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18주일 낮 설교(민돈원 목사)
.성경:마 9:1-8
.제목:문제를 가지고 온 사람들
의학이 지금처럼 발달되지 못했을 예수님 당시 복음서에는 병의 종류도 다양하게 그리고 많은 병을 가진 환자들이 예수님께 나온 경우를 보게 됩니다. 그중에 오늘 본문은 중풍병자를 만나신 예수님이 어떻게 이 사람을 고치시고 이를 통해 무엇을 말씀하시려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동의보감에 의하면 중풍, 오늘날 의학용어로 뇌졸중(腦卒中,Apoplexy)이 오기전 증상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중풍의 전조증상으로 엄지손가락과 집게손가락이 감각이 둔하고 마비되고 손발에 힘이 약하거나, 근육이 땡기는 증상이 오고 그로부터 3년 이내에 중풍이 온다'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중풍이란 질환이 오기 전에 미리 신호를 보내는데 이것을 전조증상이라 말합니다.
중풍또는 뇌졸중의 원인은 뇌에 혈액을 공급해야 하는 혈관이 막히거나 터져 뇌가 손상함으로써 몸의 마비가 오게되는 증상으로 진단합니다. 뇌졸중은 암, 심장질환과 함께 우리나라 사람의 3대 사망원인 중의 하나로 여겨지리만큼 중한 병으로 규정합니다.
지난 10여년간 우리나라 3대 사망원인의 가장 많은 질병이 암, 뇌혈관질환, 심장질환(심장과 뇌는 2.3위가
바뀌기도 한다)이 꼽혔다. 그러나 10-20대의 사망원인은 자살이 가장 높다.
죄인을 부른다는 말은 다시 말하면 병든자를 불러 그들을 치유함과도 같습니다. 본문 말씀 바로 이후에 나오는 마9:12을 보면 이를 알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여기서 우리가 이 병과 죄가 동일시 되어 있고 병든자와 죄인이 동일시 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예수께서 중풍병자에게 뭐라고 선언합니까? 2절에서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저희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네 죄를 용서해 주셨다고 선언하는 것이예요. 이 사람은 중풍병자예요. 다리로 걸을 수도 없습니다. 자기 스스로 움직일 수 없는 사람입니다. 전신이 온전치 못합니다. 그래서 주위사람들에 의해 누워있는 메트에 실려 왔습니다. 예수께서 뭐라고 합니까? 아들아 안심하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그러자 이 말을 듣고 있던 서기관들, 즉 신학자들이 시비를 겁니다. 하나님만이 창조주로서 최후의 심판관이기 때문에 하나님만 죄를 용서해 줄 수 있는데 아니 이 사람이 죄를 용서해 준다고 선언하다니! 이것은 하나님의 권한을 침범함뿐 아니라 참람한 짓이다. 다시말하면 거룩한 신을 모독하는 신성모독하는 것으로 여긴 겁니다. 참람이라는 말은 신성모독이다는 뜻입니다. 레24:16에 보면 “여호와의 이름을 훼방하면 그를 반드시 죽일지니 온 회중이 돌로 그를 칠 것이라 외국인이든지 본토인이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훼방하면 그를 죽일지니라” 라고 하는 말씀과 같이 엄중하게 다스렸습니다. 고대당시부터 신성모독은 랍비율법에 의하면 엄격하게 다스렸습니다. 어떤 것들이 신성모독이었을까요? 하나님의 명예를 훼방하거나 손상시키는 일이 여기에 속합니다. 예를들면 하나님의 이름을 소리내어 말하는 것도 신성모독이었습니다, 다른 신을 따르도록 유혹하는 것등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에 유대인들은 성경에서 ‘여호와’라는 글자를 감히 그대로 소리내어 읽지 아니하고 대신 '주님'이라는 뜻인 '아도나이'라고 읽었으며 이 전통이 영어 성경에서 '여호와'를 주('Lord')로 번역하고 있는 것이다. 또 고대에 성경을 필사하던 서기관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기록할 때마다 붓을 다시 씻어서 기록을 했습니다. 경건한 청교도 존 뉴턴 목사님의 경우 하나님을 언급할 존경의 뜻으로 항상 모자를 벗었다고 합니다.
그런 하나님만이 하시는 일을 예수님이 죄를 사하는 권세를 너희에게 알게 하려 한다 했으니 그들로서는 용납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6절에서 중풍병자에게 침상을 거지고 집으로 가라고 선포하십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어떻게 문제를 해결하신지를 보겠습니다.
1) 믿음이 죄보다 큽니다. 믿음이 죄를 이깁니다. 유대인은 당시 병이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 죄가 있기 때문이라고 여겼습니다. 시편 103편을 보십시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기도도 마찬가지이지만 시편 103편의 사상이 곳곳에 드러납니다. 시 103: 3-4입니다 . ‘저가 여호와 하나님께서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에서 볼 수 있듯이 죄와 병이 같이 묶여 있는 것은 이 둘이 연관성이 있다는 뜻입니다. 몸이 흠이 있으면 성전을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공동체에서 제외된 것입니다. 따라서 죄용서함을 받고 깨끗하게 나음을 받아야 비로소 성전에 들어갈 수가 있게 됩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죄와 병을 연겨래서 보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제자들도 그러했다. 병이 죄의결과라고 여겼다. 그렇기 때문에 눈으로 확인가능한 육체적인 치유는 눈으로 볼 수 없는 죄사함의 실질적 보증이라고 생각했다. 중풍병자가 예수님께 나올때 그를 메고 나온 그들의 믿음 보시고 그가 죄용서함을 받았다고 선언합니다.
질병보다 먼저 죄용서 하시는 예수님을 봅니다. “믿음의기도는 병든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약5:15) 막2장과 눅5장에서는 좀 더 자세히 기록합니다. 즉 데리고 나온 이들의 더 적극적인 행동이 나옵니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 지붕을 뜯어 그 위로 달아 내렸다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이 믿음을 보신 것입니다. 믿음은 지적동의나 감정에 느낌에서 끝나지 않고 의지적인 결단으로 나에게 사건이 되게 하는 예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특히 이 본문을 마가와 누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지붕을 뚤어 내린 것(마가) 기와를 벗기고 달아내린 후 그들을 보신후 믿음을 칭찬 하고 계십니다. 그들의 전승 미드라쉬에도 천정을 뜯어 달아 내린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당시의 집구조는 지붕의 경우 들보 짚으로 엮어 흙으로 채워 비를 막도록 하는 구조, 흙벽돌로 된 단층 스라브식집 바깥에 계단이 있어 지붕으로 올라가도록 되 있는 구조
이것을 창의적인 발상,
2) 예수님의 권세는 문제보다 더 큽니다. 예수님의 권세는 하나님의 일을 하시는 데 있습니다. 사람들은 병문제가 크지만 예수님은 병의 문제보다 크셔서 병을 다스리는 분입니다.
병을 가지고 주님께 나올때 그 문제는 그보다 크신 주님에 의해 다스려집니다.
네 죄사함 받았느니라= 현재형, 일어나 걸어가라=현재형
예수님은 하나님의 권세를 가지고 그가 하실 수 있는 일을 하시는 분. 그러나 서기관들은 으를 신성모독으로 여겼다.
고대사회는 아들의 직업을 보면 아버지의 직업을 알 수 있었습니다. 아들이 아버지 직업을 그대로 물려받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일이 보내신 자의 일을 하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요14:10)
3) 이를 통해 나은 그도 그리고 무리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눅4:25에서는 나은 이 사람도 하나님계 영광을 돌렸다고 했습니다. 무리들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놀랐다고 했습니다.
이를보고 무리가 마태는 두려워(하나님을 경외하는 모습)했다고 표현했으나 막2;12과 눅8:26에서는 놀랬다고 표현합니다. 놀랐다는 이 단어를 영어에서 엑스타시로 번역했습니다. 엑스타시란 그리스어로 '자기 바깥에 서 있음' 또는 '자기를 초월함'이라는 뜻의 ekstasis , 즉 내면에서 신을 보거나 신과 관계를 맺거나 합일되는 체험을 묘사할 때 사용합니다. 이런 표현을 우리말로 잘 표현한 곳이 두군데 있는데 한번은 행10:10입니다. 베드로가 정오기도시간이 되어 기도할 때 하늘이 열리고 네발 가진 짐승, 기는 것, 공중에 나는 것들을 보았던 경험을 비몽사몽이라고 말씀합니다, 또 다른 곳은 행22:17입니다. 사도 바울이 유대인들에게 잡혀 천부장앞에 심문을 받을 때입니다. 심문을 받으면서도 바울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기도하던 중에 “이 곳에서 떠나가라 내가 너를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행22:21)라는 말을 비몽사몽간에 예수님이 말씀했다고 라고 그 때 경험한 사실을 증언합니다. 비몽사몽을 흔히 쓰는 다른 말로 꿈인지 생시인지라는 말입니다. 이 모든 상황은 그들이 더 이상 거부할 수 없을 만큼 예수님의 그 권세에 완전히 압도당하여 있는 모습을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가지신 권세때문이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들 모두에게 비몽사몽의 주체는 그 자신이 아니라 주님이셨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비슷한 황홀에 빠지는 경우가 없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상적인 인기스타에 빠져 엑스타시를 경험하기도 합니다. 스포츠에 열광하다보면 이런 황홀이 빠지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마약이나 이런 환각제를 흡입하여 화라함뒤에 오는 공허한 자기고통을 잊으려 합니다. 이런 것들은 그 사람을 파괴시키고 이성을 잃게 하여 개인과 사회적의 집단적인 죄로 이끌어 공동체를 무너뜨리게 합니다.
그러나 베드로나 바울이 보았던 엑스타시는 이런 파괴적이고 수준낮은 비몽사몽이 아닙니다. 베드로는 고넬료 가정을 만나게 하여 모였던 그 친척과 친구들에게 예수그리스도의 생명의 말씀을 증거함으로 그들을 살리게 하는데 놀라게 만든 엑스타시였습니다. 바울은 자신을 심문하는 천부장이 나중에 이 말을 듣고 도리어 바울을 결박한 것을 두려워하게 만들어 바울을 풀어줄 수밖에 없는 권세있는 엑스타시였습니다.
어떻게 이 일이 가능했습니까? 오늘 본문에 나오는 죄를 사하는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의 권세가 그들에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문제를 가지고 왔다는데서 시작되고 있다. 그러나 예수님을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만날 수 없었다. 막, 눅 의하면 도발적인 믿음 창조적인 믿음이 잇었다.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때로는 평소에는 생각할 수 없는 전혀 창조적인 발상이필요한 믿음 그것이기적을 낳는다 주님의 마음을 움직이게 했다.
♬예수님 권세 예수님 권세 예수님 권세 내 권세 예수님 권세 예수님 권세 예수님 권세 내 권세 할-렐루야 할-렐루야 예수님 권세 내 권세 할-렐루야 할-렐루야 예수님 권세 내 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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