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장에 이어 계속되는 부록으로 7년 대환란시에 유대인(이스라엘)을 중심한 픽박의 계시이다. 두 증인이 비교적 순탄하게 전도 할수있는 전3년 반동안(1~6)과 두 증인이 죽임을 당함으로 선교가 단절되고 확실한 픽박기인 후 3년반(7~10)에 대해서 계시하여 주고 있다. 이와 아울러 죽임을 당한 전도자들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광의 부활을 맞이하게 될 것임을 증거하여 주고 있다(11~13) 요한은 성전을 척량하라는 명령을 받게 된다. 이 척량에 있어서 이방인의 마당은 척량에서 제외 되었다. 이는 하나님이 자기의 택하신 백성을 통하여 세상을 다스리실 것임을 보여준다.
* 11장, 12장은 유대인 (이스라엘)을중신한 7년조약을 전후한 일련의 사건들을 특히 7년의 기간을(참고2,3,7절) 계시하여 주고 있다. 적리스도가 유대인을 중심한 7년평화조약시 지어진 성전과 또 두증인의 복음전파와 그들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 그리고 '해를 입은 한여자'나 그여자가 광야로 도망가는 것과 양육받는 것이 나타나는데 이는 바로 유대인의 미래운명과 자연스럽게 설명된다. 보여준다.
그 이유는 7년 평화조약을 맺는 것과 제4성전이 보여지면서 경배하는 것과 동시 성전안과 밖의 측량을 ㅗ이망인과 유대인을 구분을 하고 있기때문이다. 또 감람나무와 모세엘리야, 여자 광야등은 교회나 성도와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특히 13장에서는 해입은 여자가 교회라고 하면 교회가 아이(예수님:여기 아니는 예수님이 영확하다) 를 낳을수없고 예수님이 교회를 낳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13장에서부터 비로소 성도라는 말이 나오기 때문이다.
[1절] “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하되 성전 밖 마당은 척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을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저희가 거룩한 성을 마흔 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
<이 성전이 예루살렘의 성전인가? 교회인가?>
이 문제는 뒤에 나오는 두증인, 감람나무와 촛대, 해를 입은 여자가 유대인이냐, 신약의 성도들인가를 결정하는 단초가 된다.
여기도 성전과 제단 이방인척량 등은 비유나 영적인 해석을 할 이유가 없다.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성전에서 제사하는 모습이다. 왜냐하면 요한은 유대인과 성도를 분명히 구별할 줄 아는 위치에 있었고 성도들이 거기까지 가서 제사할 이유가 없고 또 성전 있을 곳은 예루살렘의 모리아산 밖에 없기 때문이다.
* 성전에서 척량하라고 한 이 성전은 언제 세워지는가?
요한은 AD 95년경에 이 성전환상을 보았다. 예루살렘성전이 파괴 되어진 때는 AD 70년경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에도 모리아 산에는 성전이 무너지고 없고 그곳에는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가 세워져 있다. 그들은 철저히 마호멧이 정복하여 승천한 성지로 성전자리에 황금돔 모스크를 세워놓았다. 유대인은 통곡의 벽을 붙들고 철심부심 다시 성전의 재건회복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듣기로는 모든 성전재건을 위한 재료는 돌에서부터 모든 것을 다 갖추어 놓았다는데 다만 속죄일에 쓸 붉은 송아지문제를 발표한적이 잇다. 그러므로 요한이 본 성전은 우리가 살고있는 시대 이후에 세워질 미래의 성전즉 제 4성전이라는 것을 알수있다. 또 비록 다른 정치적인 어떤 이유를 내 걸기도 하겠지만 결국은 이 성전재건의 문재로 마지막 전쟁이 일어날 것이다.
11;2-3에 이성전을 마흔 두달 짓밟으리라고 했는데 예수님의 재림직전에 적그리스도와 이스라엘이 7년 평화조약을 맺을때에 3년 6개월 이라고 하였다(그랜드종합주석) 그렇다면 적그리스도가 성전을 지어주는 조건으로 평화조약을 하자말자 기간에 일어날 것이다. 그리고 조약의 절반에 조약을 파기하고 픽박으로 절하게 하고 성전을 다시한번 짓밟는 일이 일어 날 것을 예언하고 있다.
이 마흔두달 즉 3년 반이 짓밟힌다는 표현은 원래 예루살렘 성전이 적그리스도의 예표였던 수리아의 전제 군주 안티오크스 에피파네스에 의해서 짓밟힌 사건(B.C 167-164)을 가리켯다(단7:25). 여기 최후종말에서는 신약시대에 복음이 전파되는 것에 대한 이방인의 적대세력의 대환난 기간으로 차용하고 있다. 그것은 문자 그대로 3년 반을 의미하든지, 아니면 너무 길지 않은 어떤 기간을 이컫고 있다.
*[1,260일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3년 반을 의미하는가? 아니면 너무 길지 않은 어떤 기간인가? 아니면 7년이 환란기를 상징으로 말하는가?. 전절의 42달, 11절의 3일반, 12;14의 '한때 두때와 반때' 이 모든 것은 3년반을 가리킨다.이것은 7년 대환란의 절반에 해당한다. (이상근박사)
이는 다니엘이 받은 한이레의 비밀을 요한의 마지막 계시에서 더욱 자세하게 세분화된것이라고 할수있다.
다니엘서의 기간은 실제의 년수가 나오기때문에 실제의 7년일 할 수있다. 동시에 여기에 이렇게 자세히 마흔두달, 1,260일, 한때두때 반때 이런 표현을 썻겠는가?
따라서 7년도 실제수이고 성전도 실제성전이고
* 성전안에 경배한는 자들은 누구인가?
= 성전이 일차적으로 예루살렘의 4정전을 말하고 신약에서는 마지막에 교회를 말한다고 하면 성전안의 경배자들은 역시 유대인이나 성도나 함께 성전과 교회에서 신실히 예배하는 자들을 가리친다. 지금도 유대인들중에도 정통파는 열렬히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이 있는가 하면 이미 세속화된 유대인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성전밖마당: 성전안이긴 하지만 마당만 밟는 신자들, 성전밖에 있는 유대인나 성도나 이방인나 다 하나님의 보호 밖에 적그리스도의 환란으로 내어 주었다는 것입니다. 적그리스도가 3년반지점에 오면 평화계약을 파기하고 집승이 되어 전구너을가지고 지배하면서 혹독한 어려움을 줄 것이다. 다니엘서 9장 29에 이레으 ㅣ절반에 제사를 금하고 종말까지 진노가 쏱아지리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예수님도 멸망의 가증한것이 선것을 보면 산을으로도망하라고 하셨다(마24:15-16)
예레미야는 이를 야곱의 환란이라고 하였습니다(렘30:7)
두증인
증인이란 말은 말투스(mar'-toos)란 희랍어로부터 온 것이다. 이것은 순교라는 단어로 부터 온 것이며 그리고 두 증인은 고통을 겪을 것이라는 죽음의 종류를 지시하고 있다. 두 증인들은 열매를 맺는 감람나무의 존재로서 그리고 등대는 진리의 등불로 나타내고 있다. 두 감람나무는 메시야의 선구자적인 엘리야와 모세를 상징하며 이 귀절들을 모세와 엘리야의 날들과 같은 능력과 징조,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는 마지막 날의 기름부으심 으로 설명하고 있다. 즉 종말의 때에는 굉장한 추수를 가져온 두 선지자의 날들과 같이 기적들과 신유가 포함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 구절을 단지 두 사람의 위대한 전도자로서의 기름부으심에 대해서 만이 아니고, 교회의 마지막 때에 메시아닉 유대인과 믿는 이방인이, 모세와 엘리야가 확증했던 그러한 능력과 힘을 성령의 영 안에서 행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또한 두 증인은 교회 공동체가 갖는 두 가지 특징으로 왕 같은 제사장과 거룩한 나라로도 상징할 수도 있다. 즉 주님의 강력한 기름부음을 받은 사역자(목사, 평신도)들이 될 것이다. 이들은 이방인의 때인 전3년반 기간에 증인으로서 세상에서 회개를 외치며 세상에서는 처음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실행하는 자들이 될 것이다. 그들에게는 엄청난 권세가 주어져서 예언과 재앙을 일으키며 입에서 나오는 불로서 악한 자를 소멸시킬 것이다. 그러나 전3년반이 차면 그들의 권능은 거두어진다. 그리고 무저갱에서 올라온 짐승이 등장하여 두 증인을 죽인 후 시체를 길거리에 방치하여 가장 큰 모욕을 준다. 그러나 증인들의 죽임을 기뻐한 지 사흘 반이 되면(전3년반의 기간과 일치) 하나님께서 그 시체들에게 생기를 불어넣어서 살게 만들고 공중으로 들림받게 한다.
[3-6절]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저희가 굵은 베옷을 입고 1,260일을 예언하리라. 이는 이 땅의 주 앞에 섰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니 만일 누구든지 저희를 해하고자 한즉 저희 입에서 불이 나서 그 원수를 소멸할지니 누구든지 해하려 하면 반드시 이와 같이 죽임을 당하리라. 저희가 권세를 가지고 하늘을 닫아 그 예언을 하는 날 동안 비 오지 못하게 하고, 또 권세를 가지고 물을 변하여 피 되게 하고 아무 때든지 원하는 대로 여러 가지 재앙으로 땅을 치리로다.”
본문은 본서에서 가장 난해한 구절에 속한다. 말씀하시는 자는 그리스도이시다. 두 증인이 나타나 굵은 베옷을 입고 1,260일간, 즉 3년 반 동안 말씀을 전할 것이다. 두 증인의 증거는 확실한 증거로 여겨진다. 예수께서도 전도자들을 둘씩 내보내셨다(눅 10:1). 굵은 베옷은 금식하며 회개할 때 입는 복장이다. 그들은 사람들의 죄를 생각하며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며 기도할 것이다.
신약교회시대를 가리킬지 모른다. 주께서는 “저희가 칼날에 죽임을 당하며 모든 이방에 사로잡혀 가겠고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리라”(눅 21:24)고 예언하신 대로 예루살렘 성이 이방인들에게 짓밟히고 있다. 그러나 1,260일은 여섯째 천사의 나팔로 계시된 유브라데 강에서 시작되는 전쟁이 끝난 후에 이방인들이 형식적 교회들과 교인들을 핍박하는 기간에 더 적합해 보인다. 또 아마 그 기간에 두 증인이 나타날 것이다.
*[두 증인들은 누구인가?]- 유대인 전도자다.
이 땅의 주, 곧 하나님 앞에 섰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 라고 하였다. 이 표현은 우선 구약 스가랴 4장의 환상에 나오는 총독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차용하고 있다.
또 모세와 엘리야와 같은 존재를 암시하고 있다. 메시야가 오시기 전에 엘리야가 나타날 것이라고 말라기 4:5에 말한다. 모세가 물로 피가 되게 하는 기적을 행했듯이(출7-8), 또 엘리야가 3년 동안 기근이 들게 하고 또 하늘에서 불이 내리게 하였듯이(왕하1장,17장),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며 원하는 대로 여러 가지 재앙으로 땅을 칠 것이다.또 예수님께서도 십자가를 앞두고 모세와 엘리야가 구약의 모든 율법과 선지자로 말씀하신 것을 예수님의 증인으로 서 주었던 것이다(눅9:28-31)
또 한가지는 7절에 짐승이 두 증인과 전쟁을 일으킨다고 하였고 또 9절은 순교한 두증인의 모습을 전세계의 사람들이 정복된 것을 기뻐한다고 한다. 이로써 이것이 예루살렘에 있는 두 개인의 일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초자연적 능력의 두 사람이라기 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신실하게 지키며 굽히지 않는 자세로 하나님의 말씀을 능력있게 전파할 유대인 전도자라 할 것이다.
그들은 7년 전반기에 사도들처럼 충성되이 전하다가 결국 미움을받아 순교를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무엇을 전하기에 미움을 받고 죽는가?>
1)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십자가의 보혈로 구원받는 복음을 전할 것이고
2) 적그리스도는 메시야가 아니라 흉악한 범죄자요 멸망의 자식임을 증거할 것이다.
3) 임박한 하나님의 심판을 전하면서 회개할 것을 전할 것이다. 그러니 적그리스도가 이 증인들을 얼마나 미워하겠는가?
요한은 7장의 '144,000명'이나 '두증인'이나 '두 감람나무와 촛대', 12장의 '해를 입은 여자'나, 이 모든 존재를 유대인을 가리키는가? 아니면 교회를 가리키는가? 이 문제는 무수한 이론으로 갈리고 있는데 이 두 장에 따라 여러가지로 그뒤에 해석이 달라지기 때문에 중요하다. 마치 요한 계시록을 전천년기,무천기 후천기를 보는 관점에서 달라지듯이 그러하다.
그러나 처음 사도는 교회에 대하여 편지를 보내고, 주의날에, 교회를 염려하다가, 교회에대한 성령의 음성을 들으라고 하였다. 교회의 미래에에 대한 집중관심과 미래에 대한 예언이라는 대전재는 맞지만 11장과 12장은 구약의 7년방고 ㅏ성전, 이방인과의 구별을 볼때 유대인을 위한계시임을 알수있다.
'둘'이라는 숫자는 증인의 수로서(신17:6, 19:5) 그들의 증거가 참된 것을 상징한다. 본문의 두 증인은 3년 반 환난 기간 중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할 충성된 유대인 전도자들을 가리킨다. 그들이 감람나무라고 불리는 것은 성령의 끊임없는 공급을 받기 때문이고 촛대라고 불리는 것은 어두운 세상에 하나님의 빛, 곧 하나님의 바른 뜻을 전한다는 의미에서도 부합된다.
또 그들을 해하려는 자들은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불로 죽임을 당할 것이다. 구약시대의 모세와 엘리야같이, 그들은 그 사역기간 동안 여러 능력의 일들을 행할 것이다. 이런 교회와 전도자들에게는 그 어떤 세력도 방해할 수없는 엘리야와 모세에게 주어졌던 능력이 동일하게 주어진다.
[7-10절] . “저희가 그 증거를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저희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저희를 이기고 저희를 죽일 터인즉 저희 시체가 큰 성 길에 있으리니 그 성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 곧 저희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니라.” “백성들과 족속과 방언과 나라 중에서 사람들이 그 시체를 사흘 반 동안을 목도하며 무덤에 장사하지 못하게 하리로다. 이 두 선지자가 땅에 거하는 자들을 괴롭게 한 고로 땅에 거하는 자들이 저희의 죽음을 즐거워하고 기뻐하여 서로 예물을 보내리라 하더라.”
증거를 마칠 때에 = 7년반에 적그리스도가 조약을 파기하고 이제 더이상 증거하지못하고 하는 때이다.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 곧 마지막 때에 나타날 적그리스도는 그 두 증인들과 싸워 이기고 그들을 죽일 것이다. ‘무저갱’은 깊은 구덩이를 가리킨다. 짐승으로 표현된 적그리스도는 짐승같이 사납고 난폭하며 이성과 도덕성이 없는 인물을 나타낼 것이다. 그것은 데살로니가후서 2장에 예언된 ‘불법의 사람’으로서 마지막 때에 나타날 전제적, 독재적 통치자를 가리킨다고 본다.
비로소 그 증거를 마칠 때에는 사단의 하수인인 짐승이 교회를 파괴할 것이다. 이는 처음에 우호적인 조약으로 교회가 자유롭게 증거하다가 중간에 평화조약을 파기하고 픽박하게 되는 것을 말하고 있다. 더이상의 복음의 증거의 시대 그 위세도 그치게 될 것이다. 주님재림직전에는 공적 공개적인 복음증거는 사라지고 교회는 죽은 자와 같이 침묵과 무기력하게 될 것이다.
적그리스도의 영은 초대교회로부터 활동해왔다. 역사상 로마제국과 로마 천주교회는 적그리스도의 영에 이끌려 활동하였다. 그들은 많은 참된 성도들을 핍박하였고 또 죽였던 것처럼 마지막 날들에 적그리스도라고 불릴 결정적 인물이 나타날 것이며 그의 세력들이 미워하여 그들을 죽일 것이다. 그리고 손도못대게 하여 시체들이 특히 중요도시와 예루살렘 시에 시체가 방치할것입니다. 그들은 자축하며 좋아한다.
두 증인들의 시체가 놓여질 큰 성은 적그리스도의 본거지로서 본서에는 끝까지 이표현은 매춘의 도시로마에 대하여 사용하고 있다.(16:19, 17:18. 18:10-) 그 도시는 영적으로 소돔과 애굽이라고 불렸다. 소돔은 음란한 도시이며 애굽은 우상숭배의 나라이었다. 또 그 도시는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던 곳, 즉 예루살렘이라고 말한다. 마지막 때에 적그리스도의 본거지는 소돔과 애굽과 예루살렘으로 표현된다. 그것은 참된 종들을 핍박하고 죽이는 타락한 종교 지도자들의 도시요 불신세상을 중심을 말한다. .
불신세상은 항상 진리의 말씀을 대적한다. 큰성에 팽개쳐졌고 장사되지도 못했다. 이는 극심한 경멸의 표현이다. 이 불신세상은 교회의 파멸을 경축하여 선물을 주고받으며 즐거워할 것이다. 왜냐하면 두 증인의 설교는 죄를 지적하고 책망하는 내용들이었고 그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심한 고통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예를 들면 세례요한의 책방을 듣고 괴로와했던 헤롯을 들수있다(마13:) 그러나 하나님의 교회는 잠시동안만(3알반)만 수치를 당할 뿐이다.
[11-12절] “3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저희 속에 들어가매 저희가 발로 일어서니 구경하는 자들이 크게 두려워하더라. 하늘로부터 큰 음성이 있어 이리로 올라오라 함을 저희가 듣고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니 저희 원수들도 구경하더라.”
세상 사람들의 기쁨과 즐거움도 잠시 동안뿐, 3일 반 후에 두 증인은 하나님께로부터 생명의 영 혹은 기운이 들어감으로 다시 살아날 것이고 구경하는 자들은 크게 두려워 할 것이다. 이말은 모세와 엘리야가 죽음을 보지않고 하늘로 데려감을 당한 것같이 이 두증인의 무리도 죽음에서 살아나는 특별한 일들이 일어날 것이다.
<*여기가 교회의 휴거를 말하는가? 휴거의 지점인가?>
유대인을 중심한 게시로 볼때는 아니다.
'이리로 올라오라'는 음성은 4:1절에서와 같이 보좌에 초대를받아 올라 간 것처럼 교회가 신부로서 들려 올라 가고 휴거가 일어나고 성도는 사라진다. 일곱째 나팔을 부는 순간에 역사는 딱 먼춘다. 우리가 오늘날 살아가다가 어느날 인구가 절반으로 줄어들고 대환란 끝에어느날 갑자기 나팔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성도가 사라져 버린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많이 있다.
이는 곤란한 것은 휴거는 교회전체가 들려올라 가는사건인데 두증인은 전후문맥으로 볼때 신약의 신부들이라고 할수없다. 그리고 그 특별한 복음전도자들의 특별무리만 갈수는 없기 때문이다.
[13-14절] “그 시에 큰 지진이 나서 성 10분의 1이 무너지고 지진에 죽은 사람이 7천이라. 그 남은 자들이 두려워하여 영광을 하늘의 하나님께 돌리더라. 둘째 화는 지나갔으나 보라 셋째 화가 속히 이르는도다.”
두 증인의 승천이 있을 때 그 큰 성에 큰 지진이 나서 성 10분의 1이 파괴되고 7천명이 죽게 될 것이며, 그 남은 자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이다. 그러나 옛날 애굽의 바로 왕이나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그러했듯이(출 9:27; 10:16, 17; 단 2:46-47), 이런 행위가 그들이 참으로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왔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첫째 둘째 화가 지나갔다. 첫째 화는 황충 재앙이고, 둘째 화는 유브라데 강에서의 큰 전쟁과 그 후에 있을 두 증인의 사역과 큰 지진이다. 이제 마지막 화만 남았다. 그것은 일곱째 천사의 나팔소리와 함께 계시될 것이다.
1절부터 14절까지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성전 뜰만 밟는 형식적 교인이 되지 말고, 성전 안에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참된 성도들이 되자. 그들은 속죄신앙을 가지고 말씀과 기도로 깨어 있으며 서로 사랑하는 자들이다.
둘째로, 우리는 바른 목사들의 교훈을 겸손하게 또 즐거움으로 받자. 디모데후서 4:3-4,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셋째로, 우리는 진실한 증인들처럼 순교를 각오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를 증거하자. 그러나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다시 살 것이다.
15-19절, 일곱째 나팔과 하늘의 찬송
[15절]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가로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노릇하시리로다 하니.”
일곱 천사들의 나팔로 말미암은 종말 예언들이 하나씩 계시되는 가운데, 이제 일곱째 천사의 나팔로 말미암은 종말 예언이 계시된다.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 때 사도 요한은 하늘에서 나는 큰 음성을 들었다. 그것은 하늘의 천군 천사들의 외치는 승리의 외침이었다. 그 내용은 세상 나라가 우리 주 하나님과 그의 세우신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며 하나님께서 세세토록 왕노릇하실 것이라는 것이다.
세상 나라는 마침내 하나님의 나라가 될 것이다. ‘우리 주’는 주 하나님을 가리킨다. 세계사는 하나님의 나라를 향한 역사이다. 다니엘서는 하나님의 나라의 시작을 예언하였다(단 2:44). 예수께서는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하나님의 나라의 시작을 선포하셨다(마 4:17). 신약시대는 하나님 나라의 시작과 확장의 시대이다. 하나님의 택한 자들이 다 구원받아 주께로 돌아오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고 그 수가 찰 때, 그리고 악하고 음란한 세상이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받을 때,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될 것이다. 그것이 인류 역사의 목표이다. 하나님의 통치의 회복과 완성은 바로 그 하나님의 나라에서 이루어질 일이다.
[16-18절] “하나님 앞에 자기 보좌에 앉은 24장로들이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가로되 감사하옵나니 옛적에도 계셨고 시방도[지금도] 계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이는]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노릇하시도다[왕노릇하심이로다]. 이방들이 분노하매 주의 진노가 임하여 죽은 자를 심판하시며 종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또 무론 대소하고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 주시며 또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킬 때로소이다 하더라.”
24장로들은 하늘의 큰 소리에 화답하여 하나님께 엎드려 경배하며 감사의 찬송을 올렸다. 24장로들은 구약교회와 신약교회를 대표자이다. 그들은 ‘옛적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라고 불렀다. 그들은 하나님의 영원성,전능성, 통치의 주권성과 심판의 주관자를 찬양하였다.
24장로들이 하나님께 감사한 이유는 17절에 나타난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친히 큰 권능을 가지시고 통치하시기 때문이다. 사탄에 하수인으로 이 세상왕의 통치는 죄와 픽박과 저주의 통치였다 세상에서 활동하던 사탄과 악령들의 일들이 끝나고 하나님의 공의의 통치하심은 우리의 감사와 찬송의 이유요 내용이다. 18절도 계속 감사의 이유를 말한다. 24장로들은 하나님의 통치 내용에 대해 좀더 말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에 관한 것이다. 그 내용은, 이방인들이 분노했을 때 주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였다는 것이다. 심지어 죽은 자들까지도 주의 심판대 앞에서 심판을 받을 것이다. 그 심판은 철저하고 공정한 심판일 것이다. 그 심판의 결과는 보상 혹은 멸망이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는 상을 주시며, 세상을 멸망시키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것이다. 이러한 사실들이 24장로들의 감사의 내용과 이유이었다.
[19절] “이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 또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과 지진과 큰 우박이 있더라.”
요한은 하늘의 성전이 열리는 광경을 보았다. 하나님의 성전은 천국 자체를 상징한 듯하다. 요한계시록 21:22에 보면,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 성 곧 천국에는 성전이 없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전이라고 말했다. 하늘에 있는 성전 혹은 성소는 천국 자체, 특히 그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영광의 보좌를 가리킨다.
요한은 성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언약궤도 보았다는 것은 언약궤안에는 어냑의 두 돌비가 들어있는데 계약체결로 결붇회어 있다. 이스라엘백성들은 이 언약궤를 부적처럼 대적했던 까닭에 (삼상4:30하나님은 그것을 감추어 버렷다. 이제 구속사의 절정기에 그 언약궤가 하늘성소에서 보인것은 하나님나라의 도래 언약의 성취되었음을 보여준다. 하나님의 심판은 구약성경 속에 계시된 하나님의 공의의 율법에 근거한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은 공의의 심판이다. 또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과 지진과 큰 우박은 하나님의 심판의 엄위성을 나타낸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세상 나라는 마침내 주 하나님과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될 것이다. 하나님의 공의로우시고 선하신 통치는 그 나라에서 완전히 드러날 것이다. 영원하신 전능자 하나님께서 통치하신다.
둘째로, 모든 인간들을 위한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 있을 것이다. 죽은 자들까지도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이다. 그것은 철저하고 공정한 심판이다.
셋째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순종한 종들과 성도들은 칭찬과 상을 얻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영원한 영광의 삶을 주실 것이다.
넷째로, 세상에서 악을 행하고 교회를 혼란시키고 세상을 멸망시킨 자들은 멸망의 형벌을 받을것이다. 그들은 참으로 영원한 수치와 고통을 당할 것이다.
●기타참고
제 1 성 전 솔 로 몬 성 전 모 형 도
솔로몬 성전(주전 959년)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 동안 광야생활 가운데 성막을 세우고 하나님을 경배하였다. 그후 제1성전으로 세워졌던 성전은 솔로몬 성전으로 솔로몬에 의해 모리아 산에 7년에 걸쳐 건축한 성전으로 기원전 957년에 완공하여 약 400년 동안 존속하여 왔지만 이 성전은 주전 586년 바벨론 느브갓네살 왕의 군대에 의하여 파괴되었다.
제2성전 스룹바벨 성전 모형도, 통곡의 벽
스룹바벨 성전(주전 515년) 제2성전은 바벨론으로 끌려와 포로 생활을 하던 유대인들이 귀환하여 스룹바벨의 주도 하에 기원전 535년에 착공하여 20여 년의 공사 끝에 완공되었다. 이 성전을 제2성전 또는 스룹바벨 성전이라 부른다.
헤롯 성전(주전 20년 경) 예수님 당시에 있었던 성전으로 이 성전은 스룹바벨 성전을 개축한 것이다. 이 성전은 기존 성전의 확장이었기 때문에, 제3성전이라고 부르지를 않는다. 헤롯 성전은 이방인인 이두매 출신의 헤롯이 유대인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정책적으로 건축한 성전으로 46년에 걸쳐 보수 했는데 기원전 20년에 착공하여 외형은 9년 만에 완성하고 세부 공사는 주후 63년 경에 완공되었다. 그러나 그 성전은 예수님의 예언대로 완공 된지 불과 몇 년 만(주후 70년)에 로마 티투스 장군에 의해 파괴되었다.
통곡의 벽 헤롯 성전 안에는 금으로 도금을 하였으며 로마 군대에 의해 불이 났을 때 금이 성전을 쌓은 거대한 돌 사이에 녹아 이 금을 회수하기 위하여 성전의 돌 하나 하나를 다 허물었던 것이다. 그러나 성전 건축 당시 성벽만은 유대인이 쌓은 성벽만은 허물지 않아 지금까지 보전되고 있다. 예수님 말씀처럼 이 성전은 다 무너지고 오직 유대인들이 쌓아 올린 성벽만이 남아있다. 그 성벽이 오늘날 바로 통곡의 벽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3성전을 짓기 위해 하루 세 번씩 통곡의 벽에 와서 기도하는데 무려 2000년 간 이어진 기도이다. 그런데 자기들이 성전을 지었던 자리를 아랍인들이 그곳에 이슬람 사원 황금 돔 모스크를 지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배후에는 하나님의 역사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에스겔서와 요한계시록은 다르게 말하고 있다.
성신이 나를 들어 데리고 안 뜰에 들어 가시기로 내가 보니 여호와의 영광이 전에 가득하더라 들은즉 누구인지 전에서 내게 말하더니 사람이 내 곁에 서서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는 내 보좌의 처소, 내 발을 두는 처소, 내가 이스라엘 족속 가운데 영원히 거할 곳이라 이스라엘 족속 곧 그들과 그 왕들이 음란히 행하며 그 죽은 왕들의 시체로 다시는 내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그들이 그 문지방을 내 문지방 곁에 두며 그 문설주를 내 문설주 곁에 두어서 그들과 나 사이에 겨우 한 담이 막히게 하였고 또 그 행하는 가증한 일로 내 거룩한 이름을 더럽혔으므로 내가 노하여 멸하였거니와(겔43:5-8).
가증한 성전이 거룩한 성전 옆에 담 하나 사이에 있게 하여 주님의 분노를 가져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앞으로 제3성전은 지금 이슬람 사원 자리에 세우는 것이 아니라 그 사원 옆에 세울 것이라는 말씀이다.
제 3 성 전 복 원 모 형 도
(사6:1-2)(막13:14-27) 작금 기독교인 가운데 선지자적인 비젼을 가진 사람들은 예루살렘 제3성전이 세워지는 것에 대하여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왜냐하면 성경 여러 곳에서 예루살렘 모리아 산에 제3성전이 세워질 것을 예언하고 있고 그곳에 멸망의 가증스러운 것이 서게 될 것임을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특별하게 제3성전이 세워지는 것에 관심을 갖는 것은 제3성전이 세워지는 시기가 예수님의 공중강림 하신 후에 7년 환란기가 시작되는데, 그 7년 환란기에 세워질 것이고 제3성전이 세워지면 그곳에서 적그리스도가 하나님으로 숭배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거룩한 곳에 가증한 것이 세워지면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가라고 명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제3성전아 세워지는 징조를 보면 예수님께서 공중강림을 하실 때가 가까이 왔다는 징조이기에 선지자적인 성도들이 매우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꼭대기에 굳게 설 곳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 나리니 만방이 그에게 모여들 것이라(사6:1-2).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것을 보거든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찌어다 .... 이는 그날들은 환난의 날이 되겠음이라 하나님의 창조하신 창초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만일 주께서 그날들을 감하지 아니하셨더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어늘 자기의 택하신 백성을 위하여 그날들을 감하셨느니라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보라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행하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백성을 미혹케 하려 하리라... 그 때에 저가 천사들을 보내어 자기 택하신 자들을 땅 끝으로부터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막13:14-27).
예수님께서는 환란의 날에 제3성전이 지어져 있을 것을 예언하셨다. 그 성전 안에 적그리스도가 앉아서 신으로서 영광을 받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멸망의 가증한 자가 앉아서 숭배받을 때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하라는 것이다. 곧 무서운 환란이 임한다는 것이다. 도망가는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내용이 계12장에 자세하게 나와 있다.
지금 유대인들은 제3성전을 지으려고 모든 것을 준비해 놓았다. 성전은 1년반 정도면 완공한다고 성전연구소는 말하고 있다. 유대인들이 성전을 다 짓고 나면 그 자리에 여호와 하나님이 계신 것이 아니라 후에 적그리스도가 앉게 될 것이다. 적그리스도가 이스라엘과 7년 언약을 맺고 전3년반에는 제사의식을 존중해 주는 척 하다가 후3년반에는 이 성전에 앉아서 자기에게 유대인들의 숭배를 강요할 것이다. 따라서 성전재건은 적그리스도와 7년 언약체결 즉 7년 대환란의 기초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제3성전을 건축하려 한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공중강림을 하실 때가 가까웠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제3성전 터와 조감도
현재 예루살렘에 이슬람사원으로 사용하고 있는 장소에 제3성전을 건립하지 못하는 것은 이곳이 이슬람의 성지이기 때문이다. 이곳에 현재 오마르 사원(황금사원)을 헐고 제3성전을 건축해야만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이슬람 세력들이 시퍼렇게 살아있는 이상 이 성전자리를 두고 심히 다투는 길 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는 유대인들의 귀환이 있을 것이 성경 곳곳에서 예언되어 있고 한편 제3성전이 복원될 것이라고 예언되어있다. 최근에 이스라엘 정부는 제3성전 복원을 위해 성전 연구소를 설립하고 복원에 필요한 모든 것을 준비하고 있다
* 제11장을 시작하며…
요한계시록 11장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과 그 백성을 핍박하는 세력들의 정체를 드러내고 있으며 마침내 하나님의 말씀과 성도들이 최후의 승리를 거.
1. 천사는 요한에게 무엇을 측량하라고 하였는가?
“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하되”(계 11:1).
천사가 성전을 측량하라고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었다고 하였다. 요단강 계곡에서 자라는 이스라엘의 갈대는 길고 똑바로 크기 때문에 길이를 재는 자로 쓰기에 알맞았다. 천사는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측량하라고 하였다. 600여년 전에 에스겔도 이상 속에서 어떤 사람이 성전의 각 부분을 측량하는 것을 보았다(겔 40:3~43:12). 이 측량은 대속죄일에 있었다. 그리고 세 가지 것을 측량하였는데, 바로 성전(겔 40:3~43:12)과 제단(겔 43:13~17)과 사람들(겔 44:1~48:35)이었다. 요한계시록 11장 1~2절의 장면도 구약 성경에 나오는 에스겔의 이상을 배경으로 한 것이다. 에스겔의 이상은 예루살렘 성전의 재건을 암시하고 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 11장 1~2절이 예루살렘 성전을 자세히 살피라는 말 씀은 물론 아니다. 요한이 계시를 볼 당시에는 예루살렘의 성전 건물은 이미 파괴되어(A.`D. 70) 세상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요한이 측량하라고 명령을 받은 성전은 어떤 성전인가? 그것은 하늘 성소일 수밖에 없다. 하늘 성소야말로 요한계시록의 중심 사상이다. 하늘 성소는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곳이요, 우주의 중심이며 그리스도께서 중보하고 계시는 곳이었다. 그렇다면 그런 하늘 성소와 제단과 사람들을 측량한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측량한다는 것은“자세히 살피고 평가한다”는 것을 의미하며‘건축과 회복’의 기본조건이기 때문에 성전과 제단과 사람을 측량하라는 것은 성전과 성소제도를 다시 자세히 살피라는 명령이다. 그리고 이 일이 대속죄일에 있었다는 것은 백성들의 회개와 심판을 요청하고있다. 그것은 또한 요한계시록 10장 11절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10장에 나오는 작은 책이 다니엘서이며 그 책을 먹고 쓴 경험을 한 것이 다니엘의 2300주야 예언 해석으로 일어난 1840년대의 세계적인 부흥운동을 의미한다면 그 뒤를 이어 일어난 성전을 측량하는 일도 그것과 관계되어 해석해야 할 것이다. 성전을 척량하고 평가하라는 명령은 성전의 정결에 관한 예언 때문에 실망을 경험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꼭 필요한 명령이었다. 그들은 부지런한 성경 연구를 통하여 정결하게 된 성전이 이 세상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으로 봉사하시는 하늘 성소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들은 하늘 성소와 성소 제도를 깊이 연구하면서 새로운 빛을 발견하게 되었던 것이다.
2. 얼마나 오랫동안 이방인들은 거룩한 성을 짓밟을 것인가?
“성전 밖 마당은 척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을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저희가 거룩한 성을 마흔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계 11:2).
요한은 “성전 밖 마당은 척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는 말을 들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성전 밖 마당은 성전의 구조에서 이방인들을 위한 뜰이었다. 이방인들은 여기까지밖에 들어갈 수 없었다. 따라서 이방인들은 심판하지도 말고 혹은 인치지도 말고 그냥 두라는 말씀이 된다. 재림 전 심판은 구원 얻을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한 것이다. 이방인들은 원래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곳의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성전 뜰에 있는 이방인들이다. 즉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아직도 참된 이스라엘은 되지 못하여 이교의 습관을 그대로 몸에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다. 바로 그들이 마흔두 달 동안이나 하나님의 거룩한 성, 즉 하나님의 신실한 성도들을 박해할 것이라는 예언이다. 그렇다면 성전 마당에 거하면서 거룩한 성을 마흔두 달 동안이나 짓밟을 존재는 도대체 누구일 것인가? 우선 성경 예언에서 마흔두 달이 어떤 기간인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마흔두 달, 1260일, 한 때 두 때 반 때에 대한 일곱 번의 성경상 기록
1. 다니엘서 7장 25절 :
한 때, 두 때, 반 때
2. 다니엘서 12장 7절 :
한 때, 두 때, 반 때
3. 요한계시록 11장 2절 :
마흔두 달
4. 요한계시록 11장 3절 :
일천이백육십 일
5. 요한계시록 12장 6절 :
일천이백육십 일
6. 요한계시록 12장 14절 :
한 때, 두 때, 반 때
7. 요한계시록 13장 5절 :
마흔두 달
* 한 때는 한 해를 의미 :
12달 × 30일 = 360일
* 두 때는 두 해를 의미 :
24달 × 30일 = 720일
* 반 때는 반 년을 의미 :
6달 × 30일 = 180일
42달 1260일
요한계시록은 마흔두 달과 일천이백 육십 일과 한 때, 두 때, 반 때라는 표현을 모두 다 사용하여 그것이 같은 기간을 말함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 기간은 거룩한 성으로 대표되는 하나님의 백성들과 하나님의 교회가 심각하게 고통을 당하는 기간으로 성경에 자주 나오므로 실제적인 1260일, 즉 삼 년 반의 기간일 리는 없다. 기원 후 2000년의 역사에서 겨우 삼년 반을 가지고 성경이 그렇게 비중있게 다룰 리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기간은 예언적인 기간으로 계산하여야 한다. 성경에서 예언상 하루는 일 년(민 14:34`;`겔 4:6)으로 계산하므로 마흔두 달 즉 일천이백육십 일은 1260년이 된다. 그렇다면 1260년이라는 긴 기간 동안 성도들을 괴롭히며 짓밟은 존재는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우리는 몇 가지를 추측해 볼 수 있다. 첫째로, 이 존재는 한 사람일 리가 없다. 한 사람이 그렇게 긴 기간 동안 성도를 핍박할 수 없기 때문이다. 둘째로, 이 존재는 분명히 역사에 등장하 는 세력이어야 한다. 1260년이란 기간은 긴 기간이기 때문에 숨어서 그 일을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셋째로, 성전 밖 마당에 있으면서 그 일을 하였으니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는 종교적인 세력일 것이고 그렇게 긴 기간동안 핍박을 할 수 있었으니 정치적인 권력도 가진 존재일 것이다. 우리는 어렵지 않게 그 세력을 역사에서 찾아낼 수 있다. 1260년(A.D. 538~1798)동안이나 계속된 중세의 긴 암흑시대 동안 누가 세상의 권력보다 더 강한 힘을 행사하며 성도들을 파문하고 종교 재판에 회부하고 화형대의 이슬로 사라지게 했는가? 그것은 중세 로마 교황권의 부정적인 측면이었다. 요한 바오로2세도 로마 교황권이 과거에 저지른 잘못에 대하여 공식적으로 사죄한 일이 있다. 오죽하면 역사가들이 그 시대를 암흑시대라고 부르겠는가? 1260년동안 성도들을 짓밟을 이 세력의 정체와 성격에 대하여는 요한계시 록 13장에 자세히 다시 언급되기 때문에 13장에서 다시 연구하기로 한다.
3. 두 증인은 무엇이며 그들은 1260년 동안 무엇을 하였는가?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저희가 굵은 베옷을 입고 일천이백육십일을 예언하리라 이는 이 땅의 주 앞에 섰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니”(계 11:3,4).
성도들이 1260년 동안 시달림을 받을 때 굵은 베옷을 입고 예언한 두 증인은 누구일까? 본문은 두 증인이 이 땅에서 주 앞에 서 있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라고 밝혔다. 두 감람나무와 촛대는 구약 성경 스가랴 4장에 나오는 장면이다. 스가랴가 두 감람나무의 뜻을 묻자 천사는“이는 기름 발리운 자 둘이니 온 세상의 주 앞에 모셔 섰는 자”라고 알려준다. 두 증인은 사람들이 아님이 분명하다. 1260년의 긴 기간 동안 예언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두 증인은 과연 무엇일까? 우리가 1260일을 1260년 동안 성도들이 박해를 당한 기간이라고 생각한다면 굵은 베옷을 입고 일천이백육십 일을 예언한 두 증인은 사람일 리가 없다. 왜냐하면 사람이 1260년을 살 수가 없기 때문이다. 굵은 베옷을 입었다는 것은 슬픔과 회개를 나타낸다. 그렇다면 두 증인은 1260년의 박해 기간 동안 성도들의 고난을 슬퍼하며 세상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회개를 호소해 온 어떤 것일 것이다. 두 증인은 주 앞에 서 있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라고 했는데 감람나무와 촛대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둘 다 불을 밝히는 것이다. 감람나무는 불을 밝히는 기름을 대주는 원천이 되고 촛대는 그 기름으로 불을 밝힌다. 그렇다면 두 증인은 1260년의 암흑 기간 동안에 감람나무와 촛대처럼 계속해서 불을 밝히는 기름을 대주는 동시에 또 불을 밝혀 빛을 비추어 온 것을 알 수 있다. 우리에게 어두움을 밝혀주는 등이 되고 빛이 되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시편 119편 105절에 주의 말씀이“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라고 말씀하신 것 처럼 하나님의 말씀인 신구약성경은 어두운 중세의 박해시절 그 어두움을 비추는 등이요 빛이었던 것이다. 두 증인이라고 한 것이 신구약 성경을 잘 상징하고 있다. 시편 기자는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라고 노래했으며 예수께서는“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라”(요 5:39)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두 증인은 어떤 사람들이 아니라 성경 말씀, 즉 구약 성경과 신약 성경이라고 보는 것이 올바른 해석이다. 성도들이 고난을 당하는 중세의 암흑 시대 동안 성경 말씀은 그들과 함께 슬퍼했으며 그들에게 위로가 되고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증인이었으며 어두움을 밝히는 등불이었던 것이다. 이것은 그 다음 절을 보면 더 명확해진다.
4. 두 증인을 해하려 하는 자는 어떻게 되는가? 또 그들에게는 어떤 권세가 있었는가?
“만일 누구든지 저희를 해하고자 한즉 저희 입에서 불이 나서 그 원수를 소멸할지니 누구든지 해하려 하면 반드시 이와 같이 죽임을 당하리라 저희가 권세를 가지고 하늘을 닫아 그 예언을 하는 날 동안 비 오지 못하게 하고 또 권세를 가지고 물을 변하여 피 되게 하고 아무 때든지 원하는 대로 여러 가지 재앙으로 땅을 치리로다”(계 11:5~6).
저희를 “해하고자 한즉 저희 입에서 불이 나서 그 원수를 소멸”한다 는 것과“ 하늘을 닫아 그 예언을 하는 날 동안 비 오지 못하게” 한다는 표현은 엘리야의 기사들을 연상시킨다. 엘리야가 기도한즉 이스라엘에 삼 년 반 동안이나 비가오지 않았으며(약 5:17), 엘리야를 죽이려 하던 군사들은 하늘에서 내려온 불이 그들을 소멸하였다(왕하 1:10). 물이 변하여 피가 되게 한다는 것은 모세가 나일강물이 피가 되게 했던 애굽의 재앙을 생각나게 한다. 실제로 모세와 엘리야는 증인으로서 변화산에서 예수님과 말씀을 나눈 일도 있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모세나 엘리야를 감람나무나 촛대로 부른 일은 없다. 또 그들은 사람이기 때문에 1260년의 긴 기간 동안 증인이 될 수도 없었다. 비가 오지 않거나 물이 피로 변하는 재앙이 임한 것은 그들이 모세나 엘리야 같은“사람”을 거절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전하는“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두 증인은 어떤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다. 구약의 모든 선지자들과 믿음의 조상들은 구약의 증인에 포함되며 신약의 모든 성도들은 신약의 증인들에 포함된다. 그렇다면 신구약 성경이 해하려 하는 사람들에게 실제로 재앙을 내린 일 이 있었는가? 요한계시록 22장 18절은“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할 것”이라고 하였다. 하나님 여 호와는 그를 거절하는 자들에게는“소멸하는 불이시”(신 4:24)다. 각 시대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해하려 하는 시도는 실패하였고 재앙을 가져왔다. 오늘날 우리도 하 나님의 말씀을 왜곡하거나 불순종하면 재앙을 피할 수 없다. 우리가 편리한 대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무엇이라 말씀하셨는가가 가장 중요한 것이다.
5. 두 증인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가?
“저희가 그 증거를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저희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저희를 이기고 저희를 죽일 터인즉 저희 시체가 큰 성 길에 있으리니 그 성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 곧 저희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니라 백성들과 족속과 방언과 나라 중에서 사람들이 그 시체를 사흘 반 동안을 목도하며 무덤에 장사하지 못하게 하리로다 이 두 선지자가 땅에 거하는 자들을 괴롭게 한 고로 땅에 거하는 자들이 저희의 죽음을 즐거워하고 기뻐하여 서로 예물을 보내리라 하더라”(계 11:7~10).
하나님의 말씀이 1260년의 증거를 마칠때 쯤,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 즉 사단의 세력이 성경을 핍박하여 죽은 것처럼 만들 것이다. 성경이 그렇게 박해를 당한 장소를 큰 성이라 했다. 그것은 거룩한 성 예루살렘과 반대되는 개념이며 바벨론 성이다(계 18:2). 그 당시에 실제적인 바벨론이나 베벨론으로 불리던 로마는 이미 없었으므로 큰 성은 바벨론처럼 하나님을 모독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박해한 나라 나 집단을 의미할 것이다. 이곳은 또한 영적인 소돔 혹은 애굽으로 불리는 곳이었다. 소돔은 타락의 온상을 대표하는 이름이며 애굽은 하나님을 무시하고 부인하는 무신론을 대 표한다. 이런 곳이야말로 예수께서 영적으로 못 박히신 곳이다. 그렇다면 1260년의 박해 시대가 1798년에 끝나니, 그 기간이 끝나갈 무렵에 성경에 나올 만큼 대대적으로, 그리고 공개적으로 성경을 핍박한 세 력이 역사상에 있었는가? 예수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할 만큼 교회와 신앙을 미워하고 박해한 세력과 시대가 있었는가? 분명히 있었다. 1789년에 일어난 프랑스 혁명이 바로 그것이다. 대부분의 주석가들이 이 부분을 역사적으로 혹은 실제의 사실로 해석하기를 주저하지만 상징적으 로만 해석할 경우 사흘 반이라는 구체적인 시간이 문제가 된다. 프랑스 혁명은 불과 몇년 동안 계속된 사건에 불과하지만 세계사적으로 교회사적으로 오랜 세월에 걸쳐 뚜렷한 영향을 남겼다. 그러므로 성경 예언이 이 사건을 취급한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프랑스 혁명은 외관상 자유와 평등을 외치며 일어난 무산 계급의 혁명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무신론 사상을 유포시키고 공산주의를 태동하게 한 기틀을 마련해 소련과 동유럽 그리고 중국의 수십억 인구를 공산주의와 무신론의 틀 속에 가두어서 하나님의 구속 사업에 큰 장애물이 되었던 것이다. 혁명이 일어나기 전 프랑스는 종교 개혁을 거부하고 부패와 타락이 극도 에 달했다. 성직자들은 귀족 계급이 되어 온갖 사치와 향락를 누렸으며 일반 백성들은 압제에 눌려 신음하고 하루 먹을 빵을 구하기도 어려웠다. 혁명이 일어나기 전 프랑스는 종교 개혁을 거부하고 부패와 타락이 극도에 달했다. 성직자들은 귀족 계급이 되어 온갖 사치와 향락를 누렸으며 일반 백성들은 압제에 눌려 신음하고 하루 먹을 빵을 구하기도 어려웠다. 1789년 7월 14일 분노한 시민들이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하면서 혁명은 시작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 동안 왕과 교회에 억눌렸던 감정이 한꺼번에 폭발하여 새로운 달력을 만들어 종교적인 제일들을 모두 없애버렸으며 일주일을 10일 제도로 만들어 예배일도 철폐하였다. 분노한 시민들은 교회를 더럽히고 성직자들을 모독하는 것을 기쁨으로 삼았다. 혁명 기간에 약 5,000명의 성직자들이 처형을 당했다. 11월 10일에는 이성의 여신을 상징하는 젊은 여인이 선택되어 노틀담 사원에서 경배를 받았다. 프랑스 혁명 의회는 1793년 11월 26일 성경과 종교 행사 금지령을 공식 결의하였다. 그리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이 저희의 죽음을 즐거워하고 기뻐”하였다는 예언이 슬프게도 성취되었다. 그러나 주일 제도가 철폐되고 성경 읽는 것이 금지되며 하나님 대신 이성의 여신이 받들어지자 프랑스는 최악의 무질서와 혼란에 빠져 들어갔다. 범 죄는 증가하고 국민들의 건강은 땅에 떨어졌고 사회는 공포 분위기에 사로잡혔다. 할 수 없이 프랑스는 삼 년 반 후인 1797년 7월 17일 성경 및 종교행사 금지령을 폐지하였다.
6. 삼일 반이 지난 후 어떤 기적이 일어났는가?
“삼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저희 속에 들어가매 저희 발로 일어서니 구경하는 자들이 크게 두려워하더라 하늘로부터 큰 음성이 있어 이리로 올라오라함을 저희가 듣고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니 저희 원수들도 구경하더라”(계 11:11~12).
프랑스 혁명 정부는 성경을 금지한 후에 급속도로 사회가 혼란에 빠 지자 할 수 없이 삼 년 반 만에 그 조치를 철회하였다. 그리고 죽은 것처럼 보였던 두 증인은 다시 살아나기 시작하였다. 1798년 2월 15일 프랑스 군인들이 로마의 시스티네(Sistine Chapel) 성당에 난입하여 교황을 유배 보내고 교황이 그곳에서 죽자 538년부터 1260년 동안이나 계속되던 교황의 세력은 드디어 약화되고 성경은 생기를 얻은 것처럼 보급되고 읽혀지기 시작하였다. 때마침 제지업과 인쇄술이 발달하여 성경을 비싸지 않게 출판하게 되었고 1804년에 영국성서공회, 1816년에는 미국 성서공회가 설립되어 성경을 대량으로 보급하기 시작하였다. 수많은 선교사들이 전 세계에 파견되었다. 실로 19세기는 위대한 선교의 시대였다. 성경은 오늘날도 베스트셀러 중의 베스트셀러이다. 신구약 성경은 매년 수백 개의 언어로 출판되며 쪽 복음 성경은 1,00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어 보급되고 있다. 대한성서공회의 발표에 의하면 한국의 성서공회는 우리나라에서 2005년 1년 동안에 170만 권의 성경을 발행하였고 1,678,259부의 성경을 77개 언어로 제작하여 85개국에 보내고 있다. 실로 엄청난 성경의 부활이다.
7. 두 증인을 죽이려했던 곳과 사람들은 어떤 피해를 당했는가?
“그 시에 큰 지진이 나서 성 십분의 일이 무너지고 지진에 죽은 사람이 칠천이라 그 남은 자들이 두려워하여 영광을 하늘의 하나님께 돌리더라”(계 11:13).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이렇게 하나님에게서 직접 생기를 얻어 부활했지만 성경을 박해한 프랑스는 커다란 영적 지진을 경험하였다. 그들은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지주를 잃고 피폐해졌으며 엄청난 무너짐을 경험하였다. 성 십분의 일이란 유럽 열(十) 나라 중의 하나에 해당하는 프랑스를 지칭하는 말일 것이다. 죽은 사람이 칠 천이라는 것은 아마도 혁명 기간 동안 죽임을 당한 사람들의 상징적 수라고 생각된다. 이런 격변을 겪고서야 사람들은 비로소 하나님과 말씀을 찾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하나님 없이 벌어지는 참담한 결과들을 바라보면서 비로소 하나 님을 두려워하고 영광을 돌리기 시작하였다.
8. 세 번째 화, 즉 일곱째 나팔을 불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둘째 화는 지나갔으나 보라 셋째 화가 속히 이르는도다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가로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 하니 하나님 앞에 자기 보좌에 앉은 이십사 장로들이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가로되 감사하옵나니 옛적에도 계셨고 시방도 계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노릇 하시도다 이방들이 분노하매 주의 진노가 임하여 죽은 자를 심판하시며 종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또 무론대소하고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 주시며 또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때로소이다 하더라”(계 11:14~18).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자 셋째 화가 시작되 기 전 하늘에서 큰 음성들이 나서 이 세상이 그리스도의 나라가 될 것과 그리스도께서 세세토록 왕 노릇하실 것을 찬송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셋째 화가 이 세상 역사의 끝임을 알게 된다. 그 다음에는 하나님 앞 보좌에 앉은 이십사 장로들의 찬양이 시작된다. 그들은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최고의 존경을 드린다. 하나님은“옛적에도 계셨고 시방도 계신 하나님,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 노릇 하시는 분”이시다. 늘 함께 나왔던“장차 오실 이”라는 구절이 여기에는 나오지 않는 것을 보아 일곱째 나팔은 분명히 마지막 때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구절은 또한 예수께서 다시 오시는 재림의 때와 마지막 심판의 때에 있을 일 을 요약하여 보여주고 있다. 마지막 때에 일어날 일은 다음과 같다. 먼저 이방들이 분노할 것이다. 복음을 거절하며 살아온 그들은 그들에게 내리는 심판과 재앙이 성도들 때문이라고 생각하여 그들을 핍박하며 죽이려 할 것이다. 전세계적인 분노와 핍박이 성도들에게 쏟아질 것이다. 그 때 드디어 주의 분노가 이 땅에 내릴 것이다. 오래 참으셨던 은혜의 시기는 끝날 것이다. 이 땅에 내릴 주의 분노는 일곱 재앙 가운데 잘 나타나 있다(계15~16장). 그 때는 죽은 자들도 심판을 받을 것이다. 이것은 마지막 심판의 때를 가 리키는 말씀이다. 재림하신 후 천 년의 세월이 지난 다음 그리스도와 성도들은 다시 이 땅에 내려온다(계 21장). 그 때 구원받지 못하고 죽은 자들이 다부활하여 마지막 심판을 받을 것이다(계 20:7~15). 그 때에 그의 종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또 무론대소하고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는 상을 주실 것이다. 이제 아름답게 재창조된 이 땅과 새 예루살렘 성이 그들의 거처가 된다. 하나님께 순종하며 살아온 그들에게는 무궁한 기쁨과 영생이 상으로 주어진다. 그러나 이 때는 또한“땅을 망 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때” 이다. 악인들은 끝까지 회개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저항을 시도하지만 마침내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그들을 소멸하게 된다. 마침내 모든 죄악의 역사는 완전히 끝난다. 우주에는 다시 사랑과 기쁨만이 가득 차게 된다.
9. 하늘 성전의 모습은 어떠하였는가?
“이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 또 번개와
모든 구원의 역사가 마치는 이 때 다시 한 번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며 언약궤가 보이고 있다. 언약궤 안에는 십계명이 들어 있다. 지금까지 사람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무시하며 살아왔다. 심지어 자칭 그리스도인들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십계명을 등한히 여겼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넷째 계명에 주의를 기울이는 사람 은 거의 없었다. 그들은 거룩한 안식일을 일요일로 바꾸고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았다. 하나의 계명을 어기면 모두 범한 것과 같다는 것(약 2:10)을 그들은 애써 외면했다.
???????????? 그러나 마지막 때에 그 모든 불순종은 심판을 받을 것이다. 은혜의 시기는 끝나고 이 세상에는 심판이 있을 것이다.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과 지진과 큰 우박”은 하나님의 계명을 무시하고 순종하지 않은 이 세상에 임할 엄숙한 재앙과 심판을 상징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언제나 감사하는 것은 성전이나 계명이나 심지어는 심판까지도 그 근본 정신은 사랑이며 우리의 구원을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