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좋은 밭이 되라

하나님아들 2016. 4. 20. 13:44

                                 좋은 밭이 되라

                                                                                            성경본문:마13:3-9절

우리가 훌륭한 인물이 되려고 하면 그 사람의 가문이나 전통, 그 사람이 어떤 문화와 환경속에서 성장하였는가? 매우 중요합니다. 사람은 그 가문의 전통과 문화, 사회적 환경에 많은 영향력을 받게 됩니다. 우리의 옛말에 풍년을 거두려면 종자도 좋아야 하지만 밭이 좋아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종자와 밭은 동전의 양면과 같으며, 서로 긴밀한 관계가 있습니다. 좋은 씨를 뿌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씨앗을 받아들이는 밭이 중요합니다. 만약 밭이 황폐하고 길가와 같이 굳어 있으면 아무리 좋은 씨를 뿌려도 풍성한 열매를 거둘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농수산부에서는 풍년을 얻게 하기 위하여 우량종자 개발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으며, 더블어 토양 개발에 적극적으로 힘쓰고 있습니다. 좋은 토양을 만들기 위하여 좋은 흙으로 개토를 하기도 하며, 좋은 퇴비를 만들어 뿌리기도 합니다. 심지어는 좋은 토양을 만들기 위하여 그 밭은 1-2년 동안 아무런 씨앗을 뿌리지 않고 묵혀 두어 흙이 쉴 수 있도록 기회를 줍니다. 우리가 좋은 열매를 맺으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밭이 좋아야 합니다. 마음의 밭이 황폐하거나 상처와 고통이 많으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거부반응이 강하게 일어나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싶은데 나도 모르게 불순종하며, 강한 거역이 일어나게 됩니다.

예수님은 말세가 되면 세상에 믿음있는 자를 보겠느냐? 사랑이 식어지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이라는 각종 타락과 부패의 늪속에서 살다가 보니 세속화와 인본주의화가 뿌리 깊이 박혀 있게 됩니다. 치열한 경쟁사회속에서 이기주의와 자기 중심적인 사고방식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겸손함과 순종보다는 거역과 반항심이 일어나게 되며, 질서와 권위에 대한 반항이 똑똑한 것처럼 착각하게 만듭니다. 권위에 대한 도전이 자신이 살아 있다는 느낌을 가지게 만들고 있습니다. 바울은 말세의 특징을 이렇게 정리하고 있습니다.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라”(딤후3:1-5) 말세가 되면 사람들의 마음이 완악해지고, 교만하여지며, 진리를 듣기 싫어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말, 듣기 편안한 말만 들으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자기 감정에 따라 움직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믿음은 점점 없어지며, 사람들에게서 열정적인 사랑이 식어져서 냉냉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음을 지키며, 내속에 성령의 생수가 마르지 않도록 끊임없이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 비유의 말씀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시는 비유가 전체적으로 항상 무엇에 관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지를 잘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비유를 가지고 온갖 다른 방식으로 이해하는데, 일반적으로 예수님의 비유는 가르쳐 주는 것이 딱 한 주제입니다. “씨뿌리는 비유”에 관하여 어떤 학자는 살아 있는 좋은 씨에 초점을 맞추어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며, 또 다른 학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밭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제가 본문을 연구해 보니 씨뿌리는 비유는 좋은 씨 뿐만 아니라 동시에 좋은 밭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살아 있는 말씀, 좋은 씨도 중요하지만 옥토와 같은 좋은 밭에 될 때 많은 열매를 거둘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천국에 관하여 말씀하실 때 주로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예수님께 나아와 묻기를 “예수님, 어찌하여 비유로 말씀하십니까?”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십니다.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되었나니”(10절)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동기와 목적이 있습니다. 즉 각종 비유들로 말씀하신 목적은 구원받기로 택함을 받은 자들은 천국비밀이 허락되었지만 택함받지 못한 자들은 이해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의도적으로 천국의 실체를 직접 보여주지 않고 각종 비유와 표적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씨뿌리는 비유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천국의 비밀”에 대하여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24절에 보면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도 “천국에 관한 비유”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1. 천국은 마치 농부가 밭에 씨를 뿌리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사역을 시작하신지 얼마 안 되어 갈릴리 해변에 가셨습니다. 많은 무리가 예수님을 따라왔고 예수님은 갈릴리 바다에서 배를 타시고 앉으시고 사람들은 배를 향하여 비탈진 해변에 모여 앉아 여러 가지 비유로 가르치심을 듣는 중 씨뿌리는 비유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들으라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고 더러는 흙이 얇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져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더러는 가시떨기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 기운을 막으므로 결실치 못하였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자라 무성하여 결실하였으니 삼십 배와 육십 배와 백 배가 되었느니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막4:3-9)” 이런 말씀을 들은 제자들의 마음속에 그 말씀이 지워지지도 않고 이해가 되지도 못해 상당히 궁금했습니다. 예수님이 홀로 조용히 계시는 곳에 12제자가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조금 전에 씨 뿌리는 비유에 대한 설명을 좀 해달라고 간청을 드리니 예수님이 풀이해서 설명한 내용이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여기서 농부가 “씨를 뿌린다”는 것은 복음을 전수받은 자들이 나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것은 세상에 좋은 씨를 뿌리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우리의 가족이나 친척, 친구나 이웃들에게 천국의 씨를 뿌려야 합니다. 그 씨를 심령속에 뿌려질 때에 그 영혼이 살아나게 됩니다. 구원의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비유 말씀에서 우선 씨앗은 하늘나라의 복음이며, 그 씨앗을 뿌리는 사람은 복음 선포자입니다. 씨앗이 뿌려지는 곳은 길바닥, 돌밭, 가시덤불, 그리고 좋은 땅인 네 곳으로 언급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밭은 복음의 씨앗이 뿌려지는 토양으로서 선포되는 복음말씀을 듣는 청중과 그의 내적 조건을 의미합니다. 씨뿌리는 자의 첫 번째는 예수님이었고, 그 다음엔 사도들이었습니다. 현재는 예수님의 대리자로서 목회자들이고, 그 목회자들에 의해서 거듭난 신도들입니다. 목회자들에 의해 진리를 깨달아 성령으로 거듭나서 하늘소망을 가꾸고 있다면 그 사람도 하늘소망을 붙들고 살기 때문에 하늘나라의 비밀인 생명의 비밀, 생명의 씨앗을 얼마든지 만나는 사람들에게 뿌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비유를 말씀하신 것은 우리에게 전도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자신의 믿음도 바로 서서 천국에 영광스러운 자격으로 들어가야겠지만 다른 영혼도 구원시켜서 천국에 들어가게 하는 사명이 씨 뿌리는 자의 사명입니다.

오늘 우리는 태신자들을 작정하려고 합니다. 6월에 실시할 “해피데이 축제”를 앞두고 우리들이 잉태할 태신자를 미리 작정하고 기도하려고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이 영혼을 구원해 달라고 믿음으로 작정하고 매일 기도할 때 그 마음의 문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한 사람이 많은 숫자를 정해 놓는 것이 아니라 2명씩을 정하려 합니다. 태신자 작정은 우리가 복음의 씨를 뿌릴 대상자들을 믿음으로 정해 놓고 그 영혼을 구원해 달라고 간절하게 호소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의 씨를 뿌릴 대상자를 믿음으로 작정하세요. 그리고 그 영혼을 위하여 기도하고, 기회가 열릴 때에 복음을 전해 주어야 합니다.

2. 농부가 씨를 뿌리는 밭은 4종류의 형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예수님의 의도적으로 4종류의 밭으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길가 밭입니다. 둘째는 돌밭입니다. 셋째는 가시떨기 밭입니다. 넷째는 좋은 밭입니다. 특히 예수님께서 4종류의 밭을 비유로 말씀하실 때 이방인들에 관한 것이 아니라 선민이라는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즉 4종류의 밭은 불신자를 지칭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다니고 있는 성도들을 지칭하고 있습니다. 교회를 다니고 있는 성도들 가운데 어떤 사람은 길가와 같고 어떤 사람은 돌밭같은 밭이고 어떤 사람은 가시덤불같은 밭이고 어떤 사람은 좋은 밭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매우 중요한 초점은 씨를 뿌리는 사람은 똑같은 씨를 뿌리지만 사람의 마음이 어떤가에 따라서 다양한 반응이 나타나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사단이 그 마음을 사로잡아 버리고 어떤이는 잘듣는 것 같으나 뿌리를 내리지 못하여서 환난 때에 넘어지고, 어떤 사람은 세상의 염려나 유혹이 마음에 더 많이 자라고 있어서 결실을 못맺고 어떤 사람은 말씀을 듣고 잘 깨닫고 순종하여 30배 60배100배의 열매를 맺는다는 말씀입니다.

첫째, 길가와 같이 딱딱하게 굳은 밭입니다. 길가에 뿌리운 씨는 무엇입니까? 단단한 땅을 길이라 합니다. 그래서 길가의 마음은 굳어 있는 마음, 상처받은 병든 마음을 의미합니다. 세상에서 살다가 보니 고통과 상처를 많이 받아 마음의 문이 닫혀있는 마음의 상태를 가진 사람인 것입니다. 이런 사람을 가리켜 우리는 “말이 씨가 먹히지 않는다”는 표현을 쓰기도 합니다. 복음의 말씀이 길가에 뿌리웠다는 것은 곧 말씀을 들었을 때에 사단이 즉시 와서 저희에게 뿌리운 말씀을 빼앗아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기대할 것도 없고 아무런 소망도 없는 그런 상황에서 아예 굳어버린 마음, 뉘우침도 회개도 없는 강퍅한 마음에 떨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의 씨앗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생명의 말씀인 씨앗이 마음에 계속 떨어져도 굳어진 땅에 뿌리를 내리거나 싹이 날 수 없습니다. 사탄은 이런 마음을 좋아합니다. 교회에 가게 내버려두고 설교 들을 때 잘 듣게도 하지만 그 말씀을 받아들이지도 않고 기대하지도 않습니다. 이런 사람과 같은 마음 밭은 그 사람도 모르는 사이에 새가 주워 먹어 버리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교회는 갔다 왔는데 무슨 말씀을 들었는지 전혀 기억에 없습니다. 또한 하나님 앞에 전혀 소망도 없고, 은혜를 사모함도 없는 형식적인 종교인입니다.

둘째, 흙이 얇은 돌밭과 같은 밭입니다. 돌밭에 뿌리웠다는 것은 이들이 곧 말씀을 들을 때에 즉시 기쁨으로 받으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간 견디다가 말씀을 인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라고 합니다. 그곳은 흙이 얇아서 그 씨앗이 금방 싹이 나고 뿌리가 내리는 것 같아 굉장히 기뻐하고 소망적으로 기대도 가졌었는데 햇볕이 뜨거워지니까 수분이 말라버리고 또 뿌리를 내리면서 바위와 돌들이 수분을 빼앗고 결국은 죽고 마는 싹이 되어버립니다. 이들은 조그만 어려움이 와도 쉽게 말씀을 버리고, 세상으로 되돌아가는 자들입니다. 흙이 얇은 돌밭은 강퍅해진 마음 위에 원한을 품고 살며, 누군가가 죽이고 싶도록 밉고, 원망스럽고, 온갖 혈기와 정욕이 한으로 맺혀있는 심령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또 믿고 의지하며 간구하는 자에게 능치 못하심이 없다는 말씀 들을 때에는 기뻐하며 기대를 걸었다가 그 말씀이 결국은 성과를 보지 못하면 자기 자신의 굳은 마음 여러가지 응어리진 돌덩어리로 인하여 더 믿음이 지속되지 못하고 말라 죽어 버리고 맙니다.

셋째, 가시떨기와 같은 밭입니다. 복음의 말씀이 가시떨기가 우거진 그 틈새에도 씨앗이 떨어져 싹이 나고 뿌리가 내립니다. 그러나 가시떨기가 사방에 뿌리를 거미줄같이 얽혀 내리고 거름의 양분을 다 빨아 올렸기 때문에 이 틈새에서 더 이상 영양분을 섭취할 수 없는데다가 가시나무가 햇빛도 막아서 싹이 자라려다가 노랗게 잎이 변하면서 시들어 죽어버리게 됩니다. 이것은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치 못한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세상염려는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한 허욕으로 빚어진 염려입니다. 재리의 유혹은 재산 이익을 미끼로 하는 유혹을 말합니다.

넷째, 옥토와 같은 좋은 밭입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전할 대 좋은 흙에 떨어지는 씨가 있습니다. 이것은 “훌륭하고 선한 마음”으로 소식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잘 깨닫고 이해한 후에 즉시 그 말씀대로 순종하는 사람이 바로 좋은 밭입니다. 우리 각자는 당연히 자신이 좋은 밭에 속한다고 믿고 싶어할 것입니다. 하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견해입니다. 예수께서는 좋은 흙에 뿌려진 것들은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열매를 맺는다”고 말씀하십니다. 말씀에 반응을 보이는 일부 사람들은 마음 상태가 좋고 열매를 맺습니다. 예수님은 이처럼 사람 마음속을 네가지로 구분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네 가지 사실을 통해서 내 마음 상태는 지금 어떤 형편에 있는지를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내 마음이 지금 길바닥과 같이 다져지고 굳어버려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긴 듣는데 전혀 깨달음도, 감동도 없고, 후회도, 회개도 없는 심령이라면 그 사람은 참으로 불쌍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굳어버린 자기 마음을 말씀의 칼날과 성령의 불로 묵은 땅을 기경하여 옥토를 만들어야 합니다. 자신의 마음의 밭을 부드럽게 옥토로 만들고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열심을 다하여 마음의 밭을 일구어 부드럽게 만들면 복음이 그 심령속에 들어가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됩니다. 예수님은 나의 입술이나 겉으로 나타나는 모습을 보고 인정해 주시는 것이 아니라 좋은 밭은 좋은 열매를 많이 맺을 때에 인정받을 것입니다.

3. 이 비유의 초점은 씨가 좋은 밭에 떨어져서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얻게 되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씨뿌리는 비유가 무엇을 초점으로 전개되고 있습니까? 8절에 보면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어떤 것은 백배, 어떤 것은 육십배, 어떤 것은 삼십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비유의 결론은 실패가 아니라 좋은 땅에 떨어진 씨가 자라나서 나중에는 백배, 육십배, 삼십배 이렇게 놀라운 열매를 거두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천국복음은많은 사람들에게 뿌려졌습니다. 하지만 이 중에서 예수님을 믿고 따랐던 주님의 제자들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천국 말씀이 선포되었지만 이 말씀에 반응하는 이는 매우 적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자마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책략에 휘둘려 복음을 빼앗겼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때는 고개를 끄덕끄덕 하다가도 세상의 각종 염려가 생겼을 때 곧바로 주님을 배신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렇게 살려고 생각을 좀 했지만 다른 여러 시험과 재리의 유혹으로 인하여 그 복음을 포기해 버렸습니다.

예수님께서 천국말씀을 선포하였을 때 그 결과는 어떠했습니까? 참으로 참담하였습니다.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을 환영하고 영접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 예수님을 보지 못하였고, 구세주로, 주님으로 영접하지 못하였습니다. 그 복음이 그 인생을 변화시키고 천국의 기쁨과 삶으로 연결시키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바닥에 내동댕이쳐졌고, 하나님의 아들로 오신 예수님을 도리어 사람들은 “신성모독자”라는 이름으로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천국복음의 씨가 뿌려졌지만 그 복음을 깨닫지도 못하였고, 이 복음에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밭에 뿌려진 씨의 진실입니다. 당장 밭의 실례에서만 볼 때에도 4분의 3의 씨가 허비되었습니다. 우리가 열심히 복음의 씨를 뿌렸으니 곧 승리할 것으로 생각하십니까? 너무 큰 기대를 가지지 마세요. 안타까운 현실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여전히 세상적인 가치관이 우세하고, 하나님의 말씀은 승리하지 못하는 듯이 보일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이 뿌려졌을 때의 세상 사람들의 반응이요, 우리가 경험하는 현주소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비유의 핵심이 본문의 뒤쪽에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4분의 3이나 되는 대부분의 씨가 허비되었지만 그것으로 끝이 난 것입니까?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씨뿌리는 비유에서 “대다수의 복음이 허비되었으나 결실한 좋은 밭이 남아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좋은 땅에 떨어지매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놀라운 점이 함께 동반되어 있는데 결실한 밭의 내용물들을 보십시오. 씨를 뿌린 결과로 4분의 1를 결실하게 되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놀랍게도 좋은 땅에 뿌려진 것은 4배가 결실한 것이 아니라, 최소한 삼십 배, 더 많은 것은 육십 배, 더 많은 것은 백 배가 결실을 맺었습니다. 이것은 가히 폭발적인 결실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천국복음의 놀라운 속성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하나님의 나라는 패배한 것처럼 보이고, 사람들에게 배척당한 것처럼 보이고, 죽어버리고 없어져 버린 것처럼 보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놀라운 교훈은 “하나님의 나라의 속성”은 “비록 적은 수의 사람들이 말씀을 들을 뿐이지만, 그들은 모든 사람들이 말씀을 들었을 때보다 훨씬 더 강력하게, 폭발적으로 자라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결코 없어지거나 쇠하여지지도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가 박해와 핍박받았을 때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오늘날 더 왕성하게 부흥하였고,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더 많아졌습니다. 비록 소수의 사람들이 천국복음을 받아들이고, 환영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 복음은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로 자란 것입니다. 천국복음은 겨자씨와 누룩 비유에서도 등장합니다. 천국은 겨자씨처럼 처음에는 비록 작아 보이지만, 나중에는 나무와 같이 크게 자랄 것입니다. 또한 천국은 자루속의 누룩처럼 전부 부풀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천국 비유가 보여주고 있는 “하나님 나라의 속성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씨 뿌리는 비유를 통해서 말씀을 받는 자의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길가, 돌밭, 가시밭이 아니라 좋은 땅이 되어야만 많은 열매들을 맺을 수 있습니다. 내 마음이 좋은 밭이 될때 환난과 핍박, 세상과 재물의 유혹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원하시는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좋은 말씀, 좋은 밭이 되려고 힘써야 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고, 그대로 순종하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님의 씨뿌리는 비유를 통하여 강조하는 요점은 말씀을 전파하라는 것입니다. 밭의 상황은 고려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씨를 뿌려라는 것이 예수님 말씀의 핵심입니다. 딤후4:2절에 보면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예수님의 씨 뿌리는 비유를 잘 설명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항상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며, 씨를 뿌리라는 주님의 지상명령을 순종해야 합니다.

출처 : 광야의 소리(윤삼중 목사의 외침)
글쓴이 : samjung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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