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땅의 사간의 영역을 지나 영원으로 들어왔다. 그리스도의 천년왕국이 끝나면 영원세계로 들어 간다. 드디어 대쟁투의 끝에 이르렀다. 이제는 사단도 없고 짐승도 없고 바벨론도 없어졌다. 우주에서 악의 흔적은 영원히 사라졌다. 지구는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재창조되었다. 요한계시록 21장과 22장은 성경의 마지막 장이며 승리의 개가가 드높이 울려 퍼지는 장이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계 21:1).
우리는 전 장에서 1000년 후, 대심판이 있고 죄인들이 둘째 사망으로 형벌을 받아 영원히 사라진
이사야은 "보라 내가 새하늘고 ㅏ새땅을 창조하리라"고하였다. 여기에 사용된 바라(BARA)라는 말은 장1:1절의 처럼 무에서 유를 찬조하는말이다. 온갖죄와 오염으로 얼룩진 당으로는 살수없을 것이다. 지구 표면을 덮고 있었던 거대한 바다는 새 땅에는 없을 것이다. 오염물으 중화시켜주던 바다가 필요없게 된다. 만일 배타는 것이 취미라면 하나님께서 더 좋은 것을 주실 것이다. 어디를 가나 사람이 살기 좋은 강들과 호수 그리고 수목이 우거진 아름다운 땅들이 지구 전체를 덮고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요한은 “바다도 다 시 있지 않다"고 말했을 것이다.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계 21:2)
전혀새로운 세상이 내려온다. 그 아름다움과 그곳에 이땅에서 없어져야할 불행들은 다 제거되었다.
유업으로 주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보라!
하나님께서는 지상의 예루살렘이 복음의 중심지가 되고 축복의 근원이 되어 세상의 수도가 되기를 원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계 21:3~4).
땅과 바다와 하늘에만 변화가 온 것이 아니다. 근본적으로 사람의 삶이 전적으 로 달라진다. 죄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계 21:5~6).
이제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새롭게 하실 것을 선언하신다. 그리고“다 이루었다”고 공표하신다. 이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계 21:7~8).
믿고 이기는 자들과 믿지 않고 두려워하는 자들이 선명하게 비교되고 있다. 이기는 자들은 영생과 기쁨과 새 예루살렘성을 얻을 것이다. 또한 하나님의 자녀가 될 것이다. 그자녀가 받을 완전한 상속이 주어진다. '오라! 내아버지께 복받을 자들이여...청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모두 너희들 것이다. 마음껏누려라" 그러나 믿지 않는 자들은 1000년기가 지난 후 유황 불에 떨어져 둘째 사망을 당할 것이다. 우리들의 영원한 운명은 오늘 우리가 하나님을 믿느냐 혹은 믿지 않고 거절하느냐에 달려 있다.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하나님의 영광이 있으매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같이 맑더라”(계 21:9~11)
아직도 일곱 대접을 가진 천사가 말하고 있다. 천사는‘어린양의 신부’를 보여주겠다고 하고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을 보여주고 있다. 자랑스러운 신부이다. 그러므로 새 예루살렘이‘어린양의 신부’임이 확실하다. 왜 교회나 그리스도인이 아니고 새예루살렘 성이 신부가 되는가? 그것은 새 예루살렘 성이 바로 거대한 교회요 성도들의 집합체이기 때문이다. 성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성 안에 구원받은 성도들이 있기 때문에 신부가 되는 것이다.
그곳에 거주지를 정하고 주님과 복도니자리를 감격하면서 지난엤추억을 생각하면서 더욱이 감격하게 될지 모른다. 아마 그감격은 내가 많은것을한 공로에관관것이 아니라 내가 죄인이었는데도 내가 부족하였는데도 이런은혜에 대한 감격일 것이다. 우리사랑하는 자들도 함께 지날 수있기도 할 것이다. 그곳엔 그런 만남의 축복도 성경에서는 왕왕이 말씀하기 때문이다.
“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두 천사가 있고 그 문들 위에 이름을 썼으니 이스라엘 자손 열두 지파의 이름들이라 동편에 세 문, 북편에 세문, 남편에 세 문, 서편에 세 문이니 그 성에 성곽은 열두 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 어린양의 십이 사도의 열두 이름이 있더라 내게 말하는 자가 그 성과 그 문들과 성곽을 척량하려고 금 갈대를 가졌더라 그 성은 네모가 반듯하여 장광이 같은지라 그 갈대로 그 성을 척량하니 일만 이천 스다디온이요 장과 광과 고가 같더라 그 성곽을 척량하매 일백사십사 규빗이니 사람의 척량 곧 천사의 척량이라 그 성 곽은 벽옥으로 쌓였고 그 성은 정금인데 맑은 유리 같더라 그 성의 성곽의 기초석은 각색 보석으로 꾸몄는데 첫째 기초석은 벽옥이요 둘째는 남보석이요 셋째는 옥수요 넷째는 녹보석이요 다섯째는 홍마노요 여섯째는 홍보석이요 일곱째는 황옥이요 여덟째는 녹옥이요 아홉째는 담황옥이요 열째는 비취옥이요 열한째는 청옥이요 열두째는 자정이라 그 열두 문은 열두 진주니 문마다 한 진주요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더라”(계 21:12~21)
요한계시록 21장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의 모습을 자세히 묘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 성은 장식은 전체가 보석처럼 아름답다. 성곽은 벽옥으로 쌓여 있고 열두 문은 진주로 되었으며 성의 기초석은 각종 보석으로 꾸며 있고, 그 길은 유리 같은 정금으로 깔려 있다. 하나님은 얼마나 부자인지 상상해보라
천사가 금갈대를 가지고 성과 문과 성곽을 척량하였다. =
성의 크기는 일만 이천 스타디온(약 2200km)이고 성곽은 144규빗(약 64m)이라 하였다. 성의 장,광,고가 같은 정육면체라 하였다. 한면이 12천 스타디온(1,500마일)이면 3.3입방마일로서 1500마일의 높이의 건물이 있는지 모른다. 한사람이 1입방마일(1.6km)에 산다면 33억의 인구가 살수있다고 한다. 성의 커기와 공간이문제가 아니다. 수천억개의 별을 주실수도 있다. 내가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내아버지의 집에는 거할 곳이 많도다.(요16: 2) 성의 크기라는 것이 한 면의 길이를 말하는 것인지 전체 둘레를 말하는 것인지 확실치 않으며 144 규빗도 높이를 말하는 것인지 성곽의 두께를 말하는 것인지 잘 모르지만 성의 규모가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것이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인간이 만들어낸 어떤 화려함이나 웅장함도 이 성의 아름다움이나 장려함에 비하면 먼지와 같 을 것이다. 장과 고가 같다는 것은‘같다’라는 헬라어가‘조화롭다, 균형지다’의 뜻도 있기 때문에 장과 고가 잘 균형진 성이라는 뜻으로 봐야 한다.
이 모든 것들은 새 예루살렘 성의 아름다움과 거대함을 나타내는 하나의 상징으로 봐야 할 것인지 아니면 실제 크기나 아름다움을 그대로 묘사한 것인지가 문제다. 그러나 성도들이 거하는 새 예루살렘 성이 실제로 존재하는 이상 그 크기나 아름다움도 실제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혹자는 하늘 도성이 너무 물 질적으로 생각되는 것을 경계하여 이 모든 것들을 상징으로 생각하려고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준비하신 것은“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 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고전 2:9)한 것이기 때문에 아무리 화려하고 큰 것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우리는 이 땅에서 살면서 외국인과 나그네로 혹은 집을 빼앗기고 쫒겨다니고 헐벗고 못먹으면서 살았던 때를 생각하면 그런 장막집에 살던 유목민들은 더욱더 그런 집과 또 우리육체의 늙고 병든 육체에 대한 안타까움이 완전히 변한 육체의 장막을 벗고 새로운 신령한 몸을 덧입기를 사모하였던 적이 얼마였던가? 고린도전서 15장과 고후 4:16-5;5을 참고하라), 에녹,노아, 아브라함 야곱 이사야...믿음의 선진들이 멀리서 바라보며 환영하며 이것을 고대하면서 아브라라함의 품속으로 들어갔다.(히11장-) 그 성을 바라며 믿음을 따라 죽었다.
그 성에는 12문이 있고 이스라엘 12지파의 이름이 쓰여져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받은 백성들이 그 문으로 자유롭게 출입하며 거주할 것이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각문마다 천사가 서있다. 우리가 들어갈때 천사의 안내를 받을 것이다. “성경은 구원얻은 자의 유업을 본향이라고 부른다(히 11:14~16 참조).
동서남북으로 각각 세문씩 있다. 이는 구약의 백성들이 행진할때의 모습과 같다.
항상 열려있는 성문
그 곳에서 하늘의 목자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양 무리를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신다.
생명 나무가 강죄우편에 서있다. 그것은 그렇게 아담이 잘못 따먹었던 악이 존재하는 선악과가 아니라 동산중아에 생명의 나무가 비로소 여기에 있다. 그것을 마음대로 먹고 소성하고 또 젊어질 것이다.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잎사귀는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다. 흘러 다함이 없는 강은 수정같이 맑고, 그물은 생명수로서 영우너히 죽지않게 하는 물이다. 그 가에 있는 나무들은 구속받은 주님의 백성들을 위하여 준비된 길 위에 그 그림자를 던지고 있다. 넓은 평원이 아름다운 언덕으로 둘러싸여 있고, 하나님의 산들은 높은 봉우리들을 뻗고 있다. 이 평화로운 평원에서, 이 생명 강가에서, 오랫동안 순례자요 방랑자로 살아온 하나님의 사랑하는 백성들은 그들이 거할 집을 발견한다”
“성 안에 성전을 내가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양이 그 성전이심이라”(계 21:22).
사도 요한은 분명히 성 안에서 성전을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요한계시 록의 여러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췸이 쓸데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취고 어린양이 그 등이 되심이라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리라 성문들을 낮에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는 밤이 없음이라”(계 21:23~25).
새 예루살렘 성이 자전하는 지구에 내려왔기 때문에 해도 있고 달도 있어서 낮과 밤의 차이는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요한이 밤이 없다고 한 것은 하나님의 영광이 그만큼 넉넉하기 때문이다. 성을 비추기 위해 별도의 발광체는 필요 없을 것이 다. 지금 우리가 이 세상에서 볼 수 있는 어둡고 무서운 밤은 분명히 없을 것이다. 이 장면은 아마도 요한이 이사야 60장 19~20절의 기록을 생각하면서 썼을 것이다. “다시는 낮에 해가 네 빛이 되지 아니하며 달도 네게 빛을 비취지 않을 것 이요 오직 여호와가 네게 영영한 빛이 되며 네 하나님이 네 영광이 되 리니 다시는 네 해가 지지 아니하며 네 달이 물러가지 아니할 것은 여호와가 네 영영한 빛이 되고 네 슬픔의 날이 마칠 것임이니라.”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겠고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계 21:26~27).
땅의 왕들이 성 안으로 들어온다는 표현이나“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온”다는 말은 구원받은 성도들이 성 안을 왕래할 것을 가리킨다. 그들이야말로“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벧전 2:9)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들은 결단코 그 아름다운 성에 들어오지 못할 것이다. 이와 같이 영원하고 아름다운 하늘 나라가 있는 것이 분명한 이상, 우리는 거기에 들어갈 수 있도록 결단해야 한다. 이 세상에서 얻는 순간의 만족을 위하여 영원을 희생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명상할 문제
우리를 위하여 준비하신 새 하늘과 새 땅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이 아름다운 곳이다. 이 세상에서 잘 나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사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 세상에서 우리가 사는 것은 사실은 사는 것이 아니다. 교통 사고 한 번만 나도 우리 목숨은 사라지며 전화 한 통에 최고의 행복도 사라지고 마는 것이 이 세상의 삶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예비하신 굉장한 삶을 우리는 한 번도 맛 보지 못했다. 우리가 이 세상으로 만족하다고 말하는 것은 마치 하루살이가 전등 밑을 몇 시간 동안 돌다가 떨어져 죽으며 이것으로 만족하다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엄청난 삶이 있다는 것을 하루살이는 상상도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기필코 하늘에 가서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준비하신 상상도 못할 것들을 누려야 되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깨어 있어 정신을 차려 준비하는 삶을 살아야겠다.
-요약본- 새 하 늘 과 새 땅
(계21:1-8)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 마른 자에게 값 없이 주리니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 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옛 하늘과 옛 땅은 이미 사라져 버렸고, 옛세계의 자취도 하나도 찾아 볼 수 없게 되었다. 옛 하늘과 옛 땅은 새 하늘과 새 땅을 위해 자리를 내주어야 했다. 옛 세상은 그 죄와 죽음과 사탄 등과 더불어 하나님의 창조계획에 조화가 될 수가 없다. 하늘 역시 훼손되어 왔다. 그래서 하늘의 별들은 나뭇잎 처럼 떨어진 것이다. 그래서 새 하늘도 생긴 것이다. 이제 요한은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본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의 온상지였던 바다도 사라진다. 하나님은 인류구속의 사역을 마치셨다. 이제 하나님은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함께 거닐셨던 새로운 낙원을 창조하실 것이다.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첫째로 만물의 회복의 때를 사모하자. 만물의 회복은 하나님 섭리의 목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이 이루어질 때를 사모하자. 그 거룩하고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나라를 사모하자. 거기에는 더 이상 눈물도 고통도 죽음도 없을 것이다. 거기에서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거할 것이다. 둘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으로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택하시고 그리스도께서 구속하시고 성령께서 인치신 자들은 반드시 이길 것이다. 그들은 영광스러운 천국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다. 셋째로, 우리는 결코 죄 가운데 사는 자들이 되지 말자. 우리는 미움과 살인, 음욕과 간음, 우상숭배, 거짓 등 모든 악을 버리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오직 거룩과 의와 선함과 진실함으로 살자. 우리는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에 넉넉히 들어가는 자들이 되도록 의롭고 선하게만 살자는 것이다.
(계21:9-27)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하나님의 영광이 있으매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 같이 맑더라 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 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 두 천사가 있고 그 문들 위에 이름을 썼으니 이스라엘 자손 열 두 지파의 이름들이라 동편에 세 문, 북편에 세 문, 남편에 세 문, 서편에 세 문이니 그 성에 성곽은 열 두 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 어린 양의 십 이 사도의 열 두 이름이 있더라 내게 말하는 자가 그 성과 그 문들과 성곽을 척량하려고 금 갈대를 가졌더라 그 성은 네모가 반듯하여 장광이 같은지라 그 갈대로 그 성을 척량하니 일만 이천 스다디온이요 장과 광과 고가 같더라 그 성곽을 척량하매 일백 사십 사 규빗이니 사람의 척량 곧 천사의 척량이라 그 성곽은 벽옥으로 쌓였고 그 성은 정금인데 맑은 유리 같더라 그 성의 성곽의 기초석은 각색 보석으로 꾸몄는데 첫째 기초석은 벽옥이요 둘째는 남보석이요 세째는 옥수요 네째는 녹보석이요 다섯째는 홍마노요 여섯째는 홍보석이요 일곱째는 황옥이요 여덟째는 녹옥이요 아홉째는 담황옥이요 열째는 비취옥이요 열 한째는 청옥이요 열 둘째는 자정이라 그 열 두 문은 열 두 진주니 문마다 한 진주요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더라 성안에 성전을 내가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췸이 쓸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취고 어린 양이 그 등이 되심이라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리라 성문들을 낮에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는 밤이 없음이라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겠고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 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
하나님은 정말로 인간과 화목하시기를 원하고 계셨다.그의 여러가지 다양성있는 인간과의 계약은 하나님 자신과 인간과의 관계가 가깝도록 화목하도록 계획하시고 인도하셨다.왜냐하면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존전에 머무르는 데 불가능하였기 때문이다.하나님의 마지막 사역은 그리스도의 신부, 새 예루살렘을 만드는 것이다. 새 예루살렘은 새하늘과 새땅 사이에 병렬로 되어있다. 문자적으로, 새 예루살렘은 하나의 상상할 수 없는 커다란 정사각형이었고, 정사각형의 의미는 완전을 상징하는 형태이다. 한 편의 길이가 대략 1500마일 정도이다. 그 크기는 대서양 전부를 덮을 정도의 거대한 것이다. 상징적으로 새 예루살렘은 그리스도의 신부 또는 교회를 나타낸다. 하나님은 교회를 통하여 세상에 말씀하고 계신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우리는 담대하게 하나님의 존전으로 들어갈 수가 있다. 천국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신앙의 순수함을 지키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영원한 선물이다. 우리가 들어갈 열두문은 이스라엘의 열두지파로 나타낸다. 열두지파는 대체로 예수그리스도의 교회를 상징한다.(요10:9) 열두 기초석은 어린양의 열두사도에 의해 네군데에 세워진 기초석이다.새예루살렘 성은 빛의 바다에 잠겨있다. 왜냐하면 빛의 근원이신 하나님께서 그 가운데 거하시기 때문이다. 그러한 이유는 새예루살렘 성은 "빛의 성"이다. 이 성은 값비싼 보석처럼 반짝이고 있다. 새예루살렘 성에 사용된 각종 보석들은 그 하늘 도성의 설계자이시고 건축가이신(히11:10) 주 하나님의 보다 큰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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