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스크랩]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약속

하나님아들 2017. 3. 25. 14:23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약속

                                                    (14:1-3/1:9-11/1:7/9:28)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사상(Parousia)은 개혁주의 종말론의 절정에 위치한다. 그리스도의 재림사건은 이 세상 끝에 일어날 것이며 재림의 여러 징조들을 동반한다. 이를테면 세속주의의 만연(17:26-30), 극한 이기주의의 팽배(딤후 3:1-5), 복음의 확장과 이스라엘의 회심(11:25-26), 대환난(24:15-22), ()배도(살후 2:1-10, 딤후 4:3-4), 적그리스도의 출현과 활동(13), 천년왕국기의 도래(20:4-6) 등이 포함된다. 재림은 그리스도께서 성경을 통해 친히 말씀해 주신 언약적 주제로서 성경 도처에서 확인된다(16:27, 24:30, 14:62, 12:40, 14:3, 1:11, 살전 4:16-18, 살후 1:7-10, 9:27-28, 1:7, 22;11-15). 그런 의미에서 재림사상은 관념적인 용어가 아니다. 공교히 만든 허탄한 얘기가 아니다. 실제적 사건이며 성경적 종말론의 핵심 주제이다. 예수님은 당신의 공생애 사역을 통해 종말론의 최종 목표인 하나님 나라를 이 세상 속으로 이미가져 오셨고(12:28), 재림과 더불어 그 나라를 최종적으로 완성하실 것이다(25:31-34, 21:1). 이런 관점에서 신약시대의 성도들의 특징은 이미(already) 실현된 하나님 나라와 예수님의 재림으로 실현될(not yet) 종말론적 하나님 나라 사이의 긴장 속에서 살아가는 천국시민권자로 설명될 수 있다(6:12, 3:20). 신약의 교회를 일컬어 전투하는 교회(militant church) 로 부르는 이유가 이런 사실에 근거한다.

 

그렇다면 성경이 말하는 재림의 본질은 무엇인가? 재림과 관련해 증거본문으로 제시된 위의 성경구절들을 중심으로 살펴보자.

 

A. 재림의 횟수 : 단회적인가?/이중적인가?

소위 세대주의자(dispensationalist)들은 성경의 전()역사를 7세대로 구분해 설명하는 가운데 주님의 재림과 더불어 마지막 일곱 번째인 천년왕국시대가 이 땅에 임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이를 가리켜 세대주의전천년설이라고 부른다. 이 과정에서 예수님의 재림은 공중 재림과 지상 재림이라는 두 단계에 걸쳐 이중적으로 실현된다고 본다

 

세대주의자들에 의하면 예수님은 1차적으로 공중에 재림하신다고 본다. 이때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의 먼저 부활하고, 뒤를 이어 살아있는 성도들이 변화돼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하게 된다고 설명한다(살전 4:15-17). 이들은 공중에서 주께서 배설해 주신 혼인잔치에 참석하게 되고(19:9) 이 기간은 7년에 걸쳐 진행된다고 해석한다(9:27). 7년 기간 동안에 땅에서는 재림에 동반되는 일련의 종말론적 사건들이 발생하게 되는 데, 예를 들면 복음의 확장과 이스라엘의 회심(24:14, 11:25-26), 대환난(24:21-22), 배도와 적그리스도의 출현 및 활동(살후 2:1-10) 등이다. 이런 재림의 징조들을 총괄해 세대주의신학은 이를 7년 대환난(The Great Tribulation) 기간으로 설정한다. 7년 대환난 후에 공중에 재림하셨던 예수님은 성도들을 데리고 친히 지상에 강림(재림)하셔서 저들이 주장하는 대로 천년동안 세상을 다스리신다(살전 3:13). 이 기간이 세대주의신학에서 말하는 소위 전천년왕국기간이다.

 

그러나 세대주의신학에서 말하는 이중 재림은 성경의 지지를 받기에는 적잖은 한계점을 드러낸다. 이들이 다니엘의 70이레 예언(9:24-27)에 근거해 주장하는 7년 대환난 이론은 다분히 작위적이다. 70이레 예언은 문맥 속에서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예수 그리스도의 출현과 그 분의 구속사역(새 언약)으로 인한 죄사함과 의와 하나님의 나라의 도래 등 하나님의 구속경륜과 관련된 일련의 섭리적 작정기간을 상징적으로 기술하고 있는 내용이다. 그러므로 이를 문자적으로 해석해 7년 대환난 기간을 임의대로 설정하는 것은 무리이다. 계시록 19장에서 언급된 혼인잔치 또한 문자적 혼인잔치가 아니다. 사단세력의 일망타진과(16-18)과 구속사의 종말론적 성취를 통해 교회와 그리스도가 연합되는 상황을 상징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내용이다. 그러므로 재림의 때가 다가올수록 환난의 강도가 강화되고 심화될 수는 있어도(대환난) 그 기간이 7년으로 제한된다는 것은 성경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 결과적으로 성경은 예수님의 재림을 이중적으로 말하고 있지 않다. 단회적이고 단일한 사건일 뿐이다.

 

B. 재림의 징조 : 재림에 동반된 종말적 사건들

성경은 주의 재림 전에 몇 가지 중요한 종말적 사건들이 발생할 것에 대해 기술한다. 여기서 종말적 사건이라 함은 일차적으로 그리스도의 재림사건이 가까울수록 더욱 구체화/현실화/강화/심화된다는 의미가 강조되겠지만, 본질상 주님의 초림으로 이미 시작된 종말로부터(12:28) 재림에 이르기까지의 신약교회시대 전 기간을 통해 일어나는 제반 사건들을 포괄적으로 함의한다고 볼 수 있다. 이를 신학적으로 원근(遠近)통시법(prophetic foreshortening)의 원리라고 부른다. 동일한 사건이 현재적이며 미래적으로 이중적인 양면성을 띠고 진행되며 성취되는 것을 가리킨다. 일례로 종말론의 궁극적 목표인 하나님 나라의 도래와 관련해 성경은 현재적(이미)이며 미래적(아직 아닌)인 관점에서 이중적으로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기술한다(12:28, 17:20-21/17:22-24, 22:18). 이 뿐만이 아니다. 구약 선지자들에 의해 예언된 메시아 대망사상도 고난의 종과 만왕의 왕이라는 이중 구조를 통해(52:13-15) 해석하게 될 때 메시아 예언의 정체성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로마의 지배와 압제를 받는 상황에서 이스라엘을 로마로부터 해방시켜 줄 정치적인 인물에 치중해 메시아의 정체성을 해석했고 대망함으로서 정작 메시아의 당사자로 오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어처구니없는 자기모순에 빠졌던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재림과 관련해 성경은 다음과 같은 일련의 종말론적 사건들이 재림 전에 발생할 것에 대해 기술한다. 특별히 예수님의 감람산 강론은 재림과 말세의 징조(sign) 및 그 시기(time)에 관해 묻는 제자들의 질문에 여러 상징과 징조와 비유를 통해 답변해 주심으로 성경적 종말론과 관련해 상당한 암시(hint)를 제공해 준다(24:3).

 

1. 그리스를 사칭한 자들의 미혹(24:4-5) : 거짓 선지자

2. 전쟁과 난리의 소문 및 기근과 지진 발생(24:6-8) : 재난의 시작

3. ()배교(24:9-12, 살후 2:3, 딤전 4:1, 딤후 3:1-5, 4:3-4)

4. 천국복음의 보편화(24:14) : 본 구절의 말씀은 주께서 친히 명하신 대()위임명령(28:19-20)을 통해 전 세계에 흩어진 하나님의 택자들을 구원해 제자 삼는 복음사역을 지속적으로 수행할 것을 요구한다. 그렇다고 본 구절이 결국에는 세상 모든 민족들이 총체적으로 복음을 수납할 것이라는 기대를 보증해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각 민족들 중에 하나님의 택자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며 '이방인의 충만한 수'(11:25, the full number of the Gentiles)가 복음에 접촉돼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게 될 것을 시사해 준다.

5. 멸망의 가증한 것 등장 및 대()환난의 발생(24:15-22) : 특별히 대()환난과 관련해 ‘7년 대환난이론이나 전 삼년 반/후 삼년 반이론은 세대주의신학에서 파생된 종말론 이론으로 성경적인 지지를 받을 수 없다. 다니엘서 9장에 기록된 70이레 예언은 문자적으로 7년 대환난이나 전 삼년 반/후 삼년 반의 환난 이론을 지지하지 않는다. 기름부음 받은 자의 출현과 그의 구속사역으로 성취될 하나님 나라의 도래에 대한 새 언약의 성취에 집중된다. 이런 사실은 새 언약의 당사자인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사건과 십자가의 구속사역(죽음/부활)을 통해 이미 성취되었고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최종 완성될 것이다.

6. 적그리스도와 거짓선지자들의 역사와 미혹(24:23-28/13) : 역사적으로 적그리스도에 관해 여러 가지 다른 해석적 관점들이 있어 왔다. 때론 로마와 네로 황제를, 때론 교황과 교황직을 적그리스도와 연결시키려는 시도가 있었다. 이런 지적들 속에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적그리스도적 요소가 분명히 확인된다. 그렇다고 동일하게 여겨서는 안 된다. 보다 성경적으로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루이스 벌코프/조직신학 , 1999). 적그리스도적인 요소와 원리는 바울과 사도요한 당시에 이미 활동하고 있었다(요일 2:18, 4:1-3). 적그리스도적 원리는 세상 종말에 이르러 최고조로 발휘될 것이다. 적그리스도와 관련해 다니엘은 정치적인 측면을, 바울은 교회적인 측면을, 사도요한은 계시록에서 이 둘의 양면성을 통합시켜 동시적으로 경계시킨다(13)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그리스도의 실체는 과거 교회역사 속에서 이미 적그리스도의 정체성을 띠고 나타났었던 여러 인물들의 특성을 총체적으로 통합한 인물이 될 것이라는 데 의견이 모아진다.

 

루이스 벌코프는 적그리스도의 정체성을 개인적인 인물과 무관하지 않음을 설명하는데 다음과 같은 성경적 관점에 의존한다(조직신학 , 1999). 11:31-32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핍박하고 성소를 훼방하는 적그리스도적인 인물을 묘사하는 과정에서 다니엘은 그의 정체성을 인격적인 존재로 기술한다. 바울은 재림과 관련해 발생하게 될 대()배도 사건과 관련해 적그리스도적 인물의 등장을 묘사하면서 불법의 사람멸망의 아들이란 표현을 사용한다(살후 2:1-3). 특별히 적그리스도적 인물의 활동 내용을 구체적으로 소개하는 4절의 말씀은 그가 인격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지지한다고 볼 수 있다. 사도요한은 많은 적그리스도가 요한 당대에 이미 나타나 활동하고 있다고 언급하면서(요일 4:1-3, 영지주의자들) 동시에 미래에 나타날 적그리스도의 존재를 단수로 표기한다(요일 2:18). 묵시적 기법으로 기술된 요한계시록의 상징적 묘사 속에서도 적그리스도로 상징되는 두 짐승의 결말을 기술하는 과정에서 이들의 정체성이 인격적 존재로 부각되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들 두 짐승이 심판을 받아 불못에 처해질 수 없을 것이다(19:20). 그리스도께서 한 인격체이심으로 그리스도께 대적하고 성도를 핍박하는 적그리스도의 정체성 또한 한 인격체일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일 것이다.

7. 천지개벽의 징조 발생(24:29/계시록의 7/7나팔/7대접 재앙) : 자연계의 이상 징조와 관련해 계시록에서는 특별히 세 종류의 서로 다른 일곱 재앙을 통해 종말상황을 상징적으로 기술한다(6/8-9/15-16). 이 과정에서 각각의 세 종류의 재앙들은 시간적 순서보다는 전 세계를 포괄하는 동시다발적인 중첩성을 띠고 임한다. 이런 사실은 각각의 7재앙의 마지막 일곱 번째 재앙과 관련해 나타나는 특징적 현상을 요한은 공히 뇌성, 음성, 번개, 지진, 우박등의 용어를 사용하는 것을 통해 증거해 준다(8:5, 11:19, 16:18). 그렇다고 점진성을 전혀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7대접 재앙과 관련해 이를 마지막 재앙으로 기술하는 것을 통해 확인된다(15:1).

 

C. 재림의 본질

종말론적 사건 직후(24:29) “인자의 징조(재림)가 하늘에서 보이게 될 것이다”(24:30). 이와 관련해 재림의 본질에 대해 성경에 근거해 살펴보자.

 

1. 재림의 양상

인격적(육체적) 재림이다 : 예수님의 승천에 대한 기사를 싣고 있는 행 1:9-10은 곧 이어 11절을 통해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 기술한다. 11절에서 흰 옷 입은 두 천사들은 주님의 승천을 바라보는 갈릴리 사람들을 향해 너희 가운데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올라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고 선언한다. 예수님 자신(인격)은 감람원이란 산에서 승천하셨고, 때가 찰 때에 예수님 자신(인격)이 다시 오실 것이다.

가시적인 재림이다 : 이는 인격적/육체적 재림사상과 직결된다. 죽음에서 부활하신 주님의 몸이 눈으로 볼 수 있는 유형적 승천이었다면(1:9), 주님의 재림 또한 유형적/가시적 재림의 성격을 띨 것이 확실하다.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실 것을 약속하고 있기 때문이다(1:11).

돌발적인 재림이다 : 성경은 한편으로 주님의 재림 전에 몇 가지 징조가 있을 것을 가르치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 재림이 도적이 임하듯 예측할 수 없는 때에 돌발적으로 일어날 것을 강조한다(24:37-44, 25:1-2, 13:33-37, 17:26-30, 살전 5;2-3, 3:3, 16;15). 그러므로 아무도 그 날과 시를 알 수 없다. 오직 하나님만 아신다(24:36, 13:32).

영광스런 재림이다 : 주님의 재림은 초림과는 그 양상이 다르다. 초림이 은밀한 중에 소수의 무리를 중심으로 진행되었다면 재림은 공식적이며 만왕의 왕의 신분으로 세상 앞에 영광스럽게 오실 것이다(1:7, 7:13-14).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고 볼 것이며 그로 인해 모든 족속들이 애곡할 것이다(1:7). 그 날에 주님을 대적했던 모든 원수들을 자기 발아래 두실 것이다(고전 15:25).

 

2. 재림의 시기

성경은 예수님의 재림의 징조에 대해 비교적 상세하게 기술한다(24). 반면에 재림의 시기에 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한다. 아니 보다 적극적으로 하나님 아버지 외에는 천사나 아들조차도 재림의 날과 때를 알 수가 없다고 예수님께서 친히 단정적으로 말씀하신다(24:36). 마태는 재림의 시기를 알 수 없다는 사실과 관련해 구약에 기록된 두 가지 사건을 예로 든다. 노아 때 홍수심판 사건과 도적의 비유이다(24:37-44). 전자의 경우는 홍수가 나서 저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한 사실을 강조한다. 이는 사람들의 보편적인 삶의 성격과 방향성이 적극적으로 본능적인 삶을 탐닉하고 추구하느라(요일 2:15-16, 3:6) 하나님께 대해 철저하게 무관심한 반응을 보였다는 것을 의미한다(딤후 3:1-5, 4:3-4). 창세기 저자는 사람들의 이런 보편적인 삶의 반응과 성격을 죄악의 관영함’(6:5, 15:16)으로 판정해 심판의 불가피성을 경고한다. 이런 관점에서 인본주의와 신본주의는 본질상 상충된다. 죄로 인해 타락한 인간의 본성에서 나온 생각과 행동들은 본질상 하나님을 대적하는 마귀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 성경의 관점이다(16:13, 4:8-10, 3:1-6). 후자의 도적의 비유의 경우는 때를 알지 못하는 것과 관련해 예측 불허의 재림의 돌발성을 강조한다. 그러므로 평소부터 늘 깨어 기도하며 근신하는 사전 준비와 대비에 철저한 삶을 살아갈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종말장인 마태복음 24장에 뒤이어 25장에서 열 처녀의 비유(준비)와 달란트 비유(헌신)가 첨부된 것이 이런 사실을 구체적으로 뒷받침 해준다(25:1-30).

 

그렇다면 재림에 지혜롭게 대비한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결국이 어떻게 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이 다름 아닌 마 25:31-46의 내용으로 곧 종말론적인 심판을 통해 각 사람의 영원한 삶의 현주소가 천국의 영생과 지옥의 영벌로 갈라진다는 것이다.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교회 성도들은 하나님의 때를 분별할 줄 아는 영적 분별력과 통찰력 및 계시의 정신이 어느 때보다 절실히 요구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래서 더욱 경성하는 삶의 자세가 요구된다.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니라.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해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13:11-14).

 

3. 재림의 목적

예수님의 재림사건은 구속사의 모든 경륜을 종식시키는 의미를 가진다. 그런 의미에서 재림에는 악인의 부활을 포함한 대부활사건, 종말론적인 심판과 구원의 완성인 상급 및 새 하늘과 새 땅으로 표상된 종말론적 하나님 나라의 도래가 필연적으로 뒤따른다. 심판은 사단을 비롯한 두 짐승(적그리스도의 세력)과 악의 세력 및 모든 불신자들이 총체적으로 해당된다. 그 결국은 지옥의 영원한 형벌에 처해진다(25:33, 41, 46절상, 5:29절하, 살후 1:7-9, 19:20, 20:10, 11-15, 21:8). 상급의 대상은 어린양의 피로 구속함을 받고,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않았으며,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랐던 믿음의 정절을 지킨 자들로,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에게 제한적으로 주어진다(14:4, 22:12). 여기서 상급의 본질은 종말론적 심판대에서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로 말미암아 불못(지옥)의 영벌에서 제외돼 구원의 종말론적인 완성과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안식과 기업에 참여하는 것을 가리키며, 새 예루살렘으로 표상된 승리한 교회가 새롭게 변혁된 창조질서 속에서 누릴 일체의 영광과 축복을 총체적으로 향유하는 것을 가리킨다(21-22).

 

결론적으로

전통적인 개혁주의 종말론은 크게 개인적인 종말론과 우주적인 미래의 종말론으로 구분된다.

개인의 종말에서는 성도의 죽음과 영혼의 불멸 및 육체의 부활 때까지의 의식 활동을 다루는 중간기라는 주제를 다룬다.

개혁주의 종말론에서는 중간기 상태를 일컬어 미완성의 상태, 기대의 상태, 잠정적인 축복의 상태 등으로 묘사한다(칼빈/헤르만 바빙크/유해무/안토니 후크마). 중간기 상태를 죽은 성도들의 영혼이 재림으로 말미암는 육체의 부활 때까지 주님과 더불어 한시적으로 머무는 과도기적인 기간으로 해석한다면 본질상 종말론적 하나님 나라(천국)와 별반 다를 바 없겠지만 성격상 다소간의 차별성이 불가피한 기간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사후세계가 영원세계(천국)와 본질상 다르지 않기에 무시간의 세계란 사실을 고려한다면 중간기를 설명하면서 기다림의 기간/한시적인 기간이란 표현 속에 담긴 시간의 간격과 간극이란 개념이 과연 존속할 수 있을지의 여부가 주목된다.

 

반면에 우주적 종말론에서는 재림을 중심으로 대()배도와 적그리스도의 활동 및 자연계의 이상 징후를 포함하고 있는 대환난과 대부활, 최후의 심판 그리고 종말론적 하나님 나라의 도래 등을 다룬다.


그러므로 개인의 종말은 육체의 부활을 동반하는 그리스도의 재림사건에 통합돼 우주적 종말론의 관점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재림사건은 개인적 종말론과 우주적 종말론을 통틀어 종말론의 중심 주제로 기능하게 된다.

이런 사실은 재림의 목적하나님의 구속경륜에 있어서 구속사의 종말론적 성취인 구원의 최종 완성과 심판이란 두 주제를 동시적으로 담고 있다는 의미와도 무관치 않다. 기독교 신앙의 성격이 종말론적 신앙관으로 표출돼야 하는 이유가 이런 원리에 근거한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22:20).

출처 : 은혜동산 JESUS - KOREA
글쓴이 : 임마,누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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