:12). 천국의 임박은 긍정적 인 면에서 보면 하나님의 구원이 가까이 온 것을 가리킨다.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는 것이다 (마 3:9). 그것은 " 능력이 많으신 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이다 (마 3:11). 이것은 알곡을 모아 곡간에 들이는 것과 같 다 (마 3:12).
천국의 임박에 대한 인식은 구원과 심판에 대한 하나님의 성품을 인식하는 것이다. 천국의 임박에 대한 인식은 하나님을 인식하 는 것이다. 천국의 임박에 비추어 세상을 보고, 하나님의 성품에 비추어 인간의 성품을 보고, 하나님에 비추어 인간을 볼 때 회개 를 외치지 않을 수가 없다. 인간세상에 대하여, 인간의 성품에 대하여, 인간에 대하여 회개를 요구하는 것은 하나님인식에서부터 나온 다.
(2) 메시야설교 (마 3:11-12 눅 3:15-17)
세례자 요한의 설교가운데 중요한 것은 메시야가 올 것에 대한 설교이다.
메시야설교에서 요한은 먼저 자신의 신분과 활동의 한계성을 솔직하게 드러냈다. 요한의 신분은 메시야에 비하면 그의 신들메도 풀기에 감당치 못할 사람이다. 요한의 활동은 단지 물세례를 주는 것이었다.
요한은 이어서 메시야의 신분과 활동의 위대성을 드러냈다. 메시야는 능력이 많으신 분이다. 메시야는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시 는 분이다. 메시야의 세례는 두가지 효력을 발휘한다. 구속을 위한 성령세례의 역할과 심판을 위한 불세례의 역할이다. 성령은 구속 을 의미하며 불은 심판을 의미한다 (마 3:12 눅 3:17 참 조. 마 13:30,40,42,49). 메시야는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실 것이다.
요한은 자신과 예수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예수를 신랑으로, 자신을 친구로 비유한다 (요 3:29-30). 요한 은 자신을 역사의 주인공으로 내세우지를 않는다. 그는 오히려 자기의 제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역사의 주인으로 소개한다. 예수 는 신랑이며 요한은 그의 친구일 뿐이다. 신랑의 친구는 신랑의 음성을 듣고 기뻐한다.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 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한다" (요 3:29). 세례자 요한은 자신의 일이 성취되기 때문에 기쁜 것이 아니 라, 예수가 드러나기 때문에, 그의 일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기쁘다. 우리에게도 바로 이러한 요한의 태도가 필요하다. 예수를 이용하 여 자신의 일을 성취하려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자기의 일을 이루어 기쁨을 가지려 하기에 예수의 일이 망쳐지도록 해서는 안된다. 자 기의 일을 성취하는 것을 기뻐하는 대신에 예수의 일이 성취되는 것을 기뻐해야 한다. 또한 세례자 요한은 "그는 흥하여야 하겠 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요 3:30)고 말한다. 세례자 요한은 구속사의 발전을 바라보고 있다. 이제 구속사 에 새로운 장이 펼쳐진다. 예수의 시대가 오고, 요한의 시대는 지나간다. 세례자 요한은 예수 앞에서 자신이 물러나야 하는 것을 명 백하게 알고 있다. 그러므로 그는 자기의 사람들을 확보하는 일이나, 자기를 내세우는 일같은 어리석은 행위를 하지 않는다. 요한 은 자신을 쇠하도록 허용한다. 예수가 흥하도록 돕는다. 이것은 참으로 하늘의 일을 알며 말하는 자의 태도이다. 예수와 관계를 맺 은 자는 예수가 흥하고 자신은 쇠하기를 노력한다. 예수가 드러나고 자신이 감추어지기를 애쓴다. 이렇게 하여 예수의 사업이 흥왕해지 도록 한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말하는 자는 예수가 흥해지도록 하며 자신은 쇠해지도록 한다.
(3) 신분설교 (눅 3:10-14)
세례자 요한은 세 부류의 신분을 가진 사람들에게 설교를 하였다.
첫째로 무리에게 (눅 3:10-11). 요한은 무리에게 의복과 음식의 문제를 설교한다. 옷 두 벌을 가지 지 말라는 것이다. 이설교는 인생의 가장 절박한 문제를 건드린다. 가장 절박한 인생의 문제에서 회개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가 장 적게, 작게 가진 상태에서 변화가 있어야 한다. 가장 부족하다고 느끼는 순간에 그 옆에는 더 부족한 자가 있을 수 있는 것이 다.
둘째로 세리에게 (눅 3:12-13). 요한은 세리에게 무리한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정상적인 것 ("정 한 세")에 관하여 설교한다. 불법적이며 부당한 "더 이상"을 요구하지 말라는 것이다. 불법적인 "더 이상"을 추구하면 그로 말미 암아 불법적인 "더 이하"에 빠지는 사람들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것은 사회의 균형을 파괴하고 결국 자멸하고 말 것이다.
셋째로 군병에게 (눅 3:14). 요한은 군병에게 칼을 버릴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칼이 포학과 억압 을 위한 도구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설교한다. 검은 질서를 위해서 필요한 것이지 강탈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 아니 다 (롬 13:4 참조).
(4) 기타 설교
공관복음서와 달리 단지 요한복음 만이 다음과 같은 내용을 가지고 있다: 선재하시는 예수에 대한 세례자 요한의 증 거 (요 1:15,30), 세례자 요한과 유대인의 대화 (요 1:19-28), 예수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는 증거 (요 1:29,36).
4) 요한의 제자들
사복음서와 사도행전에서 다같이 분명하게 지적되는 것은 세례자 요한에게 제자들이 있었다는 점이 다 (마 9:14/막 2:18 /눅 5:33 요 1:35,37 행 19:1-7). 요한의 제자들은 금 식 (마 9:12/막 2:18/눅 5:33)과 기도 (눅 11:1)에 힘 썼다. 요한이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이 예수의 주기도문 교육의 동기가 되었다. 요한의 제자들은 파송을 받 고 (마 11:2/눅 7:28), 논쟁을 하고 (요 5:35), 보고하 고 (요 5:26), 세례를 베풀었던 것 같다. 이들은 마지막에 요한의 주검을 매장하였 다 (마 14:12/막 6:29). 요한의 제자들은 소아시아 에베소까지 퍼져나갔 다 (행 19:1-7). 이후에 사도 바울은 에베소에서 요한의 세례밖에는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만나 예수 그리스도 의 세례를 소개해주었다. 그들은 예수의 세례를 받았을 때 성령을 받게 되었다.
5) 요한의 기도
단지 누가 만이 세례자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하는 것을 가르쳤다고 언급한다 (눅 11:1). 이것은 예 수의 제자들이 예수께 주기도문을 배우는 동인이 되었다. 예수의 제자들은 세례자 요한이 그의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 준 것처럼 자 신들에게도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간청하였다. 세례자 요한은 분명히 기도를 강조한 사람이다. 그래서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는 자들 은 세례를 받고 나서 기도를 하였다 (눅 3:21). 요한의 제자들은 항상 금식하며 기도를 하였 다 (눅 5:33). 요한이 제자들에게 어떤 내용의 기도를 가르쳤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주기도문이 요 한기도문에 동인을 두고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아마도 주기도문을 역추적하면 요한의 기도내용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3. 세례자 요한과 예수의 관계
1) 예수에 대한 요한의 증거
세례자 요한과 예수 그리스도는 동시적으로 활동하였다 (요 3:22-4:3). 세례자 요한과 예수 그리스도 의 관계에 관하여는 사복음서가 모두다 요한을 예수의 선구자와 예비자로 생각한다 (마 3:3/ 막 1:2-3/눅 3:4 마 11:10 /눅 7:27 요 1:23). 요한은 예수를 위한 사람이다. 모든 복음서에서 그리고 사도행전에서 강조 되는 것은 예수께서 비로소 요한 뒤에 오신다는 사실이다 (마 3:11/막 1:7 /눅 3:16 요 1:15,27,30 행 13:25 19:4). 요한 은 물세례자로 설명하고 예수는 성령세례자로 설명함으로써 요한이 예수에게 종속한다는 것이 아주 분명하게 드러난 다 (마 3:11/막 1:7/눅 3:16 요 1:33). 특히 이 사실 은 세례자 요한의 두 제자가 예수의 첫번째 제자가 되었다는 이야기 (요 1:35-42)에서 입증된다.
2) 요한에 대한 예수의 증거
예수께서는 세례자 요한에 대하여 증거하였다. 예수께서는 세례자 요한이 엘리야와 어느 정도 관련이 있다는 것을 말씀하신 다 (마 17:10-13/막 9:9-13). 예수께서는 마태복음의 두 아들 비유에서 세례자 요한에 게 이 시대가 어떻게 반응하였는지 알려주신다 (마 21:28-32). 요한복음에도 세례자 요한에 대한 예수의 특이 한 말씀이 들어있다 ("요한은 켜서 비취는 등불" 요 5:33-35).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서 예수께서는 세례자 요 한에 대하여 명확하게 증거하신다 (마 11:2-19/눅 7:18-35). 복음서들에서 예수께서 세례 자 요한에 대하여 증거하는 가장 큰 일치점은 요한이 "선지자보다 큰 자"라는 것이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은 아주 명백하게 이것 을 선언한다 (마 11:9/눅 7:26). 세례자 요한은 예수의 선구자로서 여자가 낳은 자중에 가 장 큰 자이다. 마가복음에서 요한은 분명히 복음의 시작에 속함으로써 (막 1:1이하) 요한은 구약선지자들과는 판이하 게 다른 인물이다. 요한복음은 세례자 요한을 예수에 대한 첫번째 증인으로 묘사한 다 (요 1:7 10:42). 그 때문에 세례자 요한은 구약의 옛 선지자들에게 속하는 사람으로 설명 할 수가 없다. 세례자 요한은 구속사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는 "선지자보다 큰 자"이다. (사실상 예수께서 모세 와 같은 참 선지자이시다 신 18:18 = 베드로의 설교 행 3:22 스데반의 설교& nbsp7:37. 그러나 말라기 선지자 이후에 400년 공백기에서 갑자기 참 선지자이신 예수께서 등장하면 무리함 이 생긴다. 그래서 완충적인 역할을 하도록 하기 위하여 요한이 큰 선지자로 온 것이다. 요한은 스스로 선지자라고 하지 않아도 사람 들이 그렇게 여김으로써 드디어 새로운 선지자 시대가 도래한 것을 알린다. 예수께서 요한을 구약선지자들과는 다른 큰 선지자로 인식 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수께서 절대적인 선지자의 안목을 가지고 계셨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절대적인 선지자였기에 요한이 위대한 선지자 임을 인식하셨다). 신약성경에 따르면 선지자 상의 도식은 다음과 같다.
구약선지자들 - 더 큰 선지자 (요한) - 그 선지자 (예수)
4. 세례자 요한과 유대인의 관계
세례자 요한은 유대인들을 맹렬하게 비판하였다. 요한은 그들을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불렀 다 (마 3:7 눅 3:7). 요한을 선지자로 받아들인 사람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적으로 지도 적인 유대인들은 이런 요한을 향하여 "네가 누구냐" (요 1:19)라고 응수하였다. 결국 유대인들은 요한을 귀신들 린 자로 정죄하였다 (마 11:18 눅 7:33). 유대인들은 요한이 의의 도로 온 것을 부인하였 고 요한을 죽음의 자리로 내몰았다 (마 21:32).
5. 세례자 요한의 죽음
요한은 아무런 표적도 행하지 않았다 (요 10:40-42). 그러나 사람들은 세례자 요한을 선지자라고 불렀으 며 (마 14:5 마 21:16/막 11:32 /눅 20:6 눅 1:76), 장차 올 선지자로까지 기대하였다 (마 11:9 /눅 7:26 요 1:21,25). 이것은 복음서들이 세례자 요한에 관하여 증거하는 아주 중요한 공통 적인 생각이다. 요한은 선지자로서 심지어 헤롯의 악행을 지적하였다. 헤롯이 동생 빌립의 아내를 가로챈 것을 신랄하게 비판하였 다 (눅 3:19). 요한은 선지자로서 어떤 사람도 두려워하지 않고 죄악을 공격한 것이다. 헤롯은 요한을 두려워하였 다. 그러나 결국 헤로디아의 의견을 따라 요한을 체포하여 투옥하였다. 헤롯의 악행에 대한 강렬한 비판은 요한이 죽임을 당하는 직접 적인 원인이 되었다. 세례자 요한은 헤롯의 생일잔치에서 참수당했다. 그의 처형에 관한 자세한 설명은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을 통하 여 잘 알 수 있다 (마 14:3-12/막 6:14-29).
6. 세례자 요한에 대한 기독교의 입장
세례자 요한은 기독교에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무엇보다도 예수께서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음으로써 공생애를 시작하셨다는 것 은 요한공동체와 예수공동체의 관계를 위하여 대단히 중요하다. 특히 요한의 제자들 가운데 몇 명이 예수의 제자가 된 것은 두 공동체 의 동일기반을 설명해주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요한의 모범을 따라 동일한 내용을 설교하기도 하고, 비슷한 기도교육에 임하기도 하 고, 같은 방식으로 제자들이 세례를 베풀게 하였다. 이렇게 요한은 기독교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 때문에 기독교는 요한을 복 음도식에서 항상 첫 자리에 두었다 (후론 참조). 심지어 기독교는 세례자 요한을 구약과 신약을 가르는 중심점으로 보았다. "율법 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 라" (눅 16:16). 요한을 중심으로 이전에 율법과 선지자가 있고, 이후에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있다. 요한 이 전의 시간과 요한 이후의 시간이 이렇게 대조된다. 요한을 중심으로 옛 시간과 새 시간이 나누어지는 것이다. 세례자 요한은 구속사 의 분수령에 서있다.
. 예수의 비유 중에 나오는 어 리석은 부자 (눅 12:16-21)는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 한 자" (눅 12:21)이다. 자기를 위하여 지식을 쌓아두고, 자기를 위하여 재능을 쌓아두고, 자기를 위하여 명예 를 쌓아두고, 자기를 위하여 시간을 쌓아두고... 하나님께 부요하지 못한 자들이 이와 같다. 오히려 예수의 제자는 물질로 하나님 의 영광을 드러낸다.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주머니를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 라" (눅 12:33).
예수의 제자는 미워하고 십자가를 지고 재물을 멀리한다는 사람이다. 예수의 제자는 자신의 신분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예수 의 제자라는 존재의식은 결국 모든 인간관계를 변화시키는 동인이 된다. 신분에 대한 의식이 사회를 변화시킨다. 그러나 예수의 제자들 은 끝끝내 세상 욕심을 버리지 못하였다 (누가 큰 자인가. 좌우편 보좌 다툼 마 20:20-28).
5. 예수의 죽음과 부활
예수 사건에서 최고의 절정은 죽음과 부활이다. 예수의 죽음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세우신 뜻에 순종하는 것이 며 (막 8:31 "... 당해야만 한다" 신적 당위성). 예수의 부활은 구약의 예언을 성취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능 력을 실현하는 것이다 (고전 15:4 참조. 눅 24:44-49).
1) 죽음
예수의 죽음은 일찍부터 예고되었다. 베드로가 신앙고백을 한 이후로부터 (마 16:21). 예수께서는 여러 차 례 죽음에 관해서 말씀하셨다 (마 막 10:32-34). 복음서들은 예수의 죽음에 관해서 거의 동일하게 자세한 설명 을 제공한다.
(1) 입성
예수의 죽음은 예루살렘 입성에서부터 시작한다. 예수께서는 구약의 예언대로 (슥 9:9) 나귀를 타고 입성하셨 다 (마 21:1이하). 나귀를 타신 것은 그의 겸손함을, 빌린 나귀를 타신 것은 그의 가난함을, 예언대로 나귀 를 타신 것은 그의 순종함을 보여준다. 예수께서는 선지자로 입성하시지만 겸손하고 가난하고 순종하는 모습을 가지셨다. 예수께서는 사 람들을 존귀하게 만들기 위하여 낮아지시고, 사람들을 부요하게 만들기 위하여 가난해지시고, 사람들을 왕으로 만들기 위하여 종이 되셨 다.
(2) 만찬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에서 유월절 만찬을 베푸셨다. 예수께서 유월절 만찬을 베푸신 곳은 빌린 다락방이었 다 (막 14:15). 이것도 역시 예수의 겸손함과 가난함을 보여준다. 이 곳에서 예수께서는 떡으로는 몸을 상징하시 고, 잔으로는 피를 상징하셨다. 이것은 언약제정이었다. 예수께서는 잔을 주시면서 언약의 피라고 말씀하셨 다 (막 14:24). 예수의 언약만찬은 살과 피를 내놓는 사랑과 은혜의 만찬이었다. 이 만찬에 참여하는 자는 예수 의 사랑과 은혜에 참여하는 것이다.
(3) 수난
배신. 유월절 만찬에서 한 제자가 예수를 배신할 것이 예고되었다 (막 14:7-21). 이것은 가장 가깝 고 중요한 사람에 의한 배신이었다. 예수께 가장 가까이 있던 유다가 발꿈치를 들었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 가장 무서운 사람이다.
체포. 예수께서는 감람산에서 체포당했다. 예수께서는 이때도 무력과 폭력에 대한 경고하였다 (막 14:48-49). 사랑은 폭력에 의해서 횡포를 당하지만, 폭력은 사랑에 의하여 용해된다.
도망. 제자들은 모두 도망하였다. 예수는 홀로 남아 고독한 상태에 있었다. 모든 사람을 위한 한 사람이 되셔야 했기 때문이 다 (요 11:50 고후 5:14). 예수는 한 사람으로서 모든 사람을 대신해야 했던 것이다.
(4) 심문
예수께서는 헤롯과 빌라도에게 각각 심문을 받고 결국 바라바를 택한 백성에 의하여 버림을 당했다. 정치가는 본래 자신의 뜻보 다 백성의 뜻에 좌우되는 경향을 지니고 있고, 인간은 원래 의인보다 강도를 좋아하는 성향을 지니고 있다. 예수는 인간의 본성에 의 하여 심문을 당하고, 인간의 본성에 의하여 버림을 당한 것이다.
(5) 처형과 매장
예수는 십자가에서 다른 두 죄수와 함께 처형을 당하고 몇 시간만에 절명하여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에 매장되었다. 예수는 죽음 으로써 죽음과 싸우셨다. 예수의 죽음은 사망에 대한 대결이다. 예수께서는 죽음으로써 죽음을 철저하게 죽였다.
2) 부활
예수께서는 안식일 첫날에 부활하셨다. 이로써 기독교인은 안식일 준수대신에 주일을 성수하게 되었다. 예수의 부활은 무덤을 비 게 만들었다. 여자들이 제자들보다 먼저 빈 무덤을 방문하였다.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부활의 몸을 가지고 폐쇄적인 제자들에게 찾아오셔 서 평강을 전하시며 성령을 주셨다.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선교의 사명을 주셨다.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하늘에 승천하시고 다 시 오실 때까지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좌정하시고 만유의 주로 다스리신다.
6. 초대교회의 예수에 대한 고백
초대교회는 이러한 예수사건의 도식과 함께 예수에 대한 분명한 고백적인 반응을 나타내었다. 이것은 예수의 활동을 받아들일 때 자연적으로 결과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 고백적인 반응은 선포적인 행동으로 이어졌다. 고백을 가지고 다시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 게 된다. 기독론은 예수를 이해시키고 예수를 승인하게 하는 것을 지향한다. 기독론은 이러한 전달을 목적으로 한다. 비록 예수께 서 지상의 생애 중에 한 두 가지를 제외하고는 정확하게 기독론적인 칭호들을 사용하지 않았지만 (인자칭호), 그의 활동과 설교는 이 미 기독론적인 칭호들을 표현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초대교회는 예수를 고백하고 선포하는데 적합한 기독론적인 칭호를 마련하게 되었 다 (하나님의 아들, 주님, 그리스도, 다윗의 아들, 인자 등등).
제목: 신약의 주요맥락 (3)
강사: 조병수 교수
제3강. 사도 바울
우리는 사도 바울에 관하여 두개의 자료로부터 알 수가 있다. 바울서신과 사도행전이다. 여기에서 주의해야 할 것은 바울의 글과 누가의 글은 서로 보완적이라는 점이다.
1. 바울의 신상
바울은 베냐민 지파의 일원으로서 (빌 3:5) 정통 유대인이었다 (고후 11:22). 바울 은 길리기아 다소에서 출생하여 성장하였고 - 바울의 유일한 약점은 예루살렘 또는 유대에서 출생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다 -, 가말리엘에게서 수학하였다 (행 22:3). 바울은 엄격한 바리새인으로 서 (빌 3:5) 유대교를 신봉하였다 (갈 1:14). 이것이 바로 바울이 기독교회를 극심하게 핍박하 는 원인이 되었다 (갈 1:13 빌 3:6 딤전 1:13). 바울은 다메섹에 있는 그리 스도인들을 박해하기 위하여 길을 가던 중에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만나주셨다 (행 9장, 22 장, 26장).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울을 다메섹 도상에서 만나주신 이후에 그는 이전에 가지고 있던 유대교적 유산 과 헬라주의적 유산을 모두 버렸다 (빌 3:7-8). 바울은 다메섹 사건을 체험한 후에 모태에서부터 하나님의 부르심 을 받은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갈 1:15).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 치도록 풍성하였도다" (딤전 1:14). 바울은 다메섹 사건 이후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였다. 그리스도인의 일군으로 서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 (고전 4:1), 그리스도를 위한 사신 (고후 5:20)이 되었다. 바울 은 전도자와 사도와 교사가 되었다는 자기의식을 분명하게 가지고 있었다 (딤후 1:11).
2. 바울의 여행
바울은 먼저 바나바의 인도로 안디옥교회에서 목회를 하였다 (행 11:19-26). 바나바는 바울과 같은 훌륭 한 인물이 오해로 말미암아 사장될 위험에서 구원해냈다. 바나바는 바울을 면밀히 관찰한 후에 바울의 예수체험과 신학내용과 전도방법 을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하여 환영하게 하였다 (행 9:27). 바나바가 없었더라면 바울도 없었을 것이다. 이후에 바 울은 안디옥교회의 파송을 받아 복음을 전도하기 위하여 여행을 하게 되었다 (행 13:1). 중요한 것은 바울의 선교 가 목회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1) 세 번의 전도여행
바울의 일차 전도여행은 주로 소아시아를 대상으로 하였다 (행 13:1-14:28). 바울은 이차 전도여행에 서 소아시아를 넘어 그리스 반도로 나아갔다 (행 15:36-18:22). 삼차 전도여행은 이미 전도한 교회들의 상황 을 확인하기 위한 여행이었다 (행 18:23-21:16). 바울은 세 번에 걸친 자신의 전도여행을 총결산하기를 "예 루살렘에서 일루리곤까지" (롬 15:19) 여행하였다고 말한다. 그래서 바울은 드디어 로마를 거쳐 스페인으로 나아 갈 결심을 하게 된다 (롬 15:23,28). 군선을 타고서라도!
2) 예루살렘
바울의 전도여행에서 나타나는 중요점 가운데 하나는 자주 예루살렘을 전도여행의 최종점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전 도여행을 마치면서 거의 언제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간다 (이차 전도여행 행 18:22 "가이사랴에 상륙하여 올라가 교회 의 안부를 물은 후에" 삼차 전도여행 행 21:17 "예루살렘에 이르니"). 이 때문에 바울은 자신이 예루살렘으 로 올라갔던 사실 (갈 1:18 2:1)과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계획 (롬 15:25 고 전 16:3 고후 1:16)에 대하여 여러 차례 언급한다. 사실상 바울의 예루살렘 지향성은 그의 사 역 아주 초기부터 나타난다. 바울은 예루살렘을 위하여 부조금을 가지고 갔다 (행 11:27-30). 바울은 예루살 렘 사도회의에도 참석을 하였다 (행 15장). 말하자면 바울은 예루살렘 모교회 및 원사도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려 고 했던 것이다. 예루살렘없이는 세계선교도 없고, 원사도가 없이는 이방교회도 없다. 바울은 이때문에 예루살렘에서 독립하여 자기 의 추종자들을 모으지 않았다. 여기에서 한가지 덧붙일 것은 바울의 사역과 원사도들의 사역에는 내용상의 차이가 있었다는 것이다. 바 울은 이방인 선교에 주력하였고, 원사도들은 유대인 전도에 관심하였다 (갈 2:7-8).
3) 전도방식
바울은 전도여행중에 바울은 우선 유대인들이 모이는 회당에서 전도를 하였다. 구약성경을 가지고 쉽게 유대인들에게 접근하였 다. 바울은 소아시아와 유럽에 많은 교회를 세웠다. 바울은 교회를 설립한 후에 직분자들을 세움으로써 교회를 조직화하였다 (참 조. 빌 1:1). 이렇게 하여 교회는 외부적인 핍박을 당해도 쉽게 와해되지 않는 든든한 조칙체가 되었다. 바울 의 전도전략은 대도시중심적 사역이었다. 우선 대도시에서 전도를 하여 교회를 설립하면 여기에서 동역자들을 다른 곳으로 파송하여 전도 하게 하였다 (아래 동역자들을 보라).
3. 바울의 편지
1) 종류
바울은 많은 편지를 기술하였다. 바울은 편지의 사람이다. 바울의 편지는 눈물어린 편지이다 (고 후 2:4). 그의 서신은 13편이 남아있다 (로마서에서 빌레몬서까지). 히브리서는 고래로부터 자 주 바울의 서신으로 인정되지만, 실제로 히브리서에는 바울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기 때문에 저작권이 아직도 논쟁 중에 있다. 물론 잃 어버린 편지도 있다 (고린도전편지? 고전 5:9 라오디게아서 골 4:16). 이것들이 사도 바울의 분 실된 편지일 경우에 혹 언젠가 뒤늦게 이것들이 발견된다 할지라도 더 이상 다른 하나님의 계시를 주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 의 섭리가운데 바울의 13서신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들로부터 다른 책이 필요하지 않을 만큼 충분하게 하나님의 계시 를 알 수가 있다.
바울이 살아있는 동안에 그의 이름을 빙자한 서신들이 있었다. 살후 2:2에 보면 "혹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 는 편지"라는 표현이 나온다. 바울이 살아있는 동안에도 그의 이름을 사칭하는 거짓 편지들이 나돌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신약성경에 들어있는 바울의 편지들은 연대에 따라 이른 편지에서 늦은 편지 순으로 배열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규모에 따라 큰 편지에서 작은 편지 순으로 배열되어 있다.
2) 분류
바울의 서신들은 다음과 같이 여러 가지로 분류해 볼 수 있다.
(1) 발신자와 수신자의 성격에 따라
바울의 서신들은 발신자와 수신자의 성격에 따라서 다음과 같이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첫째로 발신자 쪽에서 볼 때 개인적인 발신과 공동적인 발신이 있다. 개인적 발신은 사도 바울이 혼자서 발신한 서신들이 다. 여기에는 로마서, 갈라디아서, 엡베소서, 디모데전서, 디모데후서, 디도서가 있다. 공동적 발신은 사도 바울이 다른이와 함 께 발신한 서신들이다. 여기에는 고린도전서 (바울 + 소스데네), 고린도후서 (바울 + 디모데), 빌립보서 (바울 + 디모 데), 골로새서 (바울 + 디모데), 데살로니가전서 (바울 + 실루아노 + 디모데), 데살로니가후서 (바울 + 실루아노 + 디모 데), 빌레몬서 (바울 + 디모데)가 있다.
둘째로 수신자 쪽에서 볼 때 공신과 사신이 있다. 공신은 교회가 받은 서신이다. 이것들은 로마서, 고린도전서, 고린도후 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전서, 데살로니가후서이다. 이 가운데서 특히 갈라디아서는 갈라디아라 는 넓은 지역에 있는 여러 교회가 받은 서신이다. 사신은 개인이 받은 서신이다. 이것들은 디모데전서, 디모데후서, 디도서, 빌레몬 서이다. 그러나 딤전, 딤후, 딛은 목회와 관련된 서신이기에 어느 정도 공신의 의미를 가진다.
(2) 발신자의 상황에 따라
옥중서신은 바울이 옥중에서 쓴 편지들이다 (엡, 빌, 골, 몬). 목회서신은 바울이 제자들에게 목회를 맡기면서 쓴 편지들이 다 (딤전, 딤후, 딛). 여행서신은 바울이 여행을 하는 동안에 쓴 편지들이다 (롬, 고전, 고후, 갈, 살전, 살후). 바울 은 전도여행 중에 한 체류지에서 편지를 쓰기도 하였고 (고린도전서는 에베소에서 기록 고전 16:8), 한 경유지에 서 편지를 쓰기도 하였고 (고린도후서는 마게도니아에서 고후 2:13 7:5), 옥중에서 편지를 쓰기 도 하였다 (옥중서신인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 엡 6:20). 초기서신으로는 갈라디아서와 데살로니 가전서를 들 수 있고, 후기서신으로는 디모데후서를 말할 수 있다.
3) 구조
바울의 편지는 대체로 이중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 전반부에서는 교리를 말하고 후반부에서는 윤리를 말한다. 바울이 진술하 는 교리는 하나님, 인간, 구원, 교회, 종말과 관련한다. 바울이 편지를 쓴 목적은 구원의 도리를 설명해주기 위하여 (로마 서 롬 15:15), 교회가 제출한 여러가지 질문에 관하여 답변하기 위하여 (고린도전서 고 전 7:1), 이단적인 교리를 막기 위하여 (갈라디아서), 교회의 조직을 세우기 위하여 (목회서신인 디모데전서, 디 모데후서, 디도서) 등등 여러 가지 면에서 찾아 볼 수가 있다.
4) 상황
우리는 바울의 편지들을 통하여 바울이 싸웠던 문제들을 엿볼 수가 있다. 바울에게는 두개의 고민이 있었다. 그것은 안과 밖 의 문제였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요약적으로 설명한다. "밖으로는 다툼이요 안으로는 두려움이라" (7:5하 참 조. 고후 11:23-27,28). 사도 바울은 "밖으로는"이라는 말로 교회 밖에서 침투하는 문제점을 가리키며, " 안으로는"이라는 말로 교회 안에서 발생하는 문제점을 지시한다. 실제로 그는 세상적인 고통과 교회적인 고통을 분리한다 (고 후 11:28 참조). 사도 바울은 세상과의 관계에서도 교회와의 관계에서도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 이러한 두 가 지 상황을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자.
(1) 밖의 상황
우선 사도 바울은 세상과의 관계에서 심각한 환난에 처해 있었다. 복음을 전하는 중에 당하는 핍박이 있었다 (살 전 2:1-2). 사도 바울은 이것을 "우리의 모든 환난" (1:4 7:4)이라고 표현한다. 예를 들 면 사도 바울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 (1:8)의 정도가 너무나 엄청난 것이었기 때문에 여러 가지 말로 설명한다. "힘에 지나 도록 심한 고생" (고후 1:8), "살 소망까지 끊어짐" (고후 1:8), "마음에 사형선고 (직역 하면, 사망선고)를 받음" (고후 1:9), "큰 사망" (고후 1:10). 사도 바울이 당한 환난 은 끝없는 것이었다. 그가 당한 환난의 내용을 열거하는 것을 읽노라면 문득 몸에 전율을 느끼게 된다.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 의 일군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고난과 매맞음과 갇힘과 요란한 것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 과..." (고후 6:4이하).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 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 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도적의 위험과...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 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고후 11:23이하). 사도 바울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고 있으며 답답한 일 을 만나고 있으며 핍박을 받고 있으며 거꾸러뜨림을 당하고 있다 (고후 4:8-9 현재시제! 고 후 7:5 참조). 그러나 사도 바울은 환난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싸임당하지 않는다. 낙심하지 않는다. 곤경에 빠지 지 않는다. 망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도 바울은 환난을 기뻐한다 (고후 12:10). 왜 그런가? 사도 바울은 본서 의 중간에서 그 이유를 밝힌다. 왜냐하면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이루게 하기" (고 후 4:17) 때문이다.
(2) 안의 상황
또한 사도 바울은 교회와의 관계에서 어려운 입장에 놓여 있었다. 교회를 바로 세우기 위한 고민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세상 에서 당한 수많은 환난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 라" (고후 11:28)고 고백하였다.
사도 바울은 물질적인 부족으로 고난을 당하는 예루살렘과 유다의 교회들 때문에 상심하고 있었다. 또한 마게도냐 교회들이 "힘 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고후 8:3) 예루살렘과 유다의 교회들을 위하여 연보에 참여하였 을 때, 이 일은 사도 바울에게 한 편으로 예루살렘과 유다의 교회들이 보충을 받는다는 점때문에는 기쁨이 되면서도, 한 편으로 마게 도냐 교회들이 가난해진다는 점때문에는 근심이 되었을 것이다.
교회가 사도 바울을 괴롭힌 문제들은 다양했다. 첫째로 교회에는 불의를 행한 자가 있었다 (고 후 7:12). 사도 바울은 이 사람 때문에 말로 이루 다 표현할 수 없는 근심에 빠졌다 (고 후 2:1-12 7:5-16). 둘째로 교회는 사도 바울을 오해하고 있었다. 교회는 사도 바울에 대하 여 손해감정과 박탈감정에 사로잡혀 있어서 (고후 7:2 12:14) 마음이 굳게 닫혀 있었다 (고 후 6:11-12 7:2). 셋째로 교회에는 사도 바울에 대한 대적자들이 있었다. 대적자들은 진리 를 어지럽히는 행위 (고후 2:17 4:2)와 사도를 공격하는 행위 (고후 10-12 장)를 하였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교회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교회를 위하여 자신까지 허비할 것을 각오한다 (고 후 12:15). 왜 그런가? 사도 바울은 그 까닭을 밝혔다. 왜냐하면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 (고 후 1:1)이기 때문이다.
4. 바울의 동역자와 대적자
1) 바울의 동역자
바울에게는 많은 동역자들이 있었다. 바울을 일군으로 세운 동역자가 있었고 (바나바), 실제로 함께 전도여행을 하면서 파송 을 받는 동역자들이 있었고 (실라와 디모데), 바울과 줄곳 동행하는 동역자들이 있었고 (누가), 지역교회에 머물면서 바울을 지원하 는 동역자들이 있었고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롬 16:3-4), 지역교회가 파송하여 바울을 돕는 동역자 들이 있었 다 (에바브로디도 빌 2:25-30 에바브라 골 1:7). 바울의 동역자가운데는 뵈배와 같은 여자 도 있었다. 뵈배는 바울의 "보호자"가 되었다 (롬 16:1-2). 뵈배는 무명의 겐그레아 교회의 일군으로서 유명 한 로마교회에 추천을 받은 여자였다.
2) 바울의 대적자
사도 바울은 빌레몬서를 제외하고는 모든 서신에서 대적자들을 언급한다. 사도 바울에게는 여러 종류의 대적자들이 있었다. 로마 서에는 교회를 망치는 자들 (롬 16:17-20), 고린도전서에는 교회의 질서를 망가뜨리는 분리주의자들과 부활을 부 인하는 자들 (고전 15장), 고린도후서에는 바울을 비방하는 자들 (고후 10장), 갈라디아서에는 거 짓 형제들 (갈 2:4)과 구원의 방도를 혼돈시키는 유대주의자들, 에베소서에는 불순종의 아들 들 (엡 5:6), 빌립보서에는 십자가의 원수 (3:18-19), 골로새서에는 그리스도를 떠난 자 들 (골 2:10), 데살로니가전서에는 평안주의자들 (살전 5:3), 데살로니후서에는 사칭자들 (살 후 2:2), 디모데전서에는 다른 교훈을 전하는 자들 (딤전 6:20), 디모데후서에는 믿음에 파선 한 사람들 (딤후 2:18), 디도서에는 이단자들 (딛 3:10)이 언급된다.
5. 바울의 신학: 하나님과 인간
1) 하나님
사도 바울은 분명하게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었다. 삼위일체도식은 성령, 그리스도, 하나님 순서로 나타나기도 하며 (고 전 12:4-6), 그리스도, 하나님, 성령 순서로 보여지기도 하고 (고후 13:13), 하나님, 그 리스도, 성령 순서로 표현되기도 한다 (엡 1:3-14).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 (고전 8:6 엡 4:6). 하나님은 창조조이시다. 바울은 하나님이 창조 주라는 사실을 자주 아버지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하나님은 만물의 아버지이시다. 만물은 하나님에 의하여 섭리된다. "이는 만물 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롬 11:36). 아버지로서 하나님은 사랑과 책망을 공유하 신다. 하나님은 유일한 의지의 대상이시다. 그분은 부활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예수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리셨다. 부활 의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인간을 죽음가운데서 구속하신다.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신성과 인성이 완벽하게 조화된다. 예수는 부요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롬 1:2). 그 분에게는 모든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 있다 (골 2:3). 그러나 예수는 육체를 가지고 세상에 오셔서 고난과 죽음 을 당하신 연약한 분이시다. 부요하신 자로서 가난하게 되신 것은 그의 가난하게 되심으로 사람을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다 (고 후 8:9). 예수는 중보자이시다 (고전 8:6), 중보자로서 예수께서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화목 을 이루시는 구속주가 되셨다 (엡 2:14). 이것을 위하여 예수는 십자가를 지심으로 피를 흘리는 화목제물이 되셨 다 (롬 3:25). 승천하여 하나님의 오른 편에 앉으신 예수는 만물의 주가 되시고 교회의 머리가 되셨 다 (엡 1:22-23).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시다 (롬 8:9). 따라서 성령은 하나님의 깊은 비밀까지도 아신다 (고 전 2:10). 또한 성령은 그리스도의 영이시다 (롬 8:9). 그래서 오직 성령으로만 예수를 그리스 도라고 고백할 수 있다 (고전 12:3). 성령은 생명과 자유의 영이시다 (롬 8:2 고 전 3:17). 성령은 죽은 자에게 생명을 주시고, 매인 자에게 자유를 주신다. 성령은 우리의 영혼에게 하나님의 자 녀인 것을 증거하시는 중보의 역활로써 우리를 하나님과 연결시키시는 분이다. 신자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음으로써 그리스도인이 된 후 에 (고전 12:13), 항상 성령으로 충만해야 하며 (엡 5:18), 한 가지 이상의 은사를 가지 고 (롬 12:3이하 고전 12:7이하),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야 한 다 (갈 5:22-23).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라" (갈 5:25).
2) 인간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존재한다.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는 하나님에게서 시작된다.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 또는 사람과 하나님 의 관계는 하나님에게서 시작된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관계하기 때문에 사람이 하나님과 관계하는 것이지, 사람이 하나님과 관계하기 때 문에 하나님이 사람과 관계하는 것이 아니다. 연속성을 주는 것은 오직 하나님이다. 이것은 바울에게서 나타나는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 에 대한 근본적인 내용이다. 바울에게 있어서 인간론은 신론적 인간론이다. 중요한 것은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어떻게 의미를 가지 게 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인간은 본래 범죄한 존재이다.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으나, 하나님의 구원으로 인간은 하나님께 의미 가 있게 되었다. 인간은 영과 육, 또는 속사람과 겉사람의 이분법으로 설명된다 (고후 4:16 참 조. 롬 7:22). 그런데 모든 인간은 영과 육에 있어서 전적으로 타락하였다 (롬 3:23). 인간 의 타락은 아담의 범죄에 기인한다 (롬 5:12). 아담의 범죄가 모든 인간의 범죄의 기원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 면 범죄에 있어서 아담은 모든 인간을 대표한다. 아담에게서는 범죄의 행위가 범죄의 존재를 결정했고, 모든 사람에게서는 범죄의 존재 가 범죄의 행위를 결정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을 회복한다. 연속성은 하나님에게서 나온다. 하나님은 다시 시작하며, 인간은 다시 시작된 다 (딛 3:5). 하나님은 사람을 새 피조물로 회복한다 (고후 5:17).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 의 요청 앞에 서있다. 인간은 하나님의 요청을 신앙으로 받아들인다. 이와 같이 신앙가운데서 새 피조물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세례이 다. 세례는 인간이 아담적인 존재를 결별하고, 새로운 기원을 받아들여 그리스도의 것이 되는 것을 표하는 행위이 다 (롬 6:1ff.. 참조. 딛 3:5). 이렇게 하여 바울에게서 인간에 관한 또 다른 방식의 분류 법이 성립된다. 바울은 "옛 사람"과 "새 사람"을 철저하게 구분한 다 (롬 6:6 엡 4:22,24 골 3:9). 이 같은 구분은 "이전"과 "그러나 지 금"이라는 시간적 표현에 따른 종말론적인 존재의 변화에 기초한 다 (엡 2:11-13 골 1:21-22 3:7-8). 이것은 구속사적으로 설정한 구분 이다.
새 사람은 살아있는 사람일 뿐 아니라 살려내는 사람이다 (그리스도처럼 고전 15:45 성령처럼 고 후 3:6). 바울에게 새로운 인간에 대한 이해는 존재적인 것에서 활동적인 것으로 전진한다. 바울에게 있어서 인간 은 활동개념이다. 인간은 능력이다. 인간은 행동하는 인격이다. 인간은 능동적이다. 새 사람에 대한 이해가 "있는 인간"에서 "하 는 인간"로 나아간다.
3) 구원
바울은 구원을 일차적으로 죄사함이라고 생각한다 (엡 1:7). 그러나 구원은 사죄의 단계에만 머물지 않는 다. 구원은 하나님의 의를 얻는 것이며 (칭의), 하나님의 거룩함에 도달하는 것이며 (성화),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는 것이 다 (영화) (롬 8:29-30).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구속을 이루시기 위하여 영원에서의 행위와 시간에서의 활동 을 구성하셨다. 이렇게 하여 하나님의 구속은 확실하고 안전하다 (롬 8:39).
5) 교회
구속받은 신자들은 교회를 이룬다. 사도 바울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교회를 소개한다. 가정교회와 지역교회와 보편교회이다. 바 울은 교회를 위하여 다양한 용어를 사용한다. 교회는 에클레시아이다. 이것은 신자들의 모임이라는 영적 의미와 지역에 위치한다는 사회 적 의미를 가진다. 교회는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다양한 지체들이 연결된 그리스도의 몸이다. 교회는 전도하기와 가르치기를 중 요한 기능으로 가진다. 또한 교회는 코이노니아이며 디아코니아이다. 교회는 하나님을 향한 임무를 가진다. 그것은 예배와 봉사이 다. 또한 교회는 성도를 향한 교제와 섬김을 이룬다. 이것은 인격과 물질의 사귐과 나눔으로 구성된다. 이때 성찬과 애찬은 중요 한 기능을 한다. 교회는 사회를 향한 사명을 가진다. 또한 교회는 플레로마이다. 하나님의 충만하심이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교 회에 전달되어 교회를 충만하게 한다. 이 때문에 교회는 세상과 만물에 대하여 충만함을 전달하게 된 다 (엡 1:22-23).
6) 종말
사도 바울은 두 가지 종말기대가운데 살았다. 첫째로 개인의 종말에 대한 기대이다. 바울은 삶을 죽음과 연관시켜 이해했 다. 그는 살든지 죽든지 그의 인생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함을 얻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기 때문에 죽는 것도 유익하다고 생각하였 다 (빌 1:20-21). 그러므로 바울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는다고 고백하였 다 (롬 14:8).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기 때문에 자기를 위하여 살지 않고 자기를 위하여 죽지 않는다는 것이 다. 따라서 바울은 날마다 죽는 것을 체험하였다 (고전 15:31). 사실상 이런 신앙은 부활에 대한 소망에서 나 온 것이다 (고전 15장). 이 때문에 바울은 죽음을 바라보면서 살았다.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웠도다" (딤 후 4:6). 그는 죽음 후에 주어질 면류관을 바라보았다. 그러므로 바울은 살아있는 동안 선한 싸움을 최선을 다해 서 싸웠던 것이다. 사도 바울의 다른 종말기대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연관된다. 현세에는 불법과 불의가 지배하지만 결국 예수께 서 재림하시면 하나님의 나라가 올 것을 기대하였다 (살후 2:1-12). 예수의 재림은 놀라운 광경가운데 이루어 질 것으로서 밤에 도적같이 갑자기, 잉태한 여인의 산통같이 반드시 올 것이다. 그러나 예수의 재림 날은 빛의 아들과 낮의 아들 된 하나님의 성도들에게는 경성하고 근신하여 그 날을 예비하고 있으므로 구원의 날이 될 것이다 (살 전 4:13-5:11).
바울은 모든 환난에도 불구하고 전도를 굽히지 않은 위대한 전도자였으며, 많은 난관에도 불구하고 진리를 부끄러워하지 않은 위 대한 신학자였다. "우리는 진리를 거스려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오직 진리를 위할 뿐이라" (고후 13:8). "우리 는 수다한 사람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 서 말하노라" (고후 2:17). 바울은 전도자였으며 신학자였다. 바울은 결코 이 둘 중에 하나 만을 선택하는 우 를 범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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