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 기 호 박사
예장연합장신총회 총회장
총회신학·신학연구원 원장
-내세론 연구-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분들의 건강과 무궁한 발전을 기도드립니다. 본인은 대한예수교 장로회 총회(연합장신)의 총회장으로서 예나 지금에서 가장 시급한 과제인 내세론의 문제를 복음신문을 통하여 연재를 하고자 합니다. 내세론의 서론격인 부분을 시작으로 앞으로 본격적인 내세론에 대해 기술될 예정이오니 여러분들의 연속적인 기도와 편달을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이 내세론의 문제는 사후의 세계의 문제로서 과연 “사후의 세계는 있는가” 함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니 바른 이해가 반드시 있어야만 합니다. 거두절미하고 이는 “천국과 지옥은 있는가? 아니면 없는가?” 그리고 이어서는 “낙원과 음부는 있는가? 아니면 없는가” 함의 문제이니 이는 모든 종교와 역사와 현실에서는 가장 비상한 관심사가 아닐 수 없는 것만은 사실입니다. 그러하오니 여러분들의 바른 이해를 요망하며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내세론의 연구에서 가장 먼저 유의하고 생각해야 하는 것이 그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본 과제(서론)에서 제일 먼저 유념하고 생각해야 하는 것들은 바로,
(1) 사후의 세계는 과연 있는가? 그것이 아니면 사후의 세계는 없는가 하는 그것이 하나의 과제이고 전 인류의 이슈인 것만은 사실이다. 이 문제는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이슈가 되고 있는 바이니 바른 이해가 심히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그 누구라서 이를 모를 것인가? 꼭 목사가 아니어도 이 정도는 다 알고 있는 바가 아닌가? 교인들이나 일반인들도 이 정도는 익히 아는 바이니 이것 또한 감안을 해야만 한다.
(2) 그러하다면 사후의 세계는 있다고 보는가? 다른 사람이 아닌 너와 나는 교회를 다니고 예수를 믿고 있는데 과연 사후의 세계를 믿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믿지를 아니하고 있는가? 기독교적인 차원에서도 사후의 세계를 믿는 자가 한국의 경우는 겨우 30% 정도도 아니 되는 지경인데? 그러하다면 너와 나는 사후의 세계를 믿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전혀 믿지를 아니하고 “아리송하다거나” 아니면 상당수의 목사나 신부들이 하는 말이 “사후의 세계는 죽어서 가보기 이전에는 모른다”고 하듯이 과연 그런 것인가? 그러면 이미 모든 것은 늦고 그 끝이 난 것이다. 그러면 누가복음 16: 19-31절이 그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 것인가?
(3) 거두절미하고 만약에 사후의 세계가 있다면 그 곳은 그 어디인가 하는 것이다. 이는 역사와 종교와 현실에서 그 무엇 보다 가장 비상한 관심사임에는 사실이 아닌가? 당신이 교인이고 목사라면 이 사후의 세계는 그 어디라고 보고 있는가? 이생의 그 어디 또는 그 어느 부분이라고 보고 있는가? 그것이 아니면 저 생이라 하는 곳으로 보고 있는 가함이다.
(4) 그것이 아니면 사후의 세계는 없는 것인가? 너와 나는 사후의 세계가 없다고 보는가? 과연 그런 것인가? 그래서 마태복음 22:29절 그대로 “우리는 성서를 아직까지도 오해를 하고 있는 가”하는 것이다. 세상을 보고 현실을 보고 기존의 모든 종교들을 보고 기독교를 보라. 사후의 세계가 없다는 자들이 태반이 넘는 것이 아닌가? 자유주의신앙 자들이나 종교다원주의 자들이나 일반인이나 보수파들 역시 사후의 세계를 거의가 믿지를 아니하는데(마태복음 23:15) 당신도 그런 것인가? 그것이 아니면?
(5) 사후의 세계가 없을 것이면 절대로 들어가지 아니할 것인가? 솔직히 들어가지 아니할 것이니 기쁘고 즐거울 것인가? 과연 그럴 것인가? 그것이 아니면 역사와 사회와 인간들이 설령 없다고 해도 나는 반드시 들어가려고 할 것인가? 이에 대한 비상한 관심사를 갖는 것은 사실이 아닌가? 그러면 욥기 27:9절을 보라. 여기서 성서는 “하나님이 당신의 영혼을 취하실 때에 무슨 소망이 있는 가”라고 하지를 아니하는가? 그러면 이에 대한 어떤 대비책이 없는 것인가?<계속>
(6) 거두절미 하고 사후의 세계가 있다면 당신은 반드시 들어갈 것인가? 하늘이 무너지고 지구가 두 조각이 나도 말이다.
사후의 세계인 천국과 지옥이 있으면 반드시 들어갈 것인가?
아니면 절대로 들어가지를 아니할 것인가? 지금에서 교회당을 다니고 예수를 믿으니 나는 반드시 들어가 놓고 볼 것인가?
그 다음의 문제는 그 다음에 생각을 하고서 말이다.
(7) 만약에 사후의 세계가 있다면 먼저는 그 곳에 반드시 들어가 놓고 볼 것인가? 그리고 그 다음의 문제로는 그 곳에 들어갈 그 때에 빈손으로는 갈 수가 없는 것이 아닌가?
물론 전도서 5:15절을 보고 그리고 다시 시편 49:16-17절을 보라. 이미 인생은 “죽을 그 때에 아무 것도 가져가지 못한다”라고 못을 박고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인가를 가져갈 것을 준비하지 아니하면 아니 되고 그리고 이에 대한 사전에 면밀한 대비책을 세우지 아니하면 아니 될 참이니 이를 감안해야만 한다.
(8) 현금당대만이 아니고 과거에서도 사후의 세계가 있어서 그 곳으로 간다면 가져갈 것이 있었는가?
있다면 그것을 우리들 각인이 이미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가져갈 것이 아무것도 없는 가함이다. 가져갈 것이 없기에 아예 아무 것도 준비를 하지 아니하고 있는가 함이다.
솔직히 사후의 세계가 있다면 전후 사정이나 관계를 고려하지 아니하고서 가져갈 것을 준비하고 있는 것인가? 아직은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생각 하는 것도 이미 싫은 것인가? 과연 그런 것인가?
(9) 그것이 아니면 사후의 세계에 가져갈 것이 하나도 없는가? 과연 하나도 없는 것인가? 이에 대하여는 전혀 생각이나 준비를 하지 아니한 것인가? 그러하다면 왜 그러한 것인가?
그 누구를 위하여 준비를 하지 아니하고 그 무엇을 위하여 준비를 하지 아니한 것인가? 준비를 전혀 하지 아니한 것은 사후의 세계를 믿지 아니했거나 이제까지는 없다고 보거나 믿기 때문이 아닌가? 솔직히 말해서 말이다.
(10) 이 시점에서 너와 나는 사후의 세계로 갈 그 때에 가져갈 것을 이미 준비를 하고 있는 중인가? 과연 그런 것인가? 그러하다면 그것이 그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그것이 돈인가? 부동산이나 동산들 말이다.
그러면 누가복음 12:16-21절의 이 사람은 그 무엇을 가지고 저 세상으로 간 것일까? 여기서는 그 무엇보다 바른 이해가 심히 요구 되고 있는 것이다.
(11) 주의 은혜를 색욕거리로 바꾸어서 그런지는 모르나 사후의 세계에 대하여는 관심들이 전혀 없는 것은 고사하고 그리고 예수를 믿는다고 고백을 하면서도 가져갈 것은 아무 것도(그 무엇도) 준비한 것이 없으니 이를 어찌하는가?
사후의 세계는 우리 아버지의 나라인데(누가복음 22:29) 가져갈 것이 하나도 없다거나 전혀 준비를 한 것이 없다면 그것은 야바위이며 속임수적 신앙이며 유야무야한 것이 아니겠는가?
오늘에서 너와 나의 주위를 둘러보라.
너와 내가 저 세상 곧 사후의 세계로 갈 그 때에 가져갈 것이 있는가? 아니면 전혀 없는가? 아니 아직 그 하나도 준비를 하지 못한 것인가?
(12) 그리스도인으로서, 목사나 장로로서 당신은 솔직히 내세에 대하여 그 무엇인가를 준비하고 있는가? 아니면 내세를 전혀 모르기에 아무 것도 준비를 한 것이 없는가?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욥기 34:20절과 욥기 34:25절 그리고 이사야 17:14절과 같은 일을 당하고 나면 어찌할 것인가? 그러면 그 무슨 수가 있는가?
이런 문제는 비상한 과제이고 그리고 죽고와 살고의 문제인데 어찌 이를 수수방관을 하고 있을 것인가? <계속>
(13) 솔직히 당신은 내세에 대하여는 아무 것도 준비를 하지 아니하고 고작 한다는 일이 이생의 것들만 계속해서 생각과 준비를 하고 있는가? 과연 그런 것인가?
그러면 누가복음 12:16-21절의 이런 부자 유형이 될 것이고 그리고 다시 누가복음 16:19-25절의 유형이 되고 말 것이 아닌가? 그리스도인들이 이렇게 되면 결코 아니 되는 것이 아닌가? 여기서는 너도 나도 결코 예외가 아닌 것이 아닌가?
(14) 인생은 하나같이 현실과 역사 속에서 그 무엇을 준비하며 살고 있는 것인가? 그것들의 모두가 다 이생의 것인가? 하나 같이 이생과 나의 육신을 위한 것인가 하는 것이다.
그것이 아니면 저 생의 것을 위한 것인가? 설령 우리에게 죽음의 이리가(요한복음 10:12) 어느 순간에 온다고 하여도 전혀 개의치 아니하고 준비를 하고 있는 중인가? 이에 대한 바른 이해나 관심이 있는가? 아니면 이에 대한 바른 이해나 관심이 전혀 없는 것인가 함이다.
인생은 마땅히 흙으로 돌아가야 하지만(창세기 3:19. 시편 146:4) 그와는 반대로 우리의 영혼은 흙의 소산물이 아니니(창세기 2:7) 고향인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할 것이 아닌가?(전도서 3:21) 그럼에도 이에 대한 관심도 대비책도 없으니 큰일이 아닌가?
(16) 우리는 “미래 곧 사후의 세계”인 그 어디에로 가져갈 것을 위해서 수고하고 노력까지 하고 있는가? 그러하다면 그것이 그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지금의 너의 손에 있는 것이나 너의 두뇌에 담고 있는 것들 그리고 너의 신앙이나 사상, 인격이나 양심에서 가지고 있는 것은 그 무엇도 저 세상에는 가지고 가지 못한 다는 것을 잊으면 결코 아니 되는 것이다.
유념할 것은 건너편 세상에는 우리의 믿음도 소망도 간절한 바람도 필요가 없다. 그리고 우리의 지식도 재산도 명예와 지위, 계급 등도 필요가 없으니 가져가지를 못한다.
왜 그런가? 그 곳에서는 이런 유한적이고 이생적인 것들은 그 무엇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17) 사후의 세계에로 가려고 하면서 가져갈 것을 이미 준비하고 있는가? 과연 그런 것인가? 그러하다면 가져가려는 그것이 과연 그 무엇인가?
각종 교회당에서 드려지는 11조나 감사나 주일 헌금이나 그리고 봉사나 대접, 충성과 헌신과 희생적인 것들을 가지고 하늘나라로 가려고 하는가? 그것이 아니면 교회당을 다니고 예수는 믿는다고 하고 그래서 목사가 되어 있으면서도 저 세상에 갈 그 때에 가져 갈 것은 아무 것도 준비를 한 것이 없는 가 함이다. 모름지기 이는 비극이며 저주인 것이다.
(18) 사후의 세계인 천국으로 가려고 하면서 솔직히 아무 것도 가져갈 것을 준비하지 아니하고 있다면 그 때에는 어찌되는 것인가? 솔직히 말해서 아무 것도 가져갈 것이 없다면 어찌 되는가?
사후의 세계로 갈 그 때에 가져갈 것이 없거나 그것을 모르면 그것은 비극이고 저주가 아닌가? 오늘에서 너를 보고 나를 보라. 이에 대한 대비책이 있는가? 아니면 전혀 없는가? 이를 놓고서 충분한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인가?
(19) 천국에는 다들 가려고 하면서 왜 하나같이 교회당 안에서 천국상사병에 걸려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것인가?
그러면 왜 교인들은 하나 같이 천국상사병에 갈려서 죽어들 가고 있는데 이를 목사들은 외면을 하고 모르는 척을 하는가?
그러면 그것이 그 교회당의 목사님 탓인가? 그것이 아니면 기독교 그 자체(전체)의 탓인가? 그것이 아니면 천국상사병 환자 그 자신의 탓인가? 아니면 그 누구의 탓인가 하는 것이다.
이 시점에서 당신은 행여나 천국상사병 환자는 아닌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계속>
(20)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이는 교회당 안에서 천국으로 가려고 하면서 왜 천국고차원적 딜레마에 빠져서 헤어나지를 못하고 허우적거리고 있는 것인가?
이런 이상하고 아리송한 신앙적 또는 종교적 환자들은 어느 교회당을 가나 초만원 사례인데 그것이 그 누구의 탓인가?
이런 자들은 항상 기도를 할 시나 그 어디에 가거나 하면 그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하늘을 쳐다보게 되고 그리고 언제나 찬송은 “오! 주여 언제나 오시렵니까”가 아니면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나아갑니다”라고 하면서 천국향수병에 빠지고 휘말리니 이만저만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21) 기성 교회당의 목사님들에게는 과연 내세관이 있는가? 아니면 내세관이 거의 없는가? 그러면 마태복음 23:13절을 보라. 이것이 말세 교회당의 현장현실이 이렇게 된다는 예고가 아닌가?
그리고 마태복음 23:15하반절을 보라. 목사가 교회당에서 교인들을 인도하면서도 배나 지옥자식이 되게 한다는데 그러면 그 저의는 무엇인가 함이다.
그러면 그 결과가 어찌되는 것인가? 기성교회의 목사는 교회당의 설교나 성서 강의에서 내세를 설교하거나 가르치고 있는가? 아니면 설교도 아니하고 가르치지도 아니하는가? 그러면서도 교인들에게 내세를 믿으라고 말을 할 수가 있을까?
(22) 기존의 교인들에게는 내세관이 있는가? 아니면 교인들에게는 내세관이 거의 없는가? 그들의 내세관은 동양 샤머니즘적이고 바울이 지적한 “신화적인 것”인가?(디모데 전서 1:4상반절, 4:7) 내세관도 없으면서 집사가 되고 권사가 되고 장로가 되고 목사가 되었으니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고차원적 천국딜레마에 빠진 것이 아니고 그 무엇인가?
(24) 인간은 그 누구도 죽어서 사후의 세계로 갈 그 때에 가져가야 하는 것이 있는가? 아니면 없는가? 이 육신은 땅에 속한 것이니(창세기 2:7, 창세기 3:19, 시편 146:4, 시편 104:29) 다 땅으로 돌아가고 그와는 반대로 영혼은(전도서 3:21) 하늘로 올라가야 하는데 이에 대한 준비나 대비책이 있는가?
천국을 가도 가져가야 할 것이 있고 지옥을 가도 가져가야 할 것이 있는 것이 아닌가? 물론 절대로 가져 갈 수가 없는 것이 거의 다 이지만 말이다.
※ 그러면 다음의 성서를 보라.
전도서 5:15-16절을 보고 시편 49:17상반절을 보라.
위의 성서에서는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한다고 말씀하신다.
(25) 다음의 이들은 사후의 세계로 갈 그 때에 그 무엇을 가지고 갔을 것인지는 세상과 역사 위에서 비상한 관심사임은 사실이다. 그러면 다음을 보라.
누가복음 12:16-21절을 보라. 흥미진진한 것이 아닌가? 누가복음 16:19-25절을 보라. 사무엘 상 2:12-17, 2:30-36, 4:8-9절을 보라. 마태복음 26:14-16, 27:3-5절을 보라. 사도행전 5:1-11절을 보라. 사도행전 12:20-23절을 보라.
솔직히 이들을 보면서 오늘의 너와 나는 그 무엇을 가지고 사후의 세계로 갈 것인지.... 이에 대한 바른 이해와 확고부동한 신념이 있는가함이다.
(26) 그러면 다음의 이들은 그 무엇을 가지고 저 세상으로 갔을까? 이 또한 역사와 현실 위에서 비상한 관심사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면 다시 다음을 보라.
사도행전 7:54-60절을 보고, 사도행전 12:1-2절을 보고, 계시록 6:11절을 보고, 계시록 7:13-14절을 보라
그러면 이들에 대한 위의 성서를 자세히 연구와 검토와 분석을 하여 보라. 이들은 하나 같이 천국으로 갈 그 때에 그 무엇을 가지고 갔는 가함이다. 그 누구도 이에 대한 바른 분석과 이해가 없으면 결코 아니 된다. <계속>
출처...복음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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