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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엡 5:15-21 요절: 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우리는 성령 충만이라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그런데 그 의미를 분명하게 파악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어떻게 성령 충만을 받는가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의견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 성령 충만에 대해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잘 배워서 성령 충만한 삶을 살고자 합니다.
15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16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17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우리는 계속해서 그리스도인의 윤리를 배우고 있습니다. 이번 단락은 „너희가 어떻게 행해야 하는지 자세히 주의하라“는 요청으로 시작됩니다. 즉,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성품을 입은새사람이 되었으므로 그에 걸맞은지를 생각하여 신경을 쓰며 주의해서 살라는 말씀입니다.
사도는 이미 4:1에서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하라고 했고, 4:17에서는 불신자가 행하는 것 같이 행하지 말라고 했고, 5:2에서는 사랑 가운데 행하라고 했고, 5:8에서는 빛의 자녀처럼 행하라고 했습니다. 이번 5:15는 본 서신에서 다섯 번째 행함에 대한 요청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행함이 왜 그렇게 중요합니까? 행함은 존재의 표현입니다. 새 피조물은 새 피조물답게 살아야 합니다. 새 피조물이 되었으면, 당연히 자연스럽게 거룩하게 살게 되지 않습니까? 그러나 항상 그렇지 않습니다. 옛사람이 아직 나를 붙잡고 있기 때문에, 많은 노력을 하지 않으면 옛 습관에 사로 잡혀 살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좁은문으로 들어가기를 애쓰라고 하셨고, 사도 바울도 자신은 푯대를 향하여 사냥꾼이 사냥물을 잡으러 좇아가듯이 달려간다고 했습니다(빌 3:14).
이번 단락에서는 지혜있고(15), 현명하게(17) 살라고 합니다. 지혜와 현명은 구약에서도 많이 강조하는 것입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지혜는 타고난 영리함과는 다릅니다. 성경의 지혜는 일반적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찾는 것이며 그것을 깨달아 실천에 옮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육수준이나 지능과 관계없이, 진실된 마음으로 하나님 뜻을 좆는 사람은 지혜로운 자가될 수 있습니다. 성령님의 인도로 필요한 때에 필요한 생각이 떠오르므로 하나님의 뜻에 맞게 행동할 수 있습니다.
16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이곳에서 때가 악하므로 지혜로운 자는 세월을 아끼라고 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주신 시간을 효과있게 잘 사용하라는 말입니다. 때가 악하다는 말은 무슨 의미입니까? 이것은 시대를 불문하고 모든 그리스도인이 처해 있는 상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지금 시대(예수님 초림과 재림 사이)는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져 가고 있는 시대임에도불구하고,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6:12)이 지배하고 있으므로, 그리스도인은 항상 악한 시대에 살고 있다고 보면 됩니다. 그러므로 이들이 정신을 바짝 차리고 살지 않고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지 않으면(6:11), 악의 영들에(6:13) 당합니다.
이것을 시간과 연관 지어 본다면, 악의 영들은 나를 미혹하여 내 시간을 빼앗고, 하나님의 사역을 올바로 섬기지 못하도록 방해합니다. 그러므로 나는 정신을 차려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시간을 나의 경건 생활과 이웃을 섬기기 위해, 하나님 나라를 세우기 위해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어리석은 자가 되어 하나님께서 주신 시간을 낭비하는 것입니다.
17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어리석다는 말은 똑똑하지 못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여 귀한 시간을 엉뚱한 곳에 소비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매사에 주의 뜻이 무엇인지 깨달으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성령님을 받은 사람이라서 성령님께서 그를 인도하시지만(„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롬 8:14), 자신이 깨어서 주님의 뜻을 분별하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어리석은 자가 되어 시간을 낭비하게 됩니다. 저도 어리석은 자가 되어 지난 세월 18년을 낭비했습니다. 매일 하나님 뜻대로 살려고 성경을 공부하고 기도, 전도도 열심히 하지만, 일단 잘못된 생각에 빠지면, 잘못된 생각의 테두리를 벗어나기는 매우어렵습니다. 그럼에도 성령님을 받은 자는 끊임없이 생각하고 묻고 검토하고 말씀을 연구하면 언젠가는 올바른 길을 찾아갈 수 있습니다. 사람은 쉽게 자신이 현명하다고 생각하여 자기생각에 빠지거나 단체에 빠져서 일생을 허비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주의 뜻이 무엇인지 항상 묻고 열심히 탐구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설사 잘못된 길을 간다고 할지라도 성령님께서는 결국 올바른 길로 인도하십니다.
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성경에서 술을 완전히 금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취하는 것은 엄격하게 금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을 통제하기 어렵게 되기 때문입니다(잠 23:29-35). 그 대신에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고 합니다. 이곳에서 술 취함과 성령 충만을 대비시킵니다. 따라서 술 취함을 신 체험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을 금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취함을 성령체험의 수단으로 삼고자 하는 유혹은 교회에까지 들어와 있습니다.
당시 에베소와 소아시아에는 디오니소스(바커스) 종교가 있었습니다. 술 취함으로 엑스터시(황홀)에 빠져들어가 신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디오니소스 축제는 다산과도 관계가 있었으므로 성적 축제가 되기도 합니다. 일반적으로 황홀경과 신 체험을 연결시키는 종교가 많이 있습니다. 이러한 것이 기독교에도 들어와서, 큰 타악기 소리와 함께 찬송가, 복음성가를 열광적으로 부르거나, 큰 소리로 통성기도를 하여 이러한 황홀경을 맛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무엇이든 취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성령 충만은 취한 사람이 받는 것이 아니라, 정 반대로 온전하고 말짱한 정신으로 성령 충만을 받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영을 받는데,어찌 정신이 흐릴 수가 있겠습니까? 성령 충만은 오히려 자신의 행함에 자세히 주의하는 사람(15), 주의 뜻이 무엇인지 묻고 찾는 자(17), 취하지 않는 자들(18)이 받습니다.
15절에서 지혜있는 자가 되라고 했는데, 성경에서 특별한 지혜를 받은 자는 성령의 감동하심에 의한 것이라고 합니다. 요셉의 지혜는 성령님에게서 온 것입니다(창 41: 38-39). 다니엘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단 2:19이하). 성막을 짓는 기술자들도 그들의 임무를 잘 수행하기 위해 하나님의 영을 받았습니다(출 28: 3; 31:6). 여호수아도 자신의 임무를 위해 지혜의 영을 받았습니다(신 34:9). 그러므로 사도 바울이 지혜있는 자가 되라고 하면서 성령 충만을 받으라고 한 것을 볼 때, 지혜롭게 되는 길은 성령 충만을 받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성령 충만은 어떤 것입니까? 1:13-14에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를 믿었을 때에 성령님의 인치심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미 성령님을 받은 자는 성령님을 근심하게 하면 안 되고(4:30), 성령님이 자신의 삶 전체를 채워야 합니다. 1:23에 따르면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지체(성도)를 충만하게 하신다고 합니다. 3:19에서는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모든 충만으로“ 충만하게 하는 것이 신앙생활의 목표라고합니다. 즉, 우리 마음속에 거하시는 성령님께서 우리 삶의 전 범위에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모든 삶에서 나의 주인이 되게 하시며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더욱더 깊이 깨달아나가는 것입니다(3:16이하). 그러므로 성령 충만은 그리스도의 지배입니다. 나의 삶의 전 영역에서 그리스도께서 내 생각과 행동을 지배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사람이나환경, 혹은 세상 정욕이나 감정의 지배를 받지 아니하고, 특히 하나님 역사에 있어서 개인적인 생각이나 사상에 의해 이끌리지 아니하고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을 이끌어 가시도록 하는 것이 성령 충만입니다. 이것은 나의 감정이나 종교적 정신상태와는 거의 무관하며, 오히려 자기를 부인하는 성화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19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20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21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성령 충만을 받을 수 있습니까? 무슨 특별한 방법이 있습니까? 성령 충만을 외치는 교회의 집회에 자주 참여하면 됩니까? 특별한 사람에게 안수기도를 받으면 됩니까?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성령 충만의 지름길은 없습니다! „사도는 성령 충만을 받으라!“고 명령하고서 19-21에서 성령 충만을 위한 5가지 방법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 3구절은 5개의 분사로 구성되어 있는데, 전체적 구조는 „…를 통해서 성령 충만을 받으라“입니다. 이 다섯 가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처음 네 가지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고 감사하는 것에 관한 것이고, 나머지 한 가지는 사람들 사이에 관한 것입니다. 에베소서만 볼 때에는 성령 충만은 이렇게 크게 보면 두 가지로이루어집니다. 본문 해설로 들어가지 전에 먼저 몇 가지를 생각해보겠습니다.
몇십 년 전부터 경배와 찬양이 교회 예배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찬양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찬양의 목적입니다. 하나님이 찬양받으시고 경배받으시는 것입니다. 목적은 하나님 한 분입니다. 만약 우리가 진짜로 이렇게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했다면, 우리의 삶은 분명히 크게 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교회에서 경배와 찬양은 넘쳐나지만, 실제 삶에서 하나님은 경배받으시지 못합니다. 이것은 이러한 경배와 찬양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경배와 찬양의 위험은, 하나님을 영광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충만을 받으려고 하는 데 있습니다. 즉, 경배와 찬양의 목적은 하나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분명히 주객이 전도된 것입니다. 우리가 은혜를 받기 위해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도 아니고, 자아도취를 통해 기분을 풀기 위해 하는 것도 아닙니다. 찬양은 오로지 하나님에게만목적을 둡니다. 이러한 이유로 교회에서 찬양은 넘치지만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는 것도 아니고 자신의 삶도 크게 변하지 않습니다.
성령 충만과 성화는 서로 분리될 수 없이 밀접한 것입니다. 나에게 성령님께서 임하시면 내가 필연적으로 거룩해지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은 거룩한 영이십니다. 방언을 많이 하고 경배와찬양을 많이 하고 교회도 많이 섬기고, 항상 능력있고 기쁘고 힘찬데 그의 삶이 거룩해지지 않으면, 그가 하는 일은 성령님과 전혀 관계가 없음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점은, 성령 충만은 실제 삶에서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를 존중하면서 살 때에 오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의 방법으로서 5:22-6:9까지 매우 길고 자세하게 아내와 남편, 아이들과 부모, 노예와 주인 사이에 어떻게 관계가 이루어져야 하는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 관계가 인간사에서 가장 중요한 관계입니다. 성령 충만은 이렇게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를 잘지키는 데에서 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 충만을 받는 다섯 가지 방법을 살펴보겠습니다.
1) 서로 시편을 이야기해줌으로써 성령 충만하라. 초대교회에서 예배를 드릴 때에 보통 시편을 읽었습니다: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고전 14:26). 여기에서 찬송시는 시편도 될 수 있고 특별히영적인 사람이 지은 찬양시도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서로 찬송시를 읽어줄 때 마음에 감동이 일어나서 진심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고 성령 충만해질 수 있습니다. 오늘날 집안에서도,각종 모임에서도 시편을 읽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2)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름으로써 성령 충만을 받으라 찬미는 하나님, 혹은 그리스도의 사역을 찬양하는 찬송시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심을 생각하며, 그분이 하신 일을 감사와 경외하심으로 열거할 때, 하나님은 경배를 받으십니다(행16:25: 빌립보 감옥에서 바울과 실라의 찬송). 신약에서의 찬미가는 골 1:15-20, 빌 2:6-11, 딤전 3:16입니다. 신령한 노래는 성령님의 감화를 받아서 지어진 노래입니다. 구약의 예로서 출 15:1 이하, 신 32:1 이하의 모세의 노래, 데보라의 노래(삿 5:1 이하), 그리고 계시록에 나오는 많은 찬송가입니다. 이들은 모두 자신이 직접 체험한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후기 교회에서 지어진 찬송가도 속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의 찬송가는 성경에 있는 이러한 신령한 노래보다 질이 떨어지지만, 우리가 선정해서 잘 부른다면, 우리의 영혼을 하나님께 끌어 올려 성령 충만한 자가 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진심으로 이 찬송가와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3) 마음으로 주님을 위해 악기를 연주하며 성령 충만을 받으라 악기를 연주한다는 말은 프살로의 번역으로서 노래하다, 악기에 맞추어 노래하다, 현악기를 뜯는다는 의미입니다. Heavy metall이 아니라 조용한 악기 연주와 반주에 맞추어 부르는 찬송가는 우리의 마음을 고양합니다. 중요한 것은 마음으로 이것을 하는 것입니다.
4) 모든 일에 늘 하나님께 감사함으로써 성령 충만을 받으라 20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감사란 선물을 받고 이것을 기뻐하면서 마음으로 그 기쁨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즉, 감사하는 자는 자기가 받은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준 자의 은혜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정말로 모든 일에 감사해야 합니까? 그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친지가 갑자기 죽었거나 큰일을 당했다면 우리는 감사하기 어렵습니다. 또한 징계를 당할 때에는 괴로워하면서 회개하고, 슬플 때에는 슬퍼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위선이나 억지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고후 7:10)도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나의 죄를 밝혀주시면서 회개를 촉구하실 때, 나는 상당히 괴로워 하게 됩니다. 갈라디아서는 바울 서신 중에서 유일하게 감사로 시작하지 않는 서신인데, 그 이유는 그들이 복음을 떠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문제가 매우 많았지만,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이미 그들 가운데서 역사하신 것에 대해 감사했습니다(고전 1:4 이하).
사도 바울은 문제 자체를 두고 감사한 것 같지는 않고, 이러한 문제와 큰 어려움 곤경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일하시고 계시며, 모든 것을 선으로 돌리신다는 것을 알므로 감사한 것 같습니다(롬 5:3-4; 8:28). 따라서 우리는 어려움 자체에 감사하기는 어렵지만, 나의 고난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감사해야 합니다. 이렇게 본다면 우리는 차차로 고난 자체에도 감사할 수 있게 됩니다. 죽음 앞에서 하나님 앞에서 지난날의 삶을 회상하면서 정리할 때에, 하나님이 자신의 삶을 인도하신 것을 깨닫고 모든 것에 감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항상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감사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어 주시어 나를 죄와 사망에서 건져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고 끝까지 나의 길을 지켜주신다는 확신에서 나옵니다. 이러한 생각이 항상 마음에 자리 잡고 있다면, 감사가 자주 나오고 나는 성령님에 의해 충만하게 됩니다.
5)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서로 순종함을 통해 성령 충만을 이루라 마지막으로 사도는 인간과의 관계에서 구체적인 순종을 통해 구체적인 성화를 요구합니다. 이곳에서 순종이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5:22-6:9의 주제는 질서입니다. 교회나 사회 질서가 아니라 가장을 머리로 하는 집안 질서를 말합니다. 여기에는 아내와 남편, 자녀와 부모, 노예와 주인의 관계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주신 질서를 잘 지키는 것이 서로 순종한다는의미입니다. 이 질서는 위에서 밑으로만 흐르는 물이 아니라 밑에서 위로도 흐릅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자녀는 부모에게, 노예는 상전에게 순종해야 하지만, 남편은 아내에게, 부모는 자녀에게, 상전은노예에게 마땅히 가져야 할 예절과 존중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창조질서와도 관계가 있으므로, 이 질서를 잘 지키는 것이 서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질서는 당시 사람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생각으로는 이러한 질서를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그야말로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니면, 이러한 것이 성경에 들어있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는 다음 주에 다루겠습니다.
정리하겠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모두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성령님으로부터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그 방법을 가르쳐줍니다. 우리가 늘 성령 충만을 받는 방법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하신 일을 생각하며 찬양하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자신에게 도취해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을 자주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나를 축복하셔서 큰 교회를 이루게 하시고, 수많은 사람을 예수의 제자로 기르고…“ 이것은 큰 일을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 능력으로 이루었다고 스스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인간들 앞에서는 큰 자랑이 되겠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의미 없는 공적입니다.
우리가 마땅히 드려야 하는 찬양은 단 한가지뿐입니다: 그분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입니다. 그분의 피로 내가 깨끗함을 입고 구속함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시로서, 노래로서 음미하고 감사하고 증거할 때에 내가 성령 충만을 받는 것입니다. 나에게 있어서 일생 가장 중요한 사실은, 나의 구주 예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이사실만 잘 알고 이것이 나의 삶을 변화시키도록 노력할 때, 나는 성령님으로 충만하게 됩니다. 우리는 자신의 감정을 부추겨서, 혹은 다른 영의 영향을 받아 이상한 행동과 말을 함으로써 성령 충만을 받으려고 하면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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