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5.22 주일 낮 설교(민돈원 목사)
성경:눅24:28-35
제목: 복음은 뜨겁게 한다
새로운 역사는 세상이 바뀌기를 기다리는 자들에 의해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이 어떻게 변화되느냐 라고 하는 개인의 회심에서 비롯됩니다. <나라가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지 말고 여러분이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라...이 땅 위에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진정으로 우리 자신의 일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합시다>는 미국35대 존 f. 케네디가 취임사에서남긴 명연설입니다.(부모가 날 위해 해준 게 뭔데, 교회가 날 위해 해준 게 뭐야! 하면 대책없는 사람입니다. ) 한 사람의 위대한 변화 그것은 역사를 새롭게 합니다
바울의 회심, 아우구스티누스의 회심, 루터의 회심, 그리고 웨슬리의 회심을 기독교 역사에서는 이른바 인류 역사를 변화시킨 4대 회심이라고 합니다. 바울의 회심은 초대교회를 낳았습니다. 어거스틴의 회심은 기독교 위대한 교리를 완성했습니다. 루터의 회심은 타락한 카톨릭으로부터 개신교를 낳았습니다. 웨슬리의 회심은 개인의 변화로 위대한 영국구원과 세계선교의 시금석이 되었습니다
그러한 역사는 모두 이들의 뜨거운 마음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뜨거운 마음은 어떻게 생기는 걸까요?
첫째, 무언가 보는 것으로 감동을 받을 때 생깁니다. 세상 사람도 이런 뜨거움을 경험합니다. 신인가수 선발 현장을 보라.
둘째 지적인 세계에서도 감동을 받습니다. 실험실에서 새로운 이론을 발견햇을 때,유레카 ‘내가 찾았다’.‘아르키메데스의 부력의 원리’ , 지식경제부=>산업통상자원부로 개편, 지식창조산업이라고 말합니다
셋째, 뜨거운 마음은 말씀에 온전히 접촉될 때입니다. 세상에 접촉되고 불건전한 야동에 접촉되면 정신과 육체가 더러워지고 병이들고 나아가 영혼이 망가집니다. 본문 32절에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다시 만나고 말씀을 들을 때 그들의 마음은 뜨거워졌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그의 음성을 듣는 순간 식어진 인간의 마음은 다시 뜨거워지게 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숨을 거두신 것을 보고 슬픈 빛을 띠고 (눅24:17) 실의에 빠진 채 길을 가던 두 제자가 있었습니다. 무엇을 보았길래 보는 것으로 사는 자들은 이렇게 되기 쉽상입니다. 그들은 절망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때 예수께서 오셔서 그들과 동행하셨으나 그들의 눈이 가려져 알아보지 못했습니다(14∼16). 떡을 가지고 축사하신 후 자신들에게 나누어줄 때 비로소 그들의 눈이 밝아져 예수님인 것을 알아보았다고 했습니다(30∼31)
존 웨슬리는 4가지 체험을 함으로써 그가 영국사회를 복음으로 변화시키는 일이 가능했습니다
그 이전에 존.웨슬리는
1)종교적 회심, 22세 1725년, ‘옥스퍼드’ 99%종교인으로 살아갈 뿐. 존 웨슬리는 처음부터 열정적인 설교가나 전도자는 아니었습니다. 그는 매우 이성적이었으며 자신이 경험한 것만을 확신하는 합리주의자였습니다. 물론 그의 가슴 속에는 하나님에 대한 열정이 있었습니다. 동생 찰스와 함께 옥스퍼드 대학 내에서 신성클럽(Holy Club)을 만들고 말씀을 탐구했으며, 감옥이나 고아원을 찾아가 다른 사람을 섬기는 삶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러한 노력들이 그의 영적인 문제들을 모두 해결해 줄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그는 여러 가지 사상을 접하며 신앙적인 고민들을 계속하던 중 자신의 영적 성장과 성숙을 위해 조지아 선교를 결심합니다. 그렇지만 그것 또한 실패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2)신앙적 회심 1738. 35세. ‘올더스케잇’의 체험으로 아들의 영
미국 조지아 선교를 실패로 마치고 돌아온 존과 찰스 두 형제는 런던에서 거듭남의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존 웨슬리보다 며칠 전에 회심을 경험한 동생 찰스는 형의 회심을 간절히 소원하는 중보의 기도를 드렸으며, 1738년 5월 24일 존 웨슬리도 올더스게이트 거리를 거닐다 루터의 로마서 서문 읽는 소리를 듣고 거듭남을 체험합니다.
“ 저녁에 나는 별로 내키지 않는 걸음으로 올더스케잇의 집회에 참석하였는데 한 사람이 루터의 로마서 서문을 읽고 있었습니다.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마음에 변화를 일으키시는 일을 설명하고 있을 때 나는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나는 내가 그리스도를 신뢰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구원을 위해 그리스도를 믿고 있음과 주께서 죄를 거두어 가시고 죄와 사망의 법에서 건져주셨음을 믿는 확신이 주어졌습니다.” (1738년 5월 24일 존 웨슬리의 일기 중) 그 이후 이성적인 생각으로 할 수 없는 복음전도자가 되어 영국 전역을 다니게 됩니다
그는 기도와 금식, 말씀 연구와 거룩한 독서를 통해 영적인 훈련을 계속했습니다. 놀랄만큼 규칙적인 생활을 통해 성결한 삶을 살았다. 그는 매일 아침 2시간씩 기도했으며, 회심 후 51년 동안 250,000마일을 여행하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3)1738.12.31-1739.1.1 ‘페터레인’의 성령체험 사건 눅24:49 위로부터 능력이 입히워짐 성령을 기다림, 성령의세례로 충분하지 않고 성령으로 충만하여야 한다는 사실을 체험
웨슬리의 성령체험은 1739.1.1페터레인에서 능력체험으로 이어집니다-
<약 60여명이 새해전날 패터레인에서 애찬을 나누었다. 새벽3시경 계속 기도를 하고 있는 가운데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위에 강하게 임하였다.기쁨이 충만하여 소리를 질렀다 어떤 사람은 바닥에 쓰러졌다. 경이롭고 놀라운 하나님의 임재에서 깨어나자마자 찬양을 불렀다
오, 하나님,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주님이신 것을 깨달았습니다.
모일때마다 성령님이 우리중에 놀라운 방법으로 행하기 시작했다>
웨슬리는 올더스게잇 체험과 다르게 페터레인 체험을 그의 일기에서 짧게 다룹니다. 그러나 올더스게잇 체험이 거듭남의 사건이라면, 페터레인 성령체험은 성화의 사건이다. 올더스게잇 체험이 성령으로 태어나는 것이라면, 페터레인 체험은 성령의 은사를 체험하는 것이었다. 올더스게잇 체험이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 것이라면, 페터레인 체험은 성령으로 충만하여지는 사건이었다. 웨슬리는 그의 설교 “거듭남”(New Birth)에서 물세례를 육적 세례으로 보았고, 거듭남을 성령세례(spiritual baptism)로 보았다. 그리고 성화는 성령충만으로 웨슬리는 해석한다. 성령세례는 영적 탄생을 일으키는 일회적 사건이지만, 성령충만은 우리의 영적 성숙을 위해 계속되는 것이다.웨슬리는 은사체험적 오순절적(charismatic pentecostal) 성화체험보다는 인격적 성결(personal holiness)을 추구하는 성화체험을 더욱 사모하고 더욱 강조하였다.
4)1739. 4.1 “사명적 회심”(행20:24) ‘브리스톨’ 노천설교 당시 국교에서는 금지 그러나 상관없이 그 마음을 억제시킬 수 없게 하심 존 웨슬리는 “성화는 개인의 변화를 통해 시작되며, 세상 속에서 사회적인 변화로 이어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그는 어렵고 힘든 사람, 소외받은 사람들을 위한 사도로 살았습니다. . 개인적 성화를 넘어- 사회적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성화- 또한 웨슬리의 성화론은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 가는 의로움과 거룩함(엡 4:24)입니다.
웨슬리의 회심은 2개의 큰 열매를 맺습니다. 하나는 감리교회라는 열매이고 또 하나는 영국사회의 변화라는 열매입니다./그 결과 당시 영국상인들이 세계에서 가장 정직했다는 것입니다
20세기 웨슬리 연구의 대가인 알버트 아우틀러 박사는 성공회에서 강조하는 “성서”, “전통”, “이성”의 삼중구조에 성령체험을 “경험” 차원에서 정립한 것이 바로 웨슬리의 공헌이라고 주장합니다.
그 결과 성서, 전통, 이성, 경험 이 네 가지가 감리회의 근본적인 신학적 기준으로 자리 잡게 된 것입니다. 웨슬리는 올더스케잇에서의 성령체험을 성서, 전통, 이성과의 지속적인 조명을 통해, 감리회의 예배 속에 정착하게 됩니다. 풀러신학교 조직신학 교수인 이정석은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에 망하지 않는다는 생각은 환상에 불과하다. 물론, 그리스도의 우주적인 교회는 망하지 않지만, 개체교회나 교회들의 집단은 감소하고 몰락하고 멸절할 수 있음을 역사가 증거한다. 실로, 유럽교회는 지난 2천년 동안 기독교의 중심이었으며 지금도 그 유산이 세계교회의 바탕이 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교회가 20세기를 지나면서 내적 세속화로 인해 급격한 몰락의 길을 걸었으며, 거대한 교회당들과 위대한 전통에도 불구하고, 세속화된 교회에는 미래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 예로
콘스탄틴 대제의 기독교 국교화와 중세 로마 카톨릭 교회의 타락을 지적합니다.
한편 칼 바르트는 세속화를 소금이 그 맛을 잃어가는 과정이라고 정의하고, 그런 교회는 세상에게 짓밟혀 마땅하다고 탄식했습니다. 기독교가 종교화되고 세속화되는 제1단계에서는 교회가 흥왕하고 교인도 증가하지만, 점차 그 허구성이 드러나면서 제2단계에서는 급격한 탈교회화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고 보았습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 본문에 두 제자에게 붙었던 그 불이 우리 마음에 불이 붙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불이 붙어야 할까요?
1.생명의 불입니다. 마음에 불붙는 것 같은 마음이 진정한 산 어미의 마음입니다.(왕상3;26) 죽어도 좋으니 반으로 나누라는 여인은 자기 아이가 아닌데도 자기아이라고 억지 소리하는 여인의 주장이었습니다. 진리를 외치고 진실하고 생명을 가진 사람은 마음에 진리로 불붙어 살아갑니다. 생명을 잘라서 공평하게 나누어 준다고 하는 것은 공평한 것이 아닙니다. 죽더라도 나누라는 것은 사단의 소리입니다. 예수님께 드리는 300데나리온의 향유옥합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는 소리는 예수님을 판 유다의 비난과 거짓된 소리입니다. 생명의 현장에는 분열이 없습니다. 통합이요 양보입니다.
2. 마음이 불붙는 자의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주신 말씀의 불입니다(눅24:32)
오늘 본문은 13절부터 시작합니다. 두제자가 예루살렘에서 실망스런 모습으로 엠마오로 가던 길이었습니다. 약10km(25리)되는 거리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이들 실망스런 모습으로 가는 이들과 동행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눈이 가리워져 주님임을 모릅니다. 길 가면서 성경에 기록된 선지자들의 글을 풀어 주십니다. 날이 저물었습니다. 음식을 잡수시려고 감사 기도하신 후 떡을 떼서 주십니다, 그리고는 더 이상 보이지 않습니다. 이때 두 제자들이 서로 말합니다. 32절입니다.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곧 그 때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11제자 및 그들과 함께 한 자들이 모여 잇어 말하기를 과연 주께서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보이셨다 하는지라. 이 두 사람도 길에서 일어난 일을 말했다고 햇습니다.
말씀을 들을 때 웨슬리도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1738.5.24 9시 15분전 구원의 확신을 경험했습니다. 올더스케잇 체험이라 부릅니다.
3. 복음전파의 사명의 불입니다,(렘20;9)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수 없나이다”
[PPT] 롬 1:16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자
웨슬리와 전도 ( 롬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25만 마일(30만 km 지구 7바퀴 반)(또는 334,000km)지구크기:4만km -50년 넘도록 전도를 위해 다녔고, 135,000명을 전도하여 결신시켰습니다.
전도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중단 없는 사명이어야 합니다.
4. 새벽기도의 불, 새벽기도 절대 지지자로서의 존 웨슬리
웨슬리가 새벽 기도 운동의 선구자라는 사실은 별로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웨슬리는 조지아주 선교활동을 하던 1736년부터 거의 말년에 이르기까지 매일 새벽 5시에 설교했는데 이렇게 하는 것이 심신의 건강을 위하여 중요하다고 믿었습니다.
"여러분들이 20명 이상의 회중을 확보할 수 있는 곳은 어디에서든지 새벽 5시 설교를 계속해서 하십시오"(Minutes, 1: 79, 1768). 1784년(81세) 웨슬리는 체스터(Chester)에서 특히 겨울철에 새벽 설교가 중단된 것을 알고서는 이렇게 역정을 낸 적이 있습니다. "감리교인들이 타락한 사람들이라는 것이 바로 새벽 설교가 중단된 것에서 입증됩니다." 또한 같은 해 스트로우드(Stroud)에서도 새벽 기도회가 중단된 것을 발견하고서는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도 새벽 기도회가 중단될 정도라면 내가 세상을 떠났을 때에는 어떻게 될 것인가? 새벽 기도회를 중단하라. 그러면 감리교 역시 몇 가지 신학적 견해나 예배 양식으로만 구분될 수 있는 바 한낱 소종파(sect)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Works 23: 298).
이것이 또한 웨슬리의 후예들인 메소디스트로서 가져야 할 아이덴티티(정체성)라고 봅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개인적 구원의 확신입니다. 나아가 세속화를 거부하고- 사회를 변화시킬 만한 영향력-사회적 성화를 추구하는 복음의 능력입니다. 영혼구원에 대한 복음전파의 사명의 뜨거움입니다. 철저하고 변함없는 개인적 영성관리와 교회가 교회되게 하기 위한 새벽기도의 소홀함과 게으름을 경계하는 것이 웨슬리 회심기념주일의 진정한 의미를 살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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