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도문 강해 1
본문: 마태복음 6 : 9-13
제목: 그러므로
우리 주님께서 “이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신,
그래서 우리가 흔히 주기도문이라고 부르는 이 기도문은
그 내용이 한마디로 우리 기독교 신앙의 진수를 보여주는 것으로,
기독교가 말하는 기도는 곧 그 신앙 자체임을 알 수 있다.
즉 우리의 기도와 신앙은 하나라는 사실이다.
아니 기도는 신앙 전체를 말하는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에 기도는 그의 신앙 수준만큼 가능한 것으로
그의 신앙 수준과 내용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바로미터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기도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던 것과 많이 다를 수 있다는 사실도 인식해야 한다.
가장 근접한 예로 지금 주님이 가르쳐주시는 이 기도와
실제로 우리가 드리는 기도의 내용이 얼마나 일치하는가를 살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이렇게 다른 내용의 기도를 하면서도
전혀 어색해하지 않고 너무나 열심히 그 다른 기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기에 우리 주님께서 이 기도문을 가르쳐 주시는 동기가
바로 거기서부터 출발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본문에 ‘그러므로’ 라는 접속사는 그런 면에서 의미가 깊다.
즉 6장 거의 전체가 바로 그런 당시 유대인들의 신앙 내용의 문제점들을 지적하시는 것으로
그 신앙 내용 혹은 행위들이 아주 중요한 종교적 행위요 내용을 가지는 것임에도
그것들로 진정한 신앙 행위가 아닌 전혀 다른 오히려 불신앙의 모습들을 자초하고 있는 것이
저들의 모습이요 상태였기에 주님께서 이 기도를 새롭게 가르쳐 주셔야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 상황이 오늘 우리들의 모습과 별로 다르지 않다는데 문제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우리 신앙생활의 가장 대표적 모습이랄 수 있는 기도가
주님이 지적하시는 대로 이방인의 그것과 전혀 다를 바가 없었다는 사실은
당시의 유대인들에게도 실은 충격이어야 하고 동일하게 우리들에게도 역시 심각한 문제이어야 한다.
문제를 느끼는 것이 은혜임을 아는가?
그렇다면 이 기도문은 오늘 우리를 위한 것이 될 것이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이 기도문은 또 다른 하나의 주문이 될 것이다.
실제로 오늘 우리들의 신앙 현장에서 흔히 이 기도가
주문으로 쓰이고 있는 것는 주지의 사실이기도 하다.
그것 때문에 주님이 이 기도를 분명히 가르치셨고 우리가 배웠음에도
당시의 유대인들과 진배없이 오늘 우리들 역시 이 기도문마저도
본문 바로 앞에 나오는 그 이방인의 중언부언으로 쓰고 있음이다.
기도의 본질은 바로 우리 기독교 신앙 내용의 그것인데
그것이 본문 바로 앞에 말씀하시는 대로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그러기에 “그러므로” “이렇게 기도하라” 시는 것이다.
이 ‘그러므로’의 의미를 간과하면 실은 그 기도 전체가 무의미하게 되는 것이다.
다시 반복하지만 기도는 우리 신앙이다.
이 말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으로
기도는 다른 종교에서처럼 어떤 자기 수양적 주술이 아니라
주님이 계속 강조하시는 대로 우리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요 교제요 대화요 사귐이다.
6장을 잘 보면 그 핵심이 바로 “너희 아버지”라는 말에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기에 ‘그러므로’ 는 바로 그것을 전제하고 있다는 의미가 된다.
즉 기도라는 것 자체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우선 바르게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기독교가 아닌 일반 종교적 이해를 가지면
우리의 기도는 그 내용이 아무리 그럴 듯해도 역시 중언부언인 주문이요 주술인 것이다.
더구나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중에 가장 실수하는 치명적인 것이,
이미 우리 몸에 배여 있는 종교성을 기독교 신앙으로 대치하는 모습이다.
즉 무속 신앙인들이 하는 대로 치성을 드리는 것을 신앙행위로 알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쉽게 깨달아지지 않는,
그래서 우리들의 신앙을 더 이상 자라지 못하게 하는 가장 심각한 우리들의 약점이다.
그것이 6장의 내용을 우리에게 적용한 모습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 한국 신앙인들이 의외로 자신있어하는 신앙 행위가 기도인데,
또한 가장 못하는 것도 이 기도인 것이다.
그것은 기도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신앙의 본질적 문제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이 기도문을 생각하는 것은 기도의 방법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우리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깨닫는 일이요
더 나아가 우리 삶의 원리와 내용 그리고 방법을 깨닫는 일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기도는 우리 신앙이 바르게 자라면 자연스럽게 나와지는 것이요
또 그런 것이 정상적인 기도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아버지와 나누는 모든 것이기 때문이다....출처...오랜기다림과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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