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너희는 나의 계명을 지키라

하나님아들 2016. 4. 20. 13:42

                         너희는 나의 계명을 지키라

                                                                                      성경본문:요14:15-21절

하나님이 온 세상 만물은 자연법칙에 따라 움직이게 만드셨고, 인간에게는 양심이라는 법칙을 통하여 움직이게 하셨고, 특히 구원받은 성도들에게는 십계명이라는 법을 주셨습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이 주신 계명을 따라 살 때에 우리를 더욱 거룩하게 만들며,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지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십계명을 중심으로 살아야 하며, 그 말씀을 준수해야 합니다. 세상방식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하나님을 믿는 것이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여, 주여 부르짖는다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으로 착각하면 안됩니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의 마음과 삶을 주목해 보십니다. 하나님의 사랑한다고 고백한다면 그의 말씀을 존중히 여기며, 하나님의 계명에 따라 순종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때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부어주시며,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더욱 풍성하게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행복한 인생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를 나온 목적이 무엇입니까? 교회에서 무엇을 배워야 합니까? 어떤 지식이나 스마트한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고 온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의 인기나 인정받기 위하여 나온 것도 아닙니다. 돈이나 출세나 어떤 땅의 것, 육신의 것을 얻기 위하여 온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세상에서 배울 수 없고, 얻을 수 없는 십자가의 사랑을 느끼고 배우는 곳입니다.세상은 섬김을 받으려고 하며, 치열한 경쟁사회 죄악된 분위기에서는 섬김과 헌신을 배울 수 없지만 교회에서는 사랑과 섬김을 배우고 실천하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체험하며, 자신을 희생하는 법을 배우는 곳이 거룩한 교회입니다. 교회에서 큰 자는 중직자가 아니라 많이 섬기는 자, 헌신하는 자가 큰 자입니다. 인간은 다른 사람을 사랑하며, 섬길 때 보람과 의미를 찾을 수 있고, 행복이라는 선물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남을 사랑하며, 섬기지 않으면 절대로 풍성한 기쁨과 보람을 얻을 수도 없고, 하나님의 은혜도 체험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내 심령속에 메말라가는 가장 큰 이유는 내 형제와 자매를 내 몸처럼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남을 위하여, 교회를 위하여 헌신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사랑한다는 말은 그들을 위하여 한 알의 썩은 밀알이 된다는 것입니다. 내 자신을 위하여 사는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하여 사는 것이며, 나의 소중한 것을 남을 위하여 옥합을 깨뜨릴 때 정말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이후에 자신만을 위하여 살면 아무런 성령의 역사도 체험할 수 없고, 하나님의 은혜도 점점 사라지며, 풍성한 복도 누릴 수 없습니다. 내 인생, 시간과 물질, 재능을 헌신하여 남을 위하여 한 알을 썩은 밀알이 될 때 풍성함과 큰 은혜를 누리게 됩니다.

제2차 세계대전 말기에 히틀러가 유태인 육백만 명을 한꺼번에 무참히 죽인 사실은 역사가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훗날 연합군이 그들이 갇혀 있던 지하 감방을 수색하던 중에 그 참혹한 감방의 벽에서 다음과 같은 글귀를 찾았다고 합니다. 다윗의 별이 그려진 아래에 “비록 태양은 내게 비춰오지 않으나 나는 태양이 있음을 믿는다. 나는 비록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있으나 진실한 하나님의 사랑이 있음을 믿는다. 비록 하나님은 지금 내게 침묵하고 계시지만 나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으며, 진심으로 사랑한다.” 정말로 가슴 떨리는 글귀입니다. 내가 정말로 주님을 사랑하는가? 과연 이 생명을 다 받쳐 주님을 사랑할 수 있을까? 우리가 정말로 믿는 자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고민했을 법한 질문입니다. 특히 찬양하고 예배할 때 가장 많이 고백하는 말이 바로 "주님 사랑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사랑합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통해 구체적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금 확인시켜 주고 있습니다. “나의 계명을 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요14;21)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입술로 고백만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명령과 계명을 지켜 행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의 행한 일을 보고, 나를 믿으라 하시고,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아니 더 큰 일도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이 주신 계명을 잘 지켜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입술로만 사랑한다고 그 사랑을 인정받지 못합니다. 립서비스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고 생각하면 큰 착각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말보다는 하나님의 계명을 잘 시키는가? 우리의 인격과 삶을 보십니다. 15절에 보면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여기서 “나의 계명”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합니까? 앞뒤 문맥을 연구해 보면 요13:34절에 보면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또한 요15:12절에 보면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하는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계명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은 구약 십계명의 요약이며, 우리가 삶속에서 반드시 실천해야 할 계명입니다. 만약 우리가 서로 사랑하지 못하면 그 속에는 하나님도 없고, 구원받는 증거가 되는 영생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무슨 큰 업적이나 사업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형제, 자매를 내 몸처럼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서로 아껴주며, 섬겨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행복의 출발이며,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객관적인 증거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면서 이웃 사랑으로 실천되지 않으면 그 사랑은 거짓이요,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와 같습니다. 예수께서는 “너희가 나더러 주여 주여” 하고 말하지만, 아버지의 뜻대로 살지 않는 자들은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적들을 행한다, 선지자 사역을 감당하였다고 주장하면서 천국에 들어가기를 간청하였습니다. 그때에 예수님은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 내게서 떠나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안다는 것은 그분을 사랑하는 것이요, 그분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분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입니다. 성경 저자들의 확고한 말씀은 분명하고 단순합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으면, 그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만일 그가 주를 사랑하지 않으면 그는 주님을 모르는 것이라고 요한이 우리에게 확언하여 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아는 것과 사랑하는 것과 순종하는 것이 어떻게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으며 하나님의 신실한 백성들의 생애와는 뗄 수 없는 절대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사도요한은 다음과 같이 한마디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요한일서5:3)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은 하나입니다. 우리가 그의 계명대로 지키며, 세상속에서 살아갈 때 하나님의 사랑이 열매로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는 말씀은 영원한 진리이며, 이 시대에 가장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항상 내 이웃을 사랑하세요. 소중하게 여기세요. 우리가 다른 사람을 내 몸처럼 사랑하게 될 때에 우리 귓가에 “사랑한다” 속삭이시는 하나님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 사랑을 가슴 깊이 체험하는 기쁨을 얻게 될 것입니다. “내 모든 것을 바쳐서 널 사랑해”, “십자가에 죽을 만큼 널 사랑한다”는 주님의 음성을 듣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세상의 사랑과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세상의 사랑은 쓸개라고 빼줄 정도로 사랑하는 것처럼 야단법석을 떨지만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어느 순간에 원수로, 미움의 대상으로 바뀝니다. 이 달콤한 사랑 고백이 한순간에 쓰디쓴 험담 공격으로 뒤바뀌는 것이 인간의 사랑입니다. 어제는 애틋한 눈빛으로 서로를 마주했다가도 오늘은 당장이라도 물어뜯을 것처럼 흘겨보며 미워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합니다. 내가 죄를 범하였을 때에도, 병들 때에도 변함없이 사랑하십니다. ‘내 모습 이대로 받아주시며, 죽을 만큼 널 사랑해’ 라는 입술의 장난이 아니라 하나 밖에 없는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피 흘리게 하심으로써 직접 보이신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율법사가 예수님께 나와서 크고 첫째 되는 하나님의 계명이 무엇입니까? 질문을 던질 때에 예수님은 이렇게 답변을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22:37-40) 예수님은 질문의 핵심을 알고 있었을 뿐 아니라 그 답 또한 정확하며 명쾌했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우선적으로 지키기에 힘써야 할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에서 모든 사랑은 시작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이웃을 얼마만큼 신중하게 사랑해야 합니까? 온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당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인생에 있어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고 제일가는 계명은 없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전존재, 그의 삶 전체를 뿌리채 송두리채 다 드려서 사랑해야 할 분이 바로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할 때, 이웃을 사랑할 때 인간의 존재 이유와 가치를 발견하게 됩니다. 세상에서 얻을 수 없는 기쁨과 행복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2. 우리에게 오신 성령님은 하나님의 계명을 잘 지킬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역사하십니다.

아담 이래로 모든 인간은 날 때부터 이 계명을 어긴채로 태어납니다. 최우선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다음으로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는 계명을 본성적으로 잊어버리고 오직 자기 자신만 사랑하려 합니다. 자기 자신에게만 집중하고 자기 욕심에 이끌려 오직 하나님도 자신을 위하여, 이웃도 자신을 위하여 존재할 뿐이다라고 착각을 합니다. 타락하고 부패한 인간은 온 세상이 자신을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하며 그래서 오직 자신만을 위해 살려고 합니다. 그 결과로 하나님을 경외하지도 않으며, 이웃과의 관계가 깨어지고, 자신의 주변을 지옥으로 만들며, 스스로 인생을 불행의 늪에 빠져들게 만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아니하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이 가르침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의 계명을 지키기 위하여 전적으로 성령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성령 하나님께 도움을 청해야 합니다. 그리고 먼저 믿은 자들이 세상에서 찾아볼 수 없는 모습들을 보여주는 모델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경외하는 것이야, 이웃은 이렇게 사랑하며, 섬기는 것이야! 본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왜 성령님을 보내주셨습니까? 첫째,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을 이루시길 위함입니다. 둘째, 우리로 하여금 주의 계명을 잘 지킬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내속에서 역사하시기 위함입니다. 17절에 보면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속에 계심겠음이라” 진리의 성령님께서 오신 것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진리의 말씀을 잘 가르쳐주고 생각나게 하기 위함입니다. 수많은 핍박과 고통속에서도 우리로 하여금 승리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라” 는 위대한 계명을 받았지만 죄악된 세상, 이기적인 세상속에서 이 계명을 실천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때로는 사랑하라는 계명을 실천하다가 보면 속이 뒤집힐 때도 있고, 내가 꼭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한계상황에 부딪힐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이 보내주신 성령님, 내 속에 내주하신 성령님을 전적으로 의지해야 합니다. 성령님은 진리의 영으로서 우리가 서로 사랑할 수 있도록 실제적으로 도와주시며, 힘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남을 미워하지 않도록 도와주십니다. 원수까지도 용서할 수 있는 거룩한 마음을 주십니다.

사랑의 원자탄이라는 별명을 얻은 손양원 목사님은 고백하기를 자기 두 아들을 총으로 죽인 그 살인자를 진심으로 용서해 주고, 자기 아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은 내속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십자가 사랑에서 나왔다고 간증하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사랑이 아니면 어떻게 자기 아들을 죽인 원수를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인간의 사랑으로는 정말로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그 마음속에 십자가의 사랑을 부어주실 때 원수까지 사랑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주신 새 계명은 마음의 심비에 성령님이 새겨 주십니다. 성령 하나님이 우리 마음속으로 사랑할 수 있도록 역사해 주실 때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의지나 결심으로 아카페 사랑은 불가능합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죄인을 위하여, 부족한 자를 위하여 사는 것은 정말로 힘들고 어렵습니다.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 솔직한 표현일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님께서 역사하실 때는 원수까지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친히 보여준 사람이 스데반 집사님입니다. 스데반 집사님은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다가 그들에게 조롱과 비웃음을 받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말씀을 전하다가 돌에 맞아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음을 당할 때 그의 얼굴이 어떻습니까? 그의 입에서 나오는 기도가 무엇입니까? 스데반의 얼굴이 천사의 얼굴처럼 광채가 났습니다.(행6:15) 스데반의 입에서 나오는 기도는 원망이나 불평이 터져나온 것이 아니라 그들을 불쌍히 여겨 달라고 기도하며, 그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행7:59-60) 스데반은 십자가의 사랑으로 그 모든 고통과 미움을 이겼습니다. 스데반은 성령이 충만함으로 원수까지 용서해 주는 사랑으로 승리하였습니다.

바울은 고통과 핍박을 당하는 로마 성도들에게 이렇게 사랑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블어 화목하라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은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롬12:17-21) 바울은 이렇게 복음을 전하면서 사랑을 실천하였습니다. 자신을 향하여 돌을 던지며, 비난과 조롱을 퍼붓는 자들, 감옥에서 매로 치는 간수들, 자신에게 고통과 상처를 주는 자들까지 다 용서하며,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여 그 마음들을 변화시켜 예수님을 믿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위대한 사도요, 목회자요, 선교사라고 칭함을 받고 있습니다. 지금도 바울은 우리에게 외쳐고 있습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하며, 섬긴 것처럼 나를 본받으라 너희가 나와 같이 되기를 바라노라”

3.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을 잘 지킬 때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으며, 예수님이 나타나시는 큰 영광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을 잘 지킬 때 무슨 사랑을 받을 수 있습니까? 21절에 보면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첫째,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계명을 잘 킬 때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 자신도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안에 거함으로 아버지의 사랑을 받으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주신 계명을 지킬 때 주님의 사랑안에 거하는 자가 됩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정말로 놀라운 복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그 실례로서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다윗은 가는 곳마다 하나님이 함께 하셨고, 그의 손으로 하는 일마다 범사가 승리하게 하셨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다윗에게 이스라엘 왕이 되어 40년동안 권좌에 앉게 하셨고, 그의 자녀들이 지속적으로 왕위를 이어갈 뿐만 아니라 다윗의 자손으로 메시야가 탄생하는 영광과 은총을 부어 주셨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킴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계명을 사랑하고 지키는 자들에게 큰 약속을 하셨습니다.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출20:6) 우리가 하나님의 주신 계명을 지키면 하나님은 천대까지 은혜를 베풀어주실 것입니다. 여기서 천대라는 말은 영원히 하나님의 은혜속에서 살 수 있도록 지켜주실 것을 의미합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그의 말씀대로 지키는 자들에게 천대까지 복을 주십니다. 영원토록 함께 하시며, 놀라운 평강을 주실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이 주신 계명을 지킬 때 예수님이 함께 하시는 은혜와 그의 영광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하는 것은 주의 계명을 지킬 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면 우리의 영안이 맑아져서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며,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특히 주의 계명을 지킬 때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여 자신을 나타내 보여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무엇이며, 오셔서 무슨 사역을 하셨습니까? 이 땅에 오신 이유도 사랑이며,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시고, 고통당하는 자, 병든자들을 직접 치유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직접 실천해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흘러주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분명하게 보며주시며,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이렇게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가장 알아야 하는 것도, 실천해야 할 우선순위도 주님의 계명에 따라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없으면 우리에게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사랑이 없으면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예언하는 능력과 산을 옮기는 믿음이 있을지라도 아무것도 아닙니다.(고전13:1-2) 사랑이 있을 때 우리는 진정한 복음의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최선을 다하여 사랑을 배우며, 사랑하는 사람이 되려고 몸부림쳐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께서 주신 말씀의 의미는 '그의 계명은 곧 사랑이다' 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특히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사랑과 이웃 사랑을 함께 말씀하신 것은 두 계명이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이다는 것을 강조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의 이웃도 자신의 몸처럼 사랑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왜 서로 사랑해야 합니까? 사랑은 신앙의 본질일 뿐만 아니라 주님의 명령입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서로 사랑하라” 는 이 말씀의 의미가 진정 우리의 삶에서 실천될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계명을 진정으로 순종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을 주신 이유는 단순히 감동받고, 행복감에 빠져 있으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삶속에서 실천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라는 주님의 계명을 실천할 때 기쁨이 넘치게 될 것입니다. 행복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사랑을 더욱 깊이 알게 되며, 풍성한 영생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아멘, 할렐루야 !

출처 : 광야의 소리(윤삼중 목사의 외침)
글쓴이 : samjung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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